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미 가문 사람인 내가 우리 가문을 배반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야.”바이올렛의 이토록 강경한 태도에 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손가락을 튕겨 금속 문을 열었다.진서준이 문을 여는 모습을 본 바이올렛은 눈꺼풀이 떨렸다.지금의 바이올렛은 강기를 쓸 수 없어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진서준이 지금 바이올렛에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그녀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바이올렛은 서둘러 자기 몸을 훑어보았다. 옷 곳곳에 구멍이 나 있어 자칫 민망한 부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걸 발견하자 바이올렛의 얼굴이 급격히 변했다.“이봐, 뭘 하려는 거야?”바이올렛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고 파란 눈동자에 한 줄기 두려움이 비쳤다.바이올렛은 올해 47세였지만 여태껏 남자와의 친밀한 접촉은 한 번도 없었다.지금까지도 바이올렛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진서준이 점점 다가오자 바이올렛의 심장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가까이 오지 마!”하지만 진서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서서히 바이올렛을 벽 모퉁이로 몰아넣었다.바이올렛의 공포스러운 눈빛을 보며 진서준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너도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구나.”진서준의 조롱에 바이올렛은 분노하며 주먹을 꽉 쥐고 진서준을 노려보았다.“네가 진정한 남자라면 날 원래대로 돌려놓고 밖으로 나가 한 판 붙자. 목숨을 걸고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진서준은 그 말에 비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남자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방법은 또 있어.”진서준의 말에 바이올렛의 눈 속 공포가 한층 짙어졌다.다른 방법이라니?바이올렛이 아무리 멍청해도 진서준이 말한 방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이 짐승 같은 나쁜 놈아! 난 올해 마흔일곱이야, 이 나이면 네 어머니뻘이란 말이야!”바이올렛은 진서준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냉랭하게 웃으며 답했다.“너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네? 내가 너에게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해? 넌 그럴 자격이 없어.”마지막 한마디는 바이올렛을 더욱 큰 분노를 끌어냈다.바이올렛
서지은은 별장 안에서 이리저리 찾고 있었다.옷을 갈아입고 돌아왔을 뿐인데, 진서준이 어쩐 일인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아빠, 진서준 어디 갔어요?”진서준을 찾을 수 없는 서지은은 결국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서광문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진서준은 죄수를 심문하러 갔어. 넌 여기서 기다려. 거기로 가면 안 돼.”“죄수를 심문한다고요?”서지은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자기 집 지하감옥에 손님이 생긴 건 서지은도 몰랐다.“그래, 그냥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면 돼. 진서준이 금방 올라올 거야.”서광문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진서준이 바이올렛을 어떤 방법으로 심문할지는 서광문도 잘 몰랐다.하지만 진서준의 행동 스타일을 볼 때 그가 절대 약한 방식으로 심문할 것 같진 았았다.이런 잔인한 장면은 딸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빠, 잡은 사람이 누구예요?”서지은은 서광문의 맞은편에 앉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외국인이야, 장씨 가문과 결탁해서 우리 가문을 해치려고 했어.”이 정도 사실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서광문은 무심코 대답했다.며칠 후면 어차피 서지은은 장씨 가문이 멸문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뭐라고요? 외국인이라고요?”서지은은 진서준이 외국인을 심문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냥 여기서 얌전히 진서준을 기다려. 금방 올라올 거야.”서광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인물이 문밖에서 들어왔다.“서준아!”진서준이 오는 모습을 본 서지은은 즉시 일어나 신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 진서준과 팔짱을 꼈다.“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돌아왔네.”진서준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내가 심문하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진서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진서준이 바이올렛에 침을 놓은 시간은 3분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진서준의 은침 아래서 1분을 버틴 사람은 바이올렛이 처음이었다.“심문 결과는 어땠어?”서광문은 책
