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는 김예훈한테 약간 실망했지만 이 자리에서 그를 폭로하지 않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김예훈 씨, 전에도 당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은 결국 자신의 실력으로 당신이 옳다는 것을 보여줬었죠.”“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자신이 옳다는 걸 당신이 증명할 수 있을지!”윤찬우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정아가 이렇게 말한 이상 나도 한번 기대해 보죠.”“김예훈 씨가 김씨 가문을 손안에 넣는다면 내가 보안 팀장을 할게요. 그때 가서 나한테 꼭 기회를 줘야 해요.”뜻밖에도 그의 말에 김예훈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가 윤창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좋아요, 당신 같은 체격에 보안팀 팀장은 좀 무리인 것 같지만 내가 약속한 이상 꼭 자리를 마련해줄게요.”“출근하는 거 잊지 말아요.”윤창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렸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김예훈을 더 이상 조롱하고 싶지 않았다. 김예훈은 이미 망신을 제대로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떻게 저 정도로 헛소리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상상이 가지 않았다. 참 불쌍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방금 전까지도 김예훈을 짓밟으려고 했던 윤창수는 이제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한테 김예훈은 이미 짓밟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바로 이때, 뒤에서 하얀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인파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 남자를 본 윤창수의 안색이 변했다. 그 남자는 바로 복률을 대신해 BJ 그룹을 장악한 곽진택이었다. 그 또한 선우정아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곽진택은 선우정아 앞으로 걸어가 웃으면서 말했다. “선우정아 씨, 한참 찾았네요. 당신한테 보여줄 것이 있어요.”선우정아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뭔데요?”곽진택은 웃으며 말했다. “이따가 박인철 박 장군님한테 드릴 선물인데요. 엄청 진귀한 것이에요...” “선물하기 전에 정아 씨가 한번 품평해 주셨으면 해서요...”그의 말에 사람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김예훈조차도 궁금했다
곽진택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값비싼 골동품 시계인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죽은 사람의 물건 아닌가?뒤에 서 있던 김예훈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정소현과 선우정아는 무의식적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그들은 거침없이 드러낸 살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곽진택과 유창수는 김예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김예훈의 마음속은 살기로 가득했다. 친구의 물건을 남한테 뺏겼고 그들은 그걸 선물로 내놓았다!이때, 곽진택이 손짓하자 수하 몇 명이 조심스럽게 비밀번호가 있는 가방을 들고 걸어왔다. 선우정아는 다가가서 몇번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파텍 필립의 골동품 시계가 확실해요.”선우정아의 확답을 받고 곽진택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렇게 말하니 안심되네요. 먼저 들어갈 테니 나중에 봐요. 정아 씨.”곽진택은 말을 마치고 수하들과 함께 시계를 챙겨 자리를 떴다. 한편, 정소현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부, 왜 이렇게 화를 내요? 저 물건이 형부와 관계있는 거예요?”김예훈은 차갑게 말했다. “남문호는 내 대학교 때 절친이었어.”정소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형부, 그래도 참아야 해요!”“이건 박인철 박 장군님한테 선물할 시계예요. 우리가 빼앗아 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좀 있다가 찾아올 거니까...”“김예훈 씨, 당신 정말...”선우정아는 한숨을 쉬며 말을 아꼈다. 윤창수는 참지 못하고 피식거리며 말했다. “무슨 수로 가져올 건데요?”“당신이 박 장군이라도 되나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따가, 박인철이 직접 나한테 시계를 건네줄 거예요.”“이봐요, 허세 좀 그만 부려요. 사람 취급은 해줄 테니까.”윤창수는 고개를 저으며 김예훈을 조롱했다. 이 인간 정말, 허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구나. 이런 말까지 다 하다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형부, 가요. 저 사람들
이때, 김연철과 김병욱을 포함해서 김씨 가문의 높은 사람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당연히 김예훈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러나 3년 전 성남시에서 쫓겨난 그가 이렇게 멀쩡히 그들 앞에서 서서 이런 말을 하다니?김씨 가문의 위엄에 도발하는 것인가? 만약 생일 연회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김예훈한테 손을 댔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예훈이 혼자 이곳에 서 있는 일은 엄청 드문 일이었다.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를 처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때, 김예훈은 웃으면서 말했다. “폐인이 된 분이 없으면 다행이고요.”“얼마 전에 군에서 장석호의 의료팀을 변방으로 보내 군사들을 치료하게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돌아오지 못할 것 같던데...”이 말이 나오자 현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김연철과 김병욱 등은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김예훈이 장석호의 일을 알고 있다고?이 일은 김씨 가문에게 창피한 일이었다. 가문의 고위층 사람들과 의료진을 가로챈 사람들 말고는 전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근데 김예훈이 이 일을 알고 있다니?3년 전, 성남에서 쫓겨나서 다시 돌아온 그가 알고 있다고?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던 김병욱마저도 김예훈을 쳐다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설마, 정말 김예훈이 의료진들을 납치해 간 것일까?그럴 리가?그가 군대의 무장 헬기를 사용한다고?군인들을 맘대로 부린다고? 이 모든 것이 김예훈의 짓이라고?있을 수 없는 일이다!만약 3년 전의 그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모든 것은 달라졌다.설마 아직도 자신이 3년 전의 김세자라고 생각하는 것인가?비록 CY그룹의 실력이 대단하기는 하나 그건 단지 재계에서만 그렇다는 걸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문의 부흥은 재계, 정계, 군사 그리고 지하 세계 쪽의 힘이 필요한 법이다.하여 그들은 3년 동안 성남시에 없었던 사람이 이런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당
