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30초 정도 조민영의 맥을 짚고 나서 손을 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독이 이미 깊이 퍼졌습니다. 제가 먼저 은침으로 병세를 완화하죠. 이후 천산설련을 구해 오면 완전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진서준이 조민영의 상태에 관해 설명했다.“네? 용존님께서 병을 치료할 줄도 아는 건가요?”조태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요,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는 게 사실 제 본업입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이 말에 조태희와 집사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사람을 살리는 게 본업이라니, 성약당의 장로들조차 감히 이런 허세를 부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용존님, 제 동생 조기강이 이미 천산에 가서 천산설련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조태희의 제안에 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저도 천산에 가보겠습니다. 둘이 찾으면 천산설련을 발견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요.”진서준이 천산으로 가려는 이유는 단순히 조민영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진서준은 동생 진서라를 위해 천산빙련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빙련과 설련은 이름은 물론 생김새까지 매우 비슷하지만 약효는 완전히 달랐다.동생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 진서준은 조금의 실수도 허용할 수 없었다.“용존님께서 저희 조씨 가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조태희는 감격스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조태희는 진서준이 조민영을 위해 천산에 가려는 줄로만 알았다.사실 천산에 가는 목적은 조민영 외에도 진서라의 몫이 컸다.“먼저 은침을 가져오세요. 제가 민영 씨 체내 독소를 조금 완화하겠습니다.”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내일 해 질 녘까지 제가 천산설련을 찾든 찾지 못하든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근데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민영 씨 몸에 꽂힌 은침을 절대 빼지 마세요. 알겠습니까?”조태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용존님, 안심하셔도 됩니다.”곧 은침이 준비되었고 진서준은 간호사에게 조민영의 외투를 벗겨 달라고 부탁했다.이후 진서준은 조민영의 가슴과 단전 부위에
그 날카롭고 매서운 얼굴의 중년 여성은 바로 허준서의 어머니 강정숙이었다.허준서가 성약당에 선발된 이후, 강정숙은 허씨 가문의 다른 가족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허씨 가문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강정숙은 목이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갈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허사연 자매를 보자마자 강정숙은 자기 아들 자랑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다.하지만 아들이 이들 자매와 원한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태도가 확 달라졌다.“엄마, 제 다리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지 아세요?”허준서는 독기 어린 눈길로 허사연 자매를 쏘아보았다.“설마 이 애들 때문이야?”강정숙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바로 이 애들이에요.”“헛소리하지 마! 네 다리는 우리 집 누렁이가 물어서 그렇게 된 거잖아. 개도 못 이기면서 무슨 낯짝으로 그런 헛소리를 해?”허윤진은 화가 나 언성을 높였다.“내가 너라면 벌써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을 거야.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 얼굴 들고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허윤진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히자 허준서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누렁이는 사실 개가 아니라 영지가 깃든 사자였지만 허준서는 누렁이를 개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너... 너!”허준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허윤진을 가리키며 말문이 막혔다.허준서가 허윤진의 욕설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자 강정숙이 대화에 끼어들었다.“어디서 이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가 굴러와 막말하고 있어? 네 집 개를 제대로 묶어두지도 않고 우리 아들을 탓해? 우리 아들이 짐승을 못 이겼다고 치자. 넌 뭐 짐승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우리 집 사자개와 붙어볼래?”“물론이죠. 아줌마 아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증명하고 싶다면 한번 시원하게 붙어보죠.”허윤진은 비웃으며 말했다.이전 같았으면 허윤진은 사자개와 싸우는 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지만 지금은 달랐다.허윤진의 눈에 사자개는 단지 보잘것없는 장난감일 뿐이었다.허윤진은 지금 자기 주먹 한 방으로 사자개의 정신을
