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1화

Author: 무솔레
설마 이 여자의 조사에 대한 조사에 착오가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유주헌은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미소를 활짝 지어 보이고는 가슴이 벅찼는데도 예의를 지키며 물었다.

“사모님, 혹시 화학을 전공하셨어요?”

강물처럼 맑은 눈을 가진 서다인은 순간 머리가 하얘져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기억이 없거든요.”

“기억이 없다고요?”

유주헌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럼 청유액이랑 레늄 원소는 어떻게 알고 있어요? 해독할 줄도 아시잖아요.”

서다인이 한참 고민을 하다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요리할 때는 소금을 넣어야 하듯이, 낚시할 때는 미끼를 던져야 하듯이, 이건 상식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유주헌은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숭배의 눈빛으로 서다인을 바라봤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정호와 류청은 부하들과 함께 중독된 사람들에게 식용 알칼리수를 마시게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의 구토 증상과 복통이 사라졌다.

머리가 아직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해독약의 효과는 대단했다.

류청은 남하준 앞에 다가오고는 예의를 갖추며 그에게 알칼리수를 건넸다.

“도련님, 효과가 좋으니 하린 씨께 드리세요.”

백하린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녀는 주목받는 서다인이 싫어 고집을 부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마셔요.”

남하준이 미간을 구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안 마셔?”

백하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하준 오빠, 나 이런 거 안 마실래요. 서다인 언니는 중학교도 졸업 못했잖아요, 지식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믿고 마시겠어요.”

중학교도 졸업 못했다니, 그럼 초졸이란 말인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 사람들이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서다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다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기에 일부러 괜찮은 척하며 입을 열었다.

“하린 씨, 차래지식을 먹지 않으려는 그 패기, 대단하시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켜나가시길 바랄게요, 화이팅!”

말을 마친 서다인이 평온한 표정을 한 채로 돌아섰다.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백하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준 오빠, 서다인 언니가 한 말, 무슨 뜻이에요?”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진 남하준은 침묵을 지키며 백하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얘기도 못 알아듣는단 말인가?

류청이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하린 씨, 차래지식은 무례한 태도로 주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거지도 이런 모욕적인 음식을 먹지 않는다죠. 만약 사모님의 물건에 모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되면 원칙을 지키시면서 드시지 않으면 됩니다.”

“엉엉... 하준 오빠... 서다인 언니가 지금 나 거지라고 비하하는 거예요?”

백하린이 침대에 앉은 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하준은 청유액과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레늄 원소가 망가졌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미간 사이에 있는 콧대를 짚으며 조금은 어두운 얼굴색으로 덤덤하게 명령을 내렸다.

“류청, 하린이가 마실 때까지 지켜보고 있어.”

말을 마친 후 남하준은 몸을 일으키며 자리를 떴다.

백하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준 오빠, 어디 가요? 나 지금 엄청 힘들단 말이에요, 왜 나를 혼자 여기에 두고 가요?”

남하준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백하린의 행동에 원래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던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남하준이 떠난 뒤로 그녀에게 관심을 베푸는 사람은 없었다.

의료진은 다른 환자를 안정시키러 갔고 유주헌과 다른 연구자들은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돌아갔다.

그리고 정호가 그녀를 힐끔 보고는 남하준의 뒤를 따랐다.

남아 있던 류청은 얼굴을 찡그린 채로 알칼리수를 들며 그녀가 마시기를 기다렸고, 또 인내심 있게 타이르기까지 했다.

“하린 씨, 이렇게 큰일이 났으니 도련님도 처리할 일이 많으세요. 도련님 걱정하게 하지 말고 이거 마셔요.”

백하린은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자 불안하기도 했고, 또 몸이 힘들기도 했으니 류청이 손에 들던 컵을 덥석 집어 들고는 절대 안 마시겠다는 말과는 달리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넘겼다.

류청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마음이 착잡했다.

‘이 사람 정말 도련님께서 10년 넘게 짝사랑한 여자 맞아? 도련님의 안목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군. 사모님보다도 못하느니 말이야.’

