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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2화

Aвтор: 무가
“이놈이 드디어 왔구나. 혹시라도 겁먹고 안 올 줄 알았는데.”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행크가 진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죽여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널 조금만 더 기다리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왜 겁먹고 안 오겠어?”

진서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행크는 화가 나서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이 녀석이 정말 사람 화나게 하는 데 재간이 있네. 오늘 반드시 네놈을 바닥에 무릎 꿇고 잘못을 빌게 할 거야.”

행크는 진서준 같은 괴짜를 처음 만났다.

곧이어 행크는 옆에 서 있던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서양인의 외모가 70%, 동양인의 외모가 30% 정도 섞인 혼혈이었다.

“바젠 닥터, 이제부터 닥터님에게 맡기겠습니다.”

행크가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서준이 오기 전에 행크는 이미 이번 시합 규칙을 바젠에게 설명해 두었다.

바젠은 얼핏 봐도 어려 보이는 진서준을 흘긋 쳐다보며 경멸 어린 눈빛을 보였다.

“행크 왕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녀석은 곧 무릎을 꿇고 해독제를 구걸하게 될 겁니다.”

바젠의 말투는 이번 승부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진서준 씨, 이 사람은 우리 왕실이 동남아에서 거액을 들여 초빙한 의사입니다. 의술도 대단하지만 독약 제조 기술은 특히 뛰어나다고 해요. 듣기로는 예전에 동남아 묘강에서 한동안 머문 적도 있다던데, 아무쪼록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소하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예린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서준 씨, 그냥 시합 안 하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내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어요.”

“이봐, 유언은 다 남겼어?”

바젠이 서투른 대한민국어로 진서준을 향해 말했다.

진서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바젠을 힐끗 바라본 뒤, 다시 행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의를 모욕한 건 너야. 그러니 내가 이따가 만든 독약은 네가 먹어야 해.”

“웃기고 있네, 내가 왜 굳이 먹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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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진서준이 귀도파를 건드린다면 하씨 가문이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개를 때리려면 주인을 봐야 하는 법이다.“상관없어요. 어차피 하씨 가문과 이미 충돌이 있었으니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진서준 씨, 오늘 링 경기는 제가 대신 나가면 어떻겠습니까?”오영수가 제안했다.“하씨 가문이 대장님을 가만히 둘 것 같지 않은데요?”진서준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괜찮습니다. 그놈들이 감히 저한테 손댈 배짱은 없을 겁니다. 이래봬도 저는 전신전 사람이니까요.”오영수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전신전이라는 방패가 있는 한, 하씨 가문은 감히 오영수를 건드리지 못할 터였다.게다가 오씨 가문 자체도 르벨에서 내로라하는 명문이었다.“좋아요, 그럼 대장님이 저를 대신해서 올라가세요.”진서준은 무덤덤하게 수락했다.누가 올라가든 사실 상관없었다.어차피 귀도파 놈들은 다들 수준 미달이라 진서준과 오영수를 이길 수 없었다.곧이어 조호가 부하 중 4대 천왕을 이끌고 나타났다.네 사람은 다들 체형이 우람졌고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있었는데 그저 서 있기만 해도 강렬한 위압감을 뿜어냈다.“진서준 씨, 시간이 됐습니다. 이미 도착하셨다면 어서 링 위로 올라오시죠.”조호는 마이크를 들고 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하지만 사람 수가 너무 많아 정작 진서준을 찾을 수 없었다.엄승현과 그 일행은 조송리의 말에 눈을 번뜩였다.“호랑이가 찾는 진서준 씨라는 사람이 설마 저놈은 아니겠지?”“설마... 저 자식이 무슨 수로 호랑이를 링에 나오게 하겠어?”“그건 장담할 수 없어. 아까 그놈 친구 실력을 벌써 까먹었어?”관중석 사람들도 저마다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며 진서준 씨가 누군지 궁금해했다.“진서준 씨, 그럼 제가 올라가겠습니다.”오영수가 군중을 헤치고 링 위로 걸어갔다.오영수를 순간, 관중석이 들끓었다.“설마 저 사람이 진서준 씨란 말이야?”엄승현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진짜 저놈이 그 진서준인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9화