이 여자가 선천적으로 괴력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허준서는 충격에 휩싸여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섰고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두 손을 꽉 쥔 채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자기가 정말 여자의 힘에도 못 미치고 짐승보다도 못한 건가?강정숙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대성통곡하며 쓰러진 검정이에게 달려가 꽉 껴안고 울분을 쏟아냈다.“아이고 내 새끼야!”“아줌마, 짐승 하나 죽은 거잖아요. 아들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울 필요가 있나요?”허윤진이 웃으면서 비꼬았다.“아니, 설마 이 짐승이 아줌마한테는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던 거예요?”강정숙은 검정이가 아들이라고 우기려다가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그렇게 말하면 자기 아들 허준서가 짐승이라는 것과 같았다.“이 빌어먹을 계집이 감히 우리 검정이를 죽여?”강정숙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불길이 뿜어져 나올 듯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하지만 허윤진은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후후, 애초에 아줌마가 기른 짐승이 너무 약했던 거죠. 왜 날 탓하는 거죠?”“그만해, 윤진아. 아줌마랑 더 이상 싸우지 마. 두 아들이 모두 너보다 못한 걸 인정 못 하시는 거겠지.”허사연이 한마디 더 얹자 강정숙과 허준서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허준서는 지금 당장 칼이라도 들고 허사연 자매와 결판을 내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실력을 떠올리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사자개조차 허윤진의 주먹 한 방에 죽었는데 불구자가 된 자기가 싸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뭐가 그리 시끄러워? 뒷마당에 있는데도 시끄러운 소리가 다 들리더구나.”그때, 한 노인이 뒷마당에서 걸어 나왔다.노인을 보자마자 허준서는 다급히 말했다.“할아버지, 제발 저 대신 저 여자들을 혼내주세요. 제 다리가 이렇게 된 건 다 저 여자들이 키운 개 때문이에요.”울상을 한 허준서가 노인에게 호소했다.노인의 이름은 허순재였고 허준서의 친할아버지이자 허사연 자매의 작은할아버지였다.허사연 자매가 이전에 집에 돌아왔을 때도 그나마
“진서준 씨, 모범수로 조기 석방되었습니다.”높은 담장 밖엔 잡초가 무성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진서준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먼 곳을 바라봤다. 두 눈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감옥에 있는 3년 동안 엄마랑 서라는 잘 있나 모르겠네.”감옥에 갇힌 3년 동안 엄마와 여동생은 단 한 번도 그를 면회하러 오지 않았다. 이에 진서준은 걱정이 스치기 마련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서준은 헝겊을 가득 꿰맨 가방에서 편지 한 통 꺼냈다.편지봉투를 열자 안에는 쪽지와 ‘천기각’이라고 새겨진 옥패 한 개가 들어 있었다.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옥패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아마 가장 좋은 화씨 옥으로 조각한 듯싶다.진서준은 옥패를 허리춤에 차고 쪽지를 펼쳐보았는데 단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서준아, 넌 앞으로 천기각의 주인이고 이 옥패가 바로 그 증표야.」「내년 3월 꽃 필 무렵에 옥패를 가지고 신농산에 가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다.」이건 진서준이 출소 전에 감방 동기 구창욱 어르신께 받은 편지이다.구창욱 어르신은 종일 신경질적이어서 감방에 아무도 그와 얘기 나누려는 자가 없다. 오직 진서준만 별일 없을 때 어르신을 찾아와 얘기를 나눈다.어르신은 매일 자신이 천기각 주인이라고 허풍을 치셨다. 천문학과 지리학을 꿰뚫고 의술도 뛰어나다고 하셨다.진서준은 애초에 어르신이 자신을 속이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어르신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온갖 기이한 것들을 배우면서 조금씩 어르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3년 동안 진서준은 많은 재능을 습득했다.이젠 그의 두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감옥에 들어온 이유는 바야흐로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3년 전 진서준은 여자 친구 유지수와 함께 갓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어느 한 비즈니스 미팅에서 이지성이라는 바이어가 유지수를 탐내면서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다.진서준은 한창 젊고 패기가 넘쳐 술병을 번쩍 들더니 이지성의 얼굴에 가차 없이 내리쳤다.결국...
