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준은 아찔하고도 강렬한 수컷의 기운을 내뿜었다.“감히 날 협박해?”서다인은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불안감에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제발 사람 강요하지 말아요.”남하준은 싸늘하고도 한없이 짙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을 담담하게 쳐다봤다.매끄럽고 탱탱한 피부 결과 또렷한 이목구비, 작고 동그란 얼굴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귀엽고 앙증맞을 따름이었다.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은 백하린의 어릴 때 모습을 조금 닮아 있었다.남하준은 넋 놓고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들썩거렸다.“네가 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랑 비슷해지려고 갖은 수단을 부렸나 봐? 이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겠어. 이래서 할머니가 널 그렇게 좋아하셨구나.”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라니?남하준이 말한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서다인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남하준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알았어, 네 요구 들어줄게.”그는 이 말만 남긴 채 부하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그 순간 서다인은 어안이 벙벙했다.어떤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이지?이혼 아니면 부부로서 잘 지내는 거?...밤이 깊어지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류청이 저녁밥을 방 문 앞까지 가져왔고 서다인은 식사를 마친 후 방 안에서 병법에 관한 서적을 한 권 찾아내 흥미진진하게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피곤이 몰려오자 그제야 씻으러 들어갔다.욕실에서 30분을 씻은 후 갈아입을 옷이 없어 몸에 걸쳤던 때 묻은 옷을 깨끗이 빨아서 욕실 창문 밖에 내걸어놓고는 샤워가운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별안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남하준이 막 상의를 벗고 튼실한 몸매를 드러내며 버젓이 방에 나타난 것이다.건강한 피부색과 탄탄한 근육,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에 간간이 옛 상처가 보여 남자의 매력이 더 물씬 풍겼다. 말 그대로 상남자였다.남하준이 상의 탈의한 채로 화끈한 몸매를 드러내며 그
남하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정색하며 물었다.“이 남하준의 아내가 바닥에서 잔다고? 지금 누굴 능멸하는 거야?”막강한 남성호르몬과 아찔함 속에 스친 무언의 압박감에 서다인은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잔뜩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그저... 하준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함께... 함께 자는 게 마땅치 못하다고 생각했어요.”남하준은 눈썹을 치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려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난 너한테 아무 감정 없어. 네가 발가벗고 내 앞에서 춤춘다 해도 쳐다보지 않을 거고 터치할 일은 더더욱 없어.”서다인은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고 가슴 깊숙이 있는 가장 연약한 곳을 찔린 듯 숨이 턱턱 막혔다.반박하고 싶었지만 목이 불에 타듯 따가웠고 입만 열면 이 서러운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될까 봐 두려웠다.그녀의 맑고 영롱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서다인은 결국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침묵했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고인 순간 남하준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잠시 넋을 놓았다.이어서 그는 옆자리에 등지고 누워 차갑게 명령했다.“불 끄고 이만 자.”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방 안의 조명이 어두워졌다.서다인은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을 쳐다보며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자세를 다잡고 편하게 누웠다.커다란 더블침대에 두 남녀는 각자 침대 양옆에 눕고 중간에 아주 넓은 거리를 두었다.이날 밤 서다인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새벽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끝내 참지 못하고 스르륵 잠들었다.다음 날 이른 아침, 그녀는 벨 소리에 놀라서 깼다.비스듬히 눈을 뜨니 남하준이 멋진 검은색 군복 세트를 차려입고 위풍당당한 기운이 저절로 차 넘쳤다.이런 게 아마도 한 사람을 짝사랑하는 자의 마음가짐이겠지. 그가 나타난 곳마다 눈부신 아우라가 풍기는 그런 느낌.남하준이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낮췄다.“좋은 아침, 하린아, 무슨 일이야?”서다인은 백하린이 뭐라 말하는지 모르지만 남하