    늑대가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그러고는 곧장 무릎을 들어 오영수를 향해 강하게 내리찍었다.이 공격은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이었고 무엇보다도 꽤나 폼이 났다.이 무릎 차기가 가슴에 제대로 들어가면 상대는 그 자리에서 전투 불능 상태가 될 것이다.실력이 좀 부족한 놈이라면 뼈 몇 개는 부러질 게 뻔했다.“늑대 형 정말 멋있어. 나 진짜 애라도 낳아주고 싶어.”“저 무릎 차기를 저놈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야, 봤어? 네 친구 이제 끝났어.”사람들의 우쭐한 시선 속에서 오영수가 드디어 움직였다.“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했지 실제론 빈틈이 가득하구나.”오영수는 간단하게 주먹을 뻗었고 정확히 늑대의 급소에 그대로 꽂았다.콰직!순간, 관중석에 있던 남자들이 동시에 다리를 오므리고 손으로 중요 부위를 감쌌다.“끄아악!”늑대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고 허공에서 곧장 링 바닥으로 무겁게 추락했다.늑대는 바닥에서 두 손으로 소중한 부위를 감싸고 바둥거리며 울부짖었다.남자들은 이 광경에 모두 등골이 서늘해졌고 식은땀을 흘렸다.이건 너무 가혹한 공격이었다.늑대의 남은 인생에 여색이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저 사람 누구야? 한 방에 늑대를 보내버렸잖아.”“늑대는 동부 구역 격투기 챔피언 출신이잖아. 동부 구역에서 늑대한테 대적할 놈이 몇이나 된다고?”“나도 모르겠어, 처음 보는 얼굴이야.”사람들은 하나같이 오영수의 정체를 궁금해했다.“이제 말해봐, 누가 진짜 계집애인지 말이야.”오영수는 싸늘한 얼굴로 늑대 앞에 서서 바닥에 주저앉은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너, 너 이 비겁한 놈, 감히 기습 공격을 날려? 무도 정신도 없어?”늑대는 분노와 수치심에 치를 떨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설마 이 사람이 이렇게 더러운 수를 써 자기 소중한 곳을 한 방에 날려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내가 언제 기습했어? 단순히 네가 반응을 못 한 거지.”오영수는 태연하게 말한 뒤, 늑대를 발로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8화

    진서준이 떠나려 하자 엄승현이 기다렸다는 듯 진서준을 한껏 조롱했다.엄승현은 늑대를 모시고 오느라 돈까지 썼는데 늑대가 한 대도 못 때리고 가버리면 그 돈은 그냥 허공에 날리는 셈이었다.“야, 자신 없으면 내가 한쪽 팔이랑 다리 빼고 싸워줄까? 어때?”늑대도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와, 진짜 한심하다. 늑대 형이 일부러 핸디캡까지 줬는데도 입도 못 떼네?”“같은 남자로서 내가 막 부끄럽네.”“늑대 형이 계집애라고 부른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어. 딱 맞아떨어지네.”주변에서 야유가 쏟아졌다.다들 진서준을 겁쟁이 취급하며 비웃느라 정신이 없었다.진서준은 떠들썩한 무리를 쓱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개떼처럼 달려드는 놈들은 한 번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계속 파리처럼 들러붙을 것이다.“링에 그렇게 올라가고 싶어?”진서준이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뭐야? 드디어 용기가 생겼어?”늑대가 몸을 풀며 비릿하게 웃었다.“그렇게 처맞고 싶다니 기꺼이 소원을 들어주지.”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하. 허세가 완전 작렬이네. 이따가 처맞을 때도 꼭 지금처럼 까불어봐, 알겠어?”늑대가 싸늘하게 웃었다.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서준 씨.”오영수가 놀란 표정으로 진서준을 향해 다가왔다.설마 이곳에서 진서준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어라? 대장님이 여긴 웬일이죠?”진서준도 살짝 의외라는 듯 물었다.“귀도파에서 오늘 링 대결이 열린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습니다.”오영수가 설명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할아버지의 상태가 떠올라 물었다.“대장님 할아버지 상태는 좋아졌나요?”“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젠 말씀도 할 수 있습니다.”오영수는 감격에 차서 말했다.“진서준 씨가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할아버지는 지금쯤 벌써 별세했을 겁니다.”“야, 야, 계집 같은 녀석이 언제까지 쓸데없는 수다 떨 거야?”엄승현 일당이 짜증이 난 듯 끼어들었다.괜히 시간 끌다가 귀도파에서 외부인 링 대결을 막아버릴 수도 있었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7화

