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입맛이 특이한 거야, 아니면 너희 이족의 입맛이 다 그 꼬락서니인 거야?”진서준은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진서준이 아직도 태연자약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바이올렛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이따가 지금처럼 웃음이 나올지 두고 보자.”말을 마친 후, 바이올렛은 몸을 휙 돌리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그리고 장씨 가문의 저택 안에서는 바이올렛의 허상이 여러 개 나타났다.허상은 하나하나가 실제 사람과 같았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죽여! 저 녀석 숨통 끊어버려!”바이올렛이 공격을 개시하자 장조인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장조인은 이미 진서준이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강렬하게 흔들렸다.주위의 풀밭에는 대지진이라도 겪은 듯한 섬뜩한 균열이 나타났다.장조인과 그 일행은 깜짝 놀라며 균열의 중심으로 시선을 돌렸다.그곳에서는 진서준과 바이올렛이 이미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두 사람의 주먹과 손바닥이 맞닿을 때마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장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게다가 두 사람의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바닥이 갈라지며 균열이 점점 더 넓어졌다.장조인 일행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진서준과 바이올렛이 싸우는 그 여파만으로도 장조인 일행은 견디기 힘들었다.두 사람의 막상막하인 모습을 보자 장조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바이올렛과 손잡은 게 참 다행일 정도였다.바이올렛이 없었다면 진서준의 실력으로 장씨 가문을 충분히 멸망할 수 있었다.쿵!다시 한번 강력한 충격이 일어났고 두 사람은 각각 10미터 넘게 뒤로 밀려났다.두 사람이 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때 지나간 자리는 온통 균열이 가득했다.푸른 눈동자를 가진 바이올렛은 진서준을 빤히 노려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진서준이 그날 밤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았다.설마 그날 밤 이 녀석이 일부러 실력을 감춘 건가?생사가 오가는 판국에서 누구도 그렇게 대담한 짓을 할 수는 없을
“서 가주, 서 가주!”서씨 가문에 도착한 권해철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정원으로 달려갔지만 입구의 경호원들이 그를 막아섰다.“당신은 누구십니까?”입구의 경호원은 권해철을 꽉 잡고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저는 권해철입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 서 가주를 찾고 있습니다.”권해철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서준은 지금 장조인과 함께 장씨 가문으로 갔다.이건 말 그대로 혼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격이었다.권해철은 진서준이 장씨 가문으로 가는 걸 손 놓고 그냥 지켜볼 수가 없었다.“권해철이라고요?”경호원은 곰곰이 생각했지만 권해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우리는 당신을 모르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급한 일이 있다면 가주님과 먼저 연락을 취하세요.”권해철이 누군지 모르는 경호원은 그를 절대로 들어가게 할 수 없었다.권해철은 경호원이 자기를 모른다고 하자 씁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남주성에서는 어느 가문에 가든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데 남주성을 벗어나 명문대가들이 가득한 강남에 오니 가문의 문턱도 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서광문의 전화번호를 모르는 권해철은 서광문과 연락이 닿을 수 없었다.“당신들이 저를 모를 순 있어도 진 상경 진서준은 아시겠죠?”궁지에 몰린 권해철은 바로 진서준의 이름을 꺼냈다.“진서준은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진서준과 어떤 관계인가요?”“저는 진 상경과 친구입니다. 지금 진 상경은 혼자 장조인과 함께 장씨 가문으로 갔습니다. 진 상경이 혹시나 생명에 위험이라도 있을 것 같아 서 가주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권해철은 급하게 설명했다.그 말을 들은 경호원 중 한 명은 바로 전화를 걸어 집사 오하늘에게 연락했다.오하늘는 진서준이 장조인과 함께 장씨 가문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바로 서광문을 찾아갔다.“가주님, 큰일 났습니다.”“무슨 일이 있길래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서광문은 인상을 쓰며 오하늘을 꾸짖었다.오하늘은 오랫동안 서광문과 함께한 집사였고 그런 집사가 이 정도로
