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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Author: 윤지
“바보야, 그렇게 신통한 의사가 어딨어.”

박민정이 농담한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는 은정숙은 그녀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난 너무 오래 살고 싶지 않아. 늙은이야, 오래 살아봤자 젊은 사람의 미움이나 받지. 이만큼 산 것도 충분해.”

박민정은 눈시울이 젖어 들었으나 애써 눈물을 삼켰다.

“무슨 말씀이에요... 살아 계셔서 예찬이랑 윤우가 자라는 모습도 지켜보고 결혼해서 애 낳는 것도 보셔야죠. 그러면 외증조할머니가 되시는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은정숙은 눈에 희망이 어렸다. 그때까지 살 수만 있으면 너무나 좋으련만 자신이 몸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친딸보다 더 친한 아이를 얻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유일하게 시름이 놓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박민정을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었다.

은정숙은 며칠 전부터 유남준이 일부 기억을 되찾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빚을 졌다는것도 거짓말이거니와 그가 박민정의 곁에 남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아챘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내고 있지만, 박민정이 구했다는 해외 전문가도 유남준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일을 제외한 다른 일에서도 유남준이 정말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응, 그래.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애들이 결혼하는 걸 지켜보마.”

“네.”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전문가분들한테 모레 오라고 할게요.”

“그래.”

박민정은 그제야 안심하고 은정숙이 잠드는 모습을 지켜보다 방을 나와 전문가한테 연락을 취했다.

그녀가 나간 후 누군가 또 방문을 두드렸다.

은정숙은 눈을 떴다.

“들어와요.”

유남준이 방안에 들어섰다.

“고마워요, 아주머니.”

그는 누구한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 적이 드물었다.

은정숙이 그를 대하는 낯빛은 여전히 그리 좋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은 넣어둬요. 유남준 씨를 도우려는 게 아니니까.”

박민정이 유남준한테 일말의 감정이 남아 있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고, 유남준도 변했기에 그녀가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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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연서가 전화를 끊고 막 눈을 붙이려던 참에 또다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화면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조금 의아한 마음에 전화를 받자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연서? 연서 맞니?”차현영이었다.예전, 오준수가 그녀와 이혼한 직후 차현영은 그녀의 연락처를 아예 차단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의 전화기를 빌려 걸고 있었다.바로 옆엔 오준수가 서 있었다. 손연서가 전화를 곧장 끊을까 염려해, 그나마 그녀와 연락이 닿을 가능성이 있는 차현영이 전화를 맡은 것이다.손연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저 맞아요.”“아이고, 다행이다. 드디어 네 목소리를 듣는구나. 언제 시간 좀 내서 집에 한 번 들르지 않겠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연서야.”차현영은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손연서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오 여사님. 그쪽 아들과 저는 이미 이혼했어요. 그러니 그쪽도 제 어머니가 아니죠.”차갑고 또렷한 그 말에 차현영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다.하지만 지금은 사정해야 할 입장이니 차현영은 억지로 분노를 눌러가며 상냥한 척 말을 이었다.“연서야, 그땐 준수가 철이 없었어. 나도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어. 왜 그때 너희를 막지 못했을까 싶어서...”“내가 준수 야단도 쳤어. 전처럼 이천애 같은 여우한테 절대 다시 안 휘둘릴 거야. 그러니까 너도 다시 돌아오면 안 되겠니?”그녀는 말을 마치고 옆에 있던 오성훈을 툭툭 건드렸다.“성훈아, 어서 엄마라고 부르렴.”오성훈은 귀찮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은 잘 들었다.“엄마... 엄마, 돌아와 줘요. 저 엄마밖에 없어요. 엄마, 제발 돌아와 줘요.”아이의 목소리에 손연서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저려왔다.하지만 그건 오성훈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아이에게 쏟았던 과거의 마음과 시간, 그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전에 차현영은 손연서에게 오성훈의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고 오성훈 역시 그렇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2화