    귀도파의 조직원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동부 구역에서도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꾼이 잔뜩 생겼다.“누가 감히 귀도파를 건드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귀도파가 동부 구역을 이토록 오래 지배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호랑이 밑에 있는 4대 전사는 전부 피에 미친 놈들이라고.”“듣자 하니 그 녀석은 외지에서 왔다던데? 여기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까부는 거지.”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귀도파를 도발한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다.진서준이 막 몇 걸음 걸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쳤다.“어? 저 녀석이 여기 웬일이지?”고개를 돌려보니 앞장서 있는 건 바로 엄승현이었다.“너희가 올 수 있는데 내가 왜 못 와?”진서준이 냉랭하게 물었다.“몰라서 물어? 여긴 귀도파 구역이야. 어제 네가 호랑이를 건드려 놓고 오늘 뻔뻔하게 걸어 들어와? 스스로 죽을 자리 찾아왔구나.”엄승현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켰다.“여기 있는 사람들 보이지? 전부 다 귀도파 소속이야. 호랑이 눈에 띄기만 하면 넌 살아서 못 떠날 거야.”“그래서 어쩌라고? 말하고 싶은 게 뭐야?”진서준이 무심하게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의 태연한 반응에 엄승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어젯밤, 엄승현은 호랑이에게 따귀를 맞았다.이 굴욕은 반드시 갚아야 했다.조호는 감히 건드릴 수 없으니 그 분풀이를 진서준에게 하려는 거였다.“너 입조심해. 뭐 이렇게 싸가지 없어?”엄승현은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계속 싸가지 없게 굴면 후회하게 될 거야.”“후회는 개뿔, 네 주제에 할 말이야?”진서준이 코웃음을 쳤다.엄승현도 자기가 진서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오늘엔 따로 고수를 데려왔다.“난 널 못 이겨. 근데 우리 늑대 형은 다르지. 늑대 형에게 넌 장난감에 불과해.”엄승현이 손짓하며 가리킨 사람은 바로 늑대였다.“승현아, 나더러 저런 계집애 같은 놈을 때리라는 거야? 내 얼굴에 먹칠할 일 있어?”늑대는 썩 내키지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6화

    “네가 왜 여길 들어와? 당장 나가!”갑자기 들이닥친 진서준을 보고 도민수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네 누나랑 가족들이 널 걱정하고 있어.”진서준이 차분히 말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넌 우리 가족도 아니잖아.”도민수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진서준은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도민수를 바라보았다.“혹시 네 가족을 인질로 협박하는 놈들이 있어?”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도민수의 눈에 순간적으로 놀람이 스쳤다.“헛소리하지 마. 내가 왜 협박당해?”도민수는 애써 부정했다.“거짓말해도 소용없어.”진서준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하경범 패거리가 널 협박하고 있는 거지?”“헛소리 말고 당장 나가.”도민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사실을 안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하씨 가문의 세력은 거미줄처럼 르벨 전역에 퍼져 있었다.어떤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고작 평범한 집안인 도씨 집안이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이걸 말해봤자 가족들만 더 불안해질 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내가 네 가족을 이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어.”진서준이 조용히 말했다.“안 나갈 거야? 그럼 나도 가만 안 있을 거야.”도민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한번 해보지 그래?”진서준은 가볍게 웃었다.“좋아. 이건 네가 원한 거야.”도민수는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하지만 주먹이 진서준 앞 10cm 지점에서 멈춰버렸다.“뭐, 뭐야?”도민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손을 바라봤다.“말했잖아.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태연했다.“대체 네 정체가 뭐야?”도민수는 그제야 진서준이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야.”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도민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이 일은 절대 우리 누나한테 말하지 마.”도민수는 천천히 자기가 당한 일을 설명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5화

