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온지우는 강현우가 그녀를 찾으러 왔을 때 떠났다. 이렇게 우연히 일이 될 수는 없었고 분명히 강현우가 계획한 것이라고 확신했다.윤하경은 어금니를 깨물었다.조금 전에는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저 멍청한 강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분명히 그녀가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윤하경이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온지우의 전화가 걸려 왔고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하경아, 괜찮아?”윤하경은 불안한 마음에 무슨 일인지 직감하고 말을 더듬었다.“뭐, 뭐가?”온지우가 물었다.“당연히 너 혼자 있는 거 말하는 거지.”“방금 급하게 나가느라 너한테 말할 시간이 없었어. 이제야 시간이 나서. 우리 다 갔는데 너 혼자서 조심해.”윤하경은 그의 말투를 듣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조금 안도하며 대답했다.“괜찮아. 온천욕하고 나왔는데 다들 먼저 갔어. 내 걱정하지 마. 곧 혼자 돌아갈 거야.”온지우는 응답했다.“그래 이번엔 내가 잘못했어. 다음에 저녁은 내가 살게.”윤하경은 대답 없이 전화를 끊고 약간 안도했다.다행히 온지우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짐을 챙겨 나가려고 할 때 강현우가 옆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수영복을 벗고 나타난 그는 항상 양복을 입은 모습이었다.윤하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겉모습만 정상적인 인간이야.”하지만 그녀는 매우 아첨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대표님, 일이 없으시면 저는 먼저 가볼게요.”강현우는 그녀를 흘끗 보며 대답하지 않았다.윤하경이 걸어 나가려 할 때 강현우가 따라왔고 주차장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윤하경의 차 문을 열고 앉았다.윤하경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이세요?”그녀는 몸이 쑤시고 아파서 더 이상 강현우를 상대할 힘이 없었지만 강현우는 여유롭게 등받이에 기대앉아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아마 방금 배부르게 욕망을 채운 덕분일 것이다.강현우의 눈썹과 눈은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
박소희의 눈빛 속에서 애정이 넘쳐흘렀다.만약 이 자리가 공개된 곳이 아니었다면 윤하경은 박소희가 강현우의 품에 바로 안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현우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오후에 체력이 고갈된 탓인지 그의 눈은 나른하게 맞은편 박소희를 훑고 가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윤하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강현우는 정말 뻔뻔한 놈이었다. 조금 전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했으면서 돌아서서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데이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해? 게다가 굶주리면서까지 해야 한다니.’이 순간 윤하경의 가슴은 답답해졌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차마 보지 못하고 시선을 컴퓨터로 돌렸지만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20분 후 결국 그녀는 체념하고 컴퓨터를 끄고 창문 너머 강현우를 바라보았다.20분 만에 보지 않았을 뿐인데 강현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이미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마침 윤하경은 위치가 좋아 두 사람의 모든 행동을 볼 수 있었다.박소희는 나약해 보였지만 매우 적극적이었고 강현우의 스테이크를 조금씩 잘라서 그의 접시에 올려놓았다.“도련님, 이 스테이크 드셔보세요.”강현우는 무심하게 한번 쳐다보았다.“식욕이 없어.”그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우리의 만남 시간은 약 10분 정도 남았어. 어머님께 전해 드려. 오늘 내가 너를 만났다고.”그 말을 듣고 그 여자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스며들었다.“도련님, 내가 그렇게 싫어요? 나를 만난 건 어머님의 강요 때문이에요?”강현우는 박소희를 흘끗 보았고 얼굴에 약간의 귀찮음이 드러났다.그는 문득 그런 표정이 윤하경의 얼굴에 나타나면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앞의 이 여자는 그에게 괜히 불쾌감을 주었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여 박소희 쪽으로 다가갔고 박소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강현우의 잘생긴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박소희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사람들은 강현우가 방탕하다고 말하지만
