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면서 찾는거예요?”윤영훈이 유월영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별안간 묻는다.유월영이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윤영훈은 테이블에 놓인 칵테일 잔을 들어 유월영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연 사장 찾고 있는거면 오늘 꼭 올 거예요.”“신 사장님이 사모님께 축하인사 전하시라고 해서 온건데 제가 연 사장님을 왜 찾아요?”유월영이 침착하게 말하며 술잔을 사양한다.“윤 사장님, 전 괜찮습니다.”윤영훈은 상처 받은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고작 칵테일 한 잔도 싫어요? 대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거예요? 얼굴이 별론가? 아니면 이 정도 애정공세로는 안 되는건가?”“저도 잘 모르겠네요. 사장님 갑자기 왜 저한테 호감 가지시는거예요?”“그러게요. 꽃다발 안에 친필 편지까지 들어있었는데 그거 읽었더라면 이유를 알았겠죠.”유월영이 잠시 주춤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본다.그 역시 반달처럼 굽은 눈에 높은 콧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늘 웃는 상인 입술에 키도 훤칠하고 다리도 길쭉한것이 슈트핏을 잘 소화해내는 사람이었다.그렇다 한들 어쩌겠나, 인상이 별로인것을.치근덕대며 작업 거는게 별로라는 뜻이다.윤영훈같은 남자는 오히려 클럽이나 술집같은 곳에서 여자들의 환대를 받는 케이스다. 잘 생긴데다 돈도 많으니 술 한 잔을 하든, 하룻밤을 보내든 좋은게 좋은거겠지.허나 그런 곳이 아닌 공적인 장소에서라면 9할은 그를 피하고 싶기 마련이다.딱 봐도 감정으로 장난치는 나쁜 남자 같았으니 말이다.“꽃엔 편지 없었는데요.”던져버리긴 했지만 행여 값비싼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가 윤영훈이 갚아내라고 할게 두려워 안을 뒤적여 봤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던 유월영이다.“그럼 내가 깜빡하고 못 넣었나 보네요.”윤영훈이 실실 웃으며 말한다.“내일 보내는 꽃엔 넣을테니까 잊지 말고 꼭 봐요.”그래, 이 남자는 이런 식이다. 진심을 담은 말 한 마디 없는.유월영은 대꾸도 하지 않는다. 아마 공백기라 유월영을 통
유월영이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설명했다.“신 사장님께서 스케줄 때문에 대표로 절 보내신 겁니다. 사모님 쌍둥이 손주 안으신걸 축하드리라고요. 윤 사장님과는 그저 오는 길이 같았을 뿐이에요.”“그럼 아직도 SK에 있는거네.”연재준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를 애매한 태도로 손에 들린 와인잔을 흔들거린다.지금 이 순간 유월영의 마음은 마치 그 검붉은색의 와인처럼 연재준에게 꽉 잡혀 이리저리 흔들흔들 요동치고 있었다.그 일이 있고나서 처음 얼굴을 마주한 둘이다.연재준은 과연 간크게 그의 뒤통수를 친 유월영을 어떻게 처리할까?아마 와인을 얼굴에 뿌리는 간단명료한 방법으로 유월영이 얼굴도 못 들게 망신을 주겠지?과연 연재준은 술잔을 유월영에게 들이민다. 그러나 뿌리는게 아닌 살짝 기울이면서 말이다.“그럼 SK그룹에서 탄탄대로만 걷길 기원할게.”지금 기원하다고 했나?잠시 정적이 흐리고 유월영이 대답한다.“감사합니다 사장님.”팅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술잔이 부딪힌다.입만 살짝 대려고 했으나 원샷을 때려버리는 연재준을 보고 어쩔수 없이 전부 마셔버리는 유월영이다.“아유~우리 자기, 공복에 술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아요.”갑작스런 윤영훈의 헛소리에 굳어버리는 사이 그는 유월영의 술잔을 가져가 한 모금 남은 술을 꿀꺽해버린다.유월영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입가에까지 올라온 “미친거 아니야”라는 말을 겨우겨우 삼켜냈다.연재준도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서정희는 입을 떡 벌리고 말한다.“오빠, 아가씨랑......”윤영훈은 손에 들린 칵테일잔을 지나가는 웨이터의 쟁반에 올려놓고는 웃으며 말했다.“연 사장님이 웃으실진 모르겠지만 요즘 유 비서 쫓아다니고 있거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표현 좀 하느라고요.”연재준은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무덤덤하게 말한다.“그러시군요.”“연 사장님 개의치 않으시죠?”유월영은 연재준의 사람이었으니 그런 그녀를 좋아하려는것에 개의치 않는지 “예의를 갖춰” 물어보는 윤영훈이다.연재준은
