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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작가: 윤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차를 단숨에 들이마셨다.

“남준아, 정말 죽었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말을 내뱉고 나서야 김인우는 자신이 박민정의 입장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남준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 진료 기록을 보고 있었고 거의 다 볼 때쯤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비서 서다희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대표님, 연지석 씨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서다희는 재빨리 주소를 보내왔고 그곳은 외딴 지역에 있는 신림현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했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왜 그래?”

김인우는 아무 말 없는 그의 모습을 보고선 의아해하며 물었고 유남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말을 마친 그는 두말없이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김인우는 어디로 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부랴부랴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말을 아꼈다.

그렇게 홀로 집에 남겨진 그는 시간도 늦었고 마침 피곤했던 터라 잠깐 이곳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

새벽, 유남준은 신림현에 도착했다.

흐린 날에 더불어 빗줄기도 점점 거세졌다.

서다희는 검은 우산을 펼치며 유남준을 마중했다.

“대표님.”

“응?”

서다희는 유남준과 함께 신림현으로 오는 길에 많은 것들을 설명해 줬다.

“조사 결과 이곳에서 연지석 씨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민정 씨가 어릴적 양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곳이라고 합니다.”

양어머니...

장대 같은 빗속에서 유남준은 침울한 눈빛을 드리우면서 왜 산림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졌는지 알아챘다.

박민정이 수도 없이 언급했으니까.

결혼 3년 동안 명절 때마다 박민정이 눈치를 보며 물었었다.

“남준 씨, 볼일 있어서 그러는데 나 잠깐 신림현에 다녀와도 될까?”

그때의 유남준은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무슨 일로 신림현에 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는 줄곧 무관심하게 답했다.

“나한테 일일이 보고할 필요 없으니까 마음대로 해.”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박민정은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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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8화

    “저 집 엄마도 참 불쌍하지. 이제 딸이 없잖아. 애지중지 키우던 애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버렸네.”“그러게나 말이에요. 민정이 참 똑똑하고 밝은 아이였는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재벌 집에 시집가도 좋은 게 아닌가 봐요. 저번에 민정이 돌아온 거 보니까 딴사람인 줄 알았어요. 어찌나 야위었는지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니까요.”“남편이 엄청 잘해준다고 얘기하던데 그것도 아닌가 봐요. 하긴, 3년 동안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 없으니...”이웃들의 대화를 들은 유남준은 목이 메었다.역시나 하루 종일 기다려도 은정숙과 박민정을 만나지 못했다.유남준은 의자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였다가 악몽을 꾼 듯 벌떡 일어났다.또 꿈속에 박민정이 나왔다...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오직 적막과 어둠뿐이었고 박민정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그 순간 유남준은 정말로 그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늦은밤 10시.은정숙의 이웃들은 모두 벽돌집 안으로 끌려와 ‘심문’을 당했고 주위에 경호원들로 가득 찬 방은 더욱 비좁아 보였다.“그 사람들 지금 어디 있어요?”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던 그들은 하나같이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유남준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싸늘함을 내뿜었다.“어젯밤에 정숙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찾아와봤는데 민정이가 죽었다고 얘기하더군요.”“젊은 애가 죽은 게 좋은 일은 아니니 그날 밤에 바로 화장하고 묻었어요.”그날 밤에 바로 화장했다니...유남준은 눈앞이 캄캄해졌다.“장례를 치르고 나서 정숙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저희도 잘...”다른 사람들도 그 말을 듣고 맞장구를 쳤다.서다희는 곧바로 연지석의 행방을 물었고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어릴 적부터 고아였던 연지석은 1년 전 이곳을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밤 12시 3분.아직도 거센 비가 내리며 번개가 치고 있었다. 시골길은 진흙으로 변해 이동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9화

