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준이 호텔 방을 떠날 때 마침 점심을 가져온 한세인과 마주쳤다.한세인은 유월영의 방에서 나오는 연재준을 발견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아가씨!”그러나 유월영은 그저 무표정하게 화장대 앞에 서서 화장 솜을 꺼내 메이크업 리무버를 묻힌 후 입술을 세게 닦아내고 있었다.유월영의 눈에는 차가운 냉기가 서려 있었다.한세인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침대로 향했다. 침대는 그저 유월영이 잠에서 깬 흔적뿐이었고 그녀의 머리와 옷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별일이 없는 듯한 모습에 한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가씨, 연 대표가 여길 왜...”“별일 아니에요.”유월영은 젖은 티슈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세인이 들고 온 아침 식사를 보며 말했다.“두고 가세요. 먹고 이따 신 교수님을 보러 가려고요.”한세인은 그녀가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대답했다.“...네”유월영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실에는 신연우와 두 명의 간병인만 있었다.신연우는 막 점심을 먹었는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어제보다 상태가 조금 나아 보였다.그러나 많은 출혈로 인해 입술은 여전히 창백했다.유월영을 보자 신연우는 살짝 미소 지었고 유월영도 그에 맞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많이 아파요?”병실은 따뜻했기에 유월영은 거추장스러운 목도리를 벗어 의자 위에 던져두었다.신연우는 고개를 저은 후, 그녀에게 물었다.“어젯밤 경찰이 찾아왔다던데, 무슨 일 때문인가요?”“이렇게 빨리 소문이 나다니.”유월영은 가볍게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경찰 조사에 협조하러 간 것뿐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하지만 신연우는 믿지 않았다.한밤중에 형사가 직접 병원에 와서 그녀를 데려간 걸 보면 별일이 아닌 게 아니었다.유월영은 그가 더 묻기 전에 먼저 물었다.“둘째 형께서 신 교수님 다리에 대해 뭐라고 하셨어요?”신연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이불 속 다리를 살짝 만지며
설날이 어김없이 다가왔다.하지만 유월영은 이번 설을 아주 조용하게 보냈다. 특별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고 정월 초사흘까지 모두 평온하게 지나갔다.정월 초닷새에 유월영은 신현우의 여동생 신연아의 결혼식에 참석했다.신랑은 신주시의 사람이었고 결혼식도 신주시에서 열렸다.돈이 부족하지 않던 신씨 가문은 백억원의 거금을 들여 별장 한 채를 샀다. 그 별장은 신연아의 혼수인 셈이여 결혼식 장소로도 사용될 예정이었다. 신연아는 어릴 때부터 신연우와 가장 사이가 좋았고 신연우도 그녀를 가장 아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결혼식에서 여동생의 손을 잡고 신부 입장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아 휠체어를 타야 했고 결국 신현우가 신연아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들어섰다. 신연우는 무대 아래서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옆자리에 있던 유월영은 조용히 안경 너머로 눈물을 훔치는 신연우를 보고 가슴이 착잡해졌다.신연아는 신연우가 직접 업어 키운 셈이었고 동생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에 동생의 손잡고 신부 입장을 같이 걸어가야 했을 사람이었다.유월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성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러다 유월영은 연재준을 발견했다. 그는 옆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고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그도 그녀를 바라보았다.유월영은 무표정한 채로 고개를 돌렸고 신연우에게 농담하듯 말했다.“신 대표님은 윤영훈한테 빌려줄 돈은 없다면서 여동생에게 집을 사줄 돈은 있었네요.”신연우가 속삭였다.“이 집은 작년 중순에 산 거예요. 그 일이 있기 전이죠.”식이 끝난 후 신연우는 연회장 구석에서 하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유월영은 자신이 마실 칵테일과 신연우에게 줄 주스를 들고 그의 옆에 다가갔다. 그녀는 신연아의 남편을 보고 의외라는 듯 말했다.“신연아 씨 남편, 저 분이었네요.”“왜요? 저 사람 평판 나쁘다는 건가요?”유월영이 미소 지었다.“그 사람이 평판이 나빴다면 오빠들, 특히 신 교수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결혼을 허락했다는 건 인품
