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에 거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자, 지아는 순간 뒤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강제로 이곳까지 끌려와서 무척이나 달갑지 않아하는 지아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한대경은 지아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안으로 데리고 왔다.“혼자 걸을 수 있다고! 왜 매번 이러는 거야?”한대경은 지아를 자기 침실까지 끌고 왔다.침실은 자그마치 200평 정도 되고 무척이나 넓었다.하얀색으로 된 카펫에 리모델링 전체가 궁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침실 벽에는 유명한 화가 손에서 나온 그림도 수없이 걸려 있었다.한대경의 성격으로 본다면 절대 그의 손에서 나올만한 것이 아니다.따라서 아마 그 전의 대통령이 남겨 놓은 걸작으로 보였다.한대경은 지아의 손을 풀어주면서 말했다.“어때? 여기 엄청나지? 네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렇게 지내면 돼. 넌 내 병만 고쳐주기만 하면 그게 뭐든 다 된다는 말이야.”“알았어.”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샤워하고 올 테니 그동안 약 준비해 놓아.”이번 일을 겪은 뒤로 한대경은 지아에 대한 믿음이 좀 강해졌다.이곳은 그의 침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경계하는 모습이 없었으니 말이다.지아도 이곳은 처음이라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행여나 감시 카메라와 같은 무엇인가 있다면 목이 날아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일단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을 내렸다.어렸을 때부터 소계훈은 지아를 유명한 화가한테서 그림 그리기를 배우게 했었다.따라서 그림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지아는 그동안 책에서 봐왔던 그림을 지금 한대경의 침실에서 보고 있었다.게다가 모두 원작이었다.지아는 입이 떡벌어지고 말았고 내심 혀를 내둘렀다.‘그림 모으는데 환장했던 분이셨네...’한대경은 나오자마자 흥분에 겨워 마지 못하는 지아를 보게 되었다.그림 하나하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어떤 스타일로 연필을 휘둘렀는지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 지아를 말이다.“뭘 그렇게까지 들여다보는 거야?”지아의 두 눈에는 빛이 반짝였
지아는 불과 며칠 만에 한대경의 뺨을 무려 두 번이나 때렸다.뺨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든 한대경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이윽고 차갑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지아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소수연! 너 죽고 싶어?”“그러게 왜 함부로 쳐다보고 난리야!”“네가 그렇게 입었잖아!”순간 지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의 셔츠로 몸을 꽁꽁 가렸다.겁도 없이 다시 한대경의 머리를 툭 치고서 말했다.“누워. 또다시 함부로 쳐다보면 그땐 내가 여기저기 침을 막 찌를 거야!”“그러기만 해 봐! 널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많거든.”분위기는 그렇게 약간 어색해졌고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한대경도 서서히 정신이 맑아졌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의문만 들었다.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고 했는데 유부녀한테 마음이 쏠리고 있으니 말이다.침묵 속에서 지아는 모든 치료를 마쳤고 한대경은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천천히 목을 돌렸다.“그전까지는 이틀에 한 번씩 머리가 아팠었는데, 네가 침을 놔준 뒤로 한 번도 아프지 않았어. 다른 건 몰라도 실력이 그럭저럭 있는 것 같아.”지아는 그런 한대경을 흘겨보면서 말했다.“내일 처방전도 내줄 테니 약도 같이 먹도록 해. 두 달 정도 먹다 보면 너 완쾌할 수 있을 거야. 그땐 약속한 대로 나 보내줘야 할 거야.”“그래. 그땐 보낼 거야.”한대경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그럼, 그만 내 방으로 갈게.”지아는 바로 몸을 돌려 그의 침실에서 나왔다.지아가 가고 난 뒤 한대경은 한참이나 큰 침대에서 뒤척였다.요즘 지아 몸에서 나는 약 냄새를 맡으면서 잠들어서인지 갑자기 그 냄새가 사라지니 잠에 들 수 없었다.반면 지아는 바로 잠에 들었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확 차버리는 것이 느껴졌다.한밤중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오직 한대경 밖에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지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미리 준비한 덕분에 가면을 벗고 있지 않았었다.게슴츠레 눈을 비비면서 잔뜩 화난 얼굴로 한개경을 바라보았다.“왜 또!”한
