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도윤을 말문이 막히게 했다.그렇다. 자신이 그녀에게 그토록 많은 상처를 주었는데, 어떻게 감히 마음을 돌려 재결합 하기를 바랄 수 있겠나.전부 헛된 꿈이었다.도윤이 침묵하자 지아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미안해요. 내가 좀 이성을 잃었죠.”“아니요. 전남편 같은 사람은 백번 죽어도 아가씨의 상처를 보상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그냥 이번 생에서 다시 만나지 않고 이대로 늙어 죽었으면 좋겠어요.”도윤은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알겠어요. 이제 그 사람 몰래 A시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네. 그래서 전에 아저씨를 따라 몰래 돌아가려 했는데 해적을 만나 어쩔 수 없게 됐어요. 이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죠.”“걱정 말고 이 문제는 저한테 맡겨요.”단지 그에게 해결책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하려던 지아가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정말 그럴 수 있어요?”“오랜 세월 여러 나라 사람들과 섞여 살다 보니 차마 말 못 할 부분까지 알게 되더라고요.”도윤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가씨, 저를 믿어도 돼요.”마주 보는 두 눈에서 지아는 도윤의 진지함을 느꼈다.렌즈를 껴서 원래의 동공 색을 덮은 탓에 지아의 눈에 그는 노란 눈동자였다.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지아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도윤이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들어 올리는데, 경박함 대신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이었다.꼭 중세기 기사 같았다.“절대 배신하지 않을게요.”그것은 마치 주종 관계 이상의 다짐 같았다.당황한 지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사람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무슨 뜻일까?’지아가 추측하기도 전에 도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준비할 테니 아마 며칠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지아는 그의 손길이 닿은 곳과 뺨이 어렴풋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고백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예전이었다면 지아도 자신감을 가졌을
그런 방법이어야만 강욱의 이미지에 더 부합하고 지아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다.“그 배는 안전한가요?”“친구랑 미리 얘기했습니다. 우린 방에만 있고 그 사람들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요. 배에서 그 어떤 행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그저 배만 타는 겁니다.”지아는 무의식적으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배를 타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돌아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좋아요.”“걱정하지 마요, 아가씨. 내가 지켜줄 테니까.”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한 신뢰가 차츰 깊어졌다.섬에서 마지막 3일을 보내고 도윤은 지아를 위해 가발과 가면을 준비했다.“아가씨, 배에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의심을 살까 봐 걱정이니까 부부인 척하는 게 좋겠어요. 소망 아가씨는 어쩔 수 없죠.”도윤이는 잠시 머뭇거렸다.“저런 배에 일반 가정의 아이들은 없을 텐데... 화물이면 모를까.”햇볕이 들지 않는 그늘지고 구석진 곳은 더럽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며 지아가 이마를 찡그렸다.“알아서 준비해요.”출발 당일, 두 사람은 요트를 타고 거대한 호화 유람선으로 향했다.소망이는 캐리어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지아는 긴 머리 가발을 쓴 채 도윤과 함께 멋지게 차려입고 가면을 썼다.도중에 몇 명의 승객과 마주쳤는데, 가면 속 감춰진 두 눈으로 지아의 몸을 물건 살피듯 훑어보았다.가면으로 얼굴만 가릴 수 있을 뿐 인간성까지 감춰지지 않았다.지아는 당연히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노려보려는 순간, 갑자기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싸며 그대로 도윤의 단단한 품에 안겼다.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지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실례할게요.”지아는 그가 자신을 위해 이러는 걸 알았다. 상대에게 임자가 있다는 걸 알리는 행동이었다.단순하고 거친 방법에 상대는 흥미를 잃은 듯 눈을 돌렸다.그 와중에 몇몇 뻔뻔한 사람들이 다가와 음흉한 눈빛으로 지아를 훑어보며 말했다.“어이 형님, 오늘 여럿이
