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은 지아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말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저희 제대로 한 번 알아보자고요.” 지아도 미셸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했고 이 모습을 본 부남진이 표정이 어두워진 채 물었다. “설아,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부남진은 민연주가 꾸민 일인 줄 알고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민연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여보, 이번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나도 쟤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른다고.” 민연주는 확실히 결백했고 며칠간 줄곧 지아를 확실히 무너뜨릴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면 섣불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미셸의 기세를 본 민연주는 그녀가 분명 하용에게 지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오늘의 이 연회 역시 하용의 아이디어임을 눈치 챘다. 지금 미셸과 하용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지아의 진짜 모습을 까발리려는 것이었다. 상황이 생각했던 대로 흘러간다면 단연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지아가 진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 중에 부남진에게 해가 되는 행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미 부남진은 민연주와 미셸이 지난번 꾸민 일로 크게 실망한 상태인데 만약 지금 또 다시 일이 실패한다면 두 사람은 완전히 부남진의 눈에 나게 될 게 뻔했다. 민연주는 급히 미셸을 붙잡고 말했다. “설아, 지금 뭐하는 거야? 얼른 이리 와서 식사부터 해. 우리 딸이 너무 활기 차서 여러분들께 못 보 꼴 보이네요.” “부인, 천만에요. 좀 활기 차야 보기도 좋죠.” 하씨 가문 사람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리고 이미 사람들 앞에 선 미셸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뱀을 조종할 줄 아는 지아의 딸처럼 지아 또한 여우 같은 교활한 여자라는 걸 도윤에게 보여주려 했다. 당시 마을에서 꾸역꾸역 참았던 지아에 대한 그 분을 오늘 반드시 풀려던 것이었다. “여러분, 잠시 조용해 주세요. 전
너무 담담한 지아의 모습에 미셸은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마치 그녀가 자신을 전부터 알고 있은 듯한 느낌도 받았다. 미셸은 곧바로 머릿속으로 자기 주위의 모든 여자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절대 지금 눈 앞에 가면을 쓰고 있을 만한 그런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고 단지 지아가 자신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라고 여겼다. 절대 지아에게 다시 속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다. 한쪽에서 민연주와 부남진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두 사람 모두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아는 물에 젖은 가면의 끝부분을 쥐고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가 장기간 가면을 쓰고 있었던 탓인지 피부는 티 없이 뽀얬고 턱은 날렵했으며 입술에는 아무런 화장기가 없지만 자연스러운 핑크색을 띄고 있었다. 콧대는 아주 오똑했는데 그것은 많은 연예인들조차 갖고 싶어 하는 그런 코였고 심지어 이마도 광택이 넘쳐났으며 큰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이 얼굴이 미셸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그녀는 3년 전 처음 지아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지아의 옷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머리는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가냘픈 몸으로 복도에 서있었는데 그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모습을 본 미셸은 여자로서 세상에 이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있다는 것에 질투가 났다. 단지 지아가 미간을 조금 찌푸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말이다. 당시 미셸은 도윤이 왜 지아를 위해 모든 것을 내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려 하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은 다 지아의 여우 같은 얼굴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분노와 질투에 눈이 멀었던 미셸이 사람들 앞에서 지아의 뺨을 후려쳤던 것이다. 당시의 지아는 반격할 힘도 없이 그저 미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미셸은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 지위의 격차를 알려주려 했다. 오래 전의 그 한 번이 바로 미셸이 유일하게 지아를 이겼던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부남진의 상태가 이상하다 느꼈고 민연주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민연주는 부남진과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가 이렇게 정신줄을 놓은 모습은 본 적 없었다. ‘저 여자가 대체 뭐길래?’ 민연주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부남진이 지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했다. 도윤도 당연히 부남진의 눈빛을 발견했고 곧바로 지아를 감싸 안았다. 이미 물에 흠뻑 젖은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초라했지만 도윤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듯 싸늘했다. “은사님, 사모님, 보다시피 바네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제 전처인 소지아입니다.” “지아는 낯을 많이 가리는 지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때문에 당시에도 겨우 설득하여 은사님의 수술을 부탁한 거고요.” “그런데 저희의 선한 마음이 이렇게까지 의심을 사고 수상하게 여겨질 줄 몰랐네요. 