하지만 어제 고성운과 육위준 두 사람과의 전투에서 옥패 속 영기가 완전히 고갈되었다.바이올렛 역시 전투 초반의 당당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공기 중에 거의 다 노출된 바이올렛의 하얀 피부와 전투복이 어우러져 몹시 요염해 보였다.단약 하나로 진서준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오늘 진서준을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진서준은 훗날 해외 강자에게 큰 재앙이 될 것이다.생각을 마친 바이올렛은 멀리 있는 장조인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너희 가문 사람들은 거기서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야? 어서 달려들어.”장조인은 그 말을 듣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바이올렛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여태껏 그녀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줄 알았던 것이다.괜히 장조인이 멋대로 행동했다가 바이올렛의 비위를 건드릴까 봐 두려운 것도 있었다.“다들 힘을 합쳐 진서준에게 덤벼. 오늘 진서준을 반드시 여기서 죽여야 해.”진서준이 여기서 죽어야만 장씨 가문의 비밀이 외부에 누설되지 않을 것이다.만약 서씨 가문이나 국안부 사람들이 장씨 가문이 해외 이족과 결탁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장씨 가문은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장조인의 호령을 듣자 장씨 가문의 대종사 세 명과 우진영이 진서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방금 바이올렛이 진서준의 강기와 체력을 거의 다 소모했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그들은 이제 진서준이 저항할 힘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전혀 두렵지 않다고 판단했다.“대한민국 최정상에 있는 천재를 죽일 수 있다면 우리도 헛되이 산 건 아닐 거야.”흰 정장을 입은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노인 역시 지의방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실격이 강한 강자였다.수백 번의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겪었지만 노인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용존이라, 이름은 거창하긴 한데 사람은 좀 어리석군.”다른 노인도 한마디 덧붙였다.오직 우진영과 또 다른 사급 대종사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진서준을 신중하게 바라보았다.사자가 토끼를
“멍청한 놈!”바이올렛은 죽은 흰옷의 노인을 보며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진서준은 바이올렛과 실력이 비등할 정도였기에 비록 강기가 거의 소진된 상태라 해도 삼급 대종사가 함부로 모욕할 대상은 아니었다.삼급 대종사는 종사나 일반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 실력을 갖춘 자들이지만, 진서준과 바이올렛의 눈에는 그야말로 하찮은 벌레와도 같은 존재였다.죽어가는 코끼리라도 눈앞의 개미를 죽이는 건 여전히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었다.“모두 함께 공격해, 제멋대로 움직이는 놈이 있으면 난 그냥 가버릴 거야.”바이올렛은 화가 나서 거친 말을 내뱉었다.우진영 일행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에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다.“죽어!”바이올렛은 나지막한 소리로 외치며 발을 내디뎠고 바닥은 산산이 부서져 조각이 튀었다.바이올렛의 신속한 공격은 여러 겹의 잔상을 남겼다.진서준은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손에 든 참선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체내의 영기가 이미 거의 고갈되어 혈용권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고 지금은 오직 참선검으로만 대응할 수 있었다.다행히 참선검의 강도는 이전의 천문검보다 몇 배나 더 강했다.바이올렛의 주먹이 참선검에 부딪혔지만 검에는 아무런 균열도 생기지 않았고 쟁쟁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만 울렸다.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두 사람의 팔에는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세 번의 격돌 후, 우진영과 장씨 가문의 다른 두 대종사가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네 사람은 좌우와 뒤쪽에서 진서준을 겹겹이 포위했다.네 갈래의 강력한 선천강기가 뿜어져 나와 진서준에게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포위당한 진서준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워졌다.진서준이 한 손으로 결계를 맺자 손바닥에서 영기가 번개로 되어 빛이 흘러나왔다.다음 순간, 번개가 하늘로 치솟아 우진영과 나머지 셋에게 내리쳤다.그러자 다들 즉시 선천강기를 본인 앞에 내세워 방어했다.번개가 선천강기에 닿자 쩌저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 소리는 귀청이 터질 듯 요란했지만 강기에
다만 이번에 사용하면 다시는 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지금 옥패가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영기를 품고 있는 다른 옥패를 또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진서준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자 다들 진서준이 두 손 들고 항복하려는 줄로 생각했다.“진 마스터님, 저항하지 마세요. 우리가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우진영이 말하며 체내의 강기를 두 주먹에 모았고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강기를 주먹에 모았다.진서준은 그 셋을 쓱 훑어보며 비웃음을 터뜨렸다.“너희가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진서준이 죽을 위기에서조차 여전히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보자 우진영 일행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진서준, 오늘 네놈을 내 동생의 곁으로 보내주마.”장조인 역시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보며 앞으로 나섰다.