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에 소하비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베컨 닥터는 따귀를 맞고도 반격은커녕, 따귀를 날린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다니, 혹시 따귀를 맞고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대한민국 청년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베컨만이 알았다.방금 진서준이 따귀를 날린 후, 베컨은 갑자기 자기 머리가 맑아지고 심지어 흐릿하던 시력도 훨씬 좋아진 걸 느꼈다.세계가 공인하는 불치병이 이렇게 간단하게 치료되다니, 너무나도 무섭고 놀라운 일이었다.“내 의술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잖아.”진서준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방금은 제가 눈이 멀어서 선생님의 뛰어난 의술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어요.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베컨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베컨은 수십 년 동안 난치병을 연구해 왔고 본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 십 년이나 넘는 시간을 투자했으나 결과를 얻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의 따귀 한 대로 베컨의 병을 치료한 것만 봐도 진서준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베컨 닥터, 지금 뭐 하는 겁니까?”소하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베컨을 바라보았다.“소하비 왕자님,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신의입니다.”베컨은 고개를 들고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제 병은 이 신의 따귀 한 대로 완벽하게 치료되었습니다.”소하비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작 따귀 한 대로 불치병을 치료했다니, 영화 시나리오도 아닌 일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다고?하지만 소하비는 베컨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베컨은 자기 고집이 센 노인이었다.진서준이 뭔가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절대로 베컨의 인정을 받으며 사과까지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어쩌면 자기 여동생 예린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진 씨, 정말 베컨 닥터 불치병을 치료한 겁니까?”소하비의 질문에 진서준은 아니꼽게 대답했다.“저 사람이 더 잘 알겠죠.”“소하비 왕자님, 저는 제 조상님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
경호원의 얼굴이 급변하더니 바로 체내의 선천강기를 모았다.강기가 손을 감싸자 총알조차 뚫지 못하는 강력한 보호막이 형성되었다.“자업자득이야.”옆에서 구경하던 소하비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들은 전부 자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강자였다.맨손으로 총알을 쥐어버리는 건 이 경호원들에게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하지만 소하비가 그날 밤 천하 유람선을 떠나지 않고 진서준과 교회 기사와의 전투를 봤다면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하비는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경호원은 진서준의 주먹의 기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KTX에 치인 듯 시뻘건 피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병원 바닥에도 경호원의 붉은 피가 흥건했다.“이래도 또 덤빌 거야?”진서준은 몸을 돌려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 네 명 중에는 육급 정점 대종사와 칠급 정점 대종사도 있었다.이 네 명이 힘을 합쳐서 달려든다면 진서준도 확실히 수습하기 어려울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하지만 경호원 쪽에서 이미 먼저 공격한 마당에 진서준이 반격하지 않으면 이 경호원들은 진서준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다.진서준이 반격하자 나머지 세 경호원도 즉시 참전하려 했다.“그만둬.”하지만 의외로 소하비는 바로 경호원들을 제지했다.소하비는 자기가 데려온 경호원들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이 자기 경호원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면 그만큼 진서준의 실력이 대단한 것이다.소하비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진서준에게 다가가 말했다.“진서준 씨, 당신 외엔 이제 제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여동생의 생명을 살려주세요. 이전의 무례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소하비 왕자님은 우리 샛터의 얼굴입니다. 어떻게 한낱 평민에게 사과할 수 있습니까?”“맞아요, 왕자님. 그렇게 사과하면 우리나라 체면이 구겨집니다.”“절대로 이 녀석과 타
