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여성들은 남녀 관계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고 왕실의 여성들은 더 개방적이었다.적지 않은 왕실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하지만 샛터 왕실은 일반 왕실과 다르게 매우 보수적이었다.소하비 왕자조차도 아직 여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다.여동생인 예린도 관계는 둘째치고 남자와 신체적인 접촉도 전혀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은 예린의 옷을 벗기고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서준 씨, 다른 방법은 없나요?”소하비는 얼굴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샛터 왕실은 정조를 무엇보다 더 중시한다.진서준이 예린의 옷을 벗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샛터 왕실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굳이 이런 방법을 쓸까요?”진서준은 그 말에 덤덤하게 되물었다.“근데 제 여동생은 여태껏 남자와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어요.”“그럼 소하비 왕자님이 선택하세요. 사람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여동생의 정조와 명예를 지킬 것인지.”진서준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어떻게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소하비의 책임이었다.“소하비 왕자님, 공주님 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베컨이 옆에서 끼어들었다.“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소하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바로 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예린이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했다.예린의 창백했던 얼굴이 이제는 종이처럼 더욱 창백해졌다.“예린아!”소하비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베컨이 다가가서 한 번 확인한 후,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공주님 병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소하비 왕자님,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진서준 씨, 오늘 일은 절대로 외부인에게 알려지면 안 됩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샛터 왕실의 체면이 걸린 일인 만큼 진서준도 신중하게 대해야 했다.소하비와 베컨이 나간 후, 진서준은 조심스럽게 예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예상치 못한 건 예린의 옷 아래 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화로 물어보겠습니다.”전화하기 전에 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간호사를 불러 여동생에게 목욕을 시키고 병실도 바꾸는 게 좋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자, 다들 진서준 씨 말대로 움직여.”소하비는 자기가 데리고 온 여성 하인들에게 즉시 지시했다.예린을 돌보기 위해 소하비는 평소 예린의 시중을 드는 여성 하인을 전부 데려왔다.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살펴보았다.“지유 누나에게 전화해 보자. 지유 누나랑 성우 형 인맥이 꽤 넓으니까.”진서준은 즉시 한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벨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한지유가 전화를 받았다.“서준 동생, 오늘은 웬일로 내게 전화했어?”한지유가 웃으며 물었다.진서준과 한지유는 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다.“지유 누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리게 되었어요.”진서준은 웃으며 바로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했다.“지유 누나, 이 동네에서 약재를 큰 규모로 다루는 곳을 아시나요? 백년 영지를 급하게 하나 구하고 싶어서 그래요.”“약재를 다루는 곳이라... 잠깐만 기다려.”한지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했다.“실제로 아는 곳이 있긴 해, 부지로에 있는 회춘당이라는 곳이야. 그 집은 최근에 새로 열었는데 주로 귀한 약재를 팔아.”“감사합니다, 지유 누나. 기회가 되면 성우 형이랑 누나에게 식사 대접할게요.”진서준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뭘 그런 걸로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는 필요 없어.”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진서준은 전화를 끊었다.“확인했어요, 회춘당에 백년 영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네요. 바로 가보겠습니다.”진서준이 소하비에게 말하자 소하비도 동참하겠다고 했다.“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다들 여기서 예린 공주를 잘 지켜. 절대 내가 없는 사이에 누구도 동생 몸에 손대게 해서는 안 돼.”소하비는 경호원들을 병원에 남겨두고 진서준과 함께 차를 타고 회춘당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회춘당 가게 앞.서현욱은 이쁜 얼굴에 화
물고기가 걸린 것을 본 가게 주인의 눈빛이 번쩍였다.“서 도련님이 진심으로 사고 싶으시다면 제가 들여온 가격만 받고 드릴게요.” 주인은 손으로 천천히 숫자 12를 그렸다.“12억이라고요? 이렇게 비싼 건가요?”서현욱은 그 말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이미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준비는 했지만 천문학적인 가격을 듣자 서현욱은 여전히 놀랐다.“12억은 서 도련님 아버님 체면을 봐서 싸게 드린 겁니다. 경매로 하면 아마 6억은 더 올릴 수 있을 겁니다.”가게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서현욱과 고우현은 상인이 아니었기에 주인의 진짜 의도를 알지 못했다.“사장님, 조금 더 깎아주실 수 없나요? 제 아버지를 봐서라도 조금만 더 싼 가격으로 주세요.”서현욱은 부득불 아버지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서 도련님, 이건 이미 시장님 체면을 고려해서 드리는 겁니다.”가게 주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서 도련님이 시장님 아들만 아니었으면 12억은 고사하고 16억이라도 팔지 않았을 겁니다. 백년 영지는 사실 어떤 가격에 판매해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서는 희귀한 약재거든요.”