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서 나를 찾아온 게 단지 이것 때문이에요?”그녀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이것이 그의 새로운 수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에는 강제로 권세를 이용하고 강제로 그녀를 옆에 두며 잠자리를 가졌는데 이제는 그가 회유책으로 바꾼 것일까. 그녀는 또 그에게 속은 걸까?유월영이 싫다고 하며 연재준을 밀어냈다. 연재준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사랑하기에 하고 싶은 거야.”유월영은 갑자기 몸에 소름이 돋으며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고였다.“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남자들은 아무 여자랑도 다 상관 없지 않나요?”“난 안 돼, 너여야만 해해.”유월영은 어물쩡하게 말했다.“남자들은 여자랑 자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연재준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날이 밝으면 다시 한번 말해줄게.”유월영은 오늘 밤의 모든 일들이 황당하게 느껴졌다.그를 집으로 데려온 황당함, 그의 말을 믿고 싶은 황당함, 그리고 마침내 그가 하겠다고 약속하는 황당함.아마도 그가 뱃머리에 서서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 그녀는 이미 정신을 못 차렸을 지도 모른다.……다락방은 나무로 되어서 침대가 흔들릴 때‘끼익' 소리가 났다.아래층에서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이상한 생각에 가까이 가서 소리쳤다.“월영아, 월영아?”유월영은 순간 긴장해서 온몸이 굳어 졌다!연재준은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자기야, 너 내가 죽는 것을 보고 싶어?”유월영은 자신의 입을 막고 소리를 참느라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유월영의 아버지는 계단으로 올라가 다락방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물었다. “월영아, 너 돌아왔구나.”유월영은 그녀의 아버지가 올라가는 발자국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아버지는 문을 두드렸다.문은 잠겨 있었지만 유월영은 문이 열릴까 봐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연재준는 빙그레 웃었다.”“——!”유월영은 그의 어깨에 꼭 누르면서 울
유현석은 돌부리를 밟아 비틀거리다가 넘어지려 하는 순간 연재준은 그의 팔을 잡으며 그를 일으켰다.유현석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이 고급스러운 슈트 차림의 남자를 보고 멍했지만 이내 감사함을 표했다.“고마워요.”연재준은 담담하게 말했다.“아닙니다.”유현석은 계속 앞으로 걸었고 연재준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걸 보아서 그와 같은 길인 것 같았다.유현석은 괜히 압박감을 느껴 어색하게 인사치레로 물었다.“자네도 아까 골목에서 나온 것 같던데 우리 집도 골목쪽에 있어요. 자네는 어느 집 친척이지? 나는 이곳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자네를 본 적이 없네.”연재준은 기질을 발휘해 대답했다.“제가 이름 하나 말하면 들어보았을 거예요.”“그래요? 그럼 말해봐요.”유현석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연재준도 잠시 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주영문.”유현석도 걸음을 멈추었다!연재준은 말을 이어갔다.“당신과 ‘삼천억' 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주영문의 이름을 듣는 것이 놀라움이었다면‘삼천억'이 나왔을 때에는 그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창백해졌다.삼천억...삼천억...유현석은 멍하니 연재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슈트와 외투를 입고 있었고 당당하고 고귀한 모습이 그때의 누군가를 꼭 닮은 것 같았다.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드디어 찾아왔구나.유현석은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어디에 걸어 넘어뜨린 것인지, 단순히 다리가 다리에 힘이 풀렸지는 그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유월영은 어머니를 모시고 택시를 타 병원으로 향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병원 입구에 서 있는 하정은을 보았다.유월영은 너무 의외라고 생각했다.“이런 우연이 다 있나? 하 비서, 어디 아픈 거야?”하정은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연재준이 자리에 없는 한 그들은 오랜 동료 사이였다.유월영은 의문에 차서 물어보았다.“날 기다려?”하칭은 이영화를 힐끗 쳐다보고 유월영에게 다가가 말했다.“연 대표님의 뜻은 너희 엄마 수술은 조린 팀이 하면 좋을 것 같다
