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일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한대경이 막무가내로 나가게 둘 지아도 아니었다.한대경의 손길이 피부에 닿기 직전, 지아는 무릎으로 남자의 아랫배를 내리쳤다.이윽고 지아는 그가 아등바등하는 동안 바로 차버리고서 침대에서 도망쳐 내려왔다.급한 대로 와인 한 병을 집어 들었다.지금 지아는 이 와인이 언제 생산되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즉시 와인을 탁자에 세게 두드렸고 와인은 땅에 흘러내렸고 지아는 유리 파편을 손에 들고서 자기 목에 겨누었다.“오지 마!”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지아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한대경이다.“진정해.”“다가가지 않을 테니 그거 내려놔.”지아는 열이 잔뜩 오른 남자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차가운 목소리로 지아가 경고했다.“나한테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네 앞에서 죽어버릴 거야!”“너한테 아이가 있는데, 나 때문에 죽기야 하겠어?”“그런다고 한들 난 절대 너한테 이렇게 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나 자극하지 마. 이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지아는 말을 뱉고 난 뒤 미친 듯이 방에서 뛰어나왔다.그때 마침 정면으로 오고 있던 배신혁을 마주치게 되었다.배신혁은 지아가 손에 유리 파편을 들고서 미친 듯이 달려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지아에 대한 배신혁의 태도는 그럭저럭 공손한 편이었다.“선생님, 괜찮으세요?”지아는 그를 매섭게 째려보았다.“보스 좀 잘 챙기시죠!”말을 마치고서 지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버렸다.어리둥절한 채로 배이혁에게 물었다.“형, 선생님 왜 저러셔?”그때 침실 입구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머리에 침을 꽂은 남자가 나타났다.“억지로 하려다가 뒤죽박죽됐나 보네.”“설마...”지퍼가 잔뜩 내려간 채로 도망 나온 지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두 사람은 서서히 확신하게 되었다.“보스, 대체 뭘 하신 겁니까? 지나가던 개까지 죽일 셈
어젯밤 지아의 반응이 너무 격했는지 한대경은 하루 종일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지아는 국립병원에서 의료진들에게 침법을 가르쳐 주었다.날이 어두워지자 한대경은 지아가 침을 놓아주러 오기를 기다리면서 어떻게 사과할지생각했다.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이유 없이 심장이 조여왔다.그는 등 돌리고 손을 등 뒤에 지고 서 있었지만, 긴장함을 숨기려고 흉악한 말투로 말했다.“어젯밤 일은 내가 잘못했어, 오해하지 마, 너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유부녀를 좋아하는 것뿐이야.”지아를 안심 시켜주려고, 그는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힐 계획까지 세웠다.유부녀를 좋아한다는 건 그냥 핑계일 뿐이었다.지아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한대경은 귀밑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계속 흉악하게 소리쳤다.“그러니까 안심해. 다시는 너한테 손대지 않을 테니! 전에 약속했던 것도 그대로 지킬게.”“왜 말이 없어? 내가 다 사과했는데, 또 뭐를 원하는데...”그는 화가 나서 돌아섰지만, 주름진 공효신의 얼굴과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젠장! 이런 개망신을 하다니!’“원장님이 여긴 왜...”공효신은 느릿느릿하게 걸어오면서 입을 열었다.“원수, 제가 귀가 멀어서 원수의 말은 제대로 정말로 듣지 못했습니다.”한대경의 얼굴은 어두워졌다.“무슨 이이에요?”공효신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일일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침을 놓아드리려고 온 겁니다. 수연 씨한테 이미 배우고 왔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한대경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이내 기다리고 있던 지아가 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다면서.“너 같은 늙은이한테 그딴 걸 받고 싶지 않아! 꺼져!”지금까지 다친 한대경을 모두 공효신이 직접 봐줬었다.공효신의 마음속에서 한대경은 그의 손자와 다를 바 없었다.그는 한대경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므로 단 한 번도 따지지 않았다.“네, 어차피 국립 병원 의료진 전체가 할 줄 아는 일이니 원하시는 대로 의사 보내겠습니다.”“...”한대경은 어쩔 수 없어져 두
“잠이 안 올 때 수면제를 처방해 주려고.”지아는 마음속으로 꿍꿍이를 세우고 있었다.“네가 가서 준비해봐. 3일 후에 움직이면 여기에 홍인을 놓고 임무가 취소되면 목련 한 송이를 놓을게.”“좋은 소식 기다릴게.”두 사람은 잠시 만나고 난 뒤 자리를 떴고 지아는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한대경이 왔는지 자고는 있는지 전혀 모른 채.이튿날 그녀는 평상시대로 국립병원으로 갔다.요 며칠 동안 지아는 모든 사람들과 잘 지냈고 다들 ‘수연 씨’에서 그를 ‘수연 선생님’이라고 존칭하기도 했다.한대경은 틈틈이 들렸다가 몸을 기울이며 의술을 가르치는 지아를 보았었다.인내심 있게 두 가지의 비슷한 약재를 비교하면서 ‘강의’하는 지아를 우러러보면 젊은 의사들이 한 둘이가 아니었다.왜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은 여자를 좋아할까? 아마도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박력과 부러움을 사는 의술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지아가 침을 놓을 때마다 몸에 필터가 씌워진 것처럼 왠지 모르게 한대경을 설레게 하는 것만 같았다.지아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렸지만 못 본 척하고 몸을 돌렸다.여자의 직감으로 한대경은 자기한테 더 이상 욕구가 아니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단순한 욕망이라면 아무리 발버둥 치다고 하더라고 어떻게든 침대로 끌고 갔을 것이다.