그 남자는 냄새 나는 양말을 입에 문 채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자극적인 걸 찾아 배에 올랐던 그는 마침 여자의 몸매가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이라 제안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어차피 배에 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더러운 놈들인데 뭣 하러 고결하게 구는 걸까.도윤이 입에 물었던 양말을 빼내자 그는 황급히 애원했다.“형님, 그냥 농담한 건데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십니까, 안 하면 그만이잖아요?”“허.”도윤은 차갑게 웃으며 그의 가면을 벗었다. “너랑 놀아줄게.”가면은 그들의 정체를 가리는 것이었고, 가면을 벗기는 순간 그들은 발가벗겨져 길거리에 내던져지는 것과 같았다.도윤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는 A시에서 아주 유명한 지역 사업가였다.언론에서는 오랫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식들도 하나같이 성공했다.하지만 성공한 남자가 뒤에서 이런 추잡한 짓을 하는 게 역겨웠다.“내 가면! 돌려주세요.”가면은 도윤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발에 짓밟혔다.그의 위선을 짓밟아 산산조각 낸 것이었다.도윤은 발을 뗐다. 인간 본성의 추악함은 진작 알고 있었고, 돈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얼마나 추잡스럽게 노는지 잘 알고 있었다.다만 그는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런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심지어 예전에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었다. 언론에서 좋은 사람으로 포장되어 있었기에 도윤은 나름 예의있게 대했다.남자의 본성을 알게 되자 그는 상대를 밟는 것조차 더럽게 느껴졌다.품위 있어 보이던 그의 아내도 함께 역겨워 보였다.심지어 지아에게 추근거렸던 것을 떠올리자 도윤은 차갑게 말했다.“손 잘라버려.”“네, 보스.”진봉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었다. 손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두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갔다.“당신, 뭐 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진봉은 장난스럽게 웃었다.“물론이죠, 장 대표님. 그렇게 못
도윤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근 들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지면서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 빼면 진짜 아빠와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방금 만든 거야, 먹어 봐.”지아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너무 오냐오냐하지 마요. 단 거 너무 많이 먹으면 충치 생겨요.”“괜찮아요, 한 조각인데요 뭘.”다정한 모습은 밖에서 보는 것과 생판 다른 사람 같았다.지아는 착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강욱이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당연했다. 처음부터 속내를 다 드러내는 사람은 없으니까.“다 됐어요?”“네.”도윤이 당부했다.“참 아가씨, 여기 유람선 지도예요.”지아는 배를 탈 때만 해도 유람선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보통 큰 게 아니었다.맨 밑 1층은 대형 카지노였고, 2층은 출처가 없는 온갖 종류의 골동품 보물, 약초, 무기, 심지어 장기까지 돈만 있으면 못 사는 게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다.3층에는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4층은 세계 최고 음식이 가득한 푸드코트였다.그들이 있는 곳은 숙소 건물이었고, 맨 위층에는 부자들이 파티를 열고 불꽃놀이를 하는 거대한 인피니티 풀이 있었다.돈만 있으면 늙을 때까지 이 유람선에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지아의 시선이 2층에 향했다.“여기 약초가 많겠네요?”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약초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의사들도 있어요.”“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대신 가 볼게요. 어쨌든 아가씨는 외출하지 말고 여기 있어요.”“네.”지아의 병은 줄곧 도윤에게 큰 난제였다. 종양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전이되거나 퍼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게다가 단기간에 다시 재발하면 몸 상태가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때는 특별한 약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악의를 품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무법자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숨은 실력도 있었다.낮에는 대부분