어느새 넋까지 잃게 된 지아는 머릿속에 온통 도윤뿐이었다.그러던 그때 한대경이 갑자기 나타나서 나지막이 물었다.“왜 그래? 그런 옷 좋아해?”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면서 놀란 토끼처럼 그를 바라보았다.한대경은 살짝 차가운 손가락으로 지아의 턱을 탁 올렸다.이제 막 씻고 나온 그의 몸에서 은은한 향기와 온 이가 뿜어져 나왔다.“얼굴은 평범한데... 눈은 꽤 맑네?”갑작스러운 ‘칭찬’에 지아는 당황하기 그지없었다.가면을 쓰고 있는 지아는 얼굴 전체를 가렸지만 눈만은 절대 가릴 수 없었다.크고 맑고 예쁜 두 눈에 촘촘한 눈초리까지 더해지자 평범한 얼굴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하도 가까운 거리라 지아는 다소 긴장한 나머지 그를 밀쳐내려고 했는데, 작은 손은 그대로 탄탄한 그의 가슴 근육에 닿게 되었다.탄탄한 근육을 느끼기도 전에 한대경은 지아의 허리를 감싸안고 그녀를 가두었다.자기와 옷장 사이에 꼭.“뭐 하는 짓이야!”지아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언짢은 얼굴로 한대경을 노려보았다.어젯밤에 코피까지 흘리던 남자가 오늘은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걱정도 되었다.한대경은 지아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풀어주었다.그렇다, 그는 지아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었다.자기도 모르게 아주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지아는 힘껏 한대경을 밀쳐냈고 서서히 침착을 되찾았다.“오늘 어디 가는데? 정장으로 줘? 아니면 뭐?”“정장.”한대경은 지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아무리 여자가 그리워도 유부녀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한대경은 지아와 안전거리를 유지하였고 지아는 곧 정장 한 벌을 건네주었다.“그럼, 내 방으로 그만 가볼게.”한대경은 지아를 말리지 않았다.요즘 들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건 모두 30년 동안 모태 솔로로 살아온 탓이라고 생각했다.한대경이 침실에서 나서자마자 배신혁이 곧바로 따라왔다.“보스, 오늘 제 형님께서 귀국하십니다.”“그래.”“A 국에서 종전 계약서를 보내왔는데
한대경은 군사 전문가를 긴급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회의는 하루 종일 진행되었고 브레이크 단이 모여서 아무리 모의연습을 해보아도 결과는 똑같았다.어떻게든 지는 것으로 말이다.지금 C 국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뿐이고 그건 바로 A 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성을 향해 진공을 그만하지 않으면 양국에서 C 국을 향해 거침없이 공격할 것이다.한대경은 이러한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며칠 동안 한대경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았고 그동안 지아는 서서히 조급해지기 시작했다.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서 한대경의 사업 중심으로 파고 들어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반지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한대경은 마치 지아를 잊어버린 것처럼 총통부 도우미들에게 부탁하고서 돌아오지도 않았다.임무는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고 지아는 그대로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지아는 별장 2층의 파이프를 따라서 몰래 내려와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했었다.그러나 바로 그때 뒤에서 한 남자의 엄한 소리가 들려왔다.“거기 누구야!”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지아는 그대로 다리가 풀려서 2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떨어지고 말았다.다행히도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무엇보다도 풀밭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속으로 쏙 떨어지게 되었다.그렇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한대경이었다.며칠 만에 본 한대경의 얼굴은 무척이나 초췌했고 힘들어 보였다.“또 도망가려고?”“그냥 바람 좀 쐬려고 나온 거야.”지아는 황급히 설명하였는데, 주위에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원수, 아시는 분입니까? 무척이나 괴상하게 움직이던데요?”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조금 전에 소리를 친 사람이다.지아는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이때 배신혁이 나서서 설명했다.“형, 내가 전에 말했던 신의셔.”“신의?”배이혁은 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의사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형
