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섭은 김연아가 온 줄 알고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나 그가 일어나자마자 김혜민과 서경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혜민아... 경재야, 너희가 여긴 웬일이니?”두 사람을 본 김형섭은 깜짝 놀랐다.그는 몰래 서울로 온 것이라 김씨 일가와 서씨 일가는 이 사실을 몰라야 했다.“아빠도 올 수 있는데 왜 저희는 오면 안 돼요?”김혜민이 불쾌한 듯 말했다.김혜민의 어두운 표정을 본 김형섭은 답답했다.“혜민아, 네가 성숙하다는 건 아빠도 알고 있어. 오늘 저녁엔 사고 치지 말아줄래?”김형섭은 원래도 자신이 별로 없었는데 김혜민까지 이곳에 오니 더더욱 김연아를 데려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김혜민은 현재 모든 화가 진서준을 향해 있는 터라 김연아 일은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앞으로 김연아를 쫓아내도 되니 말이다.“좋아요. 하지만 송휘운 종사님이 저랑 어디를 좀 가야겠어요.”김혜민이 말했다.“송휘운 종사님은 왜?”김형섭은 이해할 수 없었다.“아빠, 경재 오빠 얼굴 좀 보세요!”김혜민은 서경재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김형섭은 그제야 서경재의 얼굴에 손자국이 남은 걸 발견했다.“어떻게 된 일이야? 어떤 미친 X이 감히 네 얼굴을 때린 거야?”김형섭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고모부, 이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고모부는 생일 파티에만 신경 쓰세요.”서경재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지금 당장 송휘운 종사를 보내서 너희들과 함께 그 자식을 찾아가라고 하마.”이내 김씨 일가의 송휘운 종사가 도착했다.송휘운은 김씨 일가의 대성 종사로 70대였고, 실력이 아주 강했다.강남을 놓고 보았을 때 그는 종사 경지의 고수를 이미 다섯 명쯤 때려눕혔다.“송 종사님, 제 딸과 한 번 가주셔야겠어요. 누군가 경재의 얼굴을 때렸거든요.”김형섭이 송휘운에게 말했다.“네.”송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부탁드릴게요!”김혜민은 활짝 웃으면서 악랄한 눈빛을 번뜩였다.종사가 있으니 진서준은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진서준은 청력이 좋았기에 김연아의 아버지가 강남 김씨 일가의 김형섭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엄청 예쁘죠?”허사연은 진서준이 김연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조금 질투가 났다.“오해예요. 김연아 씨가 김형섭 씨의 딸인 줄 몰라서 보고 있었던 거예요.”진서준이 작게 말했다.“뭐라고요?”허사연은 그 말을 듣더니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이때 진서준을 본 김연아는 눈을 반짝였다.“진서준 씨!”김연아는 빠르게 진서준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의 놀란 시선들은 전부 무시한 채 말이다.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진서준에게로 집중되었다.“진서준 씨는 허사연 씨와 만난다고 하지 않았었나? 왜...”“네가 뭘 알겠어? 진서준 씨 같은 사람들은 만나는 여자가 한둘이 아닐 거야.”“허씨 일가는 서울에서나 대단하지, 김씨 일가보다는 좀 약해.”사람들은 수군덕거리면서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김씨 일가 가주 딸의 마음에 든다면 앞으로 전도가 유망할 것이다.게다가 진서준 본인의 실력도 엄청났다.“안녕하세요, 김연아 씨.”진서준이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일 보러 어디 간다면서요?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예요?”김연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어제저녁에 돌아왔어요. 오늘이 김연아 씨 생일일 줄은 몰랐네요...”진서준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그는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다.진서준은 이번 파티의 주인공이 김연아인 줄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괜찮아요. 전 서준 씨가 와준 것만으로도 기뻐요.”김연아가 웃으며 말했다.곧 김연아는 허사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허사연도 예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이때 분노에 찬 목소리가 사람들 뒤에서 들려왔다.“저 자식이에요. 얼른 이리로 와요!”건방진 목소리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낯선 여자임을 발견한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저 여자는 누구죠? 어떻게 감히 김씨 이가 가주가 주최하는 파티에서 저렇게 건방을 떠는 거죠?”“조금 전 장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고개를 돌려 김형섭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감히 김씨 일가의 가주를 존경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김형섭은 화가 난 얼굴로 파티장에 도착했다. 그는 분통이 터졌다.그는 송휘운과 김혜민을 함께 보냈을 뿐, 김혜민에게 파티에서 소란을 벌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이것은 그가 주최한 파티일 뿐만 아니라, 김연아를 위해 준비한 자리였다.김혜민이 이런 짓을 벌이는 건 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다.그러나 김혜민은 그런 점을 생각할 정도로 똑똑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조금 전의 복수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아빠, 나오지 않으셔도 돼요. 이 자식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김혜민이 말했다.김혜민이 김형섭을 아빠라고 부르자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랐다.김혜민이 그렇게 건방졌던 건 김형섭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김형섭에게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리고 사생아인 김연아까지 자식이 총 세 명 있다는 걸 알았다.그런데 두 딸이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아마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입 닥쳐. 누가 파티에서 소란을 벌이래? 내가 오늘 네 언니를 위해서 생일 파티를 열었다는 걸 모르는 거야?”