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지아는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머릿속에는 갖은 해결책들이 번쩍이고 있었다.필사적으로 싸워봤자 승산은 얼마 있을까?설령 이 문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해도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체포되지 않을까?자신이 너무 성급했다고 야단치고 싶은 심정이다.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걸 마치고 도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섣불리 움직였던 것이다.‘어떡하지?’지아는 옷 한 벌을 꽉 잡아당기고 말을 다듬어 보려고 했다.‘믿어줄까?’한대경은 문을 열자 그의 반팔 티셔츠를 입은 지아를 보게 되었다.옷은 딱 마침 허벅지까지 중요한 그 부위를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매일 청바지를 입고 있던 지아의 두 다리가 모델 뺨칠 정도로 길고 하얗고 매끈할 줄은 몰랐다.검은 다리털로 뒤덮인 자신의 다리와 달리 발바닥까지 잡색이 없을 정도로 하얀 피부를 자랑하고 있으니 한대경은 서서히 넋이 나갔다.그리고 지금 지아는 아무런 이너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순간 온몸이 불타오르면서 한대경은 침을 삼켰다.애매한 분위기와 더불어 야릇한 불꽃까지 방 안 곳곳에서 터지는 것만 같았다.지아는 마음속으로는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다.며칠 전 한대경이 사람을 마구 찔러 죽이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지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애써 덤덤한 척하고 말했다.“바지가 아직 안 말라서 그러는데 바지 좀... 너도 없고 그래서 함부로 뒤진 거야... 미안...”이 핑계는 완벽하지만 그가 믿는지 안 믿는지 봐야 한다.한대경은 한 걸음씩 지아를 향해 걸어왔다.지아는 점점 더 죽을 것만 같아 애꿎은 옷만 꽉 잡고 있었다.어느새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한대경은 어둡기 그지없는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는데, 저승사자가 따로없었다.이윽고 코 앞까지 다가온 한대경에게서 숨막히는 기운이 느껴졌다.그러나 그때 한대경은 갑자기 지아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지아는 이미 필사적으로 달려들려고 했으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두 손
한대경은 품에 안겨 있는 여인을 훑어보았다.정교하고 완벽한 쇄골이 한눈에 들어왔고 가슴의 윤곽까지 또렷하게 드러났다.지아는 그의 눈빛을 느끼고서 바로 밀어냈다.이윽고 재빠르게 침대에 뛰어올라 이불로 몸을 꽁꽁 가렸다.한대경은 순간 눈빛이 어두워졌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남아 있는 온기를 느꼈다.지아가 자기 손에서 빠져나간 것이 좀 허전하기도 했다.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지아를 보더니 한대경은 또다시 알 수 없는 그 느낌을 느끼게 되었다.한대경은 바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앞으로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마.”“두 번 봐주지는 않을 거야.”그 말을 하고서 한대경은 서둘러 떠났고 지아는 정신이 나갔다고 욕했다.그가 정말 떠난 것을 확인하고서야 지아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온몸의 힘도 풀렸다.한대경의 팬티가 자기 손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바로 던져버렸다.서랍장 문도 상자도 모두 열려 있었고 한대경은 모두 그대로 가만히 두고 나갔다.만약 그 반지가 정말 안에 있다면 이렇게 방심할 수 없을 것이다.가지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일이 꽤 복잡해졌을 텐데 말이야.지아는 바지를 돌려주는 김에 상자를 다시 뒤져봤다.역시나 개인용품 말고는 중요한 게 없었다.지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역시나 쉬운 임무가 아니었어.”지아는 곧바로 머리를 빠르게 굴러보았는데, 반지가 아지트에도 없고 한대경에게도 없다면 혹시 떠나기 전에 그의 심복에게 맡긴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보아하니 이곳에서는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그뿐만 아니라 이제 곧 교전할 상황인데, 얼마나 더 머물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너무 오래 끌면 할아버지와 도윤이가 걱정해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지금으로서는 전쟁을 멈추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한대경와 같은 강한 성격으로 포기하는 것 불가능하니 도윤과 연락을 닿아 그쪽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도윤과 연락하려면 겹겹이 쌓인 포위를 뚫고 그를 찾아야 하
