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원단을 써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우리 넷이 저 자식을 이길 수는 없어.”변정선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폭원단을 복용하면 단기간에 네 사람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네 사람은 원래 대성 종사라서 폭원단을 사용하면 아마 선천 대종사와 실력이 엇비슷해질 것이다.그러나 폭원단을 쓰면 큰 부작용이 있었다.예전에 유혁수가 그것을 복용했을 때 순식간에 30살 넘게 늙었다.“폭원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오늘 저 자식을 죽여야 해!”네 사람은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폭원단을 꺼냈다.권해철은 상황을 보다가 서둘러 진서준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진 마스터님, 절대 저들이 폭원단을 복용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진서준은 그들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차갑게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폭원단을 복용한 뒤 예준섭 일행은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스무 살 넘게 늙은 것 같아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처럼 보였다.허약하고 무기력했던 그들의 몸이 다시 전성기로 돌아왔다. 전성기보다 더 좋으면 좋았지 못하지는 않았다.쿵!폭발음과 함께 함영식은 자신의 갈혈도를 들고 빠르게 움직였다. 기세가 전보다 훨씬 더 강했다.“네 피로 이 칼을 물들이겠어!”함영식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칼보다 50cm는 더 긴 듯한 붉은색 도강이 진서준을 향해 덤벼들었다.권해철은 참지 못하고 창백해진 얼굴로 몸서리를 쳤다.“혈운 조직이 이렇게 악랄할 줄이야!”네 사람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진서준을 죽이려고 했다.마지막에 폭원단을 복용한 변정선은 한 번에 폭원단 세 알을 삼켰다.그의 실력은 폭원단으로 인해 선천 대종사와 엇비슷한 수준이 되었다.이렇게 무시무시한 진영이라면 선천 대종사라고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진서준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담청색의 영기가 그의 두 손을 뒤덮었고 함영식의 두 칼을 가볍게 두드렸다.눈 깜짝할 사이에 함영식의 공격이 해결됐다.그러나 나머지 세 사람이 진서준을 에워쌌다.자신
진서준이 날아가는 순간 권해철 등 사람들은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허윤진은 미친 사람처럼 진서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무너진 대전을 향해 달려갔다. “진서준 씨, 진서준 씨! 절대 죽으면 안 돼요!”허윤진은 마음이 아파 눈물을 줄줄 흘렸다.진서준이 정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진서준과 함께 죽을 생각이었다.변정선 등은 악랄한 표정을 지었다.“이것이 바로 네가 잘난 체한 결과야. 우리 넷이 폭원단을 먹으면 진정한 선천 대종사라고 해도 우리 손에 죽게 돼 있어. 오늘 너희를 같이 지옥으로 보내주지. 길동무가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거야!”퍽!허윤진이 반쯤 달려갔는데 폐허더미가 갑자기 폭발했다.진서준이 폐허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서준 씨가 무사할 줄 알았어요!”허윤진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났고 몸도 덜덜 떨렸다.“아직 살아있다고?”변정선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변정선은 온 힘을 다해 발차기를 날렸다.폭원단을 무려 세 알이나 복용했기 때문에 그 위력이 선천 대종사가 사력을 다한 일격보다 절대 약하지 않을 것이었다.“이렇게 쉽게 죽지 않을 줄 알았어.”예준섭은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넌 오늘 반드시 죽게 될 거야!”함영식과 하신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무기에서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진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의 등 뒤에 남았던 상처는 혈기의 작용 덕분에 서서히 사라졌다.조금 전 예준섭 일행과 근접전을 펼치면서 진서준은 영기를 쓰지 않고 조금 전 응집해 둔 혈해의 기운을 썼다.진서준은 영기와 비교했을 때 혈해가 훨씬 더 위력이 약하다는 점을 발견했다.조금 전 영기로 몸을 보호했다면 절대 함영식의 발차기에 상처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혈해의 기운 덕에 진서준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많아졌다.앞으로 정말 강적을 만나게 된다면, 영기를 다 소모한 상태에서도 혈해의 기운을 사용하여 상대와 육탄전을 벌일
변정선의 발밑으로 갑자기 약 30cm 깊이의 둥근 구덩이가 생겼다. 그는 마치 독수리처럼 날쌘 몸짓으로 진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변정선의 발밑에서 강기가 넘실거렸는데 당장이라도 응집되어 실체를 가질 듯했다.조금 전 그가 시전한 공격보다 더욱 무시무시했다.독수리의 울음소리는 완전히 무장한 탱크 같았고 변정선은 곧장 진서준에게 덤볐다.그의 아래 있던 함영식은 혹시라도 변정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까 봐 발을 구르며 빠르게 움직였다.공중에 있는 독수리를 보고도 진서준은 표정이 평온했다. 마치 중생을 바라보는 선인처럼 그의 표정에서는 슬픔도 기쁨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한 손으로 검을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등 뒤로 가져갔다.체내의 장청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천문검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이때 천문검 전체가 밤하늘처럼 되었는데 한 줄기 푸른 빛이 검 위를 맴돌고 있었다.