부하가 공손하게 대답했다.“네.”남하준은 속절없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서다인이 말한 남편의 도리를 잘 지키기 위해 이러고 있는 저 자신이 너무 뜬금없게 느껴졌다....사흘 뒤.서다인은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됐다.남하준은 백하린을 만나러 간 그날부터 사흘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서다인은 3일을 꼬박 남하준의 그림자조차 구경하지 못했다.그녀는 기분이 점점 가라앉아 훈련기지에 와서 이곳의 전사들에게 호신술을 몇 수 배우기로 했다.남성호르몬이 폭발하고 양기가 차 넘치는 이곳에서 무술을 배우는 가녀린 그녀는 자연스럽게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훈련장에 건장한 사내들로 둘러싸였고 가까운 곳에서 백하린이 정호 비서실장과 함께 걸어왔다.“벌써 3일째인데 하준 오빠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정호가 말했다.“도련님은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계십니다. 오늘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백하린은 한창 호신술을 배우는 서다인을 가리키며 눈가에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요?”“사모님은...”정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하린이 덥석 가로챘다.“사모님은 개뿔! 지금 나더러 사모님이라고 불러라는 거예요? 쟤 따위가 그럴 자격이 돼요? 심보가 고약하고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인데. 오빠가 저 여자 때문에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알아요? 유흥업소에서 아가씨 일까지 했었다고요. 온갖 문란한 짓은 다 하고 다녔는데...”백하린은 정호의 귓가에 대고 오버하며 서다인의 험담을 늘려놓았다.훈련장에서 땀에 흠뻑 젖은 서다인은 며칠 동안 우울했던 기분이 금세 맑아졌다.“고마워요, 선생님.”서다인은 호신술을 가르쳐주신 코치에게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몇 수 더 배우고 싶은데 또 가르쳐주실 순 없나요?”코치가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히 가르쳐드려야죠.”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정호가 씩씩거리며 다가와 야유에 찬 눈길로 서다인을 노려봤다.“제가 가르쳐드리죠.”서다인은 멍하니 그를 쳐다봤고 코치는 공손하
짙은 눈빛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남하준이 싸늘한 말투로 정호에게 물었다.“지금 이 사람 가르치는 거야 그냥 놀리는 거야?”정호는 바짝 긴장하여 침까지 삼켰다.“도련님, 저는 사모님께 호신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장내에 있는 모든 이가 정호 대신 식은땀을 뺐다.그의 비겁한 수작을 남하준이 모를 리 있을까.그는 서다인을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멀리 가 있어.”서다인은 심장이 움찔거리고 이유 모를 설렘을 느꼈다.남하준은 그녀를 제대로 쳐다본 적도 없지만 이 동작은 분명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니까.‘하준 씨가 대체 왜 이러지?’그녀는 몹시 의아했다.남하준은 여유 있게 손목시계를 풀며 말했다.“우리 한 판 붙어. 네가 이기면 여기 남는 거고 지면 당장 꺼져.”정호는 식겁하여 사색이 된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해명했다.“도련님, 저는... 도련님께 상대가 안 돼요. 단지 사모님께 호신술을 가르쳐드렸을 뿐이에요. 제발 저 자르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도련님...”남하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목시계를 서다인에게 건넸다.그녀는 시계를 받으며 또다시 이유 모를 설렘을 느꼈다.정호는 긴장하고 당혹스러운 채 꿈쩍없는 남하준을 쳐다보다가 결국 애원하는 눈길로 서다인에게 말했다.“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넘어뜨린 건 아니에요.”남하준은 그에게 시끄럽게 변명할 기회를 안 줬다. 그는 마치 맹수처럼 정호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퍽!”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정호는 1미터 밖으로 튕겨 나가더니 바닥에 쓰러진 채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배를 끌어안고 서서히 몸을 움츠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서다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남하준의 충격적인 무력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대박! 이토록 살벌한 공격이라니.만약 아까 맞은 게 그녀였다면 한방에 하늘을 뚫고 올라갔을지도 모른다.정호는 고통이 조금 가신 후 몸을 지탱하며 겨우 일어나 도련님이 여느 때보다 진지하단 걸 깨달았다.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오늘 무조건 잘릴 것이다.