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네 동생 곁을 보낸다고? 너희는 그럴만한 수준이 안돼. 너희 셋이 저 외국 이족과 같은 실력이라면 날 죽일 가능성이 있겠지.”진서준은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우진영 일행은 주먹을 꽉 쥐고 바닥을 힘껏 밟으며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세 사람 모두 전력을 다해 진서준을 단번에 죽이려 했다.이 절체절명의 순간, 한 인물이 갑자기 진서준 앞에 나타났다.“꺼져...”왕안석의 냉혹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다음 순간, 우진영 일행의 손에 있던 강기가 갑자기 사라졌다.다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고속으로 달리는 대형 트럭에 부딪힌 것처럼 셋은 한순간에 공중으로 날아갔고 갈비뼈가 몇 개나 부러졌는지 알 수 없었다.갑작스럽게 나타난 왕안석를 보자 장조인의 동공이 심각하게 흔들렸다.왜 왕안석이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거지?장조인은 서씨 가문의 대종사가 왜 진서준을 구하러 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서준과 서씨 가문은 서로 등을 돌린 사이가 아니었나?장조인이 멍하니 있는 동안, 서광문과 이한석도 어느새 정원에 도착했다.“죽지 않아서 다행이구나.”진서준이 치명상
국안부 상경 신분을 갖춘 진서준은 이족과 내통한 장씨 가문을 처단할 권리가 당연히 있었다.진서준은 심지어 사후보고의 권한까지도 있었다.비상시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수단이 필요했다.그래서 진서준도 별로 주저하지 않았다.바이올렛을 제외하고 이번 음모에 가담한 장씨 가문의 종사 7명을 포함한 총 21명을 전부 처단했다.이 사건은 대한민국 내 모든 명문대가에 해외 이족과 내통하는 자는 국안부가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물론 다른 명문대가도 이런 민감한 시기에 장씨 가문이 해외 이족과 내통할 줄은 몰랐다.장씨 가문 별장과 멀리 떨어진 경성에 있는 진서훈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후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이후 국안부는 무도 포럼에 직접 공고를 발표했다.장씨 가문은 모든 명문대가에 제대로 된 부정적인 케이스가 되었다.누구든 해외 이족과 내통할 경우, 국안부는 절대 가차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이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진서준은 오늘 강남을 떠날 수 없었다.상처를 치료한 후, 진서준은 곧바로 서씨 가문의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바이올렛은 그곳에 갇혀 있었지만 감옥은 별다른 경비가 없었다.서씨 가문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서준은 이미 은침으로 바이올렛의 단전을 봉인해 두었다.지금 바이올렛은 혈수사가 아닌 평범한 여인일 뿐이었다.진서준이 지하 감옥에 내려갔을 때, 바이올렛은 이미 깨어 있었다.바이올렛의 몸에는 여전히 오후에 입었던 몸에 딱 붙는 전투복이 걸쳐져 있었다.게다가 그 전투복은 이미 찢어진 상태였고 하얀 피부가 어두운 불빛 아래서 은근히 유혹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네 이놈, 나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바이올렛은 깨어나자마자 감옥에서 탈출하려 했다.하지만 체내의 강기를 소환해 보니 강기가 작은 새장에 갇힌 것처럼 전혀 다룰 수 없는 걸 발견했다.“별건 아니야, 내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좀 손을 썼어.”진서준은 금속 유리 앞에 다가가 차가운 눈빛으로 바이올렛을 바라보았다.바이올
“아이미 가문 사람인 내가 우리 가문을 배반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야.”바이올렛의 이토록 강경한 태도에 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손가락을 튕겨 금속 문을 열었다.진서준이 문을 여는 모습을 본 바이올렛은 눈꺼풀이 떨렸다.지금의 바이올렛은 강기를 쓸 수 없어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진서준이 지금 바이올렛에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그녀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바이올렛은 서둘러 자기 몸을 훑어보았다. 옷 곳곳에 구멍이 나 있어 자칫 민망한 부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걸 발견하자 바이올렛의 얼굴이 급격히 변했다.“이봐, 뭘 하려는 거야?”바이올렛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고 파란 눈동자에 한 줄기 두려움이 비쳤다.바이올렛은 올해 47세였지만 여태껏 남자와의 친밀한 접촉은 한 번도 없었다.지금까지도 바이올렛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진서준이 점점 다가오자 바이올렛의 심장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가까이 오지 마!”하지만 진서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서서히 바이올렛을 벽 모퉁이로 몰아넣었다.바이올렛의 공포스러운 눈빛을 보며 진서준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너도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구나.”진서준의 조롱에 바이올렛은 분노하며 주먹을 꽉 쥐고 진서준을 노려보았다.“네가 진정한 남자라면 날 원래대로 돌려놓고 밖으로 나가 한 판 붙자. 목숨을 걸고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진서준은 그 말에 비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남자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방법은 또 있어.”진서준의 말에 바이올렛의 눈 속 공포가 한층 짙어졌다.다른 방법이라니?바이올렛이 아무리 멍청해도 진서준이 말한 방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이 짐승 같은 나쁜 놈아! 난 올해 마흔일곱이야, 이 나이면 네 어머니뻘이란 말이야!”바이올렛은 진서준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냉랭하게 웃으며 답했다.“너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네? 내가 너에게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해? 넌 그럴 자격이 없어.”마지막 한마디는 바이올렛을 더욱 큰 분노를 끌어냈다.바이올렛
