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는 자신의 고달픈 인생처럼 외롭고 창백한 달빛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정말 더 이상 이도윤의 감정에 당하고 싶지 않았다. 죽으면 사랑과 증오, 집념이 모두 사라지니 지금부터 이 세상에 그녀가 없는 이상, 그의 집념도 없지 않겠는가?그녀는 마지막에 뛰어내릴 때 이도윤이 최선을 다해 힘껏 뛰어올라 그녀가 떨어지기 전에 자신의 손을 잡을 줄은 몰랐다.침대 위의 아이도 놀라서 재빨리 침대 옆으로 올라가 침대 가장자리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간 후 다시 작은 짧은 다리를 내디디고 병실을 뛰쳐나와 곧장 진환을 찾아갔다.진환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이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즉시 담배를 껐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참을성 있게 물었다.“도련님, 왜 나왔어요?”아이는 다급하게 말했다.“엄마 울어...”그는 이리저리 겨루고 있었지만 진환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어나 그를 안았다.“제가 데려다 줄게요. 밖은 추우니까 감기 걸릴 거예요.”지금 창가에서 이도윤은 있는 힘껏 소지아의 손을 잡았고 소지아는 여전히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이도윤, 나 미워하지 않았어? 내가 죽으면 너는 네 여동생에게 복수를 할 수 있잖아?이도윤은 몸을 거의 모두 창밖으로 내밀었고 두 팔의 힘줄까지 드러났으며 관자놀이가 튀어나왔다. 그는 그녀를 더욱 단단히 잡았다.“소지아, 네가 감히 죽으려고 해! 그럼 나는 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를 거야.”“우리 아버지는 어차피 혼수상태에 빠져서 깨어나지 못하실 거야. 아마 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 죽음이 차라리 일종의 해탈일 수도 있지.”“누가 네 아버지가 깨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 나는 이미 레오의 종적을 찾았어. 그가 집도하기만 하면 네 아버지는 80%의 확률로 깨어날 거야. 너도 의학을 배웠으니 레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거 아니야.”소지아의 얼굴에 마침내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예민한 이도윤은 그것을 포착하고 계속 입을 열었다.“나는 너를 원망했고 그를
소지아는 죽으려는 결심을 가지고 7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이도윤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뛰어내릴 때, 이도윤의 속도가 그녀보다 더 빠를 줄은 도무지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그 남자가 망설임 없이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고, 게다가 왼발은 창턱을 힘껏 내디뎌 속도를 내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이미 소지아의 옆에 도착했고, 소지아는 눈을 크게 뜨며 동공은 더욱 심하게 진동했다.‘미쳤나 봐!’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그녀는 이도윤의 차갑고 격노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큰 그물처럼 소지아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그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다.그의 앞에서 그녀는 나방처럼 연약했고, 그 빛을 위해 그녀는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하지만 지금, 불에 타서 아프자 그녀는 후회했다. 마음이 짓밟혀 산산조각이 났지만, 그는 그 조각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여전히 계속 주물러 그녀를 괴롭히며 그녀를 진흙탕에 밟으려 했다.그의 품에 힘껏 안기자 두 사람의 몸은 쏜살같이 땅바닥을 향해 떨어졌다.진봉은 병원 문 앞에 있는 바람을 넣는 기둥을 옮겨왔고, 경호원들이 서둘렀기에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준비를 마쳤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이도윤은 소지아의 몸을 안고 기둥에 호되게 부딪친 다음 다시 지면으로 굴렀다.다행히 기둥은 절대다수의 효과로 충격을 흡수해서 두 사람은 모두 다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위층에서 보고 있던 진환이 한숨을 돌렸다. 다행히 그가 준비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두 사람 다 죽을 것이다.진봉과 몇몇 경호원들은 모두 놀라서 멍해졌다. 이도윤에게 만약 무슨 일 생기면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이도윤은 기둥에서 나뒹굴었고 몸은 다시 땅바닥에 세게 부딪쳤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소지아는 그에게 꽉 안겨 조금의 충격도 받지 않았다.그녀가 일어선 다음, 바로 이도윤의 얼
