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법원이야. 모든 사람은 들어가기 전에 두 번의 보안 검색을 거쳐야 해서 그는 무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이승연은 오랫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더 과격한 행동을 하는 의뢰인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남철우의 행동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이승연이 다그치며 말했다.“넌 빨리 회사에 가서 회의나 참석해.”이혁재는 고집부리며 떠나지 않으려 했다.“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있을게. 당신 재판을 끝내면 축하 겸 가서 맛있는 거 먹자.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이승연은 이혁재의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이승연의 모습이 또렷하게 비쳤다.“아직 재판도 안 했는데 어떻게 내가 이길 거라고 확신해?”이혁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왜냐하면 이승연이니까. 그래서 반드시 이길 거라고 확신하지.”이승연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슬그머니 올라갔다.“아참, 잊을 뻔했네. 당신한테 줄 게 있어.”이혁재는 손에 들고 있던 쇼퍼백을 내보였다. 이승연도 아까부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했다.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뜻밖에 텀블러였다.“안에 대추차가 들어 있어. 아직 따뜻하니까 목이 마르면 바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매실 캔디야. 속 안 좋으면 하나씩 꺼내 먹어. 법정에서 몇 시간씩 재판하는 것도 흔하다고 들었어. 배가 고프면 이거 먹고. 그리고 이건...”이승연은 이혁재의 이런 행동에 약간 감동했지만 또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나 재판하러 가는 거지 소풍 가는 초등학생이 아니야.”이승연은 그가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이혁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아내를 챙기는 게 뭐가 잘못됐어?’그는 물건을 다 이승연에게 넘겨주며 말했다.“법정에서 뭐 마신다고 해서 법에 걸리는 건 아니잖아.”그리고 그녀의 배를 만지며 타이르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얌전히 있어.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고.”아이는 요즘 매우 활동적이어서 매일 이승연의 배 속에서 얌전이 있지 않았다.이승연
“말도 안 돼!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왜 살인자가 처벌을 받지 않아? 내 아들 목숨은 목숨이 아니야? 당신들 모두 살인자를 감싸주다니! 당신들도 모두 살인자야!”남철우는 자신을 말리는 변호사와 가족을 뿌리치고 욕설하면서 이승연에게 돌진했다. 주위의 법정 경찰들이 이 상황을 보고 즉시 달려가 저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이승연 가까이에 다가온 남철우는 의자를 집어 들어 이승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 아들의 목숨 대신이야!”재판이 끝나고 하나둘씩 자리를 뜨던 방청객들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모두 놀라 제자리에 얼어붙었다.이혁재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했다.“승연 누나!”이혁재는 앞길을 막고 있던 사람들을 미친 듯이 밀어내며 달려갔다. 이승연은 뒤늦게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몸을 돌리다가 남철우가 던진 의자가 날아오는 걸 발견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퍽!모든 일은 단 몇 초 만에 벌어졌다. 이승연의 몸은 중력의 작용으로 바닥에 세게 부딪혔고 넘어지면서 그녀의 뒤통수는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다.순간 이혁재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으며 모든 장면은 그의 눈앞에서 흑백으로 변하며 정지되었다.자리의 모든 사람들도 반사적으로 이승연에게 달려갔다.“이 변호사님!”법정 경찰들은 즉각 남철우를 제압하여 바닥에 눕혔으나 남철우는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이혁재의 눈앞에 흑백 화면 속에서 점점 끔찍한 빨간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이승연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그녀는 바닥에서 고통스럽게 몸을 움츠리며 배를 움켜쥐었다.“아파, 너무 아파...혁재야...”이승연의 고통스럽게 외치는 소리에 이혁재는 그 순간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었고 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삐요 삐요.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달렸고 간호사는 병상을 밀며 바로 응급실로 들어갔다.“가족분은 밖에서 기다리세요!”간호사가 문을 닫자 창백한 얼굴에 온몸이 피투성이인 이혁재만이 문밖에 남겨졌다.이혁재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손은 계속해서 떨고 있었다. 그의
하정은이 급히 말했다.“병세 위급 통지서에 서명하는 건 절차일 뿐이에요. 작년에 저희 할머니가 위내시경 수술을 하셨을 때도 제가 병세 위급 통지서에 서명했지만 수술은 30분 만에 끝났고 아무 일도 없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변호사님은 젊고 건강하고 또 의사분들도 전문적이고 뛰어나니까 분명 괜찮을 거예요.”이혁재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정말요? 승연 누나 정말 괜찮을까요?”그의 눈에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가득했다. 하정은은 한 번도 그런 그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무서울 게 없던 사람의 두려움과 무기력한 표정을 본 적도 없었다.하정은은 본능적으로 그를 위로하려 했지만 사실 그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혁재의 눈빛을 마주하고 그의 희망을 빼앗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말했다.“네, 괜찮을 거예요.”이혁재는 벽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승연 누나만 괜찮으면 돼.”그는 아이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승연마저 잃을까 두려웠다. 이혁재는 갑자기 가슴이 거대한 돌로 짓눌린 것 같아 숨쉬기 힘들었고 그의 눈은 더 붉어졌다.“승연 누가가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피가 너무 많이...”연재준은 이혁재와 소꿉친구로 자라오면서 2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그가 이렇게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재준은 곧 이성적으로 생각했으며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책임을 따지는 게 더 중요했다.“그 사람은 누구야? 이 변호사님과 원한이 있어? 아니면 사건 때문에 그런 거야?”“사건 때문이야.”이혁재는 그제야 후회가 밀려와서 뒤통수로 벽을 쳤다. 남철우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승연이 변호사인 것을 생각해서 손을 쓰지 않았다. 이혁재는 그녀가 자신을 법도 안 지키는 양아치라고 생각하는 게 싫었다....만약 그가 손을 썼더라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다시 한번 뒤통수로 벽을 세게 쳤지만 그 정도로의 고통은 마음의 고통을 대체할 수 없었다.
