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지아의 머릿속에는 안하무인으로 굴던 백채원과 미셸의 그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들이 그렇게 제멋대로 굴 수 있었던 모두 그들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뒤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고 무슨 일을 저지르든 편 들어주고 해결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지아의 곁도 비어 있지 않을 것인데 바로 그녀에게도 가족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시간은 이미 늦은 밤이었고 부장경은 지아가 원래 쓰던 방에 데려다 주었다. 부장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커다란 눈송이만 그의 몸 뒤에서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지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삼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이 전에 내가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거 있잖아.” 지아는 어둡게 가라앉은 부장경을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알고 있어요.” 이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었고 단연코 많지 않은 부장경의 흑역사 중 하나일 것이다. 지아는 이미 부장경이 어색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말했다. “아마 삼촌은 처음부터 저와 혈연관계가 있었기에 호감이 생겼던 것일 수도 있어요. 이해해요. 그건 마치 제가 각하와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죠.” 이 말 한마디에 어색하던 부장경의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는데 미셸 같은 멍청한 동생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는지 알 알아. 이제 부씨 가문에 들어온 이상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하게 해줄게.” 이건 부장경이 지아에 대한 약속이었는데 연인이 될 수 없다면 앞으로는 가족이자 연장자의 신분으로 그녀를 지키려 했다. 그리고 지아도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삼촌.” 부장경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얼른 쉬어.” 지아는 방 문을 닫았고 부장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지아에 대한 호감이 사랑인지 혈육의 정인지는 누구도 알 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부장경은 이런 결과도 썩 나쁜 건 아니라 생각했다. 필경 지아의 신분이 폭로되면서
도윤은 뭔가 의미심장한 눈길로 대답했다. “그게 복일지 불행일지는 아직은 알 수 없어. 영예와 위험은 항상 함께 존재하고 불행과 행복 또한 마찬가지니 말이야.” 그러나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도윤이 지아를 상처받게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민연주도 있었다. 부남진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순간부터 그녀는 부씨 가문에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민연주가 부남진과 결혼한 수년 동안 그는 줄곧 민연주를 존중하고 아껴주고 감싸주었지만 유독 사랑의 감정만은 주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그런 부남진의 모습에 민연주는 불만을 느꼈고 한바탕 크게 싸웠던 적 도 있는데 부남진은 당시 싸늘한 눈빛으로 민연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게 약을 타 먹이고 내 침대에 올라왔던 그 순간부터 당신은 영원히 내 사랑을 받지 못할 거란 생각은 했어야지?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권력과 지위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그 후 민연주도 점차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부남진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보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이루고 사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될까? 민연주는 더 이상 많은 것은 바라지 않았고 오직 자신이 부남진 같은 권위 높은 사람을 만났단 것에 이미 감지덕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부남진이 마음속에 줄곧 한 여자를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남진은 의식을 잃은 순간에도 그 여자의 이름만 하염없이 부르곤 했으니 말이다. 민연주도 그 여인의 존재를 수소문한 적 있었지만 이미 몇 십 년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이로 하여 민연주는 그 여인이 진작에 죽은 거라 생각했다. 남자들이란 다들 첫사랑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민연주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밤 부남진이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본 민연주는 바로 심장이 철렁했다. 하필 그 상황에서 부남진의 첫사랑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하용은 뒤에서 미셸을 와락 끌어안았다.“도윤이 벌인 모든 일들은 전부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야. 전에는 백씨 가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본처를 버리고 백채원과 결혼도 하려고 했으니 말이야.” “도윤 그 자식은 단지 염치없고 뻔뻔한 비열한 인간일 뿐이야.” “이상한데?” 미셸이 갑자기 반응했다. “만약 도윤 오빠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왜 날 이용하지 않은 건데? 설마 우리 부씨 가문이 백씨 가문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걸까?” 이 말에 하용은 순간 움찔했고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널 이용하지 않은 건 또다른 음모가 있을 거야. 설아, 지금까지 도윤이 저지른 일들을 잘 생각해봐. 그 자식은 단지 배은망덕한 놈일 뿐이라고.”“한 번 두 번 끝도 없이 일부러 너를 망신당하게 했고 이젠 그 자식 때문에 네가 집에서도 쫓겨 났잖아.” 억울한 듯 눈물을 흘리고 있는 미셸의 모습에 하용은 얼른 다가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다정하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영원히 네 곁에 있을 거야. 