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어르신은 은근히 안색이 안 좋아 보였고 그는 지금 하은혜를 응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비서님, 당신……지금 무슨 뜻인가요?" 하은혜는 가볍게 웃으며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지용에게 멈추었다. 이때 정지용은 온몸을 살짝 떨었으며 안색이 순간 나빠지기 시작했다. "정 대표님께서 계약서를 자세히 보셨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꼭 그런 거 아닌 것 같네요. 아마 대표님께서 보신 거는 누군가 일부러 수정한 계약서일 거예요.” "정 대표님이 계약서의 진짜 내용을 모르실테니 제가 오늘 특별히 남해시 변호사협회 여 회장님을 모시고 계약 내용과 위반의 결과에 대해 설명해 드리도록 할게요." 하은혜는 말을 마치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잠시 후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서류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이 사람을 보는 순간 정씨 어르신은 머리가 '띵'하는 것을 느꼈다. 이분은 남해시 변호사협회의 여 회장님이며 신분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보통 가족이나 기업은 그를 한 번 만나기도 힘들고, 평소에는 더할 나위 없이 고상했다. 그런데 오늘은 하은혜의 수행원처럼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정 대표님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하은혜는 담담하게 말하고는 거리낌없이 한쪽에 서고 동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김예훈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했다. 하은혜의 지시를 받은 여 회장님은 고개를 들어 로비를 한 바퀴 둘러본 뒤에 정씨 어르신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 대표님, 오랜만이예요.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이 큰일 저지를 줄 몰랐어요." "무슨 큰일인데요?"정씨 어르신이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당시 당신들이 YE 투자 회사와 투자 계약을 체결한 계약서 사본이예요. 일단 한번 보세요." 여 회장님이 서류 한 장을 꺼내서 정씨 어르신에게 건네주었다. 정씨 어르신은 의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류를 펼쳐 몇 번을 훑어보고 잠시 후 안색이 바뀌며 말했다. "말도 안 돼요! 우
뭐라고? 이 부지의 소유권이 YE 투자 회사에게 넘어간 것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5,50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둥그레졌고 여 회장님을 바라보는 시선도 멍해졌다. “말도 안 돼요! 그럴 리가요! 제가 며칠 전에 계약서를 꺼내 보았거든요! 그런 거 아니에요! 지용아, 얼른 계약서 꺼내 보여줘!" 정씨 어르신은 지금 식은땀을 흘리면서 만약 진작에 이 조항들을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경솔하게 쇼핑 센터 프로젝트를 매각하겠는가? "할아버지…" 정지용은 난처한 얼굴이었으며 전에 정씨 어르신에게 계약서를 보여줬지만, 그 계약서는 애초에 정민아가 체결한 계약서가 아니라 그가 조작한 것이다. 그는 성남에 너무 가고 싶었고 또 성남의 프로젝트가 반드시 그의 손에 들어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남해시에서 정민아에게 구속당하는 느낌에 지쳐서 성남에 가서 실력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가짜 계약서를 만들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는 특별히 YE 투자 회사의 임원 몇 명을 찾아가 조용히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원래 정지용의 계획에 따르면, YE 투자 회사는 정씨 가문과 사이가 틀어질 일이 없을 것이며 정씨 가문이 투자금을 돌려주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계획을 했어도 YE 투자 회사의 그 몇 명의 임원의 말이 아무 힘이 없었다고? 하은혜가 뜻밖에도 직접 찾아왔다. 테이블을 엎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정지용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말했다. "하 비서님, 혹시 우리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 거 아니에요? 전에 내가 이 일 때문에 특별히 YE 투자 회사를 찾아가서 임원들과 얘기를 해봤는데 다들 동의했..." 하은혜는 바로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정씨 가문에서는 대표 말이 힘이 있어요 임원들의 말이 힘이 있어요?" "당연히 대표 말이죠…." 정지용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우리도 똑 같아요. 우리 대표님이 말씀하셨어요. 그의 YE 투자 회사에서의 첫 번째 프로젝트에 누군가
