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은 목걸이를 백채영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이씨 일가가 선우 일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지. 앞으로 이 목걸이는 네 거야. 너야말로 선우 일가의 정통 아가씨라고.”“며칠 지나면 선우 일가에서 널 찾으러 올거야.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이영철은 백채영이 백아영의 신분을 꿰차길 바랐다. 그럼 백채영은 선우 일가의 아가씨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백채영이 이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박라희는 그녀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하지만 백아영은 이미 편지를 들고 부모님 찾으러 금성으로 갔는데...”이영철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무슨 편지요?”백채영의 꿈은 박라희에 의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이영철은 백채영이 선우 일가의 아가씨로 가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성준과의 결혼을 허락한 것이다. 만약 백채영이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아마 이 혼사는 파탄날 듯싶다.“이럴 줄 알았으면 백아영한테 그 편지를 안 줄 걸 그랬어요. 괜히 편지를 줘서 상황이 복잡해졌어요. 어떻게 하죠?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백채영은 다급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잡았다.이 사실을 알게 된 이영철의 안색은 한껏 어두워졌고 백채영에 대한 불만도 점점 커져만 갔다.만약 백채영이 이성준의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절대 백채영에게 선우 일가의 아가씨로 가장하라며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영철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편지 하나 만으로 선우 일가에서 절대 백아영을 아가씨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야. 목걸이는 네가 가지고 있으니 얼른 선우 일가로 가봐. 일말의 기회라도 있으면 잡아야지 않겠어?”백아영을 막아야 백채영은 그토록 꿈꾸던 미래를 이룰 수 있었다.백채영은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서고는 말했다.“지금 바로 갈게요!”...금성에서.KNHospital 앞에 도착한 백아영은 차에서 내렸다.KNHospital는 아주 작은 규모의 병원이었는데 두 개의 상가밖에 차지하지 않았다.인테리어도 워낙 간단했고 병원 안에는 환자 한두명
겨우 부모님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었고, 이제는 일가족이 한자리에 모두 모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백아영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선생님, 혹시 전화번호라도 어떻게 받을 수 없을까요? 제가 알아서 연락할...”“이미 번호 바꿨을 거예요.”말을 마친 남자는 백아영의 바로 뒤에 있는 환자를 보며 말했다.“다음 분이요.”더는 백아영의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뒤에 있던 환자는 바로 백아영의 옆자리에 앉아 자기 증상을 말하기 시작했다.백아영은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더 물어보려고 해도 더는 기회가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 멍하니 옆에 서 있었는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바로 이때, 낯색이 어둡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환자가 병원에 들어왔다.그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는데 이어서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그의 아내는 다급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구 선생님, 우리 남편 좀 살려주세요. 갑자기 병이 발작하더니 이렇게 됐어요.”구승호는 바로 일어서더니 환자 옆으로 가서 맥을 짚어보고는 얼굴이 한껏 어두워졌다.그리고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저는 환자분을 살려낼 수 없습니다.”여자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그러더니 남편을 부축하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려고 했다.하지만 남자의 경련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기에 여자는 남편을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심지어 남자는 피를 토하면 눈까지 뒤집었다.구승호는 앞으로 한걸음 걸어가더니 그저 주먹만 꽉 쥐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남자가 불쌍해 보였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참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심지어 고개를 돌려 애써 그 남자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남자는 점점 더 많은 피를 토했고 경련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병원에는 여자의 처참한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곡을 하고있는 것처럼 말이다.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앞으로 걸어가고는 여
