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의 말은 확실히 유남준의 아픈 곳을 찔렀다. 박민정과 연지석 사이에 이미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유남준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박민정과 방성원이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방성원이 나가는 것을 보고 긴 다리로 박민정을 향해 재빨리 걸어갔다.“일 다 끝났어요? 이제 집에 갈까요?”박민정의 말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유남준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배에 화가 가득 찼지만 그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그는 박민정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언제부터 성원이랑 얘기도 했어?”방성원은 답답한 성격이라 친구 몇 명과 함께 놀 때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를 제외하고는 그가 다른 여성과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먼저 나를 부른 건 그 사람이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를 차에 태우고 자신도 뒤따라 차에 앉았다.박민정은 의아했다. 그는 분명히 와인을 많이 마셨고, 거기에 무언가 첨가되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여전히 정신이 이렇게 말짱할 수 있을까?유남준 자신만이 이 순간 그가 얼마나 참기 힘든지 알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넥타이를 잡아당기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박민정에게서 나는 희미한 향기를 어렴풋이 맡을 수 있었다.박민정은 점차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약의 후유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런데 이때 급커브로 인해 그녀는 유남준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고 아예 안겨 버렸다.“미안해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박민정은 일부러 천천히 일어나면서 사과했다.차의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자 몸을 잘못 가눈 척하며 다시 안겼다.유남준은 자신의 무릎에 넘어진 박민정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번에도 고의가 아니야?”박민정은 이제야 알아차린 척하고 서둘러 일어나면서 뺨이 붉어졌다.그녀는 이번엔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했다.“내 손에 상처가 있잖아요. 방금 실수로 눌렀어요, 그래서...”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바쁘게 눈을 피
응어리진 마음을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박민정은 결국 바에서 술 몇 잔을 시켰다. 알코올에 취해야만 잠시라도 이 고민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한편 같은 시각.한 시간이 넘는 찬물 샤워를 하고 나서야 유남준은 약효가 조금 떨어졌다.가운을 입고 거실로 나간 그는 박민정이 집에 없음을 눈치챘다.보디가드에게 물으니 홀로 외출하여 바에 갔단다.바에서.홀로 알코올을 들이켜는 박민정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누군가 빛을 등진 채 그녀를 향해 멈춰 섰다.몽롱하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 박민정의 눈에 신이 정성스레 빚은 듯한 끔찍하리만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왜 왔어요?”박민정이 입을 열자, 알코올 향이 물씬 풍겨온다.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술은 언제 배운 거야?”한 잔이면 바로 취하던 그녀였는데, 테이블 위에 빈 술잔이 꽤 보였다.박민정은 오히려 그가 자신이 술을 마시는지 여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의아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결혼하고 2년 뒤쯤인 것 같아요.”유남준이 곁에 없는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알코올에 의존해야만 그리움을 잊을 수 있었다.유남준은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목이 메여왔다.그제야 유남준은 자신이 종래로 아내를 이해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박민정의 손에 쥐어져 있던 술잔을 홱 빼앗아 한쪽으로 내팽개쳐 버렸다.“집에 돌아가자.”집에 돌아간다라...박민정의 눈앞이 저도 모르게 눈물로 흐려졌다.살결을 사정없이 스치는 밤바람은 그다지 살갑지 않았고 조금 춥게 느껴졌다.박민정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러나 몇 발짝도 옮기지 못하고 유남준에 의해 번쩍 안아 올려졌다. 몸이 공중에 붕 뜨자 그녀의 여린 손이 본능적으로 유남준의 팔뚝을 잡았다.“내려줘요. 혼자 걸을 수 있어요.”박민정이 당황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입을 열었다.그러나 유남준은 아랑곳 하지 않고 빠르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앞으론 술 마시지 마.”품에 안긴 박민정은 정