서양의 여성들은 남녀 관계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고 왕실의 여성들은 더 개방적이었다.적지 않은 왕실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하지만 샛터 왕실은 일반 왕실과 다르게 매우 보수적이었다.소하비 왕자조차도 아직 여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다.여동생인 예린도 관계는 둘째치고 남자와 신체적인 접촉도 전혀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은 예린의 옷을 벗기고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서준 씨, 다른 방법은 없나요?”소하비는 얼굴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샛터 왕실은 정조를 무엇보다 더 중시한다.진서준이 예린의 옷을 벗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샛터 왕실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굳이 이런 방법을 쓸까요?”진서준은 그 말에 덤덤하게 되물었다.“근데 제 여동생은 여태껏 남자와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어요.”“그럼 소하비 왕자님이 선택하세요. 사람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여동생의 정조와 명예를 지킬 것인지.”진서준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어떻게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소하비의 책임이었다.“소하비 왕자님, 공주님 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베컨이 옆에서 끼어들었다.“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소하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바로 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예린이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했다.예린의 창백했던 얼굴이 이제는 종이처럼 더욱 창백해졌다.“예린아!”소하비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베컨이 다가가서 한 번 확인한 후,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공주님 병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소하비 왕자님,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진서준 씨, 오늘 일은 절대로 외부인에게 알려지면 안 됩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샛터 왕실의 체면이 걸린 일인 만큼 진서준도 신중하게 대해야 했다.소하비와 베컨이 나간 후, 진서준은 조심스럽게 예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예상치 못한 건 예린의 옷 아래 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화로 물어보겠습니다.”전화하기 전에 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간호사를 불러 여동생에게 목욕을 시키고 병실도 바꾸는 게 좋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자, 다들 진서준 씨 말대로 움직여.”소하비는 자기가 데리고 온 여성 하인들에게 즉시 지시했다.예린을 돌보기 위해 소하비는 평소 예린의 시중을 드는 여성 하인을 전부 데려왔다.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살펴보았다.“지유 누나에게 전화해 보자. 지유 누나랑 성우 형 인맥이 꽤 넓으니까.”진서준은 즉시 한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벨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한지유가 전화를 받았다.“서준 동생, 오늘은 웬일로 내게 전화했어?”한지유가 웃으며 물었다.진서준과 한지유는 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다.“지유 누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리게 되었어요.”진서준은 웃으며 바로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했다.“지유 누나, 이 동네에서 약재를 큰 규모로 다루는 곳을 아시나요? 백년 영지를 급하게 하나 구하고 싶어서 그래요.”“약재를 다루는 곳이라... 잠깐만 기다려.”한지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했다.“실제로 아는 곳이 있긴 해, 부지로에 있는 회춘당이라는 곳이야. 그 집은 최근에 새로 열었는데 주로 귀한 약재를 팔아.”“감사합니다, 지유 누나. 기회가 되면 성우 형이랑 누나에게 식사 대접할게요.”진서준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뭘 그런 걸로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는 필요 없어.”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진서준은 전화를 끊었다.“확인했어요, 회춘당에 백년 영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네요. 바로 가보겠습니다.”진서준이 소하비에게 말하자 소하비도 동참하겠다고 했다.“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다들 여기서 예린 공주를 잘 지켜. 절대 내가 없는 사이에 누구도 동생 몸에 손대게 해서는 안 돼.”소하비는 경호원들을 병원에 남겨두고 진서준과 함께 차를 타고 회춘당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회춘당 가게 앞.서현욱은 이쁜 얼굴에 화