“어.”강현우는 말이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떠났다.박소희는 그가 그렇게 가버리는 걸 보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강현우!”목소리에는 미세하게 울음이 섞여 있었다.아마도 박소희는 평생 이런 냉랭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한 게 분명했다.강현우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겨 그대로 레스토랑을 나섰다.윤하경은 그가 나오는 걸 보고 얼른 시선을 피하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행동했다.강현우가 차 문을 열자, 윤하경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현우 씨, 일 다 보셨습니까?”“이제 어디로 갈까요?”“헤븐으로 가.”윤하경은 짧게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순간, 박소희가 갑자기 뛰쳐나와 강현우의 차 문을 붙잡았다.“강현우, 네가 이렇게 가버리면, 난 돌아가서 뭐라고 해야 해?”윤하경은 그녀가 따라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리고 곧바로 강현우를 돌아보았다.이 상황에서 차를 계속 몰아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 고민했었다.윤하경은 박소희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경성 사람이 아닌 해성 출신, 집안 사업도 꽤 크게 하는 인물이다. 연예 뉴스나 경제 뉴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다.그녀는 이 상황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강현우가 곁눈질하자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멍하니 뭐 해? 운전 안 하고.”강현우의 말에 윤하경은 난처한 표정으로 박소희가 잡고 있는 차 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저기 강소희 씨, 잠깐 손 좀 떼주실래요?”“소희 씨, 그러다가 다치실 수 있으세요.”이는 단순 호의에서 비롯된 말투였다. 이런 자세로 차 문을 붙잡고 있는 건 위험하기도 했고, 박소희 같은 부잣집 아가씨가 진짜 다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일이기 일쑤였다.강현우야 원래 저런 성격이니 그렇다 쳐도, 윤하경은 가진 것 하나 없으니 몸 사리는 게 당연했다.하지
윤하경: “...”‘분명 나는 진지하게 말했는데, 어째서 강현우의 입을 거치면 묘한 분위기로 변할까?’그녀는 이를 살짝 악물었다.이런 면에서 그녀는 강현우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결국 입을 다물고 묵묵히 운전만 하기로 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강현우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피곤했는지 좌석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목적지에 도착하자 윤하경은 차를 세운 후 그를 향해 말했다.“현우 씨, 다 왔습니다.”강현우는 천천히 눈을 뜨고는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말이다.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윤하경은 차를 출발시켜 자리를 떠났다.이곳에 단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원래는 윤 씨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최근 벌어진 복잡한 일들이 떠올랐다.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였다.괜히 집에 갔다가 윤수철의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게 뻔했으니 말이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찰나, 자동차에 두었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화면을 보니 때마침 윤수철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일초의 망설임 없이 바로 전화를 끊고 아예 전원까지 꺼버렸다.아파트에 도착한 후,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샤워를 한 뒤 바로 침대에 누웠다.아마 오후에 온천에 다녀온 탓인지,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인지. 그날 밤은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다음 날 아침.휴대전화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저장된 이름 없이 숫자만 뜬 번호였다.윤하경은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다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상대방의 목소리에는 묘한 흥분감이 서려 있었다.“하경 씨, 거의 다 됐어요. 오늘 아마 그 두 사람이 또 만날 겁니다.”윤하경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속으로 ‘정말이지, 버릇은 못 고치는군.’ 하고 생각했다.입술을 살살 깨물며 말했다.“일단 계속 지켜봐요. 뭔가 이상하고 재미있는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알려줘요.”잠시 고민하다가 덧붙였다.“좀 더 철저하게.”상대는 간단히
“병원에 있다고?”윤하경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병원에는 무슨 일로야?”상대방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이어 나갔다.“직접 소대표님께 여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상사 일이라 저희가 말씀드리긴 어렵네요.”윤하경은 입술을 앙다물었다.“알겠어. 나한테 병원 주소 보내줘.”전화를 끊고 그녀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뭔가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요즘 따라 소지연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하경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니 소지연이 병상에 누워 있었다. 한쪽 팔엔 붕대가 감겨 있고, 다른 한 손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꽤 크게 다친 게 분명했다.윤하경을 발견한 소지연은 순간 멍해졌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하경아, 네가 어떻게 알고 왔어?”윤하경은 코웃음을 치며 문틀에 기대어 소지연을 쏘아보았다.“뭐야, 내가 안 왔으면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소지연은 자신의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고개를 약간 숙였다.윤하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붕대로 감싼 팔을 훑어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쳇, 보아하니 죽을 정도는 아니네.”