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그 여자는 도윤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까 봐 약효를 높였다. 이도윤은 참으면 곧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효는 더욱 일찍 발생했고, 성욕은 점점 강해져 마치 머리가 가볍고 몸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뜨거운 숨결이 지아의 귀에 닿으며 지아를 미세하게 떨리게 만들었고 지아는 그런 도윤을 거부했다.“안 돼, 나는, 읍.”도윤의 입술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아에게 닿자 지아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그러자 지아의 심장은 쿵쿵쿵 미친 듯이 뛰었다. 지아는 이도윤만 사랑했으나, 둘은 이미 이혼했으니 자유로운 몸이었다. 다른 누구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아는 다른 남자와 어떠한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아는 놀라고 화가 났으며,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 후에 겨우 몸부림쳤다.“강욱 씨, 정신 좀 차려요, 나는.”하지만 도윤의 몸은 거대한 화로처럼 뜨거웠고 지아를 꽉 감싸 안아 탈출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이미 늦었어요.”도윤이 지아의 귀에 속삭였다. “이제 멈출 수 없어요, 미안해요.”처음에 지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도윤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도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했다.몇년간의 금욕, 지아와의 헤어짐과 만남, 도윤은 모든 감정을 가슴속에 억눌렀고, 이 약은 도윤의 인내를 해방할 기회였다.그리고 도윤의 말에 지아는 당황했다. ‘사태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지?’도윤의 뜨거운 입술이 지아의 목에 닿았고, 도윤은 지아 몸의 어느 부분이 예민하고 민감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지아는 도윤이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었다.“임강욱, 그만해요.”지아의 손에 힘이 없어 도윤을 밀어내는 것이 마치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다.도윤의 눈동자는 이미 인내로 인해 핏줄이 보였다. 도윤의 이성은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본능을 이기지 못해 한
덩치 큰 남자가 무슨 강아지처럼 들러붙었고, 지아는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두 사람의 힘의 격차가 너무 컸다.지아는 이런 상황에서 남자를 지나치게 자극하면 분노와 함께 강한 소유욕이 생겨나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지아는 심호흡을 하고 상대가 아직 조금이라도 이성이 남아있을 때 논리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임강욱 씨, 다른 건 내가 다 도와줄 수 있어도 이런 건 못 해요.”“못 한다고요? 아직도 그 사람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가요?”도윤은 이미 이성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밀려오는 욕구를 힘겹게 참으며 이 기회에 지아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었다.‘다른 사람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건, 나를 아직 사랑한다는 뜻이 아닐까?’지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요. 그 사람과는 이미 이혼했으니 결혼하는 건 제 자유고, 그 사람과는 상관없어요.”도윤의 눈가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그런 거라면 나는 왜 안 되는 겁니까? 아가씨, 나는 당신을 책임지고, 당신 아이도 내 친딸처럼 아껴주면서 평생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덧붙였다.“이런 관계가 싫다면 전처럼 아가씨를 모시면서 아가씨 삶에 전혀 관여하지 않을 테니, 오늘 밤은 그냥 다 큰 성인끼리 한번 즐기는 거라고 생각해요.”“미안해요, 전 그런 데 관심 없어요. 임강욱 씨, 당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너무 깊은 상처를 받아서 이번 생에 다시는 어떤 남자와도 얽히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당신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이 손 놓으면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우린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어요.”하지만 도윤의 손가락은 지아의 연약한 피부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아가씨,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하고 싶지 않아요?”야릇한 목소리가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지아는 얼굴을 붉혔고, 희미한 불빛 사이로 도윤의 일렁이는 목울대와 살짝 벌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쇄골
