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힘겹게 소피아 왕비를 부축하고 떠났다소피아 왕비는 점점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몇 분마다 진통에 자궁이 압축되면서 점점 사색이 되고 말았다.같은 여자로서 지아는 이 느낌을 너무 잘 알고 있다.지난 두 번의 출산 모두 조산이었고, 아이가 빨리 나와서 고생을 많이 했었으니 말이다.게다가 정상적인 출산이라고 하더라도 그 고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하지만 소피아 왕비 역시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해 지아와 함께 떠나려 하고 있다.지아는 어느 한 폭발된 가게를 찾았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방에서 천 두 조각을 뜯어 일단 소피아 왕비 다리 밑에 깔았다.“여기서 기다려요. 금방 돌아올게요.”물자는 없지만 다행히 수원을 찾을 수 있었고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었다.지아는 물을 끓이고 또다시 천을 찾아와서 깨끗하게 씻었다.“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지아는 가능한 한 뜨거운 물로 소피아 왕비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아이가 태어날 때 감염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그리고 일부러 책상과 걸상을 찾아 문을 막고 씻은 천을 소피아 왕비의 입에 물려주었다.“소리 내면 안 돼요. 아니면 사람들이 쏠리게 될 거예요.”소피아 왕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협조했다.지아는 때때로 손을 씻고 손가락 넣어 확인했다.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지아는 소피아 왕비에게 눈짓을 건내고 힘겹게 참아냈다.통증은 점점 더 강해졌고 아이가 곧 나올 것만 같았다.“자, 힘주세요! 심호흡하시고요!”온몸이 땀범벅이 된 소피아 왕비는 최선을 다해 협조했다.사색이 되어버린 얼굴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소피아 왕비.그렇다, 출산이라는 건 한번 죽다 살아나는 일이다.지아는 소피아 왕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두 분 다 안전할 겁니다.”소피아 왕비는 아파서 말도 못하고 입에 물고 있는 천만 더욱 꼭 물었다.지친 두 눈에는 지아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그리고 소피아 왕비는 자기도 모르게 지아의 손을
진환은 진봉을 바라보며 말했다.“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넌 얼른 가서 사람부터 찾아.”“형 조심해.”진봉은 걱정했지만, 그들에게 더 중요한 임무가 있어 몇 마디 당부하고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다.진령과 배신혁은 외나무다리에서 마난 원수와 같았다.둘 다 무기를 꺼내 들면서 이를 악물었다.“절대 살아서 가지 못할 거야!”“너야말로!”두 형제와 도윤의 병사는 여러 길로 나누어 성안을 샅샅이 뒤졌다.만약 소피아 왕비가 성안에서 죽는다면, 누구의 문제든 V국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원래 시국이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또 사고가 나면 정말 국제적인 혼전이 일어날 것이다.총성이 울리고 한대경은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갔다.그는 갑자기 시체 옆에 물이 있다는 점이 생각났다.어렸을 때 그는 빈민굴에서 여자가 출산하기 전에 양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그래! 양수 흔적만 따라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젠장! 이제서야 생각나다니!’그와 동시에 도윤도 그 시체와 그 옆에 있는 물을 발견했다.그는 몸을 웅크리고 만져보았는데, 양수라고 판단이 들었다.잠시 침묵하더니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아직 살아 계셔. 가자.”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어떻게 건장한 남자를 해치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건장한 남자가 죽었고 그녀는 살아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좋은 결과이다.성안에 1초만 더 있어도 위험하니 도윤은 발걸음을 재촉했다.양수의 흔적을 따라 한 매점 밖에 도착했다.그는 문을 막고 있는 책상과 의자를 보게 되었다.‘분명히 누군가가 안에서 막은 거야.’누군가 아직 대피하지 않았더라도 큰길 옆에 있는 매점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단 한 가지 가능성은 소피아 왕비는 안에 있고 임산부 혼자서 이런 무거운 물건을 옮기기 어렵다.그녀 곁에는 분명 다른 사람이 있다!진실이 밝혀지고, 문득 그 시체 손에는 값비싼 팔찌가 쥐어져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소피아 왕비의 팔찌를 빼앗다가 뒤에서 습격당했고 누군가가 소피아를 구했으며 그들은 지금
