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병원에서 변진희를 돌보았다. 그녀의 병실은 단칸방에 큰 침대가 있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지아가 힘들게 자는 모습을 보고, 변진희는 올라와 함께 자자고 말했다.이런 느낌은 매우 신기했다. 지아는 10여년을 기다렸지만 단 한 번도 어머니와 같이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오히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후에야, 그녀는 엄마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다.변진희는 지아의 한 손을 꼭 잡으며 매우 온화하게 말했다.“지아야, 내 친딸이 누구든, 내가 널 무시한 건 사실이야. 요 며칠 침대에서 나도 많은 것을 회상했는데, 과거에 나는 정말 너와 계훈 오빠를 모질게 대한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것도 다 하느님이 내린 벌일 거야. 나는 이미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 이번 생에 나는 정일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으니 이제 아무런 후회도 없어.”이 말을 할 때 지아는 바깥의 불빛을 빌어 변진희가 행복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지아야, 네가 나를 미워하고 나를 엄마로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시종 너를 나의 딸로 여겼으니까. 그때 엄마는 네 결혼식에 가지 못했고, 심지어 네가 이혼을 당하며 온갖 억울함을 당했을 때도 널 도와주지 못했지. 내가 정말 너에게 많은 것을 빚졌구나. 그리고 그동안 난 투자를 하며 돈을 좀 모았어.”“네 아버지가 사고 당했을 때, 나는 이미 수속을 밟았고, 이 돈은 이미 정일더러 네 카드에 넣으라고 했어.”변진희는 베개 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지아의 손바닥에 놓았다.“이것은 엄마가 널 위해 모은 혼수야. 많진 않지만 내 마음이니까 받아.”지아는 이 순간, 과거의 모든 괴로움이 모두 사라진 것 같다고 느꼈다.“난 돈이 부족하지도, 돈을 쓸 경우도 거의 없어요.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감격해하고 있고요.”“받아, 적어도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좀 편해질 테니까. 지아야,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 좀 하면 안 될까?”“말씀하세요.”변진희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한 글자 한 글자
백채원인 것을 보고 변진희는 좀 놀랐지만 곧 기뻐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백채원을 보면 줄곧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곤 했다.“채원아, 왔어? 어서 앉아.”백채원은 지난번에 자기가 그렇게 지나친 일을 저질렀으니 변진희가 틀림없이 자신을 몹시 미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아무런 책망을 하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변진희는 도리여 자신이 와서 아주 즐거워했다.백채원은 손에 든 과일 바구니를 놓았다.“난, 난 아줌마 보러 왔어요. 지난번 일은 고의가 아니었고, 그냥 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기분이 좋지 않아서…….”“괜찮아. 아줌마는 화가 나지 않았어. 너야말로 네 아버지와 다투지 마. 네 아버지는 그때 화가 나서 널 때린 거야. 난 이미 그를 한바탕 꾸지람했고.”변진희는 백채원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종래로 없었던 일이었다.백채원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변진희의 야윈 얼굴만 훑어보았다.변진희는 확실히 미인이었고, 백채원은 지금까지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그때의 변진희는 젊고 아름다웠는데, 지금 병상에 누워 초췌하고 얼굴이 창백한 여자와는 확연히 달랐다.심지어 새까맣고 윤기가 흐르던 그 머리카락에서도 백발이 송골송골 돋아났다.“난 아줌마를 그렇게 대했는데, 왜 날 원망하지도 않는 거예요?”백채원은 변진희를 이렇게 ‘학대’한 적이 한 두 번 아니었다. 전에는 변진희가 마음 넓은 척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십여 년 동안 줄곧 그런 연기를 하겠는가?변진희는 고개를 저었다.“원망하긴, 넌 아직 어리잖아.”그녀는 백채원의 손을 잡았다.“채원아, 나도 네가 줄곧 날 미워하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어. 그동안 나는 네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보면 실패한 것 같구나. 나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탁 하나 하면 안 될까?”백채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목소리가 답답했다.“말해요.”“내가 떠나면, 네 아버지는 틀림없이 매우 슬퍼할 거야. 그는 너란 딸 하나밖