지아는 도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몸이 불편하다는 건 잘 알았다.“그럼 그쪽은...”“제가 알아서 할게요.”이 정도 얘기했으면 됐다. 더 이상 머무르는 건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지아는 물고기처럼 방을 빠져나가 곧바로 문을 잠갔다. 도윤이 동물적인 본능을 자제하지 못할까 봐 방 안의 책상과 의자로 문을 막아버렸다.이 모든 일을 끝내자 지치고 숨이 가빴던 지아는 스르륵 미끄러져 카펫에 앉아 조금 전 남자가 입맞추었던 곳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솔직히 당시에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난생처음 다른 남자에게 안겨 키스한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이상하게도 도윤이 자신의 몸에 손을 얹었을 때, 그녀의 몸은 마치 오랫동안 남자의 손길에 익숙해져 있던 것처럼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옛날 도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지아는 급히 찬물로 세수를 하고 물 한 잔을 벌컥 들이켜며 마음속의 열기를 눅잦히려 했다.‘오늘밤 그가 무사하길.’아이의 곁에 누운 지아는 도둑이라도 된 것처럼 한동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도윤은 찬물로 샤워를 해도 일시적으로 열기를 식혀주는 작용일 뿐, 꿈틀거리는 본능은 그대로 남아 고통스러웠다.가운을 두르고 밖을 나선 도윤은 진봉의 방문을 열었다. 진봉은 덩치 큰 전리품 더미 한가운데 앉아 아이처럼 행복해하고 있었다.“보스, 왜 그러세요?”놀랍게도 가면을 쓰지 않은 채 본래의 진짜 얼굴로 나타난 도윤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차갑고 하얀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무척 이상했다.“누가 약을 탄 것 같은데 약효가 너무 세.”고집스럽고 삐뚤어진 도윤의 성격이라면 지아 말고는 다른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진봉이 얼른 말했다.“사모님도 약을 드시게 할까요? 그럼 깨어나셔도 아무것도 모르잖아요.”도윤은 그런 진봉을 사납게 노려보았다.‘어떻게 사람 머리로 저런 생각을 하지?’“네 머릿속에 잔뜩 들어찬 쓰레기는 집어치
도윤의 이성은 계속해서 무너지기 직전에 다다랐고, 눈은 이미 충혈된 채로 불편함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필요 없습니다.”“대표님, 지금 약물 때문에 계속 이런 상태가 지속될 텐데 해결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땐 여자를 찾는 게 부작용도 없고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입니다.”도윤의 붉게 물든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았고 세게 깨물어 얇은 입술엔 피가 스며 나온 채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필요 없다고 했잖아! 약이나 주세요.”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고집쟁이를 또 하나 만났네.’“알았어요. 부작용이 있어도 전 모릅니다. 게다가 지금 경우를 봐선 한 번으로는 효과가 없을 테니 적어도 두 번은 맞아야 할 겁니다.”도윤은 이를 악물었다.“주사 놓으세요.”바늘이 천천히 피부를 찌르자 도윤은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만 떠올렸다.또다시 그녀를 다치게 할 뻔했다.그 시각 또 다른 기이한 방, 야릇한 분위기가 풍기는 방은 네 면이 거울로 되어 사각지대 없이 어떤 각도로든 여자를 볼 수 있었다.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는 도윤을 유혹하려 했던 조이였다.대어를 낚았다고 생각했는데, 평범한 물고기와는 다르게 악마 물고기를 장난감처럼 여기는 범고래일 줄은 몰랐다.조금 전 방에 들어온 도윤은 방의 구조를 훑어보았고, 조이는 당장이라도 도윤에게 달라붙고 싶었다.그때는 아직 약효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던 도윤이 손을 뻗어 조이의 접근을 막으며 말했다.“나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야?”조이는 자신과 상대가 동족일 거란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작은 약병을 꺼냈다.“이건 나만의 비법인데, 혹시 몰라서 약을 좀 더 넣었어.”도윤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래?”그러다가 시선이 옆에 있는 상자로 향했고, 조이는 곧바로 자신의 보물을 소개했다.“여기 뭐든 다 있어. 원하는 것 말만 해.”도윤은 장난감 몇 개를 발로 툭툭 건드리다 밧줄 몇 가닥을 집어 올렸다.조이가 요염하