유지수가 이지성에게 시집갔다고?본인은 그녈 위해 감방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정작 유지수는 원수 놈에게 시집갔단 말인가?진서준의 두 손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고 눈가에 살의가 굳었다.조희선은 손으로 가볍게 얼굴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돈을 모으기 위해 그녀는 유지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는 집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일전 한 푼 내놓지 않았고 심지어 조희선에게 고액 연봉의 일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그 당시 조희선은 그녀에게 엄청 고마워하기까지 했다!하지만 정작 유지수가 소개한 직장에 와 보니 그녀를 기다리는 건 배불뚝이가 된 몇몇 중년 남성들이었다.조희선은 일이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눈치채고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상대가 그녀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절망의 끝자락에 다다른 조희선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 제 얼굴을 그었다.그녀의 얼굴에 난 험상궂은 긴 흉터에 놈들은 분노가 차올라 그녀의 양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길바닥에 내던졌다.진서라가 퇴근하고 마침 그 길을 지나며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조희선은 일찌감치 죽었을 것이다!“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 내가 조만간 아작을 내고 말겠어. 죽지 못해 사는 고통이 뭔지 보여줄게!”진서준은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주먹으로 양철 벽에 구멍을 냈다.조희선은 연신 머리를 내저으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준아, 이제 막 나왔는데 또 싸워서 들어가면 어떡해! 일자리 구해서 열심히 일해. 더는 사고 치지 말고.”진서준은 손등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온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처럼 울화가 치밀었다.“그래도 이건 도저히 못 참겠어요!”이때 거친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왔다.“할망구, 돈 갚아야지!”순간 조희선의 수척해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극도로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진서준이 미간을 구기고 나가려 하자 조희선이 재빨리 그를 잡아당겼다.“서준아, 너 여기서 꼼짝 마. 엄마가 알아서 할게.”조희선의 애원하는 눈빛에 진서준은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진서준은 엄마를 보더니 몸에 스친 살의가 일찌감치 사라졌다.“엄마, 내가 감방에서 아주 대단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내게 무술과 의술을 가르쳐줬어요. 엄마 얼굴에 난 상처랑 부러진 다리까지 전부 치료해 드릴게요.”가슴이 움찔거렸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네가 이런 마음을 지닌 건 고맙지만 엄마는 네가 참 걱정이구나! 절대 두 번 다시 사고 치지 말아. 일자리 찾아서 이씨 일가에 진 빚을 다 갚고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꾸나.”진서준이 엄마를 다독이며 대답했다.“네, 엄마 말 들을게요. 지금 바로 나가서 일자리 찾아볼게요.”“그래, 일찍 돌아오너라. 이따가 서라한테 전화해서 퇴근하고 올 때 너 먹일 영양제 좀 사 오라고 해야겠어.”조희선은 마음속에 어렴풋이 희망이 생겨났다.집을 나선 진서준은 깊은 눈동자 속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지난날의 피맺힌 원한을 오늘 반드시 백 배로 갚게 해 줄 거야!’...“아빠, 조금만 버텨요. 병원 거의 다 왔어요! 언니, 좀 더 빨리 몰아!”창백한 얼굴에 겨우 숨을 몰아쉬는 아빠를 보며 허윤진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울지 마, 윤진아. 아빠 괜찮아.”허성태가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콰당!전력 질주하던 마이바흐가 갑자기 급정거했고 뒤에 앉은 허성태 부녀가 화들짝 놀랐다.허윤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언니, 왜 갑자기 급정거해?”운전하던 허사연이 안전벨트를 풀고 허둥지둥 차 문을 열었다.“나 사람 쳤어!”“뭐?”허 씨네 세 부녀가 함께 차에서 내렸다.진서준은 안 그래도 화가 나 있었는데 차에 부딪히기까지 하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운전 어떻게 하는 거야? 똑바로 못 해?!”그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병원 모시고 가서 검사시켜 드릴까요?”허사연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에 진서준은 분노가 많이 가라앉았다.한편 뒤에 서 있는 허윤진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언니, 이딴 사람에게 왜