    그는 잠자고 밥 먹는 것 외에는 밤낮없이 회사에서 일했다.연지석 집에 있던 박민정의 유품들도 김인우를 시켜서 옮겼다.그는 유남준이 어딘가 변했다는 걸 느꼈다.돌아온 이후로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듯 유난히 조용했다.참다못한 김인우가 서다희에게 물었다.“요즘 왜 저래요?”서다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잘 모르겠습니다. 도련님, 설마 대표님이 민정 씨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겠죠?”그 말을 들은 김인우는 이상한 기색을 보였다.“누가 알겠어요?”말을 마친 그는 차에 올라타 기사에게 운전을 부탁한 후 의자에 등을 댄 채 머리가 아픈 듯 지그시 눌렀다.‘만약 남준이가 정말로 박민정을 좋아하게 됐다면 왜 바움 그룹을 인수하지 못해서 안달 난 거지?’바움 그룹은 박민정을 끔찍하게 아끼는 박형식이 피땀 흘려 일어 세운 회사였기에 박민정에게 매우 중요했다.‘만약 남준이가 정말로 박민정을 좋아한다면 굳이 가족들을 괴롭히러 해외로 사람을 보냈을까?’김인우는 박민정이 엄마, 동생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들이 박민정의 몇 안 되는 가족이라는 것만 알았다.유남준은 여태껏 자기 여자에게 푸대접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예전에 이지원과 만나고 있었을 때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건 무조건 이지원에게도 선물해 줬다.그러나 오직 박민정에게만 원수를 대하는 듯 가혹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였다.그렇게 생각하던 중 어느덧 럭셔리한 동네에 도착했다.김인우는 차에서 내리며 주위를 힐끗 둘러봤다.“비싸 보이네요.”“평당 수천만 원일 겁니다.”기사가 답했다.김인우에게는 별거 아닌 금액일지 몰라도 일반인이 이런 곳에서 집을 산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가정부가 문을 열어줬다.“민정 씨 물건은 모두 안방에 있습니다. 물건만 챙기고 즉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김인우는 가정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사람은 지금 어딨죠?”가정부는 퉁명스럽게 답했다.“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당신들을 상대할 시간 따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0화

    김인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고 비서는 당황하며 물었다.“도련님, 왜 그러세요?”김인우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질문 하나만 할게. 상대방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걸 모르고 그동안 계속 괴롭혔어. 왜 상대방은 구해줬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걸 말한다면 괴롭힘을 멈출 수도 있을 텐데?”그 말을 들은 비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아주 간단해요. 첫 번째 이유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커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은 거죠. 두 번째는 누군가를 구해준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거죠.”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준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걸까?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동안 박민정은 유남준에 대한 헌신과 그의 주변 모든 사람에 대한 헌신을 스스로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어쩌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김인우는 순간 목에 가시가 걸리듯 아팠다....해운 별장.김인우는 돌아오자마자 마당에 앉아있는 익숙한 모습을 보았다.“인우 오빠, 드디어 왔네요.”이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인우를 향해 걸어갔다.그는 익숙한 사람이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이지원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손을 들어 능숙하게 셔츠 단추를 잠갔고 언뜻 보면 마치 연인 같았다.“왜 이렇게 꼼꼼하지 못해요? 매번 이래...”이지원이 화난척하며 얘기하자 김인우는 싸늘하게 그녀의 손을 밀어냈다.“무슨 일로 왔어?”이지원은 원하는 게 있을 때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아부하는 사람이었다.그녀는 김인우의 말투가 싸늘해진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남준 오빠가 요즘 박민정 찾으러 다닌다면서요? 어떻게 되고 있어요?”김인우는 순진한 척하는 그녀의 두 눈을 응시했다.“박민정은 죽었다고 내가 얘기해줬잖아? 도대체 뭘 두려워하는 거야?”이지원은 흠칫하더니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박씨 가문은 저한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1화