소지아는 어릴 때 자주 오던, 소씨 별장과 멀지 않은 골목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오래된 거리로서 많은 가게들은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작은 골목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무척 떠들썩했다.그녀는 만둣집에 들어갔다. 지난번에 여기에 왔을 때, 지아는 시집을 가기 전이었고, 이 시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인아주머니는 열정적으로 그녀와 인사를 했다.“아가씨, 정말 오랜만이야.”“그러게요, 여긴 장사가 여전히 잘 되는군요.”“다 아가씨 덕분이지. 여전히 전에 시키던 걸로 주문할 거야?”“네, 2인분이요, 그리고 포장해 주세요.”“그래, 잠깐만 기다려.”지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옆의 가게에 가서 떡을 좀 샀는데, 변진희도 10여년 동안 먹지 못했으니 틀림없이 매우 그리워할 것이다.그녀가 먹을 것을 가득 들고 황급히 만둣집으로 돌아갈 때, 뜻밖에도 한 사람과 부딪쳤다.“미안해요.” 지아는 서둘러 사과했다.고개를 들자 그녀는 그 잘생긴 얼굴을 발견했고, 놀라서 소리쳤다.“당신이군요.”남자의 눈빛은 지아의 얼굴에 떨어지더니 놀라움을 느꼈다.“당신은…….”이 사람은 바로 지아가 전에 병원으로 데려다준 사람이었다. 그날 그녀는 묘지에 가야 해서 남자가 깨어나기도 전에 황급히 떠났다.“몸은 좀 어때요?”지아가 물었다. 남자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해 보였는데, 앙상한 몸은 진귀한 양복에 싸여 있었고, 그의 존귀함을 감출 수 없었다.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아는 남자가 충격을 느낀 것을 보고 자기소개를 했다.“그날 거리에 쓰러졌을 때, 내가 병원에 데려다주었어요.”남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너무 닮았어.”“네?”“아니에요, 그날 정말 고마웠어요. 아가씨 지금 시간 있나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점심을 사고 싶은데.”지아는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뭐 그런 일 가지고. 난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해요. 그러나 안색이 별로 좋지 않는 것 같은데, 병원에 가서 잘 검사해 봐요.”말하면서 지아는 떠나려 했고, 남
다음 모퉁이에서 진봉은 가속페달을 밟았고,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차들이 나타났다.지아는 뒤를 바라보았는데, 그 뮬산은 중간에 갇혔고, 앞뒤 좌우로 4대의 차가 나타났다.‘누굴까?’몇 분 후, 뮬산은 강제로 멈추었다.진봉은 성질이 사나워서 지아를 달랜 다음 바로 차에서 내렸다.‘대체 누가 이렇게 겁도 없이 우릴 미행한 거지?’뮬산은 비록 강제로 멈추었지만, 검은 유리가 안의 모든 것을 막았고, 진봉은 건달처럼 차창을 두드렸다.“스스로 내려올래 아니면 내가 문을 부술 때까지 기다릴래?”주위의 십여 명의 경호원은 일제히 차를 포위했고, 길가의 행인들은 호기심에 모두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방탄유리가 천천히 내려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릎에 걸친 손이었다.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에는 눈부신 사파이어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그리고 네이비 색 양복은 빳빳했고, 셔츠조차도 주름이 없었다.남자의 잘생긴 턱선이 조금씩 드러나더니 그 칠흑 같은 동공은 진봉과 마주쳤다.진봉은 비록 겁이 없고 머리도 둔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의 신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소시후 대표님.”전에 진봉은 도윤을 따라 국제금융회의에 참가했는데, 소시후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남자는 이렇게 앉아 있기만 해도 비길 데 없는 귀티가 났다.“무슨 일이지?” 진봉을 바라보는 소시후의 좁고 긴 눈은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진봉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귀신을 잡다 오히려 귀족을 잡았다니.“죄송합니다.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오해?” 소시후는 차갑게 웃었는데, 진봉에 대답에 마음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진봉은 도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또 무엇을 설명하려 했지만, 이때 지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확실히 오해예요.”방금 전까지만 해도 진봉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눈빛은 순식간에 바뀌더니 그는 심지어 차 문을 열고 내려왔다.지아는 먼저 설명했다.“최근 안 좋은 일이 좀 생겨서 집안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어서요. 악당에게 찍힌 줄 알고 그런 것이니