남자는 싸늘하게 웃으며 한 손만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긴 다음, 허리를 굽혀 안았다.그의 동작은 조금도 부드럽지 않았고, 심지어 난폭함을 띠었다. 그의 팔은 그녀의 다리를 꼭 감고 있었다.소지아는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휘두르다 부주의로 그의 목덜미에 부딪쳐 놀라서 재빨리 손을 옮겼지만 그 따뜻한 온도는 줄곧 그녀의 손끝에 남아있었다.“이도윤, 나를 놓아줘.” 소지아의 힘없는 발악은 그를 조금도 건들지 못했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안은 채 두터운 눈 속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고, 발밑에는 두꺼운 눈을 밟아 소복소복 소리를 내고 있었다.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런 침묵은 사람을 숨 막히게 했고, 소지아는 다시 병실로 안겨졌다.봄처럼 따뜻한 실내는 그녀의 차가운 몸을 조금씩 따뜻하게 했다.이지윤이 비틀비틀 그녀를 향해 걸어오며 마치 그녀의 품에 안기고 싶은 것 같았다.콧물과 눈물 범벅이 된 것을 본 소지아는 무의식중에 두 팔을 뻗어 아이를 안으려 했다.이도윤은 오히려 한 손으로 이지윤의 잡고 들어 올렸고, 목소리는 극도로 차가웠다.“작은 도련님 돌려보내.”“예.” 진환은 소지아가 무사한 것을 보고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양요한은 그녀의 몸을 검사한 후 다시 링거를 놓아주었고, 침착하게 말했다.“지금 백혈구 수치가 매우 낮으니 절대 함부로 행동하시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와도 사모님 구할 수 없어요.”소지아는 마치 헝겊 인형처럼 머리 위의 하얀 천장을 쳐다보며 응 소리를 냈다.이도윤은 이미 그녀의 선택을 끊어 그녀에게 죽을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알았어요.”“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이도윤은 차갑게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고 성큼성큼 방을 떠났다.양요한은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고, 이도윤은 온몸에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이도윤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고, 양요한도 따라서 멈추었다.이도윤의 얼굴에 먹구름이 낀 것을 보면서 그
비록 양요한은 하룻밤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지금 여전히 원기왕성했다. 이도윤이 현장에 없는 것을 보고,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사모님, 대표님은 정말 사모님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 이것 보세요, 특별히 사모님에게 안배해 준 건강검진이잖아요.”마음에 둔다고?소지아는 이 말만 들어도 우스울 뿐이었다.그가 자신에게 여러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자신을 괴롭힐 때 쉽고 편리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반면 소지아는 궁금했다. 만약 그가 정말 자신이 위암에 걸렸음을 알았다면 그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일까?“그래.” 소지아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검사항목이 적지 않았지만 위대장내시경이 빠져 있었다. 필경 위대장내시경은 특별히 사람을 힘들게 했다, 새벽에 관장약을 복용하고 몇 번이고 위장안이 깨끗해질 때까지 비워 낸 다음 검사를 해야 했다.소지아의 지금의 몸 상태는 많이 안 좋았기에 혹시 탈이라도 생겨 실랑이가 일어날까 봐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게다가 그녀는 학창시절에 이도윤에게 시집갔으니 생활이 규칙적이어서 위장은 일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양요한은 그녀의 위가 좋지 않을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특별히 그녀에게 이 방면의 검사를 하게 하지 않았다.검사를 마치고, 소지아는 오전 내내 굶어서 앉자마자 죽을 마셨고, 이도윤이 문어귀에 나타났다.그는 키가 훤칠했고, 표정은 예전과 다름없이 차가웠다. 그는 회사에서 달려왔을 것이다. 단정한 양복에 흑백 줄무늬의 넥타이는 남자를 더욱 위엄있어 보이게 했다.이 넥타이는 그녀가 전에 그에게 사준 것인데, 소지아는 여전히 그녀가 처음에 그에게 넥타이를 매주었을 때의 달콤함을 생각할 수 있었다.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마음이 아플 뿐이다.이도윤의 눈빛은 그녀의 창백한 작은 얼굴에 떨어졌는데, 무엇 때문에 매번 만날 때마다 그녀는 늘 이렇게 허약한 자태를 드러낼까?설마
이도윤은 말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양요한의 손에 있는 검사차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그가 지켜보자 양요한은 얼른 미소를 지었다.“결과가 나왔으니 대표님 안심하세요. 사모님은 별일 없어요. 검사차트 한 번 보세요.”별일 없어?소지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초기라면 CT에 찍히지 않는 것은 정상이었다. 초기에는 장기 자체도 큰 병변과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는 이미 말기였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약간의 문제를 발견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그녀가 깊은 생각에 잠길 때, 이도윤의 마음은 마침내 내려놓았지만 안색은 더욱 냉담해졌다.그는 한걸음한걸음 소지아를 향해 걸어갔다. 소지아는 자신과 갈수록 가까워지는 그 사람을 보면서 비바람이 몰아치려는 한기를 느꼈다.소지아는 그의 그런 눈빛 때문에 마음이 좀 불안했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저런 눈빛을 하는지 몰랐다.그녀는 그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후의 표정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가 이렇게 분노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이도윤은 이미 가까이 다가와서 높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온통 노기가 감돌았다.“결과는...”소지아는 입을 열었다.이도윤은 한 무더기의 보고서를 그녀의 몸에 던졌고,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스스로 봐!”