“그래서 국안부가 그렇게 신중할 수밖에 없는 거야. 대한민국에는 대종사가 적지 않지만 대종사와 지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야. 대종사가 아무리 강해도 지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결국 지선 앞에서는 하찮은 개미에 불과하지.”지선은 진정한 절세 고수만 가질 수 있는 칭호였다.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신선에 맞서려는 것은 거의 망상과 다름없었다.대한민국 무도계의 수백 년 역사 속에서 아직 대종사 경지로 지선을 베어낸 자는 없었다.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적어도 서광문의 생각으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지선은 강하지만 천하무적은 아니죠.”서광문은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진서준, 너 혹시 지선과 싸울 생각이야?”“저는 예전에 진산에서 지선을 본 적이 있습니다.”진서준의 말에 서광문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대한민국 5000만 인구 중 지선은 고작 열 명 남짓이었는데 진서준이 수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지선을 만났단 말인가?“지선의 실력은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대종사가 지선을 죽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진서준의 눈빛이 더욱 그윽해졌다.“수련이란 건 옛사람들이 가지 못한 길을 새로 개척하는 것 아닙니까? 전에 대종사가 지선을 죽인 적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법은 없죠.”진서준의 말을 들은 서광문은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네 실력이 대단한 건 알지만 그런 시도는 하지 마. 실패하면 죽음만 따를 뿐이야.”서광문이 좋은 마음으로 경고했다.진서준은 단순히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었다.지금의 진서준은 서지은과 다른 여자들을 위해서도 살아야 했다.진서준이 죽으면 허사연과 서지은 역시 진서준을 따라갈 게 분명했다.“제가 알아서 잘 판단하겠습니다.”진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알아서 판단은 무슨, 오늘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넌 죽었을 거야.”서광문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오늘 무슨 일
동남 해안 도시 임해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진서준과 바이올렛은 해변과 상당히 가까운 호텔에 잠시 머물며 해외 강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바이올렛이 자기를 속일 가능성을 고민하던 진서준은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결론을 내렸다.바이올렛은 감히 그럴 용기가 없는 건 둘째 치고 오히려 해외 강자들의 손을 빌려 진서준을 제거하고 싶을 것이다.진서준만 죽으면 바이올렛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태양이 지기까지 기다린 뒤, 진서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진서준은 통유리 창문 앞으로 다가가 500미터 바다 너머를 응시했다.보통 사람은 물론, 대종사조차도 이 어두운 밤에 500미터 밖의 광경을 분명히 볼 수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은 바다 위 500미터 너머에서 열 명이 넘는 인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이들 한 명 한 명에게서 발산하는 거대한 기운은 파도마저 요동치게 하며 거친 파도 소리를 울려 퍼지게 했다.“다들 온 것 같군. 우리도 출발하자.”말을 마친 진서준은 방을 나섰다.창문을 통해 바다 위의 싸움을 지켜보던 바이올렛의 눈빛이 반짝거렸다.바이올렛이 익숙한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희미한 별빛과 은색 달빛이 바다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드넓은 바다는 물결이 거센 기세로 치솟아 수천 마리의 군마가 질주하는 듯했다.거센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열일곱 명의 인물이 밤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났다.해변에서 놀고 있던 여행객들은 자신들로부터 불과 500미터 거리에 있는 바다 위에서 치열한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너희 여섯 명만으로는 우리를 제지할 수 없어.”서툰 대한민국어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국안부의 여섯 호국사가 열한 명의 해외 강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이 여섯 명의 호국사들은 모두 대종사 경지에 있었다.그중 가장 강한 자는 육급 대종사였고 가장 약한 자는 일급 대종사였다.그리고 이 여섯 명 중 한 명은 진서준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바로 얼
“한 어르신, 우리 중에서 어르신 실력이 가장 강하니 이따가 기회를 노려 얼른 도망치세요. 반드시 이곳 실상을 호국장군에게 전해야 합니다.”“안 돼, 다 같이 빠져나가야지.”외모가 약간 노쇠해 보이고 나이가 칠순을 넘긴 듯한 노인이 단호하게 말했다.노인의 등에는 여러 군데 칼자국이 나 있었고 피가 옷을 흥건히 적셨다.류재훈은 자연스레 쓴웃음을 지었다.류재훈 일행은 고한수 등과 겨우 열 수도 되지 않는 대결을 벌인 후 이미 이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고한수 일행은 류재훈 일행을 죽이는 데 급해하는 것 같지 않았고 고양이가 쥐를 농락하듯이 여유 있게 몸을 놀렸다.이런 상황에서 류재훈 일행 누군가 앞장서서 자폭하려는 각오하고 도망칠 길을 뚫지 않는 이상, 여기서 무사히 살아남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류재훈과 한 노인의 대화는 고한수 일행의 귀에도 들어갔다.“도망치려고? 너희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피처럼 붉게 물든 눈빛을 발산하는 고한수는 냉랭하게 웃으며 류재훈을 비웃었다.고한수의 눈에는 이 여섯 명의 대한민국 호국사가 이미 항아리 속의 물고기처럼 도망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고한수, 처음 약속했듯이 이놈들은 내 독충 먹이로 줄 거야.”하얀 두건을 두른 섬나라 노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고한수는 그 노인을 힐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약속은 지키지. 이놈들은 네 독충 먹이로 주마.”그 말이 끝나자마자 섬나라 노인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이 검은 안개는 여러 개의 대형 촉수처럼 류재훈 여섯 명을 향해 뻗어갔다.이 안개는 수많은 독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독충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윙윙 소리를 내며 류재훈 일행에게 달려들었다.“큰일이야!”독충이 날아오는 것을 본 류재훈 일행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다들 즉시 체내의 선천강기를 끌어모아 독충을 향해 날렸다.여섯 사람의 선천강기는 어떤 것은 칼과 검으로, 어떤 것은 야수의 형상으로 변해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너희의 그 공격은 대한민국에 널리 전해진
