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식 혼자 해외에 보내도 나쁠 건 없어. 여기 있어봤자 계속 소란을 피울 거야. 이번에 허성태와 당신 덕분에 저놈이 고자가 되는 신세를 면한 거야. 우리 서씨 가문은 대체 뭘 잘못한 거야? 어떻게 이런 불효자식이 태어날 수가 있어?”서정훈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서정훈과 아내는 타고난 천재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신분도 높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엘리트라고 할 수 있었다.그런데 서현욱은 왜 이런 꼴로 사는 걸까?서정훈 부부는 서현욱의 교육에 심혈을 전부 퍼부었지만 자식 농사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그만해요, 화 좀 풀어요. 이따가 서준이 나오면 제대로 고맙다고 전해야죠.”심해윤이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어떻게 고맙다고 전할 건데?”서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서준은 돈도 부족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도 우리보다 훨씬 높아. 우리가 과연 어떻게 감사하다고 말해야 해? 우리 집이 서준에게 진 빚은 아마 평생 갚지 못할 거야.”서정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서정훈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지금 돈도 부족하지 않았고 직급도 서정훈보다 훨씬 높았다.돈과 권력으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솔직히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그건 맞는 말이에요..”심해윤도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둘이 고민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병실에서 나왔다.“서준아, 어떻게 됐어?”심해윤이 초조한 얼굴로 묻자 진서준이 이내 대답했다.“괜찮아요, 어머님. 이 약제를 하루에 한 번만 발라주시면 반달 후엔 다 나을 겁니다.”진서준은 나머지 약제를 병실에 뒀다.약을 바르는 일은 누군가에게 맡기면 되니 진서준이 굳이 매일 올 필요는 없었다.진서준도 요새 할 일이 너무 많았다.“정말 고마워, 서준아.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심해윤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괜찮아요, 어머님.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진서준은 빙그레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남편이랑 함께 널 배웅해 줄게.”“당신
위험한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진서준은 허윤진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어라? 혹시 서현욱 치료하러 온 거야?”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허윤진이 의아해했다.어제 서현욱을 치료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추가적인 치료가 더 필요한 건가?“아니야. 독약 만드는 시합 하러 온 거야.”진서준이 솔직히 털어놓자 허유진은 깜짝 놀랐다.“뭐라고? 독약 만들기 시합이라고?”독약을 만드는 걸 시합한다는 건 허윤진도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상대가 누구야? 왜 너랑 독약 만들기 시합을 하자는 거야? 위험한 건 아니지?”허윤진은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쏟아냈다.“잠시 후 만나 보면 누군지 알게 될 거야.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서 나도 확신할 수 없어.”진서준이 추가로 설명했다.현재 진서준의 몸은 모든 독이 침투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세상 대부분의 독약은 이미 진서준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설령 위협이 있더라도 진서준은 장청결로 언제든 해독할 수 있었다.“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럼 가지 말고 우리 빨리 돌아가자.”허윤진이 진서준의 팔을 잡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안 돼. 독약 만들자는 건 내가 제안한 거야. 장본인이 여기 오지 않으면 안 되잖아.”진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미쳤어? 독약 만들자는 걸 왜 제안했어?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거야? 우리 언니는 아직 병상에 누워 있어. 너도 거기 함께 눕고 싶어 이러는 거야?”허윤진은 강경한 태도로 한마디 보탰다.“얼른 나랑 집으로 돌아가자.”“윤진아, 이번엔 정말 네 말을 들을 수 없어. 대신 하나만 약속할게. 난 절대 목숨을 위협하는 큰 일을 당하지 않을 거야. 다만 상대방이 무슨 일을 겪을지는 내가 장담 못해.”진서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진서준은 사람을 구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독약을 제조하는 기술도 탁월했다.진서준이 만든 독약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었다.“정말이야?”허윤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당연
“이놈이 드디어 왔구나. 혹시라도 겁먹고 안 올 줄 알았는데.”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행크가 진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죽여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널 조금만 더 기다리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왜 겁먹고 안 오겠어?”진서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행크는 화가 나서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이 녀석이 정말 사람 화나게 하는 데 재간이 있네. 오늘 반드시 네놈을 바닥에 무릎 꿇고 잘못을 빌게 할 거야.”행크는 진서준 같은 괴짜를 처음 만났다.곧이어 행크는 옆에 서 있던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노인은 서양인의 외모가 70%, 동양인의 외모가 30% 정도 섞인 혼혈이었다.“바젠 닥터, 이제부터 닥터님에게 맡기겠습니다.”행크가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서준이 오기 전에 행크는 이미 이번 시합 규칙을 바젠에게 설명해 두었다.