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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8화

작가: 무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15 19:00:00
“황 도련님과 양 도련님도 있는데 누가 감히 깽판을 치는 거지?”

“세상에! 여기는 양 어르신 생일 연회장이잖아. 손대는 놈은 미친 게 분명해.”

“저기 봐, 조씨 가문 가주도 저 자리에 있어. 우리도 빨리 가서 구경하자.”

대다수 하객이 신기한 장면에 끌려 몰려들었다.

양지천과 황현호는 진서준의 귀싸대기를 맞아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이빨도 몇 개나 빠졌다.

“나 할아버지, 저 녀석 당장 죽여버려요! 갈기갈기 찢어주세요!”

양지천은 배수정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분노 때문에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의 점잖은 신사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영진의 얼굴도 싸늘해졌다.

나영진의 앞에서 양지천에 귀싸대기를 날리다니, 이건 나영진을 무시하는 도발 행위로 간주했다.

“꼬맹이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나영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전력을 다해 움직였다.

이 무례한 녀석을 한 방에 죽여버리고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나영진의 모습이 모두의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

짙은 밤하늘에 하얀 표범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하얀 번개처럼 신속하게 진서준을 향해 돌진했다.

표범이 지나가는 곳마다 밤하늘이 찢어지는 듯했고 만물의 왕처럼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흰 점박이 표범은 위엄 있게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몇몇 무인들은 나영진의 흰 표범에 깃든 강력한 기운을 바로 감지했는데 그 기운은 전차도 산산조각 낼 정도였다.

“칠급 대종사네.”

공포스러운 나영진에 맞선 진서준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밤하늘에서 얇고 투명한 청색의 빛이 번쩍이며 지나가더니 천상의 힘을 가진 참선검이 진서준의 손에 떨어졌다.

진서준은 체내의 영기를 다루어 천천히 참선검에 담았다.

담청색 칼날의 참선검은 이 순간 눈부신 금빛을 내뿜으며 연회장을 한낮처럼 밝게 비췄다.

진서준은 참선검을 들고 그 흰 표범을 마주 보았다.

“아저씨, 조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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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서준과 나영진이 동시에 상처를 입고 날아가는 걸 본 하객들은 전부 아연실색했다.“나영진이 칠급 대종사인데 어떻게 40대 중년 남자한테 저렇게 크게 다칠 수 있지? 설마 저 남자도 칠급 대종사란 말인가?”“세상에, 예전에 국안부에 등장한 진서준 하나만으로도 충격적인데, 어디서 또 이런 괴물이 나타난 거지고?”“그러고 보니 최근에 진 마스터에 대한 소식이 전혀 없지 않아? 혹시 누군가에게 당한 거 아니야?”봉호전 이후로 진서준은 증발한 듯 사라졌고 어떤 정보도 남기지 않았다.진서준이 사라지자 세간의 명문대가들은 혼란에 빠졌다.어떤 이들은 진서준이 전설 속의 무인에게 제자로 받아들여져 수련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또 다른 이들은 진서준이 실력이 강한 대종사에게 살해당했다고 의심했다.나무가 크면 바람도 거세게 불기 마련이니, 이 예측도 일리가 있었다.질투심이 강한 선배 대종사들은 이런 절세의 천재가 떠오르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다만 진서준이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중년 남자가 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대체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괴물 같은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양지천의 표정은 극도로 어두웠다.나영진이 단번에 진서준을 제압하지 못했을뿐더러 이렇게 큰 소란을 일으켜버렸으니, 양지천의 계획이 뒤틀어지고 말았다.만약 이 상황이 할아버지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히 연회장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꾸중을 듣게 될 터였다.한편, 이 상황을 구경하던 조태희는 진서준의 실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역시 신농의 시험을 통과할 만한 사람이었네...”조태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진서준을 보며 눈에서 한 줄기 빛이 스쳤다.이 남자가 나이만 10살 정도 더 젊었다면 딸 조민영을 시집보냈을 것이다.하지만 이 남자가 자기와 나이가 비슷하니 그저 아쉽기만 했다.나영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고수들 간의 승부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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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140화