서다인은 손 내밀어 그의 말을 툭 잘랐다.“됐어요. 여기 남으셔도 돼요.”그녀는 결코 속 좁은 여자가 아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직업에 애정 품은 사람을 밥그릇을 잃게 할 생각은 없다.정호는 희열에 넘쳐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고맙습니다, 사모님.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너그러운 분이시네요.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분부만 하세요. 사모님을 위해서라면 두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서다인은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무심코 손목시계를 정호에게 건넸다.“두 발 벗고 나설 필요는 없고, 일단 이 시계를 하준 씨한테 돌려주세요.”“네.”정호는 손목시계를 건네받았다.이때 서다인이 또 물었다.“이 근처에 기차역이나 공항 있어요?”정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사모님 여길 떠나시게요?”서다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제 남편이 딴 여자랑 알콩달콩한 모습을 한시라도 쳐다보고 싶지 않으니까.이런 식으로 저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해 경향이 전혀 없다.돌아가서 할머니께 잘 설명해 드리고 이 죽일 놈의 결혼생활에 얼른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정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사모님, 제가 내일 휴가 신청하고 바래다 드릴게요. 안성시까지 차로 가려면 6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그래요, 고마워요.”서다인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몸에 기운이 쫙 빠진 채 나긋하게 대답했다. 이건 아마도 남하준을 향한 마음을 다 내려놓아서 그런 듯싶다.그녀는 흐리멍덩하게 훈련장을 떠났다.저녁 무렵 드리워진 따뜻한 노을빛은 아늑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서다인은 방에 숨어 책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점심도 안 먹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다.그녀는 방에서 나와 곧게 주방으로 향했다.가는 길에서 남하준과 마주쳤고 그의 뒤엔 류청과 정호 두 명의 비서실장도 있었다.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올렸다.“사모님.”서다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응했다.“네.”남하준은
5번 과학 연구소 건물.사람들이 줄지어 코를 막고 안에서 도망쳐 나왔다.중독당한 대부분 사람들은 구토 증상을 일으키고 또 일부는 머리가 어지러워 바닥에 누워 있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캠프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전부 환자를 구하러 달려왔다.서다인은 숨을 헐떡이며 현장으로 달려와 남하준의 안위가 걱정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때 남하준이 백하린을 안고 5번 건물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의료 침대에 눕혔다.서다인은 문득 저 자신이 우스워졌다.그녀의 신경은 온통 이 남자인데 정작 이 남자의 눈엔 백하린밖에 없다.남하준은 백하린을 의사에게 넘긴 후 또다시 안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려 했다.이때 백하린이 그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울며 애원했다.“오빠, 가지 말아요. 나 너무 아파. 토하고 싶어요...”“착하지.”남하준이 다정하게 타일렀다.“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옆에 있어.”백하린은 머리를 내저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울먹이며 계속 중얼거렸다.“가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오빠, 나 진짜 죽으면 어떡해요?”이때 류청이 달려와 보고했다.“도련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고 총 35명이 중독되었습니다.”남하준은 옆에 있는 연구원에게 물었다.“유 교수님, 대체 무슨 액체가 누출된 거죠? 생명의 위험은 있나요?”유주헌이 사색이 되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청유액이라고 해외에서 들여온 신제품이라 저희도 아직 연구 단계에 있습니다. 이 제품에 대해 아예 익숙하지 않습니다.”남하준은 차가운 시선으로 의사를 쳐다봤다.의사는 흠칫 놀라더니 긴장감이 더 조여왔다.“도련님, 제가 오랫동안 의학을 공부해왔지만 청유액이란 화학 물질은 들어본 적이 없어 그 독성도 잘 모릅니다. 각 환자의 화학 실험 보고서가 나와야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왜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고 누출하게 된 거죠?”남하준은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에
설마 이 여자의 조사에 대한 조사에 착오가 있었단 말인가?하지만 유주헌은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미소를 활짝 지어 보이고는 가슴이 벅찼는데도 예의를 지키며 물었다.“사모님, 혹시 화학을 전공하셨어요?”강물처럼 맑은 눈을 가진 서다인은 순간 머리가 하얘져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모르겠어요, 기억이 없거든요.”“기억이 없다고요?”유주헌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보였다.“그럼 청유액이랑 레늄 원소는 어떻게 알고 있어요? 해독할 줄도 아시잖아요.”서다인이 한참 고민을 하다가 여유롭게 대답했다.“요리할 때는 소금을 넣어야 하듯이, 낚시할 때는 미끼를 던져야 하듯이, 이건 상식 아닌가요?”그녀의 말에 유주헌은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숭배의 눈빛으로 서다인을 바라봤다.멀지 않은 곳에서 정호와 류청은 부하들과 함께 중독된 사람들에게 식용 알칼리수를 마시게 했다.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의 구토 증상과 복통이 사라졌다.머리가 아직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해독약의 효과는 대단했다.류청은 남하준 앞에 다가오고는 예의를 갖추며 그에게 알칼리수를 건넸다.“도련님, 효과가 좋으니 하린 씨께 드리세요.”