여 회장이 떠나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정씨 어르신의 두 눈은 넋을 잃고 그의 왕좌 위에 털썩 주저앉아 안색이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정씨 가문이 모든 자산을 팔아도 5,500억을 모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이 계약서가 어떻게 가짜일 수 있죠? 도대체 무슨 일이죠?” “......” 정씨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의견이 분분했으며 그리고 정지용에게 시선을 돌리며 원망하고 분노했다. 만약 이번에 정씨 가문이 부도나서 그들 모두 길거리에 나가서 거지가 된다면 모든 것이 정지용의 책임이다! 정씨 어르신은 심호흡을 하고 겨우 진정시킨 후, 떨리는 손을 내밀며 정지용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용아...... 말해봐...... 너...... 너......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이런 짓을 하면 우리 정씨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걸 몰라?" 정지용은 입을 벌리고 아예 말을 못했다. 승리하면 왕이 되고, 패하면 도적이 된다는 게 무엇인가? 바로 이런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어떻게 책임을 떠넘겨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한쪽에 있던 정민아는 이 장면을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할아버지, 지용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 그랬을 거예요. 지용도 가족의 이익을 해치는 일을 일부러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결국 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당시 계약 체결의 문제예요!" 정가을은 지금 정지용과 이해관계가 있어서 당연히 그의 편을 들어줬다. "애초에 이 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지용이 아니라 정민아예요! 계약을 체결할 때 이 안에 이렇게 큰 함정이 있다는 걸 어떻게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할아버지, 저는 지금 정민아가 YE 투자회사와 손잡고 우리 정씨 가문의 자산을 노리고 있다고 의심해요!" 이 말이 나오자 그 자리에 있던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또 하나 둘씩 정가을을 보고, 그리고 정민아를 쳐다보았다.
"체면을 버리다니요! 말할 줄 모르면 하지 마요. 말을 안 한다고 당신을 벙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요! 당신은 데릴 사위뿐인데 누가 당신에게 우리 정씨 가문의 가족회의에서 나불거리라고 자격을 줬어요?" 정가을은 괴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예훈은 차갑게 말했다. "이런 핑계도 댈 수 있는데 왜 남의 입에 오르내릴까 봐 두려워해요? 애초에 계약서를 따내지 못했을 때 누가 울고불고 하면서 우리 와이프한테 계약서 받아오라고 했는지 모르겠네요.” "결국 지금 본인이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놓고 자신을 기만하여 큰 잘못을 저지르고 이런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네요!?" "두 분이 좀 체면을 챙길 수 없나요? 이런 말까지 하다니, 할아버지가 바보인 줄 알아요? 아니면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려서 이래도 당신들을 믿는다고 생각해요?” 상석에 앉아 있던 정씨 어르신이 눈가를 한 번 떨었다. 나는 믿어! 내 친손자야! 내가 왜 믿지 않겠어? 그런데 문제는 이 데릴 사위가 이런 말까지 했는데 지금 자신이 이 시점에서 믿는다고 인정하면 멍청하게 보이지 않겠는가? 정씨 어르신은 심호흡을 하고 억지로 진정한 후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고 호통을 쳤다. "그만해! 지금은 우리 정씨 가문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시기인데 여기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오늘 여기서 내가 한 마디 할게. 이 일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이든, 도대체 누가 우리 정씨 가문을 해치든, 더 이상 책임을 묻지 마라!" "이 생사가 걸린 시점에! 우리 정씨 가문이 해야 할 일은 손을 잡고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내는 거야!" "여기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야! 다들 어른으로서 경중과 완급도 구분할 줄 몰라?" 정씨 어르신은 정당하고 엄숙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정지용 대신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말 중에 한 가지는 맞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계속 책임을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해결방법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김예훈이 제일 먼저 일어서서 큰소리로 반대했다. 또 이 데릴 사위, 정말 재수가 없어! 어떻게 매사에 끼어드는 거야!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원수를 진 사람처럼 김예훈을 노려보았다. 만약 정지용의 실패를 보고 교훈으로 삼아 김예훈에게 이마가 터질까봐 무섭지 않았다면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김예훈을 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정씨 어르신이 차갑게 김예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김예훈이 웃었다. "할아버지, 가시나무를 지고 죄를 청한다는 고사를 아세요?" "그래서?"정씨 어르신이 눈썹을 찌푸렸다. “제 생각에는 YE 투자 회사의 대표도 정말 이 정도의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예요. YE 투자 회사의 입장에서 가장 화난 것은 계약을 취소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 때문일 거예요.” 김예훈이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정씨 어르신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럼 네 말대로 YE 투자 회사가 마음에 두는 것이 뭐야?" “체면요.” 