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있었던 일로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한대경의 품에서 튀어나와 거리를 두었다.“나한테서 떨어져.”그 행동에 한대경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나한테 무슨 전염병이라도 있어?”지아는 코를 쥐고 핑계를 대며 안전거리를 유지했다.“향수냄새! 너무 싫어!”한대경은 자신의 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내려다보았다.방금 너무 급하게 나온 바람에 옷 갈아입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던 것이었다.하지만 지아는 오히려 기뻐했다.욕구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시작하면 자기한테 그런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이윽고 지아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비아냥거렸다.“적당히 풀어주는 건 괜찮지만 너무 화려하게 놀지 마. 과도한 욕구로 인해 신장 결핍과 만성 전립선염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건 상식이고.”그 말에 한대경은 부서질 듯 이를 악물며 물었다.“욕구가 과하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지금 네 몸에 있는 립스틱 자국을 보면 세 가지 브랜드에 세 가지 색상이나 있어. 그럼, 넌 오늘 적어도 3명 이상의 여자를 만났다는 거야. 근데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겠어?”그런 이야기를 부끄러움도 없이 하는 여자를 보며 한대경은 눈살을 찌푸렸다.“어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나한테 아이가 넷이라고! 그리고 나 의사야. 그쪽으로는 너보다 내가 아는 게 더 많아. 하물며 정상적인 현상이고 적당히 하면 스트레스도 풀고 신체에도 좋은 일인데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래?”지아는 말하면서 계속 약재를 가지려고 했다.약재마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지아가 잡았다 하면 정확한 양이었다.바로 그때 한대경은 갑자기 지아의 뒤에 서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럼 넌? 어떤 동작을 선호하는 편이야?”갑작스러운 19금 대화에 지아는 멈칫거렸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해.”지아는 마지막 약재까지 손에 넣고서 먼지를 탈탈 털면 모든 약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하룻밤 샘물에 담그는 것 잊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든 동작을 마쳤다.지아가 정신이 들었을 때 그녀는 이미 한대경의 몸 아래쪽에 누워 있었다.지아를 바라보는 한대경의 눈빛은 너무 노골적이고 욕망이 샅샅이 드러나 있었다.‘쟤 왜 저래? 이미 하고 온 거 아니야?’지아는 마음을 추스르며 침착하게 입을 열려고 애썼다.“왜 그래?”손을 움직였지만 한대경은 조금도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심지어 손에 힘을 더하면서 반지끝은 지아의 부드러운 피부를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내가 얼마든지 부르는 대로 줄 테니 하나만 들어줘.”“뭔데?”지아는 좋은 일이 아니라고 직감이 팍 들었다.한대경은 입술을 핥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나랑 하룻밤만 자자.”“꿈도 꾸지 마!”지아는 바로 그의 얼굴을 후려치려고 했다.“미친놈이!”하지만 그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고 또다시 ‘감금’되고 말았다.“화내지 마.” 한대경은 안색이 무척이나 어두웠다.“오늘 여자 만난 건 사실이야.”“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아무리 집적거려도 징그럽기만 하고 느낌이 없었어. 어렸을 때 자극받은 적이 있어서 여자한테 손도 대지 못했었는데... 넌...”한대경은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덧붙였다“넌 달라... 너한테 난 반응이 생겼거든. 그래서 치료하는 김에 이것도 같이 치료해줘. 의사잖아!”가면 아래에 있는 지아의 얼굴은 거의 익어갈 지경이었다.아무리 아이를 4명이나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충격적이었다.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병을 치료해 준 적이 없는 지아이다.“안 돼! 내 전공과 맞지도 않고 그쪽 주치의를 찾아가.”“너만큼 프로페셔널한 의사는 없어. 네가 가장 적합해. 나한테는...”한대경은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나 반응이 일어났었다.그 말인즉슨, 꼭 지아여야만 한다는 것이다.모처럼 욕망을 불러일으킨 지아인데, 이대로 흘려보내기에 무척이나 아쉬웠고 더는 나타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지아는 한대경을 자격하고 싶지 않아 가능한 한 침착한
지아는 일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한대경이 막무가내로 나가게 둘 지아도 아니었다.한대경의 손길이 피부에 닿기 직전, 지아는 무릎으로 남자의 아랫배를 내리쳤다.이윽고 지아는 그가 아등바등하는 동안 바로 차버리고서 침대에서 도망쳐 내려왔다.급한 대로 와인 한 병을 집어 들었다.지금 지아는 이 와인이 언제 생산되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즉시 와인을 탁자에 세게 두드렸고 와인은 땅에 흘러내렸고 지아는 유리 파편을 손에 들고서 자기 목에 겨누었다.“오지 마!”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지아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한대경이다.“진정해.”“다가가지 않을 테니 그거 내려놔.”지아는 열이 잔뜩 오른 남자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차가운 목소리로 지아가 경고했다.“나한테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네 앞에서 죽어버릴 거야!”“너한테 아이가 있는데, 나 때문에 죽기야 하겠어?”