백하린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녀는 주목받는 서다인이 싫어 고집을 부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안 마셔요.”남하준이 미간을 구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안 마셔?”백하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하준 오빠, 나 이런 거 안 마실래요. 서다인 언니는 중학교도 졸업 못했잖아요, 지식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믿고 마시겠어요.”중학교도 졸업 못했다니, 그럼 초졸이란 말인가?놀라움을 금치 못한 사람들이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서다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서다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기에 일부러 괜찮은 척하며 입을 열었다.“하린 씨, 차래지식을 먹지 않으려는 그 패기, 대단하시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켜나가시길 바랄게요, 화이팅!”말을 마친 서다인이
깊은 밤.서다인은 샤워를 마친 후 햇살이 가득한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잃어버린 휴대폰을 들고 뉴스를 확인했다.그녀를 납치한 김호영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사기 센터의 피해자들도 모두 구출되었다. 그리고 범행에 가담한 사람들은 남하준의 부하들에게 잡혀 경찰에 인계되었다.그녀의 가방도 휴대폰도 모두 되찾았지만 아쉽게도 3년 동안 모은 돈은 모두 그녀의 친오빠가 빼돌렸다.지금의 그녀에게는 이 휴대폰 말고는 무일푼이다.기억을 잃은 후로 그녀는 은경애를 만났는데 은경애는 마치 원래 그녀를 알고 있던 것처럼 예뻐했고, 꼭 그녀를 곁에 두려고 했다.그렇게 서다인은 은경애 옆에서 3년 동안 간병인을 해 왔다.친구도 없고 불운과 재앙만 안겨주는 가족을 찾아갈 수도 없으니 생활고에 쪼들리는 지금 누구에게 돈을 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서다인이 생각을 거두고는 문 쪽을 바라봤는데 남하준의 튼실하고 넓은 어깨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지금 문을 닫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을 본 서다인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긴장된 마음에 시선을 거두고는 고개를 푹 숙여 휴대폰으로 디지털책 아무거나 하나 열어 읽기 시작했다.남자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는데 그가 내디딘 걸음마다 서다인의 심장을 강타하고 있었고 긴장감은 갈수록 커졌다.남하준이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남하준은 베란다 난간을 등진 채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압감을 풍기는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의심스러운 듯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그와 눈을 마주치자 서다인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겨우 침착을 유지하며 나지막이 물었다.“왜 나를 그렇게 봐요?”남하준이 대답했다.“정말 3년 전에 있었던 일을 잊었어?”“네.”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남하준이 입술을 감쳐물고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뒤 또 물었다.“청유액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서다인의 머릿속에는 이 물질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
지우는 남태준에 의해 강제로 집에 끌려들어 갔다.문이 잠기는 순간 지우는 좀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화가 난 남자가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몸부림치며 떠나려고 했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센 손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남태준에 의해 거실로 끌려가 그대로 소파에 던져졌다.그녀는 긴장해서 움츠러들었고 방황하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태준을 쳐다보았다. 그가 미칠 듯이 달려들 것 같아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이성적으로 그녀 곁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매우 괴로워 보였다.밝은 거실은 두 사람의 가벼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창밖은 캄캄했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지우는 남태준이 화가 나서 그녀와 단둘이 지낼 이유를 찾는 것이지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태준 씨, 나 놔주겠다고 했잖아요?”남태준은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온몸에 냉기가 번져 형언할 수 없는 감상과 슬픔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그는 소파 등에 기대어 옆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눈가에 쓸쓸한 감정이 가득했다.“지우야.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지 널 포기한 적은 없어. 난 계속 노력하고 있었어.네가 나 좋아하도록, 네 가족이 나 좋아하도록.”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며 말했다.“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갈등도 다툼도 제삼자도 없었어. 네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 혹시 엄마 때문이야?”지우는 침묵했고 손가락을 꽉 쥐고 손톱을 뜯었다.“대답해줘.”남태준은 소파를 따라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꾹 참았다.그에게는 이제 지우의 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매일같이 그리움에 시달리고, 미칠 듯이 그녀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어도 이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저 모퉁이에 몰래 서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헤어지는 날은 녹슨 무딘 칼처럼,