    그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노인을 밖으로 내던졌다. 김인우는 이 사람이 최명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그저께 유남준은 해외로 도피한 박 씨네 모자를 찾아냈고 박민정이 시집갈 사람이 연지석이 아닌 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그는 직접 사람을 시켜 이 노인을 납치했다.하지만 하루 내내 이 노인을 협박해도 박민정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유남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박민정과 결혼할 거예요?”노인은 온몸에 상처를 안고 황급히 절을 했다.“아니요, 아니요.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습니다...”경호원들이 노인을 끌고 나갔고 그 뒤는... 굳이 보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보였다.유남준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희로애락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김인우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아까는 박민정을 감싼 거야?”김인우는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내 생각에 굳이 민정이를 겨냥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그 말에 유남준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꽉 움켜쥐었고 순간 손등의 핏줄이 선명히 보였다. “민정이가 먼저 시작한 거야.”유남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인우야, 너는 민정이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해? 욕 많이 먹을수록 오래 산다는 말 못 들었어? 민정이는 절대 죽지 않았어!”사실 유남준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유남준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한 번 힐끗 보더니 김인우만 그곳에 남기고 혼자 퇴근해 버렸다. 텅 빈 사무실에서 김인우는 손에 있는 옥패를 꽉 움켜쥐었고 얼마나 힘을 세게 주었는지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였다.밖으로 나온 그는 길에 쓰러진 채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는 최명길을 보고 옆 비서에게 한마디 했다.“데려가.”두원 별장.고요한 집안에서 거실 구석에 있는 빨간색 상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유남준은 제시간에 집에 돌아와 박민정이 자주 앉던 소파에 앉았다.모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2화

    전담 비서 서다희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 바로 제지했다. 오지랖이 넓은 비서여서가 아니라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었다.요즘 유남준은 일 말고도 박민정을 찾고 연지석의 회사를 제압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이 모든 일련의 행동들로 서다희는 유남준이 박민정을 싫어하는 게 아님을 알았다.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유남준은 박민정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눈이 펑펑 내리는 섣달 그믐날 밤, 예전의 박민정이라면 분명 유남준과 같이 본가로 내려가 그의 가족과 함께 섣달 그믐날을 보냈을 것이었다.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유남준이 혼자 본가로 돌아갔다.박민정이 금방 떠났을 때 그의 웃고 떠들던 모습과 달리 지금은 혼자 앉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점점 차가워졌고 주위만 가면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느낌에 도저히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는 본가에 갔다가 얼마 있지 않고 다시 두원 별장으로 돌아왔다. 두원 별장 밖에도 어느새 새하얀 눈이 가득 쌓여 온 세상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하지만 유남준은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그는 창가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혼자 중얼거렸다. “박민정, 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해봐!”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고영란이 화려한 차림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남준아, 너 대체 왜 그래? 너 진짜 민정이가 죽은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유남준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니까!그때 고영란은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그에게 물었다.“혹시 민정이를 진짜로 좋아하게 된 거야? 그런데 이제 곁에 없잖아...”유남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좋아하면 안 돼요?”고영란이 더 말을 하려 하자 유남준은 바로 그녀를 내쫓았다.그녀가 떠나자마자 유남준은 거실에 혼자 앉아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분명 히터를 틀었음에도 유남준은 온몸이 차갑게 느껴졌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3화

    박민정은 창밖의 흰 구름을 바라보며 4년 전을 떠올렸다.그때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는 연지석의 도움을 받아 죽은 척하고 해외로 나온 뒤 쌍둥이를 낳았다.모든 것이 순탄했지만 안타깝게도 올 3월, 빠른 출산으로 늘 시름시름 앓던 막내아들 박윤우가 조혈모세포 악성 혈액질환인 속칭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의사는 박민정에게 제대혈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혈액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지난 몇 달 동안 박민정은 유남준의 정자를 채취할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치료는 빠를수록 좋다는 말에 박민정은 직접 진주에 가서 정자를 채취하기로 했다.윤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절대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고 유남준을 찾는 일도 절대 없었을 것이다.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박민정은 절친 조하랑의 문자를 받았다.[요즘 좀 바쁘니까 내가 돌아온 후에 너와 같이 유남준을 처리할게. 이지원 그 여자도.]조하랑은 박민정이 대학을 다닐 때 친해진 친구로 졸업 후 그녀는 해외 유학을 하러 외국으로 갔고 박민정은 결혼하면서 그녀와 연락이 뜸해졌다.그리고 4년 전 박민정이 에스토니아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박민정은 그녀의 문자를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답장했다.[좋아.]답장을 마친 그녀는 이륙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진주는 여름만 되면 큰비가 끊임없이 내렸다.박민정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이미 저녁 7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황홀함이 가득했다.공항을 나서자 럭셔리한 링컨 한 대가 시간 맞춰 박민정의 앞에 멈춰 섰다.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공손히 차 문을 열었다.“민정 씨, 어서 앉으세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부탁드릴게요.”운전기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민정 씨는 우리 선생님의 친구예요.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께서 아가씨 숙소를 이미 마련해 두셨어요.”기사가 말하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연지석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4화