하지만 요 며칠 동안 많이 조용해진거 보니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이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정이다.최악인 상황이기도 했다. 지아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니 말이다.사랑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들고 앞으로 반지를 가져가는 일은 더욱 번거로워질 것이다.하지만 지아는 A국 사람이 미리 온 것을 생각지 못했고 국립병원까지 바빠졌다.그들은 언제든지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지아가 약에 수면제를 넣기 시작했을 때 공효신은 약간 어리둥절했다.“갑자기 왜 약을 더 넣는 거예요?”“원수께서 요 며칠 잠을 잘 못 주무셨다고 해서요. 수면제를 넣어 효과를 보고 안 좋으면 양을 늘리려
지아는 다른 이유를 찾아서 도윤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먼저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요즘 지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아의 의술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기에 공효신은 그대로 그녀에게 맡겼다.상대가 워낙 존귀한 사람이라 혹시라도 차질이 생길까 봐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때요?”지아는 도윤의 맥박을 만지고 있던 손을 떼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과로와 저혈당으로 갑자기 쓰러진 거예요.”모두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온 사람은 A국의 정해신침 같은 인물이다. 항상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좀처럼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만약 그가 여기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곧 새드 엔딩을 의미한다.지아는 침을 꺼내 도윤의 팔맥 교회혈, 양측 내관혈, 도랑혈 등 13개 혈에 침을 놓고 자극을 주자 도윤은 유유히 깨어났다.연기 대상을 줘야 할 정도였다.“무슨 일이야...”“보스, 방금 기절하셨는데 다행히 이분이 한방에 구해주셨어요. 이분 꽤 젊어 보이는데, 의술이 아주 그냥 무서울 따름이에요.”지아는 진봉의 칭찬을 듣고 머리가 켜지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칭찬?’지아는 웃음을 참으며 분부했다 “이 분 혹시 아무것도 먹지 못한 거 아니예요?”“네, 이틀 동안 너무 바빠서 며칠 밤을 새우고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늘 아침도 못 먹었어요.”“저혈당이 있으니, 앞으로 아침 꼭 챙겨 먹고 정 안되면 사탕이라도 준비하고 다니세요.”도윤은 아직도 지아 품에 안겨 겸허하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고마워요, 선생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모두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행히 큰일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윤이가 말머리를 돌렸다. “요즘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뒤숭숭해요. 이따가 다시 봐주세요.”“네.”지아는 그를 부축시키고 난 뒤 한대경에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니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다시 봐 드릴 거예요.”한대경은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도
소지아가 위암 양성 판정을 받았던 날, 이도윤은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깨에 멘 숄더백 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선배, 수술 안 하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바로 입원 수속 밟자.”“됐어요,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디기 힘들 거예요.”임건우는 몇 마디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소씨 가문 파산 이후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차마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임건우는 소지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배,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임건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지아가 대학을 휴학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계의 천재로 불리던 소지아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 소계훈이 치료를 받는 최근 2년 동안, 오직 소지아만이 바쁜 일정을 쪼개 그를 돌보았다. 정작 소지아 자신은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지나가던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어두컴컴한 밤, 소지아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자 소지아를 둘러싸고 있던 추위가 씻겨나갔다.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 방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방의 조명은 무척 따뜻했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소지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이게 내가 받아야 할 벌인가 봐.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해서 지금 신이 이제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건가...’