    나영진이 크게 상한 걸 확인한 양재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양씨 가문의 맹수 같은 대종사인 나영진의 실력을 양재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대한미국 전역에서도 팔급 이상의 대종사만이 나영진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양재민의 시선이 천천히 진서준에게로 옮겨졌다.“응?”약삭빠르기로 유명한 양재민마저도 눈썹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한낱 40대 중년 남자가 나영진을 이토록 다치게 하다니, 이 인물은 앞으로 탄탄대로만 달릴 게 분명했다.“할아버지, 저 남자가 연회장에 몰래 들어와 황현호와 충돌이 있었어요. 제가 몇 번을 경고했건만 듣지 않고 오히려 양씨 가문이 쓰레기라고 비웃더군요... 그래서 제가참다 못해 나 할아버지를 불러서 저 남자를 내쫓으려고 했어요.”양지천은 곧장 진서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양재민은 양지천의 해명을 듣고 그를 차갑게 쏘아보았다.그 시선에 양지천은 심장이 반쯤 얼어붙는 느낌이었다.“오늘 이 자리에 있는 손님은 모두 귀한 손님이야. 몰래 들어왔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아.”양재민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보탰다.“지천아, 정말 실망스럽구나.”양지천은 고개를 푹 떨구고 등 뒤로 숨긴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지금 양지천은 진서준을 죽도록 증오하고 있었다.진서준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할아버지에게 질책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손님,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어요?”양재민은 평화로운 어조와 함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양재민의 말투에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양재민이 양씨 가문을 대표해서 이 남자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인가?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나영진이 강하긴 해도 양씨 가문의 최강 대종사는 아니었다.게다가 양씨 가문 안에 전설적인 존재인 지선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김평안입니다.”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진서준의 이름을 듣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렸다.“이름이 낯설군. 들어본 적이 없는데?”“성씨가 김이라니... 혹시 강남 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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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순간, 모든 사람은 눈앞의 이 중년 남자가 죽고 싶어 환장한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어찌 목숨뿐이겠는가!양씨 가문은 대한민국의 가문 중에서도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가문이다.얼마나 많은 무인이 양씨 가문의 공양이 되려고 하는지 감히 셀 수 없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김평안이라는 중년의 남자는 감히 양씨 가문이 이 네 글자와 어울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그가 지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설령 지선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양씨 가문이 자격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때, 양지천의 누그러졌던 마음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김평안, 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아! 감히 우리 할아버지 앞에서 양씨 가문이 이 네 글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다니. 그 어리석은 광기가 곧 너를 해칠 것이다!’“김평안 씨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합니까?”양재민은 한 음절 한 음절 딱딱 끊어가며 말을 하고는 차디찬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양씨 가문은 자격이 없다고?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대체 어느 가문이 자격이 있단 말인가!“당연히 알고 있습니다.”진서준의 놀랍도록 차분한 얼굴에서는 그 어떤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양지천과 황현호가 먼저 일을 벌인 이상 진서준은 아예 일을 더 크게 벌여 그들을 쉽게 놔주지 않을 심산이었다.당시 진서준의 부모를 죽인 사람 중에는 양씨 가문 사람도 있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양씨 가문에 대해 일말의 호감도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오늘 양재민의 생일 축하 파티를 크게 연 것도 진서준의 예상대로였다.“그럼 우리 양씨 가문이 대한민국에서의 세력도 알고 있습니까?”양재민이 계속해서 물었다.“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양씨 가문의 세력은 전국 곳곳에 퍼져있지 않습니까. 진씨 가문, 은씨 가문, 임씨 가문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가문이라고 불리죠.”진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우리 양씨 가문의 세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양씨 가문이 자격이 없다고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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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외국인 여자는 누구야? 난 왜 한반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지?”“모르겠어. 설마 다른 나라의 공주라도 되는 걸까?”한 청년이 농담했다.다른 사람은 엘리사를 모를지언정 양재민은 그녀를 안다.양재민은 4대 가문의 가주로서 당연히 알고 있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다.용란의 공주 엘리사가 진서준을 위해 사정하는 것을 본 양재민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엘리사 공주님, 이 사람이 공주님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습니다만?”양재민이 이 금발의 여인을 부르는 칭호를 듣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경악했다.진짜 공주였다니!“이 사람은 제 친구의 친구예요.”엘리사가 해석했다.진서준이 엘리사를 구해줬었고 김평안은 진서준의 친구였기에 엘리사는 나서게 된 것이었다.“친구의 친구라고 하셨습니까?”양재민의 눈살은 더 심하게 찌푸려졌다.“엘리사 공주님, 부디 제가 공주님의 체면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만약 이 사람이 공주님의 친구라면 저는 이 사람을 살려줄 겁니다.”“하지만 단지 친구의 친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공주님은 빨리 이 일에서 손을 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양씨 가문은 이 용란 공주를 차마 건드리지 못했다.하지만 양재민도 엘리사가 이렇게 쉽게 사람을 빼갈 생각이라면 순순히 허락할 리 없었다.엘리사도 양재민이 본인에게 공주로서의 체면을 생각해주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양 가주님, 만약 제가 이 사람을 데리고 가게 해준다면 우리 용란 제국이 양씨 가문에 인정으로 신세를 한 번 지는 거로 할게요. 어떤가요?”용란 제국의 공주라니.듣고 있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게다가 그들은 용란 제국에 공주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들었다.하지만 이 엘리사 공주도 여간 미친 게 아니었다.용란 제국의 인정으로 친구의 친구를 지키다니.진서준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그저 한번 본 인연에 불과한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양재민은 심호흡으로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웠다.“좋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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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143화