지아는 급히 병원으로 돌아갔고, 변진희는 이미 응급실에 실려 갔다.백정일은 멍하니 수술실 문 앞에 서 있었는데, 지아는 손에 먹을 것을 가득 들고 있었다.“아저씨,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제가 떠나기 전에 엄마의 상태는 나름 괜찮았고, 심지어 만두까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구급실에 실려간 거예요?”백정일은 지아가 손에 들고 있는 먹을 것을 보고 목이 멨다.“갑…… 갑자기 피를 흘리기 시작했어.”지아는 재빨리 손에 든 물건을 의자에 올려놓고 백정일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매우 거칠었고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그렇게 강하고 의지가 굳센 남자가 지금 몸이 떨릴 정도로 두려워하자 지아는 위로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예요. 아저씨, 꼭 강해져야 돼요.”백정일은 공포를 느꼈고,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이번에는 달라. 넌 피투성이가 된 진희를 못 봐서 그래. 아마도 이번에 버티지 못할 것 같구나.”지아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도 의대를 나왔기에 의문이 들었다.“제가 떠난 후, 엄마 혹시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이상해서 그래요. 백혈병을 발견했을 때, 말기가 아니었고 엄마도 그동안 줄곧 병원에서 요양을 했잖아요. 비록 병세가 조금씩 악화되겠지만 이유 없이 갑자기 이렇게 되진 않을 거예요.”“지아야, 그게 무슨 뜻이야?”지아는 백정일이 냉정해진 것을 보고 그제야 손을 놓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아저씨, 반년 전에 우리 아빠도 병원에서 휴양을 하셨거든요. 그때 그의 몸은 이미 많이 좋아졌고, 각 방면의 상황도 모두 안정적이었어요. 그날, 간병하던 아주머니는 우리 아빠에게 아침밥을 사주러 갔는데, 돌아왔을 때 그는 바로 응급실로 실려갔어요. 비록 목숨은 구했지만, 식물인간이 되었고요.”지아는 멈추더니 계속 말했다.“처음에는 저도 아저씨처럼 병세가 악화된 줄 알았는데, 후에 많은 일이 생겼고, 저는 그제야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부터 식물인간으로 된 것이 모두 남이 일부러 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지난번에 제
백채원이 대답했다.“그야 당연히 가장 먼저 의사와 간호사를 불렀죠. 근데 아침에 뭘 잘못 먹었는지 배탈나는 바람에 난 화장실에 갔어요. 그리고 지금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달려왔고요. 아줌마는 괜찮은 거예요?”백정일은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더니 결국 고개를 저었다.“상황이 매우 좋지 않구나.”“아빠, 안심하세요. 아줌마는 별일 없을 거예요. 요 며칠 나도 집에서 많은 반성을 했는데, 전에 난 아줌마가 가식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야 아줌마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전에 아줌마를 그렇게 대한 자신이 정말 죄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좋아지면 앞으로 다시는 그녀를 화나게 하지 않을 거예요.”이 말을 듣고 백정일은 백채원을 껴안았다.“네 엄마는 괜찮을 거야. 우리 가족은 이번 고비를 넘길 거라고.”“네.”이 장면을 본 소지아는 마음이 복잡했다.결국 백채원은 전에 그렇게 모질게 자신을 대했고, 그들 사이에는 심지어 한 아이의 목숨까지 걸린 피맺힌 원한이 남아 있었기에, 사실 지아는 백채원이 행복하길 원하지 않았다.시선을 돌리려 할 때, 지아는 갑자기 백채원이 두 손으로 옷자락을 꼭 잡아당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정상인들은 이때 아마 자신의 아버지를 안고 위로를 하겠지만, 지아는 그녀의 표정에서 복잡한 기색을 보았다.긴장, 죄책감 심지어 두려움.잠시 후, 변진희는 다시 밀려나왔지만, 이번에 그녀는 깨어나지 못했다.백정일은 얼른 다가가서 물었다.“내 아내는 어떻게 됐지?”의사는 마스크를 벗었다.“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요. 비록 수술은 성공했지만 사모님은 이미 의식을 잃었거든요. 지금 중환자실에 보내 관찰을 좀 해야 하는데, 사모님의 이런 상황은 마지막 방법밖에 없어요. 지금은 반드시 빨리 이식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의사는 백정일의 얼굴을 힐끗 훑으며 말했다.“이번 달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네요.”백정일은 큰 타격을 입으며 몇 걸음 후퇴했다.“어떻게 이럴 수가.”“사모님은
도윤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는 지아와 이 화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지아야, 나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 도윤은 꿀 먹은 벙어리와도 같았다.지아는 싸늘하게 웃었다.“그녀는 우리의 아이를 죽였고, 날 2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게 만들었어. 심지어 지금은 이런 일까지 저질렀는데, 난 정말 궁금해. 당신이 매번 그녀를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그 이유가 말이야.”‘만약 이도윤이 정말 백채원을 사랑한다면, 또 어떻게 이렇게 내 환심을 사려 하겠어? 그는 종래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잖아.’“어떤 일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때가 되면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할게.”때가 되면. 지아는 대체 언제 그가 말한 그 때가 올지 몰랐다.그녀는 단지 자신이 이 일에 말려들어 집안이 망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좀 쉬어, 내가 가서 닭볶음탕 준비할게.” 도윤은 일부러 이 화제를 피하며 서둘러 주방으로 걸어갔다.솥을 열자, 음식의 향긋한 냄새가 물씬 풍겼고, 그는 나무 주걱으로 가볍게 휘저었다.핸드폰이 진동하자 도윤이 전화를 받았는데 진환의 목소리였다.“대표님, 조사 결과, 사모님은 확실히 소시후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단지 사람을 응급실에 보내 비용을 대신 지불한 후 급히 떠나셨고, 소시후와 다른 왕래가 없었습니다.”