Related chapters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2화

    깊은 밤.서다인은 샤워를 마친 후 햇살이 가득한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잃어버린 휴대폰을 들고 뉴스를 확인했다.그녀를 납치한 김호영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사기 센터의 피해자들도 모두 구출되었다. 그리고 범행에 가담한 사람들은 남하준의 부하들에게 잡혀 경찰에 인계되었다.그녀의 가방도 휴대폰도 모두 되찾았지만 아쉽게도 3년 동안 모은 돈은 모두 그녀의 친오빠가 빼돌렸다.지금의 그녀에게는 이 휴대폰 말고는 무일푼이다.기억을 잃은 후로 그녀는 은경애를 만났는데 은경애는 마치 원래 그녀를 알고 있던 것처럼 예뻐했고, 꼭 그녀를 곁에 두려고 했다.그렇게 서다인은 은경애 옆에서 3년 동안 간병인을 해 왔다.친구도 없고 불운과 재앙만 안겨주는 가족을 찾아갈 수도 없으니 생활고에 쪼들리는 지금 누구에게 돈을 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서다인이 생각을 거두고는 문 쪽을 바라봤는데 남하준의 튼실하고 넓은 어깨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지금 문을 닫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을 본 서다인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긴장된 마음에 시선을 거두고는 고개를 푹 숙여 휴대폰으로 디지털책 아무거나 하나 열어 읽기 시작했다.남자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는데 그가 내디딘 걸음마다 서다인의 심장을 강타하고 있었고 긴장감은 갈수록 커졌다.남하준이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남하준은 베란다 난간을 등진 채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압감을 풍기는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의심스러운 듯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그와 눈을 마주치자 서다인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겨우 침착을 유지하며 나지막이 물었다.“왜 나를 그렇게 봐요?”남하준이 대답했다.“정말 3년 전에 있었던 일을 잊었어?”“네.”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남하준이 입술을 감쳐물고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뒤 또 물었다.“청유액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서다인의 머릿속에는 이 물질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3화

    서다인이 방 안의 책장을 가리키며 말했다.“요 며칠 하준 씨 책장에 있는 책은 전부 다 읽었어요.”남하준이 한 번 더 물었다.“정말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겠어?”서다인이 고개를 숙였다.“네, 나 내일 아침 바로 갈 거예요. 앞으로 이곳에 올 기회는 더 없겠죠.”남하준은 더는 그녀를 설득하지 않았다.그녀의 곁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면서 외투 단추를 풀며 당부했다.“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에게 이혼 얘기를 꺼내지 마. 할머니께서 자극받으실까 봐 걱정돼.”휴대폰을 쥐고 있던 서다인의 손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괴로운 감정이 북받쳐왔다.“미안한데 하준 씨 책에서 어떤 여자애 사진을 봤어요. 그 뒤에 ‘내가 사랑하는 여자 백하린’이라고 쓰여 있더군요.”외투 단추를 풀던 남하준이 멈칫하더니 온몸이 굳어진 듯 제자리에서 꼼작도 하지 않았다.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서다인은 가슴이 비수에 꽂힌 듯이 아팠다.말 못 할 고통에도 애써 괜찮은 척하며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이 가장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하린 씨겠죠?”한참 뒤에야 남하준이 정신을 차리고는 계속 외투를 벗으면서 무심하게 말했다.“어렸을 때 하린이를 많이 좋아했던 건 맞아. 하지만 하린이가 14살 때 외국 명문 학교에 합격했거든. 하린이가 출국한 뒤로 우리는 연락이 끊겼어. 10년 동안 한 번도 못 만났지. 심지어 하린이가 돌아온 첫해에도 두 사람 사이는 어색했어.”말을 마친 후 남하준은 곧장 욕실로 향하고는 문을 닫아 샤워하기 시작했다.그의 설명에도 서다인은 괴로운 마음이 조금도 덜해지지 않았다.그녀는 심지어 자기가 내연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하준과 백예린은 어려서부터 서로를 좋아했으니까 말이다.만약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남하준은 분명 백하린과 결혼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사랑도 감정도 없는 이 결혼에서 고통스럽게 버티지 않았을 것이다.찬 봄바람이 불어 들어오면서 서다인의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4화