큰 어르신의 생신 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손님들도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단독 룸에 앉아있는 김연철은 고귀하고 신비해 보였다. 그리고 손님들은 연회장에서 자기만의 자리가 있었다.정민아가 받은 초대장의 자리는 앞쪽 자리가 아니라 가운데 뒷자리였다. 김예훈은 전혀 개의치 않고 정소현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선우정아와 윤창수 등은 가운데 앞쪽 자리에 앉았다.맨 앞쪽의 자리는 거물인 사람들한테 남겨준 자리였다. 큰 어르신의 생신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의 이력은 엄청 화려했다.정계 인사들, 재계 인사들, 군부대 사람들, 그리고 지하 세계의 사람들까지 모두 하나같이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이는 김씨 가문의 인맥과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경기도를 이끄는 최고 가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맨 앞쪽 자리는 모두 비어있었다. 이건 거물급 게스트들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제일 마지막 나타나는 법이었다. 잠시 후, 톱스타 양하나, 김동민 등 연예인들이 무대에 올라와 공연했다. 그들의 공연으로 연회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내, 김연철이 직접 무대에 올라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저희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백 세 잔치에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큰 어르신은 북적북적한 걸 좋아하시지만 연세가 있으신지라 이 자리에 모시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을 대신해 제가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잘 드시고 즐기다가 가세요!”김연철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부터 이번 연회에 참석하신 특급 게스트를 모시겠습니다...”“이분들은 모두 이 김연철과 막역한 사이예요. 지금 바로 모시겠습니다...”“윤씨 가문의 윤해진 씨!”“장씨 가문의 장철웅 씨!”“경기도의 공문철 씨!”“성남시의 양정국 씨!”“…”김연철이 거물급 게스트들을 일일이 말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씨 가문의 인맥은 정말로 엄청났다!이 사람들은 너무 유명한 사람들
거물급 게스트들은 차례대로 입장하여 맨 앞쪽 자리에 앉았고 이내 앞쪽 자리는 거의 만석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가운데 자리가 하나 비어있었다. 이전에 이런 자리에서 그곳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바로 전설 속의 김세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오늘 그 자리는 아마도 경기도 부대 4대 전신의 우두머리인 그자가 앉게 될 것이다.그자는 바로 경기도에서 일인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박인철 장군이다!박인철은 장군이긴 하지만 사실상 그 권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김연철은 사람들의 기대에 찬 눈빛을 쳐다보며 웃었다. “여러분, 다음은 저희 경기도 4대 전신의 우두머리이자 당도 부대의 수령 박인철 장군님을 열렬한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짝짝짝-”연회장은 엄청난 박수 소리로 들끓었다.박인철이 정말 이곳에 왔다!경기도 부대에서 그의 지위는 너무 높다!당도 부대의 실력은 너무 강하다!그가 이번 연회에 참석함으로써 김씨 가문의 지위는 더욱 견고해졌고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박인철은 김병욱과 김만태 두 사람의 안내하에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박인철은 경기도 부대의 4대 전신 우두머리로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연회장에 있는 사람 중 아마 박인철을 만난 적이 있는 정소현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이때, 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 “인철 씨의 분위기가 남다르네. 3년 동안 헛수고는 하지 않았어.”이 순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인철은 군복을 입고 걸어왔다.그의 허리에는 칼을 꽂고 있었고 그 기세가 엄청났다. 전에도 이런 자리에 장관이 온 적은 있었다. 유지하도 경기도 부대의 일원이지만 그는 사복을 입고 왔다. 이런 연회에 참석하면 꺼리게 되어 다들 보통 개인의 신분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군복을 입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근데 박인
사람들의 환호 속에 곽진택은 두 손으로 선물 박스를 들고 공손하게 박인철을 향해 걸어갔다. 김연철이 소개했다. “이건 박 장군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파텍 필립의 한정판 골동품 스포츠 시계입니다.”“이 시계는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전 세계에 딱 하나 있는 값비싼 물건입니다!”“저희 김씨 가문에서는 이건 박 장군님의 신분에 어울리는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박 장군님,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한테 다 선물을 드릴 겁니다.”“이건 경기도의 룰이자 저희 김씨 가문의 룰이기도 하며 이번 백 세 잔치를 연 이유이기도 합니다.”“이건 다른 것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약속 드립니다. 장군님께서 이것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절대 이상한 소문이 돌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기념품이라고 생각하시죠...”김씨 가문에서는 박인철한테 성의를 다 보였다. 경기도에 이런 룰이 있든 없든 김연철이 이 말을 한 이상 그가 이 값비싼 물건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수군댈 사람은 없었다!