바젠은 얼핏 봐도 어려 보이는 진서준을 흘긋 쳐다보며 경멸 어린 눈빛을 보였다.“행크 왕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녀석은 곧 무릎을 꿇고 해독제를 구걸하게 될 겁니다.”바젠의 말투는 이번 승부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진서준 씨, 이 사람은 우리 왕실이 동남아에서 거액을 들여 초빙한 의사입니다. 의술도 대단하지만 독약 제조 기술은 특히 뛰어나다고 해요. 듣기로는 예전에 동남아 묘강에서 한동안 머문 적도 있다던데, 아무쪼록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소하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예린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진서준 씨, 그냥 시합 안 하시면 안 될까요...”하지만 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내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어요.”“이봐, 유언은 다 남겼어?”바젠이 서투른 대한민국어로 진서준을 향해 말했다.진서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바젠을 힐끗 바라본 뒤, 다시 행크에게 시선을 돌렸다.“한의를 모욕한 건 너야. 그러니 내가 이따가 만든 독약은 네가 먹어야 해.”“웃기고 있네, 내가 왜 굳이 먹어야
바젠은 코웃음을 치며 더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독약 제작에 집중했다.진서준 역시 조용히 작업에 몰두했다.현장은 비록 쥐 죽은 듯이 고요했지만 곳곳에 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오빠, 진서준 씨 정말 괜찮을까요?”예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바젠의 독약 제조 실력은 샛터 왕실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바젠은 독약 단 한 방울로 건장한 코끼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그 기술이 뛰어났다.진서준이 비록 의술에 능하지만 독약 제조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업종이 다르면 사실 업종 사이에는 거대한 산이 존재하는 것과 같았다.“아마 별문제 없을 거야. 진서준이 대결을 받아들였으니 뭔가 자신이 있을 테지.”소하비는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몹시 불안했다.소하비는 사실 진서준을 접촉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진서준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하... 다 제 잘못이에요. 저 때문에 진서준 씨와 바젠 선생님이 독약 대결을 하게 된 거잖아요.”예린은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죠? 왜 공주님 잘못인데요?”허윤진은 묘한 위기감을 느꼈다.‘설마 이 외국 여자가 진서준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가? 그래서 이 망나니 같은 녀석이 날 따라오지 말라고 한 거였어?’“전 중병을 앓고 있어요. 제 오빠가 진서준 씨를 모셔 와 치료를 부탁했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이 사실을 몰라요.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께서 큰오빠를 보내 날 데려가려고 하셨지만 진서준 씨가 막으셨어요.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된 거예요.”예린은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그 말을 듣자 허윤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당신들은 대체 누구죠?”“저는 샛터 왕실 공주 예린이고요, 저 사람은 우리 셋째 오빠 소하비 왕자예요. 그리고 저쪽은 우리 큰오빠 행크 왕자예요.”예린이 손짓으로 설명하자 허윤진은 깜짝 놀랐다.“뭐라고요? 샛터 왕실 사람이라고요?”샛터라는 나라 이름만 들어도 대다수 사람이 떠올리는 건 단 하나, 바로 돈이었다.샛터 왕실이라면
바젠은 냉소를 지으며 사람을 시켜 병을 진서준에게 건넸다.진서준은 병을 받아 들고는 별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단숨에 들이켰다.“진서준!”허윤진은 긴장한 나머지 두 손을 꽉 움켜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에 깊게 파고들어 자국을 남길 정도였다.소하비와 예린 남매 역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이 녀석이 독약을 통째로 마시다니,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소하비는 혀를 끌끌 찼다.“이봐, 넌 이제 후회할 기회도 없어. 무릎 꿇고 빌 준비나 해.”행크는 사정없이 진서준을 비웃었고 눈에는 뻔한 우월감이 가득했다.행크는 이미 진서준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 듯했다.바젠도 거만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대한민국 애송이야, 내가 만든 독이 뭔지는 알고 마신 거야?”“알지, 뭐. 오독수에 학정홍을 살짝 섞은 게 아니야?”진서준의 목소리엔 여유가 묻어났다.“이딴 게 독이라면 독이긴 하지. 근데 나한테는 너무 약하다고.”바젠의 눈꺼풀이 떨리며 얼굴이 일그러졌다.독약을 한 번 맛본 것만으로 전부 맞춰냈다니, 이 녀석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바젠 자신도 이런 경지엔 도달할 수 없었다.“바젠 닥터, 도대체 무슨 일이죠? 먹은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왜 이 녀석은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죠?”행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조급해하지 마세요. 아마 약효가 아직 발휘되지 않았을 겁니다.”바젠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진서준이 독의 성분을 알아냈다고 해도 해독할 수는 없을 것이다.바젠이 그 독약에 다른 물질도 추가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바젠은 진서준이 독약을 마신 이후로 해독제를 복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대체 어찌 된 거지? 설마 저 녀석도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포기한 건가?’바젠은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그러는 사이 반나절이란 시간이 더 흘렀다.그럼에도 진서준은 여전히 아무런 중독 현상 없이 멀쩡했다.그 시각, 진서준도 드디어