“그런다고 한들 난 절대 너한테 이렇게 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나 자극하지 마. 이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지아는 말을 뱉고 난 뒤 미친 듯이 방에서 뛰어나왔다.그때 마침 정면으로 오고 있던 배신혁을 마주치게 되었다.배신혁은 지아가 손에 유리 파편을 들고서 미친 듯이 달려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지아에 대한 배신혁의 태도는 그럭저럭 공손한 편이었다.“선생님, 괜찮으세요?”지아는 그를 매섭게 째려보았다.“보스 좀 잘 챙기시죠!”말을 마치고서 지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버렸다.어리둥절한 채로 배이혁에게 물었다.“형, 선생님 왜 저러셔?”그때 침실 입구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머리에 침을 꽂은 남자가 나타났다.“억지로 하려다가 뒤죽박죽됐나 보네.”“설마...”지퍼가 잔뜩 내려간 채로 도망 나온 지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두 사람은 서서히 확신하게 되었다.“보스, 대체 뭘 하신 겁니까? 지나가던 개까지 죽일 셈
어젯밤 지아의 반응이 너무 격했는지 한대경은 하루 종일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지아는 국립병원에서 의료진들에게 침법을 가르쳐 주었다.날이 어두워지자 한대경은 지아가 침을 놓아주러 오기를 기다리면서 어떻게 사과할지생각했다.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이유 없이 심장이 조여왔다.그는 등 돌리고 손을 등 뒤에 지고 서 있었지만, 긴장함을 숨기려고 흉악한 말투로 말했다.“어젯밤 일은 내가 잘못했어, 오해하지 마, 너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유부녀를 좋아하는 것뿐이야.”지아를 안심 시켜주려고, 그는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힐 계획까지 세웠다.유부녀를 좋아한다는 건 그냥 핑계일 뿐이었다.지아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한대경은 귀밑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계속 흉악하게 소리쳤다.“그러니까 안심해. 다시는 너한테 손대지 않을 테니! 전에 약속했던 것도 그대로 지킬게.”“왜 말이 없어? 내가 다 사과했는데, 또 뭐를 원하는데...”그는 화가 나서 돌아섰지만, 주름진 공효신의 얼굴과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젠장! 이런 개망신을 하다니!’“원장님이 여긴 왜...”공효신은 느릿느릿하게 걸어오면서 입을 열었다.“원수, 제가 귀가 멀어서 원수의 말은 제대로 정말로 듣지 못했습니다.”한대경의 얼굴은 어두워졌다.“무슨 이이에요?”공효신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일일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침을 놓아드리려고 온 겁니다. 수연 씨한테 이미 배우고 왔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한대경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이내 기다리고 있던 지아가 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다면서.“너 같은 늙은이한테 그딴 걸 받고 싶지 않아! 꺼져!”지금까지 다친 한대경을 모두 공효신이 직접 봐줬었다.공효신의 마음속에서 한대경은 그의 손자와 다를 바 없었다.그는 한대경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므로 단 한 번도 따지지 않았다.“네, 어차피 국립 병원 의료진 전체가 할 줄 아는 일이니 원하시는 대로 의사 보내겠습니다.”“...”한대경은 어쩔 수 없어져 두
“잠이 안 올 때 수면제를 처방해 주려고.”지아는 마음속으로 꿍꿍이를 세우고 있었다.“네가 가서 준비해봐. 3일 후에 움직이면 여기에 홍인을 놓고 임무가 취소되면 목련 한 송이를 놓을게.”“좋은 소식 기다릴게.”두 사람은 잠시 만나고 난 뒤 자리를 떴고 지아는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한대경이 왔는지 자고는 있는지 전혀 모른 채.이튿날 그녀는 평상시대로 국립병원으로 갔다.요 며칠 동안 지아는 모든 사람들과 잘 지냈고 다들 ‘수연 씨’에서 그를 ‘수연 선생님’이라고 존칭하기도 했다.한대경은 틈틈이 들렸다가 몸을 기울이며 의술을 가르치는 지아를 보았었다.인내심 있게 두 가지의 비슷한 약재를 비교하면서 ‘강의’하는 지아를 우러러보면 젊은 의사들이 한 둘이가 아니었다.왜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은 여자를 좋아할까? 아마도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박력과 부러움을 사는 의술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지아가 침을 놓을 때마다 몸에 필터가 씌워진 것처럼 왠지 모르게 한대경을 설레게 하는 것만 같았다.지아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렸지만 못 본 척하고 몸을 돌렸다.여자의 직감으로 한대경은 자기한테 더 이상 욕구가 아니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단순한 욕망이라면 아무리 발버둥 치다고 하더라고 어떻게든 침대로 끌고 갔을 것이다.하지만 요 며칠 동안 많이 조용해진거 보니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이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정이다.최악인 상황이기도 했다. 지아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니 말이다.사랑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들고 앞으로 반지를 가져가는 일은 더욱 번거로워질 것이다.하지만 지아는 A국 사람이 미리 온 것을 생각지 못했고 국립병원까지 바빠졌다.그들은 언제든지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지아가 약에 수면제를 넣기 시작했을 때 공효신은 약간 어리둥절했다.“갑자기 왜 약을 더 넣는 거예요?”“원수께서 요 며칠 잠을 잘 못 주무셨다고 해서요. 수면제를 넣어 효과를 보고 안 좋으면 양을 늘리려