하지만 백채영이 그녀를 모함한 후로부터는 다른 의미로 학교에서 더 유명해졌다.구승호는 한참 동안 백아영을 훑어보더니 전에 차갑던 태도와는 달리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옛 원장님은 왜 찾는 거예요? 이유를 잘 설명해주면 제가 도와줄 수도 있어요.”백아영은 눈을 반짝였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바로 편지를 꺼냈다.“저는 고아예요. 이건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편지인데 편지 내용이 맞다면 이 병원의 옛 원장님은 아마 제 부모님이실 거예요.”그 말을 들은 구승호는 눈을 크게 떴다.“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편지를 보여야 상대방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 백아영은 편지를 그에게 건넸다.구승호는 편지를 보더니 감격에 겨워 손까지 떨고 있었다.“이건 고모 글씨체인데요. 당신이 고모의 아이였어요? 어쩐지 의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더라니.”“고모요?”백아영은 눈앞의 젊은 의사가 자기 사촌일 줄은 전혀 몰랐다.그녀도 기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그럼 고모분은 어디 계세요? 제가 만나뵈도 될까요?”하지만 구승호는 잠깐 망설였다. 그는 겨우 감정을 추스르며 흥분을 진정시켰다.“편지 하나만으로 당신이 고모의 아이라고 확정지을 수 없어요. 모든 게 확실해지면 그때 소식을 알려줄게요.”구승호가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어요? 집에 이 소식을 알리면 바로 신분 확인을 하러 사람을 보낼 거예요.”“네, 좋아요.”백아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가족을 찾았으니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기뻤다.구승호는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전화를 끊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백아영에게 말했다.“마침 잘 됐네요. 할아버지께서 남원으로 가려던 참이셨는데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소식에 바로 오고 계시대요. 한 시간 뒤면 도착하실 거예요!”구승호의 할아버지는 그녀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했다.백아영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곧 외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벅차올랐다.할아버지를 기다릴 때,
노인은 백아영을 보더니 코끝이 찡했다.백아영은 그의 불쌍한 딸과 비슷한 구석이 조금밖에 없었지만 똑같이 해맑고 깨끗한 분위기를 풍겼다.때문에 노인은 백아영이 자신의 손녀가 확실한 것 같았다.그녀를 품에 안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얘야, 이 일은 한 치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 너도 다른 부모를 찾고싶지는 않을 테고, 우리도 헛된 수고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네 신분을 한 번만 더 확인해봐도 되겠느냐?”백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친자확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은 DNA검사였고 그녀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노인이 그녀의 생각대로 제안했다.“네 피가 조금 필요하구나.”백아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피 검사를 받았다.“검증 기계는 가져왔다. 바로 차 안에 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노인은 자애로운 얼굴로 백아영에게 말하고는 혈액 샘풀을 기사에게 건넸다.하지만 이때, 병원 밖에는 벤츠 한 대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백채영이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걸어들어오고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검사할 것도 없어요. 백아영은 할아버지 손녀가 아니에요. 거짓말을 한 거라고요.”백아영은 백채영을 보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왜 날 못 잡아서 안달이야. 금성까지 와서 내 가족상봉을 막으려고 하다니!’노인도 눈썹을 찌푸렸다. 낯선 얼굴의 백채영을 보더니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물었다.“네가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이야?”강력한 아우라에 백채영은 겁을 먹었다. 뒤가 꿀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영철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 내어 말했다.“제가 할아버지의 손녀이니까요!”백채영은 노인에게 철썩 무릎을 꿇었다.“할아버지, 이영철 할아버지께서 보내신 목걸이는 바로 제 목걸이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그걸 본 이영철 할아버지께서는 제 신분을 알려주셨어요.”“백아영이 그걸 엿듣고는 선우 일가의 아가씨 신