뼈를 도려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순간 밀려왔다.이 순간, 행크는 누군가가 칼로 자기 뼈를 긁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말 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었다.“왕자님, 무슨 일이십니까?”바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독 효과가 나타났네.”진서준은 무심하게 한 마디 던졌다.“이게 중독 현상이라고? 설마 그 맑은 물처럼 보이던 게 진짜 독이었어?”바젠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빈 잔을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하지만 아무리 맡아도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무색무취의 독약은 절대 흔하지 않아.”바젠은 급히 행크에게 다가가 물었다.“왕자님, 지금 어떤 느낌입니까?”“뼈가 아파요... 누가 내 뼈를 망치로 두드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행크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근데 저 녀석은 왜 아직도 멀쩡한 겁니까?”“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바젠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독약은 행크가 더 나중에 마셨는데 지금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건 행크였고 진서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했다.이렇게 신기한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설마 아까 진서준의 말대로 자기가 제조한 독약이 진서준에게는 정말 효과가 없는 걸까?“이봐, 넌 대체 언제 내 독약을 해독한 거야?”바젠은 진서준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분명 말했지? 네 독약은 나한테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진서준은 냉랭하게 대꾸했다.“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 네놈 거짓말하는 거지?”“내가 보기엔 빨리 해독제를 연구해서 저 녀석을 구하는 게 좋겠는데? 안 그러면 저 녀석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야. 그리고 나중에는 뼈와 살까지 전부 녹아서 고름으로 될 거야.”진서준은 행크를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했다.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등골이 서늘해졌다.뼈까지 녹아내리는 독이라니, 얼마나 강력한 독약인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바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네가 만든
“샛터 왕자 행크가 명령한다. 당장 내 독을 해독해!”행크는 공포에 질린 채 고함을 질렀지만 바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독약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사람이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진서준은 냉랭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 자기 목숨을 남의 손에 맡기지 말라고 했지?”지금 행크의 목숨은 진서준의 손안에 있었다.행크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뼈를 찢어내는 듯한 고통에 나지막한 신음을 입 밖으로 흘렸다.“해독제를 줘.”“해독제를 원한다고? 물론 줄 수 있지.”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요구를 제시했다.“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해독제를 줄게.”“대한민국 애송이야, 정도껏 해!”바젠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행크는 샛터 왕실 첫째 왕자야. 행크 왕자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넌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그래?”진서준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어차피 난 천한 목숨이야, 죽어도 아무렇지 않지. 근데 저 녀석은 달라. 한 나라의 어엿한 왕자가 한낱 평민인 나랑 목숨을 맞바꾸는 게 과연 가치 있을까? 그리고 저 녀석이 죽더라도 날 찾아내서 잡을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 아니겠어?”“네놈!”바젠은 진서준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맨발인 자는 신발 신은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행크처럼 고귀한 신분이 진서준과 목숨을 맞바꾸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이득이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행크가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면 샛터 왕자는 앞으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마주하겠는가?“좋아, 내가 졌어. 해독제를 줘.”행크는 이를 악물고 패배를 인정했다.고통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기에 행크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였다.이 정도의 고통만 아니었다면 샛터 왕자인 행크는 절대 결코 천한 신분인 진서준에게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다.“내 말 까먹었어? 살고 싶으면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지?”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진서준, 네놈이 감히 날 우롱해?”행크는 진서준의 태
