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번거롭게 해드려 미안하네요.”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후, 소정태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에게 방 세 개를 준비했다.방은 별로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고 깔끔했고 필요한 물건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조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벨이 오래 울렸음에도 아무도 받지 않자 진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진서준이 전화를 몇 번 더 걸어봤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조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지난번 양씨 가문에서 조민영은 자기 목숨을 걸고 진서준 앞을 막아섰다.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진서준은 조민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조민영은 이미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모레쯤 조씨 가문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봉천시.조씨 가문 저택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조씨 가문의 개인 병원 병실 내 조민영이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조민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숨결이 미약했으며 기운은 극도로 쇠약했다.조민영 곁에는 조태희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대머리 남성이 서 있었다.“장 의사님, 제 딸 상태가 어떻습니까?”조태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장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가주님, 따님께서 단순히 병에 걸린 것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문제는 병이 아니라 중독된 겁니다.”딸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조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중독이라고? 언제 중독된 거지? 내가 왜 몰랐지?’“무슨 독에 중독된 겁니까?”지금 범인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은 딸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딸을 살린 후에 범인을 찾아도 늦지 않았다.“민영 아가씨 상태를 보아하니 칠채지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이 독은 오독의 독액에 빙정과 천산설련을 섞어 만든 무색무취의 독입니다.”장 의사가 자세하게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들은 조태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빙정과 천산설련은 매우 희귀한 약재로 천지산 근처에서만 발견될 수
조태희가 강 종사를 같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자 조기강은 순간 망설였다.“형, 강 종사는 집에 남겨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근데 천산 근처에 대요괴가 출몰하는데 너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조태희의 얼굴엔 우려가 가득했다.동북 천산은 사계절 내내 눈이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바로 그 근처에 거대한 요괴가 출몰하기 때문이었다.천산 아래에는 영맥이 흐르고 있어 그 지역 동물들이 영기를 흡수하며 영지를 얻곤 했다.예컨대 얼마 전 진서준이 보운산에서 길들인 누렁이도 그런 대요괴 중 하나였다.조기강은 최근 연이어 전투를 치르며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그런 조기강을 혼자 천산으로 보내는 건 조태희에게도 불안한 일이었다.“대요괴를 만나면 내가 이길 순 없더라도 도망칠 수는 있어.”조기강이 단호하게 말했다.“강 종사가 나와 함께 가면 우리 가문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변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이 틈을 타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래?”조기강의 눈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심씨 가문이 이번 가문 사이 혼인을 제안하면서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도 몰랐다.겉으론 결혼을 빌미로 선의를 베푸는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도 컸다.조기강의 뜻을 이해한 조태희는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결국 동생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기강아, 정말 조심해야 해. 너까지 민영 때문에 다치면 내가 정말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조태희는 동생의 손을 붙잡으며 진심으로 당부했다.40년 넘게 이어진 형제애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만약 조기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조태희는 아마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조기강은 간단히 짐을 챙기고 곧바로 차를 타고 북쪽 천산으로 향했다.조기강이 봉천시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 모두 이 소식을 접했다.그러나 두 집안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마치 조기강이 봉천시를 떠난 사실조차 모르는 듯한 태도