도윤은 상대방의 의도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소피아 왕비를 납치하기 위해서라면 이곳으로 데려와 출산하기보다 가장 먼저 사람을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따라서 상대방은 소피아 왕비를 돕는 목적이 더 강하다면서 어쩌면 자기와 같은 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윽고 도윤은 소피아 왕비의 가명을 부르기 시작했다.“푸리 안에 계십니까? 미샤엘에서 올 것입니다. 제가 구해드리겠습니다.”소피아 왕비는 감격스워 마지 못했고 지아 역시 그러했다.찾아가려던 도윤이가 자기 발로 직접 찾아왔으니 말이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해드리려고 왔습니다.”안에 있던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책걸상을 치우기 시작했다.그가 다리를 들고 들어가자마자 한 여자가 달려들어 그의 가면을 벗기고 키스까지 했다.도윤은 막 밀어내려고 할 때 넋을 잃게 하는 향기를 맡게 되었다.‘꿈이 아니야!’그날 나무에 매달려 있었을 때 어떤 사람이 자기를 구해주고 붕대를 감아줬는데, 그때 이 향기를 맡았었다.깨어난 후 지아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는 지아가 아직 A시에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었다.근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지금 이 순간 자신의 입술을 물고 있는 사람이 지아가 아니라면 또 누가 있겠는가...도윤은 지아를 잡아당기며 놀라면서도 기뻐해 마지못한 눈빛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지아는 그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 빨리 여기부터 막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게.”도윤이 입구를 틀어막자 지아는 계속 소피아 왕비를 위로해 주었다.“괜찮아요. 우리 편이에요.”도윤은 지아에게 다가가 등을 돌리고 말했다.“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지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미안해. 아직은 말할 수 없어. 한대경에게 접근해야 할 이유가 있어.”도윤의 등만 봐도 그가 지금 얼마나 분노로 차 있는지 알 수 있었다.“미쳤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알아. 사람 막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근데 그 사
지아는 다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그 순간 도윤의 모든 주의력은 온통 지아와 한대경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라든 분쟁이든 더 이상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떠날 생각을 하게 되니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그게 관건이 아니잖아. 도윤아, 네가 날 좀 도와주면 안 돼? 반지 찾아서 꼭 돌아올게! 내 정체 절대 드러내지 않을 테니 제발 한 번만.”만약 다른 일로 지아가 이렇게 부탁을 했다면 도윤은 열 번이고 들어주었을 것이다.그러나 지아는 지금 한 남자의 존엄을 앞에 두고 부단히 간을 보고 있었다.적어도 도윤이가 생각하기엔 그러한 감정이었다.“안 돼. 더 이상 네가 위험해지는 꼴 볼 수 없어. 한대경은 그냥 미친놈이야! 눈에 뵈는 것 하나 없이 아무나 막 죽이는 놈이라고! 지금 당장 나랑 같이 떠나. 널 미끼로 그런 짓 할 수 없어.”“내가 아무리 부탁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말이야?”지아는 순간 말투가 차가워졌다.“이건 내가 하는 일이고 네가 지지할 수 없다면 우린 더 이상 함께 갈 필요도 없다고 봐.”그 말에 도윤은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지아야, 그 일로 나 협박하지 마.”“도윤아, 3년 전에 네가 응급실로 실려 갔을 때, 난 그 차디찬 복도에서 널 기다리면서 미셸한테 한 대 맞았었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모든 의료진이 나를 흘겨보고 있었는데도 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미셸이 너한테 수혈해 주는 것만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미셸이 나한테 난 그냥 꽃병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너한테 폐만 끼친다고 왜 나 같은 인간이랑 네가 결혼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그랬었어.”“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넌 안에서 수술을 받고 난 밖에서 그런 소리를 감당해야 했었어. 그 문이! 너랑 나 사이에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벽처럼 보였어. 우리가 아무리 다정하고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너랑 난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어. 네가 임무 수행하러 나갈 때마다 난