소지연은 윤하경이 이렇게 빈정대는 게, 자신이 그녀를 속였기 때문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소지연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하경아,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야. 다만...”“다만 네가 걱정할까 봐.”“그래도 양심은 있네.” 윤하경은 눈을 살짝 굴리며 말했다.“내가 없는 며칠 사이 무슨 일이 이렇게 크게 난 거야?”“말해 봐. 대체 무슨 일이야?”그녀는 팔짱을 낀 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하지만 소지연은 우물쭈물하며 쉽게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윤하경이 뭔가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문밖으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유호천과 눈이 마주쳤다.윤하경은 눈썹을 찌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소지연을 바라보았다.“뭐야? 이 남자는 또 왜 온
“너도 지연이랑 이어질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계속 신경 쓰이게 하는 거, 결국 지연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거 아니야?”“네가 이렇게 지연이를 붙잡고 있다가, 안현주가 알게 되면 가만있을 것 같아? 아니면 유호천 집안이 가만있을 것 같아?”윤하경이 한 말들이 듣기 불편했지만 하나하나 다 맞는 사실이었다.유호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안현주랑 파혼할 거야.”소지연이 이 한마디에 감동을 받은 듯하였다.하지만 윤하경은 냉정했다.“그럼 유호천 씨가 완전히 솔로가 된 다음에, 그때 다시 소지연한테 대시를 하시죠.”유호천은 이를 살짝 악물었다.그리고 소지연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그럼 난 먼저 갈게.”소지연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병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눈이 마주치자, 소지연은 피하듯 눈을 깔았다.윤하경은 한숨을 쉬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윤하경은 걸음을 옮겨 소지연의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소지연, 유호천 같은 집안의 도련님들은 원래 쉽게 정착하지 않아.”“내가 하는 말들이 직설적일 수 있겠는데, 네가 이 감정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소지연은 단순한 성격이었다. 스물 몇 인생 동안 사랑했던 사람은 유호천 단 한 사람뿐이었다.그만큼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잊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그런데 유호천이 다시 나타나서 자꾸 신경 쓰이게 하니, 소지연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소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알아.”그러면서 윤하경을 힐끔 바라봤다.“나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야.”윤하경은 소지연의 말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그런데 이번에는 어쩌다 친 거야?”소지연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조용히 말했다.“그날 유호천이 술에 취해서 나한테 전화했어.”“처음에는 그냥 끊었는데, 나중에 바텐더에로부터 또 전화가 왔더라고. 너무 불쌍해 보여서 결국 가서 데리고 나왔지.”“그런데 걔를 집까지 데려다주다가 하필이면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눈 가장 가까운 가족이잖아요.”윤하경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하면서 전화기 너머의 윤수철에게 말했다.“제가 며칠 전 금방 회사에 돌아왔잖아요? 너무 바빠서 제대로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요.”“오늘 점심에 마침 시간이 나서요. 비서 말로는 아버지께서 저를 찾으셨다고 하던데요?”윤수철은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무슨 일로 감히 너를 귀찮게 하겠냐?”윤하경이 자주 그에게 맞서다 보니, 이제는 윤수철도 그녀의 빈정거리는 말투를 조금은 닮아 있었다.윤하경은 윤수철의 말투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아버지, 정말 화나신 거예요?”“이렇게 하죠. 제가 요즘 정말 맛있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알게 됐어요. 점심에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요리로 예약할 테니, 우리 둘이 오랜만에 식사라도 같이하실래요?”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아줌마랑 하연이가 집에 들어온 이후로, 우리 둘만 식사할 기회가 거의 없었잖아요.”그녀의 말을 들자, 윤수철은 약간 흔들리는 듯했다. 입술을 꽉 다물고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윤하경은 계속해서 말했다.“아버지가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면서요. 이런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마침, 저도 회사 일에 대해 아버지와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요.”윤수철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주소 보내라.”그는 오늘 윤하경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항상 시비만 걸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온순해지다니,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그는 그저 윤하경이 이번 싸움에서 자신에게 굴복하고 환심을 사려는 거라고만 여겼다.그래서 며칠 동안 어두웠던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윤하경은 손에 들고 있던 눈썹 펜슬을 내려놓고, 윤수철에게 주소를 보냈다.그런 다음 옷장을 열고 오늘 입을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곧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될 테니, 거기에 맞는 의상이 필요했다.이건 엄마가 가르쳐 준 거였다.한참을 고르고 고른 끝에 그녀는 결국 클래식한 블랙 원피스를 선택했다.목에는 진