김형섭이 화가 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김혜민은 그가 자신을 혼내자 무지 당황스러웠다.“아빠, 지금 그 사생아 때문에 절 혼내는 거예요?”김혜민은 씩씩거리면서 말했다.“네 언니야!”김형섭은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저한테 언니는 없어요. 그 여자는 제 언니가 될 자격이 없어요!”김혜민이 말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진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남자라면 얼른 나와. 그 빌어먹을 X 뒤에 숨어있지 말고!”진서준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나가려고 했다.“안 돼요, 진서준 씨!”김연아는 진서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진서준이 김씨 일가와 갈등이 생기기를 바라지 않았다.김연아는 김씨 일가에서 오래 지냈기 때문에 김씨 일가의 무시무시함을 알고 있었다.진서준이 김씨
김혜민의 얼굴에 빨간 손자국이 남았다. 환한 조명이 비추니 그 자국이 더욱 뚜렷했다.진서준은 김혜민의 앞에 서서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김혜민을 쏘아보고 있었다.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서 사람들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다.심지어 김혜민의 옆에 서 있던 종사마저도 경악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속도가 너무도 빨랐다.송휘운은 무척 놀랐다. 그는 이미 대성 종사인데도 불구하고 진서준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감히 다시 한번 김연아 씨를 모욕한다면 평생 입을 놀리지 못할 줄 알아!”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에 김혜민은 덜컥 겁이 났다.김연아의 눈동자에는 감격과 애정이 가득했다.만약 진서준을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 자식, 감히 내 얼굴을 때려? 죽어!”김혜민은 정신을 차린 뒤 꽥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길이 뿜어질 것만 같았다.김형섭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김혜민은 그의 딸이었고 혼을 낸다고 해도 남남인 진서준이 혼낼 자격은 없었다.“그만! 이건 우리 김씨 일가의 집안일이니 네가 누구든 끼어들 자격은 없어!”김형섭이 차갑게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김형섭을 바라보았다.“연아 씨는 김씨 일가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김연아 씨는 제 친구입니다. 전 다른 사람이 김연아 씨를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어요.”진서준이 자신에게 대들자 김형섭은 더욱 화가 났다.“연아는 내 딸이야!”김연아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어서 듣고 있으면 마으밍 아팠다.“어머니가 죽임당했을 때는 신경도 안 쓰셨잖아요. 제가 서씨 일가 사람들에게 내쫓길 때도 당신은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기만 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절 딸이라고 하는 거죠?”김연아는 복잡한 눈빛으로 김형섭을 바라보았다.“난... 연아야, 당시 내게 힘이 없었어.”김형섭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큰 가문에서는 실력이 모든 걸 결정했다. 당시 김형섭은 김씨 일가
진서준이 발을 구르자 장원 전체가 뒤흔들렸다.그의 발밑으로 50cm 가까이 되는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그리고 십여m 뻗어져 나간 균열까지, 송휘운과 김형섭은 순간 헛숨을 들이켰다.그는 무려 선천 대종사였다.이럴 수가!눈앞의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무려 선천 대종사라니, 인간은 맞을까?괴물이나 다름없었다!아마 경성 가문들의 천재들도 진서준보다는 못할 것이다.김씨 일가가 안중에도 없는 이유가 있었다.김형섭은 차갑게 말했다.“네 실력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되면 우리 강남의 두 가문을 동시에 건드리게 되는 거란 걸 잊지 마. 경성의 최고 가문도 감히 그러지는 못해!”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평온하게 말했다.“그들이 감히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죠.”“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할게. 사과해!”김혜민은 겁을 먹고 몸을 떨었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끝없는 두려움과 증오가 가득했다.진서준의 살기를 느낀 건지 거만하던 김혜민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미안해요...”아주 작은 목소리라서 진서준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듣지 못했다.그러나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아하니 사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목소리가 너무 작아!”진서준이 차갑게 호통을 쳤다.“조금 전에 욕할 때는 목소리가 컸잖아! 그런데 사과하라고 하니까 갑자기 목청이 작은 척하는 거야?”김혜민은 손이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미안해요!”그녀는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곧이어 그녀는 울면서 장원을 뛰쳐나갔다.서경재는 진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우리 이대로 끝나지 않을 줄 알아!”말을 마친 뒤 서경재는 서둘러 김혜민을 뒤따라갔다. 그녀가 위험해질까 봐서 말이다.김형섭은 아주 어두운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자식, 용기는 있네.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만 너무 현명하지 못했어. 우리 김씨 일가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서씨 일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네가 선천 대종사라고 해서 마음대로 굴 수
