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와 자원이 정 씨 가문의 그룹의 손에 쥐어져 있는지 몰랐다.정 씨 가문의 그룹은 성남 시에 방금 설립된 그룹이었기 때문이다.CY 그룹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래도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높은 목소리로 축하를 해주는 말들뿐이었다.현장에 있는 정지용과 정가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다음, 우리 정 씨 가문의 도련님께서 단상 뒤에 있는 자리에서 사인을 해주겠습니다!”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책임자는 바로 조금 전 행정부의 부 주임이었다.“음? 정민아 아가씨는요?”부 주임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책임자님 안녕하세요. 민아가 다른 일로 참석하지 못하여 제가 대리 참석했습니다!”정지용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가을도 한편에서 그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네 주임님. 책임자가 밖에서 이미 결과를 선포했습니다. 어차피 프로젝트는 결국 저희 정 씨 가문의 손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누가 사인을 하던 같지 않나요?”부 주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네. 민아 아가씨께서 다른 일로 바쁘시면 대신 서명해 주세요. 틀리게 적지 말아 주세요.”“네네. 알겠습니다 주임님!”정지용은 한껏 격동된 목소리로 계약서를 건네받은뒤 정독하더니 사사삭 하며 정지용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적어 넣었다.“일단 앉으세요. 제가 도장을 가져...”부 주임은 계약서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정지용과 정가을은 서로 마주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지용 오빠, 저는 조금 전까지도 부 주임이 저희더러 사인을 하지 말라고 할까 봐 걱정했어요. 이제 보니 진짜 우리 정가 그룹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그러니 정민아가 아니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빨리 할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죠.”정가을이 정지용을 부추기며 말했다.정지용은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정가을의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처음부터 복현과 손을 잡았다면 지금
CY 그룹.30분의 초조한 기다림 끝에 사무실을 나갔던 부 주임이 다시 돌아왔다.그 시각, 부 주임은 미소 띤 얼굴로 정지용의 손을 잡고 악수하며 말했다.“정 부대표님, 정 대표님에게 전해주세요. 이런 업무는 직접 오실 필요가 없어요. 필요하면 저희에게 전화를 걸어주세요. 제 휴대폰 번호가 등록되어 있을 거예요.”“그리고, 이건 저희가 준비한 작은 성의에요.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부 주임은 자신의 손에 들린 포장이 완벽한 선물 상자를 정지용에게 건넸다.뭐?CY 그룹의 임원이 우리 정 씨 가문 대표에게 선물을 보내준다고?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정지용은 어질어질하게 선물 상자를 받아들고 CY 그룹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도리어 정가을은 한껏 궁금한 표정으로 선물 상자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말했다.“지용 오빠, 여기에 뭐가 들어있는지 우리 열어 봐요.”정지용도 한껏 궁금한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안돼!”“뭐가 무서워요. 선물을 할아버지께 전달해라고 했지 열어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열어보지 않으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요.”정가을이 말했다.정가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정지용은 아름다운 선물 포장을 바로 열어보았다.선물 상자를 열어본 두 사람은 동시에 깜짝 놀랐다.별장!선물은 바로 개인 별장이었다! 하물며 성남 시 변두리에 있는 부자 동네였다.이 별장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성남 시에서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상류층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CY 그룹에서 이렇게 대단한 선물을 보냈을 줄이야.사소한 선물이었다면 정지용과 정가을이 꿀꺽했을 것이다. 하지만 별장은 아마 값어치가 어마어마하겠지?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두 사람은 열쇠를 손에 쥐고 몸을 떨었다.“우리 빨리 할아버지께 전해드리자. 이건 너무 어마어마해...”정지용은 침을 꼴깍 삼켰다.....그 시각, CY 그룹의 꼭대기 사무실.김청미는 표정이 쌀쌀맞은 하은
정 씨 가문.정 씨 가문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예훈과 정민아도 불려 왔다.가문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는 전에 살던 별장이 아니라 부자동네에 있는 새로운 별장이었다.집으로 돌아온 정지용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정 씨 어르신은 빨리 가보자고 부추겼다.별장 내부로 들어선 정 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전형적인 서양식 단독 주택으로 부지 면적이 500평에 육박하며 모두 3층 높이였다.이런 별장은 성남 시에서 대단한 별장은 아니었지만 정 씨 가문의 사람들에게는 과분하기도 했다.눈앞의 별장을 바라보는 정 씨 어르신의 눈에는 욕망으로 가득 찼다.정지용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이 별장 진짜 괜찮죠? 하지만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성남 시 로열패밀리는 모두 백운 정상에 살고 있대요.”“김 씨 가문의 사람들도 그곳에 살고 있어요.”“우리 정 씨 가문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언젠간 저희도 그곳에서 살 수 있을 거예요.”정지용은 한껏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방금 그는 정민아에게 번거로운 일을 찾아 주지 않아고 기본 계약을 체결하고 별장의 일을 보고했다.정 씨 어르신도 깜짝 놀라 정민아에게 숨돌릴 시간도 주지 않았다.한참 후, 정 씨 어르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부 주임이 선물했다고 했지만 이 별장의 가격은 몇백억에 달할 거예요. 그가 선물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아니에요.”“그렇구나. CY 그룹이 진짜 우리 정 씨 가문을 잘 봐주고 있어!”“하지만, 왜 그럴까?”정 씨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민아와 하은혜의 사이를 고민해 보고 정민아가 김세자의 숨겨놓은 여자라는 생각도 했다.하지만 자신도 돈이 있는 사람인지라 돈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숨겨놓은 여자를 왜 보여주는 거지?하지만 이 별장은...그때, 정 씨 어르신의 비서가 황급하게 별장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누군가 선물을 보냈습니다!”비서의 표정은 거의 경악에 가까웠다.그들이 방금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선물을 보