뭔가 이상했지만 뭐가 이상한 건지 딱 집어 말하긴 어려웠다. 잠시 말이 없던 윤수철은 결국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 또 무슨 수작 부리는 거 아니지?” 윤하경은 가볍게 웃었다. “말씀을 참 재미있게 하시네요. 제가 무슨 수작을 부린다고요?”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준비 완료. 시작!]순간 윤하경의 입가에 미소가 더 환하게 번졌고 다시 고개를 들어 윤수철을 바라볼 땐 눈빛 안에 묘한 연민이 섞여 있었다. 턱을 괴고 무심한 듯 고개를 돌린 그녀는 마치 우연인 척 거리 건너편을 바라봤다. 잠시 후, 윤수철도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재무 관련 조사는 여기서 그만하자.” 하지만 윤하경은 그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꺼냈다. “어? 아빠, 저기... 저 사람, 수연 아줌마 아니에요? 호텔엔 왜 가시지?” 윤수철은 그녀가 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말로, 임수연이 몸에 딱 붙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채, 요란한 분위기로 호텔 로비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윤수철은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몇 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을 단번에 알아봤다. 잠깐 사이,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까매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침없이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윤하경은 한 손으로 가방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아빠, 진정하세요. 심장 안 좋으시잖아요. 괜히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하지만 그녀는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높은 굽을 신은 채로 달리다시피 했는데도 윤수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만큼 그가 분노에 휩싸여 있다는 뜻이었다.결국 호텔 로비까지 쫓아가서야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윤수철이 허둥지둥 버튼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윤하경이 앞서 나서서 6층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6층인지 알았어?” 윤수철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사실 미리 다
주미나는 경성에서 꽤 높은 지위와 명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윤하경은 강현우가 이렇게 대담하게 행동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지원은 후사경을 통해 윤하경의 놀란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엔 미세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몰랐죠? 그때 형이 얼마나 멋졌는지...” 우지원은 마치 강현우의 열혈 팬처럼 열정적으로 자랑하며 말했다. 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 “그 후에는요?” “주미나 씨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어요. 결국 형이 구지호 씨의 목숨을 위협하며 겨우 주소를 말하게 했죠.” 우지원은 그 말을 마치자 웃음을 터뜨렸다. “한 시간 거리였는데 형은 30분 만에 도착했어요. 차 바퀴가 연기 날 정도였죠.” 우지원은 고개를 흔들며 감탄했다. “제가 여자였다면 진짜 우리 형한테 시집갔을 거예요.” 그는 갑자기 윤하경을 돌아보며 웃었다. “그쵸? 윤하경 씨.” 윤하경은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도를 금세 알아챘다. 우지원은 계속해서 강현우를 옹호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윤하경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서 원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우지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여자가 된다고 해도 형수님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윤하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우지원이 왜 자꾸 자신과 강현우의 미래를 얘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결혼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라 강현우가 원해야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차가 시내에 도착하자 윤하경은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내려 주세요.” 우지원은 브레이크를 밟고 돌아서서 윤하경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형수님, 잘 가세요.” 말을 마친 그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 윤하경은 바람이 휘날리는 거리 한복판에 홀로 남았다. 바람이 그녀의 치마를 날리며 길가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외로운 그림 같았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어젯밤 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강현우가 그에 대해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가볼게요.” 