“정말 중요한 친구 한 명이 연락이 닿지 않아서요. 빨리 가서 확인해 봐야 합니다.”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우선 설표 특전대원들에게 이번에 도착한 약재로 샤워부터 하게 해주세요. 병사들이 전부 사용하고 나면 그때 떠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아, 맞다, 진 교관님, 이번에 설표 특전대가 8군 대회에서 우승만 하면 제가 교관님을 위해 신청한 군 계급도 곧 내려올 겁니다.”소정태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군 계급을 신청하다니?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제 권한으로는 소장 계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표 특전대가 우승하면 다른 7개 특전대도 진 교관님을 모시려 들겠죠. 그때가 되면 교관님은 곧바로 중장으로 승진할 겁니다.”소정태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장군 계급은 수많은 군인의 꿈이자 목표였다.하지만 평생을 전장에 바쳐도 고작 위관 계급에서 머무는 군인이 허다했다.그런데 진서준은 위관과 교관 계급을 건너뛰고 바로 소장이 될 수 있었다.이는 최근 군 역사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소정태는 진서준이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다.진서준의 훈련을 받은 설표 특전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특히 개량된 열풍권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이 훈련 덕분에 설표 특전대는 향후 임무 수행 중 생존율과 완수율 모두 크게 높아질 터였다.대한민국 8대 특전대 임무는 항상 국가의 핵심 이익과 연관이 있는 중요한 임무였다.임무 완수율이 높아지면 국가에도 막대한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사실 진서훈이 직접 나서 군 고위층에 요구한다면 진서준은 중장이 아니라 상장까지도 바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었다.단 한 번의 보해 전투만으로도 진서준은 소장 계급에 오를 자격을 충분히 입증했다.진서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제가 군에 머물 시간이 없어서요. 장군 계급은 좀...”“아니요, 절대 교관님을 강제로 군에 묶어두진 않습니다.”소정태가 급히 해명했다.“교관님께 드리는 군 계급은 국안부 상경과 같은 개념입니다. 별다른
곧 설표 특전대의 목욕탕에서 귀신 울음소리 같은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약효가 너무 강렬해 모두가 뼈가 분해되어 다시 조립되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이 고통이 심할수록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의 공포스러움이 증명되었다.한 시간 후, 설표 특전대 전원이 귀청이 터질 듯한 환호성을 질렀다.다들 일제히 경지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본인의 실력이 이전과 비교해 몇 배는 더 강해진 게 확실했다.내공 무인이었던 장서안을 비롯한 몇몇 장병들은 단숨에 내력 절정 경지에 이르러 종사 경지까지 단 한 걸음 남겨둔 상태였다.심지어 무인조차 아니었던 나머지 장병들도 내공 무인이 되어 진기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이 순간, 모두가 진서준을 신처럼 숭배하기 시작했다.“진 교관님, 정말 우리 부모와 같은 은인이십니다.”“진 교관님, 앞으로 무슨 명령이든 말씀만 하시면 그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겠습니다!”“교관님이 주신 처방전과 새로 개량된 열풍권 덕분에 이번 8군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할 수 있을 겁니다.”기쁨에 찬 장병들의 모습을 보며 진서준도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이들은 진서준이 직접 가르친 병사들이었기에 그의 눈에 반쯤은 자기 자식 같은 존재였다.자기 자식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본 부모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들 열심히 수련해. 그리고 15일 후에 처방전을 한 번 더 사용해. 난 일이 있어 먼저 떠나야겠어.”진서준이 떠난다는 말을 듣자 다들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이탈을 원치 않았다.진서준이 부대에 온 지 고작 이틀 만에 병사들의 태도를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진서준이 조금만 더 머물러준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설표 특전대원들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전당인 전신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전신전은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전당이었다.전신전에 소속한 인원은 극히 적어 단 50명뿐이었지만 이 50명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정점에 선 존재들이었다.장서안을 포함한
그런데 진서준이 자기 애인을 보러 온 것임을 깨닫자 자연스레 투덜댔다.허사연의 눈빛 또한 장난기가 가득했다.“서준아, 대체 언제 그 조씨 가문 가주 딸이랑 특별한 관계로 엮인 거야?”진서준은 곧바로 쓴웃음을 지으며 해명에 나섰다.“오해야, 나랑 조민영은 그런 사이 아니야. 우리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고 난 그 아이를 단지 여동생처럼 생각할 뿐이야. 그 아이만 보면 꼭 서라를 보는 것 같거든.”진서준이 조민영을 여동생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듣자 허사연 자매의 싸늘한 분위기가 금세 누그러졌다.제아무리 지선까지 처치했던 진서준이지만 허사연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건 긴장하고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다.“여동생처럼 생각하는 거라면 괜찮아.”허사연이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조민영은 이제 막 성인이 됐어. 이따가 그 아이를 만나면 그 아이가 서라랑 얼마나 비슷한지 알게 될 거야.”진서준이 덧붙여 설명했다.처음에 진서준이 조민영을 돕기로 결심했던 것도 조민영의 성격이 진서라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너 혼자 그 조씨 가문 아가씨 만나러 가봐. 우리 둘은 고향에 좀 들러볼게.” 허사연이 말에 진서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향에 가?”“그래, 우리 고향이 여기 봉천시거든. 근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오지 못했어. 이번 기회에 한 번 들려보려고 해.”허사연이 설명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허사연이 따로 얘기하지 않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허사연이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고향에 온 횟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그래,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진서준은 손으로 전화 거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응, 너도 조심하고. 낯선 여자한테 홀리지 않도록 조심해.”허사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순간 움찔했다.지금 진서준은 더 이상 다른 여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허사연, 김연아, 서지은만으로도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또 다른 배수정 같은