오늘 저녁 진서준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김연아는 김혜민에게 실컷 모욕당했을 것이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우린 친한 친구잖아요.”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전 다른 사람이 제 친구를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어요.”허사연은 김연아의 처지를 알게 되자 적개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연민만 남았다.친아버지가 친어머니의 죽음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니, 허사연이 그런 일을 겪었더라면 아마 몇 번이고 자살 시도를 했을 것이다.“연아 씨, 앞으로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와 서준 씨에게 언제든 얘기해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요!”허사연은 김연아의 손을 잡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김연아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서 쉬죠.”허사연은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서준 씨, 연아 씨를 집까지 바래다줘요. 꼭 안전히 바래다줘야 해요!”진서준은 잠깐 멈칫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김혜민 같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어쩌면 돌아가는 길에 사람을 시켜 김연아에게 해코지할지도 몰랐다.“그래요. 윤진 씨랑 먼저 돌아가요. 전 연아 씨를 데려다주고 바로 돌아갈게요.”허사연과 허윤진이 차를 타고 떠난 뒤 진서준은 김연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도 가요.”“네.”김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김연아는 운전기사 없이 혼자 운전해서 온 것이었다.그래서 지금은 진서준이 운전하고 있고 김연아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돌아가는 길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서준은 어떤 말을 해야 김연아를 위로할 수 있을지 몰랐다.그런 일은 김연아 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감정이었기 때문이다.이 세상에 진정한 공감은 없었다.차는 김연아의 집 문 앞에 멈췄고 진서준이 말했다.“일찍 쉬어요. 난 이만 돌아갈게요.”김연아가 물었다.“당연히 걸어서 가야죠.”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이 전속력을 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슈퍼카보다도 빨랐다.게다가 아직 이른 시각이라 느긋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진서준은 허씨 일가 별장으로 돌아갔고, 권해철과 황보식 등이 거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진서준이 돌아오자 그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진서준 씨!”“다들 앉으세요. 우리 사이에 이럴 필요는 없죠.”사람들은 자리에 앉았고 권해철이 제일 처음 입을 열었다.“진 마스터님, 전 몇 년 전 강남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강남 서씨 일가는 세력이 어마어마해요. 그리고 모든 업계에 종사하고 있어요. 더욱 무시무시한 건 서씨 일가 5명의 선천 대종사예요. 그중 세 명은 7품이고 한 명은 5품, 마지막 한 명은 소문에 따르면 서씨 일가의 선조인데 반보 지선, 10품 선천 대종사래요.”진서준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선천 대종사에도 급이 나뉜다니.“선천 대종사는 총 몇 개 등급으로 나뉘죠?”진서준이 물었다.“총 10품이에요. 1품이 가장 약하고 10품이 가장 강해요. 그리고 10품 이상은 지선이죠.”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이 수련한 것은 선법과 술법으로 무도와는 달랐다.진서준의 추측으로 지금 그의 실력은 아마 2품 선천 대종사, 또는 그것보다 더 강할 것이다.“선천부터는 매 등급 사이에 차이가 아주 커요.”권해철이 귀띔했다.“특히 6품 이후로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죠.”권해철의 말을 들은 허성태와 황복식 등은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서씨 일가만 해도 선천 대종사가 무려 5명이었다.거기에 김씨 일가까지 더해진다면, 진서준 혼자가 아니라 남주성의 모든 가문을 더해도 상대할 수 없었다.“서준아, 이번에는 네가 너무 충동적이었어.”허성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빠, 이 일은 진서준 씨 탓이 아니에요. 김씨 일가의 그 여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아빠는 그 자리에 없어서 그 여자가 얼마나 거만했는지 몰라서 그래요.”허사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괜찮아요, 아버님. 제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게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서씨 일가와 김씨 일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진서준은 절대 굴복하지 않
“그 자식, 복수가 아주 하고 싶었나 봐요. 해외 킬러까지 고용한 걸 보면. 지금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아세요?”진서준이 물었다.“몰라요. 주식을 팔았을 때는 이미 서울을 떠난 상태였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지는 우리도 모릅니다.”손지헌이 말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려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요. 진서준 씨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건 제 영광이죠.”손지헌은 서둘러 겸손하게 말했다.현지 손씨 일가가 진서준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는 이유는 손씨 일가를 향한 진서준의 악감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예전에 손승호가 했던 멍청한 짓들로 인해 손씨 일가 사람들은 진서준이 복수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뒤 진서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손승호, 나한테 잡히지 마. 나한테 잡히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진서준은 누렁이도 전라도로 데려갈 생각이었다.그러나 지금 보니 누렁이는 반드시 별장을 지켜야 했다.비록 허씨 일가에 경호원이 있기는 하지만 경호원들과 무인들은 킬러들과는 레벨이 달랐다....고양시의 한 호텔 룸 안에는 남자 세 명이 앉아 있었다.그중 한 명은 바로 사라진 지 오래된 손승호였다.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험악한 표정의 두 사람은 서진의 킬러였다.그들은 쌍둥이로 서진의 유명한 킬러였다.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손승호는 그들을 고용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썼다.이번에 손승호는 반드시 진서준을 죽이고 허사연 자매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이 사람이 우리가 죽여야 할 사람인가요?”형 박주혁은 자료를 보더니 같잖다는 듯 웃었다.별 볼 일 없는 청년 때문에 그들을 고용하다니, 이건 그들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두 사람은 40대 초반으로 내력 종사였다.일반적인 종사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진서준 같은 젊은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이 자식을 얕보지 마세요. 이 자식 실력이 만만치 않아요. 소문에 따르면 종사라고 해요!