옆에서 듣던 하정은도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았다.이 일을 연 대표님이 아시명 반드시 유 비서를 도와드릴 거라고 생각해서 하정은은 먼저 떠났다.“유 비서, 어머님 잘 보살펴. 난 그 간병인을 알아보러 갈게.”하정은은 그녀가 아는 인맥들이 있어서 그녀가 찾는 속도가 가장 빠를 것이다.유월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부탁해.”하정은은 일 처리가 매우 효율적이었다. 이영화의 재검사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그녀는 그 간병인을 찾아서 직접 데려왔다.병원 주차장 구석.간병인은 몇 번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네 명의 건장하고 험상궂게 생긴 경호원들이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놀라서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간병인은 침을 삼키고 목을 뻣뻣하게 쳐들고 말했다.“당신들은 누구야? 뭐 하는 짓이야? 납치는 불법이야!”“너도 법을 알아?”유월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간병인은 고개를 돌려 그녀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그녀라니!간병인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너, 너 뭐 하는 거야? 잘 들어, 사람을 때리는 건 불법이야!”유월영은 말했다.“사람을 죽이면 불법이 아닌가?”간병인은 순간적으로 대답했다.“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유월영은 웃으며 말했다.“내가 만약 증거가 없었다면 오늘에 너를 찾지 못했을 거야. 우리 엄마가 차고 있는 시계는 녹음 기능이 있어. 네가 그날 그녀에게 한 말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녹음되었으니 넌 끝났어.”녹음, 녹음??어떻게 녹음까지 된다고! 간병인은 두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안색이 점점 나빠졌고 이때 유월영은 그녀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고 결국 벽에 부딪혔다.“엄마가 충격을 받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아빠의 안 좋은 얘기를 꺼냈지.네 덕분에 엄마의 심장이 멎어 죽을 뻔했어! 이게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면 뭐야!”간병인은 당황했다.“나, 나, 난... 아냐”유월영은 크게 소리쳤다.“네가 직접 한 말이니 법원
유월영은 휴대전화를 꽉 잡았다. 그는 아까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지금은 오히려 차분해졌다.“또 무슨 짓을 했어? 다 말해”간병인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없어요, 정말 없어요.”하정은의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네, 알겠습니다.”“유 비서, 지금 이 일을 연 대표님께 보고할게. 대표님이 처리해 줄 거야.”하정은은 후회했다. 지금 이 일이 백유진과 관련될 줄 알았더라면 그녀는 제멋대로 유월영을 도와 찾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백유진이 또 사고를 친 건 아니겠지?“우리... 먼저 어머님을 뵈러 가자, 의사가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문제가 좀 있다고 하더라고.”유월영은 눈을 한번 감더니 일어났다.“그래.”하정은은 망설이며 간병인을 바라보았다.“그럼 이 사람은...”“그냥 놔줘.”아니면? 설마 그들이 간병인을 처리해 줄 수 나 있고?유월영은 손에 녹음도 없었다. 그저 그녀를 속인 것뿐이었다.유월영은 이 간병인이 엄마를 죽일 뻔 했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을수록 백유진에 대한 원한이 다시 깊어져만 갔다!유월영은 의사를 뵈러 왔고 하정은은 따라 들어가려다가 다시 연재준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하였다.조수는 영어로 말을 하였고 유월영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한마디로 이영화의 반응이 늦어진 것은 수술 후유증이 아니라 수술 전 뇌에 산소가 부족해 실신한 것이 뇌세포 손상을 입혔다는 것이다.유월영은 그게 언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는 그녀에게 말한 적이 없어서 그녀는 또 그 간병인 때문이지 않을까 의심했다.유월영은 항상 남이 자신을 건들지 않으면 그녀도 남을 건들지 않았다. 그때의 그녀는 연재준과 아무 사이도 아니고 백유진을 먼저 건들지 않았지만 백유진은 계속해서 그녀를 해쳤고 심지어 그녀의 엄마의 목숨까지 건드렸다!‘내가 이렇게 만만해?’하정은은 그녀의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발견했다.“월영아, 좀 진정해. 이미 이 일을 연 대표님에게 말했으니 널 도와드릴 거야.”