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눈 밑에 검은 다크서클이 생긴 정민아가 회사로 걸어 들어갔다.그녀가 사무실로 들어가기도 전에, 견후가 사람들을 데리고 쳐들어왔다.그들의 허리에는 하나같이 총이 채워져 있었기에 회사의 경호팀도 쉽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총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사람을 죽일 각오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누가 감히 그들에게 덤비려고 하겠는가! 로열 가든 그룹의 임원들은 이미 어젯밤에 서로 얘기를 끝낸 후였다. 견후를 보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을 표정이었다. “정 대표님, 어젯밤 잘 생각하셨습니까.”견후가 맞은편의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정민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차가운 눈빛의 정민아가 서늘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좋아요, 제가 로열 가든 그룹의 주식을 판다고 해도, 부산 견씨 가문에서 성의를 보여야 할 것 아닙니까?”견후는 놀라서 잠깐 멈칫했다. 그는 정민아가 요구를 받아들일 줄 몰랐다. 그는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요, 정 대표가 이렇게 시원하게 나오는데 내가 가격을 부르죠. 500원입니다.”말을 마친 견후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데구루루 굴러가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채웠다. 그 동전이 정민아의 발 앞에 굴러가자 견후는 또 웃으며 얘기했다. “그리고 오늘 밤, 정 대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요. 성남 호텔의 로얄 스위트 룸에서 기다릴게요. 만약 오지 않는다면... 결과는 알아서 감수해야 할 겁니다.”헉.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이 정도면 로열 가든 그룹을 사러 온 것이 아니라 뺏으러 온 것이었다. 부산 견씨 가문은 너무도 오만했다!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오만함이었다!이때 그들은 대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예전에 부산에서 온 사람들의 배후는 아마도 부산 견씨 가문일 것이다. 저번에 체면이 깎였으니, 이번에는 무조건 그 일을 만회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가가 거의 1조가 되는 회사를 500원에 사겠다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정민아는 깊게
오만하다!강압적이다!잔인하다! 이게 바로 모두가 부산 견씨 가문에 대한 평가였다. 이 자리에 있는 임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벌벌 떨고 있었다. 어젯밤, 다들 부산 견씨 가문의 뜻을 거스른 사람들의 온 가족이 전부 행방불명되었다는 찌라시를 들었다. 임원들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툭. 견후의 비서가 계약서를 정민아 앞으로 던지며 덤덤하게 얘기했다. “우리 도련님의 뜻은 알아들으셨겠죠? 돈을 챙기시고 계약서에 사인하세요. 그리고 돌아가 깨끗하게 씻고 알아서 찾아오세요, 알겠습니까? 또, 만약 정 대표님이 사인하지 않는다면 오늘 밤, 우리 도련님께서 정군 님, 임은숙 님, 그리고 정소현 양까지 초대해 같이 저녁을 대접하려고 하니...”이런 말을 하는 비서의 표정은 매우 매너 있어 보였지만 뱉어내는 말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가족들이 그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게다가 정소현은 아직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인데...그 생각에 정민아는 진짜 무서워졌다. “당신...”정민아는 견후를 가리키며 욕도 뱉지 못했다. 그녀는 견후가 자기 가족을 건드릴까 봐 무서웠다. 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 앞에서, 정민아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정 대표님,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입니다. 포기하시죠.”“그래요, 정 대표님. 견후 선생님께서 이미 우리를 많이 봐주신 겁니다. 들어보니 다른 곳에서는 바로 칼과 총을 꺼내 들었다고 해요!”“맞아요, 정 대표님. 더 이상 억지로 버티려고 하지 마세요.”로열 가든 그룹의 임원들은 낮은 목소리로 정민아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주식을 파는 것은 그저 상사가 바뀌는 격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견후가 그들에게 더욱 높은 월급을 줄지도 모른다. 전에 임씨 부자를 배신했던 것처럼, 지금은 바로 정민아를 배신할 수 있었다. 이건 회사를 구매하는 가장 큰 단점이었다. 바로 짧은 시간 안에 자기가 믿을만한 사람을 고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직원들, 그리고 임원들도 로