강현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윤하경은 발걸음을 옮겨 집을 나섰다. 문을 조용히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젯밤 일이 어떻게 처리됐는지가 아니었다. 강현우라면 주미나가 그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바로 자신의 안전이었다. 윤수철은 결코 자신을 위해 구씨 가문과 맞설 일이 없다는 걸 뼛속까지 알고 있었다. 만약 주미나가 정말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겨냥한다면...‘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윤하경은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윤하경은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별장 밖으로 나갔다. 생각에 잠겨 걷던 그녀는 어느새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빠르게 다가오는 차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급히 사과하며 인도로 돌아가려던 순간 차에서 창문이 내려가며 한 마디가 들려왔다. “형수님, 태워 드릴게요.” ‘형수님?’ ‘이게 무슨... 왜 이렇게 불러?’윤하경은 당황한 얼굴로 차를 바라봤다.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하려던 찰나, 운전석에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우지원의 얼굴을 보고서야 멈칫했다. 윤하경은 살짝 표정을 굳히고 차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우지원은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려 그녀의 쪽으로 다가와 차문을 열어줬다. “타세요. 현우 형이 데려다주라고 보냈어요.” 윤하경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거절하지 않았다. 주변 환경이 꽤 괜찮아 보였고 도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별장이었기에 거절하면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방 안은 조용했다. 강현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이미 한밤중. 머리를 말린 후 침대 가장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볼까 싶었지만 결국 이불을 들추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오늘 하루는 예상치 못한 일들로 가득했다. 몸에 남아 있던 긴장이 서서히 풀리자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침대가 미세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곧 묵직한 온기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넓은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따뜻한 손길이 가슴 위에 가만히 얹혔다.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눈을 뜨려 했지만 마치 깊은 꿈결 속에 갇힌 듯 쉽게 떠지지 않았다. 그 순간, 악몽이 그녀를 덮쳤다. 작은 집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분갈할 수 없었고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몸이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움직이지 마.” “계속 이러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이 목소리...‘현우 씨?’ 윤하경은 잠결에 익숙한 목소리임을 깨닫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순간 깊은 곳에서 묵직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치 따뜻한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비록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옥죄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느꼈다. 윤하경은 몸을 돌려 얼굴을 강현우의 품 속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두 손은 자연스레 그의 단단한 허리를 감쌌다. 강현우는 순간 얼어붙은 듯했다. 그동안 모든 상황을 주도하던 그였지만 윤하경이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손은 공중에서 잠시 멈췄고 예리한 눈빛이 어두운
‘방법을 찾아야 해.’윤하경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그 속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과 공포로 휘몰아치고 있었다.‘이번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하지…’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주미나였다.겉으로 보기엔 상류층 여사답게 우아하고 고상했지만 그 손에 묻은 피를 윤하경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몇 년 전, 구정수의 내연녀가 아이를 가졌을 때 주미나는 그 여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윤하경이었다.잔혹하고 독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 여자. 그게 주미나의 진짜 얼굴이었다.‘그 수법이 언젠가 나한테 향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떨렸다.무의식중에 손톱을 뜯고 있던 윤하경의 손동작에 강현우가 힐끔 그녀를 바라봤다.“기분 안 좋아?”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슬쩍 웃었다.“혹시 내가 흥을 깨서 그래? 미안한데.”“...네?”