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산전검사를 앞두고, 지아는 긴장과 기대로 가득했다. 이번에 그녀는 지난번 임신했을 때보다 더욱 긴장해졌고 또 더욱 많은 신경을 썼다.내일이면 입체 초음파로 아이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지아는 더욱 흥분을 참지 못했다.지아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소계훈의 방에 도착했다. 소계훈은 이미 3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조금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는 마치 이런 방식으로 지아와 타협하는 것만 같았다. 소계훈의 몸은 아직 이 세상에 머물고 있지만, 영혼은 이미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른다.하지만 소계훈이 아직 숨쉬고 있는 한, 지아는 딸로서의 자신과 아버지인 소계훈의 연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그녀는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다.예전대로 소계훈의 몸을 닦아준 후, 지아는 잠시 책을 읽어주었고, 다시 소계훈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아빠, 내일이면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어요. 만약 이 말 들리면 빨리 깨어나시는 건 어때요? 난 즐거운 순간마다 아빠와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이제 몇 개월 뒤면 아이들이 태어날 거예요. 아빠가 만든 장난감들 다 잘 보관하고 있으니까 그때 아이들에게 전해줄 거예요. 그들은 틀림없이 엄청 좋아할 거예요.”지아는 수많은 말을 한 다음, 한쪽에 있는 기구를 보았지만, 모든 수치는 여전히 평온했고 소계훈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아는 한숨을 내쉬며 날로 야위어지는 소계훈을 바라보았고 목소리에는 약간의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아빠, 지금 내가 아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겠죠? 계속 아빠를 억지로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죄송해요, 하지만 내가 지금 곁에 남길 수 있는 게 정말 너무 적거든요. 아빠는 이제 남은 내 유일한 가족이라서 난 이대로 아빠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빠, 빨리 깨어나서 나와 아이 좀 보면 안 돼요?”하지만 소계훈은 여전히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지아는 하는 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아빠, 잘 쉬고 있어요. 내일 또 보러 올게요.”지아
노지혜는 많은 힘을 들여서야 아이의 얼굴을 찍을 수 있었고, 그 생김새는 방금 전의 아이보다 좀 더 청수하게 생겼다.“사모님, 이 아이는 사모님을 닮은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아들딸 쌍둥이에요.”지아는 눈물을 훔쳤다.“아들이든 딸이든 중요하지 않아. 두 아이 다 건강했으면 됐어.”“걱정 마세요. 아이의 발육은 모두 정상이라 아무런 이상도 없어요. 게다가 두 아이는 성격이 제각기 달라서 하나는 활발하고 하나는 조용하네요. 이따가 이 영상을 사모님 핸드폰으로 보낼게요.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보세요.”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에이, 고맙긴요, 다 제가 할 일인데요. 사모님도 안심하세요. 이제 곧 아이들과 만날 수 있을 거예요.”“응.”모든 검사를 마친 다음, 지아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았다.방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또 의사가 보낸 아이의 동영상을 미연에게 보여주었고, 미연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정말 귀여운 아이들이네요. 그들과 만나는 날이 너무 기대돼요.”지아는 자신의 배를 만졌다.“나도 엄청 기대하고 있어. 이 좋은 소식을 얼른 아빠에게 전해줘야지.”“그래요.” 미연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이제 나도 빨리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해 줘야겠어.”지아의 발걸음은 많이 가벼워졌고, 소계훈의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바로 입을 열었다.“아빠, 좋은 소식이에요. 아이들 아주 건강하고, 심지어 아들딸 쌍둥이에요. 게다가 하나는 장난기가 많지만 다른 하나는 엄청 조용하고요. 그런데 어느 게 장난꾸러기인지 아세요?”“정답은, 아빠 손녀가 개구쟁이고, 손자는 오히려 얌전한 거예요. 그리고 남자아이는 이도윤 그 나쁜 놈과 많이 닮았지만, 성격은 전혀 닮지 않았어요. 얼마나 웃기를 좋아하는지, 앞으로 웃을 때 엄청 귀여울 거예요. 아빠는 손자 손녀들 보고 싶지 않은 거예요? 빨리 깨어나세요. 아이들도 모두 할아버지가 보고 싶단 말이에요.”소계훈은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지아의 말에 응답하는 것 같았다.이를 본 지아는 얼른 소계훈의