김예훈은 고개를 돌려 견후를 한번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내가 내 아내랑 얘기하는 거 안 보여? 네가 뭔데 끼어들어? 아무 곳에나 가서 앉아서 기다려.”“너...!”견후는 화가 나서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그리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 “얘기해. 네게 유언을 말할 시간을 주지. 곧 너와 네 아내를 같이 저승으로 보내주마! 아니, 너는 잠시 더 살려주도록 할게. 네 두 눈으로 내가 네 아내를 짓밟는 모습을 지켜봐! 그리고 다시 보내주지!”견후는 차갑게 웃었다. 그는 김예훈을 쉽게 죽여줄 생각이 없었다.퍽. 김예훈은 바로 견후의 뺨을 내리쳤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많은 시선 가운데서, 김예훈이 차갑게 얘기했다.“네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어! 하지만 잘 기억해. 여기 성남은 네가 날고뛰어봤자 결국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 그리고, 감히 내 아내를 울리다니. 3초 시간 준다. 얼른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여기가 네 무덤이 될 거야!”“감히...!”이때 견후가 데려온 사람들도 화가 치밀어 올라 하나같이 허리춤에 있던 총을 꺼내 들고 김예훈을 조준했다. 견후의 명령 한 마디면 바로 총을 쏠 기세였다. “끝장이다!”로열 가든 그룹의 임원들은 놀라서 바지에 실수를 할 정도였다.그들은 데릴사위인 김예훈이 이렇게 강압적인 태도로 나가며 바로 견후의 뺨을 후려칠 줄은 몰랐다.이건 그냥 죽여달라는 것과 같지 않은가!죽고 싶으면 혼자 죽을 것이지, 그들까지 엮어서 같이 죽으려는 것인지!그 생각에 임원들은 바로 울상이 되었다.그 모습을 본 김예훈의 시선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총 같은 화기는 위험한 물건이라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다닐 수 없다. 하지만 부산 견씨 가문은 지금 총을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찔렀다. 법과 규칙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다.자기가 군부대에 있으면서, 전장에 나가서 열심히 피 흘려 싸워서 보호한 게 고작 이런 인간 말종
로열 가든 그룹 밖. 견후는 차갑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조금 부어오른 얼굴을 부여잡았다. 그는 살기를 내뿜으며 비서를 노려보았다. “아까 왜 나를 막아 나선 거야!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않으면 너부터 죽일 거다!”비서는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도련님, 저희가 성남에 도착하기 전에 어르신이 저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이런 일은 도련님이 직접 손을 쓰게 하지 말고, 또 도련님이 보는 앞에서 저희도 손을 쓰지 말라고요. 성남은 부산이 아니니, 우리 부산 견씨 가문은 이곳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아닙니다. 게다가 다른 10대 명문가들도 성남에 왔으니 도련님은 책잡힐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김예훈이라는 그 자식, 제가 알아본 데 의하면 김세자와 긴밀한 관계라서 그를 죽였다가는 김세자가 저희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감히 도련님의 몸에 손을 댈 생각을 하겠습니까?”비서의 말을 들은 견후는 그제야 이성을 찾고 차갑게 얘기했다.“틀린 말은 아니군. 그 자식이 나를 때리다니. 멍청한 게 아니라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지. 그 함정에 빠져들면 괜히 일만 복잡해지겠군. 그리고 김예훈과 김세자는 그저 같은 여자를 공유하는 관계일 뿐이야! 김세자를 무서워할 필요 없어!”비서는 열심히 얘기했다.“도련님, 김세자를 쉽게 보지 마세요. 제가 들은 소식에 의하면, 김씨 가문 이일매는 바로 김세자 때문에 진주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병욱도 지금 빅토리아 항구에서 숨을 죽인 채 다른 곳으로 나설 생각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김세자를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식을 들었는데, 바로 전설 속의 총사령관이 성남에 거주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움직일 때 신중해야 합니다. 고작 이런 기업, 이런 사람은 손에 넣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은 김예훈이 나타났으니 잠시 그를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견후는 차갑게 얘기했다.“그럼 네 뜻은, 우리가 지금 로열 가든 그룹을 매수할 방법이 없