    남하준이 방을 떠난 후 긴 복도를 지나 서재에 도착하고는 불을 켰다. 그리고 백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애교 섞인 백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준 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몸도 마음도 피곤한 남하준이 나지막이 물었다.“뭐가 두려워?”백하린이 애교를 부렸다.“그냥 너무 무서워요, 그냥 와서 같이 있어주면 안 돼요?”남하준이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덧 밤 11시가 되어 단호하게 거절했다.“시간이 너무 늦었어. 내가 너희 집 앞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보낼게. 두려워할 필요 없고 일찍 쉬어. 나 내일 아침 일찍이 다인이를 안성에 데려다줘야 해.”백하린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투덜거렸다.“정호 씨가 데려다주는 거 아니었어요? 왜 하준 오빠가 데려다줘요?”남하준이 테이블 앞에 앉고는 이마를 짚은 채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다인이는 지금 내 아내잖아.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백하린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서다인 언니는 몸이 더러우니까 절대 같이 자면 안 돼요.”남하준의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그는 미간을 구기고는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하린아, 그런 뒷담화를 하면 되겠어? 모든 사람에게는 존경받을 만한 과거가 있어.”백하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엉엉... 하준 오빠, 정말 서다인 언니랑 잔 거예요? 전에 서다인 언니가 성병에 걸렸었다던데. 오빠도 감염되면 어떻게 해요?”다른 사람이었다면 남하준은 진작 화를 냈을 것이다.하지만 상대는 백하린, 그가 10년 넘게 짝사랑한 여자였다.남하준은 안타까운 마음에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하린아, 내가 다인이랑 자는지 안 자는지는 다인이를 향한 내 마음에 달렸겠지. 다인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당연히 다인이의 몸에 손을 대지 않을 거야. 딴생각은 그만하고, 다른 사람 뒷담화도 이제 더는 하지 마.”“그럼 하준 오빠는 나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나랑 안 자려는 거예요?”백하린이 장난기가 가득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눈빛이 어두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5화

    서다인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억울한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백하린 씨 곁에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여자의 부드럽고도 조심스러운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불쾌함이 묻어났다.그 어떤 남자라고 하더라도 서다인의 말에 마음이 살살 녹을 것이다. 남하준도 예외는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이런 느낌이 싫어서 일부러 차가운 척하며 대답했다.“괜찮아.”서다인이 한숨을 푹 쉬고는 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하준 씨가 데려다준다면 받아들이지, 뭐. 마침 돌아가서 이혼하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말이야.”서다인이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유일하게 남은 휴대폰과 가방을 챙기고는 남하준을 따라 방을 나서 식당에 아침 먹으러 갔다.이른 아침 식당에는 오가는 직원들이 끊이질 않았다.그들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도련님, 사모님, 좋은 아침입니다.”남하준은 그들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인사를 건넨 사람이 워낙 많기도 했기에 다 대꾸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서다인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에게 모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똑같이 인사를 건넸다.“좋은 아침이에요.”서다인은 캠프에 있는 며칠 동안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었다. 게다가 중독 사건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았기에 사람들은 서다인을 매우 좋아했다.서다인은 식탁 앞에서 음식을 기다렸다.남하준이 아침 두 세트를 챙기고는 하나를 서다인에게 건넨 후 식사를 시작했다.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만두피는 그대로 두고 그 안의 고기만 쏙 골라 먹는 서다인을 발견했다.삶은 달걀도 흰자만 먹고 노른자는 건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소고기죽도 파를 전부 골라냈다.남하준은 가슴이 왠지 모르게 움찔하다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나쁜 습관은 걔랑 정말 닮았네.”서다인이 죽을 먹으면서 나지막이 물었다.“누구랑요?”“하린이 말이야.”남하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눈치 없이 또 물었다.“여자들은 다 이렇나 봐?”서다인은 원래도 기분이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6화