“열어!”김연철이 명을 내리자 곽진택은 선물 박스를 열었고 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계는 보기에 평범해 보였고 심지어 조금 낡아 보였다. 그러나 시계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은 이것이 값비싼 물건이라는 걸 설명해 줬다. 골동품 시계는 정교하다고 값이 비싼 것도 아니고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고 해서 값이 비싼 것도 아니었다. 반면, 극소수의 양으로 생산된 한정판이야말로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파텍 필립은 소장할 가치가 있는 명품 시계였다. 곽진택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박인철 앞으로 가져갔다. 이 순간이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박인철은 거절하지 않고 손을 뻗어 선물을 받았다. “이건...”연회장의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오늘부터 박인철은 김씨 가문의 인맥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김씨 가문은 이제 경기도 최고 가문이라는 입지를 더 굳게 다지게 되었다. 김
김연철은 자신의 아들이 당도 부대의 장군 박인철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듣고 많이 기뻐했다. 앞으로 자신의 아들이 당도 부대 장군의 후임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김병욱은 소식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박인철은 김연철의 인맥으로 모신 귀인일 뿐이다.박인철은 김연철의 이름만 부른 것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김연철과 김병욱은 고민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분이 좋아 미칠 지경이었다. 박인철이 김 씨 가문의 일원 누구를 지지하던 상관없다. 김 씨 가문은 앞으로 박인철의 소속이라는 것만 확실해졌다.다른 사람은 김 씨 가문의 권력과 투쟁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그저 돈 많은 재벌의 투정으로 보일 뿐이다.김 씨 사걸이 박 장군의 인정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너무 놀라웠다!김연철은 조금 이성을 되찾고 김예훈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김예훈을 쳐다보는 그이 두 눈에는 증오로 가득 찼다.사실, 김예훈이 김만철을 혼수상태로 만든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이제 와보니 그는 김만철의 동아줄을 잘라버렸다.김만철이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어르신의 생신 연회에 참석했더라면 분명 박 장군의 눈에 들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앞으로 자신의 힘과 세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이번 기회에 눈엣가시 김병욱을 직접 제치고 김 씨 가문의 정권을 잡을 수도 있었다.모두, 김예훈의 잘못이야!김연철은 한숨을 내쉬며 박인철의 앞에 다가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박장군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들이 사고로 지금 병원에 누워있습니다.”박인철은 그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네, 장례식장이 아닌 게 어딥니까. 하하하.”“네?”김 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박인철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어떤 의도로 한 말이지?위로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일까?부대에 오랜 기간 동안 몸을 담은 사람이라 입바른 소리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사실인가 봐.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박인철은 김연철과 김병욱의 안내를 받으며 미리 준비해 둔 자리에 갔다.김연철은 한껏 아부하며 말했다.“박장군님! 제가 특별히 장군님을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장군님 이외에 누구도 이곳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장군님, 앉으세요!”성남시의 부시장인 공문철도 자리를 두 손으로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박인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박인철은 마련된 자리에 앉지도 않고 그저 미간을 찌푸리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사람들은 그의 돌발 행동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김 씨 가문의 가족 인원들은 멍하니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빨리 앉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박인철의 높으신 신분을 생각해서라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3년 전, 그 사람이 김 씨 가문의 정권을 쥐고 있었을 때, 누구도 자신의 가문에 와서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나라의 중요한 의원이 나타나도 마찬가다.김 씨 가문의 가족 인원들은 바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오늘은 가문의 아주 중요한 날이다. 3년 전처럼 성남시의 진정한 실세가 될 수 있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 한다.김병욱은 눈살을 찌푸리고 김연철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연철은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미소를 지었다.“장군님? 장군님의 마음속의 의문을 제가 풀어드릴 수 있을까요?”“방금, 이 자리는 신분이 가장 높고 중요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자리라고 했나요?”박인철은 험상 굳은 표정을 짓고 물었다.김연철은 그의 물음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네. 이 자리는 제일 중요한 손님을 위해 마련한 특별한 자리입니다.”김연철의 대답을 들은 박인철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다면 저는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 옆자리가 바로 저의 자리겠네요.”박인철은 자신이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네? 장군님께서도 앉지 못하는 자리에 감히 누가 앉을 수 있겠습니까? 성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