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정이 경찰에 구조되자 구경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최신애와 친한 사람들은 난간을 사이에 둔 채 한마디씩 했다.“정말로 뛰어내렸더라면 이 집에서 더 이상 못 살죠? 안 그래요? 트라우마가 생길 뻔했어요.”남들 앞에서는 늘 점잖은 척하는 최신애는 어색하게 웃었다.“우스운 모습만 보였네요. 휴!”“유한이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도 다 봤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생각이 없다니까요. 전에 이 아이에게 얼마나 잘해줬어요? 그런데 일이 터지니 이 댁에 와서 분통을 터뜨리네요. 사람 인심이란 정말 말하기 어렵다니까요.”최신애도 그 말에 동감했다. 주유정에게 잘해줬던 만큼 지금 더욱더 체면이 깎인다.강지아에게 가혹하게 한 만큼 지금은 더욱더 미안하다.구경하던 사람들은 서서히 흩어졌고 주유정도 경찰들에 의해 얌전해졌다.체면을 중시해서인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창피한 상황, 더 소란을 피우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한지우가 다가가자 두 모녀는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최신애는 화가 나 안색이 어두워졌다.“울려면 본인들 집에 가서 울어. 우리 집이 상갓집도 아니고! 주유정, 너 스스로에게 물어봐.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어?”한지우가 더 크게 울자 주유정은 최신애를 바라보며 말했다.“큰 기대를 주지만 않았어도 지금처럼 초라하지는 않았겠죠!”“내 탓이란 말이야? 내가 너를 내연녀로 만들었어?”최신애도 더 이상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고 화를 냈다.“네가 뻔뻔하게 행동해 놓고 이제 와서 내 탓을 하는 거야? 호랑이 새끼는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너에게 잘해주는 게 아니었어! 주유정, 너를 며느리로 삼고 싶었던 마음은 진심이었어. 하지만 네가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몸을 굴렸지! 그러고는 이제 와서 내 아들에게 약혼을 강요해? 꿈 깨! 얼른 나가, 다시는 우리 온씨 집에 한 발짝도 들어올 생각하지 마.”주유정은 최신애를 분개한 듯 노려보았다.
주유정이 귀국한 이래 강지아는 오늘 처음으로 온유한의 본가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최신애의 얼굴이 잔뜩 어두워져 있었지만 못 본 척하면 그만이다.온혁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오늘 지아 덕분에 상황을 모면했어. 지아가 정말 다 컸어. 용감해!”강지아는 웃으며 말했다.“사실 그 영상까지 꺼낼 생각은 없었어요. 앞으로 주유정 씨가 알아서 잘 살길 바랄 뿐이에요.”강지아가 주유정 얘기를 꺼내자 최신애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이제 누가 주유정을 언급해도 최신애는 상대방이 일부러 자신을 저격한다고 생각한다.사실 강지아도 최신애를 떠보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이 맞다.전에 강지아를 그렇게 미워했으니 이 정도의 복수쯤은 할 수 있지 않은가?하지만 온유한을 너무 좋아하기에 그의 어머니에게 감히 함부로 건방지게 할 수는 없다.“밥 먹을 때는 열심히 먹어. 말하는 거 아니야!”최신애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편안한 식사를 위해 더 이상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식사 후 온유한은 강지아와 함께 떠났고 최신애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때? 온 선생, 나 오늘 짱이지 않았어?”온유한이 강지아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응! 짱이었어. 도와줘서 고마워.”오늘의 문제를 온유한도 해결할 수는 있었지만 강지아의 수법은 바로 상대방의 정곡을 찔렀고 자기 엄마에게까지 점수를 딸 수 있었기에 그야말로 더없이 훌륭했다.예전에 일이 생기면 유한이 오빠만 찾던 그 계집애가 이제는 혼자서도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꽤 감개무량했다.“주유정도 더 이상 아주머니를 귀찮게 하지 않겠지?”온유한은 강지아를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우리 엄마가 너를 그렇게 대했는데 아직도 걱정하는 거야?”강지아는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렸다.“아주머니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빠를 걱정하는 거지. 오빠가 다시는 주유정과 엮이지 말았으면 좋겠어.”“걱정하지 마.”온유한은 그녀