    분위기가 한껏 어색해졌다.도지아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종아리 상처가 벌어져 살짝만 움직여도 참기 어려운 통증이 몰려왔다.“너희들 계속해. 난 아무것도 못 봤어.”도지아 어머니는 얼굴을 굳히고는 뒤돌아 나가며 문을 닫았다.“아무 사이도 아니라더니, 진짜 아니면 이렇게 되겠어?”이제는 아예 도지아의 주장을 믿지도 않고 딸이 부끄러워서 숨기는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도지아 어머니는 딸도 어린 여자인지라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고 이해하려 했다.“네 어머니 오해가 좀 심한데?”진서준도 이제야 왜 침대 머리맡에 갑자기 약이 놓여 있는지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다.“그, 그보다 네가 먼저 일어나 봐. 나 움직이면 아파서 못 견디겠어.”도지아는 울상이었다.이젠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릴 상황이었다.진서준은 허리에 힘을 줘 도지아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방으로 데려다줄게.”진서준은 굳이 긴말하지 않고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도지아의 방으로 돌아오니 도지아의 종아리에서 다시 피가 흘렀다.진서준은 재빠르게 붕대를 풀고 상처를 소독한 뒤 다시 약을 발랐다.모든 걸 마친 후, 진서준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난 이만 가볼게.”“이 시간에 돌아가려고? 너무 늦었어. 그냥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지아는 침대에 누운 채로 말했다.“아까 그 방이 손님방이야. 원래 아무도 안 쓰던 곳이라 깨끗해. 지금 호텔 잡으러 나가기도 애매하고... 게다가 내일 아침이면 우리 동생도 돌아올 테니 한번 진단해 보는 게 좋겠지?”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 신세 좀 질게.”“이불은 방 안에 있는 옷장에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꺼내 써.”“알았어.”진서준은 다시 손님방으로 돌아가 침대를 간단히 정리한 뒤 곧장 잠에 빠졌다.반면 도지아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아까 진서준과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게 자꾸 떠올라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아까 그 순간은 도지아가 생전 처음 남자와 밀착된 순간이었다.심지어 진서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4화