정 씨 어르신의 말을 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들의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정가을이 복 씨 가문의 도련님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들은 질투를 했다.하지만 지금은 말로만 듣던 김세자의 청혼이었다!복 씨 가문이 재벌 가문이라면 김 씨 가문은 로열패밀리였다.소문이 파다한 김세자는 맨땅의 헤딩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혼자의 힘으로 죽어가는 김 씨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경기도의 최고봉에서 한국의 최고 상류층에 도달했다.이런 사람은 모든 여자들의 백마 왕자이자 꿈에서만 그리던 사람이다!그녀들은 자신들의 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중 정민아의 안색만 창백했다.소문에 의하면 자신이 바로 김세자가 숨겨둔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녀도 자신에 관한 소문을 들어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일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김세자와 자신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김세자의 사람이 어마어마한 예물을 보내왔다는 것은 김세자가 점찍어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유부녀였기 때문이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정가을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녀와 복 씨 가문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기에 그녀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정민아는 완전히 기회가 없다.하물며 정소현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그녀는 완전한 제외 대상이다.“저는 그저 집사일 뿐입니다. 세자의 일은 저도 완전히 모릅니다.”김 집사는 모른다는 말만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누구도 그가 김예훈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그가 떠난 후, 정 씨 가문의 사람들은 눈앞의 황금빛으로 도배된 금과 노란색 수표를 쳐다보며 침을 흘렸다.잠시 생각을 해보니 자신이 있는 이 별장도 예물의 일부분이었다.이만큼 한 예물 금액은 경기도에서 아직 들어보지 못한 가격이다!자신의 집 딸이 김세자의 마음에 들었다면 그것은 바로 현대판 신데렐라인 것이다!김 씨 가문은 경기도의 유일한 로열패밀리였기 때문이다!“그래서 CY 그룹에서
정민아에 대한 무책임한 소문이 완전히 사라졌다.그러니 정민아에게도 기회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하하하하. 우리 지용이 말이 맞아. 경쟁상대가 한명 줄어들었어!”“김예훈! 넌 역시 우리 정 씨 가문의 제일 좋은 사위야!”“고마워. 내가 정 씨 가문을 대표로 고맙다는 인사를 할게. 누가 너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내가 나서줄게!”김예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가 부탁하지 않은 일이고, 하은혜가 혼자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김 씨 가문에서 자신의 동의를 거치치 않고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김병욱?그는 인성이 바르고 마음이 깊으며 모든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책사 역할을 해오기 때문에그는 절대 이런 수법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니다.그러면 쌍둥이?아니야, 쌍둥이는 항상 조용해. 김 씨 가문에서 존재감이 아주 미약해.김 씨 사걸 호칭은 사용하고 있지만 김 씨 가문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김병천이다.그렇다면 제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여자.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그 여자.예쁘장한 얼굴이 김예훈의 머리에 스쳤다.그는 그녀가 조금 꺼려졌다.김 씨 가문에서 그가 제일 꺼려 하는 사람은 바로 김청미이다.김청미는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워낙 이상한 짓만 벌이는 사람이었기에 상대방이 자신의 목적을 알아맞히기 힘들게 한다.환심을 사려는 걸까?아니면 단순히 김 씨 가문과 정 씨 가문의 사이를 좁히려고?김예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저히 꿰뚫어 볼 수 없는 사람이다!이 여자 너무 위험해!...“그만해! 이 물건들은 내가 먼저 보관하도록 할게. 김세자가 나타나면 우리 정 씨 가문의 어떤 여식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물어볼게. 확인되면 이 예물들을 그녀에게 줄 것이야.”정 씨 어르신이 호언장담했다.별장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별장이 마음에 들었으니 당분간 이곳에 살아도 괜찮겠지?정 씨 어르신은 제일 먼저 이사 준비를 계획했다.김세자가 청혼을 하는 여식이 대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누구
