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아는 한참 동안 망설이며 입을 떼지 못했고 부장경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네가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말하지 못하는 거 다 알아.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그저 말만 몇 마디 해주면 돼. 우리 집에 가장 차고 넘치는 게 돈과 인력이니 말이야.” “전에는 항상 너 혼자였을 지 몰라도 이젠 달라. 너에게도 가족이 생겼잖아. 가족에게 그런 마음은 안 가져도 돼.” “난 오히려 네가 뭐든지 스스로 해결하고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까봐 더 겁나는 걸?” 부장경의 이 말에 지아는 마음이 따뜻했는데 오래 전 소계훈 외에 그녀가 이런 따뜻함을 느끼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삼촌, 딱히 생각해둔 건 없어요. 그저 방이 차분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요구는 없어요.” “알겠어. 그럼 디자이너를 안배해 놓을게.” “만약 가능하다면 마당에 벚꽃 나무가 몇 그루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에 소씨 가문에 살 때 벚꽃 나무가 있었는데 아주 예뻤어요.” “그래, 다른 건?” 지아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게 다예요.” “앞으로는 우리 앞에서는 뭐든지 겁내지 않아도 돼. 무슨 일이든 가족끼리 의논하는 게 제일 좋은 거니 말이야.” “아버지께서는 이미 너를 호적에 올릴 준비를 하고 계셔. 하지만 외부에서 모르게 진행 중이고 잠시 동안 네 신분은 아직 비밀이야. 이제 적당한 시기를 찾아 세상에 알릴 거야.” 지아는 애초부터 자신의 신분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 없었기에 부남진의 결정에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삼촌 어머니 쪽은...” 부남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주요하게 어머니가 알게 될까 봐 그러는 거야.” 이에 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왜죠?” “사실 아버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 심지어 내가 볼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한 그 감정은 책임감에 가까워.” 부장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말하다 보니 이게 네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르겠구나.
미셸의 건강 검신 결과는 곧바로 하용의 손에 전해졌다. 이때 비서가 한 마디 귀띔했다. “보스, 의사가 그러는데 부설아 아가씨는 앞으로의 3일 간이 임신할 확률이 가장 높은 시기랍니다.” “알겠다.” 하용이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미셸을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미셸은 하용이 가장 질색하는 부류의 여자였다. 하지만 하용은 부남진의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부남진에게 딸은 오직 미셸 하나였기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다. 때문에 하용은 그런 미셸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면 부남진이 비록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도 이 혼사를 동의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부장경은 비록 수하에 많은 부대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줄곧 A시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게다가 부남진은 이미 나이가 들었고 암살 시도도 연거푸 두 번이나 당했으니 그도 슬슬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지아의 신분이 폭로된 건 하용에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지아와 도윤의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되었고 미셸이 도윤에게 품고 있던 마음을 확실히 끊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하용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바로 미셸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용은 혹시라도 부남진이 어젯밤 일로 자신에게 불만을 가졌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미셸이 자신의 아이를 낳기만 하면 하용은 자신이 진정한 부씨 가문의 일원으로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위가 됐는데도 설마 부남진이 날 계속 무시할까?’ 그러나 하용이 유일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어젯밤 부남진은 왜 지아를 보고 그런 표정을 지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하용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곧 성공할 자신의 계획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하용의 모든 승부수는 이제 미셸의 임신에 달려 있었다. “화연의 거처에 파란 장미는 보내라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
민연주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뭐라고? 부씨 가문에 오래 머문다니?” “네, 그렇게 됐습니다. 전 다른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민연주는 감히 부남진에게 직접 무슨 상황인지 물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상황의 진전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게다가 지아에 대해서도 감히 제멋대로 굴지 못하고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아와 부남진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두 사람은 거의 온종일 붙어 있었고 부남진이 지아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도 여러 번 눈에 민연주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남진은 항상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연주는 심지어 지아와 부남진의 관계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했지만 그녀가 알아본 결과는 전에 부남진이 조사했을 때의 결과와 다를 것 없었다. 소계훈은 절대 부남진의 아들일 리가 없었다. 소씨 가문은 A시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가문이고 부씨 가문은 그 뒤에 A시에서 발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부남진과 소계훈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었다. ‘부남진이 그 여자에 대한 감정은 정말 단지 귀한 인재에 대한 아낌과 목숨을 구한 은인에 대한 고마움일 뿐일까?’ 민연주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셸이 귀찮게 굴지 않으니 민연주의 주변은 한껏 조용해졌는데 이건 평소 미셸의 성격이 전혀 아니었기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민연주는 바로 미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너 뭐하고 있어? 네 아빠가 소지아 그 여자를 가문으로 다시 데려온 거 알고 있어?” 이에 미셸은 하용의 몸을 밀어내고 겨우 자신의 목소리를 진정시킨 후 말했다. [역시 아빠가 그 천한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을 줄 알았어! 엄마, 난 아빠가 또 화를 내실 까봐 조용히 지내고 있는 거잖아.] “어쨌든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안 되겠어! 뭔가 느낌이 심상치 않아.” 미셸의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