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 윤하경은 고개를 들었고 몇 초 후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나서야 얼굴이 벌게졌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강현우는 키득 웃었다.“말도 안 된다고? 나는 네가 날로 부족해서 다른 남자들 불러서 야외에서 색다르게 즐기려는 줄 알았는데?”그 잘생긴 얼굴로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지, 윤하경은 황당함을 넘어 아연실색했다.그녀의 반응이 흥미로웠는지 강현우는 몸을 살짝 기울이며 중얼거렸다.“근데 지금 너, 좀 유혹하는 거 같거든.”익숙한 향기가 스쳤고 그의 눈빛은 장난기와 위협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이 인간은 정말 사람 놀리는 데 재능이라도 있나.’“그만 멍때리고 내려.”강현우가 먼저 차 문을 열었다.공기 속에 긴장이 조금 가셨지만 윤하경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그러자 그가 몸을 숙여 그녀의 눈높이에 맞췄다.“뭐야, 내가 안아줘야 내릴 거야?”“됐거든요!”윤하경이 얼굴을 붉히며 차에서 펄쩍 내렸다.주위를 둘러본 그녀
어두운 방.윤하경은 원래 겁 없는 편이었지만 이런 상황은 태어나 처음이었다.“기절한 건가?”강현우가 다가와 그녀를 발끝으로 툭 찼다.윤하경은 천천히 눈을 떴고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아직이요.”그가 코웃음을 쳤다.“내 침대에 기어들 땐 겁이 없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쫄았어?”그 말에 윤하경은 할 말을 잃었다.‘지금 그 소리 할 타이밍인가?’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쌓였던 공포가 스르르 내려갔다.강현우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공간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었다.뒤에서 우지원이 조용히 물었다.“이놈들은 어떻게 할까요?”강현우는 대답 없이 자신의 재킷을 벗어 윤하경의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걸쳐 주었다.그리고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정리해.”그리고 몇 걸음 옮기던 그가 덧붙였다.“깨끗하게 끝내.”그 말이 끝나자, 방 안의 남자들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강현우의 품에 안긴 윤하경은 문득 깨달았다.이 남자의 품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걸.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윤하연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현우 씨가 오자마자 도망친 건가...’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는 어느새 차 뒷좌석에 앉혀졌고 강현우가 조수석 쪽에서 타려던 순간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 혹시 구해준 은인이라고 감동이라도 한 거야?”원래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지만 그의 짓궂은 말투에 윤하경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묶인 거, 좀 풀어줄 수 있어요? 움직이기도 힘들어요.”강현우는 그녀의 손발을 내려다보다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허, 이런 것도 가능하네? 다음엔 이렇게 놀아볼까?”‘진짜, 이 남자 도무지 모르겠어. 지금 같은 상황에 그런 농담이 나와?’윤하경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다행히도 강현우는 장난처럼 웃다가 결국 묶인 끈을 풀어주었다.자유의 몸이 되자 그녀는 급히
어두운 방.희미한 불빛 아래, 남자들의 눈빛이 들짐승처럼 번뜩였다.윤하경은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그때, 왜 윤하연까지 같이 끝장내지 않았을까. 임수연 그 여자랑 같이 잡아들였어야 했는데.’하지만 이 세상에 후회 약 따윈 없었다.“윤하경 씨, 그럼 재미를 좀 보자고.”비릿한 웃음과 함께 누군가의 더러운 손길이 그녀의 몸 위를 더듬었고,피부에 닿는 그 촉감은 마치 수천 마리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 소름 끼쳤다.탕!그 순간, 묵직한 총성이 바깥에서 울려 퍼졌다.윤하경 위로 올라타려던 남자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누구야?”쿵, 쿵, 쿵.답 대신, 문이 거칠게 열리며 몇몇 남자들이 쏜살같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그들 앞에는 짧고 검은 권총을 들고 선 사내가 있었다. 강현우의 오른팔, 우지원이었다.건달들은 아직도 욕망에 취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고 순간, 우지원이 쏜 총알이 한 건달의 허벅지를 정통으로 꿰뚫었다.“악!”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당신들 누구야!”절박한 외침에, 문 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되받아쳤다.“누구냐고? 네 주제에 감히, 나한테 그 질문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냐?”목소리는 낮고 서늘했으며 단어 하나하나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그 말을 들은 순간,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익숙한 목소리에 그녀는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문가에 선 그 사람을 보자마자 참고 있던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내렸다.강현우였다.그는 조용히, 그러나 모든 것을 압도하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묵직한 존재감이 공기를 흔들었다. 그의 시선이 윤하경을 스치고 그 뒤로 웅크린 남자들을 향했다.“이거 재밌네?”건달들도 강현우를 알아보고 혼비백산해 땅에 머리를 박았다.“아닙니다! 저희는 대표님의 사람인 줄 모르고...”눈앞의 남자가 누군지, 그 세력이 어떤지 건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강현우는 아무 말 없이 윤하경을 내려다봤다.