정군의 안색이 조금 새까맣게 변했다. 그가 가지고 온 큰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딸의 기본협정은 다른 사람이 체결했다. 지금 다른 정씨 가문의 딸들이 모두 재벌집에 시집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이제 보니 김예훈 이 바보새끼와 민아를 이혼시키는 일을 반드시 서둘러야지. 이 재수없는 놈이 있으면 우리의 처지가 더 비참해질 거야!” 임은숙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정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아? 방금 떠날 때 아버지가 이미 나에게 경고하셨어. 곧 정씨 가문의 경사의 날인데 만약 무슨 불길한 사달이 나면 나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아버지는 민아가 나설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민아가 이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임은숙은 정군의 뺨을 한 대 때리고 매섭게 말했다. "정군,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대로 할 거야? 조금이라도 자기 주관이 있으면 안 돼?" "먼저는 복세자, 그 다음은 김세자!" "만약 우리 딸이 그 바보에게 시집가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게 우리 것일 수도 있었는데!" "이제 우리 딸은 아무런 이득도 없이, 고생해서 얻은 것까지 모두 남에게 넘겨줘야 돼!" "이게 공평해?" 정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불공평하다는 걸 알아. 근데…" "근데 뭐. 이 일이 잠잠해지면 민아와 그 바보를 반드시 이혼시켜야 해. 이번에는 더 이상 질질 끌게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임은숙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전에 자신이 너무 마음이 약했다고 생각했다. 늘 이혼하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졌으며 반드시 그들을 이혼시킬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딸이 김세자와 결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경기도의 끝판왕이다! 진정한 최고의 가문이다! 딸이 김세자에게 시집가게 된다면 자신은 진정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최상위권에 들어갈 수 있다. 그
30분 정도 기다린 후에야 김예훈은 문을 열고 들어갔으며 손에 고기와 야채를 조금 들고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방금 제가 전통시장을 지나다가 세일하는 것을 봤어요. 우리 저녁에 맛있는 거 해먹어요." 정민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하지만 임은숙과 정군의 눈빛은 매우 이상했으며 지금 김예훈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 이상 혐오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이 아니었다. 더 많은 것은 절대적인 실망이었고, 어떤 일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정민아가 이혼하기 싫으면 그녀의 뜻대로 내버려 두기로 하고 어차피 그들도 포기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이미 정소현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 다음날, 정민아가 회사로 출근할 때 김예훈도 함께 외출했다. 떠나기 전에 임은숙이 당부했다. "민아야, 이틀 후면 추석 연휴인데 네 동생이 여기에 와서 학교 다닌지 얼마되지 않고, 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적응이 되었는지 모르겠어." "그때 가서 네 동생을 집으로 데려와." 임은숙은 이제 완전히 내려놓았다. 큰딸이 아무 소용없으니 막내딸을 키우면 되지. 막내딸만 잘 키울 수 있다면 이번에는 꼭 돈 많은 사위를 찾아야 한다. "알았어, 엄마." 정민아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사실 요 며칠 그녀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정씨 회사의 모든 업무를 성남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회사 건물의 부지 선정도 완료되었다. CY그룹 쪽에서는 가끔 사람을 보내 시찰하는데 매번 태도가 아주 좋은 것으로 김세자의 관심과 인정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민아는 더욱 소외되었다. 원래 정씨 어르신은 그녀에게 한가한 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예 회사의 후방 지원 부서에서 일하게 했다. 이 부서는 듣기만 좋았지 사실 하루 종일 할 일이 없고, 돈도 권리도 없다. 하지만 정민아는 따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따져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버티고 있었다. 김예훈은 이 모든 것을 눈여겨보면서도 아무 말
한참 골동품 롤렉스를 만지작거리다가 김예훈은 고개를 들고 담담한 눈빛으로 김청미를 흘겨보고 말했다. "너 이렇게 대놓고 나를 만나고 김병욱이 알면 너를 죽여버릴까 봐 두렵지 않아?" "이렇게 귀여운 동생이 아까워서 손을 댈 수 있겠어?" 김청미가 방긋 웃었다. "귀여워?" 김예훈의 입가에 비아냥거리는 웃음이 떠올랐다. 눈앞의 이 여자는 계략적인 여자, 팜므 파탈, 냉혈한 미인, 가식적인 여자 등의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어도 유독 귀엽다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김예훈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전혀 부인하지 않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무기일 뿐만 아니라 흉기이기도 한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해칠 수 있는 흉기이다. "내가 귀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왜 그때 나를 김씨 가문으로 데려 왔어?" 김청미는 담백한 말투로 옛날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김씨 가문으로 데리고 왔을 때, 겨우 여덟 살이었어. 여덟 살 때 길가에서 주운 세 살짜리 어린 소녀가 십여 년 후에 하마터면 내 목숨을 빼앗아갈 줄 어떻게 알았겠어?"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나도 후회는 안 해.” "과거의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심지어 자부심이 강해서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 그리고 다른 세 놈도 나에게 인생수업을 가르쳐줬어. 그런 점에서 너희들에게 감사하지." 김예훈의 입가에 담담한 웃음이 가득했으며 마치 3년 전 김씨 가문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웃음거리 같았다. "오빠, 3년 전에 일어난 일이 오빠에게 매우 불공평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건 할머니의 결정이고 우리는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야." 김청미가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래? 김청미가 언제 일을 저질러 놓고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어?” 김예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정해. 늙은이의 명령이 없어도 너희들은 나에게 손을 댔을 거야." "나의 존재가 너희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니까." "내가 김씨 가문에 있는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