도윤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무척 불쾌했다.“소시후 쪽은 어떻게 된 일이지?”“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업무상의 일을 위해 온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사적인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몰래 소시후의 신체검사 보고서를 찾아냈습니다.”“무슨 병이지?”진환은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신기능 부전입니다.”“알았어, 사람 시켜 잘 감시해.”“네.”“참…….”도윤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고, 곁눈질로 문 쪽을 향해 바라보았는데 지아가 이미 위층으로 올라간 것을 발견하고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독충 쪽은 어떻게 됐어?”“아직은 결과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보호를 제공한 모양인
도윤은 진봉에게 분부한 다음 식힌 닭볶음탕을 들고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욕실에서 씻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아는 온몸에 물기를 띠고 나왔다.문을 밀자, 그녀는 도윤을 보았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그녀의 머리카락은 말리지 않아 축축하게 드리워졌고, 하얀 얼굴은 정교했으며, 잠옷은 그녀의 가녀린 쇄골을 드러냈다.도윤은 내색하지 않고 시선을 옮겼고 은근히 침을 삼켰다.이런 지아의 모습은 늘 그로 하여금 그 꿈을 생각하게 했다. 피부의 촉감조차도 너무 진실했다.심지어 도윤은 아직도 지아의 체온과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닭볶음탕 다 끓였는데, 와서 맛 있는지 좀 먹어봐.”이른 아침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지아는 아직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했고 위는 이미 은근히 아프기 시작했다.그녀는 백정일에 의해 여기로 끌려오면서, 약조차 가져오지 않았다.그것은 한달의 복용량이었는데, 그 약을 복용한 두 주일 동안, 지아는 위가 아프지도 피를 토하지도 않았다.주원은 약을 끊지 말고 반드시 매일 제때에 복용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그러나 돌아온 요 며칠 동안, 그의 전화는 줄곧 통하지 않은 상태였고, 약을 끊은 결과는 바로 위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래서 지아도 자신의 몸을 괴롭히지 않았다.“고마워.”지아는 도윤이 자신에게 약을 먹이려는 손을 피했다. 국의 온도가 딱이어서 그녀는 꿀꺽꿀꺽 단숨에 다 마셨다.도윤은 수건을 가져와 가볍게 지아의 머리를 닦아주었다. 마치 그녀가 깨지기 쉬운 도자기처럼 그는 말할 수 없이 조심스러웠다.지아는 그저 우습다고 여겼을 뿐, 그를 막지 않았다.배불리 먹은 다음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나 이제 잘래.”비록 지아는 지금 도윤과 다투지 않고 또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지만,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도윤은 그들 사이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떠날 수밖에 없다.“푹 쉬어.”지
시간은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고, 시월은 왜인지 모르게 더욱 불편해졌다. 분명 이건 소씨 가문의 내부 문제인데도 시월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반면, 소상현은 시월의 심정을 알 리가 없었는데, 머릿속이 온통 패배의 쓰라림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졌구나. 그동안 공들여 준비했는데도 결국 완패하고 말았다고.’ 소상현은 소임호가 단지 승자의 권리를 누리며 자신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려는 것이라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재호와 소윤성이 현장에 도착했는데, 두 사람은 비교적 평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소상현과 생각이 달랐다.소임호가 설령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한 어머니를 둔 이복형이었기에 굳이 소임호를 적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소씨 가문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형님, 괜찮으세요?”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부장경에게 눈길을 보냈다.“저분은...”소임호가 설명했다.“이분은 부장경 씨인데, 정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지. 오늘 이렇게 모두를 부른 건 우리 소씨 가문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야.” 역시나 소임호는 뛰어난 장악력을 보여주었다.사람들은 모두 부장경이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소임호의 단호한 태도에 중요한 이야기가 있음을 직감하고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최근 소씨 가문엔 많은 일이 있었고, 명담이도 세상을 떠났어. 진심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 소상현이 냉소를 지으며 비웃었다.