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그 남자에게 키스 마크 좀 보인 것뿐이지 않나?“그렇게 그 남자가 신경 쓰여? 이거 보고 너한테 실망이라도 할까 봐 두려워?”그의 말에 박민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자신이 왜 우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다.예전의 유남준이라면 박민정의 눈물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그녀의 눈물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만 울어.”그는 말을 마친 후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이마와 코 그리고 볼에 가져다 댔다.그에 박민정은 순간 동공이 흔들리더니 힘껏 그를 밀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그의 손에 잡힌 채로 그저 그의 입술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그때,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저, 손님, 여기 옷 가져왔습니다.”아까 그 웨이트리스였다.유남준의 입술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박민정의 귓가에 대고 달뜬 호흡을 내쉬었다.박민정은 서둘러 눈물을 닦고는 도끼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유남준은 몸을 옆으로 비켜서 그녀가 옷을 가질 수 있게 해줬고 빅민정은 열린 문틈 사이로 옷을 건네받은 후 간신히 마음을 진정했다.“옷 갈아입어야 해서 그러는데 이제 그만 나가주시죠?”유남준은 그녀의 우는 모습을 또 보게 될까 봐 군말 없이 화장실을 나갔다.밖으로 나와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담배 한 개비를 물었지만,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그는 대체 박민정의 눈물에 왜 이토록 가슴이 답답한 걸까?웨이트리스가 사 온 옷은 시원한 반팔 티셔츠였고 그 탓에 그녀의 목은 머리카락에도 가려질 수 없을 정도로 훤히 드러났다.박민정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고 난 뒤에야 천천히 화장실에서 나왔다.유남준은 아직 화장실 앞에 있었고 그녀가 나오는 걸 보더니 담배를 꺼버렸다.“어디 가?”“다 알면서 뭘 물어요? 다시 식사하러 가야죠.”감시카메라로 박민정의 행동을 보지 않았더라면 유남준은 절대 이대로 그녀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지금은 그녀를 울렸다는 약간의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박민정이
하민재는 연예인들의 본모습을 질리도록 잘 알고 있기에 연지석의 선택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연지석은 그의 오해를 바로잡았다.“내가 말하는 건 그 여자가 아니야.”그러자 하민재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누군데?”그가 알고 있는 건 유남준과 이지원의 소문뿐이었으니까.“박민정.”박민정...하민재는 곰곰이 이 이름을 떠올리고는 몇 초 뒤 더욱더 황당한 듯 소리를 질렀다.“유남준 와이프??”만약 이지원을 좋아하는 거라면 아직 잘 될 가능성이라도 있었지만, 상대가 박민정이라면...하민재는 생각에 잠겼다. 그의 기억 속 그녀는 박씨 가문의 청각장애 아가씨로 유남준의 유일한 흠으로 소개되고 있는 여자였다.게다가 듣기로 결혼 당시 그녀의 남동생과 어머니가 그녀의 앞으로 온 예물들을 전부 꿀꺽해버린 데다가 유남준은 이 결혼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하여 그의 결혼사는 상류층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그 당시 그 소문을 안주 삼아 웃고 떠들던 사람 중에 하민재도 있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민정이라는 존재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점차 잊혀 갔다. 이렇게 오늘 연지석이 그녀의 이름을 말하기 전까지 그는 유남준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형, 미쳤어? 그 여자 유부녀야. 게다가 귀머거...”하민재는 아차 싶었는지 단어 선택을 달리하고 말을 이었다.“청각장애가 있는 여자잖아. 형이랑은 안 어울려.”“어울리고 말고는 내가 결정해. 그리고 난 그런 것 따위에 흔들리지 않아.”단호한 그의 말에 하민재는 연지석이 여자에게 아주 단단히 빠졌다고 생각했다.그러면서 문득 박민정이 무슨 수로 이런 냉혈한을 홀렸는지 궁금하기도 했다.하지만 문제는 좋아하는 건 둘째치고 유남준이 과연 자신의 아내를 순순히 넘겨줄까?유남준은 자신에게 필요 없는 여자라 할지라도 그게 자신의 수중에 있는 한 절대 다른 남자에게 건네줄 사람이 아니었다.“됐다. 이만 끊어.”연지석은 하민재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들이 튀어나올까 봐
말을 마친 후 박민정은 자기 자리에서 가방을 챙겨 다시 회사를 나왔다.유남준은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했던 말을 되새기고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저 여자가 정말 자신이 알던 박민정이 맞나? 양보가 몸에 밴 유약한 자신의 아내가 맞나?웬일인지 조금 화가 날 법한 그녀의 말에도 유남준은 화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다.그리고 전에는 그녀를 너무 얕잡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때 서다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대표님.”유남준은 금세 차가운 얼굴로 돌아와 물었다.“무슨 일이지?”“이지원 씨 일로 주상 엔터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저희 쪽에서 대신 처리할까요?”유남준이 전에 했던 얘기 때문에 서다희는 멋대로 결정하는 게 아닌 그의 의견을 먼저 구했다.유남준은 미간을 치켜세우더니 서다희를 향해 말했다.“에스토니아의 민 선생이라는 작곡가에 대해 좀 알아봐.”서다희는 그가 또 이지원의 뒤처리를 해주려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일전 남모를 루트로 박민정의 소식도 알아낸 서다희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해외에 연락을 넣었다.그러자 얼마 안 가 해외에서 소식이 전해졌다.“민 선생이라는 사람 해외에서는 꽤 이름 있는 작곡가라고 합니다. 가수들에게 만들어 준 곡도 꽤 되고요.”서다희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리고 조사해본 결과 민 선생이라는 사람은 바로 박민정 씨였습니다.”서다희는 이지원이 그렇게 얻으려고 했던 정보들을 금세 알아냈다.“박민정?”유남준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아까 박민정이 그렇게 화를 낸 이유가 그 곡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었나?그러다 문득 박민정이 근 몇 년간 해외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가 모르는 또 다른 건 없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이 일은 나 말고 그 누구도 몰라야 해. 알겠어?”유남준이 서다희를 향해 신신당부했다.“네, 알겠습니다.”서다희는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물었다.