    용란 공주에 이어 국안부의 호국장군까지 진서준을 보호하러 왔다.게다가 진서훈은 다국적 무도 교류전까지 언급하였다.양재민은 아무리 화가 나고 진서준이 꼴 보기 싫어도 지금은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다국적 무도 교류전은 대한민국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기에 상무각의 몇몇 위원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만약 양씨 가문 때문에 이 중요한 일에 차질이라도 생긴다면 단언컨대 양재민도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양씨 가문은 4대 가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가문이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이번만큼은 국안부의 체면을 생각해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뿐만입니다!”양재민은 냉정하게 말했다.“만약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그 누구의 체면도 안중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진서훈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절대 다음은 없도록 하겠다. 너희 양씨 가문에서도 이해할 거라 믿는다.”“흥!”양재민은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 자리에 있던 다른 권력자들도 양재민이 떠나자 흥미가 떨어졌다.결국 조민영과 진서훈 그들만이 남았다.“엘리사 공주님, 감사합니다.”진서준은 엘리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괜찮습니다. 은혜를 갚고 싶으시면 진서준 씨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엘리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은 잠깐 생각하고는 이미 꺼진 핸드폰의 전화번호를 엘리사에게 알려주었다.엘리사는 전화번호를 얻고는 대단한 금은보화라도 얻은 것처럼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게 웃었다.멀리 나가지 않은 배수정도 진서준과 엘리사의 대화를 들었다.배수정은 걸음을 늦추고 엘리사를 기다렸다.“엘리사 공주님, 진서준 씨를 아세요?”엘리사가 다가오자 배수정이 물었다.“네. 수정 씨도 진서준 씨를 아세요?”엘리사가 웃으며 물었다.“알아요. 근데 좋기는 그 사람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세요. 안 그러면 공주님만 다치게 될 수도 있어요.”배수정은 단지 선의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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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서훈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진요한을 죽인 사람들은 악마와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진서준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들을 죽이려면 우선 천의방에 들어가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그럼 제가 실력이 충분히 성장한 다음 저에게 알려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그러고 보니 지금은 왜 아까 양씨 가문에서처럼 날뛰지 않는 것이냐?”진서훈은 진서준이 당장 그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라고 할 줄 알았으나 얌전한 그의 태도에 의외라고 생각했다.“제가 양씨 가문에서 그렇게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 덕분입니다.”진서준은 허허 웃었다.“너 이 녀석! 이젠 할아버지도 이용하는구나!”진서훈은 쓴웃음을 지었다.“됐다. 내일 밤에 사람을 보내 너를 데려오겠으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라.”“할아버지, 부디 살펴 가십시오!”진서준은 발걸음을 옮겼다.양재민의 생일 연회에서 진서준이 하도 일을 크게 벌여놓은지라 양씨 집안 전체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오늘 밤의 일이 당장 내일이라도 전국에 퍼질까 두려웠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씨 가문이 엄청난 수치를 당한 건 아니었다.무려 용란 공주와 현천진군이 모두 진서준을 지키러 왔단 말이다.양재민은 감히 호국장군의 체면을 깎을 수는 없었다.밤이 깊어지고 연회가 끝나 귀빈들도 모두 돌아간 후에 양재민은 양지천을 자신의 앞으로 불렀다.“꿇거라!”양재민은 낮게 읊조렸다.털썩...