진서준은 서둘러 조씨 가문의 원로 집사를 부축해 일으켰다.“어르신,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조씨 가문 가주님께 몇 가지를 여쭙고자 왔을 뿐입니다.”집사는 몸을 일으키며 진서준에게 말했다.“용존님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우리 조씨 가문에 지금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주님도 그 일 때문에 요새 예민하셔서 차라리 저에게 직접 물어보시지요. 제가 아는 건 숨기지 않고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조씨 가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진서준은 순간 움찔했다.혹시 그 일이 조민영과 관련된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였다.잠시 고민하던 진서준은 말문을 열었다.“저는 조씨 가문 가주님의 딸 조민영 씨와 친구 사이입니다. 어제 봉천시에 도착해서 민영 씨에게 연락을 시도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와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러 온 겁니다.”진서준이 조씨 가문 아가씨 친구라는 말을 들은 노인은 깜짝 놀랐다.진서준이 얻은 용존이라는 이름의 명성은 이미 대한민국 모든 명문대가에 널리 퍼져 있었다.이토록 뛰어난 젊은 천재가 조씨 가문과 연을 맺게 된다면 가문의 위세가 크게 올라갈 게 분명했다.노인은 속으로 기쁘긴 했지만 동시에 걱정스러운 기색도 감출 수 없었다.칠채지독에 중독된 조민영이 그 독을 버텨내지 못하고 병상에서 생을 마감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조민영이 정말 병상 위에서 죽게 된다면 진서준이 아무리 조민영의 친구라 하더라도 조씨 가문을 위해 힘을 써줄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용존님, 걸으며 말씀 나누시지요.”집사는 진서준을 안으로 안내하며 말을 이어갔다.“우리 집 아가씨가 칠채지독에 걸려 병상에 누운 지 한참입니다.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데 지금 상태로선 오래 버티기 어려울 듯합니다...”“뭐라고요?”진서준은 그 말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조민영이 하필이면 악명 높은 칠채지독에 중독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칠채지독에 관해 진서준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이 독은 제작이 매우 어렵기로 유명하고
진서준은 30초 정도 조민영의 맥을 짚고 나서 손을 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독이 이미 깊이 퍼졌습니다. 제가 먼저 은침으로 병세를 완화하죠. 이후 천산설련을 구해 오면 완전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진서준이 조민영의 상태에 관해 설명했다.“네? 용존님께서 병을 치료할 줄도 아는 건가요?”조태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요,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는 게 사실 제 본업입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이 말에 조태희와 집사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사람을 살리는 게 본업이라니, 성약당의 장로들조차 감히 이런 허세를 부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용존님, 제 동생 조기강이 이미 천산에 가서 천산설련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조태희의 제안에 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저도 천산에 가보겠습니다. 둘이 찾으면 천산설련을 발견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요.”진서준이 천산으로 가려는 이유는 단순히 조민영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진서준은 동생 진서라를 위해 천산빙련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빙련과 설련은 이름은 물론 생김새까지 매우 비슷하지만 약효는 완전히 달랐다.동생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 진서준은 조금의 실수도 허용할 수 없었다.“용존님께서 저희 조씨 가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조태희는 감격스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조태희는 진서준이 조민영을 위해 천산에 가려는 줄로만 알았다.사실 천산에 가는 목적은 조민영 외에도 진서라의 몫이 컸다.“먼저 은침을 가져오세요. 제가 민영 씨 체내 독소를 조금 완화하겠습니다.”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내일 해 질 녘까지 제가 천산설련을 찾든 찾지 못하든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근데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민영 씨 몸에 꽂힌 은침을 절대 빼지 마세요. 알겠습니까?”조태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용존님, 안심하셔도 됩니다.”곧 은침이 준비되었고 진서준은 간호사에게 조민영의 외투를 벗겨 달라고 부탁했다.이후 진서준은 조민영의 가슴과 단전 부위에
그 날카롭고 매서운 얼굴의 중년 여성은 바로 허준서의 어머니 강정숙이었다.허준서가 성약당에 선발된 이후, 강정숙은 허씨 가문의 다른 가족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허씨 가문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강정숙은 목이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갈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허사연 자매를 보자마자 강정숙은 자기 아들 자랑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다.하지만 아들이 이들 자매와 원한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태도가 확 달라졌다.“엄마, 제 다리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지 아세요?”허준서는 독기 어린 눈길로 허사연 자매를 쏘아보았다.“설마 이 애들 때문이야?”강정숙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바로 이 애들이에요.”“헛소리하지 마! 