    차가 멈춰 서자마자 서다인이 남하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데려다줘서 고마워요.”이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물건을 안아 든 채 문을 닫고는 허름한 단층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단층집 앞에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두 건달이 앉아 있었다.남하준이 힐끗 쳐다보더니 곧바로 서다인이 향하고 있는 곳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두 건달은 주위를 경계하며 망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남하준은 운전기사더러 전화해 사람을 불러오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차에서 내려 그녀의 뒤를 따랐다.두 건달은 서다인과 아는 사이인지 그녀를 쉽게 들여보냈지만 남하준은 아니었다.남하준이 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방금 들어간 여자가 내 아내예요. 나 들어가게 해줘요.”건달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서지석의 동생이 그쪽 아내라고요? 그럼 내가 당신 아버지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겠어요.”남하준은 상대와 잘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선을 먼저 넘은 건 그들이었다.그의 눈에 살기가 어리더니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는 그들을 향해 매섭게 날렸다.그의 힘센 주먹이 상대의 뒷머리를 내려쳐 순식간에 건달 한 명을 기절시켰다.다른 건달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고는 바로 몸에 지닌 칼을 꺼내려고 했는데 그가 칼에 손이 닿기도 전에 남하준의 주먹을 맞아 바닥에 쓰러졌고 이어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남하준이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고는 무심하게 손을 닦더니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긴 복도를 지나니 어두운 불빛의 도박장이 보였다.사람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고 매서운 연기가 자욱했다.구석에서 일어난 소동이 그의 주의를 일으켰다.남하준이 인파 속을 헤집고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서다인은 사 온 큰 포대를 어떤 남자의 머리에 씌우고는 야구 방망이를 움켜쥔 채 남자의 팔다리를 세게 내리쳤다.남자는 맞아 바닥에 쓰러졌고 당황한 나머지 머리에 씐 포대를 찢었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 때문인지 비명을 금치 못했다.서다인은 어금니를 깨물며 온 힘을 다해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7화

    남하준은 연약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서다인에게 이렇게 사나운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서다인이 말을 하기도 전에 어떤 건달이 몸에 상처가 가득한 사내를 안고 오고는 남하준을 가리키며 말했다.“보스, 저 사람 만만치 않아요. 홍구를 기절시키고 나에게도 주먹을 휘둘렀다니까요.”곧이어 수십 명의 도박장 파이터들이 나타나더니 험상궂은 얼굴로 남하준을 빤히 쳐다봤다.이곳은 불법 지하 도박장이었기에 단골만 받았다. 남하준과 같은 낯선 얼굴이 보이면 그들은 잔뜩 경계했다.도박장 책임자가 분노의 목소리로 물었다.“내 부하를 기절시키고도 이곳에 쳐들어온 이유가 뭐야?”서다인이 겁도 없이 남하준 앞에 서고는 도박장 책임자를 보며 말했다.“윤수 오빠, 이 사람 내 친구예요.”진윤수가 콧방귀를 뀌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너 들어와서 네 오빠 때린 것도 충분히 우리 도박장 질서를 어지럽혔어. 너 때문에 지금 장사를 하지 못하겠잖아. 그런데 이제 네 친구가 내 부하까지 때려?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서다인은 남하준이 도박장 수십 명의 건달들에게 폭행을 당할까 봐 책임자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미안해요, 윤수 오빠.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영업하는 데 방해하지 않고 지금 바로 갈게요.”말을 마친 서다인은 빠르게 남하준의 손을 잡고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하지만 건달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이대로 가려고? 내가 그렇게 쉽게 보낼 것 같아?”서다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남하준의 큰 손을 꽉 잡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남하준은 건달들을 신경도 안 썼지만 자신의 손을 잡은 서다인 때문에 잠깐 넋을 잃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꽉 잡은 두 손에 시선을 옮겼다. 희고 보드라운 여자의 손이 그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지 않았다.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그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분명 백하린의 손을 잡을 때는 전혀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었는데 말이다.서다인이 비위를 맞추느라 미소를 지어 보였다.“윤수 오빠, 어떻게 해야 우리를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8화

    수십 명의 건달이 동시에 무기를 들고는 남하준에게 돌진했다.식겁한 서다인은 당장이라도 남하준 앞에 서서 그 대신 몽둥이를 맞아주고 싶었다.하지만 남하준은 여유가 흘러넘쳤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빠르게 총을 꺼내고는 진윤수를 조준했다.순간 진윤수는 두려움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가만있어! 제발 가만있어!”총을 본 순간 그의 부하들은 잔뜩 겁을 먹어 이리저리 줄행랑을 쳤다.M국에서 권총을 가지고 있는 건 권력을 상징한다. 그들은 남하준을 감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서다인은 남하준이 총을 꺼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침착했던 게 다 이유가 있네. 총의 위력을 알고 있었구먼.’진윤수는 그에게 사죄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형님, 제가 눈이 멀었나 봅니다. 감히 형님의 심기를 건드렸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저, 저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이때 밖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남하준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는데 마침 10분이 지나 있었다.‘역시 우리 애들이 시간을 잘 지킨단 말이야.’남하준이 총을 거둬들였다.진윤수는 자기가 안전한 줄 알고 한시름을 놓고는 식은땀을 닦아냈다.하지만 이어서 양복 차림을 한 수십 명의 남자가 들이닥치더니 현장에 있던 건달들을 모두 제압했다.“도련님,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부하가 남하준 앞에 다가오고는 깍듯이 사과했다.M국에서 이 정도의 인원을 이끌 수 있고, 또 도련님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군전 그룹의 대표인 남하준밖에 없었다.진윤수는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는 무릎을 철썩 꿇으며 남하준에게 용서를 빌었다.“도련님, 제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세요. 정말 잘못했습니다.”남하준은 남자의 애원에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서는 부하에게 명령했다.“도박장을 봉쇄하고 이 사람들 모두 경찰에게 넘겨.”“네, 알겠습니다.”부하가 대답하고는 바로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9화