지아는 제법 그럴듯한 모습으로 혼수를 내었다.그렇게 하는 이유도 단지 한대경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함이었다.앞으로 더 이상 주동적으로 기회를 찾아내지 않는다면 임무는 무한으로 연장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그... 행여나 내가 시름이 놓지 않으면 사람 붙여도 돼.”“그런 거 없어. 나 죽이고 싶으면 사혈로 그 침을 꽂으면 한 방에 끝나는 거잖아.”한대경은 덤덤하게 덧붙였다.“그냥 네가 하는 거로 하자.”이윽고 웃고 있는 지아의 얼굴을 보고서 다시 물었다.“직접 해주고 싶었어?”“당연하지! 넌 내 환자잖아. 네가 하루라도 빨리 완쾌하면 난 하루 더 빨리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거잖아.”그 한마디에 한대경은 천국에서 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무척이나 반가워하던 지아의 모습에 설렜는데, 실은 자기를 떠나기 위함이었다니 아팠다.“왜? 남자가 그리워?”순간 지아의 머릿속에는 도윤과 헤어질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실은 떨어진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하지만 한대경의 말을 듣고 나니 보고 싶기도 했다.“응, 남편이랑 아이 다 보고 싶어.”그 말을 내뱉고 있는 지아의 모습은 부드럽고 행복해 보였다.수줍어하는 빛도 드러내면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한대경은 눈동자가 흔들렸다.이윽고 알 수 없는 답답한 감정도 스며 올랐다.“궁금하네. 그 남자 어떤 남자인지.”지아는 한대경에게 잘 보이려고 묻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다.“키도 크고 몸도 좋고 잘생기기까지 했어.”“돈은 없겠네?”한대경이 다소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지아는 묵인하면서 덧붙였다.“응, 근데 우리 엄청 사랑해. 아이도 넷이나 있어.”“뭐? 요즘 같은 세월에 넷이나 낳았다고? 애국가가 따로 없네.”한대경은 콧방귀를 뀌면서 자기도 모르게 지아의 허리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그날 뒤로 지아는 온몸을 꽁꽁 감싸면서 지내고 있었다.오늘 지아는 츄레이닝을 세트로 입었는데 섹시와는 거리가 한없이 멀었다.아이를 넷이나 낳은 여자처럼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
넋을 잃고 있는 지아를 향해 한대경은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면서 아무런 핑계로 둘러대기 시작했다.“네 신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서. 아주 높은 분이시라고.”“어떻게 알게 된 거야?”“그 사람이 너한테 원수라고 하는 거 들었어. 그리고 마성을 제 집 드나듯이 드나들고 전용기에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네가 일반인일 리가 있겠어?”지아는 솔직하게 말했다.바보인 척 콘셉트를 유지하기엔 상대가 이미 너무 많은 걸 보여줬으니 말이다.덤덤한 지아의 모습을 보고서 한대경이 물었다.“내가 누군지 알고도 무섭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무서워하던데?”“그전까지는 무서웠어. 근데 날 죽이고 싶었다면 지금까지 살려주지 않았겠지. 그래서 이제는 무섭지 않아. 하물며 네가 완쾌할 때까지 옆에 있어주고 치료해주면 보상도 준다고 했었잖아.”‘돈 때문이었어?”한대경은 콧방귀를 뀌었다.“돈이 그렇게도 좋아?”“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돈으로 우리 아이들 편하게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좋지 않을 리가 없잖아. 걱정하지 마! 네 병은 내가 꼭 치려해주마!”앞뒤 태도가 확 달라진 지아는 그럴만한 이유를 둘러댔다.한대경에게 있어서 지아는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워킹맘일 뿐이다.“참, 마사지도 해줘? 힘들지 않았어?”한대경은 그런 지아를 흘겨보았다.“갑자기? 전에는 대꾸도 하지 않더니.”지아는 난감한 듯이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말했다.“그... 결산할 때 조금만 더 챙겨주면 안 돼?”“돈독에 빠졌네 아주!”한대경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이미 마사지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네가 하는 거 봐서.”한대경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온갖 정신을 몰두하고 있던 지아는 한대경 팔의 상처가 이미 괜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외투를 벗겨주었다.한대경은 침대 정중앙에 누워있었고 지아는 옷을 벗겨주기 위해 신발까지 벗고 침대로 올라가서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이