견후의 눈빛이 삽시에 변하더니 곧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얘기했다.“임수환 어르신이 온다면 우리는 잠시 라벤더 재단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들이 김세자와 CY그룹을 해치우면 내가 다시 김예훈을 직접 죽이도록 하지. 김세자라는 배후가 없어진 쓰레기 김예훈이 어떻게 날뛰는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겠어. 그리고 정민아라는 여자는 꼭 내가 가진다!”견후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도련님이 마음먹은 일은 무조건 해냈다. 고작 데릴사위 따위인 김예훈은 앉아서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려야 할 것이다!”...리카 제국 코라의 로키산맥. 예전에 리카 제국의 학자들은 이 산맥이 바로 고서 “산해경” 중 동산경에서 등장하는 신비한 산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로키산맥의 골짜기에는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절이 있었다. 그 절에는 불상 하나 없이 그저 짚으로 만든 멍석이 있었는데 누군가 오랜 시간 앉아있은 흔적이 있었다. 평소 이 시간에는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고용인이 와서 청소한다. 하지만 이곳은 리카 제국의 코라 주장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가장 신비주의인 어르신, 임수환이 수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계 리카 제국인이지만 젊을 때는 리카 제국의 독사 부대에서 군인으로 활동했다. 한국계 리카 제국인이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 강한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독사 부대에서 리카 제국의 최연소 대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장이 십여 년 전에, 자신의 전성기에서 갑자기 퇴역했다. 퇴역 후, 그는 로키산맥의 절에서 홀로 수련하며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직계 가족이 찾아왔다.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세자 후보인 중 하나인 임도윤이 예의 있게 절에 찾아와 향을 피우고 큰절을 한 다음 잠긴 목소리로 얘기했다.“어르신, 저희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이 한국 시장을 열려던 계획이 다른 사람에 의해 망쳐졌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임해는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사람은 아니지만 보통은 임수환 어르신의 대변인이었다. 그래서 임도윤도 그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했다. 임해가 담담하게 얘기했다.“임도윤 도련님, 먼저 돌아가세요. 어르신께서 얘기하셨습니다. 이번 일에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그리고 임재훈 어르신을 건드린 자는 꼭 죽을 것이라고요.”“알겠습니다! 임수환 어르신께 감사드립니다!”임도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임수환이 드디어 산을 나선다니!임수환이 나선다는 것은 CY그룹의 파멸이 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김세자도 꼭 죽을 것이다.임수환의 힘은 개인의 힘과 상관이 없었다. 그의 권력이 너무 강하기에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못 할 일은 없었다.어느새 임수환이 산을 나선다는 소문이 리카 제국 코라에 퍼졌다. 그리고 은밀한 경로를 통해 성남에 전달되었다.임수환 같은 전설 속의 인물이 곧 성남에 온다는 소식에 다른 지역 가문의 사람들과 권력자들은 폭풍전야 속에서 사는 기분이었다.성남의 일인자가 곧 바뀔 모양이다! 많은 가문들과 세력이 그에 따른 준비를 하며 앞으로 변하게 될 형세에서 한바탕 이득을 얻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그러던 중, 임수환이 산을 떠날 시간이 정식적으로 정해졌다. 듣자 하니 성남의 투자유치대회에서 정식적으로 얼굴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그 뜻은 자세히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것이었다.리카 제국 임씨 가문은 단지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닌, 거친 파도처럼 성남을 덮치려고 하고 있었다. ...이튿날. 성남 국제 공항. 공항 전체가 텅 비어버렸다.금릉 권씨 가문, 부산 견씨 가문, 서울 하씨 가문 등 10대 명문가들의 성남 대표들이 모여있었다. 라벤더 재단 등 해외 세력의 대표들도 전부 모였다. 평소에 발걸음 한 번으로도 성남을 떠들썩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지금은 성남의 국제 공항에 모여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커다란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했다. 그 주변으로 열 대 정도의 전투기가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한