물고기가 걸린 것을 본 가게 주인의 눈빛이 번쩍였다.“서 도련님이 진심으로 사고 싶으시다면 제가 들여온 가격만 받고 드릴게요.” 주인은 손으로 천천히 숫자 12를 그렸다.“12억이라고요? 이렇게 비싼 건가요?”서현욱은 그 말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이미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준비는 했지만 천문학적인 가격을 듣자 서현욱은 여전히 놀랐다.“12억은 서 도련님 아버님 체면을 봐서 싸게 드린 겁니다. 경매로 하면 아마 6억은 더 올릴 수 있을 겁니다.”가게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서현욱과 고우현은 상인이 아니었기에 주인의 진짜 의도를 알지 못했다.“사장님, 조금 더 깎아주실 수 없나요? 제 아버지를 봐서라도 조금만 더 싼 가격으로 주세요.”서현욱은 부득불 아버지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서 도련님, 이건 이미 시장님 체면을 고려해서 드리는 겁니다.”가게 주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서 도련님이 시장님 아들만 아니었으면 12억은 고사하고 16억이라도 팔지 않았을 겁니다. 백년 영지는 사실 어떤 가격에 판매해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서는 희귀한 약재거든요.”“그래도 12억이라니...”서현욱은 더 실랑이를 펼치려 했으나 고우현이 그를 끊었다.“그만해, 시장 아들인데 고작 12억도 낼 수 없어서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해? 이 영지 12억에 바로 사겠어요.”고우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좋아요, 아가씨는 참 시원시원한 분이네요, 바로 영지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주인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뒤에 있는 직원에게 손짓했다.그러자 직원은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네모난 상자를 안고 신난 모습으로 내려왔다.“영지는 여기 들어있습니다, 서 도련님, 현금으로 결제하시겠어요, 아니면 카드로 하시겠어요?”가게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카드로 하겠습니다.”서현욱은 입꼬리가 움찔하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카드로 결제하려는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요. 이 영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서둘러 서현욱에게 팔지 말아야 했다.서현욱은 즉시 지갑에 있는 모든 신용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몇 분 후, 신용카드 다섯 장을 전부 긁은 후, 1억 4천만을 겨우 모을 수 있었다.서현욱은 그제야 시름 놓고 진서준을 도발하기 시작했다.“진서준, 난 이내 흑기린에 입단할 거야. 그때가 되면 허사연이 날 다시 평가하게 될 거고 넌 내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진서준은 서현욱의 말이 너무 이상했다.소정태가 흑기린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흑기린은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특전대였다.“흑기린은 이제 쓰레기도 막 받아들이게 됐어?”진서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너야말로 쓰레기야.”서현욱은 즉시 반박했다.“내가 흑기린에서 새롭게 태어나면 예전의 모든 원한을 다 갚아줄 거야.”서현욱은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으름장을 놓았다.아무래도 예전에 진서준과 있었던 불쾌한 일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하지만 진서준은 서현욱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난 선생님과 진서준 사이에 무슨 모순이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백년 영지는 내게 꼭 필요한 약재입니다.”소하비가 둘의 대황에 끼어들었다.“내가 200억을 낼 게요. 내게 양보하세요.”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작 14억짜리 물건을 200억에 사겠다니, 이 사람의 부유한 정도가 진심으로 궁금해질 정도였다.서현욱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난 그따위 돈이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진서준과 친구가 아니었다면 팔았을지도 몰라요. 근데 당신이 진서준과 친분이 있다면 2조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친 서현욱은 상자를 열었다.“자, 14억짜리 영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해 봐.”서현욱은 일부러 진서준과 소하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다.서현욱은 상자에서 얼굴 크기만 한 영지를 껴안고 내왔다.영지는 크지만 뜻밖에도 너무 마른 상태
서현욱의 아버지를 부른다고 하자 서현욱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이 일이 서정훈에게 알려지면 흑기린에 입단하는 건 고사하고 서정훈에게 맞아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14억 원을 손해 보는 것이 눈앞에 다가오자 서현욱은 소하비에게 시선을 돌렸다.“선생님, 방금 이 영지를 원하셨죠?”서현욱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조금 전에 보인 교만하고 거만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아까는 원했지만 지금은 필요 없어.”소하비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난 돈이 넘쳐나긴 해도 억 단위를 들이며 이런 나무 덩어리를 사는 바보는 아니야.”소하비가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게 돈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리석은 바보는 아니었다.이 영지는 어떻게 봐도 그냥 쓸모없는 물건이었다.이걸 산다고 해도 그냥 돈 낭비일 뿐이었다.“오해입니다. 