네 다리는 우리 집 누렁이가 물어서 그렇게 된 거잖아. 개도 못 이기면서 무슨 낯짝으로 그런 헛소리를 해?”허윤진은 화가 나 언성을 높였다.“내가 너라면 벌써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을 거야.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 얼굴 들고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허윤진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히자 허준서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누렁이는 사실 개가 아니라 영지가 깃든 사자였지만 허준서는 누렁이를 개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너... 너!”허준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허윤진을 가리키며 말문이 막혔다.허준서가 허윤진의 욕설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자 강정숙이 대화에 끼어들었다.“어디서 이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가 굴러와 막말하고 있어? 네 집 개를 제대로 묶어두지도 않고 우리 아들을 탓해? 우리 아들이 짐승을 못 이겼다고 치자. 넌 뭐 짐승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우리 집 사자개와 붙어볼래?”“물론이죠. 아줌마 아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증명하고 싶다면 한번 시원하게 붙어보죠.”허윤진은 비웃으며 말했다.이전 같았으면 허윤진은 사자개와 싸우는 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지만 지금은 달랐다.허윤진의 눈에 사자개는 단지 보잘것없는 장난감일 뿐이었다.허윤진은 지금 자기 주먹 한 방으로 사자개의 정신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화로 물어보겠습니다.”전화하기 전에 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간호사를 불러 여동생에게 목욕을 시키고 병실도 바꾸는 게 좋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자, 다들 진서준 씨 말대로 움직여.”소하비는 자기가 데리고 온 여성 하인들에게 즉시 지시했다.예린을 돌보기 위해 소하비는 평소 예린의 시중을 드는 여성 하인을 전부 데려왔다.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살펴보았다.“지유 누나에게 전화해 보자. 지유 누나랑 성우 형 인맥이 꽤 넓으니까.”진서준은 즉시 한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벨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한지유가 전화를 받았다.“서준 동생, 오늘은 웬일로 내게 전화했어?”한지유가 웃으며 물었다.진서준과 한지유는 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다.“지유 누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리게 되었어요.”진서준은 웃으며 바로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했다.“지유 누나, 이 동네에서 약재를 큰 규모로 다루는 곳을 아시나요? 백년 영지를 급하게 하나 구하고 싶어서 그래요.”“약재를 다루는 곳이라... 잠깐만 기다려.”한지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했다.“실제로 아는 곳이 있긴 해, 부지로에 있는 회춘당이라는 곳이야. 그 집은 최근에 새로 열었는데 주로 귀한 약재를 팔아.”“감사합니다, 지유 누나. 기회가 되면 성우 형이랑 누나에게 식사 대접할게요.”진서준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뭘 그런 걸로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는 필요 없어.”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진서준은 전화를 끊었다.“확인했어요, 회춘당에 백년 영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네요. 바로 가보겠습니다.”진서준이 소하비에게 말하자 소하비도 동참하겠다고 했다.“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다들 여기서 예린 공주를 잘 지켜. 절대 내가 없는 사이에 누구도 동생 몸에 손대게 해서는 안 돼.”소하비는 경호원들을 병원에 남겨두고 진서준과 함께 차를 타고 회춘당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회춘당 가게 앞.서현욱은 이쁜 얼굴에 화
서양의 여성들은 남녀 관계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고 왕실의 여성들은 더 개방적이었다.적지 않은 왕실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하지만 샛터 왕실은 일반 왕실과 다르게 매우 보수적이었다.소하비 왕자조차도 아직 여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었다.여동생인 예린도 관계는 둘째치고 남자와 신체적인 접촉도 전혀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은 예린의 옷을 벗기고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서준 씨, 다른 방법은 없나요?”소하비는 얼굴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샛터 왕실은 정조를 무엇보다 더 중시한다.진서준이 예린의 옷을 벗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샛터 왕실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굳이 이런 방법을 쓸까요?”진서준은 그 말에 덤덤하게 되물었다.“근데 제 여동생은 여태껏 남자와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어요.”“그럼 소하비 왕자님이 선택하세요. 사람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여동생의 정조와 명예를 지킬 것인지.”진서준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어떻게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소하비의 책임이었다.“소하비 왕자님, 공주님 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베컨이 옆에서 끼어들었다.“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소하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바로 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예린이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했다.예린의 창백했던 얼굴이 이제는 종이처럼 더욱 창백해졌다.“예린아!”소하비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베컨이 다가가서 한 번 확인한 후,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공주님 병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소하비 왕자님,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진서준 씨, 오늘 일은 절대로 외부인에게 알려지면 안 됩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샛터 왕실의 체면이 걸린 일인 만큼 진서준도 신중하게 대해야 했다.소하비와 베컨이 나간 후, 진서준은 조심스럽게 예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예상치 못한 건 예린의 옷 아래 숨