노인은 그제야 시선을 백채영으로부터 백아영에게로 돌렸다.백아영을 처음 본 순간부터 깨끗하고 청순한 분위기에 이끌려 백아영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그녀를 손녀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어 피 검사도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다.하지만…지금 그는 백아영에게 속았다는 분노밖에 느끼지 못했다.백아영의 소행은 ‘깨끗’, 그리고 ‘청순’ 이라는 단어를 먹칠한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딸과 같이 이름이 거론되는 거는 더 용납할 수 없었다.그는 차가운 얼굴로 백아영을 보며 말했다.“나이도 어린 사람이 마음을 나쁘게 먹었구나. 주영이 말대로 절대 이대로 보내주면 안 돼!”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기사가 소매를 거두더니 백아영을 향해 걸어오고는 손을 쓰려고 했다.백아영은 다급하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일부러 백채영 신분을 바꿔치기하려고 마음먹은 적은 없어요. 저는 그냥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편지에 적힌 내용대로 찾아온 것뿐이에요.”“저는 이 병원의 옛 원장님이 선우 일가의 사람인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아직도 거짓말하고 있네!”선우주영이 목소리를 높였다.“부모님이 남겨주신 편지라니! 이 편지는 고모가 채영 씨한테 남겨주신 거라고!”만약 이 편지가 박라희에게서 발견되었다면 백아영은 박라희가 일부러 그녀를 모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편지는 백아영이 고아원에 있을 때부터 그녀의 포대기 안에 넣어져 있었던 걸로 확인되었다. 그 말인즉 이 편지는 백채영과 아무 상관도 없었다.“이 편지는 정말 제 거예요! 고아원에 있었던 선생님께서 증명해 주실 수 있어요.”하지만 백아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편지는 그녀의 포대기 안에 넣어져 있었고, 왜 그녀에게 편지를 써준 사람이 그녀의 부모가 아닌지 말이다.왜 편지에서 사랑을 전한 사람이 그녀와 혈연관계가 없는 남남이란 말인가?백아영이 어리둥절해있자 구승호가 참다못해 말했다.“아까 백아영 씨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정말 고모 신분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혹시 무슨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요?”“사촌 동생이 길을
백채영은 배를 쓰다듬더니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제가 오래 나와 있었으니 성준 씨가 제 걱정 할 거예요. 먼저 남원으로 돌아가 봐도 될까요?”노인은 쑥스러워하는 백채영의 얼굴을 보더니 바로 뭔가를 알아챘다.“너 임신했어?”“네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이 좋아할 거다.”“아이의 아버지가 이성준이라는 사람이야?”노인은 백채영이 곧 이씨 집안에 시집갈 것이고, 그래서 이영철은 백채영의 목걸이를 발견하고 그녀의 신분을 알아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노인은 걱정이 앞섰다.“널 많이 사랑한대? 너한테 잘해줘?”백채영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 성준 씨 저한테 잘해줘요.”노인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이 할아버지가 직접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구나. 할아버지가 같이 남원을 가도 되나?”이영철은 백채영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선우 어르신을 남원으로 데려오라고 했기에 백채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남원으로 향했고, 백아영도 엉겁결에 차에 올라탔다.선우 일가는 남원에서 소유한 부동산이 없었고, 또 백채영과 함께 남원으로 돌아갈 때 날도 어두워졌으니 손님으로 백씨 일가에 묵게 되었다.백아영은 백씨 일가의 거실에 서 있었다.20년 동안이나 지낸 ‘집’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2년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녀는 ‘심문을 앞둔 범인’으로, 백채영은 백씨 일가에서 잘못 입양한 딸로 되었다.똑같이 혈연관계가 없는 ‘딸’이었지만 백씨 일가의 사람들은 백아영을 경계하고 한없이 차갑게 대했지만, 백채영에게는 항상 따뜻한 얼굴을 보였다.“우리가 딸을 잘못 찾았다니요, 채영이가 선우 일가의 아가씨일 줄이야.”박라희는 눈시울을 붉히며 섭섭한 얼굴로 말했다.“엄마, 아빠, 제가 친딸은 아니지만 따뜻한 사랑으로 저를 보살펴주셔서 감사해요.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친부모처럼 생각하고 있을게요.”백채영은 눈물을
