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간신히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잔뜩 쉬어버린 약해빠진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앉으실거면 제가 비켜드릴게요.”연재준이 미간을 찌푸린다.“목은 왜 그래?”여전히 대답없이 발버둥만 치는 유월영에게 연재준이 명령조로 말한다.“앉아서 먹어. 다 먹고 나서 병원 데려다 줄테니까.”“사장님께 실례 범하기 싫습니다.”유월영은 어떻게든 가려고 하지만 연재준은 절대 놔줄 생각이 없어보인다.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그릇에 있던 뜨거운 죽이 엎어지며 유월영의 손등에도 떨어졌고 유월영은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이 올라와버린다.이내 유월영은 탁하는 소리와 함께 접시를 테이블 위로 던져버렸고 이는 모든 이들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연재준의 얼굴도 순식간에 어두워진다.“누가 너한테 접시 던지라고 가르쳤어.”친아버지가 식탁을 탕 쳤을때도 얼굴을 일그러뜨며 자리를 떴던 연재준인데 다른 사람이라면 오죽할까.간이 부을대로 부은 유월영이다.......유월영은 거의 접시를 던짐과 동시에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자신이 어장속 물고기일 뿐이었다는 사실과 박수진이 사람들 앞에서 행패를 부린 사실에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산해버린다.“사장님은 마음대로 사람 손바닥에 쥐고 흔들면서 전 화 한번 낼 권리도 없어요?”연재준은 힘겹게 한 마디를 이어나가는 유월영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유월영은 이젠 지쳤다는 표정으로 꼼짝않고 그 자리에 서있는다.그래, 화 내든 훈육을 하든 마음대로 해라지 뭐.연재준은 뒤통수를 맞고도 아직도 유월영에게 복수를 안 하고 있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유월영이다.차라리 매 순간마다 마음 졸일 바엔 하루 빨리 처단당하는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연재준은 무서울게 없다는 유월영의 표정을 보고는 되려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한다.“그래, 화 내고 싶은대로 다 내봐.”......응?연재준은 옷에 튀긴 죽을 종이로 닦아내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감히 내 뒤통수까지 치는데 화 한 번 못 내겠어? 맞다,
유월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죽을 먹고 있다. 구기자와 대추의 단맛은 오히려 목의 통증을 더욱 격화시켜버린다.맑은 사골 국물로 만든 국수 한 그릇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어쩔수 없다, 다 먹는 수밖에.연재준은 유월영의 정수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연다.“미성년자 때 철없이 내뱉었던 한 마디도 다 속하는거야?”유월영이 고개를 번쩍 든다.방금은 접시까지 던지고 엮인 여자들 깨끗이 청산하라고 할때까지 화를 안 내던 연재준이 지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본다.“네가 현시우랑 진지한 관계였다고 다 그런줄로 착각하진 마. 우린 어린 나이에 그냥 놀자고 한 말일 뿐이었거든. 첫사랑은 무슨.”유월영이 숟가락을 꽉 움켜쥐더니 이내 입을 연다.“첫사랑은 고사하고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요? 그럼 왜 서정희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데요?”언제 그런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는 연재준이다. 걸쭉한 죽에 목이 끈적해난 유월영은 배즙 한 컵을 뜨러 자리에서 일어난다.등받이에 기대있던 연재준은 뭐가 생각났는지 눈빛이 서늘해진다.이윽고 유월영이 돌아오자 그는 테이블을 탁탁 치며 말했다.“얼른 먹고 병원 데려다 줄테니까 싸울거면 목 다 나은 뒤에 싸워.”“저 혼자 갈수 있어요. 사장님 차값 감당 못하거든요.”연재준이 피식 웃어보인다.“말 끝마다 차값 차값, 언제까지 그럴래? 내가 그 70만원 받았어? 너 계좌로 다시 들어간거 아니었던가?”그건 미처 확인 못 한 유월영이다.그제야 휴대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70만원은 24시간 초과로 자동으로 다시 유월영의 계좌에 돌아와 있었다.......데려다준다던 연재준을 한사코 거절하고 홀로 병원에서 나온 유월영은 마침 정류장에 정차한 회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 있던 연재준이 하정은에게 지시한다.“유월영 뭐 때문에 저렇게 바쁜지 좀 알아봐.”연재준이 유월영을 모를리가 없다. 그녀는 신현우를 위해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게 아니라 반차를 낼수 있는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저토록 견결하게 구는것일거다.하정은이 얼마도