“맞아. 하지만 이미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미안해.”진준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네 마음에 있는 그 남자에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그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어쩌면 우리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진준호 역시 멈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아주 아쉬워. 널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졸업 시즌에 네게 고백하지 못한 거 계속 후회했어. 만약 지금 그 기회가 왔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용감한 사람을 탄복했다“준호야, 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강력한 힘의 큰 손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경악하며 고개를 들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떨렸다.지우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진준호는 다급하게 물었다.“당신 뭐야?”남태준의 거대한 체구에 진준호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당장 지우 놔줘!”남태준은 싸늘한 눈빛에 노기를 띤 채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 먼저 실례할게요.”여자친구?지우는 멍해졌고 진준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남태준이 지우를 끌고 떠나자 진준호가 급히 쫓아가 두 사람 앞을 막으며 물었다.“지우야. 너 솔로라며?”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가로젓고는 혼란스럽게 말했다.“나 솔로 맞아. 이 사람은 전 남자친구야.”그녀의 말에 남태준의 안색이 더욱 새파래졌다.“나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너 먼저 가봐.”지우는 웃으며 진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잘 가.”진준호도 더 이상 지우를 빼앗을 이유가 없어 지우가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노려봤다.남태준은 지우를 차에 태워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량이 넓
지우는 입술을 깨물고 서러워하며 되물었다.“그럼 네가 다시는 목숨으로 나 협박하지 말라고 엄마 설득할 수 있어?”“아니 난 못해. 엄마는 너무 독해. 매번 빈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시잖아.”지성은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고 지우도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사랑을 위해 어머니의 목숨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남태준을 잊고 가슴 아픈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칠 후 지성이 퇴원하자 지우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매일 글쓰기에 바쁘고 어머니의 매점도 봐주고 가끔 밥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가 쇼핑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이날 송수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자고 했다.늘 외지에서 일했던 지우는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올해 그녀가 마침 고향에 있으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과 모이려고 했다.한 식당의 룸.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가득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는 신혼이거나 미혼인 사람도 있었다.지우와 송수빈은 미혼이라 싱글남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두 사람의 외모도 출중하고 몸매도 좋았다.모두들 웃고 떠들며 건배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준호가 지우를 오랫동안 짝사랑했잖아. 준호 녀석 지금 이혼했는데 설마 아직 지우를 못 잊은 거 아니야?”음식을 먹던 지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경악하며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반장이던 그는 지금 한 기업의 관리자였다.그는 술잔을 들고 일어나 지우를 향해 물었다.“지우야. 너 아직 싱글이라며. 아직 준호에게 기회가 있는 거냐?”지우는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진준호를 바라보았다.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진준호는 어색한 듯 지우를 바라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이공계 IT 남으로 수입도 높고 외모도 잘생겼고 성격도 온순했다.같은 마을 사람이라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지우는 난처해하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 지성은 말을 할 수 있었고 사유도 또렷했다.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지성의 몸 상태를 물었고 지성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는 조사를 시작했다.지성은 남태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가 누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것을 알고 더욱 존경했다.지성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누나가 육건우를 고소했기 때문에 제 빚은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갚지 않아도 되거든요.”