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노인을 밖으로 내던졌다. 김인우는 이 사람이 최명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그저께 유남준은 해외로 도피한 박 씨네 모자를 찾아냈고 박민정이 시집갈 사람이 연지석이 아닌 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그는 직접 사람을 시켜 이 노인을 납치했다.하지만 하루 내내 이 노인을 협박해도 박민정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유남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박민정과 결혼할 거예요?”노인은 온몸에 상처를 안고 황급히 절을 했다.“아니요, 아니요.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습니다...”경호원들이 노인을 끌고 나갔고 그 뒤는... 굳이 보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보였다.유남준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희로애락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김인우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아까는 박민정을 감싼 거야?”김인우는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내 생각에 굳이 민정이를 겨냥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그 말에 유남준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꽉 움켜쥐었고 순간 손등의 핏줄이 선명히 보였다. “민정이가 먼저 시작한 거야.”유남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인우야, 너는 민정이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해? 욕 많이 먹을수록 오래 산다는 말 못 들었어? 민정이는 절대 죽지 않았어!”사실 유남준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휴대전화 알람이 울리자 유남준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한 번 힐끗 보더니 김인우만 그곳에 남기고 혼자 퇴근해 버렸다. 텅 빈 사무실에서 김인우는 손에 있는 옥패를 꽉 움켜쥐었고 얼마나 힘을 세게 주었는지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였다.밖으로 나온 그는 길에 쓰러진 채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는 최명길을 보고 옆 비서에게 한마디 했다.“데려가.”두원 별장.고요한 집안에서 거실 구석에 있는 빨간색 상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유남준은 제시간에 집에 돌아와 박민정이 자주 앉던 소파에 앉았다.모든
전담 비서 서다희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 바로 제지했다. 오지랖이 넓은 비서여서가 아니라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었다.요즘 유남준은 일 말고도 박민정을 찾고 연지석의 회사를 제압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이 모든 일련의 행동들로 서다희는 유남준이 박민정을 싫어하는 게 아님을 알았다.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유남준은 박민정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눈이 펑펑 내리는 섣달 그믐날 밤, 예전의 박민정이라면 분명 유남준과 같이 본가로 내려가 그의 가족과 함께 섣달 그믐날을 보냈을 것이었다.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유남준이 혼자 본가로 돌아갔다.박민정이 금방 떠났을 때 그의 웃고 떠들던 모습과 달리 지금은 혼자 앉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점점 차가워졌고 주위만 가면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느낌에 도저히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는 본가에 갔다가 얼마 있지 않고 다시 두원 별장으로 돌아왔다. 두원 별장 밖에도 어느새 새하얀 눈이 가득 쌓여 온 세상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하지만 유남준은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그는 창가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혼자 중얼거렸다. “박민정, 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해봐!”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고영란이 화려한 차림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남준아, 너 대체 왜 그래? 너 진짜 민정이가 죽은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유남준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니까!그때 고영란은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그에게 물었다.“혹시 민정이를 진짜로 좋아하게 된 거야? 그런데 이제 곁에 없잖아...”유남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좋아하면 안 돼요?”고영란이 더 말을 하려 하자 유남준은 바로 그녀를 내쫓았다.그녀가 떠나자마자 유남준은 거실에 혼자 앉아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분명 히터를 틀었음에도 유남준은 온몸이 차갑게 느껴졌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박민정은 창밖의 흰 구름을 바라보며 4년 전을 떠올렸다.