경호원의 얼굴이 급변하더니 바로 체내의 선천강기를 모았다.강기가 손을 감싸자 총알조차 뚫지 못하는 강력한 보호막이 형성되었다.“자업자득이야.”옆에서 구경하던 소하비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들은 전부 자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강자였다.맨손으로 총알을 쥐어버리는 건 이 경호원들에게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하지만 소하비가 그날 밤 천하 유람선을 떠나지 않고 진서준과 교회 기사와의 전투를 봤다면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하비는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경호원은 진서준의 주먹의 기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KTX에 치인 듯 시뻘건 피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병원 바닥에도 경호원의 붉은 피가 흥건했다.“이래도 또 덤빌 거야?”진서준은 몸을 돌려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소하비가 데려온 경호원 네 명 중에는 육급 정점 대종사와 칠급 정점 대종사도 있었다.이 네 명이 힘을 합쳐서 달려든다면 진서준도 확실히 수습하기 어려울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하지만 경호원 쪽에서 이미 먼저 공격한 마당에 진서준이 반격하지 않으면 이 경호원들은 진서준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 것이다.진서준이 반격하자 나머지 세 경호원도 즉시 참전하려 했다.“그만둬.”하지만 의외로 소하비는 바로 경호원들을 제지했다.소하비는 자기가 데려온 경호원들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이 자기 경호원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면 그만큼 진서준의 실력이 대단한 것이다.소하비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진서준에게 다가가 말했다.“진서준 씨, 당신 외엔 이제 제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여동생의 생명을 살려주세요. 이전의 무례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소하비 왕자님은 우리 샛터의 얼굴입니다. 어떻게 한낱 평민에게 사과할 수 있습니까?”“맞아요, 왕자님. 그렇게 사과하면 우리나라 체면이 구겨집니다.”“절대로 이 녀석과 타
이 장면에 소하비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베컨 닥터는 따귀를 맞고도 반격은커녕, 따귀를 날린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다니, 혹시 따귀를 맞고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대한민국 청년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베컨만이 알았다.방금 진서준이 따귀를 날린 후, 베컨은 갑자기 자기 머리가 맑아지고 심지어 흐릿하던 시력도 훨씬 좋아진 걸 느꼈다.세계가 공인하는 불치병이 이렇게 간단하게 치료되다니, 너무나도 무섭고 놀라운 일이었다.“내 의술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잖아.”진서준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방금은 제가 눈이 멀어서 선생님의 뛰어난 의술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어요.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베컨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베컨은 수십 년 동안 난치병을 연구해 왔고 본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 십 년이나 넘는 시간을 투자했으나 결과를 얻지 못했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의 따귀 한 대로 베컨의 병을 치료한 것만 봐도 진서준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베컨 닥터, 지금 뭐 하는 겁니까?”소하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베컨을 바라보았다.“소하비 왕자님,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신의입니다.”베컨은 고개를 들고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제 병은 이 신의 따귀 한 대로 완벽하게 치료되었습니다.”소하비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작 따귀 한 대로 불치병을 치료했다니, 영화 시나리오도 아닌 일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다고?하지만 소하비는 베컨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베컨은 자기 고집이 센 노인이었다.진서준이 뭔가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절대로 베컨의 인정을 받으며 사과까지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어쩌면 자기 여동생 예린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진 씨, 정말 베컨 닥터 불치병을 치료한 겁니까?”소하비의 질문에 진서준은 아니꼽게 대답했다.“저 사람이 더 잘 알겠죠.”“소하비 왕자님, 저는 제 조상님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