두 자매가 아무리 의술을 몰라도 아빠의 혈색으로 보아 확실히 병세를 진정시켜 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앞의 이 미쳐 날뛴 소년이 구해주었다!허성태가 비스듬히 눈을 떴다. 가슴에 꽉 막혔던 그 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아빠, 괜찮으세요?”허윤진이 감격에 겨워하며 물었다.“괜찮아. 아까보다 몸이 훨씬 개운해진 것 같구나.”허성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꼼꼼한 허사연은 아빠 몸에 꽂은 은침을 아직 빼내지 않았다는 걸 바로 발견했다.그녀가 막 빼내려 할 때 진서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움직이지 말아요! 지금 잠시 아버님 병세를 진정시켜 드렸을 뿐이에요. 침은 아직 빼면 안 돼요.”일곱 개의 은침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허성태의 몸에 꽂혀 있었다.이것은 청하13침 중의 일곱 번째 침, 이름하여 연명침이다!허성태가 두 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겨운 눈길로 진서준을 쳐다봤다.“살려줘서 고맙네 젊은이!”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따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줘서 아버님을 구해드린 겁니다.”허사연과 허윤진은 진서준이 방금 말한 그 일이 떠올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두 사람 중 한 명만 진서준과 결혼하면 그녀들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뜻밖에도 둘 다 시집가게 생겼으니 차오르는 수치심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 무슨 부탁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허성태가 의아한 듯 물었다.그는 방금 혼미 상태에 빠져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아버님을 구해드리면 제게 20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진서준이 말했다.이건 허윤진이 방금 꺼낸 얘기이다.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하는 건 단지 오만한 허윤진을 처벌하기 위한 진서준의 장난일 뿐이다.설사 결혼한다고 해도 허사연처럼 온화하고 착한 언니와 결혼하겠지.진서준이 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해야 한다는 일을 언급하지 않자 그제야 허사연 자매도 본인들이 놀림을 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안도의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허윤진은 또다시 울화가 치밀었다.‘우리 두 자매가 설마
“그 파렴치한 년과 결혼을 안 했으니 망정이지!”진서준이 싸늘한 눈길로 말을 내뱉었다.“안 그러면 당신들 같은 집구석에 걸려들었을 거잖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꿈에 나올까 봐 두렵네.”유건우는 바닥에서 일어났는데 입이 삐뚤어 바보 꼴이 되었다.“감히 날 때려? 매형에게 이를 거야. 너 또 감방에 처넣을 거라고!”그는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다.진서준의 눈 밑에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다.“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내가 이미 나왔으니 이지성과의 원한은 반드시 결판을 낼 거야!”말을 마친 진서준은 몸을 홱 돌리고 계단을 내려갔다.이제 막 오션 호텔로 출발하려 할 때 주머니 속의 옛날 폰이 갑자기 울렸다.전화를 받자 허사연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서준 씨, 얼른 병원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빠가 위급해요!”“또 위독해지셨어요?”진서준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그는 청하13침 중의 전 일곱 침으로 허성태의 병세를 안정시켰고 은침을 뽑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지금 위급하다는 건 누군가가 허성태의 은침을 건드렸다는 뜻이다.“지금 어느 병원이죠?”진서준이 물었다.“서울 병원에 있어요. 얼른 와보세요, 얼른요!”전화를 끊은 후 허사연은 병실로 돌아가 낯빛이 창백한 아빠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허윤진의 예쁘장한 얼굴도 사색이 되었고 두 눈에 두려움으로 휩싸였다.허성태가 이렇게 된 건 오롯이 허윤진이 설쳐댔기 때문이다.병원에 도착한 후 허사연은 화장실에 다녀왔다.그녀가 화장실로 간 틈을 타 허윤진이 아빠의 몸에 꽂은 은침을 보더니 또다시 진서준의 당부와 그 거만한 자태가 떠올라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그녀는 몰래 은침 한 개를 뺐는데 아빠의 상태가 급격히 저하됐다.허윤진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병원 의사들도 이 상황을 보더니 전부 속수무책이었다.허사연 자매가 착잡해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병실로 들어왔다.“서준 씨!”허사연이 재빨리 앞으로 마중 가며 진서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차가운 섬섬옥수에 따
이 여자가 선천적으로 괴력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허준서는 충격에 휩싸여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섰고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두 손을 꽉 쥔 채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자기가 정말 여자의 힘에도 못 미치고 짐승보다도 못한 건가?강정숙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대성통곡하며 쓰러진 검정이에게 달려가 꽉 껴안고 울분을 쏟아냈다.“아이고 내 새끼야!”“아줌마, 짐승 하나 죽은 거잖아요. 아들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울 필요가 있나요?”허윤진이 웃으면서 비꼬았다.“아니, 설마 이 짐승이 아줌마한테는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던 거예요?”강정숙은 검정이가 아들이라고 우기려다가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그렇게 말하면 자기 아들 허준서가 짐승이라는 것과 같았다.“이 빌어먹을 계집이 감히 우리 검정이를 죽여?”