유월영은 연재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아파트 입구에 빠르게 도착한 유월영은 차에서 내려 아파트 안으로 향했다.노현재는 사람 하나 죽일 듯한 그녀의 태세에 주저하지 않고 따라갔고, 유월영은 그를 무시한 채 곧장 백유진의 집 대문으로 향했다.그런데 그때 입구에서 연재준이 기다리고 있었다.유월영은 바로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고, 아니나 다를까 백유진의 집은 이미 한참 전에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문밖으로 나와 연재준을 바라보았다.“백유진 어디 숨겼어?”연재준은 말했다.“애초에 여기 없었어.”“여기 없었다고? 그럼 여긴 왜 왔어?”유월영은 그의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하정은이 미리 그에게 알려줘서 자신이 백유진에게 복수하러 올 거라고 짐작한 그가 백유진을 일찍 보낸 것이 분명했다!연재준은 얼굴을 찡그렸다.“월영아, 그건 간병인 입장일 뿐이지 그 말이 꼭 사실인 것도 아니잖아. 한 번 매수한 사람 두 번은 못 하겠어?”“그럼 누군가 백유진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간병인을 매수했다는 거야?”연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연 대표님께서 어디 말씀해 보시죠. 그 간병인은 누구한테 뇌물을 받았고, 그 사람은 왜 백유진을 모함한 거죠?”연재준의 얼굴이 검푸르게 상기되며 서늘한 바람 속에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고 유월영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말 못 하시겠죠?”그녀는 매섭고도 독한 어투로 말했다!“애초에 백유진이 한 짓이니까! 그 여자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처음엔 나를 함정에 빠뜨리고, 그다음엔 우리 엄마의 심장을 훔치고, 인터넷에서 나를 비방하면서 명예훼손까지 했어. 그렇게 더러운 일을 하나씩 저지르고 있었다고. 내가 모진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날 계속 저격한 거라고! 난 이미 참을 만큼 참았어. 연재준, 이래도 그 여자 나한테 안 넘겨?”연재준은 얇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제대로 얘기를 나누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려 했지만, 유월영은 이제 그의 입장을 알고 그의 손이 닿기
유월영은 즉시 그의 품에서 벗어나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췄다.“대낮에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연재준의 눈꺼풀이 살짝 내려앉으며 대꾸했다.“그럼 밤에 다시 올까?”유월영은 쓸데없는 그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아 마른침을 삼켰다.“오늘 밤 서울로 돌아가는 KTX 예매했어. 짐 챙겨야 하는데 연 대표님이 여기 계시면 불편하니 나가주세요.” “신현우가 출근하라고 하지 않았잖아.”연재준은 자리에 앉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며칠만 더 있어 줘.”“굳이 출근하지 않더라도 연 대표님께 제 눈앞에서 사라지셨으면 좋겠네요.”연재준이 고개를 들자 바로 뒤에 발코니 창문으로 어스름한 불빛이 비쳤다. 빛을 등진 채 살짝 흐려진 그의 윤곽은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았으며, 말투도 훨씬 부드러워졌다.“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백유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유월영은 그가 자신을 달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보기 드문 일이네. 나를 달랠 때도 있고.’사실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나름 그녀를 잘 대해주는 편이었다.도와주고, 곁에 있어 주고, 지켜주고, 그녀의 말대로 다 해주는 걸 봐서 자신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연재준이 아무리 잘해줘도 유월영은 다시 만나자는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대체 왜일까?과거의 일들은 심장 끝에 박힌 가시와 같아서 심장이 한 번씩 뛸 때마다 가시는 한 뼘씩 더 깊숙이 박히며 설렘의 대가가 무엇인지 고통스럽게 상기시켜 주었다.오늘 백유진을 보호하려는 그의 행동 또한 그녀에게 악몽 같은 과거를 떠올리게 했고 그 과정에서 피가 흥건해질 때까지 여러 차례 그녀를 찔렀다.유월영이 물었다.“연 대표님,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실 수 있나요?”연재준은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고 지는 노을처럼 타오르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고작 말 몇 마디에 거슬려 하시는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백유진이 저한테 어떤 짓을 했는데요,