소지아는 CT촬영 차트 찾았는데 엑세레이 사진에는 이상이 없다고 똑똑히 씌여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혈액보고까지 백혈구와 적혈구는 모두 정상이었다.백혈구가 상승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어젯밤에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CT 결과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이 개인 병원의 설비 수준으로 절대 조금의 문제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결과는 확실히 그녀 앞에 있었다. 소지아가 이상하게 느끼고 있을 때 이도윤은 갑자기 몸을 숙여 두 손을 그녀의 몸 옆에 받쳤다.“소지아, 내가 널 확실히 얕본 것 같다.”소지아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에 가득한 조롱을 보았다.“이번에 연기를 참 잘하더군. 하마터면 나까지 속일 뻔했어
방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흘렀고, 공기마저 응고된 것 같았다.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양요한은 재빨리 소리를 내며 말했다.“대표님, 아무튼 사모님은 무사하니 좋은 일이죠.”이도윤은 소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고, 더는 그녀와 같은 사람과 한마디 말도 섞으려 하지 않는 듯 무표정으로 몸을 돌렸다.“알아서 해.”소지아는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영원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거만한 남자를 보면서 그녀는 손에 든 죽을 던졌다.“뭘 알아서 하라는 거야!”그 당시 그녀에게 구애한 것도 그였고, 결혼하려는 것도 그였으니 소유욕이 강해서 그녀가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한 것도 그였다.이제 와서 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그는 뜻밖에도 그녀가 엄살을 부린다고 말하며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넘겼다.새하얀 죽은 이도윤의 등에 떨어졌고, 끈적끈적한 죽은 비싼 양복을 따라 흘러내렸다.이도윤은 한기로 가득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눈에 분노를 숨길 수 없었다.그는 빠른 걸음으로 소지아를 향해 걸어왔다. 양요한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부부 싸움에 자신이 죽게 생길 것 같았다!그는 바삐 손을 내밀어 가로막으며 안색이 초조했다.“대표님, 실수일 거예요, 사모님은 틀림없이 실수로 그런 것일 거예요. 사모님, 말 좀 해보세요.”소지아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차가운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응, 실수.”양요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들으셨죠, 실수...”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지아는 두려워하지 않고 한마디 덧붙였다.“실수하지만 않았다면 분명히 네 뒤통수를 맞춰야 했는데! 아쉽게 됐네.”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건가.이도윤은 양요한을 덥석 밀어내며 소지아 앞에 가서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소, 지, 아!”소지아는 이미 화가 나서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의 바구니에서 약 한 병을 들고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뛰어내렸다.그리고 그녀는 손을 들어 약병을 이도윤의 머리를 때렸다.“나쁜
이도윤의 그 눈빛을 생각하자 소지아는 바로 대답했다.“응.”“그럼 됐어요. 바이러스에 의해 열이 난 거니까 입원해서 며칠 관찰하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양요한은 무거운 짐을 벗은 듯 계속 설득했지만, 소지아가 줄곧 고개를 숙이고 상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다.소청이 위암 검사를 한 것은 확실한 일이지만 이번의 CT는 조금의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다.그녀는 약물치료를 한 번밖에 하지 않았는데, 효과가 좋아도 종양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줄어들었다.결과에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했으니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내부 사람들뿐.이도윤의 코앞에서 이런 일을 하다니 상대방은 오히려 대담했다.누구일까? 백채원?무덤의 일도 모자라 이제 그녀의 검사 결과차트에까지 손을 대다니.비록 백채원 외에 다른 사람은 없겠지만, 소지아는 이 일이 좀 수상쩍다고 느꼈다.백채원이 아니라면 이 사람은 너무 무서웠다.이 2년 동안의 많은 일들은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마치 한 손이 그녀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이도윤은 쉽게 알아낼 수 있었지만, 지금 이도윤의 마음속에 그녀는 사기꾼이었으니 이야기를 꾸미고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만약 대량의 일손을 동원하여 조사한다면 상대방이 눈치챌 수도 있었다.소지아는 양요한을 부르지 못하고 몰래 방사선과의 의사를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인애 병원은 마침 양씨 집안의 산업으로서 소지아는 대충 짐작이 갔다.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이미 봉쇄되었지만 양기범의 귀에 전해졌다.소지아가 출격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양기범이 먼저 찾아왔다.양기범은 양요한과 달랐다. 양요한은 일심전력으로 자신의 약품 연구개발을 했고, 양기범은 졸업하기도 전에 병원에 들어갔는데 3년의 시간으로 이미 주임으로 승진했다.그녀와 이도윤의 일에 대해 양기범도 대충 짐작이 갔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지아야, 이렇게 빨리 또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몸은 괜찮아?”“열은 이미 내렸어