“이런 자리에서까지 거짓 연민을 보일 필요는 없어!” ‘명담’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소상현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소재호가 나섰다.“형님, 명담이 일은 큰형님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일이잖아요.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아직도 저 인간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저 인간은 애초부터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었다고! 봐, 지금 부씨 가문 사람들까지 들이닥쳤잖아!!” 그제야 소재호와 소윤성은 소임호가 부씨
소상현은 소임호의 말을 듣고 순간 당황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을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을 위해 소상현은 수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이렇게 쉽게 포기할 순 없어!’“후회 안 해.”“그래, 그럼 시작하자꾸나.”주주총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한쪽에서 시월은 지아의 정체에 대해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총회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번 일에 시월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기에, 단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할 수 없었다. 최근 회사 내 지분 변동이 심해,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이 다투는 것은 소영수가 보유했던 20%의 지분에 지나지 않았다. 소영수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재산을 분배할 시간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소상현은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그의 상속권을 박탈하려 했다. 하지만 소임호는 손뼉을 가볍게 치며 변호사를 불렀고, 변호사는 밀봉된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그 안에는 소영수가 미리 작성해 둔 유언장이 있었는데, 지분 양도서부터 가문의 재단, 부동산 분배까지 모든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심지어 회사의 20%의 지분이 소임호의 것이라 명시되어 있기도 했다. 소상현은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우리 아버지는 울화로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장을 남길 시간조차 없었어! 저 유언장은 가짜라고!” 하지만 소임호는 차분하게 말했다.“이 유언장은 아버지께서 반년 전에 미리 작성해 두신 거야. 믿지 못하겠다면 네 변호사에게 감정을 맡겨도 좋아. 서류 외에도 아버지의 영상, 음성, 그리고 친필 서명이 증거로 남아 있으니까.” 소지훈은 끝까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변호사에게 눈짓을 보냈고, 소지훈이 이끄는 변호사단의 수석 변호사가 나와 서류를 철저히 검토했다. 그러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진짜입니다. 확실히 어르신께서 생전에 작성하신 유언장이 맞습니다.” 소상현의 마음속에 이루 말할 수
소임호는 손짓하며 비서에게 부장경을 위한 차 한 잔을 내오게 했다. 소임호는 이미 자신의 출생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 평소처럼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소임호와 부장경은 좌우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이목구비는 묘하게 닮아 있었는데, 비록 한 사람은 비즈니스계, 다른 한 사람은 군에 몸담고 있었지만, 미간에 드러나는 강인한 기개는 아주 비슷했다. 지아는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유전자의 힘이란 정말 신기한 거구나.’ 어머니가 다른 데다가 함께 자라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묘한 동질감을 뿜어냈다. 반면,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소상현은 소임호가 등장한 순간부터 내내 안절부절못하더니, 부장경까지 나타나자 그 불안은 극에 달했다. 소상현의 얼굴엔 육안으로도 뚜렷이 보일 정도의 당황스러움이 드러났고, 그 어디에서도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이런 사람에게 소씨 가문을 맡길 리 없었다. 소임호는 소상현의 불안한 얼굴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둘째야, 정말 나랑 적대하며 회사를 차지할 작정이야?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지금이라도 그 생각을 바꾼다면, 과거의 일은 모두 없던 일로 해줄게.”소임호의 눈에 소상현은 언제나 동생일 뿐이었다. ‘형으로써 동생을 지켜주는 건 당연지사야.’이는 소영수가 늘 소임호에게 했던 말이었다.“임호야, 상현이는 어리석고 자존심만 높아. 재호는 이쪽 일에 뜻이 없고, 윤성이는 정에 빠져 살지. 우리 소씨 가문을 짊어질 사람은 너 하나뿐이야. 앞으로도 수고 좀 해다오.” 어머니도 생전에 늘 이렇게 말했다.“네가 형이잖아. 형은 동생들을 더 많이 이해해 줘야 해.”비록 그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소임호는 소영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는 떠돌던 나와 어머니의 삶을 끝내 주었고, 그 험난한 시절에 물질적 풍요를 떠나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셨어.’ 그뿐만 아니라 소영수는 마음 깊이 소임호를 돌봐주고 키워줬으며, 단 한 번도