이른 아침, 지아는 악몽 때문에 놀라서 깨어났다.악몽은 머릿속에 또렷이 떠올랐고, 지아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그동안 그녀는 줄곧 마음을 편하게 해서 여태껏 이렇게 무서운 꿈을 꾼 적이 없었다.침대에서 내려오자, 지아는 욕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물이 나오자, 볼록 나온 배 안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두 아이는 샤워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매번 지아가 목욕할 때, 특히 활발했다.수온은 높지 않았고, 부드러운 물방울이 뱃가죽에 떨어졌다.남들은 임신하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몸에 털도 많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지아는 피부는 부드럽고 매끄러워 가장 아름다운 임산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녀는 한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를 달했다. 아이들의 존재 때문에 지아도 점차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욕실에서 나왔지만, 기분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텅 빈 방은 더욱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래서 지아는 휴대전화를 보았다.‘몇 달 동안 외부와 연락이 닿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이상하게도 인터넷에서는 이미 도윤과 백채원에 관한 아무런 소식도 검색할 수 없었는데 마치 누군가 일부러 기사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이 석 달 동안, 지아는 도윤과 만난 적이 없었다.‘그 남자는 지금 백채원의 곁에서 좋은 남편 행세하고 있겠지.’sns를 뒤져보니, 민아는 밤만 되면 슬픈 글을 올렸고, 이튿날에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했다. 보아하니 그녀 최근의 상태도 나쁜 진 않은 것 같았다.‘사장님은 까다롭지만 돈은 정말 많이 주나 보네.’그리고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도 큰 변화가 없었다.지아의 시선은 그중 한 사람이 공유한 링크에 떨어졌고, 그것은 한 개인 소장품 경매였다.지아는 원래 이런 장소에 별로 흥미가 없었기에, 전에 소씨 집안에 있었던 골동품이 있는지만 살펴보았다.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정말 자신의 아빠가 줄곧 말한 용과 봉황 모양으로 된 한 쌍의 펜던트를 보았는데, 그것은 소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급이라 할 수 있는 펜던트였다
요 며칠, 미연은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다. 심지어 종래로 피부를 관리하지 않던 사람이 특별히 팩을 하기 시작했으니, 그 선배란 사람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미연은 그 누구보다도 이번 짧은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날이 다가오자, 그녀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지만, 또 좀 긴장했다.“아가씨, 저 이 옷 입으면 너무 못생기지 않았나요? 선배는 외국에서 돌아왔으니 제가 촌스럽다고 생각하겠죠?”지아는 원래 자신의 옷을 미연에게 주려고 했지만, 그녀의 가장 싼 옷도 가격이 수천 만 정도 했다.사귀는 것을 전제로 한 이상, 지아는 미연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두 사람도 앞으로 다른 문제 때문에 다투거나 실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아니, 만약 그 사람도 너를 좋아한다면, 네가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다고 생각할 거야. 안심해, 자신감 가지고 공항으로 가. 부담 갖지 말고.”미연은 곁에 앉은 지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심플한 하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머리를 말아 올렸으며, 액세서리나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백조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네, 저도 아가씨 따라배울 거예요. 침착하자, 침착해, 선배도 그냥 남자일 뿐, 부담 가질 필요 없어.”미연은 혼잣말을 하다 또 긴장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건 선배잖아! 내가 그동안 줄곧 짝사랑해온 남자! 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는데…….”말하면서 미연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받쳐들며 또 다시 그 선배에게 빠지지 시작했고, 지아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구제불능이군.”도중에 미연은 지아의 옆에서 재잘거리며, 선배인 장민호가 얼마나 우수하고 또 얼마나 멋지게 등장했는지를 이야기했다.지아는 자신이 캠퍼스 장르의 연애소설까지 쓸 수 있다고 느꼈다.차가 경매장의 지하 차고에 멈추자, 미연은 잠시 이 화제를 멈추었다.“아가씨, 정말 제가 같이 안 가줘도 되는 거예요?”“응, 가서 선배랑 데이트
