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을 잃고 있는 지아를 향해 한대경은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면서 아무런 핑계로 둘러대기 시작했다.“네 신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서. 아주 높은 분이시라고.”“어떻게 알게 된 거야?”“그 사람이 너한테 원수라고 하는 거 들었어. 그리고 마성을 제 집 드나듯이 드나들고 전용기에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네가 일반인일 리가 있겠어?”지아는 솔직하게 말했다.바보인 척 콘셉트를 유지하기엔 상대가 이미 너무 많은 걸 보여줬으니 말이다.덤덤한 지아의 모습을 보고서 한대경이 물었다.“내가 누군지 알고도 무섭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무서워하던데?”“그전까지는 무서웠어. 근데 날 죽이고 싶었다면 지금까지 살려주지 않았겠지. 그래서 이제는 무섭지 않아. 하물며 네가 완쾌할 때까지 옆에 있어주고 치료해주면 보상도 준다고 했었잖아.”‘돈 때문이었어?”한대경은 콧방귀를 뀌었다.“돈이 그렇게도 좋아?”“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돈으로 우리 아이들 편하게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좋지 않을 리가 없잖아. 걱정하지 마! 네 병은 내가 꼭 치려해주마!”앞뒤 태도가 확 달라진 지아는 그럴만한 이유를 둘러댔다.한대경에게 있어서 지아는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워킹맘일 뿐이다.“참, 마사지도 해줘? 힘들지 않았어?”한대경은 그런 지아를 흘겨보았다.“갑자기? 전에는 대꾸도 하지 않더니.”지아는 난감한 듯이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말했다.“그... 결산할 때 조금만 더 챙겨주면 안 돼?”“돈독에 빠졌네 아주!”한대경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이미 마사지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네가 하는 거 봐서.”한대경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온갖 정신을 몰두하고 있던 지아는 한대경 팔의 상처가 이미 괜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외투를 벗겨주었다.한대경은 침대 정중앙에 누워있었고 지아는 옷을 벗겨주기 위해 신발까지 벗고 침대로 올라가서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이
정신을 차린 한대경은 지아를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차갑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목소리까지 한껏 내리깔았다.“뭐 하는 짓이야?”지아는 억울하다는 모습으로 침을 줍고서 말했다.“침이 네 손 옆에 떨어졌어.”한대경은 그제야 지아를 풀어주었다.“미안. 조건 반사로 그런 거야. 너 괜찮아?”지아 목의 선명한 손자국을 보고서 한대경은 자책하기 시작했다.‘괜찮을 리가 없을 건데...’“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알아. 앞으로 조심할 테니 얼른 쉬어.”지아는 침을 침구로 넣으면서 말했다.침실 문을 닫는 순간 지아는 그제야 땀이 뚝뚝 떨어지게 되었다.‘죽을 뻔했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반지에 대한 경계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만 둘 지아도 아니고 내일부터 직접 한대경에게 약을 끓어줄 생각이었다.약에 수면제를 적절하게 넣으면 그가 푹 자는 틈을 타서 손을 쓰면 되니 말이다.지금 지아가 생각해야하는건 반지를 갖고 난 뒤 어떻게 빠져나가는 것이다.며칠 뒤면 A국에서 담당자가 올 것인데, 지아는 그중에 무조건 도윤이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윽고 계획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었다.거의 잠에 들었을 때 누군가가 지아 침실로 들어왔는데, 볼 것도 없이 한대경이었다.지아 몸에서 나는 향기만 맡으면 잠을 설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가 있었으니 말이다.따라서 지아는 한대경을 상대하지 않고 침대 밑에서 자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한대경은 여기저기 뒹굴면서 잠에 들려고 했으나 오늘따라 유난히 잠에 들 수 없었다.방이 하도 커서 지아의 냄새가 잘 맡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아주 열심히 맡아야만 은은하게 맡을 수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한대경을 더욱 미치게 했다.지아는 갑자기 화들짝 놀라면서 깨어났다.“뭐 하는 거야?”한대경이 지아를 품속으로 확 끌어당겼기 때문이다.“자, 네 냄새 맡아야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이거 놔! 난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병만 치료해 준다고 했지...”그러자 한대경은