서지은은 별장 안에서 이리저리 찾고 있었다.옷을 갈아입고 돌아왔을 뿐인데, 진서준이 어쩐 일인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아빠, 진서준 어디 갔어요?”진서준을 찾을 수 없는 서지은은 결국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서광문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진서준은 죄수를 심문하러 갔어. 넌 여기서 기다려. 거기로 가면 안 돼.”“죄수를 심문한다고요?”서지은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자기 집 지하감옥에 손님이 생긴 건 서지은도 몰랐다.“그래, 그냥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면 돼. 진서준이 금방 올라올 거야.”서광문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진서준이 바이올렛을 어떤 방법으로 심문할지는 서광문도 잘 몰랐다.하지만 진서준의 행동 스타일을 볼 때 그가 절대 약한 방식으로 심문할 것 같진 았았다.이런 잔인한 장면은 딸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빠, 잡은 사람이 누구예요?”서지은은 서광문의 맞은편에 앉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외국인이야, 장씨 가문과 결탁해서 우리 가문을 해치려고 했어.”이 정도 사실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서광문은 무심코 대답했다.며칠 후면 어차피 서지은은 장씨 가문이 멸문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뭐라고요? 외국인이라고요?”서지은은 진서준이 외국인을 심문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냥 여기서 얌전히 진서준을 기다려. 금방 올라올 거야.”서광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인물이 문밖에서 들어왔다.“서준아!”진서준이 오는 모습을 본 서지은은 즉시 일어나 신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 진서준과 팔짱을 꼈다.“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돌아왔네.”진서준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내가 심문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진서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진서준이 바이올렛에 침을 놓은 시간은 3분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진서준의 은침 아래서 1분을 버틴 사람은 바이올렛이 처음이었다.“심문 결과는 어땠어?”서광문은 책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
묘왕의 허락을 받은 후, 두 명의 오스프리 전투기 조종사는 망설이지 않고 진서준을 조준 후 즉시 발포 버튼을 눌렀다.요란한 소리와 함께 끔찍한 불빛 두 개가 오스프리 전투기의 하단에서 솟아올랐고 미사일은 직선으로 진서준을 향해 날아갔다.“정말 목숨을 버리겠다는 거야?”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묘왕을 쳐다보았다.“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겠지!”묘왕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처럼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모두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이 시점에서 물러나면 상대방이 이 기회를 틈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미사일에 맞아 죽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주먹에 죽게 될 것이다.미사일이 당장 떨어져 폭발할 것 같은 시점에서도 두 사람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스승님!”유문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묘왕을 불렀다.“도망쳐! 멍하니 뭐 하고 있어?”유기철은 유문기를 끌고 급히 먼 곳으로 도망쳤다.쾅!미사일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무시무시한 힘이 주위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덮쳤다.유기철과 유문기는 이미 가장자리까지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력한 기폭에 휘말려 바닥에 사정없이 쓰러졌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며 처참한 모습을 보였다.유문기가 폭발 중심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 있는 걸 확인했다.유문기 부자가 가장자리에서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폭발 중심에 있던 진서준과 묘왕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저놈이 죽었어, 드디어 죽었어!”유문기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유문기가 입에 담은 저놈은 묘왕을 가리키는 건지, 진서준을 가리키는 건지 유기철은 분간할 수 없었다.“문기야, 얼른 떠나자.”유기철은 정신을 차리고 유문기를 잡아끌며 떠나려고 했다.“안 돼요. 난 이날을 정말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유문기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에 끔찍한 미소를 떠올렸다.“늙다리가 오늘에 와서야 끝내 죽었네! 내가 널 이렇게 오래 모신 이유가 바로 네가 죽는 오늘을 위해서였어!”유문기는 거리낌 없이 호탕하