지아는 다른 이유를 찾아서 도윤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먼저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요즘 지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아의 의술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기에 공효신은 그대로 그녀에게 맡겼다.상대가 워낙 존귀한 사람이라 혹시라도 차질이 생길까 봐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때요?”지아는 도윤의 맥박을 만지고 있던 손을 떼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과로와 저혈당으로 갑자기 쓰러진 거예요.”모두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온 사람은 A국의 정해신침 같은 인물이다. 항상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좀처럼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만약 그가 여기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곧 새드 엔딩을 의미한다.지아는 침을 꺼내 도윤의 팔맥 교회혈, 양측 내관혈, 도랑혈 등 13개 혈에 침을 놓고 자극을 주자 도윤은 유유히 깨어났다.연기 대상을 줘야 할 정도였다.“무슨 일이야...”“보스, 방금 기절하셨는데 다행히 이분이 한방에 구해주셨어요. 이분 꽤 젊어 보이는데, 의술이 아주 그냥 무서울 따름이에요.”지아는 진봉의 칭찬을 듣고 머리가 켜지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칭찬?’지아는 웃음을 참으며 분부했다 “이 분 혹시 아무것도 먹지 못한 거 아니예요?”“네, 이틀 동안 너무 바빠서 며칠 밤을 새우고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늘 아침도 못 먹었어요.”“저혈당이 있으니, 앞으로 아침 꼭 챙겨 먹고 정 안되면 사탕이라도 준비하고 다니세요.”도윤은 아직도 지아 품에 안겨 겸허하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고마워요, 선생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모두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행히 큰일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윤이가 말머리를 돌렸다. “요즘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뒤숭숭해요. 이따가 다시 봐주세요.”“네.”지아는 그를 부축시키고 난 뒤 한대경에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니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다시 봐 드릴 거예요.”한대경은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도
소지아가 위암 양성 판정을 받았던 날, 이도윤은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깨에 멘 숄더백 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선배, 수술 안 하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바로 입원 수속 밟자.”“됐어요,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디기 힘들 거예요.”임건우는 몇 마디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소씨 가문 파산 이후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차마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임건우는 소지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배,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임건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지아가 대학을 휴학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계의 천재로 불리던 소지아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 소계훈이 치료를 받는 최근 2년 동안, 오직 소지아만이 바쁜 일정을 쪼개 그를 돌보았다. 정작 소지아 자신은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지나가던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어두컴컴한 밤, 소지아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자 소지아를 둘러싸고 있던 추위가 씻겨나갔다.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 방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방의 조명은 무척 따뜻했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소지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이게 내가 받아야 할 벌인가 봐.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해서 지금 신이 이제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건가...’소지아는 1.2미터 길이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누워 몸을 웅크렸다. 왼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아래에 깔린 담요까지 촉촉하게 적셨다.침대 위에 있던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지켜내지 못 했어. 근데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세상을 떠난, 소지아의 정신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어둠에 잠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다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보호자님,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서 이미 수술실로 옮겼습니다.”“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하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