“이 청년은 내 손자보다 더 어려 보이는데 의술이 고명할 수가 없잖아요.”베컨도 물러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고 진서준은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진서준은 베컨을 흘깃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대한민국에는 개처럼 천한 놈이 딴 사람을 깔본다는 속담이 있어.”“지금 누구를 개처럼 천한 놈이라고 욕하는 거야?”베컨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샛터 왕실의 구성원이라도 베컨에게 이렇게 함부로 막말하는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대한민국 청년이 자기를 개라고 비하하고 있었다.“너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어? 나이가 많다고 의술이 뛰어난 건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내가 너보다 못하다는 법은 없어.”진서준이 차갑게 말하자 베컨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웃기고 자빠졌네. 의학에 몸을 담근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너 같은 방자한 청년은 처음 봐.”진서준은 베컨을 자세히 훑어보더니 갑자기 화제의 방향을 바꿨다.“넌 오랫동안 눈이 흐릿하고 가끔씩 사고가 몇 초 동안 멈추는 것 같구나.”베컨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 헛소리하는 거야?”“서양 의학에서는 이걸 두뇌 경화라고 하지.”진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일종의 불치병이야.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해.”이 청년은 도대체 어떻게 이걸 알아챈 거지?베컨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다.진서준의 말대로 베컨은 확실히 두뇌 경화를 앓고 있었다.이 병은 현재 서양 의학으로는 완치할 방법이 없었고 단지 발병 빈율과 시간을 늦추는 것만 가능했다.하지만 이 병은 베컨만의 비밀이었고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런데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대한민국 청년이 이를 정확히 지적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소하비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진 씨, 그 말이 사실인가요?”“사실인지 아닌지는 이 사
샛터 왕실의 로고가 새겨진 비행기가 공항에 서서히 착륙했다.막 착륙한 또 다른 비행기에서 몇몇 승객들이 그 비행기를 보고 수군거렸다.“저 비행기 로고는 처음 보는데?”“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지만 나도 처음 봐. 혹시 부자의 개인 비행기일까요?”“그건 개인 비행기가 아니라 샛터 왕실 전용 비행기야!”조금 안목이 있는 중년 남자가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즉시 떠들썩한 반응이 일었다.샛터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다.왕실 구성원의 재산은 포브스 부자 순위에 오른 상위 3명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자랑했다.이토록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왜 갑자기 작은 도시 서울시에 전용기를 타고 왔을까?잠시 후, 왕실 전용기의 문이 열렸고 건장한 남자 네 명이 먼저 내려왔다.주변에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소하비와 그 일행이 내려왔다.“소하비 왕자, 지금이라도 돌아갈 기회가 있습니다.”베컨이 여전히 진지하게 고집을 부렸다.“그만하세요. 난 마음을 굳혔으니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마세요.”소하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이 노인은 자기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자꾸 소하비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도대체 이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베컨은 소하비의 태도가 단호한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공항을 나온 소하비 일행은 차를 타고 시립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소하비는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진 씨, 저는 소하비입니다. 황예은 씨가 이미 상황을 설명했을 거라고 믿습니다.”소하비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제 여동생을 살릴 수 있다면 칠색정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비용도 받지 않겠습니다.”칠색정화의 가격은 서울시 경제를 일으킬 정도로 엄청났지만 소하비에게는 여동생의 생명이 더 중요했다.“병원에서 기다리세요.”진서준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저희는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되도록 빨리 오세요.”전화를 끊고 소하비는 자기
“응? 그 왕자가 날 만나서 뭘 하려고?”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유람선에서 소하비는 진서준이 필요한 약재를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사 갔다.“소하비 여동생이 위독하대.”황예은이 차분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흠칫 떨었다.“뭐라고? 그 왕자가 칠색정화를 사서 동생을 살리려던 거 아니었어? 혹시 칠색정화가 효과가 없었던 거야?”“구체적인 상황은 소하비가 얘기하지 않았어. 그저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만 했어.”“물론 도울 수 있어. 근데 나도 조건이 있어. 그 칠색정화을 내가 받아야겠어.”진서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아무 조건 없이 소하비를 돕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소하비의 여동생을 구하는 대가로 진서준이 꼭 필요한 칠색정화를 손에 넣어야 했다.“난 이미 그 요구를 말했어. 소하비도 동의했어. 오늘 밤에 서울에 도착할 거야.”황예은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칠색정화가 진서준에게 중요한 약재라는 걸 잘 아는 황예은은 진서준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소하비에게 이렇게 제안할 것이다.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겪고 난 황예은은 이제 진서준과 같은 편이었다.“좋아, 그럼 오늘 밤 그 왕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진서준은 순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칠색정화를 되찾을 기회가 이렇게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서라를 치료하는 목표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오빠,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기뻐해?”진서라가 궁금해하며 묻자 진서준은 웃으며 설명했다.“네 독을 치료할 약재를 하나 더 찾았어.”“오빠,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잖아.”진서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감옥에서 나온 이후 여태껏 가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진서준을 보니 진서라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너랑 엄마만 무사하면 난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진서준은 확고한 눈빛을 보이며 대답했다.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아름다운 바람이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이제 4대 종문 회전에 참가해