한 술집.최금혁은 건달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한 건달 친구가 최금혁의 곁에서 술 접대하는 여자를 밀어내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최금혁, 내가 방금 누구를 봤는지 알아?”“누구?”“네 형의 여자친구.”최금혁은 상대방이 강지아를 말하는 줄 알고 차가운 시선으로 흘겨보았다.“내가 말했지? 강씨 가문은 언급도 하지 말라고!”“그 여자 말고 다른 여자. 전에 실검에 올랐던 여자.”최금혁은 눈이 반짝였다.“아이고, 우리 유정 누나? 어디 있는데? 앞장서.”주유정 앞에는 이미 빈 술병이 두 개나 있었고 사람도 취해있었다.혼자 구석에 앉아 있어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어? 이게 누구야? 유정 누나 아니야?”최금혁이 다가가 주유정 옆에 앉아 한 손으로 그녀의 뒤에 소파를 잡았다.“꺼져!”이 한마디로 주유정의 현재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누나, 나야, 최금혁. 온유한의 사촌 동생, 우리 몇 번 만났잖아.”“온유한!”이 이름을 들은 주유정은 금방이라도 술기운이 올라올 것 같았다.“온유한, 당신 정말 미워!”“그래, 그래. 우리 형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 이렇게 예쁜 유정 누나를 다치게 하다니!”최금혁은 술을 따라주며 달랬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주유정은 술에 취한 몽롱한 눈으로 최금혁을 쳐다봤다.청순하게 생긴 주유정이 술을 마시니 알코올 기운 때문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눈에서도 매혹적인 빛이 뿜어져 나왔다.찰랑찰랑한 눈빛에 최금혁은 흥분되었다.강지아에게 차인 최금혁인지라 강지아는 감히 건드리지 못하지만 주유정은 가능하지도 않을까?게다가 주유정의 명예는 이미 더럽혀졌기에 고모 성격상 이런 며느리를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최금혁은 더욱 흥분되어 술잔을 든 뒤 주유정의 입에 갖다주며 말했다.“누나, 건배.”주유정은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이 힘들었기 때문에 완전히 취하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정신도 차린 상태이다.최금혁이 어떤 인간인지
회의 중에 화령의 휴대전화가 여러 번 진동했다. 회의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최금혁에게서 온 전화인 것을 보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요 며칠 화령은 좀 바쁘다. 잡지사에서 그녀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하미소도 인터뷰에 동의했다.이건 화령이 혼자 운영하는 큰 프로젝트인지라 만약 성공한다면 잡지사에서 그녀의 지위는 반드시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이며 편집장 자리와 한 발 더 가까이 가게 된다.저녁 식사도 화령은 사무실에서 해결했고 야근을 해서 빨리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했다.9시가 넘었을 때쯤, 화령의 휴대전화가 또 울렸고 확인해 보니 역시나 최금혁이었다.혹시라도 미움을 살지 모르기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휴대폰 너머의 최금혁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고, 드디어 전화를 받았네. 나와 인연을 끊으려는 줄 알았잖아.”화령은 확실히 재벌 2세 최금혁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금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마주해야 했다.“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나 같은 월급쟁이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녀야 돈을 벌 수 있어. 오후에 회의 중이어서 전화를 못 받은 거야.”“헛소리 그만해. 오늘 내가 쏠 테니 올래?”화령은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야근해야 해.”“야근은 무슨 야근! 나 지금 잡지사 아래에 있어. 올라가서 모실까?”이 인간이 이렇게 까다로운 줄 몰랐던 화령은 컴퓨터를 끄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최금혁 오픈카 타고 있었다. 한겨울이라 쌀쌀한 날씨에도 최금혁은 춥지도 않은가 보다.차에 올라타자 최금혁이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요즘 약속 잡기가 힘드네. 왜? 나 이제 싫어진 거야?”“아니.”화령은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나에게 싫어할 자격이 있긴 해? 다만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최금혁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여자들의 마음이란 겉으로 싫다고 하면서 가방과 액세서리만 선물하면 바로 넘어온다.하지만 화령은 좀 예외이