묘왕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체내의 선천강기를 돌려 방어 태세를 취했다.동시에 묘왕은 자기 몸에 숨겨둔 독충들을 풀어 진서준의 얼굴로 날려 보냈다.이 독충들이 가진 독은 전부 강력한 부식성을 지니고 있어 육급 이하의 선천 대종사 강기조차 이 독충들의 독성을 막아낼 수 없었다.독충과 진서준 사이의 거리가 반 미터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진서준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그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며 독충 무리를 덮쳤다.치지직...순간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독충들은 진서준이 내보낸 영화에 의해 몰살당했다.순식간에 가루로 변한 독충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이를 본 묘왕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그러나 묘왕은 지금 독충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진서준의 양주먹이 이미 묘왕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묘왕 역시 자기 양 주먹을 내밀어 진서준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발밑의 지면이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으로 갈라져 퍼져 나갔다.무시무시한 충격파에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빗물조차 접근하지 못했다.이를 꽉 악물고 있는 묘왕의 얼굴이 철판처럼 굳어졌다.묘왕은 산을 뒤엎는 듯한 공포스러운 힘이 주먹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게다가 묘왕의 주먹 끝 강기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의 상태도 묘왕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 않았다.백 년 가까이 살아온 묘왕의 내공과 실력은 역시나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우르릉!하늘에서 갑작스러운 천둥소리가 울렸다.번개의 섬광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찢어 잠깐의 백광을 드러냈다.곧이어 하늘에서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묘왕과 정면으로 겨루고 있던 진서준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헬리콥터 두 대가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묘왕과 속
비는 점점 거세졌고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빗물로 흠뻑 젖은 바닥에 쓰러진 유문기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단 한 방에 자기가 완전히 폐인이 되다니, 이 녀석의 실력이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진서준은 유문기를 멍청이를 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비겁한 수작질이나 하는 녀석이 감히 나랑 정면으로 겨룬다고? 널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아서 봐주는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너도 방금 그 탱크처럼 새까만 시체로 변했을 거야.”탱크조차 진서준의 일격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하물며 겨우 종사 경지에 불과한 유문기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지금 진서준에게 유문기를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는 일과도 같았다.하지만 그냥 죽이는 건 유문기에게 너무 가벼운 벌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진서준은 유문기의 뼈를 하나하나 산산이 부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왜 굳이 짐승이 되려고 해?”짐승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너... 너 대체 누구야?”유문기의 눈알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같은 20대 청년인데 왜 이 녀석의 실력은 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는 거지?“너희 집 큰 짐승이 안 알려줬어?”진서준이 유기철을 가리켰다.“누굴 짐승이라는 거야? 너야말로 짐승이야!”유기철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분노에 차 욕을 내뱉었다.“유기명 삼촌이 네 목숨을 살려줬을 때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사람을 시켜 유정을 독살하려고 시도해? 네가 짐승이 아니면 뭔데? 짐승조차도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알아. 넌 인간의 뇌를 가진 고등 동물인 주제에 자각도 없는 거야?”진서준은 유기철을 바라보며 섬뜩한 살기를 내뿜었다.“그건 그 여자가 죽어 마땅했기 때문이야!”유기철은 일말의 자책도 없이 계속 헛소리를 지껄였다.“다들 입 다물어!”묘왕이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더니 곧이어 원한에 가득 찬 시선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이봐, 오늘 네가 무슨 이