그때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는 연지석의 도움을 받아 죽은 척하고 해외로 나온 뒤 쌍둥이를 낳았다.모든 것이 순탄했지만 안타깝게도 올 3월, 빠른 출산으로 늘 시름시름 앓던 막내아들 박윤우가 조혈모세포 악성 혈액질환인 속칭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의사는 박민정에게 제대혈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혈액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지난 몇 달 동안 박민정은 유남준의 정자를 채취할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치료는 빠를수록 좋다는 말에 박민정은 직접 진주에 가서 정자를 채취하기로 했다.윤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절대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고 유남준을 찾는 일도 절대 없었을 것이다.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박민정은 절친 조하랑의 문자를 받았다.[요즘 좀 바쁘니까 내가 돌아온 후에 너와 같이 유남준을 처리할게. 이지원 그 여자도.]조하랑은 박민정이 대학을 다닐 때 친해진 친구로 졸업 후 그녀는 해외 유학을 하러 외국으로 갔고 박민정은 결혼하면서 그녀와 연락이 뜸해졌다.그리고 4년 전 박민정이 에스토니아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박민정은 그녀의 문자를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답장했다.[좋아.]답장을 마친 그녀는 이륙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진주는 여름만 되면 큰비가 끊임없이 내렸다.박민정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이미 저녁 7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황홀함이 가득했다.공항을 나서자 럭셔리한 링컨 한 대가 시간 맞춰 박민정의 앞에 멈춰 섰다.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공손히 차 문을 열었다.“민정 씨, 어서 앉으세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부탁드릴게요.”운전기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민정 씨는 우리 선생님의 친구예요.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께서 아가씨 숙소를 이미 마련해 두셨어요.”기사가 말하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연지석
“엄마, 도착했어? 내가 없어도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 한 잔 꼭 마시고 자. 그리고 비타민 먹는 거 까먹지 말고... 저녁에 이불 꼭 덮고 자야 해. 안 그러면 추워. 그리고 엄마 캐리어에 윤우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 넣어놨어. 잠이 안 오면 인형이 우리라고 생각하고 안고 자.”박민정의 이 큰아들은 말을 하기 싫을 때면 한마디를 하지 않다가도 일단 말문이 트이기만 하면 어른처럼 잔소리가 끝이 없다. '참...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가끔 박민정은 예찬이가 자기보다 더 어른 같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알았어, 우리 아들 말 엄마가 다 메모했어.”예찬이의 말이 끝났지만 박민정은 전화 끊기가 아쉬웠다.우울증, 난청, 게다가 임신까지 겹친 상황에서 금방 해외에 나왔을 때, 그녀는 자주 잠을 설쳤다.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병원을 가지 않았지만 병이 저절로 호전되었다.아이들이 점차 크고 두 녀석이 걸음마를 하고 말을 할 때쯤이 되자 녀석들은 그녀를 돌보기 시작했다.두 아이는 그녀에게 마치 인생의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우유를 마시고 비타민을 먹은 박민정은 캐리어를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아이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있는 토끼 인형 두 마리가 있었다.이날 밤, 박민정은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잠을 잤다.다음 날 아침 일찍, 박민정은 문자 한 통을 받았다.[유남준이 오늘 돌아와. 오후 9시, 그랜드 호텔에서 열리는 자선 경매에 나갈 거야.]이곳으로 돌아오기 전, 박민정은 일찌감치 국내 사람들에게 유남준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그가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최근에 돌아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복귀할 줄은 몰랐다.4년 동안, 비록 그녀는 천천히 모든 것을 내려놓았지만 다시 적극적으로 이 남자에게 다가갈 생각을 하니 순간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다.저녁 9시, 자선 파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유남준처럼 권력 있고 힘 있는 사람은 룸이 따로 준비되어 있었고 굳이 나서서 가