소상현은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의 자식들도 자연스럽게 그런 영향을 받아 소지훈 역시 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 형들보다 뒤처진다는 열등감과 질투심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말이다. 그래서 소지훈은 연예계로 진출했는데, 스타가 되면 가장 눈부신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뜨거운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 소임호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소지훈은 일부러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인맥 하나 없는 상태에서 연예계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임호는 그런 소지훈을 위해 아무 말 없이 훌륭한 매니저를 은밀히 붙여 소지훈이 어떤 부당한 대우나 불합리한 관행에 휘말리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했다.게다가 소지훈이 직설적인 성격 탓에 적을 많이 만들어도, 그때마다 소임호가 뒤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소임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지훈에게 맞춤형 성공 전략을 만들어 주었으며, 소지훈이 맡을 작품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고르기도 했다.그 결과, 소지훈은 단번에 톱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고, 스캔들 하나 없이 꾸준히 높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소상현 부자의 성공 뒤에는 늘 소임호가 있었다. 하지만 소상현 가족과 달리, 소영수의 셋째 아들인 소재호 일가는 예술을 사랑하며 재산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소영수의 넷째 아들인 소윤성은 심예지와 파혼한 뒤 소씨 가문을 떠나 해외로 가서 조용히 지냈다. 즉, 이 집안은 소임호가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을 것이었다!소영수가 소임호를 특별히 아낀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제멋대로인 다른 아들들에 비해 소임호야말로 소씨 가문을 이끌 적임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임호가 소씨 가문을 위해 조용히 헌신해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위기가 닥쳤을 때 소상현은 소임호를 도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아들들을 짓누르며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하지만 부장
어릴 때부터 소상현은 모든 면에서 소임호보다 못했고, 태어난 그날부터 소임호의 후광 아래 살았다. 소상현이 소임호를 향해 품은 원망과 분노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비즈니스계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소임호 대신 자신에게 붙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수도 없이 해 왔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소임호도 별 거 아니었을 거야.’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소상현의 마음은 크게 들떴다. 비록 자신의 능력이 소임호를 따라가지 못한다 해도, 신분만큼은 소임호보다 우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장경이 이곳에 나타나자, 소상현은 자랑스러웠던 신분마저 산산이 무너지는 듯했다.소상현의 얼굴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졌지만, 이미 주위 사람들은 전부 부장경과 소임호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소상현 부자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장경은 지아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채, 다른 식으로 입을 열었다.“형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부장경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특수한 신분인 탓에 직접 오시지 못해, 제가 대신 왔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같은 핏줄이지만 어머니가 다른, 형님의 동생입니다.”“아버지, 아버지...”소임호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사실 소임호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의식을 갖기 시작했을 무렵,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면서도 ‘아버지는 누구일까?’ 