    ‘우리 딸이 어제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그래요, 다녀오세요. 난 지아 좀 보러 갈게요.”도지아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너희 둘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미리 안전 조치는 좀 해야지.”“안전 조치요?”도지아가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곧바로 대답했다.“아, 방금 이미 소독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엄마.”“소독했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약은 먹었어?”도지아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아니요, 진서준이 필요 없다고 했거든요.”도지아가 고개를 저었다.“너 확실해? 걔가 널 책임지겠다고 했어?”도지아 어머니가 얼굴을 굳혔다.“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도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봐, 너도 확신 못 하잖아. 만약 임신이라도 하면 걔가 발 빼면 어쩔 건데?”도지아 어머니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엄마도 다 겪어봐서 하는 말이야. 잠깐의 즐거움 때문에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면 안 돼. 방금 약 사 왔으니까 얼른 먹어. 그리고 다음에 그런 일 있을 땐 꼭 안전 조치하게 해.”도지아는 듣다 보니 점점 심상치 않았다.도지아가 얼른 약봉지를 받아 들고 확인하더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심지어 붉어진 기운이 귀 끝까지 번졌다.“엄마. 오해예요. 나랑 진서준은 그런 짓 한 거 아니에요.”“엄마 속이기 힘들걸? 아까 진서준이 피 묻은 휴지 한 봉지를 들고 나가는 걸 내가 직접 봤어.”도지아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진서준도 참, 널 좀 더 배려해 줬어야지. 첫 경험이면 좀 더 조심했어야 하는 거 아냐?”“엄마, 진짜 아니에요.”도지아는 웃다가 말고 울상을 지었다.“진서준이 내 다리 흉터 치료해 준 거예요. 오해가 심하네요.”“응?”도지아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자 도지아 어머니는 그녀의 다리를 내려다봤다.도지아의 말대로 다리에는 정말 붕대가 감겨 있었다.“진서준은 의사예요. 올 때 소개도 해줬잖아요. 내 다리 다 낫게 해 줄 수 있다고요.”도지아가 한 번 더 강조했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3화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씻고 바로 올게.”도지아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동안 다리 흉터를 없애려고 유명한 의사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누구도 제대로 된 치료법을 제시하지 못했다.그런데 지금 진서준이 완벽하게 흉터를 없앨 수 있다고 하니 도지아가 기쁠 수밖에 없었다.샤워를 마친 후, 도지아는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곧장 진서준의 방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도지아 부모님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여보, 저 둘의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도지아 어머니가 살짝 망설였다.방금 저녁 식사 때, 진서준의 태도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덕분에 도지아의 부모는 진서준에게 꽤 좋은 인상을 받았다.하지만 벌써 이렇게 진도를 빼는 건 도지아 어머니로서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요즘 젊은 애들 다 저러잖아. 지아가 남자를 데려온 것만 해도 어디야?”도지아 아버지가 태연하게 말했다.“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지아가 임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도지아 어머니는 우려가 가득한 얼굴로 반박했다.“그럼 바로 결혼하면 되지. 우리 집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잖아. 지아만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도지아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사실 이 정도면 도지아 부모는 꽤 개방적인 편이었다.지금 시대에 예물도 안 바라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여보, 그냥 우리 저 둘이 뭐 하는지 몰래 들어보고 올까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살짝 불안했다.“그래, 그럼 한번 들어보자.”도지아 부모는 진서준 방문 앞에 살금살금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그러자 곧 방 안에서 대화가 들려왔다.“처음엔 좀 아플 거야. 조금만 참아.”진서준이 말했다.“응, 괜찮아. 해봐. 나 참을 수 있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진서준이 설명했듯 다리 흉터를 완전히 없애려면 먼저 안쪽의 괴사한 피부 조직을 도려내야 했다.그때 김연아의 등에 바를 땐 상처가 덜 아물어서 바로 약을 발랐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진서준은 은침으로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822화

    도지아는 그 표정이 왠지 묘하게 신경 쓰였다.부모님이 나가자 집 안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우리 집에 손님이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부모님이 좀 들뜨셨나 봐.”도지아가 무심하게 해명했다.“괜찮아, 이해해. 우리 집도 손님 올 때마다 우리 엄마 엄청 챙기시거든.”진서준이 웃으며 대응했다.“맞다, 아까 우리 동생 봤을 때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도지아가 본론을 꺼냈다.“이상한 점? 글쎄, 딱히 못 느꼈는데?”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네 동생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아까 네가 유흥업소에 갇혔을 때, 걔가 엄승현 찾아가서 인맥을 동원해 널 구해달라고 부탁했어.”도지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우리 동생이 진짜 요즘 이상해. 말로는 독설을 퍼붓는데 속은 여전히 착해.”“혹시 일부러 너희를 멀리하는 거거나 너희를 보호하려는 거 아닐까?”진서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뭔가 압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설마 민수가 잡혀갔을 때 하경범 부하들이 협박이라도 한 걸까?”도지아도 진서준의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날, 도지아의 부모와 도민수는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민수가 정확히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전화해서 집에 오라고 해야겠어.”도지아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도민수가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꺼버렸다.“이 자식이 정말...”도지아가 인상을 찌푸렸다.“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한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일단 그냥 내버려둬. 말하고 싶으면 알아서 말하겠지.”진서준이 위로하듯 말했다.한편, 노래방의 한 방에서 도민수는 테이블에 엎드려 하얀 가루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고 있었다.그러고는 완전히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어때? 기분 좋아?”노란 머리 청년이 민수의 머리채를 잡고 비열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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