    차현영은 그래도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이천애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자 급히 아들을 말렸다.“준수야, 그만해.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오준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손에 힘을 풀며 그녀를 밀쳐냈다.이천애는 힘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거칠게 기침을 쏟아냈다. 그녀를 향한 오준수의 눈에는 단 한 치의 연민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다가가 발로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마지막으로 한번 묻는다. 물건 어디 있냐?”이천애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정말이야. 켁켁... 도, 도둑맞았어.”오준수는 더는 말 섞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는지 곧장 어머니를 불러들여 방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하지만 방을 반 이상 뒤지고 나서도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이천애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는지 얼굴 가득 눈물 자국을 남긴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정말이야. 나 거짓말 안 했어. 도둑맞지 않았으면 벌써 출국했겠지.”“닥쳐!”오준수는 또다시 그녀의 몸을 걷어찼고 차현영은 참담한 얼굴로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우리 준수 생각은 안 해도, 네 아들 생각은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니? 그게 우리가 가진 마지막 돈이었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이천애는 고개를 숙이고 두 주먹을 꼭 쥐었다.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오빠,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날 용서해 줘. 그래도 나, 성훈이 엄마잖아. 성훈이가 엄마 없이 자라게 하고 싶어?”오준수는 그녀를 향해 침을 뱉었다.“너 같은 게 무슨 엄마야. 내가 눈이 멀었지, 너 같은 걸 좋아했던 내가 미친 거였어.”솔직히 그는 지금 누구보다 후회하고 있었다. 당시, 한낱 모델이었던 이천애에게 빠져 손연서와 아이를 저버렸던 그 선택이 뼛속까지 원망스러웠다.차현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내가 그때 널 말렸어야 했는데... 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1화

    홍주영은 하민재가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에선 박민정이 오늘 했던 말들이 자꾸만 맴돌았다.유남우는 정말 겉모습처럼 좋은 사람일까?예전엔 그녀가 유남우에게 너무 마음을 줬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외국에 있을 당시, 병을 앓고 있던 그를 안쓰럽게 여겼던 것일 수도 있다.그녀는 유남우의 좋은 면만을 보며 그를 받아들였지만 지금 점점 그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됐어요, 그 얘기는 그만해요.”하민재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기색을 보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홍주영도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한편, 손연서도 박민정 쪽 상황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약간은 실망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입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다혜를 입양하지 못하더라도 전 종종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박민정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할 때 손연서가 말을 이었다.“맞다, 민정 씨. 저 이천애 찾았어요.”“이렇게 빨리요?”박민정이 놀라서 되물었다.“전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걸요.”손연서는 이천애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분이 치밀었다.“그럼 이제 찾았으니 어떻게 할 건데요?” 박민정의 물음에 손연서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깊이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일단 이천애 주소를 오준수에게 흘려뒀어요. 둘이 알아서 치고받게 두는 거죠.”그녀는 이천애를 감시하라고 사람을 붙여두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곧바로 손연서 쪽에 영상이나 소식이 들어왔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곧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이천애는 오준수의 어머니가 아끼던 액세서리를 훔쳐 출국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도망치듯 허름한 여관에 숨어 있었다.오준수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그곳까지 찾아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는데 차현영도 함께였다.모자는 마치 원수를 만난 듯 이천애를 노려봤다.“이 죽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0화

    잠시 후, 홍주영은 병원에 도착했다.병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문 너머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몰래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 안에서 ‘유남우’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결국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그 유남우란 사람, 설마 자기 형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그럴 리 없어. 유남우랑 유남준 사이 엄청 안 좋았어.”하민재가 친구에게 단언하듯 말했다.“이번 일은 내가 졌다고 인정해야지. 세상에, 이렇게까지 음험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 나를 해치려고 일부러 교통사고를 꾸미다니.”그 말에 홍주영은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섰다.유남우가 하민재를 해치려고 사람을 시켜 교통사고를 냈다고? 그게 정말 사실일까?하지만 왜? 이유가 뭐지?“난 이만 간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대화를 나누던 하민재의 친구가 자리를 뜨려는 기색이었다.홍주영은 재빨리 복도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사람이 완전히 떠난 뒤에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음을 다잡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주영 씨, 안 오는 줄 알았어요.”하민재는 그녀를 보자 두 눈이 반짝였는데 정말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홍주영은 조용히 다가가 그의 곁에 앉았다.“밥은 먹었어요?”하민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주영 씨가 시켜준 음식 진짜 맛있었어요.”“그래요?”홍주영은 속으로 좀 민망했다. 배달 음식이 맛있을 게 뭐가 있다고...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고 조심스레 물으며 분위기를 살폈다.“근데 말이에요, 이번 교통사고에서 혹시 다른 사람은 안 다쳤어요?”하민재는 그녀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곤 그대로 숨기기로 마음먹었다.“아니요, 나만 다쳤어요. 내가 좀 재수가 없었죠.”그는 알고 있었다. 유남우가 홍주영에게 어떤 존재인지. 혹여 진실을 말하면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화를 낼지도 몰랐다.하지만 홍주영은 감정에는 조금 둔할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하민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69화