강정숙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불길이 뿜어져 나올 듯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하지만 허윤진은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후후, 애초에 아줌마가 기른 짐승이 너무 약했던 거죠. 왜 날 탓하는 거죠?”“그만해, 윤진아. 아줌마랑 더 이상 싸우지 마. 두 아들이 모두 너보다 못한 걸 인정 못 하시는 거겠지.”허사연이 한마디 더 얹자 강정숙과 허준서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허준서는 지금 당장 칼이라도 들고 허사연 자매와 결판을 내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실력을 떠올리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사자개조차 허윤진의 주먹 한 방에 죽었는데 불구자가 된 자기가 싸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뭐가 그리 시끄러워? 뒷마당에 있는데도 시끄러운 소리가 다 들리더구나.”그때, 한 노인이 뒷마당에서 걸어 나왔다.노인을 보자마자 허준서는 다급히 말했다.“할아버지, 제발 저 대신 저 여자들을 혼내주세요. 제 다리가 이렇게 된 건 다 저 여자들이 키운 개 때문이에요.”울상을 한 허준서가 노인에게 호소했다.노인의 이름은 허순재였고 허준서의 친할아버지이자 허사연 자매의 작은할아버지였다.허사연 자매가 이전에 집에 돌아왔을 때도 그나마
그 날카롭고 매서운 얼굴의 중년 여성은 바로 허준서의 어머니 강정숙이었다.허준서가 성약당에 선발된 이후, 강정숙은 허씨 가문의 다른 가족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허씨 가문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강정숙은 목이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갈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허사연 자매를 보자마자 강정숙은 자기 아들 자랑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다.하지만 아들이 이들 자매와 원한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태도가 확 달라졌다.“엄마, 제 다리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지 아세요?”허준서는 독기 어린 눈길로 허사연 자매를 쏘아보았다.“설마 이 애들 때문이야?”강정숙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바로 이 애들이에요.”“헛소리하지 마! 네 다리는 우리 집 누렁이가 물어서 그렇게 된 거잖아. 개도 못 이기면서 무슨 낯짝으로 그런 헛소리를 해?”허윤진은 화가 나 언성을 높였다.“내가 너라면 벌써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을 거야.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 얼굴 들고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허윤진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히자 허준서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누렁이는 사실 개가 아니라 영지가 깃든 사자였지만 허준서는 누렁이를 개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너... 너!”허준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허윤진을 가리키며 말문이 막혔다.허준서가 허윤진의 욕설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자 강정숙이 대화에 끼어들었다.“어디서 이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가 굴러와 막말하고 있어? 네 집 개를 제대로 묶어두지도 않고 우리 아들을 탓해? 우리 아들이 짐승을 못 이겼다고 치자. 넌 뭐 짐승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우리 집 사자개와 붙어볼래?”“물론이죠. 아줌마 아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증명하고 싶다면 한번 시원하게 붙어보죠.”허윤진은 비웃으며 말했다.이전 같았으면 허윤진은 사자개와 싸우는 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지만 지금은 달랐다.허윤진의 눈에 사자개는 단지 보잘것없는 장난감일 뿐이었다.허윤진은 지금 자기 주먹 한 방으로 사자개의 정신을
진서준은 30초 정도 조민영의 맥을 짚고 나서 손을 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독이 이미 깊이 퍼졌습니다. 제가 먼저 은침으로 병세를 완화하죠. 이후 천산설련을 구해 오면 완전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진서준이 조민영의 상태에 관해 설명했다.“네? 용존님께서 병을 치료할 줄도 아는 건가요?”조태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요,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는 게 사실 제 본업입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이 말에 조태희와 집사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사람을 살리는 게 본업이라니, 성약당의 장로들조차 감히 이런 허세를 부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용존님, 제 동생 조기강이 이미 천산에 가서 천산설련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조태희의 제안에 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저도 천산에 가보겠습니다. 둘이 찾으면 천산설련을 발견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요.”진서준이 천산으로 가려는 이유는 단순히 조민영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진서준은 동생 진서라를 위해 천산빙련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빙련과 설련은 이름은 물론 생김새까지 매우 비슷하지만 약효는 완전히 달랐다.