지아는 밤새 잠을 거의 못 자고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강욱이 방에 들어올까 봐 걱정하면서도 지아는 강욱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되었다.배 전체가 파티를 벌이는 동안 지아가 있는 곳만 적막감이 감돌았다.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마루에 앉아 창밖으로 힘없이 차가운 달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지아는 그동안의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웠던 삶의 단편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이와 헤어지고 하루하루 숨어 지내야 하는 걸까.저 문이 열려도 자신이 뭘 할 수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당연히 지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둘의 힘은 하늘과 땅 차이였고, 남자가 정말로 밀어붙인다면 지아는 오롯이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아이를 위해 죽음을 택할 수도 없었고, 이 굴욕적인 밤을 영혼에 영원히 새길 수밖에 없었다.어디로 도망칠 수도 없다.지아는 단지 평범한 삶을 원했는데 결국 맞이하게 된 건 이런 결말이었다.그렇게 불안한 밤이 지나 해가 떠오르고,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을 이뤘다.지아는 밤을 지새우다 잠이든지 30분도 되지 않아 쏟아지는 햇빛에 꿈에서 깨어났다.팔을 올려 눈부신 햇빛을 차단하던 지아는 이윽고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생각나 즉시 술병을 잡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의자와 테이블은 여전히 문에 붙어 있었고, 움직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온 세상이 고요하고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엄마.”침대에서 일어난 소망이는 잠에서 깨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졸린 눈빛으로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소망이 일어났어?”소망은 배를 만지며 낮게 말했다.“우유.”매일 아침 분유를 마시는 것이 습관이었던 소망이에게 우유를 타주는 것도 강욱의 일이었다.지아는 바삐 말했다.“알았어. 엄마가 지금 바로 우유 타 줄게.”“강욱 삼촌.”소망은 맨발로 침대에서 일어나 꼬리처럼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요 며칠 스위트룸에 지내면서 아이는 매일 아침 일찍 강욱의 방으로
강욱은 오전 내내 돌아오지 않았고, 소망이 여러 차례 물어볼 때마다 지아는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다.그렇게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강욱의 모습에 하빈에게 물어봐도 머뭇거릴 뿐이었다.지아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아무리 센 약이라도 1박 2일이 지나면 진정되지 않나?’다음 날 아침 일찍, 하빈이 막 가려는데 지아가 붙잡았다.“저기요, 임강욱 씨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상대가 분명하게 대답할 때까지 보내주지 않겠다는 기세였다.하빈은 한숨을 내쉬었다.“강욱 형님이 좀 아프세요.”“아프다고요?”지아는 평소에 튼튼하게만 보였던 강욱이 아플 거라곤 전혀 예상 못했다.“솔직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강욱 형님은 그날 밤 약에 취했었는데 두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봐 다른 방에서 혼자 얼음물에 몸을 담근 채 밤을 보냈어요. 아침저녁으로 온도 차도 크고 찬물로 샤워해도 충분히 차가운데 거기에 얼음까지 넣었어요. 그리고...”지아는 그가 여자를 찾아 해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뭐요?”“의사가 최선의 해결책은 여자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는데도 그러지 않고 과량의 진정제를 투여하도록 강요했어요. 거기에 밤새 추운 곳에 있었으니 몸이 강철도 아니고 어떻게 버티겠어요.”지아는 그 과정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지금은 괜찮아요?”“솔직히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제 밤새 열이 났어요. 강욱 형님께서는 두 사람이 걱정할까 봐, 그리고 혹시 감기라도 옮길까 봐 저에게 대신 식사를 준비하라고 시킨 겁니다.”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가서 만나봐도 돼요?”“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강욱 형님이 절대 아가씨를 외출시키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어요. 열흘 정도만 지나면 도착할 거고,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닙니다.”위독한 것도 아니야.”“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가씨. 저를 구해주신 강욱 형님께서 두 분을 잘 챙기라고 당부했으니 이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가씨.”방문