윤하연이 다시 돌아온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윤하경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무슨 짓 하려고.”윤하연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예쁘지도 상냥하지도 않았고 그저 뒤틀린 증오로 일그러져 있을 뿐이었다.“무슨 짓이냐고?”윤하연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강현우가 남자들을 시켜 날 그렇게 망가뜨렸을 땐, 자기 여자가 내 손에 들어올 거란 건 상상도 못 했겠지?”“뭐?”“날 무시하고 조롱하고, 깔봤지? 넌 뭐가 잘났다고, 이젠 너도 나랑 똑같이 만들어줄게.”윤하연이 뒤를 돌아 외쳤다.“들어와.”문이 열리자, 덩치 큰 남자들이 하나둘 방 안으로 들어섰고 그중 두 명은 아까 윤하경을 쫓던 자들이었다.“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 윤하경.”“윤하연, 미쳤어? 지금 그만둬도 늦지 않았어. 이건 범죄라고.”“그만둬?”윤하연이 속삭이듯 말했다.“난 혼자 죽지 않아. 내가 겪은 지옥, 어디 너도 한번 겪어봐.”윤하경은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는 걸 알아채고 침착하게 남자들 중 가장 리더처럼 보이는 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지금이라도 멈춰. 너희가 한 일, 지금은 그냥 납치일지 몰라도, 이 선 넘으면 인생 끝장이야. 평생 감옥에서 썩는다고.”그 말에도, 남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윤하경 씨 걱정 마세요.”“우린 일 깨끗하게 처리합니다. 증거? 절대 안 남죠.”“그리고...”그중 하나가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비열하게 웃었다.“이렇게 예쁜 여자면 몇 년 감옥에서 썩어도 충분히 가치 있지.”윤하경이 속으로 욕지거리했다.‘이거 완전 미친놈들이네.’윤하연이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걱정 마.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 아무도 모를 거야.”그녀는 돌아서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내 언니, 잘 부탁해.”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멀어질수록 윤하경의 심장은 더 거세게 뛰었다.“윤하연… 내가 살아 나가면 널 반드시 가만 안 둬.”“살아서 나가고 나서 그런 말 해. 지금은 아
“너희 중 누구라도 날 속인 게 밝혀지면 그 대가, 반드시 치르게 될 거야.”주미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부잣집 사모님으로 살아오며 익힌 우아함 뒤에는 결코 적지 않은 더러운 수단들이 감춰져 있었다.그 위압감에 윤하연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만 푹 숙였다.잠시 후, 주미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오두막을 나섰고 멀리서 자동차 시동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윤하경, 넌 진짜 사람 인생 망치는 재주 하나는 타고났어.”발을 쾅 내디딘 윤하연이 돌아서며 이를 갈았다.“왜! 왜 지호 오빠가 너 때문에 다쳤다는 걸 인정 안 해?”윤하경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좀 꺼져줄래? 네 목소리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리니까.”쌓인 감정이 고개를 들었고 윤하경은 더 이상 받아줄 여유조차 없었다.“지금 네가 처한 상황, 진짜 모르고 그러는 거야?”윤하연이 몸을 숙여 윤하경의 턱을 잡아 올렸다.“넌 지금 납치된 거라고.