김평안이라니, 아무도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곧 이 이름이 대한민국 무도계에 널리 퍼질 것은 분명했다.남주성 진 마스터가 등장한 데 이어 이제는 검선 김평안이 나타나다니, 대한민국 무도계는 요즘 정말 떠오르는 샛별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진서준과 김평안이 사실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현장 사람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혹시 김평안과 진 마스터가 만나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누군가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이 있잖아. 진 마스터는 강기와 술법에 능하고 김평안은 검도에 능하니 실제로 붙으면 막상막하일 거야.”한 종사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답했다.“근데 이상하지 않나?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진 마스터는 대한민국에서 증발한 것처럼 진 마스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잖아.”“설마 김평안이 바로 진 마스터가 아닐까?”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그 예상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 마스터도 검을 쓴 적은 있지만 검도에 대한 이해는 그리 깊지 않다고 들었어.”“김평안의 검술은 섬나라 작은 검성을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인데, 이는 대한민국 검존과 같은 수준일 거야. 진 마스터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주변 사람들의 찬사에도 진서준은 무심하게 지나쳤다.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오자 엘리사가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김평안 씨, 대회에서 우승한 걸 축하해요.”진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레 같은 놈 하나 베었을 뿐인데, 축하할 일도 아니죠.”“김평안 씨, 고시후는 벌레로 불릴 만큼 무능한 무인이 아닙니다. 고시후는 섬나라 작은 검성이자 고필두 다음 가는 실력자예요.”호창정는 흥분한 얼굴로 고시후에 관해 설명했다.김평안이 고시후를 단 한 칼에 쓰러뜨렸으니 고필두도 마찬가지로 이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현천진군이 도대체 어디서 이 막강한 실력을 갖춘 무인을 데려온 건
이번 교류 대회는 결승전에서도 여전히 3판 2선승제였다.아까 고필두가 기권하면서 섬나라는 이미 한 판을 졌다.이제 진서준이 고시후를 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번 교류 대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이번 대회의 우승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고시후는 고필두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섬나라의 작은 검성이라 불리는 막강한 존재였다.고시후의 실력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이번엔 누가 대신 죽으러 나왔나?”자신감에 차 있는 고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서준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죽을 사람은 바로 너야. 고필두가 체력 부족으로 네 목숨을 잠시 연장해줘서 고맙게 생각해. 고필두의 체력이 저 정도로 고갈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넌 이미 고필두의 검 아래 시체로 되었을 거니까.”고시후가 쌀쌀하게 웃으며 받아쳤다.진서준은 고시후를 무시한 채 사회자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시작해도 되나요?”“시작하세요!”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사실 진서준은 고필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기권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작은 검성이 고필두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당연히 진서준이 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서준의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보고 모두 멍해졌다.“저 사람...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여러 겹의 잔상이 링 위에 차례로 나타났는데 이 속도는 아무리 봐도 육급 대종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심지어 조금 전의 해리스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벌려진 입으로 감탄하기도 전에 찬란하고 푸른 검광이 링 위에 나타났다.하늘조차도 그 푸른 검광의 참격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뉜 듯했다.이 참격은 오직 검의 수준에 맞먹을 뿐, 검세급에는 이르지 않았다.참격의 강도를 낮춘 이유도 간단했다.눈앞의 작은 검성으로는 진서준이 검세까지 사용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검의 대성 수준을 담은 검광을 휘두르는 걸 직접 목격