    “엄마, 도착했어? 내가 없어도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 한 잔 꼭 마시고 자. 그리고 비타민 먹는 거 까먹지 말고... 저녁에 이불 꼭 덮고 자야 해. 안 그러면 추워. 그리고 엄마 캐리어에 윤우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 넣어놨어. 잠이 안 오면 인형이 우리라고 생각하고 안고 자.”박민정의 이 큰아들은 말을 하기 싫을 때면 한마디를 하지 않다가도 일단 말문이 트이기만 하면 어른처럼 잔소리가 끝이 없다. '참...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가끔 박민정은 예찬이가 자기보다 더 어른 같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알았어, 우리 아들 말 엄마가 다 메모했어.”예찬이의 말이 끝났지만 박민정은 전화 끊기가 아쉬웠다.우울증, 난청, 게다가 임신까지 겹친 상황에서 금방 해외에 나왔을 때, 그녀는 자주 잠을 설쳤다.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병원을 가지 않았지만 병이 저절로 호전되었다.아이들이 점차 크고 두 녀석이 걸음마를 하고 말을 할 때쯤이 되자 녀석들은 그녀를 돌보기 시작했다.두 아이는 그녀에게 마치 인생의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우유를 마시고 비타민을 먹은 박민정은 캐리어를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아이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있는 토끼 인형 두 마리가 있었다.이날 밤, 박민정은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잠을 잤다.다음 날 아침 일찍, 박민정은 문자 한 통을 받았다.[유남준이 오늘 돌아와. 오후 9시, 그랜드 호텔에서 열리는 자선 경매에 나갈 거야.]이곳으로 돌아오기 전, 박민정은 일찌감치 국내 사람들에게 유남준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그가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최근에 돌아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복귀할 줄은 몰랐다.4년 동안, 비록 그녀는 천천히 모든 것을 내려놓았지만 다시 적극적으로 이 남자에게 다가갈 생각을 하니 순간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다.저녁 9시, 자선 파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유남준처럼 권력 있고 힘 있는 사람은 룸이 따로 준비되어 있었고 굳이 나서서 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화

    아래층에 있는 박민정은 앉기 전부터 위층에 있는 가장 럭셔리하고 경매장이 제일 잘 보이는 룸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룸에 별도로 설계된 유리는 바깥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 있는 사람은 바깥을 보일 수 있도록 했다.박민정은 일부러 룸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을 골라 앉았다. 그리고 금액을 부를 때 일부러 무심코 고개를 들어 위층 룸을 바라보았다.그저 가볍게 흘끗 시선을 스친 그녀의 눈에는 한치의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룸 안에 있는 유남준의 전담 비서인 서다희는 바로 그녀를 알아봤다.“민정 씨!”유남준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서다희에게 지시를 내렸다.“경매, 멈춰.”“네.”아래층에 있던 비서는 지시를 받고 경매를 포기했다.사람들은 오늘 돈 자랑 대회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유남준이 먼저 포기한 것을 보고 다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들은 눈앞의 이 여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유남준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남준이 한발 물러서기까지 하다니...자선 경매가 끝난 후, 경매 행사 규정상 낙찰인은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가야 했다.경매장 무대 뒤로 간 박민정은 홀로 소파에 앉아 있는 유남준과 마주쳤다.훤칠한 키에 검정색 슈트를 입고 있는 그는 귀티를 물씬 풍기고 있었고 잘생기고 차가운 얼굴과 까만 눈동자는 박민정이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박민정!”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박민정을 바라보며 그녀를 불렀다.유남준은 그녀가 왜 죽은 척하고 4년 동안 사라졌는지, 4년 동안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또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4년 동안 그녀는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원래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그녀는 화장을 곱게 하고 있었고 어두운색의 옷만 입던 그녀는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유남준은 자기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박민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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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10화