요 며칠 이도윤은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김민아만이 소지아를 돌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그 남자 귀신에 홀린 거 아니야?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지? 너와 이혼했다가 또 네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눈에 거슬리고, 지금은 또 네가 꾀병을 부려 자신을 속였다고 하다니. 그렇지 않으면 네가 무당을 찾아가봐.소지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남자는 신들린 것이 아니라 병이 있는 거야.”이틀간의 휴식을 거쳐 소지아는 위의 고질병을 제외하고 다른 것은 기본적으로 이미 회복되었다.그 후, 양기범은 그녀에게 다시 한번 검사를 해줄 것을 제기하였지만 소지아는 웃으면서 거절했고 다른 병원에서 이미 검사를 받았고 지금 치료 중이라고만 하였다.양기범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고 이틀 동안 암암리에 조사하다 답을 얻었다.“민아도 왔어?” 양기범은 흰 가운을 입고 안에 흰 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있어 무척 잘생겼다.김민아는 이도윤에 대한 욕설을 멈추고 그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쯧쯧, 정말 반장답다. 이 작업복은 다른 사람이 입으면 전문가에 원장이지만 반장이 입으니 아주 유혹적이야.”양기범은 온윤하게 웃으며 자신의 가슴에 단 전문가의 이름표를 가리켰다.“민아 너, 나의 얼굴을 의심할 수 있지만, 내 전공을 의심할 수는 없어.김민아가 몇 마디 농담을 하자 양기범은 줄곧 웃음기가 가득했다.“지아야, 다시 퇴원검사를 하면 퇴원할 수 있을 거야.”“민아야,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갔다올게.”김민아는 입안에 체리를 가득 쑤셔 넣었다.“내가 같이 가줄까?”소지아는 손을 흔들었다.“아니야, 그냥 일반적인 검사야.”말하면서 그녀는 양기범과 나란히 밖으로 나갔다.검사실.원래의 의사는 이미 떠났고 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앉아.” 양기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소지아는 마음이 좀 조급해져서 앉아자마자 얼른 입을 열었다.“뭘 알아낸 것 같군.”양기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의 웃음을 거두었다.“네 말은 틀리지 않았어. 확실히 어
지아를 바라보는 장민호의 창백한 얼굴에 갈망이 스쳤다.“지아 씨, 나랑 함께했던 지난 2년 동안, 단 한 순간이라도 저를 좋아한 적 있었나요?” 차갑게 장민호를 응시하는 지아의 눈빛에는 얼음처럼 냉랭한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아니요, 늘 당신의 죽음만을 바랐어요.” 장민호가 쓸쓸히 웃었다. “그랬군요.” 모든 일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법이었다. 탕!놀란 새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붉은 선혈이 땅에 흩뿌려졌다. 장민호는 무덤의 차가운 사진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미연아, 너한테 빚진 건 전부 갚았어...” 지아는 눈앞에서 연이어 죽어간 사람들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이 조여오는 고통을 느꼈고, 천천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미연아, 우리의 복수가 이렇게 끝이 나네. 이젠 너도 편히 쉬어.” 지아는 이날을 너무도 오래 기다려왔지만, 복수를 끝낸 후에는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하기만 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금, 따뜻한 봄바람 속에서 해경의 뒤를 쫓는 무무의 발목에서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해경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외쳤다.“어서 잡아봐!” 멀리서 꽃으로 화환을 엮던 소망이 지윤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허리 좀 숙여봐.” 지윤은 순순히 허리를 숙였고, 소망은 지윤에게 화환을 씌워주었다.“와, 정말 잘 어울린다!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 지아는 어린 시절의 도윤을 보듯 따스한 눈길로 지윤을 바라보았다. “자기야.”바로 그때, 지아의 귓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가 고개를 돌리자, 한쪽 무릎을 꿇은 도윤의 모습이 보였다.도윤이 한 손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든 채 말했다.“나랑 다시 결혼해 줄래?” 아이들이 옆에서 환호하며 소리쳤다.“결혼해요! 결혼해요!” 지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도윤 씨...”도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지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지아야, 다시는 너한테 상처 주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소망이 꽃으로 만든