“계속 볼 거야!”지아는 베개로 한대경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그 소리에 한대경은 바로 눈길을 돌렸다.“미안! 네가 내 품 안에 있다는 거 깜빡하고 있었어.”“꺼져”한대경은 침대에서 바로 일어났고 안색도 원래대로 바로 돌아왔다.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버티고 서서 말했다.“어젯밤에 잘 잤어.”“꺼져!”지아는 화가 나서 칼로 그의 손가락을 잘라 반지를 바로 가지고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리고 한대경은 오전 내내 멍하니 손가락만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보스, 손에 꿀이라도 있습니까? 오전 내내 손가락만 보고 있었던 거 아십니까?”배신혁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이때 한대경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모두 떨쳐버리고 말했다.“별거 아니야. 여자나 좀 데리고 와.”“여자요? 보스, 마침내 생각이 트이신 거네요!”“남자는 원래 결혼부터 하고 그 뒤에 사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혼기도 이제 가득 차셨고 가정부터 꾸리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결혼은 무슨! 그냥 급한 대로 해결할 만한 여자만 있으면 돼.”“네?”여자를 물불처럼 보던 사람이 스스로 여자를 찾다니 마냥 이상하기만 한 배신혁은 멍하기만 했다.하지만 한대경의 말대로 순순히 할 수밖에 없었다.이윽고 어둠이 내려앉자, 여자들이 줄줄이 한대경의 침실로 들어가게 되었다.여자들은 하나같이 예쁘게 차려입었고 별의별 스타일이 다 있었다.한대경이 들어오자 여자들은 하나같이 수줍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배신혁이 찾아온 여자는 생김새도 몸매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한대경은 그중의 한 명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이리와.”“옷 벗겨.”한대경은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앞으로 불러왔다.청순하게 생긴 그 여자는 한대경의 부름에 웃음꽃이 피고 말았다.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자들은 눈에 불꽃이 날 정도로 질투심이 불타올랐다.“네.”한대경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리까지 벌리고 있었다.건방지기 짝이 없는 모습인데 얼굴은 반칙일 정도로 잘생기고 늠름했다
배이혁은 안색이 차갑다 못해 파래질 정도였다.“아무튼 방심하지 마.”“알았어.”배이혁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덧붙였다.“원수 요즘 기분 별로일 거야. 아프지 않게 네가 옆에서 잘 보살펴 드려.”“알았어.”담배 한 대도 채 피우지 못했는데 마지막 여자마저 쫓겨나왔다.배이혁은 담배를 끄고 배신혁과 눈을 맞추었다.“벌써 끝난 거야?”두 사람은 부하에게 모든 여자를 데리고 나가게 했다.이윽고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옷깃이 활짝 열려 있는 한대경의 가슴팍에는 립스틱 자국이 가득했다.하지만 얼굴은 더없이 어두워 보였다.“대체 어디서 데리고 온 여자들이야!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아무런 느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징그러웠으니 말이다.“보스, 도대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정확히 말씀해 주시면 저희도 쉽게 찾아드릴 수 있어요.”“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은 사람으로!”순간 배신혁은 어이가 없었다.“혹시 의술도 훌륭해야 하는 겁니까?”“있으면 더 좋고.”지아의 이름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었다.배신혁은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말했다.“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걔는 어디에 있어?”“오늘 하루 국립 병원에 있었을 겁니다. 지금도 그곳에 있을 겁니다.”“찾게 되면 나 불러.”한대경은 그 말 한마디만 남겨두고 가버렸다.배이혁은 어깨를 들썩이면서 말했다.“내가 뭐라고 했어? 그냥 찾지 마. 전 세계를 뒤진다고 하더라도 너 절대 못 찾아. 원수가 원하는 여자는 그 의사거든.”오랫동안 한대경의 곁을 지킨 배신혁과 배이혁은 지금껏 이런 한대경의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지아가 처음이었고 일단 한대경의 마음에 든 이상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근데 소수연 선생님 이미 결혼했잖아.”“아직 이성을 붙잡고 있는 거지. 대체품이라도 찾아달라고 하는 거잖아. 이성을 잃게 되면 소수연 선생님 괜찮을 거 같아? 집안 파탄 내고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겠어?”다른 사람이 할 수 없