그녀의 말에 임수호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는 도로에 다른 차량이 없는 걸 확인한 후 천천히 속도를 올리더니 박민정이 타고 있는 차량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박민정을 태운 차량의 기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서둘러 핸들을 돌려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차량을 피할 길은 없었고 두 차는 그대로 큰소리를 내며 부딪혀버렸다.쾅!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박민정이 타고 있던 차체가 움푹 파이더니 이내 차가 전복됐다.기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해버렸다.박민정도 머리를 세게 부딪히긴 했지만, 다행히 아직 정신은 있었다. 그녀는 얼굴 가득 흐르는 피와 점점 눈앞이 빨갛게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에 있는 힘껏 차에서 기어나가려고 몸을 움직였다.그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수염이 덜 정리된 남자가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살... 살려주세요...”박민정은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생각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그러자 임수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가 기어 나오려는 차 문을 잠가놓고는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난 당신을 구하러 온 게 아니야.”박민정은 그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임수호는 그런 그녀를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죽이려고 왔지.”“난 그쪽이 누군지도 몰라요...”박민정은 이 남자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고 왜 자신을 죽이려 드는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임수호는 혹시 그녀가 창문을 부수고 기어 나오기라도 할까 봐 자신의 몸을 차에 찰싹 밀착시키고 앉았다.“내가 왜 당신을 죽이려는지 알고 싶어?”박민정이 힘들게 고개를 끄덕이자 임수호도 감출 생각이 없는지 그녀를 향해 말했다.“그러게 지원이를 왜 건드려.”지원...이지원...!“당신은 대체 누구죠?”박민정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나? 지원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임수호의 말에 그녀는 문득 얼마 전 이지원이 유남준에게 자기 사생팬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했던 장면이 떠올랐다.“혹시 이지원 씨 팬인가요?”사생팬이라면 간혹 이런
임수호는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차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박민정은 최대한 몸을 뒤로 옮겨 그와 거리를 두며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아직도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이지원 씨에게 전화해서 내가 죽었다고 얘기해 보세요.”임수호는 휴드폰을 꺼내 바로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의 번호를 차단한 건지 좀처럼 이지원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그쪽과 엮이게 될까 봐 진작에 차단한 것 같네요. 지금이라도 나와 기사님을 구해주면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해줄게요. 당신은 실수로 차를 들이받은 거고 우리는 목숨을 건졌으니 형사책임은 피할 수 있을 거예요.”임수호는 박민정의 말에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점점 몸을 가누지 못했고 의식도 점점 흐려져 갔다.그때 주위가 갑자기 시끄러워지는가 싶더니 임수호는 뭔가를 보고는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박민정은 마지막 순간 몽롱한 시선 속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보았다. 하지만 끝내 그 얼굴이 누군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 천천히 눈이 감겨버렸다.단지 자신을 업은 남자의 어깨가 엄청 넓고 따뜻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병원 병실 안.유남준은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는 그의 손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가득 나 있었다.하지만 한 모금 빨아들이려다가 문득 병상에 누워있는 박민정을 보고는 담배를 가차 없이 껐다.그녀가 이곳으로 돌아온 후로 병원 신세를 진 건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이다.그때 벨 소리가 울려 전화를 받아보니 서다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뺑소니범은 연지석 씨 쪽 사람이 확보한 것 같습니다.”유남준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알았어. 박민정 경호원들은 지금 당장 해고해.”그는 용건만 간단히 전달한 후 전화를 끊었다.박민정이 사고 나기 전 유남준은 두원 별장으로 갔다가 박민정이 없는 걸 보고는 그녀를 지키던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뒤늦게서야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눈을 깜빡거리다 겨우 정신을 차린 박민정은 그제야 자신의 이마와 손 그리고 다리가 전부 붕대로 감겨있다는 걸 발견했다.창문 밖을 바라보니 새벽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독 까맣게 느껴졌다.병실을 둘러보다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는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지석아...”목소리가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지석은 바로 눈을 떴다.“깼어? 몸은 좀 어때? 괜찮아?”의사 말로는 그녀가 뒷좌석에 앉아 큰 사고는 면할 수 있었다고 했다.“기사님은...”“괜찮아. 다행히 빨리 병원으로 옮겨져서 무사해.”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기절할 뒤의 상황에 관해 물었다.연지석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기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사람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해 임수호를 잡았다고 한다.“유남준 씨도 왔었어. 널 병원에 데려다준 거 그 사람이야.”