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어머니는 그때마다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소임호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러다 소영수를 만난 뒤에는 그분이 바로 아버지라고 말해주었고, 실제로 소영수는 소임호를 친아들처럼 다정히 대했다. 물론 소임호는 소영수가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진실을 밝히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으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게다가 소영수는 친아들 이상으로 소임호를 아껴 주었기에, 소임호는 그저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아버지가 먼저
부장경은 국내에서 먼 길을 달려왔는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소씨 가문에 대한 몇몇 영상과 사진을 통해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었다.부장경은 소씨 가문 사람들과는 달랐다.비록 부장경도 소임호의 이복형제이지만, 부장경은 오래전부터 부남진이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이 부남진에게 평생의 후회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만약 그 여인이 부남진에게 아들이나 딸을 남겨줬다면, 부남진의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었을 것이었다. 부장경은 지난 삶을 미셸을 사랑하며 보냈지만, 미셸은 결국 가짜 여동생에 불과했다. 만약 비즈니스적으로 뛰어난 형이 있다면, 부장경에게 그것은 하늘이 준 기회와도 같을 것이었다. 같은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인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와 비즈니스가 결합된다는 점에서 부씨 가문은 더 큰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아가 부남진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을 때, 부씨 가문은 이미 대화를 나누며 준비하던 참이었다. 민연주 역시 그 여인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따질 것이 없었다. 어차피 그것은 자신이 등장하기 이전의 일이었으니 말이다.게다가 소임호의 능력은 아주 뛰어났다. 그런 양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부씨 가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이었다. 민연주는 손익을 따져보았고, 무엇보다 부남진이 어렵게 찾은 아들을 반대해도 소용없겠다는 결과에 다다랐다. ‘그래, 오히려 통 크게 받아들이는 게 낫겠어.’부남진은 특수한 신분 탓에 떠날 수 없었기에, 대신 부장경이 부씨 가문을 대표해 소임호와 정식으로 인연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부장경은 결단력 있는 기운을 풍기며 빠르게 걸어왔다. 회의실을 아주 넓었는데, 부장경과 그의 일행이 들어오자 그들이 내뿜는 살벌한 기운이 전장을 휩쓸 듯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부장경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조차 등골이 오싹해졌다. 최근 소씨 가문에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지아조차 부씨 가문의 이야기를
이 말이 나오자마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몸을 움츠렸고, 그들 중에는 한때 소임호의 뒤를 따르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비행기 사고 소식이 전해지며 소씨 가문이 혼란에 빠지자, 그 사람들은 곧장 새로운 선택을 했다.본래 군자는 좋은 벗을 택하는 법이지 않은가? 소임호가 죽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시후가 병으로 쇠약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게다가 다른 형제들도 믿음직하지 못하니, 결국 사람들은 소상현 쪽으로 몰리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소임호가 죽음을 위장하고, 이렇게 난감한 시점에 돌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일명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은 즉각 태도를 바꾸었고, 앞다투어 소임호에게 아부하며 말했다. “대표님, 무사하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는 날마다 대표님을 위해 기도드리며...”소임호가 차갑게 그들의 말을 끊었다.“빨리 극락에 가서 뼈도 남지 않길 바랐다고?” “허허, 여전히 유머러스하시네요.” “저희는 대표님께서 하루빨리 돌아오시길 바랐습니다. 대표님께서 부재중인 동안 회사가 이렇게 큰일을 겪었으니까요.” “이쪽으로 오시죠.”방금까지는 시후를 몰아세우며 목소리를 높이던 한 원로가, 소임호를 보자마자 태도를 바꿔 소지훈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여긴 너 같은 애송이가 앉을 곳이 아니야! 어서 비켜, 대표님께서 오셨다고!”이 세상에서 진정한 힘은 실력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모두 이 회사가 누구의 손에서 태어났는지, 누구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인지, 누구의 뿌리이자 삶의 전부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본래 소임호가 없다고 생각하고 산 정상에 꽂힌 깃발을 훔치려 했지만, 고지에 닿기도 전에 장군이 병력을 이끌고 역습을 해온 꼴이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은 자연스레 소임호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상현의 편에 서 있었으나, 소임호가 등장하자마자 모든 사람이 소상현에게 등을 보였다. 이 상황에 소상현도 살짝 당황했