    남하준이 제자리에 얼어붙었다.그는 서다인의 맑은 눈을 바라봤는데 진주알 같은 이슬이 눈가에 맺히면서 흘러내리려고 했다.남하준은 왠지 모르게 낯선 느낌이 들었고, 또 신세를 한탄하는 그녀가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다.“왜 그래?”서다인이 그를 등지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몰래 눈물을 닦고는 감정을 추스른 후 다시 말했다.“지금 저녁 시간이라 가족분들이 다 집에 있을 거예요. 이따가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하준 씨는 문 앞에 서서 듣고 있어요.”말을 마친 후 서다인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남하준을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집에 들어갔다.별장 문을 열어 걸어 들어가자 집사 이수종이 보였다.이수종은 쉰 가까이 되는 나이에 침착하고 매끄러운 성격을 가졌다.그는 잠시 벙찐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사모님, 안녕하세요. 마침 잘 돌아오셨어요. 이제 곧 저녁 식사가 시작되려 해요.”이수종이 서다인에게 선의를 베푼 것도 그저 집사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이 집안의 사람들 모두 그녀를 미워했다.“감사합니다.”서다인이 예의를 갖추며 대답하고는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럭셔리한 인테리어의 거실 중앙에는 2m 길이의 식탁이 있었는데 열댓 명의 식구가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서다인의 목소리가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뜨렸다.순간 별장 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열댓 명이 날카롭고도 차가운 시선으로 서다인을 바라보고 있었다.온몸에 소름이 끼친 서다인은 머리털이 곤두섰고 긴장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형제들에게도 인사를 건네려고 했지만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여보, 저 사람 누구야? 왜 두 분을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불러?”“저 사람이 바로 수원 별장에서 할머니를 간병했던 간병인이야. 할머니를 얼마나 세뇌시켰는지 몰라. 하준이가 저 여자랑 결혼하지 않으면 죽겠다며 윽박질러서 두 사람 결혼했잖아.

Latest chapter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9화

    여민지와 그녀의 부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반면 남우영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저는 이다은의 남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 이다은 말입니다.”그의 말에 세 사람은 순간적으로 굳어버렸고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침묵을 깨고 여중권이 겨우 입을 열었다.“오늘 이렇게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 일 때문이겠군요.”여민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우영을 바라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저를 홍보팀에 들여온 것도 계획된 거였나요? 저를 직접 면접 본 것도 다 계획이었나요?”남우영은 부드럽지만 의심의 여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물론입니다. 여민지 씨가 제 아내를 사칭한 증거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제 아내로 위장해 제 아내의 학위를 가로채고, 그 신분으로 회사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옥에 갈 이유가 되니까요.”여민지는 온몸을 떨며 부모를 불안하게 쳐다봤다.여중권은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남 대표님, 대화로 해결합시다. 과거 일인데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어려운 이씨 가문을 도와줬던 건 대표님도 잘 아실 겁니다.”남우영은 냉소를 띤 채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들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당신 딸을 회사에 들인 이유가 바로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걸 제대로 정산할 때가 됐군요.”여중권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이혜원과 여민지는 안절부절못하며 필사적으로 남우영에게 용서를 빌었다.“남 대표님, 제 딸을 살려주십시오. 어떤 방법이든 따르겠습니다.”그러나 남우영은 비웃으며 단호히 말했다.“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잠시 후, 경찰들이 레스토랑에 도착했고, 세 사람은 충격과 공포 속에서 체포되었다.여민지는 울면서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했지만, 남우영은 흔들림 없이 그들을 외면했다.레스토랑을 나서며 남우영은 차로 돌아갔다.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8화