아침에 있었던 일로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한대경의 품에서 튀어나와 거리를 두었다.“나한테서 떨어져.”그 행동에 한대경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나한테 무슨 전염병이라도 있어?”지아는 코를 쥐고 핑계를 대며 안전거리를 유지했다.“향수냄새! 너무 싫어!”한대경은 자신의 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내려다보았다.방금 너무 급하게 나온 바람에 옷 갈아입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던 것이었다.하지만 지아는 오히려 기뻐했다.욕구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시작하면 자기한테 그런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이윽고 지아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비아냥거렸다.“적당히 풀어주는 건 괜찮지만 너무 화려하게 놀지 마. 과도한 욕구로 인해 신장 결핍과 만성 전립선염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건 상식이고.”그 말에 한대경은 부서질 듯 이를 악물며 물었다.“욕구가 과하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지금 네 몸에 있는 립스틱 자국을 보면 세 가지 브랜드에 세 가지 색상이나 있어. 그럼, 넌 오늘 적어도 3명 이상의 여자를 만났다는 거야. 근데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겠어?”그런 이야기를 부끄러움도 없이 하는 여자를 보며 한대경은 눈살을 찌푸렸다.“어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나한테 아이가 넷이라고! 그리고 나 의사야. 그쪽으로는 너보다 내가 아는 게 더 많아. 하물며 정상적인 현상이고 적당히 하면 스트레스도 풀고 신체에도 좋은 일인데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래?”지아는 말하면서 계속 약재를 가지려고 했다.약재마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지아가 잡았다 하면 정확한 양이었다.바로 그때 한대경은 갑자기 지아의 뒤에 서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럼 넌? 어떤 동작을 선호하는 편이야?”갑작스러운 19금 대화에 지아는 멈칫거렸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해.”지아는 마지막 약재까지 손에 넣고서 먼지를 탈탈 털면 모든 약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하룻밤 샘물에 담그는 것 잊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든 동작을 마쳤다.지아가 정신이 들었을 때 그녀는 이미 한대경의 몸 아래쪽에 누워 있었다.지아를 바라보는 한대경의 눈빛은 너무 노골적이고 욕망이 샅샅이 드러나 있었다.‘쟤 왜 저래? 이미 하고 온 거 아니야?’지아는 마음을 추스르며 침착하게 입을 열려고 애썼다.“왜 그래?”손을 움직였지만 한대경은 조금도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심지어 손에 힘을 더하면서 반지끝은 지아의 부드러운 피부를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내가 얼마든지 부르는 대로 줄 테니 하나만 들어줘.”“뭔데?”지아는 좋은 일이 아니라고 직감이 팍 들었다.한대경은 입술을 핥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나랑 하룻밤만 자자.”“꿈도 꾸지 마!”지아는 바로 그의 얼굴을 후려치려고 했다.“미친놈이!”하지만 그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고 또다시 ‘감금’되고 말았다.“화내지 마.” 한대경은 안색이 무척이나 어두웠다.“오늘 여자 만난 건 사실이야.”“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아무리 집적거려도 징그럽기만 하고 느낌이 없었어. 어렸을 때 자극받은 적이 있어서 여자한테 손도 대지 못했었는데... 넌...”한대경은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덧붙였다“넌 달라... 너한테 난 반응이 생겼거든. 그래서 치료하는 김에 이것도 같이 치료해줘. 의사잖아!”가면 아래에 있는 지아의 얼굴은 거의 익어갈 지경이었다.아무리 아이를 4명이나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충격적이었다.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병을 치료해 준 적이 없는 지아이다.“안 돼! 내 전공과 맞지도 않고 그쪽 주치의를 찾아가.”“너만큼 프로페셔널한 의사는 없어. 네가 가장 적합해. 나한테는...”한대경은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나 반응이 일어났었다.그 말인즉슨, 꼭 지아여야만 한다는 것이다.모처럼 욕망을 불러일으킨 지아인데, 이대로 흘려보내기에 무척이나 아쉬웠고 더는 나타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지아는 한대경을 자격하고 싶지 않아 가능한 한 침착한
