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이 웃으며 말했다.“이 목숨으로 정 대표님의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 같은데요.”정수미는 박민정에게 이런 용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박민정, 아이 잘 살아 있잖아.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이는 누가 길러준대?”정수미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이미 한번 죽었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죽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딸을 찾아야 했다.박민정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비수가 정수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박민정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아이는 유씨 집안 핏줄이라 내가 죽어도 아무 영향은 없을 거예요.”정수미는 고통으로 미간에 식은땀이 잔뜩 맺혔다. 박민정이 혼자 복수하러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박민정은 정수미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직 박윤우와 박예찬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의 안전은 확보해야 했다. 하여 칼을 빼 들게 된 것이다.“정 대표님, 오늘 일은 그냥 교훈으로 삼아두세요. 딸을 지키는 건 문제 없지만 제 아이를 건드리는 건 절대 용납 못 해요.”“만약 다음이 있다면 전 제 모든 걸 걸고 덤벼들 거예요.”박민정은 이렇게 경고를 날리더니 칼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정수미는 이런 협박을 당한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아랫배를 움켜쥔 손에서 새어 나온 피를 보며 정수미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순간 정수미는 자기 딸이 박민정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윤소현도 마음이 모질긴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급하면 정말 다 같이 죽자고 덤벼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차에 앉은 정민기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부 지켜봤다. 여자인 박민정이 독하면 얼마나 독할까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정수미의 보디가드는 전문 업체에서 고용한 사람들이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들키는 날엔 정말 뼈도 추스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화풀이를 한 박민정이
유남준이 박민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안돼. 내가 챙기고 싶어서 그래.”“그럼 혼자 챙겨요.”박민정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유남준이 힘껏 당기자 이내 그의 품속에 안기고 말았다.“안돼.”“가자. 밥 먹으러.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유남준은 어디서 배웠는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박민정은 갈 생각이 없었다.유남준이 박민정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박민정은 억지를 부리는 유남준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가요.”밖에서 외식한 적이 별로 없는 박민정이었기에 맛있는 집이 어딘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기에 주변을 둘러보던 박민정이 결국 사람이 적은 중식당을 골랐다.둘은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유남준은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박민정의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잘생긴 얼굴은 여전했기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죄송한데 사진은 찍지 말아 주세요.”하지만 그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찍으려 했다. 그러다 유남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바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박민정은 앞으로 유남준을 데리고 나올 때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씌워야겠다고 생각했다.앞이 보이지 않는 훈남은 앞이 보이는 훈남보다 더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예를 들자면 길거리에서 매우 잘생긴 훈남을 마주치게 되면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훈남을 마주친다면 사람들이 부담 없이 눈을 마주칠 수 있을뿐더러 아련함까지 더해져 더 복합적인 감정이 생길 것이다.웨이터가 룸으로 안내했다. 그들을 안내하던 웨이터도 놀란 듯한 눈빛이었다.박민정은 이 웨이터도 잘생긴 얼굴에 놀란 것이라고 생각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박민정이 모르는 게 있었다. 조금 전 웨이터가 유남우와 윤소현을 다른 룸으로 안내했기 때문이다. 두 룸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웨이터가 여러
이를 들은 박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다.박민정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도움과 호의를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했다. 신세 지는 게 두려운 것 같았다.그래서인지 정수미와 윤소현이 아이를 해친 걸 알면서도 조하랑과 유남준에게 말하지 않았다.유남준은 박민정이 밥을 먹는 소리를 듣고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냉대를 받는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하여 유남준은 별로 먹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박민정이 유남준의 손을 잡았다.“이제 가요.”유남준이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박민정은 넋을 잃었다.“안 가요?”설마 애처럼 심술부리는 건 아니겠지?유남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을 꼭 끌어안았다. 너무 꽉 끌어안아서인지 박민정은 숨을 쉬기가 힘들어 유남준의 팔을 두드렸다.“이거 놔요. 시도 때도 없이 왜 안고 그래요?”두 사람이 나가려는데 다른 룸의 문이 열렸다. 이웃 룸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윤소현과 유남우가 이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유남우의 걸음이 멈칫했다. 윤소현은 혀를 끌끌 찼다.