    이다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고 단 하나의 문장만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결국 사고를 치고야 말았네. 이러다 감옥에 가는 건가? 그런데 나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남씨 가문 며느리가 감옥에 가면 그야말로 집안 망신이겠지?’그녀는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막막한 심정으로 끌려갔다.한편, 남우영은 여민지와 그녀의 부모를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레스토랑에서 남우영을 만난 여민지와 그녀의 부모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남우영의 정체를 알게 된 여민지의 부모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등장했다. 마치 딸이 재벌가 며느리라도 되는 듯, 두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남우영은 마주 앉아있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전직 공무원에 전직 판사라...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지. 다은 씨 같은 약자에게는 그들의 권력이 얼마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을까...’여민지의 아버지, 여중권이 먼저 입을 열며 공손히 물었다.“남우영 씨는 어디에서 일하고 계십니까?”“에이스타 그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이번에는 여민지의 어머니, 이혜원이 대화를 거들며 말했다.“우리 딸과는 얼마나 알고 지내셨어요?”“얼마 안 됐습니다.”이혜원이 다시 물었다.“그럼 두 분 관계는 어느 정도로 발전한 건가요?”남우영은 태연히 답했다.“오늘이 처음으로 저녁 약속을 한 정도입니다.”여중권과 이혜원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중권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첫 만남부터 저희를 초대하신 이유는 뭔지... 혹시 결혼 이야기가 나온 건가 싶어서요.”남우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을 잘랐다.“결혼 이야기라니요. 두 분은 저와 다은 씨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이혜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여민지가 황급히 끼어들며 말했다.“아빠, 엄마... 대표님께서 두 분을 직접 뵙고 싶어 하셔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7화

    여민지는 모두의 칭찬과 아부 속에서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며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남우영은 여느 때처럼 집으로 향하지 않고 차 안에 앉아 조용히 로비를 응시하며 이다은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시간이 흘러 대부분 직원이 퇴근했지만, 그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조바심이 난 그는 차에서 내려 곧장 사무실 건물로 들어갔다. 그러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서며 길을 가로막았다.“대표님, 안녕하세요.”여민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밝게 인사했다. 그녀의 눈빛은 자신감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남우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네.”여민지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대표님, 오늘 회사에서 떠도는 이상한 소문 때문에 마음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해요. 저도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는지 모르겠어요.”남우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무슨 소문이요?”“대표님이 저를 좋아하신다는 얘기요. 회사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수군거리더라고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심지어 대표님이 저에게 적극 대시한다고들 해요...”남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여민지는 그가 미소 짓는 걸 보고 신이 난 듯 한 발 더 다가섰다.“대표님, 기회 되면 저녁 식사하면서 조용히 얘기 나눠보는 건 어떠세요?”남우영은 한숨을 내쉬며 짧게 답했다.“좋아요. 부모님도 모시고 나오세요.”여민지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뭐라고요? 처음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요?”남우영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차가 기다리고 있으니 나갑시다.”여민지는 그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들뜬 마음으로 주변 직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남우영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건물 모퉁이에 숨어 있던 이다은은 두 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이 함께 차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6화

    또다시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이다은은 뒤척이며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불안과 두려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만약 이 사실이 남우영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그녀는 이불을 꽉 움켜쥔 채 생각했다.‘현실은 동화가 아니야. 왕자가 신데렐라와 결혼하는 일 같은 건 절대 있을 수 없어.’다음 날 아침, 이다은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다. 남우영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조용히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회사에 도착하자 팀장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익숙한 듯 주어진 일을 받아 들고 묵묵히 책상으로 돌아갔다. 문서를 정리하고 자료를 검색하는 등 사소한 일을 처리하며 머릿속을 비우려 애썼다.그녀는 팀장에게서 늘 가벼운 업무만 배정받았다. 학력이 높지 않은 데다 특별 채용으로 입사한 그녀를 향한 동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사랑스러운 외모와 우아한 몸매는 사람들이 그녀를 오해하게 했다.점심시간이 되자, 동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식사하러 나갔다. 그러나 몇몇 직원들은 그녀처럼 사무실에 남아 빵이나 배달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이다은은 무심히 빵을 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결혼을 하게 된 거지... 어떻게 에이스타 그룹의 대표랑 번개 모임을 가지듯 결혼할 수가 있냐고!’아직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덕분에 이렇게 쉽게 항공 개발 부서에 들어오다니... 이건 분명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일이야.’그녀가 빵을 입에 물고 멍하니 앉아있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이다은 씨.”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세련된 정장을 입고 사원증을 목에 건 남자가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도시락을 그녀의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공손히 말했다.“대표님께서 준비하신 점심입니다.”이다은은 순간적으로 당황해 주변을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5화

