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준은 차를 두 대 준비해 왔다.하나는 여행용 고급 밴이고 또 하나는 승용차였다. 연재준은 강수영에게 먼저 승용차에 타라고 달랬다.강수영은 예전에 사촌오빠가 너무 차갑고 눈이 높아 결혼을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눈앞의 연재준을 보며 오히려 그가 너무 비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수영아.”연재준이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그렇게 자존심 없어서야. 쯧.”강수영은 기분 나쁘다는 듯 발을 구르다 차에 올라탔다.연재준은 유월영과 함께 밴으로 향했다.뒷좌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화난 표정을 지은 강수영을 보고 하정은이 말했다.“아가씨도 유월영 씨한테 너무 화내지 마세요.”강수영은 흠칫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도 유월영 때문에 화내는 건 아니에요. 내 사촌 오빠가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그런 거죠. 보증금이라면 내가 와도 되고 아니면 하 비서님이 와도 되잖아요? 우리가 연씨 가문의 이름을 대면 경찰서에서 우리를 모른 척하겠어요? 굳이 눈보라를 뚫고 여기까지 직접 올 필요가 없었잖아요.”더욱 속상한 건 연재준이 그렇게 했음에도 유월영은 그를 허수아비 보는 듯했고 강수영은 그걸 견딜 수 없었다.하정은은 뭐라고 하려다 끝내 말문을 닫았다. 그녀는 연재준과 유월영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유월영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었다.강수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의사가 혹시 그 종양이 다시 전이되었다고 하지 않았어요?”하정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전에는 수술할 수 없다고 했었는데 이제 수술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연 대표님은 지금 수술을 받지 않으시려는 것 같아요,”강수영이 다급하게 말했다.“왜요? 그런 건 미루면 안 되잖아요.”하정은은 앞에 있는 밴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마를 찌푸렸다.밴은 넓어 탁자와 소파가 있었다.유월영은 작은 소파에 앉아 바로 포장을 풀었다. 포장된 그릇 뚜껑을 열자 죽에 뿌려진 참기름 향이 코를 찔렀다.원래 입맛이 별로 없던 유월영은 막상 냄새를 맡
유월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도 연 대표님이라고 말한 적 없어요.”그리고 이내 웃음을 거두고 설명했다.“그 차는 나를 향해 돌진했어요. 그러다 실패하자 저와 연관된 오래된 납치 사건을 다시 들춰냈어요. 그 때문에 제가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신주시를 떠날 수 없게 되었죠. 이 두 가지 일은 모두 나를 겨냥한 거예요. 이들 사이에 반드시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배후자도 같은 사람이고요.”연재준은 듣고 있기만 할 뿐 끼어들지 않았다.그는 알고 있었다. 유월영이 그의 앞에서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분석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아직 그럴만한 관계가 아니었다.역시나 유월영은 바로 다음 질문했다.“내가 기억하기론, 연 대표님 전에 저에게 납치범이 죽었는지 물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왜 갑자기 그걸 물었나요?”유월영이 그의 차에 올라타고 그가 사 온 밥을 먹은 이유였다. 그녀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연재준도 역시 방금 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유월영은 연재준이 말이 없자 대수롭지 않은 듯 웃었다.“말하기 불편하다면 대답 안 해도 돼요. 강요하진 않아요.”말을 마치자마자 유월영은 바로 일어섰다.마치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면 1초라도 더 그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듯했다.유월영이 망설임 없이 문 쪽으로 걸어가자 연재준은 돌아서서 그녀의 외투를 잡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말하기 불편하다고 한 적은 없어.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성격이 왜 그렇게 급해?”유월영은 발걸음을 멈췄다.연재준이 말했다.“앉아봐. 전부 말해줄게.”최고급 밴 안에는 공간이 넓었고 냉장고 같은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유월영은 문 옆에 작은 와인 캐비닛이 있는 걸 발견하고 술이 들어 있는지 확인했다.“이 술 마셔도 돼요?”“마실 순 있어. 다만 날씨가 추우니 목이 마르면 포장해 온 따뜻한 국을 마시는 게 좋을 거야.”“허심탄회하게 얘기하려면 당연히 술이 더 어울리죠.”유월영은 곧바로 위스키 한 병을 꺼낸 후 유리잔을 가져와 자리에