다른 이들의 눈엔 그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것 같은 네 사람이었지만 그 사이에 낀 유월영은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마침 그때 서정희가 연재준에게 귀띔해준다.“사모님 내려오셨대요. 저희 가서 인사 드려요.”연재준은 마지막으로 유월영을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목례를 하며 말했다.“그럼 이만.”그리고는 서정희의 어깨를 감싼 채 자리를 떠버리는 연재준이다.“......”유월영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그 일 이후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그는 살벌한 복수도, 악의적으로 비꼬는것도 없이 탄탄대로를 기원하고는 떠나가 버렸다......강박이 먹히지 않으니 이젠 놔주겠다는 건가?예고도 없이 찾아온 자유에 유월영은 습관적으로 연재준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다. 갑자기 왜 성격이 한풀 꺾인거지?빠질듯이 쳐다보는 유월영을 보더니 윤영훈이 말한다.“현 남친이 여기있는데 자꾸 연 사장만 보면 내 체면이 뭐가 돼요?”“윤 사장님, 전 사귄다고 동의한 적 없습니다만?”“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말하는게 아니라 전엔 연 사장이랑 연회 참여했다가 이젠 나랑 같이 온다는거죠. 굳이 남녀 관계로만 특정지어 생각하는걸 보니 아하, 유 비서도 사실 나한테 마음 있는거죠?”할 말을 잃은 유월영이다.“윤 사장님, 입씨름하는게 재밌으시면 차라리 스탠딩 코미디 배우를 섭외하세요.”윤영훈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숙이고 꽤나 진심을 다해 말했다.“사실 입씨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앞으로 차차 알아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런 말은 유 비서한테 함부로 할 말은 아닌거 같아서요. 난 진짜 유 비서한테 진심이거든. 잘못 말했다간 유 비서가 오해할까봐.”“......”열 살 정도 어린 여자애였다면 이 말에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겠지.허나 유월영은 아니다.“말씀하기 싫으시다면서 이미 말씀하셨잖아요?”희롱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말을 하고도 자기 합리화를 시전한다니, 대단한 사람이다.윤영훈이 억울해하며 말한다.“아, 미안해요. 누굴 좋아해보는게 처음이라서 어리숙한거
윤영훈은 아직도 연두색 치파오를 입고 유람선에 올랐던 그 날의 유월영을 기억하고 있었다.질끈 묶은 머리에 옥비녀를 하고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은 마치 봄날의 강가에서 선들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같은 느낌을 줬다.문득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던게 그 날 유람선에서부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유월영이 무미건조하게 말한다.“윤 사장님 주문 잘못 넣으신것 같은데요.”윤영훈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떠들어댄다.“치파오 진짜 잘 만드는 선생님 아는데 흰색으로 제작해서 보내줄게요. 혹시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아니면 주말에 직접 가서 치수 재고 제작해도 되고. 그게 훨씬 낫겠죠?”“......”윤영훈은 듣고 싶은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연재준같이 난폭한 남자도 만나봤고 신연우같이 예의바른 남자도 만나봤지만 이런 막무가내인 사람은 윤영훈이 처음이다.더는 비위를 맞춰주지 못한 유월영이 한 마디 한다.“죄송해요 사장님, 화장실 다녀올게요.”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뜨는데.한참을 걸어 다시 뒤돌아 봤을때 윤영훈은 다른 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제야 유월영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이내 몸을 돌리려는데 별안간 쟁반을 받쳐든 웨이터가 불과 몇미터를 사이두고 쏜살같이 그녀의 옆을 지나간다!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고연화다---행여 부딪히기라도 했으면 쟁반에 있던 술잔의 와인을 전부 유월영이 덮어썼을텐데. 그때 민감한 유월영의 뇌리에 뭔가가 번쩍 스친다. 설마 누군가 일부러?고개를 들어 웨이터를 바라보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목에 맨 리본줄을 풀어버린다!유월영이 오늘 입은 드레스는 겨우 그 리본줄 하나에 의거해 버티고 있는 예복이었는데 별안간 리본줄이 느슨해지며 드레스가 아래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든다!다행히 반응속도가 빠른 유월영이었기에 재빨리 옷이 흘러내리는걸 막을수 있었고 이내 그녀는 몸을 홱 돌렸다.뒤에 있던건 다름아닌 임지연.임지연은 오버스럽게 입을