동생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 진서준은 조금의 실수도 허용할 수 없었다.“용존님께서 저희 조씨 가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조태희는 감격스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조태희는 진서준이 조민영을 위해 천산에 가려는 줄로만 알았다.사실 천산에 가는 목적은 조민영 외에도 진서라의 몫이 컸다.“먼저 은침을 가져오세요. 제가 민영 씨 체내 독소를 조금 완화하겠습니다.”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내일 해 질 녘까지 제가 천산설련을 찾든 찾지 못하든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근데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민영 씨 몸에 꽂힌 은침을 절대 빼지 마세요. 알겠습니까?”조태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용존님, 안심하셔도 됩니다.”곧 은침이 준비되었고 진서준은 간호사에게 조민영의 외투를 벗겨 달라고 부탁했다.이후 진서준은 조민영의 가슴과 단전 부위에
진서준은 서둘러 조씨 가문의 원로 집사를 부축해 일으켰다.“어르신,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조씨 가문 가주님께 몇 가지를 여쭙고자 왔을 뿐입니다.”집사는 몸을 일으키며 진서준에게 말했다.“용존님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우리 조씨 가문에 지금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주님도 그 일 때문에 요새 예민하셔서 차라리 저에게 직접 물어보시지요. 제가 아는 건 숨기지 않고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조씨 가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진서준은 순간 움찔했다.혹시 그 일이 조민영과 관련된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였다.잠시 고민하던 진서준은 말문을 열었다.“저는 조씨 가문 가주님의 딸 조민영 씨와 친구 사이입니다. 어제 봉천시에 도착해서 민영 씨에게 연락을 시도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와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러 온 겁니다.”진서준이 조씨 가문 아가씨 친구라는 말을 들은 노인은 깜짝 놀랐다.진서준이 얻은 용존이라는 이름의 명성은 이미 대한민국 모든 명문대가에 널리 퍼져 있었다.이토록 뛰어난 젊은 천재가 조씨 가문과 연을 맺게 된다면 가문의 위세가 크게 올라갈 게 분명했다.노인은 속으로 기쁘긴 했지만 동시에 걱정스러운 기색도 감출 수 없었다.칠채지독에 중독된 조민영이 그 독을 버텨내지 못하고 병상에서 생을 마감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조민영이 정말 병상 위에서 죽게 된다면 진서준이 아무리 조민영의 친구라 하더라도 조씨 가문을 위해 힘을 써줄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용존님, 걸으며 말씀 나누시지요.”집사는 진서준을 안으로 안내하며 말을 이어갔다.“우리 집 아가씨가 칠채지독에 걸려 병상에 누운 지 한참입니다.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데 지금 상태로선 오래 버티기 어려울 듯합니다...”“뭐라고요?”진서준은 그 말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조민영이 하필이면 악명 높은 칠채지독에 중독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칠채지독에 관해 진서준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이 독은 제작이 매우 어렵기로 유명하고
그런데 진서준이 자기 애인을 보러 온 것임을 깨닫자 자연스레 투덜댔다.허사연의 눈빛 또한 장난기가 가득했다.“서준아, 대체 언제 그 조씨 가문 가주 딸이랑 특별한 관계로 엮인 거야?”진서준은 곧바로 쓴웃음을 지으며 해명에 나섰다.“오해야, 나랑 조민영은 그런 사이 아니야. 우리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고 난 그 아이를 단지 여동생처럼 생각할 뿐이야. 그 아이만 보면 꼭 서라를 보는 것 같거든.”진서준이 조민영을 여동생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듣자 허사연 자매의 싸늘한 분위기가 금세 누그러졌다.제아무리 지선까지 처치했던 진서준이지만 허사연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건 긴장하고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다.“여동생처럼 생각하는 거라면 괜찮아.”허사연이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조민영은 이제 막 성인이 됐어. 이따가 그 아이를 만나면 그 아이가 서라랑 얼마나 비슷한지 알게 될 거야.”진서준이 덧붙여 설명했다.처음에 진서준이 조민영을 돕기로 결심했던 것도 조민영의 성격이 진서라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너 혼자 그 조씨 가문 아가씨 만나러 가봐. 우리 둘은 고향에 좀 들러볼게.” 허사연이 말에 진서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향에 가?”“그래, 우리 고향이 여기 봉천시거든. 근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오지 못했어. 이번 기회에 한 번 들려보려고 해.”허사연이 설명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허사연이 따로 얘기하지 않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허사연이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고향에 온 횟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그래,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진서준은 손으로 전화 거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응, 너도 조심하고. 낯선 여자한테 홀리지 않도록 조심해.”허사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순간 움찔했다.지금 진서준은 더 이상 다른 여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허사연, 김연아, 서지은만으로도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또 다른 배수정 같은