연재준은 흠칫하다가 고개를 숙여 유월영의 손목을 잡고 있는 자기 손을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스스로 손을 놓았다.그는 위스키병을 들고 자신에게도 반 잔을 따랐다.잔을 손에 들고 연재준은 다시 한번 유월영을 향해 경고했다.“나는 농담하는 게 아니야.”유월영이 말했다.“연 대표님은 지금 저를 걱정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오성민을 걱정하시는 건가요?”연재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그는 뜻밖에도 유월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작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월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두워 마치 무언가에 덮인 것처럼 어렴풋하게 빛났다.그가 단순히 별 뜻 없이 묻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녀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거야 뻔하죠.”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윤영훈이 저렇게 되고 오성민마저 쓰러진다면 연 대표님은 꽤 껄끄럽겠죠? 그저께 신 대표님과 두 시간이나 영상 통화를 하셨다면서요?”연재준이 멈칫했다.“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유월영이 어깨를 으쓱했다.“컴퓨터를 잘 다루는 친구가 있어요. 심심해서 연 대표님 회사의 방어 시스템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네요. 음, 대기업답더라고요. 그 친구가 한 시간 넘게 해킹했는데, 들어가자마자 두 분이 대화를 끝냈지 뭐예요. 별로 들은 내용은 없어요.”윤영훈의 일이 터지자 연재준과 신현우는 바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유월영은 두 사람을 도청하려 했으나 그들이 암호화된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어 들어가기 힘들었고 시도할 마음이 없어져 바로 그에게 이야기했다.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것도 연재준에 대한 도발이었다.연재준은 말했다.“직접 나한테 물어봐, 내가 다 알려줄게.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 없어. 게다가 우리 대화는 별거 아니었어. 그냥...”유월영이 손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별로 궁금한 것도 아니니 굳이 꾸며내서 말해줄 필요 없어요.”“내가 이야기를 꾸며서 당신을 속일지 아닐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유월영은 이런
유월영은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하얀 눈이 신주시를 은빛으로 덮었고 도로도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하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눈이 녹으면서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고 눈에 덮였던 모습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유월영은 시간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히기 마련이다.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하정은은 이 신호등이 바뀌는 동안 유월영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자 실망한 듯 한숨을 쉬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그러나 유월영이 입을 열어 하정은에게 되물었다.“내가 처음으로 유치장에 잡혀간 건 누구의 설계였죠?”하정은은 하마터면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유월영이 무표정하게 혼잣말했다.“바로 그 잘난 연재준 덕분 아니겠어요?”“연 대표는 당시 나를 돌아오게 만들려고 수를 써서 나를 유치장에 가뒀어요. 그리고 내가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 구하러 나타났죠.”“‘흔들다리 효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요? 사람이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해요. 그래서 그 사건 이후로 나와 연 대표 사이는 점점 다시 좋아지게 되었어요.”“그리고 그가 나와 화해하려고 그렇게 애썼던 이유는 유씨 집안에 접근해 장부를 손에 넣으려는 의도였어요. 이 모든 것은 그가 치밀하게 계획한 거였죠.”“그래도 하 비서님은 내가 그에게 매정하게 군다고 생각하나요?”허정은은 말문이 막혔다...유월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는 침묵 속에서 호텔에 도착했고 유월영은 차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창을 두드렸다.“하 비서님. 계좌이체 해 드릴게요.”말을 마치고 유월영은 바로 돈을 이체해 주었고 하정은은 무심코 계좌에 들어가 확인했다. 유월영은 야근 수당을 아주 후하게 준 것이다.“하 비서님 수고하셨어요. 일찍 들어가 쉬세요.”말을 마치고 유월영은 미련 없이 뒤돌아갔고 잠시 멍하니 있던 하정은이 이내 외쳤다.“월영 씨.