독수리가 내려오기 직전, 진서준이 움직였다.그의 눈동자에는 별이 떠 있는 것만 같았다.검이 울부짖으면서 소리를 냈다.틱!검날이 독수리의 발톱과 부딪치면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다음 순간, 변정선의 다리에 있던 강기가 흩어졌고, 진서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변정선의 당황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곧 검이 마치 바람처럼 변정선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죽기 직전까지 변정선은 진서준이 자신의 사력을 다한 공격을 명검으로 수박을 자르듯이렇게 쉽게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도관 안에 흩뿌려졌다.그 광경에 진서준을 향해 달려들던 함영식은 넋이 나갔다.“폭원단을 세 알이나 먹은 변정선이 이렇게 쉽게 죽다니!”“정말 무시무시한 공격이었어!”사람들은 믿기 어려운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반대로 검도를 위주로 수련한 예준섭은 얼굴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검의를 깨우쳤다니!”화진 전체를 아울러봐도 검의를 가진 자는 적어도 선천 대종사였다.평생 수련한 예준섭도 이제야 겨우 문턱을 넘었을 뿐, 검의를 장악하려면 한참 모자랐다.그러나
모든 것이 고요했다.호흡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아직 살아있는 권해철 등 사람들은 경외와 숭배 가득한 눈빛으로 대전 앞에 우뚝 서 있는 진서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허윤진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든 걱정이 이 순간 사라졌다.“서준 씨가 이겼어. 서준 씨가 이겼어...”25세 나이에 혈운 조직의 대성 종사 네 명을 연달아 죽였다.이러한 성과라면 진서준은 화진 무도계에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보운산에서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몇 명밖에 없었다.허윤진은 아무데나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것이고 권해철도 마찬가지였다.괜히 말을 퍼뜨렸다가 혈운 조직의 사람들이 계속해 진서준에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진서준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천경문 사형제 네 사람은 더더욱 소문을 낼 생각이 없었다. 소문을 낸다면 화령문의 체면이 깎이게 될 테니 말이다.화령문 제자들이 혈운 조직 종사들에게 학살을 당했다.비록 장로 몇 명은 살아남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화령문은 분명 줄곧 비웃음당할 것이다.“우리 문파 제자들을 위해 복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천경문은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의 상처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진서준의 앞으로 가서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다른 장로들도 서둘러 다가와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구해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권해철은 허리를 깊게 숙였다. 머리가 다리에 닿을 정도로 말이다.“저한테 감사할 필요 없어요. 이 일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저한테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죠.”진서준은 서둘러 손을 저으며 바닥에 가득한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실 많이 괴로웠다.만약 혈운 조직 사람들을 일찍이 발견했더라면 절대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나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진서준 씨, 얼른 가서 누렁이 좀 봐줘요. 누렁이 아직 저기에 파묻혀 있어요.”허윤진이 달려와서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바위 아래 파묻
진서준은 허윤진이 뽀뽀했던 곳을 만지작거리면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화령문 뒷산.오장로는 이때 그의 사부가 있는 석동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도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오장로의 사부는 아직도 폐관 중이었기에 혹시라도 그에게 방해가 될까 봐 오장로는 감히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해가 저물 때쯤이 되어서야 한 사람이 동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동안이지만 머리가 하얬고 걸음이 가벼우며 걸을 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흰색 긴 옷을 입은 그에게서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사부님!”노정명을 본 오장로가 크게 외치면서 곧바로 다가가서 예를 갖췄다.“알고 있다. 호산대진이 파괴되었지.”노정명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호산대진이 파괴되었을 때 노정명은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그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는 중요한 단계에 놓여 있었기에 출관할 수가 없었다.다행히도 오늘은 날이 저물기 전에 다행히도 새로운 경지에 이르러 영선경 1품이 되었다.“얼른 사문으로 돌아가자.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나.”노정명은 불안한 마음으로 저 멀리 있는 도관을 바라보았다.그는 도관 상공에서 붉은색의 살기가 떠다니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두 사람은 빠르게 움직여 30분 만에 도관 후문에 도착했다.