아래층에 있는 박민정은 앉기 전부터 위층에 있는 가장 럭셔리하고 경매장이 제일 잘 보이는 룸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룸에 별도로 설계된 유리는 바깥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 있는 사람은 바깥을 보일 수 있도록 했다.박민정은 일부러 룸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을 골라 앉았다. 그리고 금액을 부를 때 일부러 무심코 고개를 들어 위층 룸을 바라보았다.그저 가볍게 흘끗 시선을 스친 그녀의 눈에는 한치의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룸 안에 있는 유남준의 전담 비서인 서다희는 바로 그녀를 알아봤다.“민정 씨!”유남준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서다희에게 지시를 내렸다.“경매, 멈춰.”“네.”아래층에 있던 비서는 지시를 받고 경매를 포기했다.사람들은 오늘 돈 자랑 대회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유남준이 먼저 포기한 것을 보고 다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들은 눈앞의 이 여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유남준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남준이 한발 물러서기까지 하다니...자선 경매가 끝난 후, 경매 행사 규정상 낙찰인은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가야 했다.경매장 무대 뒤로 간 박민정은 홀로 소파에 앉아 있는 유남준과 마주쳤다.훤칠한 키에 검정색 슈트를 입고 있는 그는 귀티를 물씬 풍기고 있었고 잘생기고 차가운 얼굴과 까만 눈동자는 박민정이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박민정!”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박민정을 바라보며 그녀를 불렀다.유남준은 그녀가 왜 죽은 척하고 4년 동안 사라졌는지, 4년 동안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또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4년 동안 그녀는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원래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그녀는 화장을 곱게 하고 있었고 어두운색의 옷만 입던 그녀는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유남준은 자기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박민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
박민정은 유남준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수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쥐여주었다.“돈은 냈으니 물건은 제가 가져갈게요.”손에 수표가 쥐어진 유남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떠나는 박민정을 보며 옆에 있는 비서에게 분부했다. “잘 지켜봐.”...9호 공관.숙소로 돌아온 박민정은 베란다에서 술을 한잔 또 한잔 들이켰다.예전에 그녀는 술을 즐겨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에 나간 후 혼자 힘들어 인생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알코올은 마치 마취약과 같이 그녀를 마비시킬 수 있었다. 두 아이가 태어난 후,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녀는 점차 나쁜 습관을 고쳤다. 하지만 오늘 유남준을 만나고 나니 그녀는 또 한 번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기억상실증... 사실 거짓말은 아니다. 해외로 나간 후, 그녀는 육체적으로 너무 큰 부담을 느꼈고 우울증과 임신까지 겹치면서 확실히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졌고 은정숙마저도 간헐적으로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그동안 그녀는 무척 괴로웠다. 그녀의 기억은 가끔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인 어린 시절로, 가끔은 학창시절로, 또 가끔은 유남준과 결혼했을 때로 돌아갔었다.한 번은 유남준과 이혼한 것을 잊고 죽은 척하며 출국한 것도 잊은 채 갓 결혼했던 그 시간의 두 사람만 기억한 적도 있었다.그래서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귀국 비행기 티켓을 사서 유남준을 찾아가려고 했었다.그날, 그녀는 하마터면 진주까지 올 뻔했지만 다행히 공항에서 유남준과 이지원이 함께 파티하는 사진을 보고 두 사람이 끝났다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냈다.뒤죽박죽된 기억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경험하는 그런 느낌은 오직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었다.그녀는 유남준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지난 4년 동안 유남준이 그녀를 찾아다닌 이유는 그녀를 그저 놓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번에 그녀는 기억을 잃은 척하며 신체접촉이 아닌