미셸은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듯 앞으로의 일들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고 단지 자신이 점점 하용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부씨 가문에서는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고 지아는 부남진을 위한 따뜻한 차를 들고 서재로 향했다. 이때 부남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지아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상냥하게 물었다. “할아버지, 시간이 늦었는데 왜 아직도 쉬지 않으시는 겁니까?” 부남진 앞에는 빨간 글씨로 쓰여진 두꺼운 서류들이 수두룩했고 그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다. “얘야, 쉬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쉬는 거란다.”“무슨 큰 일이라도 난 거예요?”지아가 물었다. “내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외부로 새어 나간 모양이야. 요 며칠 A국 주변 나라들이 조금씩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B국은 남수도에서 우리 어민들을 구금해 버렸고 서쪽에서도 우리 나라 변경에서 말썽을 부리고 있어. 게다가 동쪽과 서북쪽에서도...” 이에 부남진은 매우 골치가 아파 보였다. 비록 모두 큰일까진 아니었지만 마치 잠 자는 사자의 주변에서 얼씬대는 모기처럼 사람을 성가시게 했으니 말이다. A국이 통치를 시작한 몇 십 년 동안 경제는 쾌속적으로 발전되었고 이미 전 세계 3위 안에 드는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하지만 예로부터 오랫동안 통일된 나라는 반드시 분쟁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분쟁이 오래되면 다시 통일된다는 말이 있다.평화가 몇 십 년 동안 유지되었으니 누군가 조금씩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들은 다 사소한 일들일 뿐이잖아요. 할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현재의 형세로는 누구든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진 못할 거예요.” 그러자 부남진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얘야, 최근 우리와 인접국인 C국의 발전이 꽤 빠른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줄곧 우리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어.” “만약 그들이 배후에서 B국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면 고작 B국 따위가 어찌 함부로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겠어?” “C국이요? 5년 전에 나라의
앞으로의 며칠 동안은 부장경뿐만 아니라 도윤도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전에는 도윤이 시시콜콜 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면 지금은 거의 늦은 밤이나 새벽이 되어서야 자고 있는지 안부 인사를 한 마디 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아는 대부분 아침이 되어서야 도윤의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고 답장을 보내도 언제 다시 그의 회답을 받을 수 있을 지조차 알 수 없었다.오히려 지아는 한가해졌고 부씨 가문에는 매일 디자이너들이 들락거렸는데 오늘 그녀에게 맞춤 옷을 제작해 주었다면 내일은 쥬얼리 디자이너가 다녀가곤 했다. 맞춤 제작 외에도 매일 많은 명품들이 지아의 거처에 도착하곤 했는데 이에 그녀는 전에 부장경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메워주겠다던 부장경의 다짐은 혈육의 정뿐만 아니라 이런 물질적인 것도 한 몫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민연주는 매일 지아의 거처에 수북이 쌓이는 옷들과 쥬얼리를 보면서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부남진는 항상 소박하고 절약하는 사람이었고 절대 재부를 뽐내거나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지아라는 외부인에게 매일 수많은 옷들을 보내주고 있으니 이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미셸도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보름이나 지나도 다시 가문으로 돌아오겠단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고 있었다. 민연주는 몰래 뒷마당의 시공 현장을 들여다보았다.부남진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난초의 위치까지 옮기며 공간을 넓히고 있었는데 지아만을 위한 새로운 거처의 기본적인 틀이 잡히고 있었다. 마당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구들이 생겼고 작은 놀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게다가 벚꽃 나무도 한 그루 자리 잡았고 방까지 한 층 더 만들어지고 있었다. 민연주는 자신과 부남진의 안방조차도 이곳의 3분의 1 정도밖엔 되지 않을 텐데 그가 대체 뭘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민연주는 최근 부남진이 화가 꽤 풀린 것 같아 보
민연주는 싱글벙글하여 미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아, 좋은 소식이 있어. 네 아빠가 너한테 내일 저녁 집으로 돌아와 밥 먹으라고 하셨어. 내일이 기회이니 더 이상 아빠를 화 나게 해선 안 돼.” 미셸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이미 3일 전 임신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미셸은 달콤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알겠어. 엄마, 나도 내일 모두에게 알릴 서프라이즈가 있어.] “서프라이즈? 뭘 준비한 건데 그래?” 미셸은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이성이 이런 엄청난 소식은 내일 식사 자리에서 발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엄마도 분명 기뻐할 소식이야.] 민연주는 비록 약간 의심이 가긴 했지만 최근 미셸은 줄곧 얌전했고 이상한 일을 벌일 낌새도 없었기에 이제는 정말 그녀가 철이 든 거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민연주는 몇 마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때 시간을 확인하던 미셸은 아직 하용이 돌아오지 않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하용은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설아, 미안해. 지금 야근 중이야. 밥은 먹었어? 우리 아기랑 함께 굶고 있는 건 아니지?] 전화기 너머에서 하용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여왔고 이에 미셸은 불쾌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밥은 먹었어. 언제 돌아와?” [오늘 밤엔 아마 못 갈 것 같아. 요즘 일이 터져서 다들 아주 바빠. 도윤은 일 처리하러 다른 곳으로 파견까지 갔어.] [하지만 난 네가 임신한지 얼마되지 않아 네 곁에 있으려고 남은 거야.] 미셸은 약간 서운하긴 했지만 이해한다며 말했다. “그래, 알겠어. 아빠가 내일 저녁 나더러 집으로 돌아와 밥 먹으래.” [이거 좋은 일 아니야? 은사님의 화가 풀렸다는 말이잖아.] “응, 그러니 너도 내일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해. 모두에게 나의 좋은 소식을 알려야 하니까.” [알겠어. 그럼 오늘 밤은 혼자서도 얌전히 잘 자야 해. 무서우면 나에게 꼭 전화하고, 알겠지?