소망은 그림 속 작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엄마, 삼촌, 오빠, 나, 우리 가족이에요.”한부모 가정은 이게 문제였다. 세상 그 어떤 엄마도 이걸 설명할 수 없을 테고, 그건 지아도 마찬가지였다.반나절 동안 망설이던 지아가 설명했다.“소망아, 삼촌은 삼촌이고, 엄마와 너희만이 가족이야. 삼촌은 너희들 양아빠처럼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야. 잠깐만 우리와 지내고 언젠가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삼촌은 떠날 거야.”언제나 말 잘 듣는 아이가 지아의 설명을 듣고 자리에서 소란을 피웠다.“안 돼요, 떠나면 안 돼요. 난 삼촌 좋단 말이야!”“그래, 엄마도 네가 삼촌 좋아하는 거 알아. 하지만 아가, 넌 앞으로 많은 사람을 만날 거고, 모든 사람이 끝까지 우리와 동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삼촌도 직업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평생 우리 곁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콩알만 한 눈물이 긴 속눈썹에 맺혔고, 지아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하지만, 하지만...”아이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도윤이 떠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지아는 아이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달랬다.“이 세상에서 부모님 말고는 아무도 영원히 네 곁에 있을 수 없어, 알겠어? 삼촌도 아이가 생길 거고, 자기 아이를 보살피면서 살아가야지. 엄마가 나중에 소망이가 보고 싶어 하면 삼촌 만날 수 있게 해 볼게, 알았지?”소망은 코를 훌쩍거리며 지아를 올려다보았다.“그럼 아빠는요?”아이가 다시 물었다.“우리 아빠는요?”“아빠는...”지아는 눈을 감자 도윤의 얼굴이 떠올랐다.만약 아이들이 살아있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무척 기뻐할 테지만, 그들 사이엔 깊은 원한이 있었다.증오와 미움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그들 사이에는 백채원, 이지윤 남매도 있었다.‘아이에게 아빠가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아빠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지는 건데, 그래도 아이에겐 좋은 기억만 남겨 줘야지.’지아가 대답했다.“죽었어
하빈의 말대로였다. 도윤은 정말 아파서 밤낮으로 열이 펄펄 끓으며 침대에 누워 시름시름 앓았다.진봉은 오래 함께한 아내처럼 머리맡에서 사과를 깎으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보스, 지금 이 꼴을 좀 봐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반년 동안 사모님 뒤를 쫓아다니면서 정체를 숨겨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네요.”진환이 그런 진봉을 노려보았다.“넌 좀 조용히 해. 보스가 원해서 이러는 게 아니잖아.”진환은 따뜻한 물 한 컵을 도윤에게 가져다주었다.“보스, 따뜻한 물 많이 마셔야 빨리 나아요.”도윤의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말라 있어서 무척 초췌해 보였다.물 한 잔을 다 마신 후 침대에 기대어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던 도윤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제일 먼저 입 밖으로 꺼낸 첫마디는 지아였다.“지아는 어떻게 지내?”“하빈이는 여자만큼이나 꼼꼼한 사람이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모님의 취향을 줄줄이 읊고 있으니 잘못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도윤의 시선이 망설이는 진봉의 얼굴로 향했다.“말해.”“사모님께서 계속 보스에 대해 물어보셔서 하빈이가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답니다.”“지아가 뭐래?”“사모님께서 보러 오고 싶다고 했는데 하빈이가 거절했답니다.”도윤의 눈빛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비쳤다.“그래.”“보스, 얼른 나으세요. 지난 몇 년 동안 사모님과 떨어져 지내느라 몸도 기운도 다 상하셨잖아요. 예전 같았으면 하룻밤 얼음물에 있었다고 이렇게까지 열이 끓었겠어요?”진환도 옆에서 거들었다.“얘가 말을 좀 밉게 해도 일리가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이 않아요. 자주 밤도 새우시잖아요. 보스, 자기 몸도 돌보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사모님을 지켜요? 아직 사모님 죽이려 했던 배후도 밝혀지지 않았잖아요.”도윤은 두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 같았으면 1년 내내 아픈 적이 없었고, 감기나 독감에 걸렸어도 뜨거운 물 좀 마시면 괜찮아졌을 것이다.지금처럼 이렇게 앓아누웠을 리가.“죽은?”“하빈이한테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