“...”유월영이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파트너는 이미 다른 여자와 같이 왈츠를 추고 있었다.연재준이 교묘하게 파트너를 바꾼 것이다!유월영은 그날 호텔 방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를 보면 짜증이 났다.“연 대표님, 이건 너무 양아치 짓 아닌가요?”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바둥거렸다.연재준은 유월영의 허리를 살짝 감싸고 손을 잡았을 뿐인데 유월영은 빠져나올 수 없었다!연재준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사교춤에서 파트너를 교환해서 추는 게 정상이야. 고 대표는 처음 춰보는 게 아닐 텐데?”그러더니 손을 들어 유월영을 팔 아래에서 빙글 원을 그리게 했다.유월영은 그가 허리를 풀어주는 순간을 틈타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는 다시 그녀의 팔을 바로 끌어당겨 안았다.유월영은 그에게 놀아난 기분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유월영은 너무 심하게 저항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소란을 피워 신연아의 결혼식을 망칠까 봐 신경 쓰였다.‘그래. 그냥 참자.’춤은 고작 3~5분이면 끝난다고 유월영은 자신을 달랬다.연재준은 그녀의 몸을 이끌고 천천히 다가갔다 멀어지며 느긋하게 춤을 췄다.“요즘 뭐 하고 지내?”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신경 쓸 것 없어요.”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고 있었다.“혁재가 신경외과 천재 의사로 불리는 심호준을 찾아 승연 씨를 치료하게 한다면서. 당신 요즘 자주 혁재의 집에 드나들던데, 승연 씨를 보러 간 거지?”유월영은 여전히 똑같이 대꾸했다.“무슨 상관이에요?”몇 박자가 지나고 연재준은 점점 더 진지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전에는 승연 씨의 치료 상황이랑 구체적인 병세는 외부에 비밀로 부쳐졌잖아. 그런데 요즘 당신은 자주 거기를 찾아가고 선물도 많이 보내더군. 어제는 신상 옷들과 신발에 가방까지. 오늘은 음식에 술까지. 이런 행동들은 마치 외부 사람들한테 이 변호사가 이미 깨어났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 당신은 사람들에게 이 변호사가 회복되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모양인데 너무 티가 나.”“연
연재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예전부터 그랬는데. 당신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유월영은 문득 그가 갖은 수단을 써서 자신을 굴복시키던 날들이 떠올랐다.굳어지는 유월영의 얼굴을 보며 연재준이 말했다.“좋게 말해도 듣지 않으니 이제 당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대할 수밖에.”유월영이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이거 놔요!”“아직 춤이 끝나지 않았는데 고 대표님은 왜 그렇게 급한가요? 중간에 떠나는 건 예의가 아니죠.”연재준은 빠져나가려는 유월영의 손을 잡고 다시 그녀를 빙글 돌렸다.유월영은 이 5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연재준은 긴 벨벳 장갑을 낀 유월영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유월영을 진짜로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바꾸었다.“내가 듣기로는, 당신 설날 며칠 동안 봉현진에서 머물렀다면서. 그리고 매일 꽃집에 들어 백합 세 송이를 샀다고 하던데. 아마 당신 양 부모님 영정 앞에 놓기 위해서였겠지. 그런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에는 네 송이를 샀던 걸로 알고 있어. 왜 이번엔 세 송이야?”유월영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나를 감시하고 있었어요?.”아니면 이렇게 많은 것들을 이렇게 자세히 알 리가 없었다.연재준은 부인하지 않았다.“처음에는 백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어.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아. 그건 우리 네 가문을 의미하는 거지? 윤영훈이 무너졌으니 한 송이가 줄어든 거고.”그는 고개를 숙여 유월영의 눈을 바라보았다.“언젠가는 한 송이도 없는 날이 오겠지?”그도 결국 그녀에게 제거될 것이다.어쩐지 연재준의 말투에는 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유월영은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차갑기 그지없었다.마침 음악이 끝났고 유월영은 다른 하객들이 두 사람 사이에 부는 차가운 공기를 눈치채지 못하게 공손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은 여전히 가시가 가득 돋쳤다.“드디어 끝났네요. 연 대표님은 항상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을 잘 알죠. 마치 3년 전 악몽으로 돌아