연지석은 굳이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유남준이 어떻게 그녀를 차에서 구했는지와 그가 이제까지 줄곧 그녀 곁에 있다가 반 시간 전에 막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서는 구태여 전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자신에게 경호원을 붙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사고 당시 같이 있었던 기사 역시 유남준 사람이라 그가 현장에 도착한 것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그리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연지석이 유남준보다 더 빨리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것이고 자신을 차 안에서 구해준 사람도 당연히 연지석일 거라고 생각했다.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도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는 걸까? 연지석은 그녀에게 사고 당시 구체적인 상황 설명은 하지 않았다.“남준 씨는 우리가 만나는 걸 싫어해. 너 여기 있는 거 그 사람은 알아?”연지석은 박민정이 뭘 걱정하는지 안다는 듯 그녀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유남준 씨도 알아.”몇 시간 전 박민정이 응급 수술에 들어간 후 두 남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구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았다.그리고 급한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됐을 때 유남준은 경호
연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번 일은 나한테 맡기고 너는 푹 쉬기나 해.”그는 곧바로 의사를 불러 박민정의 상태에 대해 보고를 들은 후 아무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유남준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연지석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김인우도 유남준을 따라 함께 병원으로 왔다.병실에 가보니 마침 간호사가 약을 갈아주고 있어 두 남자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병원 산책로에 도착했다.“갑자기 교통사고는 왜 난 거야? 뺑소니범은 잡았어?”김인우의 질문에 유남준은 사고가 있고 난 뒤 자신이 박민정을 병원에 데려온 사실부터 연지석이 뺑소니범을 잡은 사실까지 전부 다 얘기해주었다.그러자 김인우의 표정이 조금 달라지더니 흥미롭다는 얼굴로 말했다.“너보다 먼저 뺑소니범을 잡은 걸 보면 보통 놈은 아닌데?”유남준은 그의 말에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했다.“나와 비교하면 어떤 것 같아?”박민정이 사고 난 후 가장 먼저 연락했던 사람이 연지석이라는 걸 떠올린 듯싶다.그에 김인우가 몇 초간 반응이 없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남준아, 비교할 걸 해야지. 국내에서 네 힘이 어디까지 닿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걸 말이라고.”유남준은 그저 묵묵히 들을 뿐 기뻐하거나 만족스러워하지는 않았다.“박민정이 사고를 당하고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이 바로 연지석이야.”김인우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여자 다루는 데 도가 텄나 보지. 여자들은 조금만 공감해주고 달콤한 말로 속삭이면 금세 넘어오잖아. 지금 보니 얼굴도 약간 여자들 잘 홀릴 것처럼 생기긴 했어.”유남준이 쉽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은 냉 미남 얼굴이라면 연지석은 잘생긴 얼굴에 매혹적인 느낌이 더해져 비유하자면 꼭 여우 같은 느낌이었다.그리고 여자들은 높은 확률로 이러한 여우과 남자들의 사탕발림에 쉽게 넘어간다.물론 김인우는 이런 부류의 남자는 겉만 번지르르한 알맹이 없는 인간이라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늦었는데 이만 가봐.”유남준
잠에서 깨어보니 이마는 땀으로 가득했고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그녀의 외침에 옆에 있는 보호자 방에서 유남준이 뛰쳐나왔다. 그러다 별다른 일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그녀에게 물었다.“왜 그래?”박민정의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방금 죽는 꿈을 꿨어요.”비록 꿈이었지만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한편 죽음이라는 단어에 유남준은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고는 천천히 등을 토닥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꿈이야. 현실 아니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어.”박민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이성을 되찾았고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고마워요.”그러고는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풀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마치 선을 그으려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유남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는 보호자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불을 걷더니 박민정의 곁에 누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그의 행동에 박민정의 몸이 눈에 띄게 굳어버렸다.“내가 필요한 일이면 언제든지 얘기해도 돼.”그녀는 갑자기 목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밖에는 거센 바람과 함께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무더웠던 날이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인해 조금은 시원해졌다.아까의 악몽으로 아직 불안함이 가시지 않던 그녀의 마음은 유남준이 곁에 있어 줌으로써 많이 괜찮아진 듯했다.3년이라는 결혼생활 동안 결벽증 탓에 실수로라도 안으려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당신은 내가 아직도 싫어요?”그녀를 안고 있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박민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난 정말 당신을 모르겠어요...”유남준은 누군가가 목구멍을 막아놓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답답하고 복잡한 지금 이 마음을 그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다.박민정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긴 건 아닐 것이다. 단지 누군가를 새롭게 알아가야 하는 일이 귀찮을 뿐이고 지금은 그저 그녀가 죽는 게 두려운 것뿐이다.한참을 그렇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유남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