이때 도관 안에서는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설마 도적놈이 도관을 태우려는 걸까요?”그 광경에 오장로는 깜짝 놀랐다.“아니, 피비린내가 나는구나. 그것도 아주 짙은 피비린내가.”노정명은 재빨리 도관 안으로 들어갔다.도관 안에 들어선 노정명은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관을 바라보았다.웅장하던 대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 폐허 앞에는 사람 몇 명과 산 아래서 지내는 짐승이 서 있었다.발소리를 들은 천경문 등 사람들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사부님!”노정명을 발견한 천경문은 서둘러 그를 맞이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어떻게 된 일이냐? 도관이 왜 이 모양이 된
노정명의 시선이 진서준의 허리춤에 있는 천기 옥패로 향하는 순간, 노정명은 흠칫하면서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 빛은 곧 사라졌고 노정명은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진서준은 노정명의 표정 변화를 전부 눈에 담았다. 그는 내심 기뻐했다.“우선 제자들의 시체부터 처리해. 난 이분과 나눌 얘기가 있다.”노정명이 갑자기 말했다.권해철은 순간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노정명이 진서준을 공격하려는 건 줄로 알았다.“사부님, 이 일은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탓하려면 저를 탓하세요!”노정명은 차갑게 호통을 쳤다.“내가 언제 손을 쓰겠다고 했니? 넌 어서 떠나. 잠시 뒤에 너와 결판을 낼 거다.”천경문 등 사람들은 조금 의아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정명의 명령이었기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어서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윤진 씨, 윤진 씨는 누렁이의 상처부터 살펴봐요.”진서준이 갑자기 허윤진에게 말했다.“네, 조심해요.”허윤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힐끗 본 뒤 몸을 돌려 떠났다.“노정명, 각주님을 뵙습니다!”노정명은 진서준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말했다.진서준은 조금 전 노정명의 작은 변화를 보았었다. 노정명도 아마 천기각의 사람일 테니 놀랄 건 없었기에 진서준은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예의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노정명은 허리를 편 뒤 공손하게 물었다.“각주님, 구창욱 씨 몸은 어떠십니까?”“어르신이요? 아주 정정하십니다.”구창욱이 감옥에서 술을 마시고 닭고기를 먹던 모습을 떠올린 진서준은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감옥에서 그렇게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구창욱이 유일할 것이다.“저희 사부님과는 어떻게 아시게 된 겁니까?”진서준이 노정명을 바라보며 물었다.“저와 구창욱 씨는 수십 년 전 알게 되었습니다.”노정명은 계속해 설명했다.“저도 구창욱 씨의 가르침을 받아서 이 정도 실력을 얻게 된 겁니다. 2년 전 구창ㅇ욱 어르신께서는 직접 화령문에 온 적도 있습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안색이 달라
“금지 구역 내부에는 구창욱 씨가 직접 설치한 진법이 있습니다. 그걸 파괴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진서준도 노정명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일단은 하루 쉬고 다음 날 다시 가보려고 했다....서울 허씨 일가 별장.“아줌마, 서라 씨 평소 집에 늦게 들어오나요?”허사연은 조희선을 바라보았다.“아니, 평소에는 별로 외출하지 않아. 외출한다고 해도 날이 저물기 전에는 꼭 돌아와.”조희선도 이상함을 느꼈다.이미 저녁 열 시가 되었는데 진서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아줌마, 서라 씨 언제 별장을 떠났죠?”허사연이 물었다.“네 시쯤이었던 것 같아.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전화를 받더니 급하게 나가더라고.”조희선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설마 서라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건 아니겠지?”진서준은 오늘 떠났다. 만약 진서라가 오늘 위험에 처한다면 조희선은 진서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아줌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 진서라 씨를 찾아보라고 할게요!”허사연은 곧바로 강성철과 도진수에게 연락하여 진서라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했다.동시에 허사연은 회사 사람들까지 동원했다.하지만 이때 진서라는 이미 서울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유지수가 파견한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서라야, 오랜만이야.”두 사람은 유지수의 별장에서 만났다.당시 유지수와 진서준이 연애할 때 진서라와 유지수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고 진서라는 유지수를 굉장히 존경했었다.앞으로 그녀의 올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진서준이 유지수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유지수는 진서준이 감옥에 간 뒤로 곧바로 그와 헤어지고 이지성과 만났다.현재 진서라는 유지수가 죽도록 미웠다.“유지수 씨, 절 놓아주는 게 좋을 거예요. 우리 오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 큰일 나요.”진서라는 유지수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진서준은 서울에 있지도 않은데 네가 납치당한 걸 어떻게 알겠어?”유지수는 웃으며 말했다.