    그제야 홍주영은 지금이 근무 시간이라는 걸 떠올렸다.그녀는 급히 하민재에게 배달 음식을 하나 시켜주고는 약간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나 회사에 잠깐 다녀와야 해요.”하민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날 병원에 혼자 두고 가는 거예요? 의사 말로는, 지금 상태면 최소 이틀은 입원해서 경과를 봐야 한다던데. 혹시라도 내부 장기에 손상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요...”그 말에 홍주영은 잠시 망설였다.“퇴근하자마자 바로 올게요.”“근데 밥은요? 씻는 건요? 누가 도와줘요?”하민재가 묻자 홍주영은 곧 결심한 듯 말했다.“회사 가서 이틀 휴가 내고 올게요. 병간호는 내가 해줄게요.”그제야 하민재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근데 유남우 대표는 뭐라고 안 할까요?”홍주영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을 거예요. 저 지금껏 한 번도 휴가 낸 적 없으니까요. 게다가 약혼자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당연히 내가 돌봐야지요.”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이번엔 꼭 하민재 곁을 지켜야겠다고.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였고 앞으로는 가족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될 사람이었으니까.“주영 씨는 정말 착하네요.”하민재가 진심을 담아 말하자 홍주영은 괜히 얼굴이 붉어져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됐어요. 아까 시킨 음식 곧 도착할 테니까 받아서 먹고 있어요. 나 회사 잠깐 다녀올게요.”“네!”하민재는 고개를 연달아 끄덕였다.하지만 그녀가 병실을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민재의 얼굴에 번지던 웃음은 천천히 사라졌다.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그는 화면을 확인한 뒤 메시지를 눌러 열었는데 부하 직원에게서 온 보고였다.[이번 일, 유남우 씨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고를 낸 택시 운전사가 과거에 유남우 씨와 자주 연락했던 기록이 있습니다.]유남우...하민재는 그 이름을 입 안에서 굴리듯 천천히 되뇌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땐 연씨 집안 사람들 쪽에서 자신을 노린 줄 알았다. 설마 유남우일 줄이야.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68화

    박민정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홍 비서님?”홍주영이 급히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도련님이 거절하신 거예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홍주영은 믿기지 않는 듯 얼굴이 굳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 아이가 도련님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사람은 겉만 봐선 모르죠.”박민정이 담담하게 말하자 홍주영은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도련님께 무슨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민정 씨, 너무 원망하진 말아요. 제가 가서 말씀드릴게요. 꼭 연서 씨가 다혜를 입양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볼게요.”유다혜라는 아이는 홍주영도 자주 보아온 터였다.그렇게 사랑스럽고 그렇게 착한 아이가 고아로 살아가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그래 준다면 너무 고맙죠.” 박민정이 말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덧붙였다.“그치만 남우 오빠가 딱히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진 않아요. 홍 비서님, 한 가지만 조심하세요. 그 사람한테 속지 마세요.”홍주영의 얼굴에 어색한 기색이 스쳤는데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도련님이 좀 집착이 강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예전엔 박민정도 그렇게 생각했다.홍주영이 더 뭔가 말하려던 찰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들고 화면을 확인하니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그녀는 약간 의아해하면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죠?”“홍주영 씨 되시죠? 약혼자분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병원으로 빠르게 와주십시오.”교통사고?홍주영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네, 네. 지금 바로 갈게요.”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그녀는 박민정을 돌아보며 말했다.“민정 씨, 미안해요.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볼게요.”그 말을 마친 뒤, 홍주영은 급히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하민재가 왜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걸까?병원에 도착했을 때쯤, 하민재는 이미 일반 병실로 옮겨진 상태였다. 의사는 다행히도 외상 정도만 입은 것 같다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67화