    “아니에요. 별장 청소와 정리는 가정부가 하면 돼요.”박민정의 말에 설인하가 고집을 부렸다.“안 돼요. 그 얘기는 이미 청소는 모두 제가 하기로 했잖아요. 그대로 해요. 민정 씨, 나와 방성원의 관계 때문이라면 이러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긴 하지만 전부 처음부터 배울 거예요.”설인하는 박민정이 거절할까 봐 박민정이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청소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은 설인하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별장 관리인을 불러서 앞으로 매월 급여 발급할 때 설인하에게도 주라고 지시했다.사실 박민정이 설인하에게 별장 청소를 시키지 않은 것은 방성원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현재 그녀의 몸 상태가 감당을 못할까 봐서였다.게다가 박민정이 설인하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그녀도 예전에는 부잣집 딸로서 아무 일도 해본 적이 없이 자랐었다.설인하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결혼한 후 어떤 일을 겪었을지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설인하는 집 안 청소도 하고 또 주동적으로 진서연을 찾아서 업무상의 일을 시작했다.박민정은 소파에 앉아서 휴식하고 있었는데 진서연이 언제 나갔었는지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보스, 정민기 씨가 찾아요.”“알았어.”박민정은 소파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 정민기가 손에 서류 더미를 들고 있었다.“전에 조사하라고 한 함미현에 관한 자료예요. 출생한 병원과 그때 혈액 등 기록들이에요. 서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함미현은 정수미의 친딸이 아니에요.”박민정이 서류를 받아보자, 거기에는 함미현의 출생 관련 기록들이 그대로 있었다. 만약 염혜란이 입양한 거라면 이런 내용을 모두 만들었을 수는 없을 것이다.“최근에 염혜란 씨에 대한 소식은 없어요?”박민정의 물음에 정민기가 신중한 표정으로 변하며 말했다.“사람을 시켜서 염혜란 씨 집 근처 CCTV를 모두 조사했는데 그중 한 카메라에서 종적을 찾았는데 옆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염혜란 씨도 같이 화면에서 사라졌어요. 그 차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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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정은 전혀 여지를 주지 않았다.“그건 무슨 말이에요? 우린 이혼했으니 같은 집에서 살면 안 되는 거잖아요.”유남준은 고개를 숙여 박민정의 등의 양양한 표정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박윤우를 불렀다.“윤우야.”박윤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보며 물었다.“아빠, 왜요?”박민정은 순식간에 당황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유치하게 할 거예요?”유남준이 말했다.“윤우야, 아빠는 이제 갈게.”박윤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빠, 우리랑 같이 살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은 유남준이 겁먹은 척 자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박윤우 때문에 목소리를 낮추었다.“정말 그렇게 유치하게 아이를 이용할 거예요?”유남준은 모르는 체하며 대답했다.“이용한다고 말하면 안 되지. 윤우는 내 아들이고, 지금 그 금쪽같은 아들이 한 가족이 화목하게 함께 살기를 바라는 거잖아.”그는 또 고개를 돌려 박윤우를 보며 말했다.“윤우야, 아빠도 윤우랑 같이 살고 싶어. 그런데...”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윤우의 눈빛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박민정이 말했다.“아빠도 우리와 같이 살고 싶지만 지금 서연 이모와 수아 이모 그리고 인하 이모까지 우리 집에서 살고 있어서 아빠가 갑자기 들어오면 모두 불편할 거야.”결국 유남준은 박민정의 이유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박윤우는 비록 박민정과 유남준이 함께 살기로 바랐지만, 세 명의 예쁜 여인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포기했다.“아빠, 조금만 더 참아요.”그는 유남준 곁에 가서 속삭였다.순간 유남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래, 알았어. 윤우만 믿고 있을게.”이 말은 박윤우에게 아주 효과가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유남준을 떠나보낸 후, 박윤우는 자기를 믿는다고 한 말에 더 책임감을 느꼈다.박민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윤우야, 방금 아빠와 무슨 말을 한 거야?”“별거 아니에요. 아빠한테 엄마를 잘 돌봐달라고 했어요.”“그래.”박민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08화