양지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양재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왜 무릎을 꿇으라 했는지 알고 있느냐?”“알고 있습니다. 제가 양씨 가문이 모욕을 당하게 했기 때문입니다.”양지천은 이를 깨물며 말했다.“틀렸다!”양재민은 차디찬 눈빛으로 양지천을 바라보았다.“이런 네가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도련님이라고 불리다니! 네가 오늘 밤 황현호 그 자식에게 이용당한 건 알고나 있느냐?”사실 오늘 밤의 일은 모두 황현호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만약 황현호가 찾아와 진서준을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오늘 밤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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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서준은 지금 김평안의 신분으로 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다.만약 진서준이 자신의 원래 신분으로 이곳에 왔다면 이 일곱 사람은 아마 기뻐서 날뛰고도 남았을 것이다.작년 말, 진서준이 용존 봉호를 하사받았을 때 국안부 내의 많은 종사가 진서준의 팬이 되었을 정도였다.그들이 진서준에 대한 존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자신보다 천부적인 재능이 타고나다 느끼면 질투만 하던 나영진과는 확연히 달랐다.국안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의 무인들보다 가치관이나 포부가 훨씬 훌륭했다.진서준은 한밤중에 화장실을 갈 때 호창정과 나머지 사람들이 아직도 도장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진짜 열심히 하네...”“설마 할아버지께서 이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알려주지 않은 건가?”진서준은 작게 웃고는 도장을 향해 걸어갔다.“저희가 무술을 연마하는 소리가 김평안 씨를 시끄럽게 했습니까?”호창정은 진서준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눈썹을 꿈틀이고는 물었다.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멈추고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아닙니다. 전 그저 여러분이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서 온 것뿐입니다.”진서준은 작게 웃었다.진서준의 말을 들은 가장 어린 무인의 얼굴에는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김평안 씨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승산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아예 포기하란 말입니까?”“현천진군께서 왜 당신 같은 사람을 교류전에 참가하라고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몇몇은 안색마저 눈에 띄게 나빠졌다.그들도 이번 교류전에서 우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자 진서준은 서둘러 해석했다.“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그럼 무슨 뜻이었습니까?”진서준은 살짝 웃고는 말을 이어나갔다.“제 말은, 제가 있는 한 여러분은 출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습니다.”호창정을 비롯한 팀원들은 진서준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진서준이 있는 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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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9화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8화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7화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6화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5화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4화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3화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62화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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