이미 발각된 지아는 그를 멀리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제발 그냥 가게 해줘.”“바보야, 앞으로 가면 A나라 구역인데 죽고 싶어?”도시 전체가 그들 양쪽의 세력에 의해 나뉘었던 것이었다.‘도윤이도 더 빨리 만나고 나한테는 좋은 상황이네.’지아는 마음을 먹더니 땅에서 돌 몇 개를 주었다.“미안해, 근데 나 꼭 가야 해!”이윽고 지아는 드론을 향해 돌을 던졌으며 드론을 조종하는 사람도 얼른 피할 수밖에 없었다.“더 던지면 너 확 죽여버린다!”지아는 몇 개나 던졌지만 모두 마치지 못했다.그때 손에 딱 한 개만 남아 있었는데, 실은 그 역시 연기였다.앞에 던진 돌은 모두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고 마지막 이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이었다.지아는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지으면서 힘껏 던졌다.“잘 있어라! 변태야!”‘펑’ 하는 소리와 함께 드론이 땅에 떨어지고 화면이 꺼졌다.한대경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어디 감히!”“보스, 그냥 그대로 보내주시죠. 처음부터 이상한 여자인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도 그냥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적군에서 보낸 스파이일 수도 있고요...”“그럼, 앞으로 네가 치료해 줄래?”한대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쳤다.“반드시 데리고 와!”“하지만...”지아는 곧 다음 드론이 자기의 위치를 찾으러 올 것이며, 어떤 드론은 사람을 직접 공격하고 폭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살려주세요.”그때 한 여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지아는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고 소리에 따라 시선을 돌렸다.도시가 하도 크니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정상이다.하지만 시억이가 말했듯이 그깟 호의는 접어야 하는 게 맞았다.계속 걸음을 재촉하려고 하던 그때 여자의 소리는 더욱 허약하게 들려왔다.골목에 들어서자 배가 크고 온몸이 명품으로 도배된 여자가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산모인 것 같았고 바닥에 물자국이 있는 것을 보니 양수가 터진 것
지아는 힘겹게 소피아 왕비를 부축하고 떠났다소피아 왕비는 점점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몇 분마다 진통에 자궁이 압축되면서 점점 사색이 되고 말았다.같은 여자로서 지아는 이 느낌을 너무 잘 알고 있다.지난 두 번의 출산 모두 조산이었고, 아이가 빨리 나와서 고생을 많이 했었으니 말이다.게다가 정상적인 출산이라고 하더라도 그 고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하지만 소피아 왕비 역시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해 지아와 함께 떠나려 하고 있다.지아는 어느 한 폭발된 가게를 찾았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방에서 천 두 조각을 뜯어 일단 소피아 왕비 다리 밑에 깔았다.“여기서 기다려요. 금방 돌아올게요.”물자는 없지만 다행히 수원을 찾을 수 있었고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었다.지아는 물을 끓이고 또다시 천을 찾아와서 깨끗하게 씻었다.“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지아는 가능한 한 뜨거운 물로 소피아 왕비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아이가 태어날 때 감염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그리고 일부러 책상과 걸상을 찾아 문을 막고 씻은 천을 소피아 왕비의 입에 물려주었다.“소리 내면 안 돼요. 아니면 사람들이 쏠리게 될 거예요.”소피아 왕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협조했다.지아는 때때로 손을 씻고 손가락 넣어 확인했다.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지아는 소피아 왕비에게 눈짓을 건내고 힘겹게 참아냈다.통증은 점점 더 강해졌고 아이가 곧 나올 것만 같았다.“자, 힘주세요! 심호흡하시고요!”온몸이 땀범벅이 된 소피아 왕비는 최선을 다해 협조했다.사색이 되어버린 얼굴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소피아 왕비.그렇다, 출산이라는 건 한번 죽다 살아나는 일이다.지아는 소피아 왕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두 분 다 안전할 겁니다.”소피아 왕비는 아파서 말도 못하고 입에 물고 있는 천만 더욱 꼭 물었다.지친 두 눈에는 지아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그리고 소피아 왕비는 자기도 모르게 지아의 손을