서울 병원 안.부시장 서정훈은 심해윤과 함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응접하고 있었다.서정훈과 심해윤 두 사람이 직접 응접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신분이 간단치 않을 것이었다.“남 선생님, 저희 못난 아들 꼭 잘 치료해 주십시오!”서정훈은 남경석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했다.“서정훈 씨,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의사로서 당연한 일인데요.”남경석은 덤덤히 웃었다.서정훈과 심해윤은 매우 기뻤다. 그들은 진서준처럼 좋은 신의를 또 만났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어진 남경석의 말에 두 사람은 당황했다.“하지만 저희 성약당에는 치료를 하면 반드시 치료비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전 성약당의 장로지만 장로인 저도 그 규정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남경석은 태연하게 말했다.“선생님 말씀대로 제가 두둑이 준비해 놓겠습니다.”서정훈은 그 말에 사실 굉장히 불쾌했다.사람을 치료하기도 전에 돈부터 달라니.그러나 병원을 생각해 보면 꽤 일리 있는 것 같기도 했다.“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 선물을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서정훈은 곧바로 비서에게 연락하여 예전에 샀었던 비싼 술과 미리 준비해 둔 6,000만 원을 가져오라고 했다.6,000만 원이면 두 사람의 몇 년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이내 비서가 도착했다.“남 선생님, 이 술은 제가 삼십 년 넘게 소장한 술입니다. 엄청 비싼 술은 아니지만 보기 드문 술입니다. 그리고 이건 진료비입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서정훈은 그것들을 남경석의 앞에 놓았다.남경석은 볼품없어 보이는 선물을 보더니 표정이 바로 달라졌다.“서정훈 씨, 저희 성약당의 규칙을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그 질문에 서정훈은 당황했다.그는 성약당의 규칙을 정말로 몰랐다. 심지어 성약당이라는 것도 부영권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모릅니다. 제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서정훈이 말했다.남경석은 말은 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그 손가락을 본 순간
“저 녀석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명주시를 떠날 생각인가?”황예은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대표님, 계속 따라갈까요?”비서의 질문에 황예은은 바보를 쳐다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곳 사람이 이렇게 적은데 굳이 진서준에게 들킬 일 있어?”비서는 그제야 자기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차 안에서 기다려.”진서준은 공항에서 거의 세 시간을 기다렸고 오랜 기다림의 끝에 마침내 바이올렛의 비행기가 도착했다.“넌 왜 따라왔어?”진서준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 허윤진을 보고 의아해했다.“내가 왜 못 오지?”허윤진은 눈을 굴리며 말을 이었다.“혹시 내가 오면 네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래?”진서준은 어이없어 말문이 막혔다.“전에 말했잖아, 명주시는 안전하지 않다고.”“괜찮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윤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서준의 팔을 끌어안으며 자기 품에 밀어 넣었다.진서준은 얼굴색이 살짝 변하며 급히 벗어나려 하자 허윤진은 오히려 더 꽉 안았다.어쩔 수 없이 진서준은 허윤진의 팔을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바이올렛은 주위를 경계하며 살폈다.“다른 곳에서 얘기하자. 여기 사람 많아.”“따라와.”진서준은 두 사람을 주차장으로 안내했다.차 안에서 잠시 졸고 있던 황예은은 진서준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벌떡 자세를 고쳐 앉았다.“세상에, 저 남자가 여자 두 명 데리고 왔네요. 그중 한 명은 심지어 서양 여자네요.”비서는 이 장면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그래서 아까 대표님이 물어봤을 때 저 남자가 제대로 대답을 안 했던 거구나.’비서는 진서준과 함께 온 두 여자가 분명히 진서준과 그렇고 그런 관계일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진서준이 양쪽에 여자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황예은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더 큰 감정은 서글픔이었다.황예은도 자기 솔직한 감정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황 대표님, 불륜 현장을 잡으러 가시는 건가요?”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말을 듣자 황예은