진서준이 고필두의 검을 쉽게 막아내자 관중들은 그제야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고필두가 항복한 게 당연하지. 아까 해리스랑 싸우며 힘을 다 소진했나 보지.”“아마 검을 내려치기 직전에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미리 항복한 거겠지.”“어휴, 이기긴 했지만 불명예스러운 승리잖아. 진 거나 다름없네.”다들 고필두가 항복한 이유가 아까 해리스와의 대결에서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네 나약함이 네 목숨을 구했군.”진서준은 고필두의 요도를 집었던 두 손가락을 거두고 냉랭하게 말했다.고필두는 속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진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고필두가 항복을 외쳤을 때조차 비겁한 그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힘도 덜어내지 않았다.그런데 고필두의 요도는 진서준의 두 손가락에 꽉 잡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고필두는 요도를 거두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링을 내려갔다.“쓸모없는 놈, 사람 잘못 봤어!”고필두가 도망치듯 내려가는 모습을 본 황현호는 화가 나 이마에 핏대가 섰다.고필두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황현호가 상상할 수 없었다.“다행이네요. 저 섬나라 남자가 항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조민영은 진서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옆에 있던 조기강이 조민영을 보며 따졌다.“민영아, 김평안이 자기 실력에 대해 너한테 뭐라고 말한 적 있니?”조민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만 장릉 마을에서 내가 사수에게 잡혔을 때, 그 악당을 공격 세 번 안에 제압했던 적이 있었어요.”사수를 단 세 번의 공격 만에 죽였고 또한 검세마저 대성이라니, 진서준의 실력은 조기강보다 한참 위일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왜 여태껏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들은 적이 없는지 조기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김평안이라는 자가 봉호전에 참가했다면... 검존의 봉호가 바
사회자가 아직 시작을 외치기도 전에 고필두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필두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넘어섰고 손에 든 요도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진서준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이 장면을 본 모두의 마음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진서준의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는 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생각이었다. 물론 조기강도 이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그 날카롭고 눈부신 검광을 마주하고도 진서준의 얼굴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시선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대한민국 무인 앞에서 칼을 휘두르겠다니, 어이가 없구나. 우리 조상들이 검을 다룰 때,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원숭이처럼 바나나나 먹었겠지. 오늘 내가 너희 섬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검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진서준의 목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이 녀석은 고필두의 심기를 완전히 건드릴 생각인 것 같았다.몇몇 관중들은 이미 눈을 감았다. 다들 곧 피범벅이 되어 피비린내를 풍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필두의 눈에는 잔인한 살기가 맺혔고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처음에는 한 방에 진서준의 목숨을 끝내려 했지만 지금 고필두의 생각이 180도로 변했다.고필두는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무인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게 하고 싶었다.고필두는 검의 방향을 바꿔 진서준의 왼팔을 겨냥했다.요도가 진서준의 몸에 닿기 직전, 진서준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었다.순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청색 검광이 공중에 번쩍였다.검광은 비록 얇았으나 그 순간 모든 이들의 마음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짧은 순간 눈 부신 빛을 보이던 검광은 단순한 검광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천둥과도 같았다.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고필두의 마음에 강렬한 위기감이 솟구쳤다.진서준의 오른손에는 눈부신 푸른빛을 발산하는 7척 길이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그 장검은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겉모습도 평범해 보였다.하지만 다음 순간, 청색 검신에서
아까 고필두가 보여준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조기강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진서준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삼촌, 아저씨랑 저 섬나라 검객 중 누가 이길 것 같아요?”조민영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김평안은 신농에 들어가지 않았어? 어떻게 다시 나왔지?”갑자기 등장한 진서준을 보고 조기강도 순간 멍해졌다.당시 조기강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정리하고 진서준을 신농으로 들여보냈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진서준이 다시 신농에서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다.“삼촌, 김 아저씨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나중에 물어봐요. 지금은 둘 중 누가 이길지 말해줘요.”조민영은 조기강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기 시작했다.“흔들지 마라.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조기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고필두는 지금 새 상대와 대결할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김평안을 이기기에는 충분해.”