곧 설표 특전대의 목욕탕에서 귀신 울음소리 같은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약효가 너무 강렬해 모두가 뼈가 분해되어 다시 조립되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이 고통이 심할수록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의 공포스러움이 증명되었다.한 시간 후, 설표 특전대 전원이 귀청이 터질 듯한 환호성을 질렀다.다들 일제히 경지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본인의 실력이 이전과 비교해 몇 배는 더 강해진 게 확실했다.내공 무인이었던 장서안을 비롯한 몇몇 장병들은 단숨에 내력 절정 경지에 이르러 종사 경지까지 단 한 걸음 남겨둔 상태였다.심지어 무인조차 아니었던 나머지 장병들도 내공 무인이 되어 진기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이 순간, 모두가 진서준을 신처럼 숭배하기 시작했다.“진 교관님, 정말 우리 부모와 같은 은인이십니다.”“진 교관님, 앞으로 무슨 명령이든 말씀만 하시면 그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겠습니다!”“교관님이 주신 처방전과 새로 개량된 열풍권 덕분에 이번 8군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할 수 있을 겁니다.”기쁨에 찬 장병들의 모습을 보며 진서준도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이들은 진서준이 직접 가르친 병사들이었기에 그의 눈에 반쯤은 자기 자식 같은 존재였다.자기 자식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본 부모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들 열심히 수련해. 그리고 15일 후에 처방전을 한 번 더 사용해. 난 일이 있어 먼저 떠나야겠어.”진서준이 떠난다는 말을 듣자 다들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이탈을 원치 않았다.진서준이 부대에 온 지 고작 이틀 만에 병사들의 태도를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진서준이 조금만 더 머물러준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설표 특전대원들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전당인 전신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전신전은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전당이었다.전신전에 소속한 인원은 극히 적어 단 50명뿐이었지만 이 50명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정점에 선 존재들이었다.장서안을 포함한
“정말 중요한 친구 한 명이 연락이 닿지 않아서요. 빨리 가서 확인해 봐야 합니다.”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우선 설표 특전대원들에게 이번에 도착한 약재로 샤워부터 하게 해주세요. 병사들이 전부 사용하고 나면 그때 떠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아, 맞다, 진 교관님, 이번에 설표 특전대가 8군 대회에서 우승만 하면 제가 교관님을 위해 신청한 군 계급도 곧 내려올 겁니다.”소정태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군 계급을 신청하다니?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제 권한으로는 소장 계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표 특전대가 우승하면 다른 7개 특전대도 진 교관님을 모시려 들겠죠. 그때가 되면 교관님은 곧바로 중장으로 승진할 겁니다.”소정태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장군 계급은 수많은 군인의 꿈이자 목표였다.하지만 평생을 전장에 바쳐도 고작 위관 계급에서 머무는 군인이 허다했다.그런데 진서준은 위관과 교관 계급을 건너뛰고 바로 소장이 될 수 있었다.이는 최근 군 역사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소정태는 진서준이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다.진서준의 훈련을 받은 설표 특전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특히 개량된 열풍권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이 훈련 덕분에 설표 특전대는 향후 임무 수행 중 생존율과 완수율 모두 크게 높아질 터였다.대한민국 8대 특전대 임무는 항상 국가의 핵심 이익과 연관이 있는 중요한 임무였다.임무 완수율이 높아지면 국가에도 막대한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사실 진서훈이 직접 나서 군 고위층에 요구한다면 진서준은 중장이 아니라 상장까지도 바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었다.단 한 번의 보해 전투만으로도 진서준은 소장 계급에 오를 자격을 충분히 입증했다.진서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제가 군에 머물 시간이 없어서요. 장군 계급은 좀...”“아니요, 절대 교관님을 강제로 군에 묶어두진 않습니다.”소정태가 급히 해명했다.“교관님께 드리는 군 계급은 국안부 상경과 같은 개념입니다. 별다른