정신을 차린 한대경은 지아를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차갑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목소리까지 한껏 내리깔았다.“뭐 하는 짓이야?”지아는 억울하다는 모습으로 침을 줍고서 말했다.“침이 네 손 옆에 떨어졌어.”한대경은 그제야 지아를 풀어주었다.“미안. 조건 반사로 그런 거야. 너 괜찮아?”지아 목의 선명한 손자국을 보고서 한대경은 자책하기 시작했다.‘괜찮을 리가 없을 건데...’“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알아. 앞으로 조심할 테니 얼른 쉬어.”지아는 침을 침구로 넣으면서 말했다.침실 문을 닫는 순간 지아는 그제야 땀이 뚝뚝 떨어지게 되었다.‘죽을 뻔했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반지에 대한 경계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만 둘 지아도 아니고 내일부터 직접 한대경에게 약을 끓어줄 생각이었다.약에 수면제를 적절하게 넣으면 그가 푹 자는 틈을 타서 손을 쓰면 되니 말이다.지금 지아가 생각해야하는건 반지를 갖고 난 뒤 어떻게 빠져나가는 것이다.며칠 뒤면 A국에서 담당자가 올 것인데, 지아는 그중에 무조건 도윤이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윽고 계획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었다.거의 잠에 들었을 때 누군가가 지아 침실로 들어왔는데, 볼 것도 없이 한대경이었다.지아 몸에서 나는 향기만 맡으면 잠을 설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가 있었으니 말이다.따라서 지아는 한대경을 상대하지 않고 침대 밑에서 자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한대경은 여기저기 뒹굴면서 잠에 들려고 했으나 오늘따라 유난히 잠에 들 수 없었다.방이 하도 커서 지아의 냄새가 잘 맡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아주 열심히 맡아야만 은은하게 맡을 수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한대경을 더욱 미치게 했다.지아는 갑자기 화들짝 놀라면서 깨어났다.“뭐 하는 거야?”한대경이 지아를 품속으로 확 끌어당겼기 때문이다.“자, 네 냄새 맡아야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이거 놔! 난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병만 치료해 준다고 했지...”그러자 한대경은
“계속 볼 거야!”지아는 베개로 한대경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그 소리에 한대경은 바로 눈길을 돌렸다.“미안! 네가 내 품 안에 있다는 거 깜빡하고 있었어.”“꺼져”한대경은 침대에서 바로 일어났고 안색도 원래대로 바로 돌아왔다.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버티고 서서 말했다.“어젯밤에 잘 잤어.”“꺼져!”지아는 화가 나서 칼로 그의 손가락을 잘라 반지를 바로 가지고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리고 한대경은 오전 내내 멍하니 손가락만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보스, 손에 꿀이라도 있습니까? 오전 내내 손가락만 보고 있었던 거 아십니까?”배신혁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이때 한대경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모두 떨쳐버리고 말했다.“별거 아니야. 여자나 좀 데리고 와.”“여자요? 보스, 마침내 생각이 트이신 거네요!”“남자는 원래 결혼부터 하고 그 뒤에 사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혼기도 이제 가득 차셨고 가정부터 꾸리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결혼은 무슨! 그냥 급한 대로 해결할 만한 여자만 있으면 돼.”“네?”여자를 물불처럼 보던 사람이 스스로 여자를 찾다니 마냥 이상하기만 한 배신혁은 멍하기만 했다.하지만 한대경의 말대로 순순히 할 수밖에 없었다.이윽고 어둠이 내려앉자, 여자들이 줄줄이 한대경의 침실로 들어가게 되었다.여자들은 하나같이 예쁘게 차려입었고 별의별 스타일이 다 있었다.한대경이 들어오자 여자들은 하나같이 수줍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배신혁이 찾아온 여자는 생김새도 몸매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한대경은 그중의 한 명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이리와.”“옷 벗겨.”한대경은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앞으로 불러왔다.청순하게 생긴 그 여자는 한대경의 부름에 웃음꽃이 피고 말았다.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자들은 눈에 불꽃이 날 정도로 질투심이 불타올랐다.“네.”한대경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리까지 벌리고 있었다.건방지기 짝이 없는 모습인데 얼굴은 반칙일 정도로 잘생기고 늠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