소지아는 1.2미터 길이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누워 몸을 웅크렸다. 왼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아래에 깔린 담요까지 촉촉하게 적셨다.침대 위에 있던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지켜내지 못 했어. 근데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세상을 떠난, 소지아의 정신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어둠에 잠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다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보호자님,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서 이미 수술실로 옮겼습니다.”“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하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산 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목에 두른 숄만 해도 수백만 원을 호가했고, 점원은 백채원을 알아보고 얼른 맞이했다.“사모님, 오늘은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으셨네요?”“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착용해 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승리에 도취되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백채원을 무척 아낀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공식적인 법적 아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소지아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왜 하필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백채원이 부드럽게 물었다.“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손해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소지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뻗어 반지를 도로 빼앗아왔다.“안 팔래요.”“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이 반지 정말 맘에 드는데, 그래도 아는 사이니까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아주 간절하게.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옆에 있던 점원이 나서서 얼른 충고했다.“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아가씨 반지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높은 가격을 제시하실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저희 쪽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사모님이란 호칭은 소지아의 귀에 무척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이도윤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백채원이 감히 이도윤의 아내가 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하게 했었는데.겨우 1년만에, 사람들은 모두 백
변진희는 소지아가 8살 때 떠났다. 그날은 소계훈의 생일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할 생각으로 신나게 들어왔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 합의서였다.소지아는 엄마를 쫓아가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신발이 벗겨져도 모른 채 달렸다. 마침내 붙잡은 변진희의 다리를 안고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엄마, 가지 마요!”고귀한 여자는 그녀의 앳된 볼을 쓰다듬었다. “미안.”“엄마, 나 이번에 전교 일등 했는데, 아직 내 시험지 못 봤잖아요. 엄마 사인받아야 한단 말이에요.”“엄마, 가지 마요, 나 말 잘 들을게요, 앞으로 놀이동산에도 안 가고 더 이상 엄마 화나게 하지 않을게요, 말 잘 들을 테니까 제발...”소지아는 당황하여 엄마를 붙잡기 위해 애걸복걸했다. 변진희는 단지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말했다.소지아는 낯선 아저씨가 그녀를 대신해서 트렁크를 차에 실은 뒤 손을 잡고 떠난 것을 보았다.그리고 맨발로 땅에 넘어질 때까지 수백 미터를 쫓아갔고, 무릎과 발바닥은 모두 상처투성이였으며,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차가 떠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때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커서야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는 것을 알고 아예 이혼을 제기하고 홀몸으로 나가 딸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았다.십여 년 동안 소지아는 변진희와 연락한 적이 없었고, 평생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그러나 운명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결국 엄마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목이 메여오자 소지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변진희도 딸의 마음을 알고 일어나서 소지아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와 앉혔다.“네가 나 미워하는 거 알아. 그때 너는 너무 어렸고, 많은 일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어. 엄마는 다 설명할 수 없었어.”변진희는 손을 뻗어 소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내 딸 많이 컸네, 엄마가 이번에는 귀국해서 오래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