낮은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는 아들 모습이 영상 너머로 보였다. 박예찬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내아이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박민정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순간 박민정의 마음은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윤우야, 우리 아들.”박윤우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엄마, 어젯밤에 왜 나에게 전화 안 했어? 잘 자라고 얘기 안 했잖아.”큰아들 박예찬이 잔소리가 많은 따뜻한 아들이라면 막내아들은 애교는 많지만 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딱 그 나이 또래에 맞는 정상적인 아이였다. 물론 이것은 박민정 자신의 판단일뿐이다. “미안해, 엄마가 까먹었어. 우리 윤우 화내지 마.”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한 윤우가 백혈병 진단까지 받자 박민정은 윤우를 유달리 더 보살폈다.박윤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응, 이번만 봐주는 거야. 다음에는 절대 안 돼.”어린 아들의 애교에 박민정은 순간 마음속의 먹구름이 싹 걷히는 듯했다.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할머니랑 형은?”그러자 윤우는 화난 척하며 대답했다.“할머니와 형 물어볼 줄 알았다니까! 그럴 줄 알았으면 엄마에게 연락 안 했을 거야.”순간 말문이 막힌 박민정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알았어, 엄마 안 물어볼게.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일찍 쉬어. 잘자.”전화를 끊은 박윤우는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고 우울한 눈빛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쌍둥이 형 박예찬을 보며 말했다.“엄마가 또 술 마셨어.”동생의 말을 들은 박예찬은 노트북을 닫았다.“아무래도 내가 먼저 진주로 가서 엄마를 돌봐야 할 것 같아.”“응.” 형의 말에 윤우는 눈을 꼭 감으며 대답했다. 자기 몸도 건강하다면 형과 같이 돌아가서 얄미운 아빠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두 녀석의 속셈을 모르고 있는 박민정은 세수한 후, 예찬이가 챙겨준 토끼 인형 두 마리를 안고 침대에 누웠다.낯선 침대 때문인지, 아니면 오늘 유남준을 만난 것 때문인지 박민정은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일찍
유남준은 순간 침을 꿀꺽 삼켰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그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다희는 그의 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유앤케이 그룹의 사업부에서는 한 거물급 인사가 유앤케이 그룹의 희망 프로젝트, 즉 무료 자선 사업을 돕기 위해 거액을 투자할 것이라는 정보가 돌고 있었다.회사 안의 일부 사람들은 이 일로 열심히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 거물급 인사가 이런 호구 짓도 마다하지 않는지 궁금하네요.”“누가 알겠어요.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쓸 데가 없나 보죠.”“해외에서 왔다고 들었어요...”이때 박민정이 탄 차가 유앤케이 그룹의 본사 앞에 막 도착했다.우뚝 솟은 빌딩을 바라본 박민정은 유앤케이 그룹이 4년 전보다 훨씬 더 크게 발전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거침없는 발전은 유남준의 천재적인 능력과 유씨 집안 자본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도 4년 동안 퇴폐적인 생활을 해 온 것은 아니었다. 연지석의 도움으로 그녀만의 회사를 차렸고 약간의 돈도 벌었다.진주로 돌아오기 전 그녀는 이곳저곳의 모든 정보를 끌어모아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래서 유앤케이 그룹이 전국적으로 희망사업을 벌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투자 협력에 나섰던 것이다.협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유남준에게 다가갈 명분을 얻었다.어제 자선 경매에 나온 것은 사실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투자 협력만으로는 유남준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어떻게든 유남준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자신을 만나러 나오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유앤케이 그룹의 담당자들은 일찌감치 일 층 로비 앞에 대기하고 있었고 박민정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는 도착한 사람이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라는 것에 순간 다들 어리둥절해졌다.“박 사장님이세요?”박민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왜요, 뭐가 문제가 있나요?”담당자의 의아한 얼굴을 본 박민정은 그동안 서로 주고받았던 대화 내용을 그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그 담당자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얼굴도 이쁘고
“아니에요. 별장 청소와 정리는 가정부가 하면 돼요.”박민정의 말에 설인하가 고집을 부렸다.“안 돼요. 그 얘기는 이미 청소는 모두 제가 하기로 했잖아요. 그대로 해요. 민정 씨, 나와 방성원의 관계 때문이라면 이러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긴 하지만 전부 처음부터 배울 거예요.”설인하는 박민정이 거절할까 봐 박민정이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청소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은 설인하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별장 관리인을 불러서 앞으로 매월 급여 발급할 때 설인하에게도 주라고 지시했다.사실 박민정이 설인하에게 별장 청소를 시키지 않은 것은 방성원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현재 그녀의 몸 상태가 감당을 못할까 봐서였다.