사랑에 미친 장민호는 이 모든 것이 지아가 2년에 걸쳐 설계한 함정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지아가 도윤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순간에야 자신의 정체가 이미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끝났구나...’비록 소씨 가문 사람들이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심세호와 조경선, 그리고 소시월이 힘을 합쳐 저지른 일들로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으니, 소씨 가문 사람들이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닌 셈이었다. 심지어 소시영 또한 그들의 희생자가 되었고, 젊은 나이에 영면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아가 시영의 무덤 앞에서 향을 올리며 말했다.“언니, 다음 생엔 꼭 행복하게 살자. 이번 생에는 내가 가족들을 잘 돌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바로 그때,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 한 장이 지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마치 시영이 지아의 말에 응답하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소영수는 소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강렬한 기세로 돌아왔고, 환희 역시 마침내 안식의 땅에 묻혔다. 환희의 장례식은 비밀리에 치러졌지만, 부남진은 몰래 그곳을 찾았다. 부남진과 소영수는 무덤 앞에서 서로를 마주했는데, 생전 환희에게 가장 중요했던 두 남자가 환희가 죽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한 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추는 가운데, 눈가가 붉어진 부남진은 가지에서 가장 어린 복숭아꽃 한 송이를 꺾어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그 순간, 지아의 눈에 노인이 아닌 아침 햇살 속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낸 젊고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 비쳤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조경숙의 눈도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지아는 장민호와 소시월을 데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산속은 한창 따듯한 봄이었다. 산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강미연의 무덤 앞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소시월은 숨이 가쁜 상태로 강미연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장민호는 무덤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런 날이 올 줄
“오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지아는 루이스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기에, 지아가 이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시후뿐이었다. “지아야, 가까이 오지 마. 여긴 너무 위험해!”시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지자,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실험은 곧 성공할 거야. 저 아이는 환희의 후손이라, 몸속에 환희와 같은 피가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 순간, 지아의 얼굴빛이 달려졌다.‘스승님이 나한테 유독 신경 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 예전의 지아는 그것이 자기 몸과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루이스는 처음부터 지아의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이었다. 루이스가 말한 ‘생체 개조 계획’도 사실은 환희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저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할머니를 부활시키려고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다니!’ ‘하마터면 개조 계획이라는 거짓말에 깜빡 속을 뻔했어!’ 백발이 성성한 소영수가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루이스, 그만둬! 환희는 이미 죽은 지 오래야. 환희의 혼도 이미 윤회에 들었을 텐데 부활이라니, 그건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야!” “네가 그동안 저질러온 실험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지 알아? 아,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네 과거 실험 데이터를 살펴봤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실패했더군. 그런데도 네가 저 아이를 건드리지 못한 이유는...”소영수가 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아이가 환희의 핏줄이고, 환희와 닮은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었어. 혹시라도 실험에 실패할까 봐 저 아이를 건들 수 없었던 거야, 그렇지?” 지아는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고, 환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느꼈다.