백채영의 눈빛은 승리한 공작새가 자랑스럽게 날개를 펼치듯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도발적으로 백아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선우소훈의 손목을 다정하게 잡고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손님방으로 모시고 갈 테니 제 방 옆방에 묵으세요. 괜찮으시죠?”선우소훈은 기분이 너무 좋아 활짝 웃었다. “그래그래, 좋아.”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멀리 걸어갔다.백아영의 방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자물쇠가 잠기는 차가운 소리는 그녀를 이 작고 비좁은 방에 가두었다.축축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그녀의 코 안으로 파고들었다.이 방에는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침대에도 먼지가 한 층 쌓여 있었고 공기는 훨씬 더 축축하고 음산하여 사람이 살 수 없었다.박라희는 분명히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렇게 배정했다. 정말 “신경 써주느라” 수고했다!박라희가 백채영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백아영은 아이러니했다. 똑같이 혈연관계가 없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이 씨 가문의 별장.이성준은 침대에 앉아 휴대폰 화면의 백아영과의 채팅창에 ‘부모님 찾았어?’라고 입력했다.단어들을 다 입력했지만 끝까지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이제 그의 신분은 그런 것들에 대해 신경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한참 지나서 결국 이성준은 단어들을 지우고 휴대폰을 꺼버렸다....침대가 축축하고 차가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백아영은 밤새 동안 벽에 기대어 잠을 잤다.날이 밝기도 전에 깨어난 그녀는 온몸이 쑤셨다. 여전히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더 이상 잠에 들 수가 없었다.그녀가 막 일어나서 움직이려고 할 때, 밖에서 방문이 열렸다. 선우주영이 악의에 찬 표정을 하고 문 앞에 서 있었다.“백아영 너는 이제 끝났어!”그녀는 말하면서 거칠게 백아영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이때 선우소훈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거실에 있었다.선우소훈이 백아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유독 차가웠다. 그녀의 살갗을 벗겨 뼈를 깎고 싶은 듯한 증오심을 가지고서 말이다.백아영은
“그래, 역시 비열하고 교활하면서 탐욕스러운 네 어미와 똑같구나!”백아영은 포대기에 적힌 글귀를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 포대기를 늘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이런 글귀들이 없었다고 백 프로 확신했다!“박라희, 당신은 지금 나를 모함하고 있어요! 난 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없어요. 이건 당신이 방금 쓴 거잖아요!”선우주영은 냉정하게 코웃음을 쳤다. “이 글씨는 딱 봐도 오래된 것 같은데 어떻게 방금 쓴 것일 수가 있어? 백아영, 더는 변명하지 마. 이렇게 증거가 떡하니 있는데, 무슨 말을 해도 다 소용없어!”“할아버지, 백아영이 악의를 품고 고의적으로 사기 친 것이 입증되었어요. 결코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안 돼요. 백아영을 지하실에 가두세요!”선우주영은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백아영이 지하실에 갇히게 되면 이번 생은 망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나올 생각은 못할 것이고 시시각각 그녀에게 마음대로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구승호는 이 상황을 보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백아영에게 완전히 실망했고 눈빛은 매우 차갑게 변했고 혐오로 가득 찼다.허수빈이 낳은 딸도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동정할 가치가 없다.선우소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가문의 주인이고 이미 그 제안에 대해 고려하고 있었다.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백아영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감금은 불법이에요. 당신들 함부로 나를 감금할 수 없어요!”“불법?”선우주영은 그녀를 비웃었다.“선우 일가는 이미 나라를 떠난 지 오래고, 너 하나 처리하는 건 더더욱 쥐도 새도 모르게 할 수 있어. 무슨 법으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백아영, 우리가 너를 죽을 때까지 가두어도 아무도 너를 구할 수 없을 거야!”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정말 그녀를 감금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아마도 도망치지 못하고 이번 생은 끝장 날 것이다.어머니를 다시 볼 기회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녀는 선우주영에게 계속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없었고, 지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