의사는 침묵했다.이혁재는 이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의사의 옷깃을 잡고 소리쳤다.“승연 누나가 수술실 들어갈 때까지도 내 손을 잡고 있었어! 깨어 있었다고! 내 이름도 불러줬는데 어떻게 깨어나지 못할 수 있어! 당신 수술 어떻게 한 거야! 왜 승연 누나를 그렇게 만들었어!”연재준과 서지욱은 곧바로 양쪽에서 이혁재를 붙잡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혁재를 떼어 놓았다. 이혁재는 상처 입은 맹수처럼 의사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들려고 했다.의사는 난감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대표님, 저희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먼저 가보세요!”서지욱은 의사에게 먼저 가라고 소리쳤고 의사는 재빨리 도망쳤다. 이혁재가 여전히 울부짖으며 의사한테 달려들려고 했지만 연재준이 그의 어깨를 잡아 벽에 밀었다. “진정해! 지금 네 모습은 승연 씨에게 원한 품고 달려든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이혁재는 울컥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는 연재준을 강하게 밀어내며 절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 아내가 깨어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진정할 수 있어! 모두가 너처럼 아내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아? 넌 유월영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난 내 아내를 사랑한다고! 승연 누나는 내가 17살 때부터 결혼하고 싶어 했던 여자야!”순간 연재준의 얼굴이 굳어졌다.서지욱이 앞으로 나서며 말렸다.“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래. 이 의사들이 비록 최고의 실력을 갖췄지만 한계가 있어. 내가 알고 있는 몇몇 훌륭한 뇌과 의사들을 데려올게. 혁재야. 이 변호사님은 아직 살아 있잖아. 살아만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거야. 의료 기술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심장이 고장 나도 인공 심장을 이식할 수 있는데 다른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안 그래?”그의 말에 이혁재는 다시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없을 리 없어. 몇 시간 전에 내일 산부인과 검진을 같이 가자고 했던 사람이, 그렇게 사라질
2층 복도에 있는 전등은 어느샌가 꺼져있었고 거실에서 비치는 빛은 계단까지만 비췄다. 이혁재의 실루엣은 어둠 속에 구슬아를 내려보고 있었다.그는 여전히 법원에 갔던 그 옷을 입고 있었으며 흰 셔츠의 가슴 부분에는 거대한 말라붙은 핏자국이 있었으며 마치 지옥에서 뻗어 나온 손처럼 섬뜩하고 끔찍해 보였다.구슬아는 그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라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 뻔했다.그녀는 황급히 난간을 잡고 진정한 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혁재야, 언제 돌아왔니? 나도 계속 아래에 있었는데 네가 들어오는 걸 못 봤네.”이혁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구슬아는 침을 삼키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다.‘설마 얘가 모든 것을 알았나?’‘그럴 리 없어...’그녀는 아주 은밀하게 행동했으니 그가 알 리가 없었다.구슬아는 난간을 더욱 꽉 잡고 말했다.“나...나도 뉴스를 봤어. 승연이가 사고를 당했다면서? 나도 방금 막 병원에 가려던 참인데. 승연이 괜찮아? 네가 이 시간에 집에 왔다는 건 별일 없다는 거겠지. 하늘이 도왔어...”이혁재는 여전히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과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평소의 이혁재는 반항적이고 성격이 불과 같아서 아버지 이진화도 그를 포기한 지 오랬다. 그의 어머니 공주연도 아들 때문에 화가 나 가슴을 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불같던 이혁재는 지금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구슬아는 심지어 그가 진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고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혁재야,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아니야, 뭔가 잘못됐어. 그는 분명히 뭔가를 알고 왔어!’구슬아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급히 말했다.“혁재야! 다른 사람의 헛소리를 듣지 마. 이 일은 나와 아무 관련이 없어!”“내가 아무리 간이 부었다고 해도 승연이와
“이 쓸모없는 것들! 뭐하냐! 빨리 당장 둘째 사모님을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하고!” 이진화가 호통치자 가정부들은 그제야 앞다퉈 이혁재의 발밑에서 기절한 구슬아를 들어 올려 병원으로 데려갔다.대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 이혁재를 보고 이진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들의 뺨을 때리려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다 이혁재의 공허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이진화는 흠칫하더니 손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차마 때리지 못했다.이혁재는 그를 조롱하듯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아내가 잘못되면 저년과 저년 아들 모두 목숨 내놓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예요.”이혁재는 구슬아가 이 모든 짓을 벌인 이유가 자기 아들이 가문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서인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도 모두 원수이니 그는 모두를 죽여버릴 생각이었다.이진화가 분노하며 말했다.“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꿈도 꾸지 마!”