지아는 일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한대경이 막무가내로 나가게 둘 지아도 아니었다.한대경의 손길이 피부에 닿기 직전, 지아는 무릎으로 남자의 아랫배를 내리쳤다.이윽고 지아는 그가 아등바등하는 동안 바로 차버리고서 침대에서 도망쳐 내려왔다.급한 대로 와인 한 병을 집어 들었다.지금 지아는 이 와인이 언제 생산되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즉시 와인을 탁자에 세게 두드렸고 와인은 땅에 흘러내렸고 지아는 유리 파편을 손에 들고서 자기 목에 겨누었다.“오지 마!”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지아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한대경이다.“진정해.”“다가가지 않을 테니 그거 내려놔.”지아는 열이 잔뜩 오른 남자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차가운 목소리로 지아가 경고했다.“나한테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네 앞에서 죽어버릴 거야!”“너한테 아이가 있는데, 나 때문에 죽기야 하겠어?”“그런다고 한들 난 절대 너한테 이렇게 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나 자극하지 마. 이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지아는 말을 뱉고 난 뒤 미친 듯이 방에서 뛰어나왔다.그때 마침 정면으로 오고 있던 배신혁을 마주치게 되었다.배신혁은 지아가 손에 유리 파편을 들고서 미친 듯이 달려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지아에 대한 배신혁의 태도는 그럭저럭 공손한 편이었다.“선생님, 괜찮으세요?”지아는 그를 매섭게 째려보았다.“보스 좀 잘 챙기시죠!”말을 마치고서 지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버렸다.어리둥절한 채로 배이혁에게 물었다.“형, 선생님 왜 저러셔?”그때 침실 입구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머리에 침을 꽂은 남자가 나타났다.“억지로 하려다가 뒤죽박죽됐나 보네.”“설마...”지퍼가 잔뜩 내려간 채로 도망 나온 지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두 사람은 서서히 확신하게 되었다.“보스, 대체 뭘 하신 겁니까? 지나가던 개까지 죽일 셈
어젯밤 지아의 반응이 너무 격했는지 한대경은 하루 종일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지아는 국립병원에서 의료진들에게 침법을 가르쳐 주었다.날이 어두워지자 한대경은 지아가 침을 놓아주러 오기를 기다리면서 어떻게 사과할지생각했다.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이유 없이 심장이 조여왔다.그는 등 돌리고 손을 등 뒤에 지고 서 있었지만, 긴장함을 숨기려고 흉악한 말투로 말했다.“어젯밤 일은 내가 잘못했어, 오해하지 마, 너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유부녀를 좋아하는 것뿐이야.”지아를 안심 시켜주려고, 그는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힐 계획까지 세웠다.유부녀를 좋아한다는 건 그냥 핑계일 뿐이었다.지아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한대경은 귀밑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계속 흉악하게 소리쳤다.“그러니까 안심해. 다시는 너한테 손대지 않을 테니! 전에 약속했던 것도 그대로 지킬게.”“왜 말이 없어? 내가 다 사과했는데, 또 뭐를 원하는데...”그는 화가 나서 돌아섰지만, 주름진 공효신의 얼굴과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젠장! 이런 개망신을 하다니!’“원장님이 여긴 왜...”공효신은 느릿느릿하게 걸어오면서 입을 열었다.“원수, 제가 귀가 멀어서 원수의 말은 제대로 정말로 듣지 못했습니다.”한대경의 얼굴은 어두워졌다.“무슨 이이에요?”공효신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일일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침을 놓아드리려고 온 겁니다. 수연 씨한테 이미 배우고 왔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한대경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이내 기다리고 있던 지아가 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다면서.“너 같은 늙은이한테 그딴 걸 받고 싶지 않아! 꺼져!”지금까지 다친 한대경을 모두 공효신이 직접 봐줬었다.공효신의 마음속에서 한대경은 그의 손자와 다를 바 없었다.그는 한대경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므로 단 한 번도 따지지 않았다.“네, 어차피 국립 병원 의료진 전체가 할 줄 아는 일이니 원하시는 대로 의사 보내겠습니다.”“...”한대경은 어쩔 수 없어져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