이건 나무가 아니라 진짜 영지예요. 믿기지 않으면 냄새라도 맡아보세요. 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선생님이 정 원하신다면 제가 후하게 팔아드릴게요. 10억이면 어때요?”서현욱은 흥정하면서도 속이 찌릿찌릿 아팠다.운 좋게 팔아도 4억을 손해 보게 될 터였고 팔지 못한다면 14억 원을 그대로 날리게 될 것이다.어느 선택이 더 현명한지 서현욱도 잘 알고 있었다.“안 사, 그냥 공짜로 줘도 안 받을 거야.”소하비는 돌아서서 진서준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그때,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 영지, 내가 살게.”“뭐라고?”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놀라서 일제히 물었다.쓰레기가 분명한데 굳이 사겠다니, 진서준이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지 서정훈 시장 아들에게 대놓고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짓이라면 그 대가가 너무 컸다.이건 14만도 아닌 14억이었다.대다수 사람이 평생 일해도 벌 수 없는 거액이었다.“확실한 거야? 장난치는 건 아니지?”서현욱은 혹여나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기 귀를 의심했다.“물론 확실해.”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근
“근데 넌 이게 쓰레기인 걸 번연히 알면서도 돈 주고 사? 미련하기 짝이 없구나!”약재를 사러 온 손님들도 진서준이 구제 불능이라 여겼다.“이 녀석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5억이나 주고 이런 쓰레기를 사? 대체 무슨 의도일까? 그 돈으로 여자라도 꼬시면 얼마나 좋아?”“돈만 많고 머리가 텅텅 빈 바보 도련님 같아. 돈이 많으니까 멍청한 짓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닐까?”사람들이 수군대며 조롱하는데도 진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영지 앞으로 다가가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띠었다.“다들 이렇게 거대한 영지가 왜 말라 죽었을까 궁금하지 않아?”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뭐라고?”다들 진서준의 말에 의아해하며 멈칫했다.진서준의 말대로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듯했다.가게 주인은 순간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왜 말라 죽었죠?”소하비도 무척 궁금했다.진서준은 영지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콰직!얼굴 크기만 한 영지가 순식간에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씨X, 쓰지 않을 거면서 왜 굳이 날 사게 한 거야?”소하비는 저도 몰래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욕설을 터뜨렸다.5억이나 주고 산 물건이 이렇게 한순간에 깨져버리다니, 정신 상태가 이상하지 않고서야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일 수 없었다.서현욱은 그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진서준, 너 진짜 또라이구나.”고우현도 서현욱을 흘겨보며 물었다.“이런 또라이를 넌 또 어떻게 알고 지낸 거야?”다들 지금 이 순간 진서준이 정신 상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상자 속에서 손을 뻗어 영지를 한 번 더 찾았다.그리고 이내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지만 완벽한 혈색을 띤 영지를 꺼내 들었다.이 영지는 정교하고 아담한 크기였고 얼핏 봐도 일반적인 영지가 아닌 것 같았다.“이건 혈령지잖아요?”샛터 왕자답게 눈썰미가 있는 소하비의 눈이 번쩍였다.예전에 한 부자가 소하비에게 이 혈령지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 소하비는
“웃기고 있네. 내가 독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넌 아직 기저귀나 차고 있었을 거야.”바젠은 한껏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아까 진서준에게 철저히 농락당해 분노했던 모습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듯했다.“으아악!”바로 그때, 갑자기 행크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극심한 고통 탓에 행크의 얼굴은 일그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왕자님!”주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무슨 일이죠? 조금 전까진 괜찮으셨잖아요? 갑자기 왜 이런 거죠?”친위대 대장이 굳어진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다.“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연골산 해독제를 만들었는데요.”바젠은 당황해하며 변명했다.하지만 행크의 상태는 아까보다 더 악화하여 보였고 어느새 코에서는 선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인생 선배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내 앞에서 죽게 생겼구나. 내가 처방전을 제대로 써줬는데도 제대로 듣지 않더니 결국 일이 터졌잖아?”“닥쳐! 빈정대는 것도 지금뿐이야. 이따가 왕자님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도 같이 죽을 줄 알아.”바젠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그럼 지금이라도 내 처방전을 들고 다시 가서 해독제를 만들어 오지 그래?”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도발하듯 말했다.