바로 현시우였다.원래 마르세유에 있어야 할 현시우가 연회장에 나타나자 유월영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고 다른 사람들 또한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눈을 떼지 못했다.연재준은 순간적으로 턱에 힘이 들어갔고 눈빛도 싸늘하게 변했다.아까 그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다른 하객은 그제야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맞아 맞아, 기억났다. 저 남자 현시우잖아. 해외에서 살고 있다는 현 회장님네 막내아들! 3년 전 연회장에서도 그를 본 적 있어!”다른 사람들은 현시우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현 회장님의 막내아들이라면 바로 레온 그룹을 상속받을 크로노스 씨잖아?”“맞아, 바로 그 사람이야. 근데 그가 왜 또 연 대표랑 저러고 있어? 3년 전 연회장에서도 두 사람 분위기 살벌했었는데. 다행히 현 회장님이 중재해서 넘어갔잖아. 그때도 우리는 저 두 사람이 여자 때문에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닌가 했었지...”주변에 모여든 하객들이 점점 많아지자 유월영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그녀는 그저 신연아의 결혼식에서 큰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받아야 할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지 않게 하려고 연재준의 선 넘는 생동도 참아왔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걱정하는 대로 일은 흘러갔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재준과 고민서라는 이름만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상당했고 거기에 현시우까지 더하니 그 조합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하객으로 참석한 현시우 역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연재준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연재준이 차갑고 무정한 느낌을 준다면 현시우는 마치 그의 가슴에 꽂힌 하얀 동백꽃처럼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주었다.그 역시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진 않았다.유월영은 아무리 마음이 복잡해도 그의 차분한 갈색 눈동자를 마주하면 마음이 가라앉았다.현시우가 말했다.“월영아, 내 곁으로 와.”유월영은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
하객들 사이를 비집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신현우를 보면서 유월영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신현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중재하려고 다가왔다.유월영은 아직도 신경전을 하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보다가 화를 참으며 말했다.“내가 물건이에요? 네 것, 내 것이라뇨? 그리고 크로노스 씨, 그런 말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야?”현시우는 잠시 당황하다가 미소를 지었다.“미안해, 내가 말이 헛나갔어.”하지만 유월영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끝이야?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그럼 집에 돌아가서 반성문 쓸게. 화 풀어. 응?”현 회장의 아들, 레온 그룹의 크로노스 씨라는 이 남자는 이 많은 하객들이 보는 데서 약혼녀의 한마디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그처럼 지위가 높고 잘생기기까지 한 남자가 쩔쩔매는 모습에 여자 하객들의 마음은 모두 녹아내렸다...다른 한 편으로 이런 대단한 인물을 쥐락펴락하는 유월영의 수단에 남자 하객들도 감탄했다.연재준은 두 사람이 통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다정한 모습을 보자 훨씬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유월영은 한 번도 자신에게 이렇게 애교를 부리거나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한 번도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이렇게 친밀하게 대해준 적이 없었으며 그때의 두 사람은 결코 드러낼 수 없는 관계였다.유월영은 현시우에 잡힌 자신의 손을 빼면서 마지못해 화가 풀린 듯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 지었다.그리고 연재준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연 대표님께서 춤을 추고 싶으시다면 다른 여성분을 초대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다시 연 대표님과 춤 한 곡 출게요. 오늘은 제 하이힐이 너무 높아서 불편하거든요. 정말 더는 함께할 수 없네요. 부디 양해해 주세요.”“...”연재준은 몇 초 후 마침내 천천히 그녀의 손을 놓았다.유월영은 언제나 상황을 원만하게 잘 풀어가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연재준과 현시우가 신연아의 결혼식에서