김예훈은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YE 투자 회사가 돈이 부족해요? 전혀 부족하지 않아요!" "그리고 YE 투자 회사의 배후에 김씨 가문이 있는데 이런 기업이 잔재주를 피우며 우리 정씨 가문의 가업을 빼앗겠어요?" "그런데 우리 정씨 가문은 끊임없이 그들을 도발하고, 그들의 체면을 종이처럼 구겼어요. 솔직히말해서 당신들이 YE 투자 회사의 대표라면 화가 나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듣자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잠시 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그러니까 할아버지, 이 일에 관해서 가장 해야 할 일은 병의 증상에 따라 투약하는 거죠! YE 투자 회사에 체면을 돌려준 후 다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민아가 가서 부탁해도 소용없어요.” 김예훈이 천천히 말했다. "그럼 어떻게 YE 투자 회사에게 체면을 돌려주는 거야?"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였으며 정씨 어르
김예훈은 태연하게 답했다. “소용이 있을 겁니다.”“소용이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 정씨 일가의 입장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전 YE 투자 회사의 대표가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씨 일가의 부 대표가 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면 화가 풀릴 거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그렇게 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동철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우리 정씨 일가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야.”“회장님,” 김예훈은 노파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YE 투자 회사에 저희 쪽 태도를 보여줘야 합니다!”“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저희한테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단 며칠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데 좋은 일이 아닙니까?”“게다가, 선우 가문의 골동품 감정회에서 무릎을 꿇었던 사람이 있는데 이번에 또 무릎을 꿇는 건 일도 아니지요.”정동철은 깊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망설였다.“물론, 정씨 일가의 회장님께서 직접 나서신다면 더 좋을 것 없겠지요.” 김예훈도 옆에서 부추기기 시작했다.“만약 제가 나서서 소용이 있다면 전 두말없이 YE 투자 회사의 문 앞에 가서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하지만 정씨 일가의 데릴사위인 제가 정씨 일가를 대표해 무릎을 꿇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김예훈은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정동철의 안색이 많이 어두워졌다.이 나이를 먹고 무릎을 꿇으라니? 게다가 그는 누구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새파랗게 젊은 친구한테 무릎을 꿇으라면 차라리 목을 매고 죽는 게 나을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김예훈의 말이 맞다는 것이다.정씨 일가의 태도를 보여주려면 어느 정도 신분이 있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한다.아무나 찾아가서 사과한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오히려 YE 투자 회사에서는 정씨 일가의 도발인 줄 알고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생각을 마친 정동철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 일은 이렇게 결정하지!”“지용, 네가 우리
정민아는 한숨을 쉬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도 어디까지나 정씨 일가의 사람이기 때문에 정씨 일가가 잘되기를 바랐다.지금은 정씨 일가한테 생사존망이 달린 중요한 시기이다. 정지용도 사과했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기에 그녀도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김예훈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 기회에 정민아가 정씨 일가에서 더 큰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그녀를 대신해 권력을 쟁취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정민아의 얼굴이 평온해진 것을 보고 정동철이 일어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용아, 일이 결정된 이상 질질 끌지 말고 바로 오후에 해결하러 가거라. 후한 선물을 준비해가는 것을 잊지 말고.”정지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YE 투자 회사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정지용은 안색이 바뀌더니 정가을을 쳐다보았다.앞으로 정씨 일가에서 신분이 가장 고귀할 이 여자는 지금 이 순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그녀는 아직 복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지 않았고 복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이럴 때, 그녀는 멍청하게 나서지 않을 것이다.