한바탕 소동 끝에 황예은의 얼굴 양옆이 홍조로 물들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온몸에 진한 향기와 땀이 배어 침대 시트엔 큰 자국이 남았다.항상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만 보이던 황예은이 지금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원망과 수줍음이 섞여 있었다.진서준조차도 조금은 머리가 띵한 기분이었다.어젯밤에 약 바를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이런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런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보니 마치 진서준이 황예은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가장 중요한 건 옆에 있는 비서가 사냥감을 보는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정확히 말하면 비서는 진서준이 아니라 진서준의 손에 들고 있는 약을 보고 있었다.이 세상에 더 예쁘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걸 원하지 않는 여자는 있을 수 없었다.그런 마치 남자라면 누구나 다 자기 소중한 부위 사이즈가 늘어나길 원하는 것과 똑같은 도리였다.“왜 아직도 안 나가?”황예은은 돌아누우며 이불을 당겨 몸을 가렸다.이번에 약을 발라줄 때, 진서준은 모든 것을 다 본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거의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이유는 단순했다. 상처 두 곳 중, 하나는 가슴 아래쪽에 있었고 또 한 곳은 허벅지 안쪽에 있었다.진서준이 이 약은 내가 발라야 효과가 있다고 단언하지 않았다면 황예은은 절대로 진서준에게 이런 일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어젯밤, 진서준이 자기 알몸을 만졌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황예은의 얼굴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진서준도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살짝 죄책감을 느끼며 방을 나갔다.10분쯤 지나자 황예은이 방에서 나왔다.황예은은 새로운 검은색 정장으로 갈아입었지만 한 가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황예은의 눈부신 가슴 라인은 절대 새 정장으로 가려지지 않았다.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황예은의 얼굴에는 더 이상 수줍은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고 차갑고 도도한 표정만 남았다.“네 상처는 이제 다 치료했어. 다른 일이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황예은이 사무실에
“네, 알겠습니다.”비서는 벗은 옷을 다시 주워 입기 시작했다.비서가 옷을 다 입자 황예은은 진서준을 방으로 불렀다.가운은 황예은의 풍만하고 매혹적인 몸매를 전혀 감출 수 없었다.그 몸매를 슬쩍 본 진서준은 아랫도리에서 불타는 느낌이 솟기 시작했다.“젠장,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지?”진서준은 속으로 자기를 욕하고 곧바로 청심주를 속으로 읊었다.다행히 그 불타오르는 욕망이 곧바로 내려가기 시작했다.“먼저 등 쪽부터 처리하자.”진서준은 평온하게 말했다.황예은은 침대에 엎드려서 수건을 천천히 허리까지 내리며 그녀의 부드럽고 윤기 나는 등을 드러냈다.황예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서준은 이전에 목욕탕에서 목욕할 때, 그곳 직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이렇게 좋은 등을 보면 컵 마사지를 해주지 않으면 아쉽죠.”비서는 세 가지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봤다.긴장함과 호기심 그리고 부끄러운 세 가지 감정이었다.비서는 진서준과 황예은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이런 방식으로 즐기는 건 비서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진서준은 손가락에 약을 묻혀서 황예은의 상처 부위에 가볍게 눌렀다.“으윽!”황예은은 순간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며 신음을 냈다.약이 아픈 게 아니라 너무나 차가워서였다.마치 한겨울 눈이 내리는 날, 갑자기 누군가 목에 눈 뭉치를 던져 넣은 것처럼 너무나 차가웠다.이건 혹시 특별한 애무 방식인가?비서는 여전히 의심을 가득 품고 또 엉뚱한 생각을 했다.황예은의 등에는 상처가 두 군데 있었다. 진서준은 약을 발라준 뒤, 손바닥으로 고르게 그녀의 등을 문지르며 약을 완전히 흡수시켰다.그러자 황예은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진서준이 이 틈을 타 자기를 추행하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생겼다.“다른 곳엔 상처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그러자 진서준이 천천히 설명했다.“이 약은 네 몸에 좋은 거야. 피부가 더 부드럽고 매끄러워질 거야.”어떤 여자도 피부가 더 하얗고 탄력 있게 변하는 걸 원하지 않을 수