게다가 박민정이 설인하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그녀도 예전에는 부잣집 딸로서 아무 일도 해본 적이 없이 자랐었다.설인하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결혼한 후 어떤 일을 겪었을지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설인하는 집 안 청소도 하고 또 주동적으로 진서연을 찾아서 업무상의 일을 시작했다.박민정은 소파에 앉아서 휴식하고 있었는데 진서연이 언제 나갔었는지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보스, 정민기 씨가 찾아요.”“알았어.”박민정은 소파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 정민기가 손에 서류 더미를 들고 있었다.“전에 조사하라고 한 함미현에 관한 자료예요. 출생한 병원과 그때 혈액 등 기록들이에요. 서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함미현은 정수미의 친딸이 아니에요.”박민정이 서류를 받아보자, 거기에는 함미현의 출생 관련 기록들이 그대로 있었다. 만약 염혜란이 입양한 거라면 이런 내용을 모두 만들었을 수는 없을 것이다.“최근에 염혜란 씨에 대한 소식은 없어요?”박민정의 물음에 정민기가 신중한 표정으로 변하며 말했다.“사람을 시켜서 염혜란 씨 집 근처 CCTV를 모두 조사했는데 그중 한 카메라에서 종적을 찾았는데 옆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염혜란 씨도 같이 화면에서 사라졌어요. 그 차를 조
박민정은 전혀 여지를 주지 않았다.“그건 무슨 말이에요? 우린 이혼했으니 같은 집에서 살면 안 되는 거잖아요.”유남준은 고개를 숙여 박민정의 등의 양양한 표정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박윤우를 불렀다.“윤우야.”박윤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보며 물었다.“아빠, 왜요?”박민정은 순식간에 당황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유치하게 할 거예요?”유남준이 말했다.“윤우야, 아빠는 이제 갈게.”박윤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빠, 우리랑 같이 살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은 유남준이 겁먹은 척 자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박윤우 때문에 목소리를 낮추었다.“정말 그렇게 유치하게 아이를 이용할 거예요?”유남준은 모르는 체하며 대답했다.“이용한다고 말하면 안 되지. 윤우는 내 아들이고, 지금 그 금쪽같은 아들이 한 가족이 화목하게 함께 살기를 바라는 거잖아.”그는 또 고개를 돌려 박윤우를 보며 말했다.“윤우야, 아빠도 윤우랑 같이 살고 싶어. 그런데...”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윤우의 눈빛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박민정이 말했다.“아빠도 우리와 같이 살고 싶지만 지금 서연 이모와 수아 이모 그리고 인하 이모까지 우리 집에서 살고 있어서 아빠가 갑자기 들어오면 모두 불편할 거야.”결국 유남준은 박민정의 이유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박윤우는 비록 박민정과 유남준이 함께 살기로 바랐지만, 세 명의 예쁜 여인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포기했다.“아빠, 조금만 더 참아요.”그는 유남준 곁에 가서 속삭였다.순간 유남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래, 알았어. 윤우만 믿고 있을게.”이 말은 박윤우에게 아주 효과가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유남준을 떠나보낸 후, 박윤우는 자기를 믿는다고 한 말에 더 책임감을 느꼈다.박민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윤우야, 방금 아빠와 무슨 말을 한 거야?”“별거 아니에요. 아빠한테 엄마를 잘 돌봐달라고 했어요.”“그래.”박민정
박윤우의 말에 박민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윤우야, 모든 엄마와 아빠들의 표현 방식이 다 같은 건 아니란다.”옆에 있던 유남준이 갑자기 말을 이었다.“그래서 나에 대한 표현 방식은 내가 싫다는 거네? 손을 잡는 것도 싫을 만큼?”박민정이 당황해하며 대답했다.“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그녀의 말에 박윤우가 눈을 크게 뜨고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그럼 아빠를 안아주고 뽀뽀해요.”박민정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윤우야...”“결국 나와 형은 온전한 가족을 수가 없네요. 우리 반 옥미의 엄마와 아빠도 처음에는 서로 안고 뽀뽀하는 것을 싫어하다가 나중에 이혼했고 또 서로 다른 사람을 찾아 아이도 낳았대요.”말을 마친 박윤우가 고개를 숙이자 눈물이 흘러내렸다.“엄마와 아빠도 이혼하고 지금 저를 속이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다른 동생들이 생기면 나와 예찬이 형은 신경도 안 쓸 거예요?”박윤우의 우는 모습은 유난히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박민정은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휴지를 꺼내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윤우야,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마. 엄마와 아빠가 왜 너랑 예찬이를 모르는 체하겠어?”그러고는 유남준을 보며 물었다.“그렇죠?”유남준은 박민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우리가 계속 이렇게 지내면 정말로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우우우...”