“그래도 12억이라니...”서현욱은 더 실랑이를 펼치려 했으나 고우현이 그를 끊었다.“그만해, 시장 아들인데 고작 12억도 낼 수 없어서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해? 이 영지 12억에 바로 사겠어요.”고우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좋아요, 아가씨는 참 시원시원한 분이네요, 바로 영지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주인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뒤에 있는 직원에게 손짓했다.그러자 직원은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네모난 상자를 안고 신난 모습으로 내려왔다.“영지는 여기 들어있습니다, 서 도련님, 현금으로 결제하시겠어요, 아니면 카드로 하시겠어요?”가게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카드로 하겠습니다.”서현욱은 입꼬리가 움찔하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카드로 결제하려는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요. 이 영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서둘러 서현욱에게 팔지 말아야 했다.서현욱은 즉시 지갑에 있는 모든 신용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몇 분 후, 신용카드 다섯 장을 전부 긁은 후, 1억 4천만을 겨우 모을 수 있었다.서현욱은 그제야 시름 놓고 진서준을 도발하기 시작했다.“진서준, 난 이내 흑기린에 입단할 거야. 그때가 되면 허사연이 날 다시 평가하게 될 거고 넌 내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진서준은 서현욱의 말이 너무 이상했다.소정태가 흑기린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흑기린은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특전대였다.“흑기린은 이제 쓰레기도 막 받아들이게 됐어?”진서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너야말로 쓰레기야.”서현욱은 즉시 반박했다.“내가 흑기린에서 새롭게 태어나면 예전의 모든 원한을 다 갚아줄 거야.”서현욱은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으름장을 놓았다.아무래도 예전에 진서준과 있었던 불쾌한 일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하지만 진서준은 서현욱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난 선생님과 진서준 사이에 무슨 모순이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백년 영지는 내게 꼭 필요한 약재입니다.”소하비가 둘의 대황에 끼어들었다.“내가 200억을 낼 게요. 내게 양보하세요.”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작 14억짜리 물건을 200억에 사겠다니, 이 사람의 부유한 정도가 진심으로 궁금해질 정도였다.서현욱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난 그따위 돈이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진서준과 친구가 아니었다면 팔았을지도 몰라요. 근데 당신이 진서준과 친분이 있다면 2조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친 서현욱은 상자를 열었다.“자, 14억짜리 영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해 봐.”서현욱은 일부러 진서준과 소하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다.서현욱은 상자에서 얼굴 크기만 한 영지를 껴안고 내왔다.영지는 크지만 뜻밖에도 너무 마른 상태
서현욱의 아버지를 부른다고 하자 서현욱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이 일이 서정훈에게 알려지면 흑기린에 입단하는 건 고사하고 서정훈에게 맞아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14억 원을 손해 보는 것이 눈앞에 다가오자 서현욱은 소하비에게 시선을 돌렸다.“선생님, 방금 이 영지를 원하셨죠?”서현욱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조금 전에 보인 교만하고 거만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아까는 원했지만 지금은 필요 없어.”소하비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난 돈이 넘쳐나긴 해도 억 단위를 들이며 이런 나무 덩어리를 사는 바보는 아니야.”소하비가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게 돈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리석은 바보는 아니었다.이 영지는 어떻게 봐도 그냥 쓸모없는 물건이었다.이걸 산다고 해도 그냥 돈 낭비일 뿐이었다.“오해입니다. 이건 나무가 아니라 진짜 영지예요. 믿기지 않으면 냄새라도 맡아보세요. 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선생님이 정 원하신다면 제가 후하게 팔아드릴게요. 10억이면 어때요?”서현욱은 흥정하면서도 속이 찌릿찌릿 아팠다.운 좋게 팔아도 4억을 손해 보게 될 터였고 팔지 못한다면 14억 원을 그대로 날리게 될 것이다.어느 선택이 더 현명한지 서현욱도 잘 알고 있었다.“안 사, 그냥 공짜로 줘도 안 받을 거야.”소하비는 돌아서서 진서준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그때,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 영지, 내가 살게.”“뭐라고?”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놀라서 일제히 물었다.쓰레기가 분명한데 굳이 사겠다니, 진서준이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지 서정훈 시장 아들에게 대놓고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짓이라면 그 대가가 너무 컸다.이건 14만도 아닌 14억이었다.대다수 사람이 평생 일해도 벌 수 없는 거액이었다.“확실한 거야? 장난치는 건 아니지?”서현욱은 혹여나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기 귀를 의심했다.“물론 확실해.”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근