지아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일단 흙으로 땅에 흘린 양수부터 덮어버렸다.양수의 흔적은 마지막 갈림길에서 끊기고 말았다.한대경이 흔적을 찾아 달려왔을 때, 딱 그 갈림길에서 멈춰 서게 되었었다.눈살을 찌푸린 채 다른 단서를 찾아내려고 했으나 바로 그때 골목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권총을 손에 꼭 쥐고서 천천히 다가갔는데, 초점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쓰레기통 뒤에 숨어 있는 지아가 보였다.지아는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오지 마!”이윽고 지아는 한대경을 향해 돌을 매섭게 던졌는데, 그는 바로 깔끔하게 피해 갔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멋있었다.지아 곁으로 다가온 한대경은 지아를 내려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드디어 찾았다!”익숙한 목소리에 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너... 너!”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도망가려고 했으나 한대경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지아는 또다시 예전 그 모습대로 한대경의 어깨에 대롱대롱 걸려서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이거 놔! 나 돌아가기 싫단 말이야!”“움직이지 마! 확 죽여버리기 전에!”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도윤은 주먹을 잡아당기고 말았다.이를 악물고 있는 도윤은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지아를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그렇게 하게 된다면 지아에게 미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한편, 소피아 왕비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차 한 대가 와서 소피아 왕비 모자를 데리고 갔다.도윤 역시 일단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한대경의 등에 얹혀 임시 거처로 돌아온 지아는 그가 확 던지는 바람에 그대로 정원에 있는 흙밭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다행히도 시멘트 땅이 아니라 고통은 덜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살이 찌푸려졌다.“어디 한 번 도망가 봐! 더해봐!”그때 한대경 곁에 있던 누군가가 방망이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방망이를 어깨에 얹고 있는 한대경의 모습은 건달이 따로 없었다.“내가 오늘 네
지아가 뭐라고 하든 한대경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더없이 터프한 모습으로 비행기까지 어깨고 메고 갔다.차가운 목소리로 협박까지 더하고 있는 한대경이다.“입 다물어! 확 던져버리기 전에!”“...”지아는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비행기는 곧 이륙했고 지아는 아직 무슨 일인지 잘 모르나 도윤이가 성공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한대경은 무척 화가 나 있는 모습을 보였다.한 마디만 잘못해도 바로 터질 것처럼 시한폭탄처럼 말이다.이런 상황일수록 피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한 지아였다.지아는 가능한 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한대경은 그런 지아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멍투성이인 몸엔 흙까지 군데군데 묻어 있어서 낭패하기 그지없었다.차가운 바람까지 불어오자, 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파르르 떨었다.이때 한대경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지아에게 걸쳐주었고 지아는 마침내 포근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행기는 곧 C국의 수도인 라카에 착륙하게 되었다.따스하고 눈 부신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자 지아는 완전히 깨어나게 되었다.“여긴 어디야?”“라카.”한대경은 하룻밤 내내 화를 삼킨 덕분에 지금은 덤덤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야?”“여긴 내가 사는 곳이야.”딱 거기까지 설명하고 나서 비행기가 착륙하고 문이 열리자 더없이 화려한 환영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다행이도 기자들은 없었다.한대경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고 지아는 얼굴을 반쯤 외투에 숨긴 채 부랴부랴 차에 따라 올랐다.차는 그대로 총통부로 향했다.임시 은신처에 비하면 총통부는 그야말로 무릉도원이었다.백 년이나 되는 건물에 여러 가지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니 말이다.기후도 적절한 것이 적지 않은 수조들이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드넓은 풀밭에 물을 주면서 춤을 추고 있는 분수도 보였다.한대경과 같은 상남자가 이런 곳에서 생활하고 있