“하지만 육건우의 부하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그날 저를 뒷산으로 데려가 폭행했고 저는 그들을 따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철조망이 가로막힌 곳까지 도망쳤는데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서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철조망을 넘어 안에 있는 나무로 뛰어올랐어요.”“들어가고 나서 계속 출구를 찾았는데 못 찾았고 마스티프 몇 마리가 저를 쫓아왔어요.”“그래서 큰 스튜디오 몇 군데로 달려갔어요. 근데 안에 촬영 장비는 없고 오히려 양귀비꽃과 비슷한 식물이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저는 깜짝 놀라 얼른 숨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그러다 어떤 창고에 숨었는데 그 안에서 마약을 정제하는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는 저를 죽일 듯이 때렸고 제 심장에 칼까지 꽂고 산기슭에 저를 던졌어요.”지성은 심장의 상처를 만졌다. 의사가 말하길 지성의 심장 위치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조금 빗나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불행 중 다행이었다.남태준과 오신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표정이 굳어졌다.산꼭대기에 촬영기지를 설립하려면 소방 안전 검사와 경찰의 순찰도 필요하다.그런데도 안에서 미친 듯이 독을 심고 마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분명 백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그 백은 결코 직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자백을 마친 지성이 긴장하며 물었다.“남 대장님, 만약 제가 죽지 않은 걸 알면 또 사람을 보내 저를 죽이러 올까요?”“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남태준은 온화한 태도로 진지하게 말했다.“지성 씨 옆에 24시간 경호를 붙여 신변을 보호할게요.”“감사합니다.”지성이 예의
남태준은 쓸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저 아주머니 미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이해하는걸요? 만약 제 딸이 마약 형사와 만난다고 하면 저도 반대했을 거예요.”진효연은 고개를 돌려 남태준을 바라보며 그가 진심으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만약 직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지우가 그에게 시집가는 건 커다란 복일 것이다.“지성이 병원비는...”진효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태준이 이미 그녀의 뜻을 알고 급히 위로했다.“병원비는 급히 갚을 필요 없어요. 지성이가 깨어나서 나중에 돈을 벌면 천천히 갚으라고 하세요. 무기한으로요.”진효연은 가슴이 뭉클해 눈시울이 젖었고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손을 잡고는 울먹였다.“내가 정말 고마워요. 지성이를 대신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남태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고 가슴이 내려앉았다.그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며 지우를 도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벗고 나설 것이다.진효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남 대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우리 지우 오빠로...”남태준의 얼굴빛이 순간 굳어지더니 바로 말을 끊었다.“아주머니. 그럴 필요 없어요. 헤어졌는데 어떻게 오빠 동생으로 지내요?”진효연은 난처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남태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랐다.남태준은 마음이 답답했다.어떻게 그더러 지우의 오빠로 지내라고 할 수 있을까?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연락하지만 서로 사랑해서는 안 되며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지우가 시집가는 걸 눈 뜨고 지켜보고 지우의 미래 남편을 매부라고 불러야 할까?남태준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말했다.“아주머니 저는 아직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제게 전화하세요.”“그래요. 어서 가봐요.”남태준은 목례를 하고 성큼성큼 떠났다.진효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또 한바탕 한숨을 쉬었다.남태준이 마약 형사의 일을 그만두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저희는 아직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오신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살펴 가세요.”지우는 오신우와 다른 형사 한 명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는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 ICU 병실로 향했다.그녀는 ICU 입구에 있는 벤치 앞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남태준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화기애애했다.그녀는 완전히 멍해졌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지우가 생각해 보니 진효연은 남태준을 본 적이 없으니 그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인 줄 모를 것이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가며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남 대장님 오셨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니 며칠 못 본 사이에 부쩍 초췌하고 말라 있었다.진효연도 멍하니 지우를 바라봤다.지우는 남태준과 거리감 있게 인사하고는 진효연에게 물었다.“엄마. 지성이 깼어요?”진효연이 유리창 안쪽 병실을 가리켰다.“깼는데 아직 활력 징후가 불안정해 ICU에서 나올 수 없대.”“지성이가 산에서 양귀비를 봤다고 했어요?”지우가 묻자 진효연은 주먹을 불끈 쥐고 악에 받쳐 말했다.