만약 할아버지께서 자신한테 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어떡할 것인가?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복씨 가문으로 시집을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정가을은 지금 이 순간 자기 몸을 엄청 사리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사고가 있어서는 안 된다.일이 결정되고 정동철이 손짓하자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리를 떴다.사람들이 떠난 후, 정지용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정동철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할아버지, 정말 제가 가야 하나요? 저...”“가야 해, 그것도 당당하게 가야 한다.” 정동철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번 일은 네가 실수한 거야, 정민아한테 덮어씌울 생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하지만 이번 일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 그런 데 신경 쓸 때가 아니야.”“네가 가서 무릎을 꿇는 게 너로서는 억울
정진 별장을 나서는 정민아의 표정이 다소 가라앉아있다.김예훈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물었다. “여보, 억울해?”“억울하냐고?” 정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난 정씨 일가의 사람이야, 그 사람들이 얼마나 형편없고 꼴불견일지라도 나한테는 가족이야.”“난 단지 아쉬울 뿐이야, 왜 멀쩡한 쇼핑센터 프로젝트를 접고 성남으로 가려고 하는지!”“쇼핑센터 프로젝트가 잘 되면 우리 정씨 일가가 입지를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정씨 일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남해시의 일류 가문으로 거듭날 수 있어. 근데 다들 왜 이렇게 욕심이 과한지 모르겠어.”정민아는 마음이 괴로웠다. 쇼핑센트 프로젝트를 위해 그녀는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이런 결과가 있게 되어 그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불가능한 일이다.“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 김예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정씨 일가가 성남으로 가는 일은 배후에서 누군가 손을 쓰고 있다는 걸 김예훈은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지금의 이익으로 정씨 일가를 움직일 수 없다면 상대방은 틀림없이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얻는 이익이 많을수록 정씨 일가는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고 더욱 비참해지고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예훈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현재로서는 쇼핑센터 프로젝트를 매각한다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야.” 정민아가 한숨을 쉬었다.“YE 투자 회사의 인맥이면 지금 상황에서 우리한테 대출해 줄 은행도 없을 거고.”“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은 쇼핑센터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면서 성남 신도시 프로젝트를 가져와 YE 투자 회사와 손을 잡는 것이야.”정민아가 당당하게 말했다.“성남으로 가는 건 옳은 선택이야, 하지만 복씨 가문은 너무 세력이 강해. 이번에는 명의상 우리 쪽이 주도권을 차지했다고 하지만...”“그러나 복씨 가문에서 우리
아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동태원은 90퍼센트의 힘을 사용하기까지 했다.그런데 아무리 힘을 실어봤자 오히려 자기 손바닥만 점점 찢어지듯이 아파져 왔다.“대단하네요.”동태원은 적당히 물러나서 더 이상 계속하지 않았다.김예훈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머리가 뛰어난 것도 모자라 실력과 마음가짐도 대단하시네요. 이번에 그 쪽한테 당한 것이 하나도 억울하지 않네요.”이때 동태원의 손짓 하나에 집사 한명이 테이블과 의자를 두 사람 옆으로 가져왔다.김예훈한테 자리에 앉으라면서 직접 차를 한 잔 우려주었다. 이어 집사가 정교한 다과를 차례로 가져왔다.동하임은 아버지가 김예훈을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 몰랐는지 의아하기만 했다.복수극이 열릴 줄 알았는데 마치 갑자기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동태원은 보이차를 마시면서 이상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끗 보더니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하임아, 내가 김 도련님을 죽여버리지 않고 식사 초대를 해서 이상해?”동하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이에 동태원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원래부터 김 도련님께 식사를 초대하고 싶었어. 이곳까지 모신 이유는 나에게 중시 받을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해 보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럴 자격이 없더라도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아서 어젯밤 일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똑같이 식사를 초대했을 거야. 그런데 그때는 그저 순수한 저녁 식사 한 끼에 불과한 거지.”동태원의 의미가 담긴 말에 동하림은 생각에 잠겼다.그러다 이제 막 보석으로 풀려난 김예훈이 자신의 아빠에게 이렇게 중시 받고 있을 줄 몰랐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김예훈은 동태원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도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이 생각 많은 늙은 여우한테 함부로 말을 걸었다가 낭패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김예훈이 아무말도 하지 않자, 동태원이 계속해서 말했다.“하임아, 내가 김 도련님께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동하임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어젯