    박윤우의 말에 박민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윤우야, 모든 엄마와 아빠들의 표현 방식이 다 같은 건 아니란다.”옆에 있던 유남준이 갑자기 말을 이었다.“그래서 나에 대한 표현 방식은 내가 싫다는 거네? 손을 잡는 것도 싫을 만큼?”박민정이 당황해하며 대답했다.“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그녀의 말에 박윤우가 눈을 크게 뜨고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그럼 아빠를 안아주고 뽀뽀해요.”박민정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윤우야...”“결국 나와 형은 온전한 가족을 수가 없네요. 우리 반 옥미의 엄마와 아빠도 처음에는 서로 안고 뽀뽀하는 것을 싫어하다가 나중에 이혼했고 또 서로 다른 사람을 찾아 아이도 낳았대요.”말을 마친 박윤우가 고개를 숙이자 눈물이 흘러내렸다.“엄마와 아빠도 이혼하고 지금 저를 속이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다른 동생들이 생기면 나와 예찬이 형은 신경도 안 쓸 거예요?”박윤우의 우는 모습은 유난히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박민정은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휴지를 꺼내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윤우야,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마. 엄마와 아빠가 왜 너랑 예찬이를 모르는 체하겠어?”그러고는 유남준을 보며 물었다.“그렇죠?”유남준은 박민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우리가 계속 이렇게 지내면 정말로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우우우...”박윤우가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 유남준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윤우야, 걱정하지 마. 아빠는 절대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엄마가 너를 원하지 않아도 아빠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박민정이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유남준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가 틀린 말 했어? 윤우와 예찬이는 너의 마음속에서 연지석 씨와 에리 씨가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다 알고 있어.”이건 질투였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시력을 회복한 후 제일 처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07화

    박민정은 유남준이 주는 것을 덥석 받았다가 나중에 후회하기 싫었다.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남남인데 이런 귀중한 것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유남준은 박민정이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줄 몰랐다.“정말 싫어?”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너무 커요.”“그럼 내가 예찬이와 윤우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 얘들이 아직 어리고 양육권은 당신에게 있으니, 그들의 후견인으로 잠시 보관하는 거로 하면 되잖아.”박민정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그런 거라면 얘들이 큰 다음에 직접 주면 되잖아요.”차 안의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다.앞 좌석에 앉아 있던 서다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모님, 제 생각에는 사모님이 지금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지금은 얘들에게 준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주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대표님이 나중에 다른 분하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겨서 그 아이에게 주면 어떡해요. 그렇게 되면 예찬 도련님과 윤우 도련님에게는 너무 큰 손실이잖아요.”“...”유남준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박민정도 당황해하더니 마음속으로는 서다희의 말에 도리가 있는 것 같았다.‘맞아, 아빠가 애들에게 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 없잖아.’“좋아요. 그럼 예찬이와 윤우 대신해서 먼저 받을게요.”박민정은 서류를 받았다.그들이 서류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차는 유치원에 도착했다. 박윤우는 워낙 귀엽고 잘생긴 데다가 얼마 전에 유씨 가문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박윤우와 같이 놀라고 했기 때문에 현재 인기가 대단했다.“윤우야, 오늘 너의 엄마 아빠가 같이 데리러 오는 거야?”한 아이가 묻자, 박윤우가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응.”“엄마 아빠가 같이 데리러 온다니 부럽다.”박윤우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환하게 웃고 있다가 유남준의 차를 발견하고는 달려가지 않고 오히려 박민정에게 전화했다.“엄마, 아빠 손잡고 여기로 와주시면 안 될까요?”박민정은 아들이 왜 굳이 유남준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06화