그 소리에 고개를 홱 돌리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이 차갑게 읊조린다.“난 유월영이랑 같이 온 것도 아니고 관계도 영......평범하긴 한데 이런 나도 나서서 도와주는거라 생각하진 않겠지.”“저......”평범한 관계긴 무슨! 유월영은 한때 연재준의 여자였거늘!윤영훈에겐 반박을 해도 연재준 앞에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임지연이다.연재준이 윤영훈보다 신분이 더 높아서가 아니라 윤영훈은 그렇게 말해도 화 내지 않는다는걸 알지만 연재준은 달랐기 때문이었다.저 남자의 분위기는 이미 서있는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저......당신들 왜 나만 괴롭혀!”되려 적반하장으로 억울해하는 임지연이다.유월영이 입꼬리를 씰룩거린다.“잘못한 사람이 고자질이라니! 분명 네가 먼저 하 사모님 괴롭힌거잖아.”“무슨 헛소리야 그게! 내가 언제!”“오늘은 사모님 손자를 위한 연회야. 사모님이 좋은 음식에, 좋은 술 베푸시면서 초대하신건데 넌 무슨 한이 그리도 깊어서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하필 분위기를 망쳐? 이게 괴롭히는게 아니면 뭔데?”윤영훈이 웃음을 참는다. 입씨름? 그건 유월영이 훨씬 센것 같다. 몇 마디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니.그저 망신만 주고 싶었던 임지연은 되려 본인이 망신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안색이 어두워진다.“너......”“임 아가씨는 절대 일부러 그런게 아닐거야.”하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들 짜기라도 한 듯 길을 터준다.환갑이 지난 연세에도 여전히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고 계시는 하 사모님은 그들에게 다가와 무덤덤하게 말씀하셨다.“그저 술에 취했을 뿐이지. 자, 어서 아가씨 모셔다 드려.”이게 어디 ‘모셔다 드리는’건가, 그냥 쫓아내시는거지!임지연은 스스로 망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뒤를 지키고 있던 가문과 부모님의 얼굴에도 먹칠을 해버렸다.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거리는 임지연은 그제야 돌로 자기 발을 내리치는 느낌이 뭔지를 절실히 깨달은것 같다. 그러게 왜 유월영을 건드렸는지......“아가씨,
오늘의 연회는 하 씨 가문 집에서 열린 연회였고 별장 곳곳엔 조명이 반짝이고 있었다.밖에 있는 정원으로 나온 유월영과 신연우다. 신연우는 쌀쌀한 밤바람에 예복만 입은 유월영이 추울까 걱정이 된다.“이미 사모님이랑 인사도 나눴으니까 먼저 가도 돼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유월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좀만 더 있다가요. 아직 반도 안 됐잖아요.”지금 간다 한들 누구도 신경 쓸 사람은 없겠지만 유월영은 늘 누군가에게 발목 잡힐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흠집같은걸 남기지 않는 타입이었다.신연우는 유월영에게 덮어준 겉옷을 잘 여미어주더니 바람을 막아주기까지 했다.그는 파운데이션 밑에 가려진 유월영의 안색을 보더니 나지막이 물었다.“힘들어 보이네요. 일 때문에 쉬지도 못했죠?”“금방 입사해서 익숙하지 않아 그래요. 손에 익으면 훨씬 쉽겠죠.”유월영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정도 업무 강도라면 받아들일만 했다.“그래도 늘 신경써야죠. 둘째 형이랑 한약재 알려달라고 할게요. 우려마실 시간 없으면 마침 제가 방학이라 집에 있으니까 다려다가 회사로 가져도 줘도 되고요.”“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민폐를 끼치겠어요.”“제가 하고 싶어서 그런거니까 괜찮아요.”“교수님 마음만 잘 받을게요. 제가 덥석 받아버리면 너무 분수를 모르는것 같아서요.”어떤 관계여야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 말에 신연우가 말도 없이 유월영을 쳐다보지만 뭔가를 어필하고 있는것 같았다.유월영이 입술을 살짝 깨문다.연안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온라인을 빼고 다시 얼굴을 마주본건 오늘 밤이 처음이다.앞서 몇번이나 신연우가 식사 약속을 잡았지만 유월영은 늘 바쁘다고만 말하며 거절해왔다. 확실히 바쁜건 맞겠지만 그렇다고 밥 한끼 먹을 시간도 없다는건 말이 안 되지 않나.결국 유월영은 그를 피하고 있는거다.그가 숨기도 다른 모습 때문이 아니다. 그 날 차에서 연재준에게 반박할때 했던 말들은 전부 진심을 담은 말들이었다. 유월영은 신연우의 서로 다른 모습을 개의치 않는다, 필