조태희가 강 종사를 같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자 조기강은 순간 망설였다.“형, 강 종사는 집에 남겨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근데 천산 근처에 대요괴가 출몰하는데 너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조태희의 얼굴엔 우려가 가득했다.동북 천산은 사계절 내내 눈이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바로 그 근처에 거대한 요괴가 출몰하기 때문이었다.천산 아래에는 영맥이 흐르고 있어 그 지역 동물들이 영기를 흡수하며 영지를 얻곤 했다.예컨대 얼마 전 진서준이 보운산에서 길들인 누렁이도 그런 대요괴 중 하나였다.조기강은 최근 연이어 전투를 치르며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그런 조기강을 혼자 천산으로 보내는 건 조태희에게도 불안한 일이었다.“대요괴를 만나면 내가 이길 순 없더라도 도망칠 수는 있어.”조기강이 단호하게 말했다.“강 종사가 나와 함께 가면 우리 가문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변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이 틈을 타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래?”조기강의 눈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심씨 가문이 이번 가문 사이 혼인을 제안하면서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도 몰랐다.겉으론 결혼을 빌미로 선의를 베푸는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도 컸다.조기강의 뜻을 이해한 조태희는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결국 동생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기강아, 정말 조심해야 해. 너까지 민영 때문에 다치면 내가 정말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조태희는 동생의 손을 붙잡으며 진심으로 당부했다.40년 넘게 이어진 형제애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만약 조기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조태희는 아마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조기강은 간단히 짐을 챙기고 곧바로 차를 타고 북쪽 천산으로 향했다.조기강이 봉천시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 모두 이 소식을 접했다.그러나 두 집안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마치 조기강이 봉천시를 떠난 사실조차 모르는 듯한 태도
“좋아요, 번거롭게 해드려 미안하네요.”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후, 소정태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에게 방 세 개를 준비했다.방은 별로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고 깔끔했고 필요한 물건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조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벨이 오래 울렸음에도 아무도 받지 않자 진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진서준이 전화를 몇 번 더 걸어봤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조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지난번 양씨 가문에서 조민영은 자기 목숨을 걸고 진서준 앞을 막아섰다.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진서준은 조민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조민영은 이미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모레쯤 조씨 가문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봉천시.조씨 가문 저택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조씨 가문의 개인 병원 병실 내 조민영이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조민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숨결이 미약했으며 기운은 극도로 쇠약했다.조민영 곁에는 조태희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대머리 남성이 서 있었다.“장 의사님, 제 딸 상태가 어떻습니까?”조태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장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가주님, 따님께서 단순히 병에 걸린 것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문제는 병이 아니라 중독된 겁니다.”딸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조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중독이라고? 언제 중독된 거지? 내가 왜 몰랐지?’“무슨 독에 중독된 겁니까?”지금 범인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은 딸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딸을 살린 후에 범인을 찾아도 늦지 않았다.“민영 아가씨 상태를 보아하니 칠채지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이 독은 오독의 독액에 빙정과 천산설련을 섞어 만든 무색무취의 독입니다.”장 의사가 자세하게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들은 조태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빙정과 천산설련은 매우 희귀한 약재로 천지산 근처에서만 발견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