진환은 진봉을 바라보며 말했다.“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넌 얼른 가서 사람부터 찾아.”“형 조심해.”진봉은 걱정했지만, 그들에게 더 중요한 임무가 있어 몇 마디 당부하고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다.진령과 배신혁은 외나무다리에서 마난 원수와 같았다.둘 다 무기를 꺼내 들면서 이를 악물었다.“절대 살아서 가지 못할 거야!”“너야말로!”두 형제와 도윤의 병사는 여러 길로 나누어 성안을 샅샅이 뒤졌다.만약 소피아 왕비가 성안에서 죽는다면, 누구의 문제든 V국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원래 시국이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또 사고가 나면 정말 국제적인 혼전이 일어날 것이다.총성이 울리고 한대경은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갔다.그는 갑자기 시체 옆에 물이 있다는 점이 생각났다.어렸을 때 그는 빈민굴에서 여자가 출산하기 전에 양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그래! 양수 흔적만 따라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젠장! 이제서야 생각나다니!’그와 동시에 도윤도 그 시체와 그 옆에 있는 물을 발견했다.그는 몸을 웅크리고 만져보았는데, 양수라고 판단이 들었다.잠시 침묵하더니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아직 살아 계셔. 가자.”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어떻게 건장한 남자를 해치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건장한 남자가 죽었고 그녀는 살아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좋은 결과이다.성안에 1초만 더 있어도 위험하니 도윤은 발걸음을 재촉했다.양수의 흔적을 따라 한 매점 밖에 도착했다.그는 문을 막고 있는 책상과 의자를 보게 되었다.‘분명히 누군가가 안에서 막은 거야.’누군가 아직 대피하지 않았더라도 큰길 옆에 있는 매점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단 한 가지 가능성은 소피아 왕비는 안에 있고 임산부 혼자서 이런 무거운 물건을 옮기기 어렵다.그녀 곁에는 분명 다른 사람이 있다!진실이 밝혀지고, 문득 그 시체 손에는 값비싼 팔찌가 쥐어져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소피아 왕비의 팔찌를 빼앗다가 뒤에서 습격당했고 누군가가 소피아를 구했으며 그들은 지금
도윤은 상대방의 의도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소피아 왕비를 납치하기 위해서라면 이곳으로 데려와 출산하기보다 가장 먼저 사람을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따라서 상대방은 소피아 왕비를 돕는 목적이 더 강하다면서 어쩌면 자기와 같은 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윽고 도윤은 소피아 왕비의 가명을 부르기 시작했다.“푸리 안에 계십니까? 미샤엘에서 올 것입니다. 제가 구해드리겠습니다.”소피아 왕비는 감격스워 마지 못했고 지아 역시 그러했다.찾아가려던 도윤이가 자기 발로 직접 찾아왔으니 말이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해드리려고 왔습니다.”안에 있던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책걸상을 치우기 시작했다.그가 다리를 들고 들어가자마자 한 여자가 달려들어 그의 가면을 벗기고 키스까지 했다.도윤은 막 밀어내려고 할 때 넋을 잃게 하는 향기를 맡게 되었다.‘꿈이 아니야!’그날 나무에 매달려 있었을 때 어떤 사람이 자기를 구해주고 붕대를 감아줬는데, 그때 이 향기를 맡았었다.깨어난 후 지아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는 지아가 아직 A시에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었다.근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지금 이 순간 자신의 입술을 물고 있는 사람이 지아가 아니라면 또 누가 있겠는가...도윤은 지아를 잡아당기며 놀라면서도 기뻐해 마지못한 눈빛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지아는 그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 빨리 여기부터 막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게.”도윤이 입구를 틀어막자 지아는 계속 소피아 왕비를 위로해 주었다.“괜찮아요. 우리 편이에요.”도윤은 지아에게 다가가 등을 돌리고 말했다.“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지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미안해. 아직은 말할 수 없어. 한대경에게 접근해야 할 이유가 있어.”도윤의 등만 봐도 그가 지금 얼마나 분노로 차 있는지 알 수 있었다.“미쳤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알아. 사람 막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근데 그 사