“근데 넌 이게 쓰레기인 걸 번연히 알면서도 돈 주고 사? 미련하기 짝이 없구나!”약재를 사러 온 손님들도 진서준이 구제 불능이라 여겼다.“이 녀석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5억이나 주고 이런 쓰레기를 사? 대체 무슨 의도일까? 그 돈으로 여자라도 꼬시면 얼마나 좋아?”“돈만 많고 머리가 텅텅 빈 바보 도련님 같아. 돈이 많으니까 멍청한 짓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닐까?”사람들이 수군대며 조롱하는데도 진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영지 앞으로 다가가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띠었다.“다들 이렇게 거대한 영지가 왜 말라 죽었을까 궁금하지 않아?”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뭐라고?”다들 진서준의 말에 의아해하며 멈칫했다.진서준의 말대로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듯했다.가게 주인은 순간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왜 말라 죽었죠?”소하비도 무척 궁금했다.진서준은 영지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콰직!얼굴 크기만 한 영지가 순식간에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씨X, 쓰지 않을 거면서 왜 굳이 날 사게 한 거야?”소하비는 저도 몰래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욕설을 터뜨렸다.5억이나 주고 산 물건이 이렇게 한순간에 깨져버리다니, 정신 상태가 이상하지 않고서야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일 수 없었다.서현욱은 그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진서준, 너 진짜 또라이구나.”고우현도 서현욱을 흘겨보며 물었다.“이런 또라이를 넌 또 어떻게 알고 지낸 거야?”다들 지금 이 순간 진서준이 정신 상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상자 속에서 손을 뻗어 영지를 한 번 더 찾았다.그리고 이내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지만 완벽한 혈색을 띤 영지를 꺼내 들었다.이 영지는 정교하고 아담한 크기였고 얼핏 봐도 일반적인 영지가 아닌 것 같았다.“이건 혈령지잖아요?”샛터 왕자답게 눈썰미가 있는 소하비의 눈이 번쩍였다.예전에 한 부자가 소하비에게 이 혈령지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 소하비는
흑기린의 명성은 널리 퍼져 있었고 심지어 일반인들도 그 이름을 알 정도였다.흑기린은 대한민국의 가장 예리한 검이었다.비록 백 명의 병력밖에 없지만 흑기린은 예전부터 여러 차례 대단한 공적을 세웠다.군부에서 전신전 외에는 흑기린과 비교할 만한 부대가 없었다.그리고 이 영지를 사려는 여자가 바로 흑기린 사령관의 조카라니, 그 신분의 고귀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난 저 녀석이 혈령지를 순순히 여자에게 내줄 거라고 확신해.”“당연하지, 누가 감히 흑기린 사령관의 체면을 보지 않겠어?”“작은 도시 서울에서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나타날 줄은 몰랐네.”주변 사람들은 진서준을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겨우 운 좋게 얻은 영지인데 이 여자의 특별한 신분 때문에 돌려줘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고우현은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들으며 턱을 높게 치켜들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물건은 내놓아. 넌 그만 가 봐.”고우현은 눈앞의 이 청년이 분명 영지를 내놓고 쭈뼛거리며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너 미친 건 아니야?”고우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미친 건 너겠지. 방금 서현욱이 한 말을 못 들었어? 난 흑기린 사령관 조카란 말이야!”고우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자기 신분을 강조했다.진서준이 자기 신분을 듣고도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한편, 서현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서현욱은 진서준과 고우현 사이에 큰 갈등이 발생하기를 기대했다.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면 고우현의 손을 빌려 진서준을 제대로 혼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서정훈은 겉보기엔 서울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흑기린 사령관 앞에서는 한낱 평범한 사람이었다.“네가 그 사람 딸이라고 해도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아.”진서준이 차갑게 말하자 고우현은 화가 치밀어 올라 가슴이 요동쳤다.“넌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해? 귀먹지 않은 이상 내 신분을 제대로 들었을 거야. 그런데도 이런 태도
흑기린 사령관이 아무리 강해도 이런 신분의 인물에게 대놓고 공격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병원에 돌아온 진서준은 즉시 약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소하비는 예린이 걱정스러워 곧바로 병실로 향했다.예린은 병실을 옮겼고 이제 방 안에 고약한 악취는 없었다.침대 옆에 다가선 소하비는 예린이 누워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현재 예린은 얼굴에 혈기가 돌았고 호흡이 고른 상태로 누워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정신이 맑아 보였다.“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여동생이 무사한 걸 확인한 소하비는 마음속에 고여 있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소하비가 미처 기뻐할 틈도 없이,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한 소하비의 얼굴이 굳어졌고 썩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잠시 고민한 후, 소하비는 전화를 받았다.“소하비야, 예린을 어디로 데려간 거야?”전화 너머에서 한 남자의 잔뜩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버지, 예린을 대한민국으로 데려와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소하비는 이를 악물고 힘겹게 진실을 털어놨다.전화 너머의 사람은 바로 소하비의 아버지인 샛터 국왕이었다.아버지 앞에서는 소하비도 감히 불경하게 대할 수 없었다.“무슨 미친 짓이야? 베컨 닥터를 초청하지 않았어? 근데 왜 예린을 데려간 거야?”“베컨 닥터는 예린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진서준만이 예린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린의 상태는 이제 안정되었습니다. 진서준이 만든 약을 먹으면 병이 완치될 겁니다.”소하비가 즉시 설명했다.“어처구니없네. 어떻게 대한민국 주술을 믿을 수 있어? 지금 당장 예린을 데려와. 그렇지 않으면 네 형이 친위대와 함께 널 잡아 올 거야.”지금은 예린 치료의 중요한 시점이라 소하비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아버지, 저는 예린이 완치될 때까지 절대 데려가지 않습니다.”이건 소하비가 처음으로 샛터 국왕에게 반항한 순간이었다.“너 이 자식, 사춘기에 들어섰어? 내일 저녁, 형이 친위대를 데리고 갈 거야. 네가 돌아오면 난 네게 조용한 곳에서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