샤샤샥!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동하임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김예훈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보고 싶은지 가소로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그런데 결국 실망할 줄 몰랐다.김예훈은 뒷짐 쥔채 제자리에 서서 나뭇가지들이 몸을 스쳐 지나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자기 실력을 뽐내고 있는 동태원을 쳐다보았다.‘대단한데?’김예훈이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동태원이 선글라스를 벗어 와이프한테 건넸다.그러고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젊은 나이에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대단한데요? 제가 어젯밤 당신한테 호되게 당한 것도 이유가 있었네요. 당신 같은 사람 손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동태원은 김예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아까는 김예훈을 테스트하기보다 겁을 주면 놀라서 오줌을 지릴 정도의 사람인지 보고싶었다.그런데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모습에 다시 보게 되었다.진주·밀양 젊은 층 중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이때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과찬입니다. 그런데 왜 저 때문에 호되게 당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젯밤 제가 경찰에 신고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시민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을 때 경찰에 신고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잖아요.”동태원은 멈칫하더니 박장대소를 지었다.“역시 재밌는 사람이네요. 맞는 말이죠. 경찰에 신고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자 권력이죠. 그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고요. 진주 1인자로서 큰 권력을 쥐고 있는 한편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에요.”동태원의 시원시원한 말투에 김예훈도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때 동태원이 앞으로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면서 말했다.“자, 정식으로 인사하죠. 저는 진주 1인자인 동태원이라고 해요.”김예훈도 배시시 웃으면서 악수했다.“그러면 저도 제 자기소개를 하죠. 저는 용문당 회
허유주가 김예훈을 데리고 아침 먹으러 가려고 할때, 구룡성 경찰서에서 어떤 몸매가 좋은 여자가 걸어왔다.그 여자는 바로 동하임이었다.동하임은 허유주와 함께 웃고 떠드는 김예훈을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쓰레기 같은 자식.”이어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김예훈의 옆으로 다가갔다.동시에 그녀에게 시선이 향한 추하린과 허유주는 진주 1인자의 딸인 그녀가 왜 갑자기 찾아왔는지 이해되지 않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설마 번복해서 김 도련님을 다시 구속하려는 건 아니겠지?’다시 경찰서로 들어간다고 해도 아무 상관 없는 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쳐다보았다.이대로 잡힌다고 해도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동하임이 한참동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더니 말했다.“김 도련님,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다 같은 편인데 하실 말씀이 있으면 여기서 하시죠.”동하임은 잠깐 침묵하더니 겨우 한마디 꺼냈다.“저희 아빠가 김 도련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침 식사 함께하는 거 어떠세요?”동태원이 주동적으로 만나자고 할 줄 몰랐는지 김예훈은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은 이를 거절하지 않고 추하린더러 허유주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하고는 동하임의 포르쉐 911차에 올라탔다....반 시간 뒤, 태산 뒤쪽에 있는 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드넓은 이 별장에서는 멀리 있는 남태평양까지 보였다.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면서 소금 짠 내가 풍기기도 했다.하와이풍의 반바지와 반소매 티를 입은 진주 1인자 동태원은 손에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에서 낚시하고 있었다.동하임과 함께 별장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동태원이 잡은 물고기를 들어올렸다.그의 옆에 있던 여인은 낚싯바늘을 떼어내고 다시 물고기를 방생했다.이 모습을 보고있던 김예훈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이런 생활은 그가 꿈꾸던 노년 생활이었기 때문이다.그때되면 과연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정민아? 하은혜? 우현아? 아니면 모두 다?김예훈