그러나 이혁재는 그를 무시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가 깨어났을 때 피투성이의 자신을 보고 놀랄까 봐 바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한 이혁재는 아까부터 계속 울리던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해외에서 걸려 온 모르는 번호이자 그는 바로 끊어버렸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그의 비서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표님, 사람을 데려왔습니다.”이혁재는 아무 표정 없이 ICU로 걸어갔고, ICU 문 앞에는 그의 부하들이 이승연의 고모인 이연희를 붙잡고 있었다.이연희는 그를 보자마자 흥분하며 고함 질렀다.“이혁재! 내 아들을 어디로 데려갔어! 넌 법도 안 무서워? 우리 아들 빨리 안 내놓으면 경찰에 신고해서 널 잡아가게 할 거야!”이혁재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법을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그는 이연희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 벽에 내팽개치며 눈에 살기를 띠고 말했다.“그렇게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구슬아랑 짜고 승연 누나를 이렇게 만들 수 있어?”“...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난 그
그건 두 사람이 함께 산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였다.전날 밤부터 이승연의 안색이 좋지 않았고 계속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혁재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이승연은 그저 곧 생리 올 때라 그런 거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다음 날 아침, 이혁재는 잠결에 옆방에서 이승연이 고통을 참는듯한 낮은 신음을 들었다. 그는 전날에도 불길한 예감에 선잠을 자고 있었기에 소리를 듣자 바로 일어나 달려갔다.“승연 누나, 왜 그래?”이승연은 배를 움켜쥔 채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배가 너무 아파...”“병원에 데려다줄게!”“성민 씨한테 전화해서 나 좀 병원에 데려가라고 해.”그때 그녀의 눈에 이혁재는 단지 질풍노도의 시기에 집을 떠난 소년일 뿐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고 오성민은 그녀의 남자 친구였다.이혁재는 그때 몰래 이승연을 짝사랑하고 있었고 오성민을 질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바로 외투를 입혀 안아 들고 병원으로 데려갔다.이승연은 아픈 와중에도 어린 소년이 언제 이렇게 힘센 청년으로 자라났는지 속으로 놀랐었다. 이혁재는 그렇게 그녀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응급실에 가서 줄을 서고 의사를 만나고, 검사를 받고… 이전에 그는 항상 많은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어떤 일이 생기면 지시만 내리면 해결되었지만 그날은 핸드폰을 들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모든 병원 절차를 혼자 다 했다.검사 결과 이승연은 맹장염 진단을 받았고 꽤 심각해서 바로 수술해야 했다.그 당시 이혁재는 17살이었고 수술이라는 말을 듣자 아주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하고 수술실로 따라가면서 울먹였다.이승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난 괜찮을 거야.”“정말?”“당연하지, 난 오래 살 거라고.”“약속해.”“약속할게.”...5시간 후, 수술실의 불이 꺼지고 두 명의 외국 의사가 나왔다.이혁재는 차마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같이 결과를 기다리던 서지욱이 다가가 대신 물었다.
하늘은 다시 어두워졌다.이혁재는 홀로 차를 몰고 부둣가에 도착했다. 오늘 밤은 바람도 약하고 파도가 잔잔하여 공기는 습하고 답답했다.이곳은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바로 예전에 유월영의 시체를 던진 장소였다.신주시에는 그 뒤로 새로운 컨테이너 부둣가가 생겼고 이곳은 이미 황폐해진 지 오래서 평소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그가 도착했을 때 부두에는 이미 네다섯 대의 차가 세워져 있었고 차마다 두 명씩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건장한 경호원들은 무표정한 채로 서 있었으며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피 맛을 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살기가 있었다.그 사람들 사이엔 두 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검은 망토를 쓰고 모든 사람에게 등을 돌린 채 조용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짧은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이었다.이혁재는 그 짧은 머리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현시우의 곁에 있던 사람이라는 확인하자, 그는 다른 한 사람이 누군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는 차에서 내려 망설임 없이 걸어가 검은 망토를 쓴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유월영, 진짜 당신이야?”검은 망토를 쓴 여자가 몸을 돌리며 고개를 들었다.부두에는 가로등이 없었고 오직 달빛만이 바다에 희미한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여자의 턱은 하얗고 옥같이 매끄러워 마치 진주처럼 빛났다.지금 이승연의 일로 마음이 심란하지 않았더라면 이혁재는 정말 자신이 귀신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정말 안 죽었어? 혹시 현시우가 널 구해주고 같이 해외로 데려갔어? 도망쳤으면서 왜 돌아온 거야? 내 아내를 해친 주범이 구슬아와 이연희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럼 누군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나에게 전화했었잖아. 무슨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유월영, 이 모든 게 네 계획이었어?”그는 연속으로 질문을 쏟아냈고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한세인은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이 대표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