샤워를 마친 강지아가 고개를 돌려 휴대전화를 힐끗 보니 화령이 그녀에게 술을 먹자고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메시지 다음에 위치까지 보내왔다.오늘 밤, 온유한이 야근을 하기에 마침 심심했던 강지아는 옷을 갈아입고 갔다.차 키를 술집 벨보이에게 주자 웨이터같이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강지아 씨죠? 진화영 씨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모실게요.”진화영은 바로 화령의 진짜 이름이다.웨이터를 따라가면 갈수록 강지아는 이상함을 느꼈다. 서울에서 혼잡한 술집들은 지하실을 만들어 VIP들에게 자극적인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한다.하지만 화령이 이런 걸 할 사람은 아니다.“진화영 씨가 혼자 왔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과 같이 왔나요?”웨이터가 말했다.“진화영 씨 혼자 왔습니다.”강지아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옛날 생각이 났는지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냈다.“강아지에게 밥을 주는 것을 잊었어요. 잠깐 하인에게 전화해볼게요.”온유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빌어먹을 이곳에 신호가 되지 않았다.“죄송합니다. 강지아 씨, 여긴 신호가 없어요. 이렇게 하시죠. 일단 진화영 씨를 만나시고 집에 있는 강아지는 제가 하인에게 연락하라고 하겠습니다.”강지아는 오늘 밤 편안한 밤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화령을 빌미로 그녀를 여기까지 속여서 데려왔다는 것은 화령도 이미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화령을 구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구해야 한다.하지만 강지아가 미처 대책을 생각하기도 전에 뒤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그녀의 목에 살짝 칼집을 냈고 강지아는 바로 기절했다.“미친, 이 여자의 경각심이 생각보다 강하네.”잠시 후, 깨어난 강지아는 그제야 자신이 투명한 유리 항아리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맞은편에 있는 화령도 그녀처럼 큰 자물쇠로 온몸이 고정되어 있었다.더 황당한 것은 그녀와 화령 모두 어느새 노출이 심한 비키니 차림이 되어 있었다.주위를 둘러보니 창고인 것 같다.강지아는 손목의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화령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지아야, 우리 이제 어떡해? 다 내 탓이야. 그깟 이익을 탐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최금혁이 전에 몇 번 선물을 준 적이 있어. 그러면서 그 사람들과 술을 몇 번 마신 적이 있는데... 최금혁이 자꾸 만지려고 해서 내가 도망갔어. 그래서 나에게 복수하려는 것일까? 복수하려면 나 한 사람에게만 하면 되는데 왜 너에게까지 이러는 것일까?”강지아는 한숨을 쉬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좀 이상한 것 같아. 최금혁은 나를 건드릴 배짱이 없어. 나를 건드리면 우리 오빠나 유한 오빠가 절대 본인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아니까.”“그러면 왜 이러는 것일까?”“글쎄...”강지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바로 그때, 머리 꼭대기에 덜컹하는 소리가 나더니 틈이 벌어졌고 위에서 불빛이 비쳤다.화령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끝났어. 우리 이제 올라가나 봐.”머리 꼭대기의 갈라진 틈은 점점 더 커졌고 그 위로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하지만 강지아는 그럴수록 오히려 긴장하지 않았다. 최금혁의 목적이 단지 그녀를 망신시키는 것이든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든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으니 그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겁내지 마. 배짱이 있으면 죽이라지 뭐.”하지만 화령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이때 갑자기 물탱크 네 귀퉁이에서 팔뚝만 한 수도관이 하나씩 들어왔다. 상황을 지켜보던 화령은 다급하게 외쳤다.“물을 채우기 시작하나 봐! 살려주세요. 내보내 주세요.”아무리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었다. 물은 곧 두 사람의 발등, 종아리, 허벅지, 허리까지 왔다. 다행히 머리 꼭대기까지는 오지 않았고 또 둘 다 수영할 줄도 알았다.물이 가득 참과 동시에 리프트가 물탱크를 무대 위로 올렸다.물탱크 안에 두 명의 여자가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기분이 업되었다.특히 강지아와 화령 모두 비키니 차림인 탓에 그녀들의 몸매와 오관이 뚜렷한 얼굴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사람들은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구경꾼들이 모두 웃자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한 남자는 일부러 더 우쭐하며 말했다.“적어? 그럼 10억! 첫 경험은 맞는 거야?”그 말에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다.