지아가 방금 해경과 영상통화를 마친 순간 도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름 간 거의 연락이 닿지 않다가 겨우 전화가 온 것이었고 지아는 마침내 도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아.] 전화기 너머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응.” 지아는 원래 도윤이 어디에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혹시 비밀 업무를 실행중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나 안 보고 싶어?] 도윤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는데 아마 극한의 지역에 있는 것 같았다. 지아도 그런 곳을 몇 군데 가본 적 있었는데 숨을 한 번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찬 공기에 폐가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별로?” [지아, 왠지 좀 서운한 걸? 난 너와 달리 네가 엄청 보고 싶거든.] 잠긴 목소리가 도윤의 남성미를 한 층 더 끌어올렸고 지아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아는 더 이상 전처럼 도윤이 보이지 않을 때면 밤낮없이 그가 그립지 않았고 매일 그녀 스스로 해야 할 일들도 아주 않았다. 전에는 도윤이 지아에게 있어 마치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공기이자 물 같은 존재였지만 이제는 한 병의 음료 같았다. 가끔 생각날 때면 그 단맛을 느끼고 싶긴 하지만 없다고 해도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진 않는 그런 음료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도윤의 머릿속은 온통 지아뿐이었고 그건 이미 도윤의 집념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 내일 돌아가.] 그러자 지아가 담담히 대답했다.“그래, 조심해서 돌아와.” [잘 자.] 이때 지아는 한 치이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도윤은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두 사람은 육체적인 접촉이 늘어나긴 했지만 절대로 그 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도윤이 손바닥을 펼치자 눈꽃이 그의 손바닥에 내려 금세 녹아버렸고 마치 자신과 지아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도윤은 손을 꽉 쥐었고 그렇다고 한들 절대 다시 지아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아와의 관계가 꼭 다시 좋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위
도윤은 걸음을 재촉했고 드디어 다음날 점심쯤 A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집에 돌아가 씻지도 않은 채 부씨 가문으로 향했고 온몸에 피 비린내와 한기를 풍기며 부남진의 서재로 들어갔다.이때 지아는 마침 차를 따르고 있었고 부남진은 책을 보고 있었다. 도윤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고 지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싸늘했던 눈빛에 부드러움이 한 스푼 더해졌다. “각하, 명에 따라 임무를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부남진은 보고 있던 책을 덮었는데 어젯밤 이미 상세한 보고를 들었기에 도윤에 대해 칭찬의 눈빛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아주 잘했어. 시간도 늦었으니 온 김에 남아서 식사라고 하고 가거라.” 지아가 곁에 있어서인지 부남진은 업무 상의 얘기는 더 길게 하지 않았다. 만약 전이었다면 도윤은 식사 자리에 십중팔구 미셸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부남진의 이 요청을 거절하기 급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지아가 부씨 가문에 있었기에 싱글벙글하여 냉큼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도윤은 부남진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각하, 지아와 잠깐 할 말이 있습니다.” 이때 지아는 부남진에게 차를 부어주고 있었는데 그가 안 된다고 할 까봐 먼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마침 저도 도윤과 할 말이 있습니다.” 이에 부남진은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보거라. 그런데 나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니 빨리 돌아와서 마사지 좀 해줘야 해.” 사실 부남진이 머리가 아프다는 건 단지 지아와 도윤이 함께 오래 두지 않으려는 핑계일 뿐이었다. 요 며칠 동안 부남진은 또 인력을 동원하여 지아의 과거를 알아보았고 그녀를 죽이려던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 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도윤이 그동안 지아에게 저질렀던 일들까지 낱낱이 알게 된 것이다. 도윤은 부남진에게 있어 출중한 부하인 것 확실했다. 하지만 만약 도윤이 지아와의 재혼을 꿈 꾼다면 그건 부남진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윤도 그런 부남진의 마음을 눈치 챌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