박윤우가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 유남준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윤우야, 걱정하지 마. 아빠는 절대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엄마가 너를 원하지 않아도 아빠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박민정이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유남준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가 틀린 말 했어? 윤우와 예찬이는 너의 마음속에서 연지석 씨와 에리 씨가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다 알고 있어.”이건 질투였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시력을 회복한 후 제일 처음
박민정은 유남준이 주는 것을 덥석 받았다가 나중에 후회하기 싫었다.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남남인데 이런 귀중한 것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유남준은 박민정이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줄 몰랐다.“정말 싫어?”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너무 커요.”“그럼 내가 예찬이와 윤우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 얘들이 아직 어리고 양육권은 당신에게 있으니, 그들의 후견인으로 잠시 보관하는 거로 하면 되잖아.”박민정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그런 거라면 얘들이 큰 다음에 직접 주면 되잖아요.”차 안의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다.앞 좌석에 앉아 있던 서다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모님, 제 생각에는 사모님이 지금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지금은 얘들에게 준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주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대표님이 나중에 다른 분하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겨서 그 아이에게 주면 어떡해요. 그렇게 되면 예찬 도련님과 윤우 도련님에게는 너무 큰 손실이잖아요.”“...”유남준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박민정도 당황해하더니 마음속으로는 서다희의 말에 도리가 있는 것 같았다.‘맞아, 아빠가 애들에게 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 없잖아.’“좋아요. 그럼 예찬이와 윤우 대신해서 먼저 받을게요.”박민정은 서류를 받았다.그들이 서류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차는 유치원에 도착했다. 박윤우는 워낙 귀엽고 잘생긴 데다가 얼마 전에 유씨 가문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박윤우와 같이 놀라고 했기 때문에 현재 인기가 대단했다.“윤우야, 오늘 너의 엄마 아빠가 같이 데리러 오는 거야?”한 아이가 묻자, 박윤우가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응.”“엄마 아빠가 같이 데리러 온다니 부럽다.”박윤우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환하게 웃고 있다가 유남준의 차를 발견하고는 달려가지 않고 오히려 박민정에게 전화했다.“엄마, 아빠 손잡고 여기로 와주시면 안 될까요?”박민정은 아들이 왜 굳이 유남준의
이지원을 금방 보내고 난 박민정은 조하랑의 말에 깜짝 놀랐다.“뭐라고? 결혼? 누구랑 하는데?”“김인우 씨일 것 같아.”‘같아?’박민정은 순간 충격에 멍해졌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하랑아, 너 인우 씨 할아버지 때문에 잠시 동의한 거지 절대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오늘 할아버지가 위독하셨는데 유일한 소원이 나와 김인우 씨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할아버지를 실망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 결혼하기로 했어.”조하랑이 설명했다. 그녀는 어차피 지금 당장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중에 할아버지가 떠나가신 후에 두 사람이 안 맞으면 그때 다시 이혼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박민정은 조하랑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하랑아, 결혼은 그렇게 간단한 거 아니야. 너의 의지가 중요한 거야. 절대 그 할아버지의 말에 흔들려서 억지로 하면 안 돼.”“괜찮아. 억지로 하는 거 아니야. 아빠 말씀처럼 김씨 가문에 시집가면 하루아침에 재벌이 되는 거잖아.”조하랑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민정아, 걱정하지 마.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득 보는 거잖아.”조하랑은 오래전에 사랑을 포기했다.과거에 그녀도 강연우와 깊은 사랑을 했었지만 결국은 강연우가 그녀를 배신하고 떠나버렸기 때문에 지금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결혼할 수 있었다. 어차피 김인우를 사랑하지 않기에 배신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슬프지 않을 것이다.“하랑아, 어찌 됐든 내 말은 네가 원하지 않은 건 절대 하지 마.”“알았어. 끊을게.”조하랑은 전화를 끊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김인우와 마주쳤다.그녀만 보면 말을 비꼬아서 하던 김인우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는 절대 빨리 돌아가시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후회되면 지금 가서 얘기해요.”조하랑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인우 씨가 후회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인우 씨의 선택을