얼빠진 유월영을 앞에 두고 박수진은 보란듯이 부회장의 팔짱을 낀채 친밀감을 과시한다.유월영의 머릿속에 문득 윤영훈이 전해준 서류 내용이 떠오른다.부회장은 애 둘까지 딸린 유부남이지만 밖에선 부인 몰래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던 내용.그러니까 박수진은 SK그룹에서 해고된 뒤 곧바로 호 부회장을 찾아간건가?조금 안타깝다.사실 업무능력은 딱히 흠 잡을데가 없었지만 개인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었던 유월영은 아예 박수진을 무시한 채 부회장에게로 다가갔다.“부회장님, 저는 SK그룹 비서 유월영입니다.”그는 이내 유월영을 쭉 훑어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역시 백번 듣는것보단 한번 보는게 낫네요.”악수를 하던 그는 유월영의 손을 놓지 않은채 계속 말했다.“유 비서 해운에 있을때 이름 있었던건 알았어요. 퇴사하고 나서 우리 종신 그룹에 데려오려고 했지만 연 사장이 못하게 하는 바람에 대단한 인재를 잃었었는데 결국은 돌고돌아 SK로 갔던거군요.”유월영이 자연스럽게 손을 빼내며 말했다.“감사합니다 부회장님. 그렇게 따져보면 저희 다 아는 사이인것 같으니 제가 술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룸 예약해 뒀으니 안으로 드시죠.”“그래요 그래.”부회장이 손을 거두자 박수진이 이내 그의 팔짱을 끼고는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앞에서 가던 박수진은 별안간 유월영을 돌아보더니 턱을 쳐들어 보였다.마치 그 날 쫓아냈어도 오늘 다시 들어왔다는 식이랄까.“......”유월영은 당연히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곁엔 두 명의 매니저와 상무팀 직원 한명도 함께다.그 중 한 매니저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한다.“박수진이 어떻게......”유월영이 묻는다.“저 오기 전에 박수진이 잠깐 비서직 맡았다던데 SK는 그때 이미 종신 그룹과 연이 닿았던건가요? 그때 부회장님도 만났었고요?”“맞아요. 그때 사무실에서 부회장님이 자기랑 메신저도 추가하고 가방 선물도 해줬다고 자랑했었거든요. 근데 진짜 부회장님한테 갈줄은 몰랐어요......좀 거북하네요.”전 직장 동료가
부회장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다.“유 비서 춤도 잘 추는군요?”박수진이 음침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그럼요. 심지어 고전무용이에요. 학교 축제때 췄다가 남학생들 혼을 쏙 빼놨더랬죠. 그 덕에 연애편지도 책상 터질만큼 받았어요. 유 비서는 어릴때부터 남자들이 좋아하는건 다 해줬으니까 지금 이렇게 일도 잘 풀리는거예요.”그리고는 술잔 뿐인 텅 빈 테이블을 바라보며 말한다.“마침 주문한 메뉴도 안 올라왔는데 무대 삼아 여기서 춰봐요 한번.”같이 온 매니저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이건 난처하게 하는걸 넘어 모욕 수준 아니던가!테이블 위에서 춤을 춰라? 유월영도 주문하면 올라오는 음식들 중 하나란 말인가?협력을 핑계삼아 말도 안 되는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상대들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들 뒤엔 SK그룹이 지켜주고 있었다. 허나 오늘같이 금방 회사에서 해고된 전 직원에게 이런 수모를 당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반대로 유월영은 표정 변화 하나 없다. 여태 겪어온 일들로 면역이 생긴터라 이 정도 일엔 쉽게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유월영의 의문은 단 하나. 박수진은 자신이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였던 사실을 어떻게 알며 축제에서 고전무용을 췄던건 또 어떻게 알까?누가 알려줬던거지?부회장은 술도 들어가겠다, 슬슬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유 비서는 참 팔방미인이네요! 재능 숨기지 말고 좀 춰봐요!”“여기엔 전문적인 무용수들이 제공하는 연출이 따로 있습니다. 부회장님 필요하시면 제가 불러올게요.”유월영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박수진이 또 실실 웃으며 말한다.“부회장님, 유 비서가 부회장님 체면 다 깎아먹네요.”“4:6이면 SK그룹이 종신 그룹에 대한 성의는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춤 한번 추는것보다 훨씬 더 체면 살려드리는 일이죠.”부회장은 딱히 별 생각도 없었지만 박수진은 되려 또 유월영을 걸고 넘어진다.“부회장님이 유 비서 춤 한번 볼 지위도 안 된다는건가요?”유월영이 쌀쌀맞게 쏘아붙인다.“박수진 씨, 저한테 수석 비서 자리