자기가 완벽하게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젠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분노에 휩싸인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불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겨우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놈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니, 이 치욕은 무릎을 꿇고 사과한 행크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이 빌어먹을 녀석이 감히 날 가지고 놀아?”바젠은 이를 악문 채, 거의 이를 쪼개며 쌍욕을 내뱉었다.“내가 언제 널 가지고 놀았다고 그래? 네가 스스로 착각해서 내가 쇄골수를 사용했다고 착각한 것뿐이지.”진서준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대응했다.“그게 무슨 소리지?”행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왕자님, 이 녀석이 방금 왕자님께 먹인 건 쇄골수가 아니라 연골산입니다.”바젠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연골산이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죠.”“네 이놈! 그럼 왜 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거야?”행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그 모습은 광기에 휩싸인 사자 같았다.“저, 저도 그저 착각한...”“닥치고 얼른 해독제나 만들어 와!”행크는 바젠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바젠의 실수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큰 망신을 당했다.이 일이 고국에 알려진다면 바젠은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마지막 약재는 절대 빠뜨리면 안 돼, 알겠어?”진서준이 차분히 한마디 던졌다.그제야 바젠은 진서준이 처방전에 적어둔 마지막 약재를 발견했다.“이게 정말 해독제 재료가 맞아?”바젠은 화난 목소리로 진서준에게 따졌다.“이 독을 만든 건 나야. 해독제를 뭐로 만들어야 할지 내가 모를 것 같아?”진서준은 도발하듯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흥, 연골산이라면 네 처방전 따위 필요 없어.”바젠은 자신만만하게 진서준이 건넨 처방전을 바닥에 던졌다.진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행크를 쳐다봤다.“봤어? 난 분명 처방전을 줬어. 근데 저 녀석이 안 받은 거야.”“이제 내 두 다리를 치료해 줄 수 있겠지?”행크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
이 말이 나오자 방 안의 분위기가 다소 묘해졌다.조호의 머리는 미친 듯이 회전했다.‘이게 무슨 뜻이지? 설마 조상규의 아내를 탐낸다는 건가?’“진서준 씨, 농담이죠? 제 아내는 그저 다도 실력만 조금 괜찮을 뿐입니다.” 조상규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조상규, 거참 겸손하네. 네 아내는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좋고 얼굴은 요염한 여우처럼 매혹적인데?”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치파오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다.이 행동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오영수조차도 눈썹을 꿈틀거리며 진서준이 도대체 뭘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혹시 진짜 여자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건가?치파오 여자는 난감하게 웃으며 진서준의 손을 밀어냈다.“진서준 씨, 농담이 지나치네요. 저도 벌써 서른이 넘었어요. 젊은 아가씨들과는 비교도 안 돼요.”“맞아요, 진서준 씨. 혹시 여자가 필요하시면 잠시 후 가게 아가씨들을 전부 데려오겠습니다. 마음껏 고르세요.”조상규가 웃으며 말했다.“젊을 땐 숙녀의 매력을 몰라보고 철없이 어린 여자를 보물로 여긴다고 하지.”진서준의 손이 다시 치파오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려졌다.“난 이렇게 성숙하고 섹시한 여자가 좋더라. 점심 식사 후에 네 아내 잠자리 기술을 직접 체험해 보면 어떨까?”이 말을 듣자 조호 일행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겉보기엔 신사인 줄 알았던 진서준이 사실 이렇게 천하의 난봉꾼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도 모자라 남편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아내를 달라고 하다니, 조상규가 격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우자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오영수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진서준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오영수는 진서준이 절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진서준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게다가 진서준이 김연아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진서준 씨, 정말 농담이 지나칩니다. 우선 차부터 드시죠.”조상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 분노를 억눌렀다.누구라도 이런 말을 직접 들으
“진서준 씨나 잘 모셔. 내가 당장 전화해 안배할 거니까.”조상규는 단호한 말투로 말하며 조호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알겠습니다.”조호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진서준 씨, 이쪽으로 오시죠.”휴게실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손짓하며 오영수를 가리켰다.“이쪽은 내 친구 오영수야.”“오영수요? 설마 그 오씨 가문 사람입니까?”조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맞아.”오영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 씨,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조호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오씨 가문은 르벨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가였고 감히 귀도파 따위가 건드릴 상대가 아니었다.“괜찮아. 사실 나도 조상규 씨 같은 고수를 한 번 상대해 보고 싶었거든.”오영수가 담담하게 대응했다.조호는 이때다 싶어 슬쩍 말을 붙였다.“오영수 씨가 진서준 씨와 친구라면 이제부터 우리도 한 식구 아닙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하지만 오영수는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난 집에 자주 가지도 않아. 나한테 잘 보여봤자 얻을 건 없을 거야.”오영수는 오랫동안 전신전에서 임무를 수행해 왔고 사람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그러니 조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목적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아, 아닙니다. 그냥 오영수 씨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었을 뿐입니다.”조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자기 속내를 대놓고 들켜버리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조호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참, 진서준 씨. 이따가 제 아들도 와서 직접 사과드릴 겁니다.”하지만 진서준은 대수롭지 않아 하는 태도였다.“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진짜 화났다면 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거야.”“네, 그 말이 맞네요.”조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조호는 아까 진서준이 조상규 같은 대종사를 가볍게 처치하는 걸 직접 확인했다.그러니 조호는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었다.쓸데없는 행동으로 진서준의 심기를