“여기서 아주버님과 형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결혼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뜨겁대요.”유남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유남준도 끝내는 박민정을 놓아주더니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유남우와 윤소현을 마주치게 되었다.박민정은 순간 난감해졌다.윤소현은 유남준이 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할까 봐 먼저 입을 열었다.“아주버님, 형님, 밸런타인데이라고 나온 거예요?”유남준이 이를 듣더니 박민정이 선 쪽을 바라봤다. 박민정이 대답했다.“네.”윤소현은 박민정에게 과시라도 하듯 유남우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저랑 남우 씨도 그래서 나왔는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어요? 같은 레스토랑에서 만나고.”박민정은 차를 타고 조금만 더 나가도 이 두 사람을 마주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예의를 차리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유남준을 데리고 나가려는
박민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그가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내가 눈이 안 보이잖아.”여기까지 걸어오는데도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유남준은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박민정이 잠깐 침묵하더니 이렇게 답했다.“눈이 안 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정말 부끄러운 건 그런 사람을 비웃는 사람들이죠.”박민정의 말을 들은 유남준은 전에 박민정과 같이 나갈 때마다 번번이 박민정의 난청을 무시했던 게 떠올랐다.“민정아, 미안해.”박민정이 멈칫했다. 도대체 오늘 그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왜요?”“별거 아니야. 이제 가자.”“그래요.”박민정이 시동을 걸었다.돌아가는 길에 유남준이 그녀에게 물었다.“병보석 건은 어떻게 됐어?”“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뇌 전문가가 증거 찾는 걸 도와주셨어요. 아마 곧 다시 감옥에 돌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박민정의 대답에 유남준이 살짝 놀랐다.김인우에게 이 일을 몰래 맡겨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박민정이 정말 직접 해결한 것이었다.그 뇌 전문가라는 사람을 어떻게 섭외했는지 궁금했다.“그럼 유산 소송은?”“그 일은 아직 더 준비해야 해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시간이 오래 지났고 바움 그룹도 망했으니 유산 소송을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유남준은 더는 묻지 않았다. 박민정에게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유남준은 다음 순서로 YN그룹의 해외 프로젝트를 뺏어올 생각이었다.YN그룹처럼 기반이 약하고 여자로 돈을 번 회사는 바움 그룹보다 더 상대하기 쉬웠다.유남준은 YN그룹을 인수하고 바움 그룹을 서프라이즈로 박민정에게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두원 별장.박윤우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면서 유남준을 혼내줄 생각이었다.“아,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도우미는 그가 왜 이렇게 다급해하는지 몰라 이렇게 말했다.“사모님은 약 한 시간 뒤에 오실 거야. 조급해하지 마.”“아저씨 기다리는 거
하지만 유남준이 이를 거절했다.“아니야. 이제 정말 배불러서 못 먹겠어.”이에 박윤우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안 돼요. 무조건 하나 더 먹어야 해요.”박민정은 그런 부자를 지켜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윤우야, 지금 이런 행동 매우 무례한 거 알지?”박윤우는 박민정이 이렇게 꾸짖자 유남준에게 더는 뭔가를 먹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유남준이 가고 내키지 않았던 박윤우가 주먹밥 하나를 들어 작게 베어 물었다가 매워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아, 매워. 너무 매운데?”박윤우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테이블엔 박윤우가 미리 준비한 뜨거운 물이 놓여 있었다. 원래는 유남준을 위해 끓여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대신 마신 박윤우는 혓바닥이 더 매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어떻게 이럴 수가...”박윤우는 자기가 유남준에게 속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남준의 연기도 만만치 않게 좋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베어 물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참기 힘든데 하나를 통째로 삼키고도 표정 관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박윤우는 테이블에 놓인 다른 주먹밥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주방으로 들어온 박민정이 그 주먹밥에서 살짝 삐져나온 겨자를 발견했다.“윤우야, 대답해. 이거 뭐야?”이에 박윤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엄마, 나는...”“안에 겨자를 넣었으면서 왜 아저씨한테 먹으라고 한 거야?”박윤우가 손톱을 잡아 뜯더니 이렇게 말했다.“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이럴게요.”박민정은 딱히 그를 혼내지는 않았지만 자세를 낮추고 이렇게 물었다.“그냥 왜 아저씨를 괴롭히는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야.”유남준은 그래도 박윤우의 친부였다. 언젠가 그들도 크면 분명 알게 될 것이다.박민정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싫어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유남준이 약속을 어기고 그를 회사에 데리고 가지 않아 그런 거라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은 박윤우라 어쩔 수 없이 핑계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엄마, 아저씨가 생기니까 엄