설아,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이 말을 들은 미셸은 고개를 들고 하용의 다정한 눈을 바라보았고 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 정말로 날 사랑하는 거야?” “당연하지. 설아야, 이렇게 오랫동안 널 짝사랑해왔는데 아직도 내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거야?” 하용은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랬다면 내 잘못이야. 내가 표현을 너무 적게 했나 보네. 앞으로는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 줄게.” 몇 년 간 줄곧 도윤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던 미셸은 모두가 그녀를 포기한 이 순간 누군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마음이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비록 도윤만큼 잘나진 않았지만 하용도 꽤 잘생긴 얼굴이긴 했고 평소 성격도 아주 시원시원 했다.게다가 우월한 기럭지까지 갖추었는데 이런 하용의 품에 안긴 미셸은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눈이 내리는 이
미셸은 눈만 깜빡였고 이 순간 마음이 아주 복잡했다. 이때 하용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는데 미셸은 그가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는 줄 알고 눈을 찔끔 감았다. 그러나 하용은 단지 미셸을 품에 안을 뿐이었는데 자신의 온기로 그녀를 따뜻하게 감쌌고 흩날리는 눈보라를 막아주었다.“이제 안 춥지?” 미셸은 이전까지 자신이 남자에 대한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금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음은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미셸은 처음 주동적으로 하용을 안았고 그의 품에 기댄 채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었는데 묘하게 안정감이 들었다. 오랜 시간 도윤에 대한 짝사랑으로 미셸도 이미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도윤을 내려놓고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보니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구나.’ 이날 밤, 하용은 별장에서 미셸과 함께했는데 알콜의 힘과 약물의 작용이 없어도 모든 것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이번에 미셸은 더 이상 도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그의 눈엔 온통 하용뿐이었다. “하용, 정말 나에게 잘해줄 자신 있어?” 하용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귓가에 속삭였다. “설아, 넌 내가 아주 어렵게 붙잡은 여인이야. 그런데 내가 너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잘해주겠어?” 이 말에 미셸은 심장이 콩닥거렸고 곧바로 하용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그런데 이때 하용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시간이 많이 늦었어. 오늘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아서 이제 그만 가봐야 해.” 이런 경험이 처음인 미셸은 매우 당황스러웠는데 사실 그녀는 하용과 조금 더 붙어있고 싶었다. “왜 그렇게 바쁜 거야? 내가 아빠에게 일 좀 줄여달라고 말씀드릴까? 그럼 더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할 수 있잖아.” 하용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고 손가락으로 미셸의 코끝을 톡 치더니 말했다. “내가 안 바쁘면 널 어떻게 먹여 살리겠어? 난 다른 사람들
미셸은 자신에게 줄곧 진심이던 하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니야. 난 단지 우리가 결혼도 전에 아이를 가졌단 걸 알게 되면 아빠가 더 화를 내진 않을까 그게 걱정되었던 거야.” “각하가 화를 내실 수도 있어. 하지만 이 하늘 아래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 기껏해야 몇 마디 꾸짖겠지만 너 혼자 밖에서 지내는 게 걱정되어 다시 널 가문으로 데려올 거야.” “게다가 각하도 연세가 있으니 분명 손자 손녀를 품에 안고 싶을 거야. 하지만 장경이 형님은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아이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러니 네가 아이를 낳게 되면 각하와 사모님께서는 분명 좋아하실 거야.” 하용은 마치 악마처럼 미셸의 귀에 속삭이며 끊임없이 그녀를 설득했다. “설아, 널 이렇게 사랑하는 날 봐서 내 아이를 낳아주면 안 될까? 소지아 그 여자도 고작 스물 몇 살이지만 이미 엄청 큰 아이가 있잖아.” 하용이 지아를 언급하자 미셸의 표정은 순간 싸늘해졌다. ‘그래, 도윤 오빠는 지금껏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 ‘다음번에 오빠가 또 다쳐도 과연 나처럼 수혈해줄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아?’ 미셸은 심지어 도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녀는 도윤에게 자신이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이런 그녀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알았어. 피임약은 먹지 않을 게. 그러니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말지는 이제 우리의 운명에 달린 거야.” 하용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 말했다. “우리 아이는 분명 아주 예쁠 거야.” “아직 아무 것도 확정된 게 없는데 뭐가 그리 급해?” “설아, 난 너무 기뻐. 네가 내 아이를 가진다니 이건 내 평생의 행운이야.” 미셸은 냉담했던 도윤과 다정한 하용의 모습이 비교되었고 하용의 그런 따뜻함이 그녀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고 있었다. 하용은 이혼 경력이 없고 늘 긍정적인 사람이었기에 미셸은 그를 도윤과 비겨도