10분 뒤, 구룡성 경찰서를 벗어난 김예훈은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홍성파 부하들을 발견했다.김예훈이 경찰서를 힐끔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진주 1인자라는 사람이 재밌군요. 상대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라고 해도 절대 봐주지 않네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추하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래서 안동 김씨 가문, 일본 야마구치파, 홍성파에서 얼마나 벼르고 있는지 몰라요. 진주 1인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비 거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진주 1인자라는 그분 성함이 뭐죠?”추하린이 답했다.“동태원이요.”“동태원 씨가 진주 1인자 자리에 앉은 걸 보면 능력이 대단할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 그 사람이 그 위치에 앉아있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안동 김씨 가문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요.”김예훈은 추하린의 어깨를 툭툭 치려다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가 생각나 다시 손을 거뒀다.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진주 1인자인 동태원 씨랑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줘요. 그분도 저를 만나고 싶어 할 거예요.”김예훈이 손을 툭툭 털면서 이곳을 떠나려고 할때, 주차장에 있던 토요타 알파드 차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예훈 오빠.”온밤 여기서 기다리면서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한 허유주는 바로 김예훈에게 안기려고 했다.“나왔어? 정말 다행이야.”어젯밤 그녀는 김예훈이 홍성파와 일본 야마구치파한테 짓밟힐까 봐 걱정이었다.진주에 깊은 뿌리를 박은 홍성파는 진주 기관 사람들과 친했으니 말이다.김예훈이 무사히 풀려난 것만으로도 놀라울 정도였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라이언 킹의 뺨까지 때렸는데 김예훈이 보석되고 진세은이 갖힐 줄 몰랐다.김예훈은 자기를 와락 끌어안은 허유주를 떼어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난 다른 사람을 도와준 착한 시민일 뿐이야. 나까지 구속하면 진주 법도가 신뢰를 잃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네가 날 도와주고 있는데 누가 감히 날 건드리
추하린이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경찰에 신고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 이상 공평하게 처리해야만 했다.뚜벅뚜벅.두 사람이 대화를 마쳤을 때, 제복을 입은 한 경찰이 걸어들어왔다.짧은 머리에 혼혈인으로 보이는 그녀는 높은 콧대에 움푹 파인 두 눈을 하고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있는 명찰에는 동하임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그녀는 김예훈을 한참동안 쳐다보고는 추하린을 힐끔 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추하린 씨, 이 사람 보석으로 풀려났어요. 그런데 보름 동안은 진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언제든 저희 연락을 기다리셔야 해요.”추하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동하임 씨, 걱정하지 마세요. 김 도련님은 피해자예요. 누구를 죄인으로 몰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잘 협조할 거예요. 저희한테는 인증이면 인증, 물증이면 물증, 없는 것이 없어요.”이 말에 동하임은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에 대해 불만이 많은지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자료 하나를 던져주었다.“여기에 사인하고 당장 꺼져요.”펜을 든 김예훈은 급히 사인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림을 쳐다보았다.“저희 처음 본 사이인 것 같은데 제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을까요?”동하임은 콧방귀만 뀔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추하린이 말했다.“김 도련님께서는 잘못한 거 없어요. 그런데 진주 1인자인 동하임 씨 아버님을 건드린 건 맞죠.”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김예훈은 그제야 동하임이 왜 자신에 대해 불만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어제저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진주 1인자를 궁지로 몰고 갔으니 말이다.표정이 차갑기만 만 동하임은 사실 감정을 잘 숨기고 있었다.김예훈이 펜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동하임 씨, 제가 보석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동하임이 김예훈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김현민 씨 일행이 모든 일을 도모한 사실은 증거 부족으로 전부 석방되었어요. 야마구치파는 죄가 극악