‘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목숨을 잃었을 거야.’ 루이스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내 최고의 실험 대상이야. 어서 스승인 나를 도와주렴.” 시후와 도윤이 동시에 지아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섬에 도착한 지아는 섬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섬 곳곳에 있던 로봇들은 사라진 듯했는데, 원래라면 섬에 내리자마자 로봇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섬 가장자리에 밀집한 수많은 군함이 눈에 띄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외국 민간 무장 단체와 용병들이 사용하는 군함 같았다. ‘대규모 인원이 섬에 상륙한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지?’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가 지아를 인체 개조 대상으로 삼으려 했음에도 지아는 루이스가 살아남길 바랐는데, 루이스처럼 뛰어난 과학자가 유명을 달리한다면 큰 손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자기야, 진정해. 이 섬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윤은 지아를 재빨리 진정시켰다. 이렇게 많은 군함이라면 분명 강력한 무기를 많이 실었을 테지만, 섬의 꽃과 나무, 건물들은 여전히 온전했다. “아니야, 이 섬에는 원래 사람이 많지 않았어. 대부분 로봇이었단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오빠는 어디 있는 거지?” 지아는 며칠 전 시후가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 여기에 왔던 것을 떠올린 후,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섬 안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잠시 후, 지아는 겨우 작동하고 있는 한 로봇을 마주했는데, 로봇에서는 전기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 몸체에서는 쇠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이스 스승님은 어디 있어?” 지아가 다급히 물었지만, 이미 언어 기능을 상실한 로봇은 전자 화면에 두 글자를 표시할 뿐이었다. [뒷산.]‘뒷산이라니!’뒷산은 루이스가 지아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다. ‘거기엔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지아는 미친 듯이 뒷산으로 달려갔다.그곳에는 수많은 로봇과 인간들이 쓰러져 있었고, 원래 뒷산 입구를 막고 있던 기계 문도 강제로 파괴된 상태였다.‘큰일이네. 루이스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의 로봇도 많은 수를 자랑했는데, 상대는 그보다
그날, 부남진과 소임호는 단둘이 오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소씨 가문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단지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하지만 민연주는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갑자기 이렇게 많은 자손이 생기다니, 만약 저 사람들이 모두 부씨 가문 사람이 된다면, 내 아들과 딸에게 돌아갈 재산이 줄어들진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법이다. 정말 이런 상황에 닥친다면, 그 누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소임호와 부남진이 이야기한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은 바로... 소씨 가문 사람들이 소임호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임호는 부씨 성으로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즉, 소임호의 어머니가 소영수와 결혼한 이상, 소임호를 비롯한 그 자손의 생에는 소씨 가문 사람들에 속했기에, 부씨 가문과는 친척 관계로 왕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부남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영수가 자기 자손들을 잘 대해준 것을 생각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소임호의 자손들에게 잠시 부씨 가문에 머무르며 상처를 치료해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지아는 돌아온 이튿날 아이들을 데리고 묘지로 갔는데, 도윤과 함께 환희와 소계훈을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묘지는 산속에 있었고, 산에는 복숭아나무와 배나무가 활짝 꽃을 피워 푸른 신록이 빛나고 있었다. 소계훈의 묘 앞에는 이끼가 조금 늘어나 있었는데, 지아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오랫동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아빠, 드디어 제 가족을 찾았고, 배후의 손도 밝혀냈어요.” “유일하게 아쉬운 건... 그 여자를 데리고 와 아빠의 묘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도록 하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저는 이제 성장했고, 다른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도윤은 지아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계훈의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를 놓았다. “기대를 저버려서 정말 죄