듣기에 거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자, 지아는 순간 뒤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강제로 이곳까지 끌려와서 무척이나 달갑지 않아하는 지아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한대경은 지아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안으로 데리고 왔다.“혼자 걸을 수 있다고! 왜 매번 이러는 거야?”한대경은 지아를 자기 침실까지 끌고 왔다.침실은 자그마치 200평 정도 되고 무척이나 넓었다.하얀색으로 된 카펫에 리모델링 전체가 궁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침실 벽에는 유명한 화가 손에서 나온 그림도 수없이 걸려 있었다.한대경의 성격으로 본다면 절대 그의 손에서 나올만한 것이 아니다.따라서 아마 그 전의 대통령이 남겨 놓은 걸작으로 보였다.한대경은 지아의 손을 풀어주면서 말했다.“어때? 여기 엄청나지? 네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렇게 지내면 돼. 넌 내 병만 고쳐주기만 하면 그게 뭐든 다 된다는 말이야.”“알았어.”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샤워하고 올 테니 그동안 약 준비해 놓아.”이번 일을 겪은 뒤로 한대경은 지아에 대한 믿음이 좀 강해졌다.이곳은 그의 침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경계하는 모습이 없었으니 말이다.지아도 이곳은 처음이라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행여나 감시 카메라와 같은 무엇인가 있다면 목이 날아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일단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을 내렸다.어렸을 때부터 소계훈은 지아를 유명한 화가한테서 그림 그리기를 배우게 했었다.따라서 그림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지아는 그동안 책에서 봐왔던 그림을 지금 한대경의 침실에서 보고 있었다.게다가 모두 원작이었다.지아는 입이 떡벌어지고 말았고 내심 혀를 내둘렀다.‘그림 모으는데 환장했던 분이셨네...’한대경은 나오자마자 흥분에 겨워 마지 못하는 지아를 보게 되었다.그림 하나하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어떤 스타일로 연필을 휘둘렀는지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 지아를 말이다.“뭘 그렇게까지 들여다보는 거야?”지아의 두 눈에는 빛이 반짝였
지아는 불과 며칠 만에 한대경의 뺨을 무려 두 번이나 때렸다.뺨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든 한대경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이윽고 차갑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지아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소수연! 너 죽고 싶어?”“그러게 왜 함부로 쳐다보고 난리야!”“네가 그렇게 입었잖아!”순간 지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의 셔츠로 몸을 꽁꽁 가렸다.겁도 없이 다시 한대경의 머리를 툭 치고서 말했다.“누워. 또다시 함부로 쳐다보면 그땐 내가 여기저기 침을 막 찌를 거야!”“그러기만 해 봐! 널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많거든.”분위기는 그렇게 약간 어색해졌고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한대경도 서서히 정신이 맑아졌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의문만 들었다.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고 했는데 유부녀한테 마음이 쏠리고 있으니 말이다.침묵 속에서 지아는 모든 치료를 마쳤고 한대경은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천천히 목을 돌렸다.“그전까지는 이틀에 한 번씩 머리가 아팠었는데, 네가 침을 놔준 뒤로 한 번도 아프지 않았어. 다른 건 몰라도 실력이 그럭저럭 있는 것 같아.”지아는 그런 한대경을 흘겨보면서 말했다.“내일 처방전도 내줄 테니 약도 같이 먹도록 해. 두 달 정도 먹다 보면 너 완쾌할 수 있을 거야. 그땐 약속한 대로 나 보내줘야 할 거야.”“그래. 그땐 보낼 거야.”한대경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그럼, 그만 내 방으로 갈게.”지아는 바로 몸을 돌려 그의 침실에서 나왔다.지아가 가고 난 뒤 한대경은 한참이나 큰 침대에서 뒤척였다.요즘 지아 몸에서 나는 약 냄새를 맡으면서 잠들어서인지 갑자기 그 냄새가 사라지니 잠에 들 수 없었다.반면 지아는 바로 잠에 들었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확 차버리는 것이 느껴졌다.한밤중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오직 한대경 밖에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지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미리 준비한 덕분에 가면을 벗고 있지 않았었다.게슴츠레 눈을 비비면서 잔뜩 화난 얼굴로 한개경을 바라보았다.“왜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