검정색 정장을 쫙 빼입은 연재준이 걸어들어온다. 옆엔 서정희와 하정은에 보디가드들까지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뽐내면서 말이다!다들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재준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나.잠시 넋이 나가있던 부회장은 습관적으로 웃음을 지어보인다.“연 사장님......연 사장님이 여긴 어떻게!”연재준의 시선이 유월영에게로 옮겨간다. 숨이 턱 막힌 유월영은 갑작스런 연재준의 등장에 놀라워하는 눈치다.매서운 서안의 겨울에 검정색 가죽 장갑을 끼고 온 연재준이 장갑을 벗으며 입을 연다.“여기 무용 연출 있다고 해서 와 봤는데 부회장님 괜찮으면 같이 봐도 될까요?”“그럼요! 연 사장님도 보러 오셨어요?”부회장의 머리가 재빨리 굴러간다. 연재준이 유월영을 해고시키고 업계에서 압살시켜버린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연재준이 여길 온걸 보면 일부러 더 유월영을 무안하게 하려고 온게 아닐까?“테이블 위에서 춤 추는건 본 적이 없어서 흥미가 생겨서요.”부회장이 고개를 돌려 유월영을 바라본다.“연 사장님도 흥미 있으시다는데 유 비서가 안 출 이유가 없지 않나?”서정희가 연재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걱정스럽게 입을 연다.“재준 씨......”연재준은 손을 탁 올리며 서정희더러 말하지 말라는 손짓을 한다.분명 목이 다 나았지만 갑자기 또 찌를듯한 고통이 몰려오는 유월영이다.유월영이 연재준을 바라본다. 연재준은 손에 장갑을 들고는 하정은이 건네준 의자에 앉더니 다리를 꼬고 느긋하게 앉아 연출을 감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다.박수진이 비웃어보인다.“유 비서! 얼른 안 추고 뭐해!”연재준이 피식 웃어보인다.“내가 유 비서더러 추라고 했나?”박수진이 그 자리에 굳어버린다.부회장 역시 잘못 들은 사람마냥 경직돼 버리더니 어버버거리며 말한다.“그......그럼 연 사장님은 누가 추셨으면 하세요?”큰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는 열명 남짓한 사람들을 연재준이 쭉 훑어본다.연재준의 시선에 긴장한 사람들이 다들 몸에 힘을 바짝 주고 있는다.“여긴
연재준의 등장으로 두 그룹의 계약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흘러갔고 30분이 채 되지도 않아 계약은 성황리에 종료됐다.유월영이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한다.“연 사장님과 부회장님을 위해 한 잔 바칩니다. 추후 세 그룹이 함께 협력하는 날도 있길 바랍니다.”연재준이 술잔을 가볍게 들어 톡하고 테이블을 친다.이제 유월영이 할 일은 더이상 없다. 부회장은 연재준의 심기를 건드릴까 온갖 방법으로 아첨을 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준은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마침 여유가 생긴김에 화장실에 다녀오려는 유월영이다.화장실에서 나오니 거울 앞에 서있는 서정희가 보인다.유월영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씻고는 종이로 물기를 닦아낸뒤 다시 룸으로 걸음을 옮긴다.이때 등 뒤에서 서정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월영 씨, 저한테 고맙다는 인사 안 한것 같은데요.”“네? 어떤 점에 고마워해야 할까요?”“서울에 있을때 재준 씨가 서궁 데려가서 논 적 있었거든요. 서안에도 비슷한 곳 있다면서 오늘 여기 데리고 온거예요. 방금 저희 룸에 왔던 매니저가 우연히 부회장님이랑 SK그룹 사람들도 있다고 하길래 월영 씨인줄 알고 재준 씨도 데리고 갔던거예요.”서정희가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인다.“우리가 왔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월영 씨 오늘 어쩔 뻔했어요?”유월영은 그들이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서정희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된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왜 나타났는지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여기서 중점은 연재준이 서정희 때문에 여길 왔고 서정희 때문에 유월영의 룸에 왔으며 서정희 때문에 나서서 유월영을 도와줬다는거다.지난번 하 사모님 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그런거군요. 그럼 아가씨께도 감사인사 드리죠.”잡티 하나 없는 정교한 메이크업의 서정희가 우월감을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본 유월영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린다.“허나 연 사장님더러 절 도와주게 하고 싶었는지, 수모 당하는걸 보게 하고 싶었는진 아가씨 본인이 더 잘 아시겠죠.”“월영 씨, 방금 그 말