김인우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할아버지, 크게 기뻐하거나 슬퍼하면 안 된다고 했던 의사 말씀 잊으셨어요?”김인우가 입으로는 늙은이들이 귀찮다고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김훈을 엄청나게 생각했고 세상을 떠날까 봐 두려워했다.김훈은 손자의 성격이 유별나서 비록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사리 분별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내가 언제 또 그렇게 크게 기뻐했다고 그래? 기쁠 일이 어디에 있다고.”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증손자도 안아보지 못했는데 나한테 기쁠 만한 일이 뭐가 있겠어.”김훈이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닦는 척했다.“예찬이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평생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없었을 거야.”김인우는 김훈의 연기가 너무 익숙했지만, 조하랑은 처음이었기에 서둘러 위로했다.“할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가 옆에 있잖아요. 충분히 그런 기쁨을 느끼실 수 있어요.”김훈은 조하랑의 말을 듣고 말했다.“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거야.”“무슨 일이에요?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꼭 이루어 드릴게요.”조하랑은 이것이 김훈의 속임수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김훈은 조하랑의 대답에 만족하며 말했다.“나 어제 남우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와 우리 인우가 생각이 났어. 너희들이 약혼식을 한지도 이제 반년이 지나갔는데 결혼은 언제 할 거야?”조하랑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김인우는 진작 김훈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훈은 계속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어차피 죽기 전에 너희들 결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바에 차라리 지금 일찍 죽는 게 나을 것 같구나.”그는 말하면서 몸에 있는 의료기기를 떼는 흉내까지 보였다. 그러자 단순한 조하랑이 곧바로 말렸다.“할아버지, 이러시면 안 돼요.”“하랑아, 네가 착한 아이인 걸 알아. 그래도 날 막지는 마. 이대로 죽게 내버려둬!”박예찬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김인우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가 이지원의 말을 듣고 하품했다.“그래.”이지원은 김인우가 자기를 용서한 줄 알고 말했다.“이제 저 용서해 주는 거죠?”수화기 건너편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이지원 씨, 지금 나와 장난하는 거예요?”이지원이 온몸을 흠칫했다.“과거에 했던 짓을 생각해 봐. 그까짓 머리를 몇 번 조아렸다고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김인우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나의 기억이 맞는다면 과거에 나를 속여서 돈을 엄청나게 가져갔지? 지금 제호 클럽에서 수입은 어때?”“나... 나는 예솔이 그 나쁜 년에게 속아서 팔려 간 거예요. 돈을 벌 수 없어요.”이지원이 말을 더듬었다.“그럼 어떡하지? 빌려 간 돈은 갚아야 할 거잖아. 손님 없으면 내가 찾아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혹시 한 번에 여러 명도 가능해?”김인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을 속이는 것인데 지금 그는 이지원이 당장 죽게 가만두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쉬운 벌인 것 같았다.오늘 김훈은 상태가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조하랑과 박예찬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김훈은 조하랑의 손을 잡고 말했다.“하랑아, 인우를 불러줘.”“네, 알았어요.”조하랑은 대답하고 곧바로 김인우를 찾으러 갔는데 사무실 앞에서 김인우의 대화를 들었다.‘빌려 간 돈을 갚아야 한다고? 손님? 한 번에 몇 명을 접대해?’이상한 단어들을 들은 조하랑은 너무 당황했다. 도대체 김인우가 좋은 사람이 맞는지 궁금했고 또 김훈 속이고 많은 나쁜 일들을 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김훈의 상황을 생각하고는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김인우가 아무 표정 없이 대답했다.조하랑은 문을 열었지만 들어가지 않고 말했다.“할아버지가 찾아요.”“할아버지가 깨어나셨어요?”김인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김훈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한 것은 바로 어제 유남우의 결혼식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원래 남들의 일에 관