지아 일행은 다시 소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시후가 관리 중인 소씨 가문은 이미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시하의 다리도 많이 회복되어 이제는 더 시아 장애를 가장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시언의 건강은 단기간에 완전히 회복될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띄게 좋아졌고, 소임호 역시 지아가 떠나기 전보단 훨씬 건강해 보였다. 소시월이라는 사람 때문에 소씨 가문은 거의 전멸할 뻔했지만, 지금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아가 돌아오자 소임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지아야, 시후한테 네 몸에 독벌레가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다 나았으니까요. 그런데... 소시월은 아마 바닷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요.” 소임호가 지아를 단단히 껴안으며 말했다.“괜찮다, 괜찮아. 난 그저 너희들만 무사하면 그만이야.” 짧디짧은 시간에도 몇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소임호의 모습을 보며 지아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엄마 쪽 소식은 없는 거예요?”“시후가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는데, 아직 추적 중이란다. 참, 부씨 가문에서 우리가 한 번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최근 부남진은 신분상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소씨 가문 사람들이 본국으로 가야만 했다. 마침 지아도 다른 아이들이 그립던 터였다.“좋아요. 아이들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그렇게 가족들은 전용기를 타고 본국으로 향했다. 본국은 이미 초봄의 시기로 접어들어, 추운 겨울을 지난 후 생기가 넘치는 대지를 뽐내고 있었다. 나뭇가지엔 새싹이 돋았고, 벚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었고, 무무는 연한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지아의 곁을 따랐다. 도윤도 모처럼 정장을 입지 않고 모녀와 함께 커플룩을 맞춘 듯한 연한 초록색 줄무늬 셔츠와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윤은 차 문을 열고 무무를 안아 내렸다. 세 사람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눈길을
배신혁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심규철은 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고, 머릿속엔 온통 한대경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이 가득했다. ‘낡은 민간 보호시설에서 삼류, 사류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란 걸로도 모자라, 그 무엇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잃는 것도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이영화가 세상을 떠난 이후, 심규철은 심장후에 대해 그다지 마음을 쏟지 않았지만 물질적인 부분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친아들을 찾은 지금, 심규철은 가슴 한편이 아려져 왔다. ‘그 결혼이 아들의 유일한 소망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어.’ 한편, 지아는 바닷가에 서서 멀리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시월은 이미 바다 밑에 잠겼을 테지만, 지아의 마음은 조금도 평온하지 않았다. ‘죄의 근원이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야? 우리 소씨 가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고, 엄마는 아직 행방불명 상태인데.’ 지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아직 젊은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한대경이 물었다. 지아의 옆에 털썩 앉은 한대경은 바닥의 모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한대경은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앉아봐. 별건 아니고, 그냥 얘기나 좀 하자고.” 지아는 한대경을 한 번 흘긋 보고,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난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아니, 조선시대도 아니고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거야, 뭐야?”한대경은 지아가 자신을 뱀 보듯 피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듯 말했지만,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한대경,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순 있어도 그 이상은 불가능해.” 그 순간, 갑자기 다가온 한대경이 짙은 남성미로 지아를 압도했다. “소지아, 진짜 날 피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나한테 희망을 주지도 말았어야지!” “정말 미안해, 한대경.” 지아는 그 임무에 한대경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터였다. “시도도 해볼 수 없다는 거야? 단 한 번이라도?”한대경