만약 바젠이 처음부터 진서준의 말을 들었다면 행크가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뭐해? 지금 당장 해독제를 만들러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정말 우리 형을 여기서 죽게 할 생각이야?”소하비가 갑자기 불쑥 끼어들었다.행크가 여기서 죽는다면 바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바젠은 이를 꽉 악물고 자기가 아까 바닥에 던졌던 처방전을 다시 주워 들고 급히 뛰어나갔다.시간은 일분일초 빠르게 흘러갔다.행크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고 얼굴은 하얀 종이처럼 창백해졌으며 입술엔 핏기가 사라졌다.행크의 모습은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처럼 보였다.“형, 꼭 버텨내야 해.”소하비와 예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행크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완벽하게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젠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분노에 휩싸인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불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겨우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놈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니, 이 치욕은 무릎을 꿇고 사과한 행크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이 빌어먹을 녀석이 감히 날 가지고 놀아?”바젠은 이를 악문 채, 거의 이를 쪼개며 쌍욕을 내뱉었다.“내가 언제 널 가지고 놀았다고 그래? 네가 스스로 착각해서 내가 쇄골수를 사용했다고 착각한 것뿐이지.”진서준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대응했다.“그게 무슨 소리지?”행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왕자님, 이 녀석이 방금 왕자님께 먹인 건 쇄골수가 아니라 연골산입니다.”바젠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연골산이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죠.”“네 이놈! 그럼 왜 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거야?”행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그 모습은 광기에 휩싸인 사자 같았다.“저, 저도 그저 착각한...”“닥치고 얼른 해독제나 만들어 와!”행크는 바젠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바젠의 실수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큰 망신을 당했다.이 일이 고국에 알려진다면 바젠은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마지막 약재는 절대 빠뜨리면 안 돼, 알겠어?”진서준이 차분히 한마디 던졌다.그제야 바젠은 진서준이 처방전에 적어둔 마지막 약재를 발견했다.“이게 정말 해독제 재료가 맞아?”바젠은 화난 목소리로 진서준에게 따졌다.“이 독을 만든 건 나야. 해독제를 뭐로 만들어야 할지 내가 모를 것 같아?”진서준은 도발하듯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흥, 연골산이라면 네 처방전 따위 필요 없어.”바젠은 자신만만하게 진서준이 건넨 처방전을 바닥에 던졌다.진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행크를 쳐다봤다.“봤어? 난 분명 처방전을 줬어. 근데 저 녀석이 안 받은 거야.”“이제 내 두 다리를 치료해 줄 수 있겠지?”행크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샛터 왕자 행크가 명령한다. 당장 내 독을 해독해!”행크는 공포에 질린 채 고함을 질렀지만 바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독약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사람이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진서준은 냉랭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 자기 목숨을 남의 손에 맡기지 말라고 했지?”지금 행크의 목숨은 진서준의 손안에 있었다.행크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뼈를 찢어내는 듯한 고통에 나지막한 신음을 입 밖으로 흘렸다.“해독제를 줘.”“해독제를 원한다고? 물론 줄 수 있지.”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요구를 제시했다.“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해독제를 줄게.”“대한민국 애송이야, 정도껏 해!”바젠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행크는 샛터 왕실 첫째 왕자야. 행크 왕자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넌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그래?”진서준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어차피 난 천한 목숨이야, 죽어도 아무렇지 않지. 근데 저 녀석은 달라. 한 나라의 어엿한 왕자가 한낱 평민인 나랑 목숨을 맞바꾸는 게 과연 가치 있을까? 그리고 저 녀석이 죽더라도 날 찾아내서 잡을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 아니겠어?”“네놈!”