설아 아가씨가 수도 없이 지아를 괴롭히고 못 살게 굴어도 은사님 몸의 회복을 위해 저희는 참았어요.” “하지만 설아 아가씨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 지아를 모욕하려 드니 저도 더 이상은 지아가 끝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은사님의 몸은 이미 많이 회복되었으니 이제 다른 의사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아가 조금 밖에 젖지 않은 것에 비해 도윤은 온몸이 다 젖어버렸는데 냉랭하게 말을 끝낸 뒤 그녀의 손을 잡고 현장을 벗어났다. 그 누구도 상황이 이렇게 번질 거라고 생각지 못했고 부장경이 다가가 말했다. “밖은 날이 추우니 먼저 옷부터 갈아입고 가. 안 그럼 감기 걸려. 나머지는 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그러자 도윤이 욱하여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윤은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강제로 지아를 데리고 현장을 벗어났다. 밖에 나오자마자 찬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왔고 조금밖에 젖지 않은 지아는 추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도윤은 추
미셸도 제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는데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된 걸까? 도윤은 이번 일로 미셸을 더욱 미워하게 됐을 것이다. 부남진은 현장에서 미셸을 대놓고 꾸짖지는 않았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 자신을 쳐다보던 싸늘한 눈빛에 미셸은 심장이 철렁했다. 미셸 기억 속의 부남진은 매일 아주 바쁜 아버지였는데 일 년에 한 두 번 얼굴 보기도 바쁠 정도였다. 비록 부남진은 미셸과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좋은 물건이 있을 때면 항상 첫번째로 그녀에게 보내주곤 했고 이에 미셸도 아버지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미셸의 유년시절은 매우 행복했고 부남진의 지위가 높아진 뒤 그녀는 더욱 공주님 같은 존재였는데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그녀를 떠받들어 주곤 했다. 그런데 미셸은 오늘 또 사고를 쳤고 아버지인 부남진은 이미 그녀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연주는 곧장 부남진을 따라가며 그를 위로했다. “여보, 주방에 아직 남은 음식들이 있을 텐데 내가 사람 시켜 가져오라고 할까? 몸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잘 챙겨 먹어야지.” 부남진은 손에 염주를 들고 그 염주알을 하나씩 넘기고 있었는데 표면은 이미 아주 매끌매끌하게 변해 있었다.매번 분노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부남진은 바로 이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곤 했다. 이때 부남진의 상태는 당장 폭발할 것 같은 화산이었고 마지막 조금 남은 인내심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배 안 고프니 당신도 저리 가.” 부남진은 가족에게 분노를 쏟아낼 까봐 억지로 참으며 혼자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런데 하필 민연주가 눈치도 없이 부남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도윤 그 애도 참! 전처가 병을 봐주는 게 무슨 부끄러울 일이라고 숨겨서 이 사단을 만드는지, 안 그래?” “설아도 혹시 누군가 신분을 속이고 당신을 해치려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겠어? 결과가 어찌 됐든 시작은 좋은 마음이었으니 말이야.” 순간 부남진은 더 이상 억누르던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미셸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것을
미셸은 순간 머리가 띵했고 안색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아빠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빠,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예요? 제가 그 여자에게 물을 부었단 이유만으로 부녀 간의 연을 끊는다고요?” 부남진은 의자에 앉은 채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방금 그의 목소리는 분명 크지 않았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주었는데 미셸과 민연주는 그를 직시할 수조차 없었다. “당시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너무 많아 곁에 있으면 혹시 너에게 피해가 갈까 네 엄마와 함께 너를 먼 시골로 보냈어.” “그 후에는 일이 바쁘고 시간이 나질 않아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더니 어떻게 이런 못난 아이로 커버린 거야? 설마 진짜 네가 여태껏 저질러온 일들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부남진이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학생 때 성적은 엉망이었고 그 때문에 공부는 때려 치고 군에 입대를 하겠다고 했지? 뭐, 나라에 보답한다는 같잖은 이유로 말이야. 난 네가 도윤이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걸 다 알고 있었어.” “그래도 혹시 부대에 들어가서 지내면 네가 철이 조금은 들겠지 싶어서 허락했더니 입대한 뒤 넌 어떻게 했어?” “매일 게으름만 피우면서 다른 사람의 공은 네가 다 뺏아갔었지? 네가 출신이 남다르고 신분이 높다는 이유로 다들 네 비위를 맞춰 줬으니 말이야.” “7년 전에는 너의 그 멍청함 때문에 특수 부대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어. 국가에서 그런 인재들을 한 번 양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 지 알기나 해?” “또 그 군인들 뒤에는 얼마나 많은 가족들과 식구들이 있는 지 생각해봤어? 고작 너 같은 멍청한 사람 한 명 구하느라 말이야!” 부남진은 인재를 아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분통한 듯 손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넌 다른 사람의 목숨을 길바닥의 잡초인양 너무 쉽게 보고 있어. 하지만 당시 넌 나이가 어렸으니 너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어.” “그런데 너를 다시 데려오고 난 뒤에는 또 어떻게 했어? 단지 한 간호사