소상현과 소임호는 원래 이복형제였지만, 어린 시절의 소상현은 아버지에게서 아주 엄격한 대우를 받았다.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네 형의 반이라도 닮으렴.”“형은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데, 넌 왜 그렇게 어리석니?” “이렇게 간단한 보고서도 이해 못 한다니, 네 형이라면...”소상현은 집안의 둘째였기에 형인 소임호와 비교되는 일이 많았다. 소임호의 빛나는 존재감 아래, 소상현은 얼마나 평범해 보였는지 모른다. 소상현은 이미 열심히 노력했지만 노력과 재능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소임호는 단순히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력도 부족함이 없었는데, 천부적인 재능 위에 더해진 노력은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었다.즉, 소상현은 평생을 다 바쳐도 소임호를 따라잡을 수 없을 터. 소임호는 소상현의 평생의 트라우마였다. 그러던 오늘, 드디어 진실이 밝혀졌다.이번 기회에 소상현은 당당히 소임호와 그의 가족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되찾을 참이었다. “시후야, 너도 똑똑한 사람이니 길게 말하진 않으마. 네가 약간의 지분을 샀다고 해도, 우리 손엔 여전히 아버지의 지분이 있어. 결국 너희는 ‘패배’했단 뜻이지!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니? 결국 사람들한테 비웃음이나 살 텐데.” 시월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그 말은 옳지 않아요! 우리 아빠가 할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한 핏줄로 연결된 가족이에요. 우리 몸에는 할머니의 피도 흐르고 있으니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애틋하게 사랑하며 함께 살아오셨는데, 우리한테 상속권이 없다는 게 말이나 돼요?” “게다가 이 회사는 우리 아빠가 맨손으로 일궈낸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크게 성장한 회사에 숟가락을 얹겠다니, 세상에 이렇게 구차한 일이 어디 있어요?” 소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버지, 더는 말싸움할 것도 없어요.” 소지훈은 손뼉을 치며 전문 변호사팀을 불러들였다. 그와 동시에 시후 측의 변호사들도 들어왔는데, 그들은
도윤은 지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자기야. 이미 사람들을 보내 조사하고 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도윤의 세력은 대부분 A국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곳에서는 섣불리 행동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심세호는 이날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계획을 세웠으니, 심세호를 단번에 찾아내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소임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소임호가 보낸 사람들마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도윤은 이틀 동안 무릎을 꿇은 탓에 체력이 바닥나 빗속에서 기절할뻔했지만, 소씨 가문 사람들은 조금의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시하가 냉담하게 말했다.“저러다 죽으면 더 좋겠어.” 시언도 맞장구쳤다.“좋은 사람은 오래 못 산다더니, 나쁜 놈은 천년이 가도 안 죽는구나.” 소임호는 그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당장 끌어내.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라고!”지아는 그들의 태도에 머리가 아팠다.‘아무래도 가족들이 도윤 씨를 받아들이는 건 단기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닌 것 같아.’ 지아는 진봉에게 도윤을 방으로 옮겨 정성껏 간호하라고 지시했다. 소씨 가문에서 도윤에 대해 가장 악의가 적은 사람은 시후였는데, 시후가 천천히 지아의 곁으로 다가왔다.“소시월이 자금을 다 모았어.” “그럼 이제 우리가 연극을 시작할 때네요.” 시월이 밤새 달려와 도착하자, 시후는 일부러 얼굴에 화장하고 아주 쇠약한 모습을 연출했다.“콜록콜록... 월아, 왔구나.” “오빠, 이틀 만에 상태가 왜 이렇게 악화된 거예요? 절대 쓰러지시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마, 월아. 오래된 병이라서 그래. 그나저나 돈은 다 모은 거야?” “네, 오빠, 지금 상황은 좀 어때요?” “내가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재산을 지켜내려 하겠지만...” 시후는 일부러 기침을 몇 번 더 하며 말했다.“월아, 앞으로 우리 소씨 가문은 너한테 달렸어.” “오빠, 괜찮을 거예요.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시월은 겉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