바젠은 진서준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맨발인 자는 신발 신은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행크처럼 고귀한 신분이 진서준과 목숨을 맞바꾸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이득이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행크가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면 샛터 왕자는 앞으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마주하겠는가?“좋아, 내가 졌어. 해독제를 줘.”행크는 이를 악물고 패배를 인정했다.고통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기에 행크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였다.이 정도의 고통만 아니었다면 샛터 왕자인 행크는 절대 결코 천한 신분인 진서준에게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다.“내 말 까먹었어? 살고 싶으면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지?”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진서준, 네놈이 감히 날 우롱해?”행크는 진서준의 태
뼈를 도려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순간 밀려왔다.이 순간, 행크는 누군가가 칼로 자기 뼈를 긁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말 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었다.“왕자님, 무슨 일이십니까?”바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독 효과가 나타났네.”진서준은 무심하게 한 마디 던졌다.“이게 중독 현상이라고? 설마 그 맑은 물처럼 보이던 게 진짜 독이었어?”바젠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빈 잔을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하지만 아무리 맡아도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무색무취의 독약은 절대 흔하지 않아.”바젠은 급히 행크에게 다가가 물었다.“왕자님, 지금 어떤 느낌입니까?”“뼈가 아파요... 누가 내 뼈를 망치로 두드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행크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근데 저 녀석은 왜 아직도 멀쩡한 겁니까?”“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바젠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독약은 행크가 더 나중에 마셨는데 지금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건 행크였고 진서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했다.이렇게 신기한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설마 아까 진서준의 말대로 자기가 제조한 독약이 진서준에게는 정말 효과가 없는 걸까?“이봐, 넌 대체 언제 내 독약을 해독한 거야?”바젠은 진서준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분명 말했지? 네 독약은 나한테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진서준은 냉랭하게 대꾸했다.“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 네놈 거짓말하는 거지?”“내가 보기엔 빨리 해독제를 연구해서 저 녀석을 구하는 게 좋겠는데? 안 그러면 저 녀석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야. 그리고 나중에는 뼈와 살까지 전부 녹아서 고름으로 될 거야.”진서준은 행크를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했다.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등골이 서늘해졌다.뼈까지 녹아내리는 독이라니, 얼마나 강력한 독약인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바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네가 만든
바젠은 냉소를 지으며 사람을 시켜 병을 진서준에게 건넸다.진서준은 병을 받아 들고는 별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단숨에 들이켰다.“진서준!”허윤진은 긴장한 나머지 두 손을 꽉 움켜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에 깊게 파고들어 자국을 남길 정도였다.소하비와 예린 남매 역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이 녀석이 독약을 통째로 마시다니,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소하비는 혀를 끌끌 찼다.“이봐, 넌 이제 후회할 기회도 없어. 무릎 꿇고 빌 준비나 해.”행크는 사정없이 진서준을 비웃었고 눈에는 뻔한 우월감이 가득했다.행크는 이미 진서준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 듯했다.바젠도 거만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대한민국 애송이야, 내가 만든 독이 뭔지는 알고 마신 거야?”“알지, 뭐. 오독수에 학정홍을 살짝 섞은 게 아니야?”진서준의 목소리엔 여유가 묻어났다.“이딴 게 독이라면 독이긴 하지. 근데 나한테는 너무 약하다고.”바젠의 눈꺼풀이 떨리며 얼굴이 일그러졌다.독약을 한 번 맛본 것만으로 전부 맞춰냈다니, 이 녀석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바젠 자신도 이런 경지엔 도달할 수 없었다.“바젠 닥터, 도대체 무슨 일이죠? 먹은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왜 이 녀석은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죠?”행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조급해하지 마세요. 아마 약효가 아직 발휘되지 않았을 겁니다.”바젠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진서준이 독의 성분을 알아냈다고 해도 해독할 수는 없을 것이다.바젠이 그 독약에 다른 물질도 추가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바젠은 진서준이 독약을 마신 이후로 해독제를 복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대체 어찌 된 거지? 설마 저 녀석도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포기한 건가?’바젠은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그러는 사이 반나절이란 시간이 더 흘렀다.그럼에도 진서준은 여전히 아무런 중독 현상 없이 멀쩡했다.그 시각, 진서준도 드디어
