연재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예전부터 그랬는데. 당신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유월영은 문득 그가 갖은 수단을 써서 자신을 굴복시키던 날들이 떠올랐다.굳어지는 유월영의 얼굴을 보며 연재준이 말했다.“좋게 말해도 듣지 않으니 이제 당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대할 수밖에.”유월영이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이거 놔요!”“아직 춤이 끝나지 않았는데 고 대표님은 왜 그렇게 급한가요? 중간에 떠나는 건 예의가 아니죠.”연재준은 빠져나가려는 유월영의 손을 잡고 다시 그녀를 빙글 돌렸다.유월영은 이 5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연재준은 긴 벨벳 장갑을 낀 유월영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유월영을 진짜로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바꾸었다.“내가 듣기로는, 당신 설날 며칠 동안 봉현진에서 머물렀다면서. 그리고 매일 꽃집에 들어 백합 세 송이를 샀다고 하던데. 아마 당신 양 부모님 영정 앞에 놓기 위해서였겠지. 그런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에는 네 송이를 샀던 걸로 알고 있어. 왜 이번엔 세 송이야?”유월영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나를 감시하고 있었어요?.”아니면 이렇게 많은 것들을 이렇게 자세히 알 리가 없었다.연재준은 부인하지 않았다.“처음에는 백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어.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아. 그건 우리 네 가문을 의미하는 거지? 윤영훈이 무너졌으니 한 송이가 줄어든 거고.”그는 고개를 숙여 유월영의 눈을 바라보았다.“언젠가는 한 송이도 없는 날이 오겠지?”그도 결국 그녀에게 제거될 것이다.어쩐지 연재준의 말투에는 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유월영은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차갑기 그지없었다.마침 음악이 끝났고 유월영은 다른 하객들이 두 사람 사이에 부는 차가운 공기를 눈치채지 못하게 공손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은 여전히 가시가 가득 돋쳤다.“드디어 끝났네요. 연 대표님은 항상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을 잘 알죠. 마치 3년 전 악몽으로 돌아
바로 현시우였다.원래 마르세유에 있어야 할 현시우가 연회장에 나타나자 유월영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고 다른 사람들 또한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눈을 떼지 못했다.연재준은 순간적으로 턱에 힘이 들어갔고 눈빛도 싸늘하게 변했다.아까 그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다른 하객은 그제야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맞아 맞아, 기억났다. 저 남자 현시우잖아. 해외에서 살고 있다는 현 회장님네 막내아들! 3년 전 연회장에서도 그를 본 적 있어!”다른 사람들은 현시우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현 회장님의 막내아들이라면 바로 레온 그룹을 상속받을 크로노스 씨잖아?”“맞아, 바로 그 사람이야. 근데 그가 왜 또 연 대표랑 저러고 있어? 3년 전 연회장에서도 두 사람 분위기 살벌했었는데. 다행히 현 회장님이 중재해서 넘어갔잖아. 그때도 우리는 저 두 사람이 여자 때문에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닌가 했었지...”주변에 모여든 하객들이 점점 많아지자 유월영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그녀는 그저 신연아의 결혼식에서 큰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받아야 할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지 않게 하려고 연재준의 선 넘는 생동도 참아왔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걱정하는 대로 일은 흘러갔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재준과 고민서라는 이름만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상당했고 거기에 현시우까지 더하니 그 조합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하객으로 참석한 현시우 역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연재준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연재준이 차갑고 무정한 느낌을 준다면 현시우는 마치 그의 가슴에 꽂힌 하얀 동백꽃처럼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주었다.그 역시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진 않았다.유월영은 아무리 마음이 복잡해도 그의 차분한 갈색 눈동자를 마주하면 마음이 가라앉았다.현시우가 말했다.“월영아, 내 곁으로 와.”유월영은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