하지만 부수기도 전에, 문은 안에서 열렸다.지아는 볼록 튀어나온 배를 안고 문 앞에 서 있었고, 염경훈의 절반 빨개진 얼굴과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경호원을 바라보았다.도윤의 사람은 그와 성격이 같았는데, 냉정하고 말이 적으면서 또 차분했다.그들은 종래로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도, 또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들의 직책은 지아를 보호하는 것이었기에 염경훈도 줄곧 참으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고 하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여전히 그만두려 하지 않고 더욱 날뛰며 심지어 그의 뺨을 때렸다.이때 지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낯선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말투를 들으면 A시 사람 같지가 않았고, 온몸에 사치품으로 가득 뒤덮여 마치 걸어 다니는 패션모델 같았다.지아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여자는 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시선은 마지막에 그녀의 배에 떨어졌다.“뭐야, 무슨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냥 임신한 여자잖아.”그녀는 손에 든 2억 정도 하는 핸드백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며 지아에게 건네주었다.“이 방, 나 마음에 들었으니까 나한테 양보해.”그 위에는 공이 8개 적혀 있었지만, 지아는 보지도 않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사과해.”이 말이 나오자,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뭐?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개한테 사과하라니?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부는 거야? 난…….”찰싹하는 소리가 나더니 지아는 아주 깔끔하게 뺨을 날렸다.여자는 바로 멍해졌다. 그녀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지아를 보며 말문이 막혔고, 많이 연약해 보이는 임산부가 갑자기 손을 들 줄은 정말 몰랐다.“네가 누구든 관심없어. 하지만 내 경호원에게 사과하려 하지 않는 이상, 나도 내 방식으로 너와 ‘소통’할 수밖에 없어.”지아는 염경훈이 원칙 있는 남자로서 절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내가 때리면 되겠네.’“이 미친년이 감히 나를 때려? 우리 엄마 아빠도 나 때린 적이 없는데! 오늘 네 뱃속의 아이까지 모두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 속에서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지아의 눈에는 많은 복잡한 정서가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죄책감을 드러냈다.지아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기로 약속했고, 소시후는 마취까지 했지만, 마지막 고비에 그녀는 뜻밖에도 도윤에게 끌려갔다.그 후 지아는 심지어 사과조차 하지 못했다. 돌아온 후, 도윤은 그녀의 번호를 바꿨고, 지아는 소시후와 연락할 수 없었기에 미안하다는 말을 줄곧 전해주지 못했다.그녀는 두 사람이 이곳에서 만날 줄은 전혀 몰랐다. ‘소 대표님 전에 귀국하지 않았어? 근데 왜 또 A시에 왔을까?’지아는 자신을 원망했고, 소시후는 그녀를 본 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는데, 간단하게 인사를 한 셈이었다.서미나는 여전히 날뛰고 있었는데, 지아가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더욱 화가 났다.“임신한 년이 지금 또 누굴 보는 거야? 아이까지 가졌는데, 가만히 있지 않고 다른 남자를 바라보다니?”“이봐요, 말을 좀 똑바로 하죠.” 염경훈은 싸늘하게 경고했다.“말을 똑바로 하라고? 그럼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지.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잡종인지, 감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른 남자와 눈빛을 주고받다니. 어머, 이 여자 설마 어느 죽어가는 영감의 애인인 건 아니지?”서미나는 멍청하게도 주위 사람들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은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사람들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말 다 했어?”도윤은 진봉 진환을 데리고 나타났고, 그의 등장과 함께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와 사람들은 저절로 입을 다물며 옆으로 물러났다.그의 눈빛은 바로 지아에게 떨어졌다. 비록 매일 미연이 보낸 영상과 사진을 봤지만, 도윤은 사실 이미 3개월 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임신한 후, 지아의 전체적인 느낌은 아주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지아가 처음 임신했을