몽유했다고?박윤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자다가 돌아다닌 적은 없는데.”유남준은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얼른 정리하고 회사 가야지.”“네.”회사로 간다는 말에 박윤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박민정은 그가 유남준을 따라 회사로 간다는 말에 딱히 막지 않았다. 그저 안전에 조심하고 함부로 뛰어다니지 못 하게 잘 살펴보라고 했다.가는 길, 박윤우는 들뜬 마음으로 창밖을 스치는 풍경을 감상했다.한 시간 뒤, 차는 호화로운 빌딩 앞에 도착했다.IM 그룹을 보며 박윤우는 어딘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이거 형 박예찬이 말한 그 회사 아닌가? 최근에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를 많이 가로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그 회사였다. 유씨 집안도 IM 그룹의 배후가 누군지 찾고 있었다.“아저씨, 이 회사가 아저씨 회사에요?”“응, 왜?”“완전 크네요.”박윤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비밀을 알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빠 회사랑 비기면 어때?”유남준이 물었다. 이에 박윤우가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에이, 당연히 아빠 회사가 더 크죠. 아직 아빠랑 비기려면 멀었어요.”유남준은 이를 듣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박윤우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 여자 비서 한 명을 붙여줬다.여비서는 박윤우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물었다.“꼬마야. 안녕. 넌 이름이 뭐야?”여자의 몸에서 진한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박윤우는 본능적으로 이 여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저는 윤우라고 합니다.”박윤우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더니 회사를 빙 둘러봤다. 회사 규모가 꽤 컸고 여러 업무를 포함하고 있었다. 앞으로 만약 엄마와 형, 그리고 자기를 먹여 살리기엔 충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에 예쁜 여비서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윤우야, 아줌마랑 근처 놀이공원 가서 놀래?”여비서가 박윤우와 친해지려고 힘썼다.아이라면 놀이공원을 싫어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박윤우가 이를 거절
박윤우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여비서를 무시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새엄마가 되어주고 싶어 한다니 교훈을 줄 수밖에 없었다.여비서의 몸이 티 나게 굳어지더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만 해도 괜찮던 아이가 왜 갑자기 표정이 삭 바뀐 거지?서다희는 그제야 여비서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여비서를 쏘아보더니 박윤우를 데리고 몸을 돌렸다.일단 대표이사 비서실의 풍기를 잘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다.퇴근 후 박윤우는 유남준과 함께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박윤우가 유남준을 떠보기 시작했다.“아저씨, 회사에 예쁜 이모들이 많던데. 왜 우리 엄마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이를 들은 유남준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몰라.”유남준도 왜 박민정을 좋아하게 됐는지 알았다면 지금처럼 답답하게 속수무책은 아닐 것이다.박윤우가 말문이 막혔다.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앞에 앉은 기사가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누군가 우리를 미행하고 있습니다.”IM이 두각을 드러내면서부터 많은 회사가 그 배후가 누군지 조사하고 있었기에 유남준은 이미 이런 상황에 적응했다.“피해서 다른 길로 바꿔.”“네.”기사가 바로 다른 길로 바꿨다. 하지만 오늘 그들에게 붙은 차는 조사만을 위해서 따라붙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말았다.유남준은 본능적으로 박윤우를 품에 꼭 감싸더니 갑자기 날아온 비수를 막아냈다.귓가에 불어치는 차가운 바람에 박윤우는 넋을 잃은 채 유남준의 품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기사는 이런 장면이 익숙한지 별로 놀라지 않은 듯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오던 차가 몰래 유남준의 차량을 보호하던 차들로 둘러싸였다.사태가 진정되긴 했지만 유남준은 아까 날아든 비수에 의해 얼굴이 살짝 찢어졌다.“대표님, 괜찮으세요?”“난 괜찮아.”유남준이 이렇게 말하더니 품에 안은 아기를 다독였다.“나랑 회사로 나와보니 어때?”박윤우는 너무 놀란
박윤우는 한번 고집을 피우면 끝이 없었다. 문제는 지금 정말 아파서 몸이 불편했다.박민정은 꾹 참고 아이를 달래주었다.그러나 박윤우는 포기하지 않았다.“엄마, 아저씨가 와서 우리랑 같이 있어 줬으면 좋겠어.”“알았어. 그럼 아저씨 보고 오라고 할게. 그러니까 그만해.”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유남준은 아직 잠들지 않았고 서재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박민정은 살짝 미안한 듯 문을 두드렸다.유남준은 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문 쪽을 쳐다봤다.“아직 안 끝났어요?”“거의 다 됐어. 왜?”유남준이 묻자 박민정은 용기를 내서 말했다.“이따가 일 다 끝나면 우리랑 같이 자요.”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는 당장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그래.”그제야 박민정은 방으로 돌아가서 박윤우에게 유남준이 이따가 곧 올 거라고 했다.원래는 적어도 30분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고 몇 분 만에 유남준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온 것이다.박윤우는 유남준을 보자마자 소리쳤다.“아저씨, 제가 자면서도 막 걸어 다닌다면서요? 오늘 밤에 제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안아줘요.”유남준은 긴 다리를 앞으로 내디디면서 침대로 가 누웠다.박윤우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면서 박민정에게 말했다.“엄마, 엄마도 나 안고 자. 되지?”“그래.”박민정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그렇게 박윤우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잤고 박민정과 유남준은 박윤우를 안아주다가 손이 닿았다.박윤우는 지금처럼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다.엄마와 아빠가 양쪽에서 자신을 안아주자 박윤우는 곧 잠들었다.박민정은 아직 자지 않았고 어두운 불빛을 통해 유남준의 상처 있는 얼굴을 보고는 만지려고 손을 막 들었다.그런데 유남준은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박민정의 손을 잡으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안 잤어?”박민정은 흠칫했지만 손을 빼지 않고 말했다.“네.”유남준은 박민정의 손을 놓고 박윤우를 안아서 자신의 옆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