체육관 안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믿을 수 없는 장면에 사람들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귀도파의 최종 병기라 불리던 조상규가 진서준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얻어터질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조상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영수를 가볍게 쓰러뜨린 자였기에 실력 하나만 봐도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그렇다면 단 한 가지 결론만이 모두의 앞에 놓였다.지금 귀도파을 건드린 이 청년은 인간을 뛰어넘는 괴물이었다.“와, 대박이야. 이 녀석 실력이 이렇게 대단했어? 야, 너 때문에 나 큰일 날 뻔했잖아.”늑대가 정신을 차리고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엄승현을 노려봤다.조상규 같은 고수도 진서준 앞에서는 그저 두들겨 맞을 뿐이었는데 늑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링에 올라가 진서준과 붙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결과가 나올 게 뻔했다.“늑대 형, 오해입니다. 저도 저 자식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어요.”엄승현이 기겁하며 변명했다.어제 진서준이 왜 무사하게 유흥업소에서 나갈 수 있었는지, 자기가 호랑이를 찾아갔을 때 호랑이가 왜 버럭 화냈는지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그 모든 이유는 진서준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호랑이의 부하 중에 진서준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멍때리지 말고 얼른 튀어. 이따가 저놈이 우리까지 상대하면 너도나도 여기서 뒤질 거야.”늑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다들 얼른 도망쳐.”엄승현도 체면 따위 집어치우고 그 뒤를 따랐다.링 위에서 조상규는 온몸이 축 늘어진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조상규의 얼굴은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어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아까 네가 뭐라고 했더라?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는다 하지 않았어?”조상규를 내려다보는 진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그 말에 조상규는 흠칫 놀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진, 진서준 씨. 살려주십시오. 제가 눈이 멀어 감히 진서준 씨에게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조상규는 머리를 박아가며
하지만 조상규 앞의 보호막은 한 치도 밀려나지 않았다.“이게 바로 너와 나의 차이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상규의 손바닥이 진동했다.그리고 산을 뒤엎는 듯한 힘이 오영수를 덮쳤다.그러자 오영수의 몸이 통제할 수 없이 끊어진 연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쿵!오영수의 몸이 바닥에 세게 내리꽂히며 몸속에서 우두둑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모두가 넋이 나간 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4대 천왕을 가뿐히 쓰러뜨린 오영수가 인간도륙의 한 방에 허무하게 무너졌다.역시 인간도륙의 명성은 헛소문이 아니었다.“대박이야, 사촌 형 너무 멋져요!”조호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고 신나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이봐, 이제야 알겠어? 이게 귀도파의 진정한 실력이야.”늑대가 잔뜩 으스대며 자기가 오영수를 때려눕힌 것처럼 신나 있었다.그때, 진서준이 천천히 오영수에게 다가가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올리더니 장청의 힘을 체내에 흘려보내며 치료하기 시작했다.“죄송합니다, 진서준 씨. 저 사람 실력이 너무 강하네요. 제가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오영수는 깊은 자책감에 고개를 숙였다.적어도 몇 방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단 한 방도 막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한 것이다.“저 사람은 노련한 대종사입니다. 대장님이 못 이기는 게 당연하죠. 이제부터는 제가 상대할게요.”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서서 링 위로 걸어갔다.“저 자식 미쳤나? 대체 뭘 믿고 올라가는 거야?”늑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살려달라고 빌려는 건 아니겠죠?”엄승현이 비꼬듯 말했다.“끝까지 숨어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깡은 있네.”조호가 코웃음을 쳤다.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도대체 진서준이 올라가서 뭘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때, 링에 올라오는 진서준을 확인한 조상규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어라? 여기서 다시 보네.”그날, 서광문이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조상규와 진서준은 이미 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