서미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도윤 오빠가 언제 이런 여자와 결혼했지?’도윤이 결혼하던 날, 서미나는 비행기가 연기되었는데, 후에 그가 한 여자 때문에 결혼식을 참가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그 기사에는 지아의 사진이 없었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어디 있어!’서미나의 표정은 아주 풍부했고, 여전히 새언니라는 호칭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도윤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목소리가 차가웠다.“이제 그만들 가보시지.”그의 말에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떠났고, 아무도 남을 엄두가 없었다.그리고 도윤은 문을 닫았다. 서미나는 그의 사촌 여동생이니, 이 일은 그들끼리 조용히 해결하면 됐다.서미나는 뺨을 두 대 맞고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여전히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오빠, 정말 이 여자와 결혼했어요? 그럼 유진이는요? 줄곧 오빠만 기다리고 있는 유진이는 어떡하냐고요! 전에 그 백채원과 결혼하려는 것을 알고, 유진이는 너무 슬픈 나머지 오랫동안 입원했는데, 만약…….”‘유진?’‘또 내가 모르는 여자가 나왔군.’물론 지금의 지아는 이미 도윤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과거에 관심이 없었다.도윤은 싸늘하게 서미나의 말을 끊었다.“서미나, 지금 네 새언니한테 사과하라고 했어!”서미나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이 싸늘하고 도도한 사촌 오빠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도윤은 성격이 비록 쌀쌀했지만, 줄곧 그들을 잘 챙겨주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이 여자 때문에 그녀를 때렸다.서미나는 마음이 달갑지 않았지만 도윤을 더욱 화나게 할까 봐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미안해요, 새언니. 방금 새언니의 신분을 몰라서 그런 거니까 이렇게 사과할게요.”“사과는 받겠지만 날 새언니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우린 이미 이혼했거든.”말이 끝나자 지아는 더 이상 서미나를 상대하지 않고 몸을 돌려 창가로 갔다. 이제 경매가 곧 시작될 것이다.이 말에 서미나는 눈빛이 밝아졌다.“오빠, 두 사람 이혼했어요? 어쩐지 가족들 앞에서 그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발표한 적이 없더라니. 그 여자
지아는 심장이 덜컹거렸다. 이 아이는 바로 도윤의 유일한 약점이었고, 지아는 그때 자신이 어떻게 이 두 아이를 지켜냈는지를 잊지 않았다.만약 도윤이 또 한번 미쳐버린다면, 지아는 정말 견딜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도윤은 서미나를 호되게 노려보았다.“입 닥쳐.”“흥, 오빠 만약 내 말 듣지 않으면, 앞으로 틀림없이 이 여자에게 속을 거예요.” 서미나도 바보가 아니어서 더는 도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이때, 새로운 소장품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장미꽃 모양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이것은 현재 가장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인 Niko가 직접 디자인한 장미 시리즈였다.대형 스크린에는 이 목걸이가 여러 각도에서 선보이는 광택과 디자인 디테일이 나타났고, 줄곧 자고 싶던 지아는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도윤은 지아가 주얼리에 관심이 있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얼른 물었다.“마음에 들어?”하지만 지아는 오히려 한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입 다물고 말하지 마. 나 지금 소개 듣고 있잖아.”도윤은 말을 하지 않았고, 한쪽에 있던 서미나는 오히려 눈을 크게 떴다. ‘오빠가 뜻밖에도 이 전처를 이토록 사랑하고 있다니!’아래의 경매인은 지금 이 목걸이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이것은 Niko가 많은 정성을 기울여 디자인한 것으로, 그의 여동생이 19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선물로 그녀에게 주었다.목걸이, 팔찌, 그리고 귀걸이는 하한 세트였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목걸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팔찌와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이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욱 높은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지아는 여러 번 확인해 보았는데, 그녀는 확실히 잘못 보지 않았다.그녀는 그 귀걸이를 본 적이 있었다. 디자인이 독특한 데다 또 다이아몬드가 커서 그녀는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잊히지 않았다.지아는 전에 이예린에게 납치되어 바다로 뛰어들었을 때, 한 배에 숨었고, 그 침몰한 배에서 여자의 시체를 보았다.귀걸이는 바로 그 시체의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