한 노인은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사실 한 노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한 노인은 이제 거의 여든에 가까운 고령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하지만 류재훈과 다른 대종사들은 달랐다.대다수 대종사가 예순 언저리의 나이였고 앞으로도 살날이 많이 남아 있었다.만약 이곳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면 정말 아쉬울 따름이었다.류재훈은 씩 웃으며 말했다.“한 어르신, 어르신이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하려고 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어르신 혼자 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국안부에서는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았습니다.”“맞습니다, 국안부는 동포를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나머지 사람들도 힘차게 외쳤다.류재훈 일행의 말을 들은 한 노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좋아, 오늘 우리 모두 국안부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자. 이놈들에게 우리 대한민국 남자의 기개를 보여주자.”“목숨을 걸고 싸우자!”“목숨을 걸고 싸우자!”쿵!폭원단을 삼킨 여섯 사람의 실력이 순식간에 크게 상승했다.하늘을 뒤덮는 기세가 여섯 사람의 몸에서 폭발해 나왔다.“어리석기 짝이 없군. 너희들이 그 작은 약 하나로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죽음을 각오한 여섯 사람을 보며 오다 신유는 눈에 경멸이 가득했다.두 세력 사이의 실력 차이는 그 작은 약 하나로 메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뒤에서 지켜보던 고한수의 눈에는 경외감이 스쳤다.“이제야 알겠어. 왜 대한민국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지...”“됐어, 위선 떨지 마. 우린 이놈들 죽이러 온 거야, 어서 함께 덤비자.”오다 신유도 더 이상 무모하게 혼자서 류재훈 일행 여섯 명을 상대하려 하지 않고 다른 섬나라 무인들을 재촉했다.“다들 함께 달려들어 저놈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리자.”그 말과 함께 고한수를 비롯한 열한 명이 일제히 류재훈을 포함한 여섯 명을 향해 돌진했다.대한민국 대종사보다 수도 많고 실력도 우세한 섬나라 강자들을
다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고한수 쪽 역시 크게 이득을 보지는 못했다.아까의 격전에서 그들 중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하지만 다행히 이 전투는 결판이 난 상황이었다.류재훈 일행은 더는 반격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아쉽군, 더 이상 나라를 위해 힘쓸 수 없다니.”한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눈에 깊은 슬픔이 가득했다.류재훈 일행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심지어 대다수 대한민국 사람은 류재훈 일행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그러나 다들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 그리고 호국사로서 살았던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지금 이 순간은 모두의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싶구나.”고한수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너희는 존경할 만한 상대야. 입장이 다르지만 않았다면 오늘 밤 너희와 함께 술을 나눴을 텐데, 안타깝구나...”“흥. 너희 섬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에 지울 수 없는 피의 빚이 있어. 대한민국 사람은 그 역사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눈에 깊은 증오가 가득한 한 노인은 고한수 일행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며 대응했다.백 년 전 대한민국의 대재난 사건에서 섬나라는 수천만 대한민국 사람을 학살했다.기개가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토록 엄청난 죄악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죽여!”오다 신유가 차갑게 외쳤다.“너희가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멋대로 날뛰는 걸 누가 허락했어?”바로 그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며 울려 퍼졌다.고한수 일행은 순간 움찔하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평범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그 남자의 옆에는 금빛 머리와 푸른 눈동자의 여자가 함께하고 있었는데, 여자의 눈부시게 섹시한 몸매를 본 섬나라 남성 몇몇 눈에 탐욕스러운 빛이 스쳤다.“얼씨구? 국안
바이올렛은 본래 고한수 일행이 진서준을 죽여 본인의 자유 되찾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진서준이 바이올렛을 위협해 이 섬나라 무인들을 적으로 돌리게 할 줄은 몰랐다.바이올렛도 어쩔 수 없었다.진서준이 바이올렛의 몸에 이상한 표식을 심어 두었기 때문이다.그 표식이 있는 한, 바이올렛의 생사는 진서준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바이올렛의 주먹에는 붉은 선천강기가 감싸여 있었다.주먹이 고한수의 칼날에 부딪힐 때, 금속끼리 부딪치는 듯한 쟁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바이올렛의 강력한 주먹에 밀려 고한수는 연신 뒤로 물러났다.고한수의 검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서 피가 흐르고 검신에는 맨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균열이 생겼다.낯선 여자에게 밀려 연달아 후퇴하는 고한수를 보고 섬나라 무인들은 전부 충격에 빠졌다.