유월영이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는 이미 새벽 4시였다.오늘 유월영은 정말로 바쁘게 보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먼저 청원에서 신주시로 돌아온 후 윤영훈을 만나러 가서 심호준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이혁재에게 전달했다.그 후에는 카페에서 주월향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연히 신연우를 만나 신연우 동생의 결혼선물을 대신 골라주었다.그리고 두 사람은 오후에 호텔로 돌아오다 교통사고가 났고 유월영은 병원에서 신연우를 5시간 동안 지키고 있다가 신현우와 신연준이 도착해서야 떠날 수 있었다.그러다 납치범의 살인 용의자로 야밤에 경찰서로 연행되어 심문을 받다가 연재준이 보증을 서서 풀려났었다.뒤이어 저녁에 있던 그 교통사고와 경찰의 심문은 모두 오성민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확신하고 하정은이 그녀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진 탓에 그녀의 뇌는 계속 빠르게 돌아가며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그러다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야 유월영은 겨우 잠이 들었다.아침 9시가 채 되기 전, 유월영은 핸드폰 벨 소리에 잠이 깼다.그녀는 잠결에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더듬었다.“...여보세요?”상대방이 물어왔다.“아직 덜 깼어?”유월영은 제대로 듣지 못하고 비몽사몽인 채로 물었다.“뭐라고요?”상대방은 그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속삭였다.“조금 더 자. 점심에 다시 전화할게.”“응...”유월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오후 12시 돼서야 잠에서 깼다.그리고 아침에 전화한 사람이 현시우라는 걸 알았다.‘한 비서가 어젯밤에 내가 경찰에 잡혀갔다는 사실을 시우 씨에게 말했나 보네...’유월영은 씻은 후 물을 한 잔 따라 발코니 앞에 섰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현시우였다.“시우 씨, 시간 맞추는 데 능하네. 10분만 빨랐어도 나 아직 안 일어났을 텐데.”“경찰서 쪽은 내가 말해두었어. 이제 함부로 널 데려가 심문하지는 않을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알았어. 별로 걱정하지 않아.
연재준의 표정은 매우 평온했다. 그는 그저 문밖에서 말없이 유월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유월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평소와 같은 말투로 전화 건너편 남자에게 말했다.“시우 씨, 나 두 끼나 굶었더니 배고프네. 지금 밥 먹으러 가려고,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현시우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유월영이 물었다.“연 대표님, 무슨 일이 신가요?”병원에 있던 연재준은 어젯밤 답장이 없던 메시지 때문에 참을 수 없어 그녀를 만나러 왔다.다만, 그는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연재준은 순간 부정하고 싶었고 심장의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는 유월영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유월영이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뭐가요?”연재준의 눈동자는 마치 깊은 연못 같았다.“당신, 예전에 분명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유월영은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오래된 일을 지금 꺼내서 무슨 의미가 있죠? 연 대표님, 이렇게 대낮에 나한테 와서 난동 부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연재준이 되물었다.“우리의 추억을 그저 그 새로운 연인을 기쁘게 하려고 사용하는 건 괜찮고?”유월영의 얼굴이 굳어졌다.“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예요?”연재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내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기나 할까?”문손잡이를 잡고 있던 유월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와 더 이상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바로 문을 닫으려고 했다.그러나 연재준은 손을 뻗어 문을 막았다.그는 남자였고 힘이 그녀보다 더 셌다. 게다가 유월영이 방심한 틈을 타 그는 쉽게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유월영은 본능적으로 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연재준은 뒤로 돌아 문을 닫았다.유월영은 순간 움찔하며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여기는 제 방이에요. 