겨우 숨을 고르며 살았음에 안도한 강지아는 시끄러운 소란에 응하기 귀찮아 최금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겨를도 없이 사회자를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최금혁! 어디 있어?”강지아의 수상한 눈빛에 사회자가 말했다.“최금혁 씨는 이미 떠났습니다.”“최금혁, 개자식!”화령은 추위에 떨며 최금혁에게 욕설을 퍼붓더니 이내 최금성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최 대표님, 감사합니다.”입술을 달싹이며 억척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화령에 최금성은 모르는 사람을 보듯 힐끗 눈길을 한 번 줬지만 그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강지아는 화령을 부축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최금혁이 떠났든 아니면 숨어있든 한마디만 전하세요. 나 강지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강지아의 눈빛에 놀란 사회자는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최금혁은 이곳의 단골손님이기에 모두들 그의 배경을 잘 알고 있다.그런데 눈앞의 이 여자가 최금혁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보니 최금혁과 함께 노는 무리의 사람들이 아니라 최금혁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강씨라면...설마 진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강'은 아니겠지...?이때 최금성이 무대에 오르자 그의 경호원이 강지아와 화령에게 가운 두 벌을 가져다 어깨에 걸쳐줬다.“강지아 씨, 내려가서 얘기하죠.”최금성은 사회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경고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계속들 하세요.”사회자는 어리둥절했다.최씨 형제들이 지금 뭐 하는 거지?한 사람은 여자들을 데리고 놀고 한 사람은 여자들을 살린다고?강지아와 화령은 옷을 갈아입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험악했다.최금성은 최금혁이 한 짓임을 몰랐지만 만약 오늘 일이 정말로 최금혁이 한 짓이라면 최씨 집안으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다.“강지아 씨, 오늘 일이 확실히 금혁이 소행인가요?”최금성은 아주 진지한 얼굴
술집을 나서자마자 강지아의 휴대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당직을 설 때, 강지아에게 페이스 톡을 하는 게 습관이 된 온유한인지라 오늘 연결이 되지 않자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끼게 되었다.함부로 누군가와 어울려 놀지 않는 강지아였고 저녁에 집에서 설계도를 작성할 예정이라고 오후에 말했었다.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강지아는 보이지 않았고 바로 강지찬에게 연락해 서울 전체를 뒤지려 할 때 드디어 강지아와 통화하게 되었다.강지아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말하지 않고 호텔 장소만 알려줬다.전화를 끊고 나서야 강지아는 자신이 최금성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잠시 후 온유한이 이것을 보면 최금혁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최 대표님, 이번 일은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대표님께서도 양해 바랍니다.”강지아의 말에 최금성은 아주 차분하게 한마디 했다.“이해해요. 저도 마침 금혁이를 톡톡히 혼내줄 생각이었어요.”최금성은 심지어 최금혁을 봐달라는 사정조차 하지 않았다.이런 못난 동생이 있다는 것에 최금성도 화가 많이 난 듯하다.화령은 묵묵히 최금성의 등을 지켜봤다.이런 성숙한 남자야말로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사람이었다.차가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강지아의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사장님, 또 실검에 올랐어요. 대박! 누가 그런 거예요! 미친 거 아니에요?”강지아는 화령의 핸드폰을 갖고 와 실검을 확인했다.아니나 다를까 오늘 밤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는 바람에 강지아는 또 실검에 올랐다.화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이, 이거 대체 누가 한 짓이야! 이 사람들, 분명 지아 너를 노린 거잖아. 어떡하지?”강지아는 매니저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당부한 뒤 전화를 끊고는 화령에게도 한마디 했다.“좀 이상해. 하지만 실검까지 올랐으니 우리 오빠가 분명히 밝혀낼 거야.”실검에 올린 사람은 분명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평판이 나빠져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기사 제목은 ‘재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