미셸은 그제야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부남진은 줄곧 아주 엄격한 아버지였다. 미셸은 어렸을 적 오빠인 부장경이 잘못을 저질렀던 때 부남진이 그를 어떻게 처벌했는지 두 눈으로 생생히 본 적 있었는데 부장경을 알몸으로 눈밭에 내치고 채찍으로 때리던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미셸은 여자 아이였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지 않았기에 부남진은 한 번 또 한 번 그녀를 참아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오늘의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고 부남진은 철저히 폭발했다.이때 부장경이 모든 손님들을 보내고 급히 달려왔는데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니 모두들 식사할 마음이 사려졌던 것이다. 마침 부장경이 발을 들여놓는 순간 미셸과 민연주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오빠, 잘 왔어. 평소에 오빠가 날 제일 아껴주는 거 알아. 그러니 제발 아빠 좀 설득해봐. 날 부씨 가문에서 쫓아내고 나와 부녀 간의 연도 끊겠다고 하셔!” 이 말을 들은 부장경은 미간을 찌푸렸고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 이번 일은 확실히 설아가 잘못한 건 맞지만 집안에서 쫓아내는 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설아 같은 여린 여자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러는 겁니까?” “쟤가 혼자 못 살아? 그러면 바네사는 집안이 망하고 부모님 두 분 다 세상을 떴는데 어떻게 혼자만의 힘으로 지금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의가 된 걸까?” 이 말에 부장경은 놀란 듯한 눈길로 부남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계시는 겁니까?” 전까지 부장경이 지아에 대한 인상은 도윤이 미치도록 사랑하는 전처라는 것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요 며칠 사이에 지아와 관련된 자료들을 전부 찾아보고 나서야 그녀가 아주 안타까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부남진의 간단한 말 한 마디에 지아의 과거가 주르륵 나오다니, 그는 분명 오늘 처음 바네사가 지아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말이다. 사실 부남진은 지아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도윤이 처음 지아를
민연주는 마음이 뒤숭숭했는데 딸이 걱정되기 보다 부남진이 지아에 대한 그 특별한 태도가 더 신경 쓰였다. ‘분명 소지아를 알고 있는 거야!’ 이때 밖에서는 눈꽃이 휘날리고 있었고 부장경이 직접 차를 운전했는데 앞뒤로 차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부장경은 뒷좌석에 앉은 부남진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바깥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 소지아 씨를 아시는 겁니까?”그러나 부남진은 나지막하게 한숨만 내쉴 뿐 대답하지 않았고 이 모습에 부장경은 핸들을 꽉 잡고 더욱 긴장되기 시작했다. 무언가 어마어마한 일이 발생할 것만 같았다. 지아는 집에 돌아온 후 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고 도윤은 방에 들어와 그녀를 꽉 안고는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만 해. 밥도 안 먹었을 텐데 배고프지? 내가 가서 간단하게 뭐 좀 만들어 올게. 그러니 얼른 이 손부터 놔.” 그제야 도윤은 마치 대형견처럼 지아의 목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알았어.” 그러나 지아가 없었던 기간 동안 집 냉장고에 있던 야채들은 이미 완전히 말라 비틀어졌고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간단히 라면 두 그릇을 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아는 맛있게 끓여진 라면을 도윤 앞으로 건네며 말했다. “일단 배부터 채워.” 지아 앞에서 도윤의 음산하고 어둡던 분위기는 사라진지 오랬다. 방금까지 축축하게 젖었던 머리가 살짝 마른 도윤의 지금 모습은 평소의 엄숙함은 사라지고 부드러움이 한 스푼 추가되었다. “지아, 사실 내가 바라던 게 바로 이런 생활이었어. 바깥의 폭풍과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항상 나만을 지켜주는 한 줄기의 작은 빛이 있는 그런 거 말이야.” 도윤은 지아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은 채 말했다. “과거엔 네가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어. 지아, 나에게 한 번만 다시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너에게 따뜻한 가족이 되어 줄게.” 도윤의 눈에는 간절함이 가득 차 있었는데 지아는 자신이 사라졌던 그동안 도윤이 참 많
지아는 자신과 도윤이 채 먹지 못한 라면을 보더니 눈 앞의 두 사람도 밥을 먹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말했다.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제가 간단히 라면이라도 끓여 올까요?” 곧이어 부남진과 부장경 두 사람도 함께 라면을 먹기 시작했고 지아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에 남은 식재료가 없어 죄송합니다.” “괜찮다. 가끔 이런 걸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부남진이 아주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는 가사 도우미가 없었기에 도윤이 주동적으로 설거지를 도맡아 하려 했고 자연스레 빈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겨갔다. 이 모습을 본 부장경이 미간을 찌푸렸는데 분명 이혼까지 한 두 사람이었지만 관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지아는 부남진과 부장경 두 사람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었고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시간도 늦었으니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 전 차실에서 우연히 그림 한 폭을 발견했고 그 그림에는 한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혹시 그 여인의 이름이 환희입니까?” 이 이름을 들은 부남진의 표정은 크게 변했고 격동한 듯 지아의 손을 잡고 물었다. “너 그 여인을 아는 거냐? 너와는 정확히 무슨 사이인 거야?” ‘설마 지금까지의 내 추측이 다 틀렸던 걸까?’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사실 저도 그 여인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그럼?” “몇 년 전, 전 우연히 제가 저희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저를 낳아준 부모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고요.”“그런데 전에 한 노인을 만난 적 있는데 그분께서는 제가 그분이 아는 한 사람과 얼굴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그때 환희라는 여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느냐?” 부남진은 지아의 손을 잡은 채 아주 조급한 듯 보였다. “누나, 아니 환희 씨는 지금 어디 있느냐?” “하지만 그 노인께서는 이미 연세도 많으셨고 글을 모르는데다 정신도 온전치 않아 제공받은 단서는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