진봉은 명품을 본 여자처럼 흥분해서 재잘댔다.“형, 저거 봐. 근접전 펼칠 때 진짜 멋있지 않아? 나 사줘. 이것도, 저것도.”“...”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진환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때 도윤이 여성용 권총을 집어 들자 가게 사장이 이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안목 참 좋으시네요. 이거 요즘 새로 나온 모델인데 반동이 작아 여성이 사용하기에 적합합니다.”“이거 주세요, 그리고 이것도.”도윤은 또 숨기기 좋은 작은 휴대용 비수 하나도 골랐다.그렇게 한참 동안 고르고 난 뒤, 도윤은 약재 구역으로 향했다.그곳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마치 배추 세일 현장을 방불케 했다.국가에서 많은 약재를 엄격히 단속하고 있지만, 무법천지인 이곳에는 그저 돈과 욕심만 있을 뿐이다.돈이 많다면 제 욕심을 모두 채울 수 있으니까.오늘은 경매가 없기에 도윤은 각종 코너를 돌며 물건을 골랐다.“사장님, 뭐 사실 겁니까? 우리 여기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그때 한 상인이 열정적으로 호객 멘트를 날렸다.물론 단속이 없어 배 위에 있는 물건은 다른 곳보다 몇 배는 비싸다. 하지만 희귀하기만 하다면 돈 많은 사장님들이 그깟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도윤이 한 약병을 들고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을 때,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사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정말 보는 눈이 있네요. 이게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물건인데, 밤새도록 해도 끄떡없거든요. 아무리 꼬시기 어려운 여자라도 이것만 있으면 아주 녹아내릴겁니다...”이게 그런 효과가 있는 약인지 알 리 없었던 도윤은 얼른 약을 제 자리에 내려놓고는 헛기침을 했다.“혹시 항암제는 있습니까?”“암요.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제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도윤은 눈앞의 40대 남성을 위아래로 쭉 훑어봤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 웃기 좋아하며 웃을 때 눈이 가늘어지는 것이 딱 봐도 간사한 면상이었다.“모릅니다.”“제가 바로 그 유명한 활사인입니다.”“아하, 저 그거 알아요.”그때 진봉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요,
진봉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도윤의 뒤통수를 바라봤다.‘참 안 됐네.’도윤은 애초에 백채원과 결혼하기로 약속했지만 한 번도 그녀에게 손을 댄 적이 없다. 처음부터 도윤에게 여자는 소지아뿐이었으니. ‘차라리 나처럼 여친은 없어도 욕구를 풀 상대라도 만들지.’도윤은 한 사람에게만 올인하는 스타일이라 만약 앞으로도 소지아와 재결합하지 못한다면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생각할수록 불쌍하네.’“형, 우리 보스한테 성인돌이라도 사줄까? 지금 진짜 같은 게 엄청 많대. 그럼 배신한 것도 아니잖아.”“네가 그렇게 죽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진환의 한심하다는 말투에 진봉은 억울해했다.“나도 다 보스 생각해서 그러는 거잖아. 이렇게 지내다가 망가지면 어떡해. 안 되겠어, 형. 나랑 같이 보스한테 줄 물건 사러 가자. 이렇게 참게할 수는 없잖아.”한편, 도윤은 한참을 걸어가서야 붉게 달아올랐던 귀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확실히 그는 요즘 지아만 보면 충동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계속 참아왔다.‘내가 욕구불만인 게 그렇게 티 나나?’‘돌팔이가 손 한번 잡고 맥을 집어보고 알아맞힐 정도로?’도윤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아니야, 딱 봐도 사기꾼이잖아.’원하는 약재를 찾지 못하자 도윤은 지아와 아이들 먹을 음식을 사가지고 돌아갈 결심을 했다.하지만 그 돌팔이의 말 때문인지, 도윤은 왠지 몸에서 자꾸만 열기가 느껴졌다.결국 칵테일 한 잔을 시켜 천천히 음미했다. 지아 곁에 있으면서 도윤은 너무 힘들었다. 시시각각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해야 했으니.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손으로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리는 도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웬 향기가 코를 간지럽혀 눈을 떠보니 바텐더가 제작한 칵테일을 그의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손님, 이건 저희 가게에서 제일 잘나가는 ‘키스 오브 파이어’인데, 한번 드셔보세요.”‘키스 오브 파이어?’‘그냥 제일 잘나가는 거 해달라고 했는데 이름이 이럴 줄은 몰랐네.’술은 화려한 붉은 색에 스노우