지아는 다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그 순간 도윤의 모든 주의력은 온통 지아와 한대경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라든 분쟁이든 더 이상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떠날 생각을 하게 되니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그게 관건이 아니잖아. 도윤아, 네가 날 좀 도와주면 안 돼? 반지 찾아서 꼭 돌아올게! 내 정체 절대 드러내지 않을 테니 제발 한 번만.”만약 다른 일로 지아가 이렇게 부탁을 했다면 도윤은 열 번이고 들어주었을 것이다.그러나 지아는 지금 한 남자의 존엄을 앞에 두고 부단히 간을 보고 있었다.적어도 도윤이가 생각하기엔 그러한 감정이었다.“안 돼. 더 이상 네가 위험해지는 꼴 볼 수 없어. 한대경은 그냥 미친놈이야! 눈에 뵈는 것 하나 없이 아무나 막 죽이는 놈이라고! 지금 당장 나랑 같이 떠나. 널 미끼로 그런 짓 할 수 없어.”“내가 아무리 부탁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말이야?”지아는 순간 말투가 차가워졌다.“이건 내가 하는 일이고 네가 지지할 수 없다면 우린 더 이상 함께 갈 필요도 없다고 봐.”그 말에 도윤은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지아야, 그 일로 나 협박하지 마.”“도윤아, 3년 전에 네가 응급실로 실려 갔을 때, 난 그 차디찬 복도에서 널 기다리면서 미셸한테 한 대 맞았었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모든 의료진이 나를 흘겨보고 있었는데도 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미셸이 너한테 수혈해 주는 것만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미셸이 나한테 난 그냥 꽃병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너한테 폐만 끼친다고 왜 나 같은 인간이랑 네가 결혼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그랬었어.”“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넌 안에서 수술을 받고 난 밖에서 그런 소리를 감당해야 했었어. 그 문이! 너랑 나 사이에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벽처럼 보였어. 우리가 아무리 다정하고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너랑 난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어. 네가 임무 수행하러 나갈 때마다 난
지아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일단 흙으로 땅에 흘린 양수부터 덮어버렸다.양수의 흔적은 마지막 갈림길에서 끊기고 말았다.한대경이 흔적을 찾아 달려왔을 때, 딱 그 갈림길에서 멈춰 서게 되었었다.눈살을 찌푸린 채 다른 단서를 찾아내려고 했으나 바로 그때 골목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권총을 손에 꼭 쥐고서 천천히 다가갔는데, 초점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쓰레기통 뒤에 숨어 있는 지아가 보였다.지아는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오지 마!”이윽고 지아는 한대경을 향해 돌을 매섭게 던졌는데, 그는 바로 깔끔하게 피해 갔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멋있었다.지아 곁으로 다가온 한대경은 지아를 내려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드디어 찾았다!”익숙한 목소리에 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너... 너!”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도망가려고 했으나 한대경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지아는 또다시 예전 그 모습대로 한대경의 어깨에 대롱대롱 걸려서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이거 놔! 나 돌아가기 싫단 말이야!”“움직이지 마! 확 죽여버리기 전에!”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도윤은 주먹을 잡아당기고 말았다.이를 악물고 있는 도윤은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지아를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그렇게 하게 된다면 지아에게 미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한편, 소피아 왕비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차 한 대가 와서 소피아 왕비 모자를 데리고 갔다.도윤 역시 일단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한대경의 등에 얹혀 임시 거처로 돌아온 지아는 그가 확 던지는 바람에 그대로 정원에 있는 흙밭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다행히도 시멘트 땅이 아니라 고통은 덜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살이 찌푸려졌다.“어디 한 번 도망가 봐! 더해봐!”그때 한대경 곁에 있던 누군가가 방망이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방망이를 어깨에 얹고 있는 한대경의 모습은 건달이 따로 없었다.“내가 오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