“진! 서! 준!”황예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빨개졌고 그녀의 눈에서는 화가 치솟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만약 사무실에 두 사람만 있을 때 진서준이 이런 말을 했다면 황예은은 이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비서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진서준이 갑자기 옷을 벗으라는 건 일부러 자기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 아니겠는가?황예은은 자존심이 극도로 강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급하게 해명을 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비서에게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으면 아마 다음 날에는 회사뿐만 아니라 명주시 전역에서 황예은이 남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분노가 가득한 황예은을 보자 진서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황예은의 예상대로 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왜 소리쳐? 등 뒤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겠다면 난 그냥 가겠어.”진서준은 말을 마친 후, 황예은이 망설일 틈도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바로 나가려 했다.옆에 있던 비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두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자극적으로 놀았기에 등 뒤에 상처까지 생긴 거지?평소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황 대표가 이렇게 야생마처럼 열정적인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황예은은 비서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것이다.“기다려!”황예은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날 따라와.”황예은은 차갑게 말한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무실을 나가려던 순간, 황예은은 다시 돌아서서 비서에게 말했다.“너도 함께 와.”황예은은 굳이 구구절절 해명하고 싶지 않았고 설령 해명한다고 해도 비서가 믿을지 의문이었다.그래서 황예은은 비서가 직접 보고 알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또한, 비서가 함께 있으면 진서준도 도가 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비서는 그 말에 당황해하더니 급히 말했다.“황 대표님, 저도 같이 가는 게 적절할까요?”비서는 이곳에 일하러 온 것이지 그런 일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비서가 황예은이라는 여성 상사와 함께
그리고 왜 굳이 대한민국으로 도망쳤는지 그 이유는 단순했다.대한민국에는 국안부가 존재해 그 사람들이 함부로 소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게다가 대한민국에는 진서준이 있었다.“용란 혈수사들이 재난을 겪었다고?”진서준은 멈칫하더니 눈빛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전에 바이올렛은 용란 혈수사 집단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실력은 매우 강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게다가 그들 중에는 지선 급의 존재도 하나 있었다.이렇게 강력한 혈수사 집단이라면 해외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조직은 별로 없을 것이다.“맞아, 넌 어디 있어?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난 지금 명주시에 있어. 도착하면 전화해, 마중 나갈게.”진서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휴대폰을 허사연에게 돌려준 후 바이올렛은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기다려요, 옷 좀 갈아입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한테 눈에 띄지 않을 거예요.”허사연이 바이올렛을 말렸다.처음에는 바이올렛의 신원을 확신하지 못했으나 이제 바이올렛이 진서준의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허사연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고마워요.”바이올렛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탈출하는 길에 실제로 많은 현지 경찰들이 바이올렛을 추적했지만 다행히 바이올렛의 속도가 빨라 도망칠 수 있었다.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바이올렛은 허사연과 작별을 고하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기다려요, 나도 같이 갈 거예요.”허윤진이 작은 가방을 메고 나왔다.“너 뭐 하러 가는 거야?”허사연은 허윤진을 제지하려고 했다.“당연히 이분한테 길을 알려줘야지, 길이라도 않으면 어쩌려고 그래?”허윤진이 당당하게 대답했다.길을 안내하는 것은 그저 구실일 뿐, 사실은 바이올렛을 감시하려는 목적이었다.비록 바이올렛이 47세였지만 외모만 봤을 때 그녀의 성적 매력은 이 여자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다.아까 속옷을 갈아입을 때, 허사연은 본인이 입을 수 있는 가장 큰 사이즈를 꺼내야 겨우 바이올렛이 입을 수 있었다.이런 여자라면 나이가 47이든 57이든 여전히 예쁘고