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하지만 윤하경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쓸데없는 말 다 했으면 좀 꺼져. 나, 자야 되니까.”그 무심한 말투에 윤하연의 분노가 폭발했다. 손을 들어 그대로 뺨을 내려치려던 순간, 윤하경의 눈빛이 칼처럼 날카로워졌다.“쳐. 마음껏 쳐보라고. 네가 나한테 어떻게 하든, 그 대가는 네 엄마한테 열 배로 돌아갈 거니까.”“뭐?”윤하연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눈동자가 흔들렸고 그녀는 낮게 으르렁댔다.“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 한 거야?”윤하경은 희미하게 웃었다.“다 말해줄게. 대신 이거 풀어줘. 그럼 너희 엄마가 지금 어딨는지 알려줄게.”윤하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또 날 속이려는 거지? 이젠 안 속아, 윤하경.”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그래. 그럼 말든가. 어차피 난 피곤하니까, 말 걸지 마.”그 말에 윤하연은 치를 떨며 돌아섰고 쾅 소리를 내며 문을 세게 닫았다.오두막 안.정적 속에 홀로 남겨진 윤하경은 천천히 눈을 떴다.‘강현우 씨
“언니가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에요!”윤하연은 다급히 외쳤고 목소리엔 분노보단 불안이 실려 있었다.“얘는 지호 오빠랑 약혼했을 때부터 강현우랑 이미 그런 사이였어요. 강현우가 그런 짓을 한 것도, 전부 언니 말 듣고 지호 오빠한테 복수하려던 거라고요!”“복수?”윤하경은 비웃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윤하연을 바라보았다.“그럼 말해봐. 내가 뭘 복수하려고 했는데?”윤하연의 입이 덜컥 멈췄다.당황한 얼굴로 입술을 떼던 그녀는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팠다.“그, 그거야 내가 지호 오빠한테 사람 시켜서 언니를 강간하라고...”순간, 본인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은 윤하연은 입을 틀어막은 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미나를 바라보았다.“계속 말해보지 그래.”윤하경은 차갑게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럼 지난번에 날 노렸던 게 실패해서, 이번엔 아예 어머님을 이용해 날 무너뜨릴 생각이었던 거야?”“하연아. 너 사람이 할 짓을 해야지. 나한테 누명 씌우기 전에 증거라도 들고 오지 그랬니?”“예를 들면 네 엄마가 바람피웠다는 증거, 나 그거 갖고 있거든. 지호 씨가 저렇게 된 게 내 탓이라면 그에 맞는 증거는 있어?”윤하경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로워졌다.그녀는 지금 도박을 걸고 있었다.주미나가 아직 자신에게 남은 믿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가능성에 전부를 건 것이다.“어머님.”윤하경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했다.“저를 오랫동안 봐오셨잖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정말 윤하연 말 하나만 믿고 저를 이렇게까지 대하신다면 저도 더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그녀는 눈을 감고 벽에 몸을 기대었고 지친 숨결과 조용한 체념이 그 공간에 퍼졌다.윤하연은 그 태도에 질투와 분노가 폭발했다.“뭐야, 지금 연기하는 거야? 네가 한 짓이잖아! 왜 인정 안 해!”화를 주체하지 못한 윤하연은 그대로 발을 들어 하경을 걷어차려 했다.그 순간, 윤하경의 눈이 번쩍하며 살기 띤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윤하연은 본능적으로 움찔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