“스승님, 지금 어떡해야 하죠?”유문기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묘왕은 곧 평정심을 되찾으며 말했다.“당황하지 마. 우리에게는 아직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있어. 오늘 저 녀석이 설령 지선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여기서 끝장날 거야. 게다가 방금 그 일격으로 꽤 체력을 소모했을 게 분명해. 오늘은 묘강의 모든 주민을 동원해서라도 저놈을 기어이 지치게 만들어야 해.”묘강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었고 그중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남자만 10만 명이 넘었다.이런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상대하려면 지선도 버거울 게 뻔했다.죽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쳐서 움직일 수 없게 할 수는 있었다.이게 바로 묘왕이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그러나 진서준은 묘왕 일행에게 비장의 카드를 꺼낼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방금 참선검을 휘두르며 진서준은 곁눈질로 유기철을 발견했다.진서준이 발끝에 힘을 주고 허공에 뛰어오르자 그의 모습이 귀신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묘왕 일행 앞에 나타나 있었다.“너였구나!”유기철은 진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저 녀석을 알아?”묘왕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묘왕님, 이 사람이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진서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녀석이 예전에 우리의 계획을 망쳤습니다.”유기철이 서둘러 진서준을 소개했다.눈앞의 청년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묘왕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네놈이 내 오랜 계획을 그렇게 망쳐놓고 감히 혼자서 우리 묘강에 쳐들어와? 우리 묘강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묘왕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버럭 화를 냈다.하지만 진서준은 묘왕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유기철을 차갑게 바라보며 은은한 살기를 드러냈다.유기철은 그 시선에 수만 마리 개미가 자기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유기철, 자기 친조카에게 독을 퍼뜨리는 네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짐승이야.”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탱크는 현대 전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 중 하나였고 말 그대로 전쟁 기계라 불릴 만했다.완전히 무장한 병사들이 대전차 무기가 없이 탱크를 마주하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무도를 익힌 무인이라 해도 이런 존재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지금의 올기는 체내의 영기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묘강에 들어왔을 때 탱크를 만났다면 한 번 싸워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모든 희망을 진서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아래를 쓱 훑어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제 넌 그만 물러나.”“알겠습니다!”올기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곧바로 몸을 줄여 진서준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진서준은 몸을 천천히 놀려 기러기처럼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왔다.지면에 있는 사람들이 진서준의 움직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세상에, 저 용 머리 위에 사람이 서 있었어!”“어머나, 그럼 아까 그 괴수가 주인이 있었단 말이야? 그럼 그 주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일까?”“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겠어? 우리에겐 탱크가 있잖아. 게다가 전투기들도 곧 도착할 거라고.”놀라 두려워하는 사람도, 오만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한편, 묘왕과 유문기 두 사람은 여전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보아하니 저 녀석이 바로 그 짐승의 주인인가 보구나.”묘왕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저놈을 당장 죽여! 묘강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줘!”진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손바닥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참선검이 허공에 떠올라 진서준의 손으로 들어왔다.낯선 대한민국 청년을 보자 탱크 안에 있던 병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그들을 전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자가 겨우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라고?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노인이라면 차라리 납득이라도 했을 것이다.“포격! 포격해!”지휘관의 목소리가 작전 통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펑! 펑! 펑!포탄 세 발이 진서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동시에 발사되었다.포탄이 터지며 대지가 흔들리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