이 여성은 온몸에 피가 묻은 서양인이었다.시퍼런 대낮에 피범벅이 된 사람이 갑자기 집 앞에 나타나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허사연도 마찬가지였다.게다가 별장 안에는 평범한 일반인인 진서라와 조희선도 있었다.만약 그 둘이 사고라도 당한다면 허사연은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 것이다.“멈춰요!”상대방이 들어오려 하자허사연은 큰 소리로 외치며 제지했다.누렁이와 하얀이도 즉시 달려와 허사연 앞에 서서 이 서양 여성에게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그 여자는 이 두 작은 동물을 보자 발끝에서 알 수 없는 냉기가 솟구쳐 올랐다.여자는 눈앞에 있는 이 온순해 보이는 동물이 자기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난 진서준을 찾으러 왔어요.”여자가 서둘러 이곳에 온 이유를 털어놨다.“당신은 누구예요? 왜 진서준을 찾으려 하죠?”허사연은 전혀 긴장을 풀지 않고 경각심을 높이며 물었다.이때 집 안에서 김연아와 허윤진이 별장 밖 소리를 듣고 나왔다.“내 이름은 바이올렛이고요, 진서준과 친한 친구예요.”이 서양 여성은 바로 얼마 전에 대한민국을 떠난 바이올렛이었다.바이올렛이 피범벅이 되어 여기 나타난 건 용란의 혈수사들이 전멸당했기 때문이었다.“왜 진서준이 당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죠?”허사연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믿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김연아와 허윤진도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진서준이 바이올렛을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혹시 진서준이 외국에서 찾은 애인 아닐까?”허윤진이 갑자기 합리적인 추측을 꺼냈다.“요즘 남자들은 전부 어디서나 제멋대로 씨앗을 뿌리는 놈들이잖아.”허사연은 그 말을 듣자 허윤진의 머리를 툭 쳤다.“서준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바이올렛도 재빨리 해명했다.“난 진서준의 애인이 아니에요. 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에요. 이번에 진서준을 찾은 이유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알리려고요.”“잠깐만요, 전화해서 확인할게요.”허사연은 휴대폰을 꺼내어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내게 부탁할 준비가 됐거나, 아니면 네 동생이 부탁할 준비가 되면 그때 내가 도와줄게.”“부탁할 준비는 안 됐지만 네가 원하는 것 하나는 들어줄 수 있어.”황예은의 말은 남자에게 충분히 상상할 여지를 주는 말이었다.진서준은 그 말에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황예은을 바라보았다.“내가 뭘 원하든 다 들어준다고?”“물론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말이야.”황예은의 시선은 차갑게 변했다.황예은은 동생을 구하려고 굳이 몸을 팔 정도까진 가고 싶지 않았다.“내가 딱 과한 걸 원한다면 어쩌려고?”진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진서준은 항상 도도한 모습만 보여주는 여자의 성격을 고쳐주고 싶었다.적어도 진서준 앞에서 이렇게 거만한 자태를 유지하는 꼴은 용납할 수 없었다.그러자 황예은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서지은 알게 돼도 괜찮다면 난 받아들일 수 있어.”그 말에 진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불쾌한 목소리로 따졌다.“날 협박하는 거야?”“아니,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황예은의 눈에는 작게나마 승리감이 어려 있었다.황예은은 이 방식으로 진서준이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짝!갑자기 조용한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렸다.황예은의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당혹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지배했다.황예은은 진서준이 갑자기 자기 엉덩이를 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진서준은 손을 거두지 않고 여전히 황예은의 엉덩이 위에 놓았다.“난 협박당하는 걸 가장 싫어하거든.”황예은은 이를 악물며 분노를 삼켰다.“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하지만 대답 대신 진서준의 손은 다시 한번 내려쳤다.짝!귀에 익은 소리가 또 울려 퍼졌다.“당연히 알지. 네 엉덩이를 또 치고 있잖아.”진서준은 엉덩이를 치고 나서 태연하게 한 마디 던졌다.황예은의 얼굴은 이제 빨간색을 넘어 거의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인간쓰레기!”황예은의 욕설에 진서준은 다시 한번 손을 올렸고 이번엔 더욱 강하게