바젠은 코웃음을 치며 더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독약 제작에 집중했다.진서준 역시 조용히 작업에 몰두했다.현장은 비록 쥐 죽은 듯이 고요했지만 곳곳에 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오빠, 진서준 씨 정말 괜찮을까요?”예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바젠의 독약 제조 실력은 샛터 왕실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바젠은 독약 단 한 방울로 건장한 코끼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그 기술이 뛰어났다.진서준이 비록 의술에 능하지만 독약 제조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업종이 다르면 사실 업종 사이에는 거대한 산이 존재하는 것과 같았다.“아마 별문제 없을 거야. 진서준이 대결을 받아들였으니 뭔가 자신이 있을 테지.”소하비는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몹시 불안했다.소하비는 사실 진서준을 접촉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진서준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하... 다 제 잘못이에요. 저 때문에 진서준 씨와 바젠 선생님이 독약 대결을 하게 된 거잖아요.”예린은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죠? 왜 공주님 잘못인데요?”허윤진은 묘한 위기감을 느꼈다.‘설마 이 외국 여자가 진서준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가? 그래서 이 망나니 같은 녀석이 날 따라오지 말라고 한 거였어?’“전 중병을 앓고 있어요. 제 오빠가 진서준 씨를 모셔 와 치료를 부탁했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이 사실을 몰라요.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께서 큰오빠를 보내 날 데려가려고 하셨지만 진서준 씨가 막으셨어요.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된 거예요.”예린은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그 말을 듣자 허윤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당신들은 대체 누구죠?”“저는 샛터 왕실 공주 예린이고요, 저 사람은 우리 셋째 오빠 소하비 왕자예요. 그리고 저쪽은 우리 큰오빠 행크 왕자예요.”예린이 손짓으로 설명하자 허윤진은 깜짝 놀랐다.“뭐라고요? 샛터 왕실 사람이라고요?”샛터라는 나라 이름만 들어도 대다수 사람이 떠올리는 건 단 하나, 바로 돈이었다.샛터 왕실이라면
“이놈이 드디어 왔구나. 혹시라도 겁먹고 안 올 줄 알았는데.”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행크가 진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죽여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널 조금만 더 기다리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왜 겁먹고 안 오겠어?”진서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행크는 화가 나서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이 녀석이 정말 사람 화나게 하는 데 재간이 있네. 오늘 반드시 네놈을 바닥에 무릎 꿇고 잘못을 빌게 할 거야.”행크는 진서준 같은 괴짜를 처음 만났다.곧이어 행크는 옆에 서 있던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노인은 서양인의 외모가 70%, 동양인의 외모가 30% 정도 섞인 혼혈이었다.“바젠 닥터, 이제부터 닥터님에게 맡기겠습니다.”행크가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서준이 오기 전에 행크는 이미 이번 시합 규칙을 바젠에게 설명해 두었다.바젠은 얼핏 봐도 어려 보이는 진서준을 흘긋 쳐다보며 경멸 어린 눈빛을 보였다.“행크 왕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녀석은 곧 무릎을 꿇고 해독제를 구걸하게 될 겁니다.”바젠의 말투는 이번 승부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진서준 씨, 이 사람은 우리 왕실이 동남아에서 거액을 들여 초빙한 의사입니다. 의술도 대단하지만 독약 제조 기술은 특히 뛰어나다고 해요. 듣기로는 예전에 동남아 묘강에서 한동안 머문 적도 있다던데, 아무쪼록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소하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예린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진서준 씨, 그냥 시합 안 하시면 안 될까요...”하지만 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내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어요.”“이봐, 유언은 다 남겼어?”바젠이 서투른 대한민국어로 진서준을 향해 말했다.진서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바젠을 힐끗 바라본 뒤, 다시 행크에게 시선을 돌렸다.“한의를 모욕한 건 너야. 그러니 내가 이따가 만든 독약은 네가 먹어야 해.”“웃기고 있네, 내가 왜 굳이 먹어야