    “형, 민정아.”유남우가 정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사람을 향해 불렀다.박민정과 유남준은 동시에 돌아보았다.유남준은 짧게 대답한 뒤, 고개를 돌려 박민정에게 조용히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난 여기 있을게.”“네.”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정자에서 걸어 나왔다.유남우가 우산을 들어 그녀 위에 씌워주었다.“고마워요.” 박민정은 공손하게 인사하며 살짝 몸을 뒤로 물러섰다.그녀의 그런 작은 움직임까지 유남우는 다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망설임 없이 본론부터 꺼냈다.“연서 씨는 제 오랜 친구예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 다혜를 정말 진심으로 입양하고 싶어 해요. 다혜가 그 친구랑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박민정의 다급한 말투에 유남우는 손에 쥔 우산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는 대답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우리, 이곳에 온 것도 참 오랜만이지?”박민정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요즘 따라 자꾸 어린 시절 꿈을 꿔.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남우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지나간 일은 지나간 거예요. 난 오늘 다혜 얘기를 하러 온 거지, 어린 시절 이야기하러 온 게 아니에요.”박민정이 단호하게 선을 긋자 유남우는 말을 멈췄다.“...다혜는 내 딸이야. 남에게 맡길 수 없어.”박민정은 손을 꽉 쥐었다.“알아요. 다혜는 오빠랑 혈연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빠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조 비서가 가끔 유다혜를 보러 병원에 간다고 했다. 간호사들 말로는 유남우는 거의 병원에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 다혜는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유남우는 그 말에 짧게 웃었다.“다혜랑 혈연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지?”박민정은 그의 부드럽고 단정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굳이 콕 집어 말할 필요 없잖아요. 서로 다칠라.”그녀는 끝까지 윤소현이 다혜를 어떻게 임신했는지는 입 밖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66화

    호숫가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박민정과 유남준은 먼저 도착해 작은 정자를 하나 찾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던 유남준이 입을 열었다.“예전에 너랑 여기 같이 온 적 있어.”“네?” 박민정은 잠깐 멍해졌다.“나랑 여길 같이 왔다고요?”“잊었어?”유남준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녀를 바라봤는데 어딘가 씁쓸한 표정이었다.박민정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마 잊은 게 아니라 헷갈렸던 것일지도 모른다고.유남준과 유남우는 너무도 닮았다. 어쩌면 그때 자신조차 누구인지 분간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그런 그녀의 눈치를 읽은 듯 유남준이 슬며시 웃었다.“그때 말이야, 네가 반 친구한테 맞고 울면서 오다가 나를 딱 마주쳤지. 네가 내 품에 안겨선 자초지종을 다 말하더라.”“내가 그놈 혼쭐을 내주고 결국 전학까지 시켰잖아.”유남준의 말에 박민정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그게 남준 씨였네요.”어쩐지 그날따라 유남준이 조금 낯설다고 느꼈던 게 기억났다. 평소엔 늘 다정한 그였는데 그날은 거칠게 이렇게 말했다.“울긴 왜 울어, 한심하게. 맞았으면 맞은 만큼 되갚아야지!”그땐 그저 기분이 안 좋았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바뀌어 있었던 거다. 그날 자신은 억지로 유남준을 끌고 이곳까지 왔었다. 그는 귀찮다는 듯 나무에 기대 서 있었고 울고 있는 박민정을 바라보며 질색하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또 울면 나 간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추운 바람이나 쐬고 있고 싶진 않거든.”그 말에 박민정은 와락 울음을 터뜨렸지만 유남준은 끝내 떠나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밤이 깊도록 그녀 곁을 지켜주고 집까지 바래다주었으니까.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온 박민정은 다시 유남준을 바라보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가만 보면 네가 처음 좋아한 사람이 꼭 유남우였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유남준은 질투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설마 두 사람 다 좋아한 거야? 자기도 모르게? 그럼 이건 이중 플레이야, 양다리라고.”박민정은 피식 웃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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