소문에 의하면 이 4대 장병들은 임수환이 직접 키운 사람들로 수년간 그의 곁에서 수련하며 전보다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한다. 전의 두 코라 챔피언은 독사 부대의 장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 네 사람이 나선다면 한 사람당 천 명이 되는 정예부대를 해치울 수 있을 정도다. 퇴역했지만 그들은 국방부 무신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런 사람들은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서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임수환 어르신을 환영합니다!”임수환이 걸어나오자 각 가문과 세력의 대표들이 나와서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한국의 10대 명문가라고 해도 지금은 그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이 대표들은 10대 명문가의 주요 인물이 아니기에 임수환 앞에서 그를 똑바로 바라볼 자격이 없었다. 심지어 만약 임수환이 그들을 바로 때려죽이더라도 임수환이 무서워 한국의 10대 명문가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것이다. 이게 바로 임수환의 힘이다!혼자서도 한 개 가문을 내리 누를 수 있는 힘!아무리 돈이 많아도, 강한 권력을 쥐고 있어도, 또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도 임수환 앞에서 먼지만도 못한 것이었다. 이때 성남 임씨 가문 사람들은 임도윤의 눈치를 본 후 임옥희를 앞세워 나서서 임수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임옥희가 제일 먼저 비통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어르신, 꼭 저희를 위해 힘 써주셔야 합니다! 제가 무능하여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체면을 깎았습니다!”임옥희는 이미 자존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랬다. 그들의 노예가 된 후부터, 자존심은 이미 사라졌다. 성남 임씨 가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닥에 꿇어앉아 감히 고개를 들어 임수환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얼굴을 바닥에 대고 있었다.임수환이 뒷짐을 쥔 채 차갑게 물었다.“CY그룹 때문에?”임옥희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임도윤이 옆에서 말을 덧붙였다. “어르신께서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CY그룹은 김씨 가문에서 버려진 김세
임해가 고개를 끄덕이고 얘기했다.“아버님은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이미 사람을 시켜 경기도의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알아보라고 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임수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대로 알아보기 전까지, 그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부대의 대장이던 그는 보통 사람처럼 충동적이지 않았다. 임수환의 태도를 본 대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한숨을 돌렸다. 솔직히 말하면 CY그룹이 있는 한 그들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너무 대놓고 나서면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임수환이 나서기만 한다면 CY그룹은 곧 없어질 것이었다.그러면 그들은 성남에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것이다. 특히는 앞으로의 투자유치대회에서 가질 수 있는 이득은 다 손에 넣어 벌 수 있는 만큼 벌어들일 것이다. 성남을 위해서 공헌하라고?웃기는 소리!그들은 남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성남에 모인 것이 아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들은 식량이 없어 굶어 죽지만 그들은 돈이 없으면 죽을 사람들이다. 이건 농담이 아닌 진심인 말이다. ...공항을 떠난 후, 견후는 성남 호텔의 로얄 스위트룸에 와서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재미있군! 임수환 어르신이 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양아들과 그가 키운 4대 장병도 왔으니. 성남에서 크게 한바탕 해볼 생각인 건가! 우리는 무조건 로열 가든 그룹을 손에 넣을 것이다!”부산 견씨 가문에게 있어서 성남은 그저 자원이 풍부한 디딤돌 같은 것이었다. 성남부터 시작해서 경기도 전체를 먹어버릴 수 있는 생각을 했기에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성남을 손에 넣고 싶었다.그리고 로열 가든 그룹은 부산 견씨 가문이 심사숙고해서 고른 회사였다. 한 개 도시의 발전에 있어 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열 가든 그룹이 성남 부동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가문과 세력도 눈독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로열 가든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