하객들 사이를 비집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신현우를 보면서 유월영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신현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중재하려고 다가왔다.유월영은 아직도 신경전을 하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보다가 화를 참으며 말했다.“내가 물건이에요? 네 것, 내 것이라뇨? 그리고 크로노스 씨, 그런 말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야?”현시우는 잠시 당황하다가 미소를 지었다.“미안해, 내가 말이 헛나갔어.”하지만 유월영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끝이야?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그럼 집에 돌아가서 반성문 쓸게. 화 풀어. 응?”현 회장의 아들, 레온 그룹의 크로노스 씨라는 이 남자는 이 많은 하객들이 보는 데서 약혼녀의 한마디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그처럼 지위가 높고 잘생기기까지 한 남자가 쩔쩔매는 모습에 여자 하객들의 마음은 모두 녹아내렸다...다른 한 편으로 이런 대단한 인물을 쥐락펴락하는 유월영의 수단에 남자 하객들도 감탄했다.연재준은 두 사람이 통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다정한 모습을 보자 훨씬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유월영은 한 번도 자신에게 이렇게 애교를 부리거나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한 번도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이렇게 친밀하게 대해준 적이 없었으며 그때의 두 사람은 결코 드러낼 수 없는 관계였다.유월영은 현시우에 잡힌 자신의 손을 빼면서 마지못해 화가 풀린 듯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 지었다.그리고 연재준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연 대표님께서 춤을 추고 싶으시다면 다른 여성분을 초대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다시 연 대표님과 춤 한 곡 출게요. 오늘은 제 하이힐이 너무 높아서 불편하거든요. 정말 더는 함께할 수 없네요. 부디 양해해 주세요.”“...”연재준은 몇 초 후 마침내 천천히 그녀의 손을 놓았다.유월영은 언제나 상황을 원만하게 잘 풀어가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연재준과 현시우가 신연아의 결혼식에서
유월영은 루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아쉽네, 난 시우 씨 고모님이신 줄 알았어. 그러면 전에 묵은 빚까지 다 꺼내서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했는데.”유월영이 말한 묵은 빚이란, 현시우의 고무 엘리자베스 부인이 꾸민 그 교통사고를 말했다.현시우는 유월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서두를 필요 없어.”유월영은 갈비를 한 조각 집어 들고 다른 음식들도 좀 담아서 현시우와 함께 신연우에게 다가갔다.현시우는 이미 신연우와 오랜 친구였고 신연우가 처음 유월영에게 접근한 것도 그의 부탁을 받고서였다.현시우는 가까이 가기도 전에 손을 내밀며 말했다.“연우야.”신연우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미소를 지었고 현시우를 반기며 말했다.“와줘서 다행이야.”현시우는 신연우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의사를 데려왔어. 결혼식이 끝나면 한 번 봐보자.”신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또 의사야? 우리 집엔 의사가 너무 많아서 축구팀을 만들어도 될 정도야.”하지만 유월영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여러 의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좋죠.”신연우는 고개를 숙여 다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그래요. 그렇게 하죠.”세 사람은 이내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기 시작했다. 유월영은 갈비가 조금 짠 듯하여 웨이터를 불러 와인을 부탁했다.신연우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현시우는 정확히 포착하고 유월영의 손을 끌어내면서 억지로 과일 주스를 건네주었다.단 걸 좋아하지 않는 유월영은 달갑지 않은 듯 주스를 밀어냈다.현시우는 말 없이 웃으며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양복 앞주머니에 꽂아둔 하얀 동백꽃을 떼어 그녀의 귀 옆에 꽂아주었다.유월영은 이게 무슨 주책이냐는 듯 그를 흘기다 더 이상 와인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와인잔을 놓았다.현시우는 유월영이 별말을 하지 않자 고개를 돌리다 무심코 맞은편을 한 번 바라보았다.