허나 결국 연재준과 신연우 둘 다 유월영의 대답을 듣지 못한다.바로 그때 신연우의 휴대폰이 울리며 신연아에게서 연락이 왔으니 말이다.“오빠! 오빠 어디야? 나한테 좀 와 줘!”신연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연아야, 침착하게 말 좀 해봐. 무슨 일인데?”신연아는 겁에 질려 어버버거린다.“내, 내가 운전하다가 잠깐 휴대폰을 본 사이에 누가 길을 건너더라고......”“그래서?”“급히 핸들 꺾어서 피하긴 했는데 차가 가드레일 사이에 끼는 바람에 움직이질 못하고 있어. 오빠 나 어떡해, 무서워. 얼른 와서 나 좀 구해주라......”“다친 사람 없는걸 다행으로 여겨. 누가 너더러 운전대 잡을때 휴대폰 보래? 그러고도 울음이 나와? 큰 형이 너 다리 끊어버리게 만들줄 알아.”신연아가 울먹거린다.“그만 좀 욕하고 나 좀 구해줘......”“일단 차에서 내려서 안전한데 피해 있어. 위치 보내면 내가 얼른 갈테니까.”유월영은 대충 무슨 일인지를 눈치채고 그에게 말한다.“얼른 가 봐요. 아가씨 엄청 놀랐을텐데.”동생이 걱정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는 뭔가 생각났는지 이내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유월영에게로 다가와 말했다.“내일 점심 식사 대접할게요.”“내일 엄청 바빠서 시간 없어요.”“그럼 모레요.”“시간 되면 그때 다시 약속 잡아요.”신연우는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해 못마땅해했지만 신연아 일때문에 상황이 급박했으니 어쩔수 없이 말했다.“그럼 그것부터 약속해요. 더이상 나 피하지 않겠다고, 네?”유월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네.”어렵게나마 답변을 얻어낸 신연우는 웃어보이더니 그제야 자리를 떴다.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유월영은 시간을 확인하고 15분만 더 있다가 사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가려고 한다. 이 정도면 무례를 범한건 아닐테니 말이다.그 순간 뭔가가 머리 위로 툭 떨어졌고 아하며 소리를 내는 유월영이다.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주워보니 핑크색 모란꽃 한 송이다.이내 고
유월영은 못 들은척 고개를 돌린다.“네?”보일러 때문에 따뜻한 방 안에서 연재준은 정장 겉옷을 벗고 흰 셔츠와 그레이 조끼만 입은 채 이따금씩 보이는 굴곡으로 섹시함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대놓고 물어본 질문을 못 들을리가 없겠지만 연재준은 그런 유월영이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은걸 알고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야.”계속 쌍둥이를 들여다보는 유월영이다.그래, 별로 연재준의 말에 대꾸를 하고 싶지 않다.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거지? 아이는 뜻밖의 유산이 아니었어도 연재준이 절대 낳게 못했을게 뻔하다. 그날 생리통 때문에 힘들어한것도 그는 유산 때문이라 오해하는걸 보면 답이 다 나온거 아닌가.그와 아이니 뭐니 하는 얘길 나누기도 싫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의미도 없으니까.유월영이 몸을 숙이고 쌍둥이들을 바라보려는 찰나 새근새근 잘 자고 있던 한 아이가 와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아이도 덩달아 울음보를 터뜨리기 시작했다.자신이 그런줄로 알고 심장이 철렁하는 유월영이다.이때 연재준이 그녀의 손을 잡고 침대에서 멀리 떨어지게 한다.베이비시터가 다급히 다가와 아이를 안아주며 말한다.“왜 갑자기 울까요?”유월영이 입을 열려는 찰나 연재준이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쥔다. 이내 베이비시터가 말한다.“아이고, 응아했네. 우리 공주님, 왕자님은 늘 우는것도 따라서 울어. 죄송해요 두 분, 얼른 씻기고 올게요.”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네, 다녀오세요.”베이비시터와 하인이 아이들을 안고 욕실로 들어간다.그제야 한숨을 내쉬는 유월영이다. 손톱에 긁힌건줄 알았네.“너가 그런것도 아닌데 뭘 인정하기 급급해.”“인정하는게 아니라 아이들 울기 전 상황을 말씀드려서 왜 우는지 찾기 쉽도록 도와드리려는거죠.”“저 사람들 눈에는 그저 ‘해명’이나 ‘변명’하기엔 급급한 사람으로 보일뿐이야. 가만히 있다가 물어보면 그때 대답해도 늦지 않아.”다른 일이라면 가만히 있겠지만 어린 아이들이니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무서웠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