“마약은 우리 일대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어. 곳곳에 끝없이 이어진 언덕이 있고 몇 개의 큰 산을 넘으면 바로 이웃 나라 국경이잖아. 약쟁이들은 우리처럼 작은 지역을 좋아해. 외진 곳이라 아무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말을 마친 진효연은 다시 남태준을 바라보며 긴장한 듯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남 대장님, 일하면서 꼭 몸조심하세요. 마약쟁이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악마예요.”남태준이 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꼭 조심할게요.”지우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마약 형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형사에게 시집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진효연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지우에게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 넌 매점에 가봐. 난 여기서 지성이 지켜보면서 남 대장님과 더
“전에 출연했던 작품 투자자였어요.”“당신들은 촬영이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안 가는 거죠?”“새로운 작품 촬영 중인데요?”“육건우 뒤에 있는 보스와 아직도 연락할 수 있어요?”임다희는 차갑게 웃었다.“태준이한테 배웠어요? 마치 범인을 심문하는 듯한 말투네요.”“만약 남태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도와주세요. 하마터면 그 사람을 죽일 뻔했던 배후를 잡아야죠.”“그건 그쪽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예요.”“그럼 오늘 날 왜 찾아왔죠?”“그쪽이 태준이와 깨끗하게 끝났으면 해서요.”“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끝난 거죠?”지우가 물으니 임다희는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과 명함 한 장을 꺼냈다.“카드 안에 6천만 원 들어 있어요. 동생 병원비로 쓰세요. 그리고 이건 내 친구 명함이에요. 다른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우 씨가 그 회사에 출근해도 돼요. 조건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알고 보니 그녀는 지우를 남태준에게 멀리 떨어지게 하려는 목적이었다.지우는 명함과 은행 카드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내가 아직도 다희 씨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내가 소질이 있어서지 당신 같은 사람과 거래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은 여전히 내게 태준 씨를 팔아넘겨 죽일 뻔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여자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당신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이야.”“태준 씨가 만약 당신을 사랑해서 다시 만나고 싶다면 난 그 사람 축복해. 나와 태준 씨는 이미 끝난 사이니까 이딴 짓 하지 마. 역겨우니까.”말을 마친 지우는 일어나 차갑게 인사했다.“당신 같은 사람이랑은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당신의 그 더러운 손이 우리 가족에게 뻗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이만.”지우가 몇 걸음 갔을 때 임다희가 뒤에서 외쳤다. “당신들 남동생 병원비를 전혀 감당할 수 없잖아? 내 돈을 받지 않겠다면 태준이 찾아가 돈을 빌리는 일도 없었으면 해. 이미 끝난 이상 더 이상 얽히지 말라고.”지우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지우는 울지 않았고 울 수도 없었다.테이블 밑에 놓인 그녀의 손은 일찌감치 주먹을 불끈 쥔 채 눈 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화가 나서 눈앞의 징그러운 여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이 여자는 지금 무슨 자격으로 우는 거지? 정말 미치겠네!’임다희는 휴지를 꺼내 계속 눈물을 닦았다. “나중에 난 무사히 귀국했지만 태준이는 이미 살아날 확률이 전혀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어요. 모두 태준이가 죽은 줄 알고 해변에 시신을 버렸어요.”지우는 눈시울을 붉히고 이를 갈며 물었다.“겨우 살아난 태준 씨가 가장 절망적이고 어둡던 시절에 당신은 어디 있었죠?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잖아요? 대체 왜죠? 태준 씨가 장애를 얻어서?”임다희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지우를 보았다.“아니에요. 난 태준이 동생 때문에 감히 보러 가지 못했어요.”“남하준?”지우가 묻자 임다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태준이가 사고 난 후로 우리나라 미사일이 바로 이웃 섬으로 날아가 순식간에 초토화됐어요. 국제적으로는 미사일이 빗나간 우발적인 사고라고 보도됐죠.”“하지만 난 그 섬이 태준이가 계속 조사해온 가장 큰 마약 굴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섬 전체가 마약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었거든요.”지우는 차갑게 웃고는 차를 마시고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남하준이 그 일로 당신에게 복수할까 봐 감히 태준 씨를 보러 가지 못했다?”임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하지만 태준 씨는 당신을 언급하지도 않았어요. 그 일도 남하준이 직접 조사한 거고.”“그분 성격으로는 당신을 죽이고도 남았겠지만 태준 씨가 원하지 않았죠.”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밝은 태도를 보였다.“그걸 난 이제야 알았고 그래서 지우 씨에게 태준이는 아직도 날 많이 사랑한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지우는 참다못해 차갑게 웃고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려 창밖의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임다희를 바라보았다. “당신 남태준 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