    남우영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그의 얼굴도 차갑게 굳었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이혼은 절대 안 할 거예요.”이다은은 울음을 참지 못한 채 입술을 떨며 두 손을 모아 그에게 간절히 말했다.“남우영 씨, 제발 부탁이에요. 우리는 애초에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이렇게 결혼하면 안 됐던 거예요.”‘남우영 씨’라고 변해버린 호칭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그의 가슴 깊숙이 꽂혔다. 이다은이 ‘남우영 씨’라고 불렀던 그 순간, 남우영은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질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졌다. 이다은은 무심결에 그의 마음을 무참히 베어냈다.서운함과 분노가 함께 치솟은 남우영은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우린 아직 이혼한 거 아니에요. 난 당신 남편이에요. 그런데 왜 나를 ‘남우영 씨’라고 불러요?”이다은은 그의 격한 반응에 당황하며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 알겠어요. 원하는 대로 부를게요. 하지만 이혼은 해야 해요.”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으며, 이 결혼을 끝내야 가족의 안전이라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는 남우영의 숨조차 멎게 할 만큼 그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그는 눈에 실핏줄이 가득한 채로 이다은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앞으로 끌어당기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했다.“왜요? 제가 뭐가 그렇게 부족한 건데요? 왜 이렇게까지 저를 싫어하는지 이유라도 좀 말해봐요.”이다은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떨구었다.“다은 씨가 원하는 얼굴이 아니에요? 아니면 제가 다은 씨의 기대에 미칠 만큼 자상하지 않았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요!”그의 절박한 외침에 이다은은 결국 억누르고 있던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남우영 씨가 ‘남우영’이기 때문이에요.”그녀의 대답은 남우영의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렸고, 그는 슬픔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다은 씨... 이혼하고 싶어요? 내 눈에 흙이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4화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국경 지대에서 살았고 학교도 모두 국경 지대에서 다녔어요. 남우영 씨와 제가 중학교 동창이라는 거예요?”이다은은 여전히 단체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마치 실마리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남우영은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다 쓸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단체 사진만 봐요. 다은 씨와 제가 단둘이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으니까요.”이다은은 깜짝 놀라며 그의 말을 되새겼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안한 예감이 서서히 피어오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내가 싫다고 했던 거예요? 아니면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었던 거예요?”그녀는 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남우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대답했다.“다은 씨가 싫다고 했었어요.”“...”그 순간, 이다은의 심장은 순간 멎는 듯했고 혈관을 타고 섬뜩한 긴장감이 퍼지며 숨이 가빠졌다.‘중학생 때의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나름 친절한 성격이었던 내가 동창의 사진 요청을 거절했다고? 그럴 리가 없어... 그렇다면 설마... 그 애인 거야?’이다은은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내려놓으며 속으로 생각했다.‘남우영... 남 씨잖아! 그리고 군전 그룹 장군도 남 씨잖아!”남우영은 이다은의 반응을 살피며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내렸다.이다은은 또다시 심장이 철컹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의 퍼즐을 맞추며 중학생 시절 유일하게 거리를 두었던 남자아이를 떠올렸다.‘그때 그 아이가 맞는 거야? 내가 일부러 멀리했던 그 애?’이다은은 다시 한번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중학교 때 나한테 러브레터 보낸 적 있어요?”남우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랬었죠. 다은 씨가 그 다 찢어버렸지만요... 참, 한 번은 제 얼굴에 던지기도 했고요.”이다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황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남우영은 멍하니 서서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았고,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3화