심규철은 약간 지친 듯했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거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은 것 같군.’ ‘이 세상에 30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들이 만나자마자 가족 걱정은커녕 결혼하겠다고 소리치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리고 평범한 여자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상대는 이미 이혼한 데다 아이를 넷이나 데리고 있는 여자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가장 골치 아픈 건, 소지아의 전남편이 내 여동생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이야.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잖아?’ ‘손바닥도 손등도 모두 살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심규철은 매우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한대경은 심규철의 곤란한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나는 끊었단다.”심규철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한대경은 혼자 담배를 피우며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모습은 공사장의 현장 소장과 같았는데, 도무지 한 나라의 군주다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심규철은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대체 그동안 어떻게 자란 거지?’ “되는지 안 되는지 확답이나 주시죠.”한대경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하자, 심규철은 아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쉽지 않을 거라면 어쩔 셈이지? 그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야. 물론 두 집안의 사정을 따지는 건 아니란다.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면, 거지가 상대라 해도 바로 혼약을 허락해 줬을 거야. 하지만 상대는 소씨 가문 사람이라고.” “넌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소씨 가문에 문제가 좀 생겼어. 그 집안은 이미 진정한 소씨 가문과 관계가 끊긴 상태인 데다,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단 말이지... 이 결혼은 정말 쉽지 않을 거야.”한대경이 담배꽁초를 던지며 말했다.“그럼 안된다는 겁니까? 아버지라는 호칭을 쓴 게 아까울 지경이군요.” 한대경은 기분이 상한 듯 몸을 돌려 떠났고, 심규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야, 왜 저렇게 쉽게 포기
시름시름 앓던 심규철은 지금까지 자신이 낳은 친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외지에 버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아들이 수많은 겪었음에도 거대한 나무처럼 성장했다는 사실에 아주 놀랐는데, 거대한 나무는 맞지만, 어쩐지 그 나무는 조금 삐딱하게 자란 것 같았다. 부자지간임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은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진실이 드러났다면,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동적이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대경은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심씨 가문의 큰아들이라는 신분과 소씨 가문의 여섯째와의 혼약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이는 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복잡하니, 천천히 논의해 보자꾸나...”“제가 친아들이라면서요?”한대경은 성격이 급하고 불같았으며,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누군가의 설득 따윈 듣지 않았다. 한대경은 이미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관계를 철저히 파악했기에, 혼약의 존재를 알아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하마터면 혼약이라는 걸 전혀 몰랐을 뻔했잖아?’“그럼, 당연하지. 이미 친자 확인 결과도 나왔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금 소씨 가문 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지금은...”“어쨌든 저랑 결혼할 사람은 소씨 가문의 여섯째인 거죠?” “그래.”“그 혼약은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어른들이 정한 거고요?” “그래.”“그럼 됐으니, 어서 결혼부터 준비해 주세요.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심규철은 아들이 아주 성급하다는 것을 느꼈다.‘기다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잖아? 만약 이 상황이 올림픽이었다면 쟤는 분명히 부정 출발로 탈락했을 정도야.’ “결혼 같은 중대한 일보다는 네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하지 않니? 그토록 오래 떨어져 지냈는데, 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냐는 말이야.” 한대경은 냉담하게 말했다.“전혀요, 아버지는 이미 반쯤 땅에 묻혀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에 대해 제가 뭘 궁금해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