아까 고필두의 광자 참격은 조기강마저도 깜짝 놀라게 했다.조기강이 직접 저 링에 올라 대결한다면 고필두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링 위에 있는 김평안은 아예 승산이 없었다.조기강이 진서준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하자 조민영은 초조해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삼촌, 이따가 김 아저씨를 좀 도와줄 수 없어요?”“안 돼. 이건 국제 대회야. 내가 개입하면 우리 팀이 이기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거야. 그때는 윗사람들도 우리 조씨 가문을 탓하게 될 거고.”조기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이내 속으로 대한민국 교류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면 자기가 직접 나섰을 거라며 한탄했다.엘리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속으로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김평안의 등장에 당혹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저 중년 남자는 누구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몰라. 저 남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쯧
이 순간, 하늘과 땅 사이 모든 흐름이 한순간에 멈춘 듯했다.피가 졸졸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눈을 휘둥그레 뜬 엘리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엘리사의 친위대 대장이 한낱 섬나라 검객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패하다니, 너무나 경악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졌고 말문이 막혔다.육급 대종사인 해리스도 고필두의 광자 참격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했다니, 이 고필두의 실력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지금 상황으로 봐선 칠급 이상의 대종사만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호창정은 하얗게 질린 창백한 얼굴을 돌려 진서준에게 말했다.“김평안 씨, 차라리 이 대결을 포기합시다. 산을 남겨두면 언젠가 땔감을 얻을 기회는 또 있어요.”해리스도 이렇게 깔끔하게 당했는데 사급 대종사 경지에 불과한 김평안은 상대가 되기엔 턱도 없이 부족했다.대표팀 사람들은 김평안이 링에 올라가 봤자 고필두의 참격을 한 방도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하지만 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걱정 마세요, 난 내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고필두의 실력이 확실히 대단한 건 맞지만 지금 그는 온몸의 힘을 거의 다 고갈한 상태였다.아까 열세 번의 검광은 고필두 체내의 모든 강기를 거의 다 소모했다.지금 진서준이 이런 상태의 고필두를 이기는 건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서둘러 주세요. 해리스 씨를 구해야죠.”엘리사도 정신을 차리고 즉시 자기 황실 친위대에게 해리스를 구하라고 지시했다.고필두는 해리스를 죽이진 않았다. 해리스가 용란 황실의 친위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필두가 진짜 해리스를 죽이기라도 했다면 용란의 적대감을 살 게 분명했다.누가 섬나라의 진정한 적인지 고필두는 구분할 줄 알았다.하지만 고필두는 자기가 이 필살기를 보이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기권할 것 같아서 내심 두려웠다.이런 밥맛 떨어지는 상황은 무조건 피하고 싶
“해리스도 만만치 않네. 강기를 사용해 고필두 요검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걸 보니 해리스도 대단한 실력이야.”“누가 이기든지 간에 다음 경기에서 우리가 질 게 뻔하구나.”누군가 한숨을 내쉬며 신세를 한탄했다.해리스와 고필두가 이렇게 강력한 모습을 보이자 아무도 자국 팀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주로 대한민국 대표팀 안에는 눈에 익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대표팀 팀원들의 실력을 보니 솔직히 대종사 경지에도 못 미칠 것 같았다.대종사도 아닌 무인이 링에 올라가 저 두 사람과 대결하면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엘리사는 해리스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을 보자 드디어 안심하며 긴장하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긴장이 풀린 엘리사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김평안 씨, 해리스 씨가 무조건 진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해리스 씨가 지금 이 섬나라 검객과 절대 밀리지 않는 상태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잖아요.”진서준은 그 말에 평온하게 대꾸했다.“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곧 알게 될 겁니다.”곧 알게 된다니, 엘리사는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엘리사의 눈에 지금 기세가 절정 상태인 해리스가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쿵!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필두와 해리스가 각각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어느새 단단한 강철로 만든 링 위에는 검에 베인 자국이 수백 개 생겼다.이 검에 베인 자국들은 전부 고필두의 검기가 스쳐 지나간 후 생긴 것이었다.“애들 소꿉장난은 여기까지야.”말을 마친 고필두는 링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그 후 링 위에는 고필두의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고 마치 수많은 고필두가 링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 장면을 본 해리스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자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해리스의 근육이 갑자기 급격히 부풀어 오르며 매끈한 정장을 단번에 찢어버렸다.한 줄기 강기가 해리스의 상반신을 감싸고 있었고 햇빛 아래서 해리스는 금빛으로 보호받고 있는 듯했다.“고필두가 광자 참격을 쓸 것 같군.”