10분 뒤, 전신 무장한 경찰들이 닥쳐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체포했다.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열몇 명의 기자들도 피비린내를 맡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오늘, 이 거대한 사건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홍성파와 일본 야마구치파가 연루된 사건이었다.어느 한쪽만 있었다고 해도 뉴스 메인을 차지했을 텐데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진주 경찰은 공과 사를 구분하면서 공평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진주·밀양에서 신분 높은 김현민이라고 해도 도망칠 수 없이 똑같이 조사받아야 했다.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진주 경찰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공정해야 했다.그렇게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구룡성 경찰서에 잡혀가고 말았다.경찰은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을 포함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를 진행했다.김예훈도 구룡성 경찰서에 잡혀가긴 했지만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이번에 일부러 김현민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한 것이다.안동 김씨 가문이 진주·밀양에서 어느정도로 대단한지, 그리고 이곳에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두번째 날 아침, 추하린이 그럴싸한 브런치를 들고 취조실로 들어왔다.추하린은 김예훈에게 브런치를 건네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도련님, 어젯밤 그 전화 한 통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알아요?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께서 화가 난 나머지 진주 1인자인 동태원에게 전화해서 왜 김현민을 구속했냐고 따졌대요.”김예훈이 브런치를 즐기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겁이 났대요?”“얼마나 많은 기자가 지켜보고 있는데 겁이 날 새나 있었겠어요? 계속해서 진주 1인자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추하린이 피식 웃었다.“그저 법대로 진행하는 거라고 답장했대요. 그리고 온밤 구룡성 경찰서를 포위한 홍성파 사람들은 자기 사람을 풀어달라고 하면서 김 도련님을 처리하라고 했대요. 그런데 증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요. 야마구치파가 허유주 씨한테 약을 탄 것만 해도 충
“이런 제기랄!”“지금 김현민 도련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죽고 싶어?”김현민 뒤에 서 있던 남녀들이 김예훈을 차갑게 째려보고 있었다.비록 김예훈이 어마어마한 실력으로 라이언 킹을 뺨 한 대로 죽여버리긴 했지만, 진주·밀양에서 내로라하는 상류 인사들한테는 그저 싸움만 잘하는 사람으로 보였다.김예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들의 힘, 배경과 권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지금은 예전처럼 혼자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었다.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저 대단한 것뿐이었다.김현민은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저까지 건드리게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수장님도 참. 제가 언제 수장님을 건드리겠다고 했나요?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정의로운 분을 제가 왜 건드리겠어요.”9대 국방부 총사령관을 언급할 때 김예훈의 표정은 흥미진진하기만 했다.김현민이 이 타이틀을 이용해서 과연 거들먹거릴지 보고 싶었다.김현민 역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그저 소문일 뿐이에요.”“그래요?”김예훈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김현민은 9대 국방부의 총사령관인 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인하지도 않았다.이 기세를 빌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굳히고 싶은 모양이었다.이대로라면 곧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새로운 수장이 될지도 몰랐다.아니라면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이순간 김예훈은 김현민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김현민은 한참동안 김예훈을 쳐다보다 아무 말 없이 뒤돌아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김예훈이 앞으로 나서서 그의 앞길을 막았다.“김예훈 도련님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나요?”김현민은 김예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이런 순간에 김예훈이 자신한테 무슨 짓을 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아무리 실력이 대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모든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어지지 않는지 정신마저 해이해지는 느낌이었다.