한 노인과 류재훈 일행도 입을 떡 벌리고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셋이 힘을 합쳐야 간신히 억제할 수 있는 고한수가 한낱 여자에게 밀리다니, 이건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고한수는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러 바이올렛을 반 발짝 물러나게 했다.그 틈을 타 고한수도 재빨리 후퇴했다.“너, 도대체 누구야?”고한수는 바이올렛을 보며 공포에 찬 눈으로 물었다.“이 여자는 내 하인이야.”진서준이 바이올렛 대신 느릿느릿 대답했다.자기가 진서준의 하인이라는 말에 바이올렛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하지만 반항할 수 없기에 바이올렛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뭐라고? 이 여자가 네 하인이라고?”하인이 이 정도라면 주인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고한수는 곧바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넌 국안부 소속이 아닌 것 같은데?”“난 너희를 죽이러 온 사람이야. 그것만 알아두면 돼.”진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여기 온 목적을 밝혔다.“말투를 보니까 너희는 섬나라에서 온 것 같은데, 고필두 그 녀석은 어디 갔어? 왜 안 보이지?”진서준이 고필두의 이름을 언급하자 고한수의 눈빛이 날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
진서준과 곽윤상은 약속된 호텔을 향해 차를 몰았다.가는 길에 곽윤상이 말문을 열었다.“진 마스터님이 황씨 가문 따님을 데리고 떠난 직후, 경찰청과 군부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습니다.”그 총격 사건에 관련된 총잡이들은 물론, 사건 현장과 가까웠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경찰서로 끌려가 진술을 받았다.하지만 진서준이 사람을 구할 당시 주변엔 이미 아무도 없었기에 누가 황예은을 구했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아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할 겁니다.”진서준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쪽에서 고용한 사람은 대부분 죽음의 수행자입니다. 이런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죠.”아까 진서준이 그 총잡이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이 이미 중독된 상태란 걸 알아챘다.그 독은 독성이 맹렬한 독이었고 섭취 후 12시간 안에 즉사하게 되어 있었다.이를 통해 배후의 진짜 범인은 상당히 잔혹한 수단을 사용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곽윤상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명문대가로 불리는 가문들은 흔히 이런 죽음의 수행자들을 양성한다.이 죽음의 수행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이 명령만 내리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명주시에서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어느 가문인지 알아요?”진서준의 질문에 곽윤상은 멈칫하다가 되물었다.“진 마스터님은 이 사건을 조사하려는 겁니까? 황씨 가문 따님과 친구 사이신가요?”“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조사 중인 다른 일이 오늘 밤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진서준이 답했다.간첩 문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황씨 가문의 실권을 장악한 황예은이 확보한 자료 중에 진서준이 필요한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명주시에서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외에도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열 곳은 넘습니다.”곽윤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명주시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지만 이곳은 땅값이 금값입니
잠시 후, 황예은이 엎드린 채 갑자기 구토하기 시작했다.검은색의 악취 나는 물질들이 황예은의 입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상황을 보며 여전히 긴장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황예은이 이물질을 다 토해낸 후, 진서준은 그녀의 몸에서 침을 뽑아냈다.그러고는 입가의 검은 물질을 닦아내고 황예은을 소파에 똑바로 눕혔다.“실례할게요.”말을 마친 진서준의 두 손이 황예은의 쭉쭉빵빵한 몸 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이 의식이 없는 틈을 타 뭔가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었다. 황예은이 중독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침 치료만으로는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탐운19수라는 특별한 마사지 기법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이 치료는 진서준에게도 고역이었다.의사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현실은 달랐다.특히 이렇게 절세 미녀인 황예은 앞에서라면 어느 남자 의사라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그때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렸다.올기가 서지은을 집 안으로 들어보내고 곽윤상은 문밖에서 대기하게 했다.거실에 들어온 서지은은 알몸으로 누워 있는 황예은과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는 진서준을 보고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서준아, 너... 너 어떻게 예은 언니가 기절한 틈을 타 성추행할 수 있어?”서지은은 화난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왔다.“그건 오해야. 난 지금 이 여자 체내 독을 제거하는 중이야.”진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서지은은 아무 말 없이 진서준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바닥에 있는 이 검은 물질은 전부 독이야. 