이렇게 막 들어오는 건 무슨 경우인가요?”연재준은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유월영은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재준을 노려봤다!그리고 이내 밀려오는 분노에 그녀는 온몸에 힘을 모아 연재준을 밀어 내려 했지만, 연재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는 한 손으로 유월영의 두 손목을 잡아 머리 위 벽에 눌렀고 턱을 잡고 있던 손은 그녀의 뒤통수를 눌러 더욱더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연재...”유월영은 그의 입술을 겨우 피해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다시 그의 입술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연재준의 핏발이 선 두 눈은 마치 산산조각 난 유리 같았다.유월영은 분노에 차서 무릎을 굽혀 남자의 가장 약한 부위를 공격하려 했지만 그는 미리 예측한 듯 그녀의 발을 짓눌러 제자리에 고정시켰다.그의 키스는 욕망 같은 것은 없었고 오직 그의 울분을 토해내는 듯했다...그는 모든 불만과 억울함을 분출하고 있었다.‘뭐가 억울해서?’유월영이 우습다는 생각만 들었다.연재준은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 연한 피 맛이 서로의 입안에 퍼져 키스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유월영은 탈진할 정도로 몸부림쳤지만 그를 뿌리치지 못했다.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는 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결국 그녀는 더 이상 힘을 허비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연재준은 몸에 힘을 빼고 그대로 서 있는 유월영을 보면서, 오히려 동작이 부드러워졌고 혀는 그녀를 달래듯 엉켰다.유월영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점차 연재준도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풀어주지 않았다.그는 이마를 그녀의 어깨에 얹고 중얼거렸다.“그건 진실이 아니잖아...”“당신은 예전에 나를 사랑한다고 했어. 내 이름을 불러줬고 내 아내가 되고 싶다고 했어. 내가 준 반지를 꼈었고 우리 같이 혼인신고 하러도 갔었잖아. 당신은 내 아이까지 가졌었어. 나를 사랑했었다고.”“정말로 나를 사랑했었어...”그의 목소리는 점점 쉰 소리로 변했고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유월영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뒤에 튀어나온 척추를 보면서 유월영은 생각에
연재준이 호텔 방을 떠날 때 마침 점심을 가져온 한세인과 마주쳤다.한세인은 유월영의 방에서 나오는 연재준을 발견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아가씨!”그러나 유월영은 그저 무표정하게 화장대 앞에 서서 화장 솜을 꺼내 메이크업 리무버를 묻힌 후 입술을 세게 닦아내고 있었다.유월영의 눈에는 차가운 냉기가 서려 있었다.한세인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침대로 향했다. 침대는 그저 유월영이 잠에서 깬 흔적뿐이었고 그녀의 머리와 옷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별일이 없는 듯한 모습에 한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가씨, 연 대표가 여길 왜...”“별일 아니에요.”유월영은 젖은 티슈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세인이 들고 온 아침 식사를 보며 말했다.“두고 가세요. 먹고 이따 신 교수님을 보러 가려고요.”한세인은 그녀가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대답했다.“...네”유월영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실에는 신연우와 두 명의 간병인만 있었다.신연우는 막 점심을 먹었는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어제보다 상태가 조금 나아 보였다.그러나 많은 출혈로 인해 입술은 여전히 창백했다.유월영을 보자 신연우는 살짝 미소 지었고 유월영도 그에 맞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많이 아파요?”병실은 따뜻했기에 유월영은 거추장스러운 목도리를 벗어 의자 위에 던져두었다.신연우는 고개를 저은 후, 그녀에게 물었다.“어젯밤 경찰이 찾아왔다던데, 무슨 일 때문인가요?”“이렇게 빨리 소문이 나다니.”유월영은 가볍게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경찰 조사에 협조하러 간 것뿐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하지만 신연우는 믿지 않았다.한밤중에 형사가 직접 병원에 와서 그녀를 데려간 걸 보면 별일이 아닌 게 아니었다.유월영은 그가 더 묻기 전에 먼저 물었다.“둘째 형께서 신 교수님 다리에 대해 뭐라고 하셨어요?”신연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이불 속 다리를 살짝 만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