유월영은 잠시 멈칫하다가 부드럽게 말했다.“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난 아빠한테 불만 없어. 대부분 딸은 원래 크면서 아빠랑 유현석은 그녀의 말을 못 들었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래도 걱정 마. 다시는 너한테 미안할 짓 안 해. 그 사람들이 널 찾으러 오면 이번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널 지켜줄게.”걸음을 멈춘 유월영은 그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유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괜찮아,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모든 걸 깔끔하게 처리할 거다.골목 입구에 도착했을 때 미리 부른 택시가 이미 와 있었다.캐리어를 차에 싣는 유현석을 보며 유월영은 뭔가 생각난 듯 이렇게 말했다.“아빠, 그 한의사가 아빠를 치료해 주긴 했어도 조금 이상한 사람이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니까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다시 가지 마.”알겠다는 유현석의 대답을 뒤로하고 유월영은 차를 타고 역으로 이동해 서울로 돌아가는 KTX에 탑승했다.자리에 앉은 그녀는 조용한 주위와 반대로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으로 이승연에게 전화를 걸어 백유진의 교사 행위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역시나 유월영이 생각한 것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힘들어. 증거도 없고 간병인이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해도 승소하기 어려워. 증거가 너무 약해서 법원이 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즉 그녀는 백유진을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백유진은 이미 도망친 상태였다.유월영이 한숨을 쉬자 이승연은 말했다.“한숨 쉬지 마. 아직 좋은 소식이 있어. 서정희의 범죄에 대한 모든 증거를 수집했고 형을 선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어.”이건 확실히 좋은 소식이었다.유월영은 콧대를 꾹 누르며 미소를 지었다.“이런 쪽에 전문인 친구를 두니 좋긴 좋네. 휴가 중에도 날 위해 일해주다니. 내일은 고생한 우리 이 변호사님을 위해 내가 특별히 저녁 살게.”“내일은 안 될 것 같아. 방금 호텔에서 나와서 공항으로
이승연은 멈칫했다.“하 비서가 월영이를 도와 간병인을 구해줬는데, 그 간병인이 백유진인 걸 밝혔다고 하 비서를 잘랐어?”이승연은 코웃음치며 말했다.“백유진을 그렇게 싸고 돌 거면 월영이랑 화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대체 누가 짐승이라는 거야?”“그래그래, 사람은 원래 끼리끼리야. 나도 지금 기분 안 좋아. 더 이상 유월영 씨 사건 맡지 말았으면 좋겠어.”이혁재는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크지 않은 병실 침대에 덩치 큰 남자가 올라오자 이승연은 그에게 단단히 갇혀버렸고 움직일 틈이 전혀 없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이승연이 남자를 발로 차 침대에서 떨어뜨렸다.이혁재가 워낙 민첩해서 볼썽사납게 넘어지진 않았지만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있었고 여자에게 발로 차여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무척 자존심 상했다.얼굴이 확 굳어진 그가 처음으로 여자의 이름 세 글자를 외쳤다.“이승연!”이승연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내가 있는 한 네가 나설 곳은 없어.”웃는 이혁재의 눈가에 서늘함이 스며 나왔다.“왜, 다른 사람들이 동부 지역 최고의 형사 전문 변호사라고 칭찬하니까 정말 잘난 것 같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넌…”“난 뭐?”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표정하던 이승연의 얼굴이 이제 완전히 차가워졌다.“말해봐.”“내가 네 부모님 무덤 앞에 가서 일러바칠 거야, 하나도 조신하지 않다고. 다른 집 아내들은 다 남편 말 듣는데 당신만 안 듣잖아.”곧바로 말투가 바뀐 이혁재는 조금 전까지 보였던 날카로움은 온데간데없이 푸들처럼 그녀에게 달라붙었다.“여보, 의사 선생님이 이 상태에서도 할 수 있다고 했어? 병원에서는 안 해봤는데.”남자가 목에 입을 맞추려 했지만 이승연이 그의 턱을 잡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어찌 보면 자기가 커오는 걸 옆에서 함께 봐온 남자는 어렸을 때보다 더 잘생기고 성숙해지면서 점점 더 속내를 알 수 없게 변했다.“이혁재, 당신과 당신 엄마가 왜 나를 데려갔는지 나 다 알아. 나도 마침 당신이 필요했고, 우린 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