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누구도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라이언 킹이 결국 뺨 한 대로 김예훈의 손에 죽을 줄 몰랐다.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진주·밀양을 종횡무진하는 홍성파의 고수가 이렇게 치욕스럽게 죽어버렸으니 말이다.김예훈은 뺨 한 대로 라이언 킹을 죽여버린 것도 모자라 홍성파의 체면마저 짓밟아버렸다.홍성파 부하들은 복수심에 심장이 들끓는 대신 그저 총을 쥐고 있는 손이 무지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어마어마한 한기가 불어와 온몸이 굳어져 눈 하나 깜빡하지도 못했다.“죽여! 죽여버리라고! 라이언 킹 님을 위해 복수해야지!”잠시 후, 그제야 반응한 진세은이 이성을 잃었는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이순간 자기가 인생을 망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사카모토 류이치도 죽고, 라이언 킹도 죽고, 타케이도 살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일련의 사건 때문에 진세은은 거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김예훈이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만 했다.하지만 아쉽게도 홍성파 부하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총구를 김예훈에게 조준하지도 못했다.아까 그 뺨 한 대에 넋을 잃고 말았다.진주·밀양 용전 사람들 역시 김예훈이 이 정도로 대단한 줄 몰랐는지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하고있었다.이순간 그제야 김예훈이 왜 진주·밀양 용전을 접수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김서하를 물리칠 수 있었는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뺨 한 대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부들부들 떨고 있는 홍성파 부하들을 보고 있자니 진세은은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진세은은 총을 빼앗아 김예훈이 있는 곳을 향해 미친듯이 방아쇠를 당겼다.“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피융! 피융! 피융!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알은 김예훈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모조리 그의 발밑에 떨어지고 말았다.김예훈은 서서히 다가가 진세은의 턱을 잡으면서 피식 웃었다.“봐봐. 총을 가
김예훈 뒤에 서 있던 진주·밀양 용전 사람들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총을 꺼내 홍성파 부하들을 겨냥했다.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열세에 처해있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하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이들 역시 속으로는 김예훈이 너무 거들먹거린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홍성파가 용전처럼 도리를 따지고, 룰을 지키는 조직인 줄 아나 봐. 우리 몇 명으로 어떻게 홍성파를 제압하려고 그러는 거지? 말도 안 돼.’투닥투닥.공격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 라이언 킹은 갑자기 표정이 확 변하더니 몸에 지니고 있던 비수 하나를 꺼냈다.라이언 킹은 갑자기 추문성 발밑까지 굴러가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비수를 내밀었다.아무 생각 없는 행동인 것 같았지만 추문성의 요충을 노리고 있었다.파란 불빛을 띠고 있는 비수에 찔리는 순간 추문성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비수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피 냄새가 맡아지기도 했다.일반인이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면 피하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때,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이 동반자살을 택하면서 당도를 내리 찔렀다.만약 라이언 킹이 계속 추문성을 죽이는 것을 택한다면 똑같이 추문성의 당도에 의해 두 동강 날 것이 뻔했다.등골이 오싹해진 라이언 킹이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았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아까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더니. 김예훈 저놈의 말을 듣고 목숨까지 내놓기로 한거야.’추문성이 동반자살을 택한다고 해도 라이언 킹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홍성파 고수로서 매일 아무 걱정 없이 크루즈나 들락거리는 사람이 죽고 싶을 리가 없었다.다음 순간, 라이언 킹은 어쩔 수 없이 노리던 부위를 피해 비수로 추문성의 당도를 막았다.쨍!두 사람은 몸이 굳어져 버리더니 동시에 뒤로 튕겨 나갔다.“풉!”바닥에 떨어진 순간,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해낸 추문성과는 달리 라이언 킹은 피를 꾹 삼키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라이언 킹은 추문성 같은 젊은이를 상대로 양쪽 모두 크게 다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