위험한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진서준은 허윤진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어라? 혹시 서현욱 치료하러 온 거야?”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허윤진이 의아해했다.어제 서현욱을 치료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추가적인 치료가 더 필요한 건가?“아니야. 독약 만드는 시합 하러 온 거야.”진서준이 솔직히 털어놓자 허유진은 깜짝 놀랐다.“뭐라고? 독약 만들기 시합이라고?”독약을 만드는 걸 시합한다는 건 허윤진도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상대가 누구야? 왜 너랑 독약 만들기 시합을 하자는 거야? 위험한 건 아니지?”허윤진은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쏟아냈다.“잠시 후 만나 보면 누군지 알게 될 거야.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서 나도 확신할 수 없어.”진서준이 추가로 설명했다.현재 진서준의 몸은 모든 독이 침투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세상 대부분의 독약은 이미 진서준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설령 위협이 있더라도 진서준은 장청결로 언제든 해독할 수 있었다.“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럼 가지 말고 우리 빨리 돌아가자.”허윤진이 진서준의 팔을 잡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안 돼. 독약 만들자는 건 내가 제안한 거야. 장본인이 여기 오지 않으면 안 되잖아.”진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미쳤어? 독약 만들자는 걸 왜 제안했어?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거야? 우리 언니는 아직 병상에 누워 있어. 너도 거기 함께 눕고 싶어 이러는 거야?”허윤진은 강경한 태도로 한마디 보탰다.“얼른 나랑 집으로 돌아가자.”“윤진아, 이번엔 정말 네 말을 들을 수 없어. 대신 하나만 약속할게. 난 절대 목숨을 위협하는 큰 일을 당하지 않을 거야. 다만 상대방이 무슨 일을 겪을지는 내가 장담 못해.”진서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진서준은 사람을 구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독약을 제조하는 기술도 탁월했다.진서준이 만든 독약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었다.“정말이야?”허윤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당연
“그 자식 혼자 해외에 보내도 나쁠 건 없어. 여기 있어봤자 계속 소란을 피울 거야. 이번에 허성태와 당신 덕분에 저놈이 고자가 되는 신세를 면한 거야. 우리 서씨 가문은 대체 뭘 잘못한 거야? 어떻게 이런 불효자식이 태어날 수가 있어?”서정훈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서정훈과 아내는 타고난 천재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신분도 높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엘리트라고 할 수 있었다.그런데 서현욱은 왜 이런 꼴로 사는 걸까?서정훈 부부는 서현욱의 교육에 심혈을 전부 퍼부었지만 자식 농사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그만해요, 화 좀 풀어요. 이따가 서준이 나오면 제대로 고맙다고 전해야죠.”심해윤이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어떻게 고맙다고 전할 건데?”서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서준은 돈도 부족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도 우리보다 훨씬 높아. 우리가 과연 어떻게 감사하다고 말해야 해? 우리 집이 서준에게 진 빚은 아마 평생 갚지 못할 거야.”서정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서정훈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지금 돈도 부족하지 않았고 직급도 서정훈보다 훨씬 높았다.돈과 권력으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솔직히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그건 맞는 말이에요..”심해윤도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둘이 고민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병실에서 나왔다.“서준아, 어떻게 됐어?”심해윤이 초조한 얼굴로 묻자 진서준이 이내 대답했다.“괜찮아요, 어머님. 이 약제를 하루에 한 번만 발라주시면 반달 후엔 다 나을 겁니다.”진서준은 나머지 약제를 병실에 뒀다.약을 바르는 일은 누군가에게 맡기면 되니 진서준이 굳이 매일 올 필요는 없었다.진서준도 요새 할 일이 너무 많았다.“정말 고마워, 서준아.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심해윤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괜찮아요, 어머님.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진서준은 빙그레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남편이랑 함께 널 배웅해 줄게.”“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