뒤를 돌아보니 진봉과 진환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도윤이 이렇게 안심하고 술을 마신 이유도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하필 이 순간 사라졌으니 이런 일을 당한 거다.여자는 자기의 외모와 몸매에 무척 자신 있어 했고, 저를 거절할 남자가 없다고 자신했다.하지만 도윤의 눈빛에는 욕망 대신 위압감과 한기만 맴돌았다.분명 도윤이 앉아 있고 본인이 서 있었지만, 도윤은 오히려 키리스마에서 저를 압도했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왕좌에 앉아 세상을 군림하고 있는 제왕 같았다.심지어 저를 개미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는 듯한 눈빛에 여자는 달갑지 않아 이 모든 걸 약효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탓으로 돌렸다.여자는 교태를 부리며 도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여자는 자기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몸매가 상대방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지아 씨가 있으면 난 끝났어.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야지.’도윤은 화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평온해지는데, 표정이 평온할수록 더 겉잡을 수 없는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하지만 여자는 정작 자기가 교태를 부릴수록 도윤이 더 역겨워한다는 걸 알 리 없었다.그때, 도윤이 싸늘하게 물었다.“뭘 하고 싶은데?”겨우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게 되자 여자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원하는대로 다 맞춰줄게요.”“좋아요.”도윤은 어두운 눈빛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소원대로 해줄게요.”도윤이 동의했지만 여자는 왠지 등골이 오싹했다.그러다 이내 시선을 도윤의 목울대로 옮기며 속으로 생각했다. ‘경험상으로 봤을 때 이 남자 틀림없이 죽여줄 거야.’상대가 저 때문에 이성을 잃고 저를 탐할 걸 생각하니 여자는 피가 끓어올랐다.이윽고 혀로 입술을 살짝 핥으며 대답했다.“제 방으로 가요.”사실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풀장에 가자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처음인 데다 어렵게 꼬신 상대가 놀라 도망치게 할 수는 없었다.도윤은 가면으로 얼굴 반쪽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볼 수
도윤은 자신의 키를 이용해 버튼을 손으로 가리며 지아의 손길을 막았다. 그리고 도윤은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난 괜찮으니까 아가씨는 제 걱정하지 말고 가서 소망이랑 같이 있으세요.”도윤이 이렇게 의도적으로 숨길수록 지아는 더욱 걱정했다. 분명 다쳤는데도 지아의 걱정을 덜기 위해 숨기고 있는 것이었다. 도윤이 불을 켜지 못하게 막자, 지아는 절박한 마음에 손을 뻗어 도윤의 몸을 만졌다. 이미 극도로 억제하고 있었기에 도윤은 미칠 것만 같았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만지지 마세요.”“그러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아무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도윤의 말을 지아는 믿지 않았다. 도윤의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정도를 봤을 때는 분명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어디를 다친 거지? 상처 어디 있는 거야?’지아는 도윤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자, 도윤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지아의 손을 잡고 단칸방 침대 쪽으로 밀쳐냈다. 두 사람이 함께 침대에 넘어지자, 지아는 도윤이 혹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당시 지아는 그 상황에 다른 방향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강욱 씨, 도대체 어디를 다친 거예요? 빨리 말해봐요.”지아의 초조한 목소리가 도윤의 귀 뒤에서 퍼져 나가며 간질거리자 도윤은 움직이지 않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아가씨, 그만 물어보세요. 저는.”도윤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하자 지아는 불안해서 말했다.“이런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되니까 의사 찾으러 갈게요. 절대 도윤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기게 두지 않을 거야.”그러자 도윤이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정말 나를 도와주고 싶어요?”“물론이죠, 강욱 씨가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도와줬는데, 강욱 씨가 위험에 처하면 난 반드시 도와줄 거예요.”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아무에게도 가까이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지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도윤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