박민정이 일하고 있을 때 부하가 찾아와 보고했다.“손님이 찾아왔어요.”“누구예요?”박민정이 묻자, 부하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여자분인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어요. 지금 회의실에 있어요.”박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알았어요.”진서연이 옆에서 문서를 프린트하고 있다고 박민정의 어릴 때 친구가 왔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그쪽을 쳐다보았다.박민정이 회의실로 가보니 안에는 이지원이었다.얼마 전에 조하랑에게서 이지원이 친한 친구 하예솔과 같이 나이트에 다닌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 뭐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무슨 일이지?’이지원은 회의실 입구로부터 자기를 향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박민정과 눈을 마주쳤다.이지원은 곧바로 박민정의 배를 주의해 보았는데 불룩하게 나온 것이 쌍둥이어서 그런지 6개월이 넘는 것 같았다.“서연아, 경비 불러서 여기 이분을 밖으로 모시라고 해.”박민정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이지원은 빠른 걸음으로 박민정 앞으로 가더니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민정 씨, 흥분하지 말고 우선 내 말부터 들어줘요. 나 오늘은 민정 씨에게 사과하려고 왔어요. 과거에 내가 민정 씨에게 많은 잘못을 했는데 미안해요.”말을 마친 이지원은 쿵쿵하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주위의 동료들도 모두 호기심에 무의식적으로 그녀들이 있는 쪽으로 바라보았다.이지원은 창백해 보이게 메이크업했고 옷도 아주 얇게 입어서 유난히 비참해 보였다.그녀는 살기 위해 자기를 학대할 정도로 힘 있게 머리를 조아려서 이마가 까졌다.진서연은 즉시 박민정 옆으로 다가가서 의아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았다.“당신은 누구예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사과하는 거예요?”역시 박민정이 키운 비서답게 그녀는 핵심을 짚었다.비록 박민정과 이지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사과하는 방식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이지? 사과하겠다는 거
유석진도 회사에 나왔는데 유성혁의 사무실의 발코니에서 밖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때 최현아가 다가와서 말했다.“아버님, 성혁 씨 찾았어요.”유석진이 돌아서며 물었다.“성혁이 지금 어디에 있어?”최현아는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틀었다.녹음에는 유성혁이 눈물 콧물에 애걸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유석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이건 어떻게 된 거야?”“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메일이 와 있었는데 누가 보냈는지는 몰라요.”최현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버님, 성혁 씨 아무 일 없겠죠?”비록 유성혁이 자기를 배신했지만 필경 애 아빠이고 오랜 부부 사이였기에 유성혁에게 일이 생기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유석진은 주먹을 꼭 쥐고 최현아를 다독였다.“대체 누구야?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하는 거야? 현아야, 걱정하지 마. 우리 유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나서면 반드시 성혁이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최현아는 혼란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유석진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순간 의기양양하게 출근하는 박민정을 보더니 질투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박민정의 앞을 가로막았다.“동서, 설마 남준 도련님이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최현의 질문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그렇다면 왜요?”“동서,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나. 그런데 아무리 남준 도련님이 별일 없다고 해도 호산 그룹은 이제 도련님이 어떻게 할 수 없어.”최현아가 말했다.박민정은 최현아의 반응이 조금 웃긴다고 생각하며 말했다.“그래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저는 그런데 신경 쓰지 않아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최현아를 지나갔다.최현아는 박민정의 태도에 이를 악물었는데 호산 그룹을 나갈 때까지 그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그때 한 그림자가 그의 시선을 끌었는데 멀지 않은 나무 아래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지원이 몸을 사리며 움츠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최현아는 조금 전의 표정을 지우고 이지원을 향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