    남우영은 순간 굳어버렸다.이다은의 화난 눈을 마주 본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다은은 억누른 감정을 겨우 다스리며 차갑게 물었다.“왜 아무 말도 못 해요? 아직 변명할 핑계를 못 찾은 거예요, 아니면 끝까지 날 속이려는 거예요?”남우영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제 이름은 남우영이 맞아요.”이다은은 피식 웃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받아쳤다.“그건 나도 알아요. 혼인 신고서에 적혀 있었으니까...”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남우영은 고백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솔직히 말할게요. 다은 씨에게 거짓말했어요. 난 남우라는 사람이 아니고, 당신이 만나기로 했던 그 사람도 아니에요.”이다은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한 듯 날카롭게 물었다.“그럼 왜 이모가 소개해 준 사람인 척하면서 날 속였어요?”남우영은 입을 꾹 다문 채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다은은 겁먹은 사람처럼 한발 물러서며 손을 뒤로 감췄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남우영도 놀라긴 마찬가지였고 그는 경직된 채 서있었다. 몇 초간 머뭇거리던 그는 천천히 민망해진 손을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남우 씨든 나든 어차피 모두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 아니었어요? 어차피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거라면 저와 하나 그 남자와 하나 뭐가 그렇게 크게 다른가요?”이다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쏘아보며 단호히 말했다.“당연히 다르죠!”“이모가 소개해 준 남자라면 적어도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남우영 씨는 뭐죠? 왜 맞선남인 척하면서 저와 결혼까지 한 거냐고요?”남우영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내가 이렇게 다은 씨 곁에 있는데 왜 믿을 수 없어요? 이걸로 부족한가요?”이다은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잖아요.”그녀는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2화

    이다은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문을 조용히 잠그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더니 곧바로 ‘남우영’이라는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검색 결과는 쓸모없는 정보들로 가득했지만, 그중 단 한 줄의 제목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호기심에 마우스를 움직여 클릭한 그녀는 화면에 뜬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가 온몸이 얼어붙고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놀랍게도 ‘에이스타 그룹’의 대표 이름도 남우영이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그의 이름이 연관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인터넷 어디에서도 그의 사진 한 장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뭔가 이상한데...”이다은은 점점 불안에 휩싸이며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몇 번 울리자, 이모가 전화를 받았다.“다은아, 웬일이니?”“이모, 저... 남우 씨 있잖아요. 그분이...”이다은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모가 다급하게 미안하다며 지난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아이고! 다은아, 내가 미처 말을 못 했구나. 남우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랑 약속을 못 지켰다고 했었는데... 그걸 꼭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어. 장례식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더라고...”그 말을 듣는 순간, 이다은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잠긴 방문을 바라봤지만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이모가 소개해 줬던 ‘남우 씨’가... 아니라는 말이야?’이모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다은아, 남우 씨를 탓하지 마라.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충격이 너무 컸다더라. 지금은 그냥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정리할 시간 좀 줘야 할 것 같아. 네가 괜찮다면 선은 좀 미루자꾸나.”이다은은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그녀는 갈라질 듯한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이모, 이모가 소개해 줬던 남우 씨말인데요... 지금 고향에 있는 거 맞죠?”“그렇지. 아직 고향에 있을 거야. 왜 그러니?”이다은은 목이 바짝 말랐고 깊은숨을 삼

  •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제1031화

    남우영은 얇게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외투를 옆으로 내려놓고 망설임 없이 성큼 다가가 놀랄 틈조차 주지 않고 단숨에 이다은을 안아 올렸다.“뭐 하는 거야!”이다은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다.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천천히 퍼져나갔다.남우영은 이다은을 품에 안은 채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조심스레 앉더니 그녀를 무릎 위에 부드럽게 내려놓았다.두 사람은 밀착된 자세 속에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공기 중에는 서서히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저녁은 먹었어요?”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며 울렸다.이다은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그의 물음에 솔직히 답하기가 망설여져 결국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먹었어요.”남우영은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천천히 걷어 귀 뒤로 넘기며 깊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다은은 그 시선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지만 동시에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어디 다녀왔는지 아직 나한테 말 안 해줬잖아요?”그의 물음에 이다은은 한순간 멈칫했지만 곧 기쁨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답하며 활짝 웃었다.“면접에 합격했어요! 이제 회사에 다니게 됐어요. 너무 기뻐서 잠깐 친정에 들렀어요.”남우영은 살짝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안았고 그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함께 다정하고도 진심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우리 다은 씨, 진짜 잘했네요. 내가 뭐랬어요? 분명 잘될 거라고 했잖아요.”그의 칭찬에 이다은은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그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고, 마치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으로 세심하게 바라봤다.그 시선이 깊어질수록 이다은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