유화연은 하용이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고 미셸이 남긴 그 흔적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 “화연, 난 더렵혀졌어. 네가 날 다시 정화해 주면 안 돼?”그렇게 하용과 유화연은 서로의 품에 안겼다. 바깥에서 내리던 눈이 점차 잦아들고 나서야 하용은 아쉬움은 뒤로 하고 다시 몸을 일으켰고 유화연에게 더 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유화연은 꼭 그에게 옷을 입혀주겠다고 일어났다. 하용이 미셸의 몸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유화연의 몸은 온통 그가 남긴 흔적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관계가 끝난 뒤 하용이 직접 유화연을 씻겨주었는데 그가 유화연에 대한 감정은 절대 조금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화연, 날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내가 모든 것을 얻고 더 이상 날 위협할 자가 없어지면 그때는 누구도 우리 사이를 가로막지 못할 거야. 그리고 난 반드시 너와 결혼할 거야.” 유화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하용, 나에게 정말 그 날이 오긴 할까?” “꼭 올 거야. 더 이상 남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꼭 그렇게 만들 거야.” 유화연은 계속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난 네가 부설아 아가씨와 매일 붙어있다가 둘 사이에 감정이 생길 까봐 너무 두려워.” “화연, 내가 사랑하는 건 오직 너뿐이야. 내가 왜 부잣집 응석받이로 큰 미셸 같은 여자를 좋아하겠어?” “만약 부씨 가문에 접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나도 그 여자와 엮이긴 싫었어. 그러니 나에게 시간을 좀 더 줘, 응?” “알겠어. 하용, 난 널 믿어. 하지만 이런 방법이 부설아 아가씨께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이 말을 들은 하용이 냉소하며 말했다. “아니, 부설아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너의 동정의 상대가 다른 누구든 다 상관없지만 부설아만큼은 절대 동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싸늘한 하용의 모습에 유화연은 깜짝 놀랐고 그런 그녀를 발견한 하용은 다시 다정한 표정을 지
하지만 지아는 한참 동안 망설이며 입을 떼지 못했고 부장경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네가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말하지 못하는 거 다 알아.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그저 말만 몇 마디 해주면 돼. 우리 집에 가장 차고 넘치는 게 돈과 인력이니 말이야.” “전에는 항상 너 혼자였을 지 몰라도 이젠 달라. 너에게도 가족이 생겼잖아. 가족에게 그런 마음은 안 가져도 돼.” “난 오히려 네가 뭐든지 스스로 해결하고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까봐 더 겁나는 걸?” 부장경의 이 말에 지아는 마음이 따뜻했는데 오래 전 소계훈 외에 그녀가 이런 따뜻함을 느끼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삼촌, 딱히 생각해둔 건 없어요. 그저 방이 차분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요구는 없어요.” “알겠어. 그럼 디자이너를 안배해 놓을게.” “만약 가능하다면 마당에 벚꽃 나무가 몇 그루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에 소씨 가문에 살 때 벚꽃 나무가 있었는데 아주 예뻤어요.” “그래, 다른 건?” 지아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게 다예요.” “앞으로는 우리 앞에서는 뭐든지 겁내지 않아도 돼. 무슨 일이든 가족끼리 의논하는 게 제일 좋은 거니 말이야.” “아버지께서는 이미 너를 호적에 올릴 준비를 하고 계셔. 하지만 외부에서 모르게 진행 중이고 잠시 동안 네 신분은 아직 비밀이야. 이제 적당한 시기를 찾아 세상에 알릴 거야.” 지아는 애초부터 자신의 신분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 없었기에 부남진의 결정에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삼촌 어머니 쪽은...” 부남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주요하게 어머니가 알게 될까 봐 그러는 거야.” 이에 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왜죠?” “사실 아버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 심지어 내가 볼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한 그 감정은 책임감에 가까워.” 부장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말하다 보니 이게 네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르겠구나.
미셸의 건강 검신 결과는 곧바로 하용의 손에 전해졌다. 이때 비서가 한 마디 귀띔했다. “보스, 의사가 그러는데 부설아 아가씨는 앞으로의 3일 간이 임신할 확률이 가장 높은 시기랍니다.” “알겠다.” 하용이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미셸을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미셸은 하용이 가장 질색하는 부류의 여자였다. 하지만 하용은 부남진의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부남진에게 딸은 오직 미셸 하나였기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다. 때문에 하용은 그런 미셸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면 부남진이 비록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도 이 혼사를 동의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부장경은 비록 수하에 많은 부대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줄곧 A시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게다가 부남진은 이미 나이가 들었고 암살 시도도 연거푸 두 번이나 당했으니 그도 슬슬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지아의 신분이 폭로된 건 하용에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지아와 도윤의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되었고 미셸이 도윤에게 품고 있던 마음을 확실히 끊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하용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바로 미셸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용은 혹시라도 부남진이 어젯밤 일로 자신에게 불만을 가졌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미셸이 자신의 아이를 낳기만 하면 하용은 자신이 진정한 부씨 가문의 일원으로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위가 됐는데도 설마 부남진이 날 계속 무시할까?’ 그러나 하용이 유일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어젯밤 부남진은 왜 지아를 보고 그런 표정을 지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하용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곧 성공할 자신의 계획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하용의 모든 승부수는 이제 미셸의 임신에 달려 있었다. “화연의 거처에 파란 장미는 보내라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