황현호는 자기가 이번 일을 정말 어리석게 처리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이 하찮은 경호원 따위가 자기를 욕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한낱 경호원 따위가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감히 날 욕해?”황현호는 진서준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지금 당장 사과해. 아니면 너 그냥 자를 테니까!”그때 황예은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진서준 말이 맞아.”“누님, 왜 이 경호원 편을 드는 겁니까?”황현호는 이 상황이 정말 억울했다.황예은 친동생인 자기가 정말 한낱 경호원보다도 더 못한 존재란 말인가?황현호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그때, 진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박진강이 너한테 가르쳐준 그 무도는 더 이상 배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며칠 지나면 네가 죽을 거니까.”진서준이 자기가 죽는다고 저주하자 황현호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뭐라고? 뭔 개소리야?”황현호는 진서준에게 다가가서 그의 옷깃을 움켜잡으려 했다.하지만 손목이 반쯤 닿자마자 진서준은 손으로 황현호의 손목을 단번에 잡았다.“아야, 아야! 놔, 이거 놔!”황현호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믿든 안 믿든 네 맘대로 해, 어차피 죽는 건 너니까 나랑 상관없어.”진서준은 손목을 툭 치며 그를 밀쳐냈다.강력한 힘에 황현호는 휘청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결국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황현호는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황예은은 진서준이 진지하다는 걸 알아챘다.진서준의 용존 봉호는 가짜가 아니었고 어젯밤 진서준은 그의 뛰어난 의술을 보여주기도 했다.“진서준, 내 동생 살릴 수 있어?”황예은이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진서준은 간단하게 대답했다.“살릴 수 있어.”“그럼 살려줘.”황예은이 짧고 단호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너 지금 그게 사람에게 부탁하는 태도야?”거만한 태도로 자기에게 누군가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보기는 진서준도 처음인 것 같았다.“누님, 부탁하지 마세요. 저 녀석 분명 헛소리하는 거예요.”황현호도 사실
“저년 운이 정말 좋네. 열 명이 넘는 총잡이가 덤벼도 못 죽이다니.”임동식의 눈에는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동식 형님, 이번에 저 여자를 못 처리했으니 다음엔 더 어려워질 겁니다...”“저 여자가 데려온 그 경호원은 보통 인물이 아니던데요. 박진강조차 그 경호원 상대가 되지 않았잖아요.”“그래서 이번엔 철저히 준비했어. 어제 이미 동남아 킬러 업계에서 유명한 킬러인 독룡에게 연락했어. 이틀 후면 명주에 도착할 거야.”임동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독룡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자리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혹시 그 국제적으로 돈 많은 부자 열댓 명을 죽인 적 있는 부자 킬러 말씀입니까?”“맞아.”임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킬러를 고용하는 건 호랑이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꼴 아닙니까? 제가 듣기로는 과거 그 킬러가 단지 고용주가 심기를 건드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고용주까지 죽인 적도 있다던데요?”자리에 있던 한 노인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런 살인마와 협력하는 건 사실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임동식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큰 파도를 헤쳐야 큰 물고기를 얻는 법이야. 위험이 없다면 내가 굳이 그 킬러를 부를 이유도 없었겠지.”임동식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끌끌 찼지만 속으로는 두려움도 컸다.독룡이 폭주해 임동식까지 죽여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물론, 임동식이 죽는다면 그들에겐 대표이사 자리를 노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그러나 다들 방금 나눈 대화가 이미 황예은의 사무실에서 황예은이 전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황예은은 회의실에 미리 설치해 둔 감시 장비 덕분에 대화를 전부 녹음하고 있었다.“젠장! 어젯밤 총잡이들이 이놈들 짓이었다니!”황현호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누님, 지금 당장 가서 이놈들 전부 죽여버릴게요.”“앉아.”황예은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지금 만약 임동식 일당을 죽이려 했다면 굳이 황현호가 나설 필요도 없이 황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