맞은편에는 연재준이 서 있었다.연재준은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방금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오성민은 바로 신주시에 가서 이승연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비서가 그를 말렸다.“윤 대표님의 교훈을 잊으셨습니까? 바로 유월영이 놓은 덫에 빠져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 여자는 너무 교활해요. 어디에서 함정을 파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요.”오성민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되찾았다.비서가 제안했다.“차라리 연 대표한테 전화를 걸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분은 이혁재와 절친한 사이이니 이혁재의 지금 상황을 잘 알 겁니다.”일리가 있었다.오성민은 바로 연재준의 번호를 눌렀다.연재준은 서지욱을 데리고 막 병원에 도착한 참이었다.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도 오 변호사님과 다를 바 없어요.”오성민이 입을 열었다.“만약 상황을 알게 되면 저에게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려요..”“알겠습니다.”연재준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수술실로 빠르게 걸어갔다.수술실 앞에는 이혁재 외에도 유월영과 현시우가 있었다.유월영은 이미 드레스를 갈아입고 지금은 아주 따뜻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연재준은 그녀를 슬쩍 바라본 뒤 이혁재한테 물었다.“승연 씨 상황이 어떤 것 같아?”이혁재가 중얼거렸다.“아직 의사가 나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그러다 그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준아, 내가 봤어. 방금 승연 누나가 정말로 눈을 떴어. 내가 봤다고. 비록 몇 초였지만 모니터에 있던 데이터도 전이랑 달랐어. 누나가 정말로 깨어나려나 봐. 정말로 깨어나려고...”2년이었다.2년 전, 이승연은 살인사건으로 고소당한 학생을 변호하다 법정에서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6개월 된 뱃속의 아이까지 잃고 그 후로 쭉 혼수상태에 빠졌다.이혁재는 깊은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다.“승연 누나, 누나가 깨어날 줄 알았어.”서지욱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연재준의 전화기 너머로 오성민도 모든 걸 듣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고마워요. 연 대표님.”연재준은
이혁재는 몇 초간 생각하다 차분하게 말했다.“재준아, 며칠 전에 감기에 걸렸다고 했던 것 같은데 먼저 들어가서 쉬어.”연재준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그런 거 아니야. 그냥 승연 누나를 지키고 싶은 것뿐이야. 이해해 줘.”이혁재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더 이상 누나를 일고 싶지 않아.”연재준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떠났고 서지욱도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병원을 나온 연재준은 실망하거나 화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차 문을 열고 막 차에 오르려 하자 서지욱이 갑자기 그를 붙잡았다.“재준아, 우리 어디 좀 가서 얘기하자. 할 말이 있어...현시우에 관한 일이야.”서지욱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고 뭔가 암시하는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 연재준의 얼굴이 굳어졌다.“우리 집으로 가자.”“그래.”연재준은 아직 산수원에 살고 있었다.두 사람은 집에 들어서 불을 켰다. 서지욱은 집안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집안은 적막했고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원래 다른 사람이 들이는 걸 싫어하던 연재준은 최근 몇 년 동안 더욱 심해진 듯했고 가사도우미만 가끔 집을 청소하러 오곤 했었다.서지욱이 입을 열었다“혼자 이런 곳에 살면 없던 병도 생기겠다. 집이 너무 우중충하잖아.”연재준이 말했다.“아니야. 조용하고 좋아.”두 사람은 발코니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라탄 의자와 테이블 세트가 놓여 있었다.서지욱은 테이블 위에 있던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고 연재준이 티백을 꺼냈다.시간은 이미 새벽 2시가 넘었고 두 사람은 따뜻한 차를 준비하며 얘기를 주고받았다.연재준이 무심코 담배 한 대를 건네자 서지욱은 아예 담뱃갑을 빼앗아 갔다. “폐가 안 좋은 사람이 담배까지 피우고, 빨리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거야?”연재준이 담담하게 물었다.“고씨 가문 아들의 행방은 찾았어?”작년 10월, 서지욱이 회사 일로 국내와 해외를 돌아다닌다고 했을 때 연재준은 그에게 고씨 가문 유괴된 아들의 행방을 알아봐 달