식사 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동료들, 그리고 연재준 무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눈치 빠른 매니저가 재빨리 입을 연다.“유 비서님, 저희는 지하철 끊기기 전에 가봐야 해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그래요,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회사에 봬요.”“내일 뵙겠습니다.”세 사람이 떠난 뒤, 하정은이 연재준의 차를 가지고 온다.보디가드가 연재준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할때, 유월영이 한 발 앞서 다가가 문을 열어준다.“사장님.”해운에 있을 당시, 연재준이 외출을 할때마다 차문을 대신 열어주던 그때와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이 알수 없는 짙은 눈빛으로 유월영을 바라본다.방금 화장실에서의 일이 생각난 서정희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겨 보지만 연재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내 서정희는 달려가 유월영을 밀쳐내며 말한다.“아가씨는 왜 동료들이랑 같이 안 가요? 택시 잡아서 갈거면 얼른 가요. 더 늦으면 안 되니까.”“연 사장님 저랑 같은 호텔 아니세요? 태워다 주시면 안 될까요?”서정희가 다급히 연재준을 올려다보며 말한다.“재준 씨, 이틀동안 잘 자지도 못했다면서 차라리 오늘은 저랑 힐튼 가요......”“짐이 다 이 쪽에 있어서.”그 말인 즉 서정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 소리다.연재준이 보디가드에게 지시를 내린다.“서이사 힐튼까지 데려다 줘.”“서이사님, 가시죠.”“......”지금 소란을 피워봤자 연재준은 함께 가지 않을뿐더러 더우기 자신에게 반감이 생길거라는걸 잘 알고있는 서정희다.서정희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한다.“그래요, 짐 다 정리하고 내일은 제가 찾아갈게요. 조식 같이 먹어요.”연재준은 그렇다 할 대답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다.이윽고 유월영의 곁을 지날때 서정희는 전엔 보지 못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본다.역시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허나 유월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연재준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차 문 앞으로 걸어가더니 유월영을 보며 코웃음을 친다.
그럴리가.유월영은 일단 당장이라도 연재준의 무릎에서 내려오고만 싶었다.허나 그는 손을 뻗어 유월영의 허리를 꽉 감싸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 또다시 연재준에게서 나는 익숙한 향기를 맡고 입술을 꽉 깨무는 유월영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소리없는 힘 겨루기가 계속되는데.이따끔씩 들썩이는 차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있는데다 이상하게 움직이기까지 하는 차 때문에 벨보이가 천천히 다가와 창문을 두드린다.“저기요......”썬팅이 안 된 창문으로 인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고 거기엔 웬 남녀가 붙어있는게 보인다.연재준이 죽일듯한 눈빛으로 벨보이를 노려보자 그는 이내 뒷걸음질 치며 소리친다.“죄, 죄송합니다!”유월영은 그 틈을 타 연재준의 손을 뿌리치고는 재빨리 옆에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귀가 빨개진 채 반대편에 바짝 붙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유월영을 붙잡진 않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한다.“출발해.”하정은이 차에 시동을 걸었고 유월영은 안전벨트를 한 뒤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한숨을 푹 내쉰다.“저 사장님 이용한거 아니에요. 방금 아가씨랑 충분히 같이 가시거나 제 동승 거절할수도 있으셨잖아요. 선택은 사장님이 해놓고 책임은 제가 지는건 도리에 어긋나죠.”맞는 말 아닌가?그저 문만 열어주면서 같이 데리고 가줄수 있겠냐고 물었을 뿐인데. 싫다면 얼마든지 거절할수 있었던 연재준이다.누가 거절하지 말랬나?그래놓고는 이용이니 뭐니.연재준이 고개를 돌려 휙휙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유월영의 얼굴을 쳐다본다.미인은 이목구비보다도 골격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가. 유월영은 바로 그런 타고난 골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마부터 콧대, 다시 콧대부터 턱까지. 그 옆선은 마치 정성들여 빚은 조각상마냥 날렵하고 차가운 느낌을 줬다.“억지 참 잘 부려.”연재준은 섬섬옥수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