모든 사람은 숨을 죽이고 링 위에 서 있는 해리스와 고필두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두 사람의 대결 중 하이라이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김평안 씨, 해리스가 정말 고필두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건가요?”호창정은 여전히 믿기 힘들어했다.해리스는 육급 대종사였고 반면에 고필두는 사급 대종사에 불과했다.검수는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하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단계 대종사라는 큰 격차가 있었다.이 두 단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냥 조용히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진서준은 추가 설명 없이 해리스와 고필두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사회자가 시작 신호를 알리자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선공이 강하다는 말은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수 사이의 대결에서 일반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자가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일단 빈틈이 보이면 패배할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관중들이 슬슬 지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날카로운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주위의 몇몇 검을 지닌 무인들은 자기 검이 방금 그 검 소리에 맞춰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고필두가 쥐고 있는 장검은 매미 날개처럼 얇았고 차갑고 섬뜩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고필두는 단순히 검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겼다.“삼촌, 삼촌이 이 섬나라 사람과 대결한다면 누구 검술이 더 강할까요?”관중석에서 조민영이 궁금한 눈빛으로 조기강을 바라보며 물었다.조태희와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야 했던 조민영은 조기강에게 국제 무도 교류 대회를 보러 가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탁했다.조태희는 결국 조민영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대신 대회가 끝난 후 조기강과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고필두 실력은 내 아래야.”조기강은 고필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조기강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민영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대한민국, 섬나라, 그리고 용란의 대표팀 팀장들은 올라와서 마지막 추첨을 진행해 주세요.”나머지 세 팀 중 두 팀이 대결하니 나머지 한 팀은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할 판이었다.호창정은 마음속으로 공석에 걸리기를 조용히 기도했다.동시에 해리스가 고필두를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진서준이 살아남을 희망이 있었다.추첨을 받은 순간, 호창정의 손은 바르르 떨렸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음? 또 부전승이네.”3번을 뽑았을 때, 호창정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섬나라의 그 팔자수염 남자가 호창정의 3번 추첨을 보고 비웃었다.“너희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런 더러운 짓밖에 못 하나 보구나.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결승에서 만날 거니까. 너희가 결승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팔자수염의 말에 호창정은 얼굴이 화끈해졌고 목이 바짝 말랐다.“당신들 대한민국 운이 참 좋군요.”해리스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한판 대결도 안 치르고 그대로 결승에 진출하다니, 하늘이 선택한 운명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암암리에 어떤 뒷거래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어찌 됐든 해리스의 목표는 달성됐다.섬나라의 이 검존과 아무런 걱정도 없이 정식으로 대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경성에는 10명 이상의 용란 황실 경호원이 지금 주둔하고 있다.해리스가 심하게 다치더라도 엘리사를 혈수사의 손에서 지킬 수 있었다.“김평안 씨, 또 부전승이에요, 대박이에요.”호창정이 자리로 돌아와 격앙된 어조로 외쳤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미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해리스가 대결을 위해 링에 올라가려 할 때 진서준은 몸을 돌려 한마디 했다.“투항해야 할 때는 깔끔하게 투항해. 괜히 버티다가 목숨 잃는 짓 하지 마.”해리스는 그 말에 화를 내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고필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똑똑히 잘 들어, 나 해리스 사전엔 투항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아. 우리 용란 황실 경호대 명예에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