    이지원을 금방 보내고 난 박민정은 조하랑의 말에 깜짝 놀랐다.“뭐라고? 결혼? 누구랑 하는데?”“김인우 씨일 것 같아.”‘같아?’박민정은 순간 충격에 멍해졌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하랑아, 너 인우 씨 할아버지 때문에 잠시 동의한 거지 절대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오늘 할아버지가 위독하셨는데 유일한 소원이 나와 김인우 씨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할아버지를 실망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 결혼하기로 했어.”조하랑이 설명했다. 그녀는 어차피 지금 당장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중에 할아버지가 떠나가신 후에 두 사람이 안 맞으면 그때 다시 이혼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박민정은 조하랑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하랑아, 결혼은 그렇게 간단한 거 아니야. 너의 의지가 중요한 거야. 절대 그 할아버지의 말에 흔들려서 억지로 하면 안 돼.”“괜찮아. 억지로 하는 거 아니야. 아빠 말씀처럼 김씨 가문에 시집가면 하루아침에 재벌이 되는 거잖아.”조하랑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민정아, 걱정하지 마.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득 보는 거잖아.”조하랑은 오래전에 사랑을 포기했다.과거에 그녀도 강연우와 깊은 사랑을 했었지만 결국은 강연우가 그녀를 배신하고 떠나버렸기 때문에 지금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결혼할 수 있었다. 어차피 김인우를 사랑하지 않기에 배신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슬프지 않을 것이다.“하랑아, 어찌 됐든 내 말은 네가 원하지 않은 건 절대 하지 마.”“알았어. 끊을게.”조하랑은 전화를 끊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김인우와 마주쳤다.그녀만 보면 말을 비꼬아서 하던 김인우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는 절대 빨리 돌아가시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후회되면 지금 가서 얘기해요.”조하랑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인우 씨가 후회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인우 씨의 선택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05화

    김인우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할아버지, 크게 기뻐하거나 슬퍼하면 안 된다고 했던 의사 말씀 잊으셨어요?”김인우가 입으로는 늙은이들이 귀찮다고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김훈을 엄청나게 생각했고 세상을 떠날까 봐 두려워했다.김훈은 손자의 성격이 유별나서 비록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사리 분별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내가 언제 또 그렇게 크게 기뻐했다고 그래? 기쁠 일이 어디에 있다고.”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증손자도 안아보지 못했는데 나한테 기쁠 만한 일이 뭐가 있겠어.”김훈이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닦는 척했다.“예찬이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평생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없었을 거야.”김인우는 김훈의 연기가 너무 익숙했지만, 조하랑은 처음이었기에 서둘러 위로했다.“할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가 옆에 있잖아요. 충분히 그런 기쁨을 느끼실 수 있어요.”김훈은 조하랑의 말을 듣고 말했다.“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거야.”“무슨 일이에요?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꼭 이루어 드릴게요.”조하랑은 이것이 김훈의 속임수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김훈은 조하랑의 대답에 만족하며 말했다.“나 어제 남우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와 우리 인우가 생각이 났어. 너희들이 약혼식을 한지도 이제 반년이 지나갔는데 결혼은 언제 할 거야?”조하랑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김인우는 진작 김훈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훈은 계속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어차피 죽기 전에 너희들 결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바에 차라리 지금 일찍 죽는 게 나을 것 같구나.”그는 말하면서 몸에 있는 의료기기를 떼는 흉내까지 보였다. 그러자 단순한 조하랑이 곧바로 말렸다.“할아버지, 이러시면 안 돼요.”“하랑아, 네가 착한 아이인 걸 알아. 그래도 날 막지는 마. 이대로 죽게 내버려둬!”박예찬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04화

    김인우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가 이지원의 말을 듣고 하품했다.“그래.”이지원은 김인우가 자기를 용서한 줄 알고 말했다.“이제 저 용서해 주는 거죠?”수화기 건너편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이지원 씨, 지금 나와 장난하는 거예요?”이지원이 온몸을 흠칫했다.“과거에 했던 짓을 생각해 봐. 그까짓 머리를 몇 번 조아렸다고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김인우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나의 기억이 맞는다면 과거에 나를 속여서 돈을 엄청나게 가져갔지? 지금 제호 클럽에서 수입은 어때?”“나... 나는 예솔이 그 나쁜 년에게 속아서 팔려 간 거예요. 돈을 벌 수 없어요.”이지원이 말을 더듬었다.“그럼 어떡하지? 빌려 간 돈은 갚아야 할 거잖아. 손님 없으면 내가 찾아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혹시 한 번에 여러 명도 가능해?”김인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을 속이는 것인데 지금 그는 이지원이 당장 죽게 가만두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쉬운 벌인 것 같았다.오늘 김훈은 상태가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조하랑과 박예찬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김훈은 조하랑의 손을 잡고 말했다.“하랑아, 인우를 불러줘.”“네, 알았어요.”조하랑은 대답하고 곧바로 김인우를 찾으러 갔는데 사무실 앞에서 김인우의 대화를 들었다.‘빌려 간 돈을 갚아야 한다고? 손님? 한 번에 몇 명을 접대해?’이상한 단어들을 들은 조하랑은 너무 당황했다. 도대체 김인우가 좋은 사람이 맞는지 궁금했고 또 김훈 속이고 많은 나쁜 일들을 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김훈의 상황을 생각하고는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김인우가 아무 표정 없이 대답했다.조하랑은 문을 열었지만 들어가지 않고 말했다.“할아버지가 찾아요.”“할아버지가 깨어나셨어요?”김인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김훈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한 것은 바로 어제 유남우의 결혼식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원래 남들의 일에 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03화