차가 다 우려졌다.연재준은 차를 바로 마시지 않고 쌉쌀한 차의 향기를 맡으며 생각에 잠겼다.얇은 찻잔은 이내 뜨거워졌고 그의 손끝은 뜨거운 찻잔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서지욱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재준아?”연재준은 찻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말했다.“시간을 내서 프링스에 한번 다녀와야겠어.”...유월영과 현시우가 병원을 나섰을 때는 이미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심호준이 알려준 소식 덕분에 유월영은 기분이 아주 좋아져 피곤할 줄 몰랐다.그녀는 병원을 나선 후에도 차에 바로 오르지 않고 인적 없는 거리를 걸었다.현시우도 당연히 따라나섰고 운전사는 그들의 뒤에서 천천히 차를 몰며 따라왔다.유월영은 밤바람을 맞으며 두 손을 등 뒤로 하고 현시우를 마주 보며 뒤로 걸었다..다행이 이 시간엔 차가 없었고 길거리는 조용했다.현시우는 연회장을 나오면서 추위를 막기 위해 정장 위에 긴 코트를 걸쳤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탓인지 그한테서 유럽 신사의 우아함과 로맨틱함이 묻어났다.유월영이 물었다.“시우 씨, 짐은 어디 있어?”현시우가 대답했다.“호텔로 보냈어.”“어느 호텔?”현시우가 미소 지으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그녀의 질문이 쓸데없다는 듯 말했다.“당연히 네가 묵는 호텔이겠지.”“아~”유월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내가 깜빡했네, 나 요즘 그 호텔에 없어. 집에서 살고 있거든, 그러니까 시우 씨 이제 호텔에 혼자 있어야겠네~”현시우가 웃으며 말했다.“봉현진에 간 거야? 그럼 나도 가서 네 양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지.”“봉현진말고.”유월영이 말했다.“연말 전에 내가 고씨 가문의 오래된 집을 연재준한테서 다시 가져왔잖아. 이미 다 수리되어서 오늘 내 짐을 그 집으로 옮겼어.”현시우는 멈칫하다 이내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네가 말한 집이 그 집이구나.”유월영은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시우 씨 방도 준비해 놓았으니까, 지금 바로 호텔에서 짐을 그쪽으로 옮기면 돼.”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유월영은 말문이 막혔다.“애처럼 이러는 거야? 크로노스 씨?”현시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옷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알았어. 이제 늦었으니...집에 가야지.”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유월영이 묵고 있는 고씨 가문의 옛집으로 향했다.옛집이 위치한 지역은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었으며 굳이 분류하자면 일반 주택지였다.길가에는 아직도 밤에만 나오는 야식 노점들이 몇 군데 있었고 장사도 잘되고 있었다.한 우동가게를 지나자 유월영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현시우가 물었다.“배고파?”“조금 배고프네. 이 집 우동이 맛있더라고. 시우 씨도 먹어보면 좋아할 거야. 며칠 전에 주인한테 들었는데 이곳에서 거의 30년 동안 장사했다고 해. 매일 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나온대. 생각해 보니까 그러면 우리 부모님도 여기서 먹었을 거 아냐, 아, 우리 오빠도.”유월영은 그저 현시우에게 우동을 사주고 싶었고 그래서 듣고 있던 현시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유월영은 차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사장에게 우동 두 그릇을 주문하려고 했다.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현시우가 갑자기 그녀의 팔을 잡아챘고 그대로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유월영은 그대로 그의 몸에 넘어졌다.유월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시우를 올려다보았다.불 꺼진 가로등 아래 그의 얼굴 절반은 어둠에 가려졌고 그의 살짝 긴장된 턱선만 볼 수 있었다. 현시우는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출발하세요.”“잠깐!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유월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뭐 하는 거야?”현시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로등의 불빛이 오뚝한 콧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눈빛은 평소처럼 차분했다.“난 네가 끓여준 국수 먹고 싶어. 집에 가서 끓여줄 수 있지?.”“뭐라고?”유월영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4시였다.“악덕 사장들도 이 정도로 직원 갈아 넣진 않아. 한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