유월영은 루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아쉽네, 난 시우 씨 고모님이신 줄 알았어. 그러면 전에 묵은 빚까지 다 꺼내서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했는데.”유월영이 말한 묵은 빚이란, 현시우의 고무 엘리자베스 부인이 꾸민 그 교통사고를 말했다.현시우는 유월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서두를 필요 없어.”유월영은 갈비를 한 조각 집어 들고 다른 음식들도 좀 담아서 현시우와 함께 신연우에게 다가갔다.현시우는 이미 신연우와 오랜 친구였고 신연우가 처음 유월영에게 접근한 것도 그의 부탁을 받고서였다.현시우는 가까이 가기도 전에 손을 내밀며 말했다.“연우야.”신연우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미소를 지었고 현시우를 반기며 말했다.“와줘서 다행이야.”현시우는 신연우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의사를 데려왔어. 결혼식이 끝나면 한 번 봐보자.”신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또 의사야? 우리 집엔 의사가 너무 많아서 축구팀을 만들어도 될 정도야.”하지만 유월영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여러 의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좋죠.”신연우는 고개를 숙여 다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그래요. 그렇게 하죠.”세 사람은 이내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기 시작했다. 유월영은 갈비가 조금 짠 듯하여 웨이터를 불러 와인을 부탁했다.신연우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현시우는 정확히 포착하고 유월영의 손을 끌어내면서 억지로 과일 주스를 건네주었다.단 걸 좋아하지 않는 유월영은 달갑지 않은 듯 주스를 밀어냈다.현시우는 말 없이 웃으며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양복 앞주머니에 꽂아둔 하얀 동백꽃을 떼어 그녀의 귀 옆에 꽂아주었다.유월영은 이게 무슨 주책이냐는 듯 그를 흘기다 더 이상 와인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와인잔을 놓았다.현시우는 유월영이 별말을 하지 않자 고개를 돌리다 무심코 맞은편을 한 번 바라보았다.맞은편에는 연재준이 서 있었다.연재준은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방금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오성민은 바로 신주시에 가서 이승연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비서가 그를 말렸다.“윤 대표님의 교훈을 잊으셨습니까? 바로 유월영이 놓은 덫에 빠져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 여자는 너무 교활해요. 어디에서 함정을 파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요.”오성민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되찾았다.비서가 제안했다.“차라리 연 대표한테 전화를 걸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분은 이혁재와 절친한 사이이니 이혁재의 지금 상황을 잘 알 겁니다.”일리가 있었다.오성민은 바로 연재준의 번호를 눌렀다.연재준은 서지욱을 데리고 막 병원에 도착한 참이었다.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도 오 변호사님과 다를 바 없어요.”오성민이 입을 열었다.“만약 상황을 알게 되면 저에게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려요..”“알겠습니다.”연재준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수술실로 빠르게 걸어갔다.수술실 앞에는 이혁재 외에도 유월영과 현시우가 있었다.유월영은 이미 드레스를 갈아입고 지금은 아주 따뜻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연재준은 그녀를 슬쩍 바라본 뒤 이혁재한테 물었다.“승연 씨 상황이 어떤 것 같아?”이혁재가 중얼거렸다.“아직 의사가 나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그러다 그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준아, 내가 봤어. 방금 승연 누나가 정말로 눈을 떴어. 내가 봤다고. 비록 몇 초였지만 모니터에 있던 데이터도 전이랑 달랐어. 누나가 정말로 깨어나려나 봐. 정말로 깨어나려고...”2년이었다.2년 전, 이승연은 살인사건으로 고소당한 학생을 변호하다 법정에서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6개월 된 뱃속의 아이까지 잃고 그 후로 쭉 혼수상태에 빠졌다.이혁재는 깊은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다.“승연 누나, 누나가 깨어날 줄 알았어.”서지욱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연재준의 전화기 너머로 오성민도 모든 걸 듣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고마워요. 연 대표님.”연재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