    박민정이 일하고 있을 때 부하가 찾아와 보고했다.“손님이 찾아왔어요.”“누구예요?”박민정이 묻자, 부하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여자분인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어요. 지금 회의실에 있어요.”박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알았어요.”진서연이 옆에서 문서를 프린트하고 있다고 박민정의 어릴 때 친구가 왔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그쪽을 쳐다보았다.박민정이 회의실로 가보니 안에는 이지원이었다.얼마 전에 조하랑에게서 이지원이 친한 친구 하예솔과 같이 나이트에 다닌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 뭐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무슨 일이지?’이지원은 회의실 입구로부터 자기를 향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박민정과 눈을 마주쳤다.이지원은 곧바로 박민정의 배를 주의해 보았는데 불룩하게 나온 것이 쌍둥이어서 그런지 6개월이 넘는 것 같았다.“서연아, 경비 불러서 여기 이분을 밖으로 모시라고 해.”박민정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이지원은 빠른 걸음으로 박민정 앞으로 가더니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민정 씨, 흥분하지 말고 우선 내 말부터 들어줘요. 나 오늘은 민정 씨에게 사과하려고 왔어요. 과거에 내가 민정 씨에게 많은 잘못을 했는데 미안해요.”말을 마친 이지원은 쿵쿵하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주위의 동료들도 모두 호기심에 무의식적으로 그녀들이 있는 쪽으로 바라보았다.이지원은 창백해 보이게 메이크업했고 옷도 아주 얇게 입어서 유난히 비참해 보였다.그녀는 살기 위해 자기를 학대할 정도로 힘 있게 머리를 조아려서 이마가 까졌다.진서연은 즉시 박민정 옆으로 다가가서 의아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았다.“당신은 누구예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사과하는 거예요?”역시 박민정이 키운 비서답게 그녀는 핵심을 짚었다.비록 박민정과 이지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사과하는 방식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이지? 사과하겠다는 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202화

    유석진도 회사에 나왔는데 유성혁의 사무실의 발코니에서 밖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때 최현아가 다가와서 말했다.“아버님, 성혁 씨 찾았어요.”유석진이 돌아서며 물었다.“성혁이 지금 어디에 있어?”최현아는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틀었다.녹음에는 유성혁이 눈물 콧물에 애걸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유석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이건 어떻게 된 거야?”“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메일이 와 있었는데 누가 보냈는지는 몰라요.”최현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버님, 성혁 씨 아무 일 없겠죠?”비록 유성혁이 자기를 배신했지만 필경 애 아빠이고 오랜 부부 사이였기에 유성혁에게 일이 생기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유석진은 주먹을 꼭 쥐고 최현아를 다독였다.“대체 누구야?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하는 거야? 현아야, 걱정하지 마. 우리 유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나서면 반드시 성혁이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최현아는 혼란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유석진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순간 의기양양하게 출근하는 박민정을 보더니 질투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박민정의 앞을 가로막았다.“동서, 설마 남준 도련님이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최현의 질문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그렇다면 왜요?”“동서,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나. 그런데 아무리 남준 도련님이 별일 없다고 해도 호산 그룹은 이제 도련님이 어떻게 할 수 없어.”최현아가 말했다.박민정은 최현아의 반응이 조금 웃긴다고 생각하며 말했다.“그래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저는 그런데 신경 쓰지 않아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최현아를 지나갔다.최현아는 박민정의 태도에 이를 악물었는데 호산 그룹을 나갈 때까지 그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그때 한 그림자가 그의 시선을 끌었는데 멀지 않은 나무 아래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지원이 몸을 사리며 움츠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최현아는 조금 전의 표정을 지우고 이지원을 향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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