이 여자가 방금 토한 거거든.”진서준이 바닥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서지은도 바닥에 가득한 물질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았다.“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순 없었어?”“나도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야. 이따가 곽 선생님과 함께 약왕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그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어.”진서준은 이 수단을 사용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검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존재가 있었다.주변 사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진서준은 황예은을 등에 업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기와 서지은이 머무는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 들어가자 진서준은 서둘러 불을 켜고 황예은을 소파에 눕혔다.이때 황예은은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바람에 말라 피비린내가 거의 다 사라졌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 총상 자국이 있었고 꽤나 참혹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주요 부위는 피해 가서 치명상은 아니었다.“넌 밖에 나가서 별장을 지켜.”진서준은 어깨에 앉아 있던 올기를 향해 말했다.올기는 순순히 밖으로 날아가 진서준을 위해 문을 지켰다.올기가 떠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몸에 남은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 작품처럼 완벽한 몸매가 진서준의 눈앞에 드러났다.비록 여자의 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진서준은 자연스럽게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핏자국이 없었다면 황예은의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몸매만으로도 진서준의 피를 끓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진서준은 마음을 다잡고 손바닥을 황예은의 몸에 놓았다.진서준 체내의 영기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황예은의 온몸에 퍼져나갔다.치료가 거의 다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황예은 몸 안에 흩어진 영기가 터진 풍선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속 총알을 튕겨냈다.총알은 무려 다섯 개나 체내에 있었다.여자는 고사하고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총알 다섯 발을 맞고 살아남는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체내의 총알이 빠져나간 후, 진서준은 바로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몇 군데 피가 황예은의 허벅지 안쪽에 흘러내렸다.“이건 다 널 살리기 위한 거야...”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황예은의 피를 닦아내는 데만 해도 수건 세 개가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황예은의 몸에
게다가 지금 황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그룹은 황예은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황예은이 죽으면 황씨 가문는 크게 요동치며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그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이 될 수 있었다.진서준은 급히 황예은을 부축해 차에서 끌어냈고 영기를 그녀의 몸에 주입해 출혈로 인한 상처를 치유했다.“주인님, 제가 도와드릴까요?”올기가 급히 물었다.“괜찮아, 여긴 보는 눈이 많아 넌 그냥 조용히 있어.”진서준은 황예은을 안고 단 몇 걸음 만에 곽윤상의 차로 돌아갔다.진서준이 차 안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진서준이 안고 있는 사람을 보자 서지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예은 언니!”황예은이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본 서지은은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서준아, 아까 공격받은 사람이 예은 언니였어?”진서준도 놀라며 되물었다.“너 이 여자 알아?”“명주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입니다.”곽윤상이 대신 대답했다.“이 여자는 명주시 최고 재벌 황경영의 딸입니다. 지금 황씨 가문 실권도 이 여자가 꽉 쥐고 있고요.”보아하니 황예은은 명주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인 듯했다.“예은 언니와 난 같은 대학에 다녔고 언니는 내 선배였어. 우리는 학교에서 꽤 친하게 지냈어.”서지은은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며 초조하게 말했다.“서준아, 제발 예은 언니를 살려줘.”“걱정 마, 이 여자를 죽게 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윤상에게 말했다.“곽 선생님, 오늘 약왕과의 만남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여자를 치료하는 게 시급한 것 같아요.”“알겠습니다, 바로 약왕에게 연락할게요.”곽윤상은 곧바로 약왕에게 전화를 걸었다.약왕은 약속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자 불쾌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명주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약왕은 누군가가 약속을 잡았다가 제멋대로 취소할 수 있는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곽윤상, 난 당신 스승 체면을 봐서 만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