진서준은 이미 1년 동안 유지수를 만나지 못했다.현재 유지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진서준도 확신할 수 없었다.왕권 부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승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실력이 약할 리 없었다.하지만 유지수와 직접 겨뤄보기 전까지 진서준은 유지수를 무조건 죽인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허사연을 안심시키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도록 진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유지수가 왕권 전승을 얻었다고 해도 나보다는 못해.”진서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허사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야...”그러나 허사연은 다시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지수 스승은 실력이 분명 강력할 거야. 네가 유지수 스승과 유지수 본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까 봐 걱정돼.”진서준은 이미 유지수의 스승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지선 급의 절세 강자인 구지범이 바로 유지수의 스승이었다.천용 반지 내의 힘은 진서준이 명주시 바다에서 소모해 버렸고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이 상태에서 정말 구지범을 만나게 된다면 진서준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없으면 도망가면 돼. 걱정 마.”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허사연의 예쁜 얼굴을 쓰다듬었다.“넌 지금 건강을 빨리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해.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서준아, 난 너무 쓸모없는 것 같아. 네게 폐만 끼치고 한 번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허사연이 진심으로 자책했다.“아니야, 네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야.”진서준은 허사연을 꼭 껴안았다.“이제 그만 좀 해. 나 아직 여기 있어.”허윤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두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고 대놓고 꽁냥꽁냥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허사연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허사연도 허윤진이 방에 있다는 걸 까먹었다.“그만 놔줘...”허사연은 얼굴이 붉어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쑥스러움이 많다는 걸 알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
“진서준, 빨리 도망쳐... 도망쳐...”악몽을 꾸는 듯한 허사연은 점점 더 흥분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양손으로 허사연의 손을 꽉 잡았다.“미안해, 사연아. 내가 널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어. 네가 나랑 함께한 이후로 난 너에게 부귀영화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끔찍한 경험이나 겪게 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널 볼 면목이 없어.”진서준의 눈에는 자책이 가득했다.허사연은 익숙한 안전감을 느낀 듯, 잔뜩 찌푸렸던 미간은 서서히 펴지고 불온정한 상태는 점점 안정되었다.진서준의 양손에 허사연의 손가락이 전부 들어갔는데 지금 이 열 손가락은 모두 부러져 있었다.“유씨 가문, 너희는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진서준의 눈에서는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진서준은 속으로 유씨 가문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굳게 맹세했다.며칠이 지나는 동안 진서준은 집에서 허사연을 세심하게 돌봤고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허사연의 곁을 지켰다.단지 허사연이 다시 악몽을 꾸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어느 날 아침.그동안 의식이 없던 허사연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의식을 되찾은 허사연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텅 빈 낯선 방이 허사연의 시야에 들어왔다.“내가 살아있었다고? 서준이 구해준 거야?”허사연은 양손을 침대에 대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자기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걸 느꼈다.아무리 애써도 허사연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내 손...”허사연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솟구쳤다.본래 진서준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허사연은 지금 오히려 진서준의 짐이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셈이었다.“사연아, 깼어?”진서준은 의식을 회복한 허사연을 보자 기쁨에 차서 다가갔다.진서준을 본 허사연은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나왔다.“서준아. 난 다시는 널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날 밤, 유지수가 허사연에게 가한 고문은 그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한낱 평범한 여자가 이토록 잔인하게 변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