“남준 씨가 나와 윤우를 놓아주고, 과거 일을 다시 꺼내지만 않는다면요.”유남준이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주며 꼭 안았다.“그럴 리가.”그녀가 전에 했던 말이 맞다. 한때 부부였던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어.박민정이 기어코 가야겠다 해도. 죽지 않는 한 절대.박민정의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더니 픽 쓴웃음을 지었다.“이렇게 뒤끝 있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애당초 결혼할 때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어야 하는 건데.”또 사람을 앞에 두고 후회의 말을 한다.그녀의 결혼을 후회한다던 말들을 떠올리며 유남준의 얼굴은 점차 냉랭해졌다.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깊은 밤, 차는 적막 속에서 도로를 달리고 있다.박민정은 조금 어지러움을 느꼈고 얼굴은 알코올의 여파로 불그스름하다.자신 때문에 감기가 옮았을까 걱정된 유남준이 손을 그녀의 이마에 갖다 대려 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기도 전에 박민정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피해버렸다.그의 손이 공중에서 잠시 멈추더니 다시 한번 이마에 안착했다. 열은 느껴지지 않는다.“그렇게 많이 마시면 속이 좀 편해?”알면서도 묻는다.박민정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저는 언제 윤우를 볼 수 있어요? 애가 가뜩이나 담이 작은데 낯선 곳에서 얼마나 무섭겠어요.”“너 하는 거 봐서.”유남준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유남준이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박민정은 피하지 않은 채 그의 손이 자기 뺨을 어루만지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그녀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남준 씨, 저는 도저히 모르겠어요.”“뭘?”“혹시 저 좋아하게 된 거예요?”박민정이 또박또박 물었다.만일 좋아하는 거라면 왜 닿는 것도 그렇게 꺼리는 걸까?유남준이 멈칫하더니 얼른 얼굴에서 손을 뗐다.그리곤 다시 원래의 냉담한 모습으로 돌아갔다.“그럴 리가.”당연하게도 착각이다. 그처럼 교만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좋아하겠는가.어쩐지 그렇게 들이대도 거절하더라니.그녀가 태연한 모습
유남준은 목이 무언가에 꽉 막힌 듯 답답함을 느꼈다.그는 종래로 자금과 프로젝트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단지 속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을 뿐이다.백화점이었든 다른 곳이었든, 그날 그는 처음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다.대답을 하지 않는 유남준을 보며 박민정은 어떻게 풀어주어야 할지 몰랐다.“이것 말고는 어떻게 남준 씨 마음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마침내 그녀가 입을 꾹 닫자, 남예준이 고개를 돌려 작고 여린 그녀를 바라보았다.“두 가문이 약속한 지 적어도 8년이 지났어. 이 8년간 프로젝트든 자금이든 모두 기준도 내용도 달라졌을 텐데 어떻게 갚으려고?”“가격 제시해요. 어떤 방법을 쓰든 갚을게요.”박민정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유남준의 깊은 눈동자에 은은한 물결이 일었다.“그래. 그럼 갚는 대로 널 놔줄게.”값을 제시하는 쪽이 이쪽이라면 그 빚은 절대 영원히 갚을 수 없을 것이다.유남준의 속을 모르는 박민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두 사람 사이에 얽힌 것을 말하자면 두 아이를 제외하고는 결혼 당시 가문 사이의 약속뿐이다.그가 제시하는 돈을 모두 갚기만 한다면 박민정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빚지지 않을 것이다.차가 드디어 두원 별장으로 들어섰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박민정은 속이 울렁거려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밖에서는 유남준이 보디가드를 추궁하고 있다.“민정이 술 마시게 두라고 한 적 없는 것 같은데.”보디가드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10분 이내로 숙취해소제랑 약 가져와.”유남준의 차가운 태도에 보디가드가 얼른 대답하며 떠났다.박민정이 다시 나왔을 때 이미 세수를 한 뒤였다. 하지만 얼굴은 백지장처럼 유난히 창백했다.거실에 있던 유남준이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이리 와봐.”박민정이 그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그리고 곧이어 테이블에 놓인 숙취해소제와 약을 발견했다.“숙취해소제 마시고 자.”유남준이 낮게 말했다.“네, 고마워요.”박민정은 소
30분 후, 박민정은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유남준은 여전히 서재에 있다.연락 중에 1.58조를 갚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은 조하랑은 깜짝 놀랐다.“그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갚는다고 그래? 네 동생이랑 엄마가 사기 쳐서 가져간 돈을 왜 네가 갚는데?”박민정은 베란다에 앉아 서늘한 바람을 쐬었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맑아지길 기대하면서.“오늘 그 사람이랑 얘기 많이 했어. 종래로 과거 일을 용서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돈만 갚으면 사기 결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고 했어.”이에 조하랑이 의아하게 물었다.“민정아. 난 왜 네가 속고 있는 것 같지?”“무려 유앤케이 그룹의 대표라는 사람이 그깟 돈이 모자랄 수가 있겠어? 넌 알지 못하겠지만 내가 찾아본 데 의하면 지금 유앤케이 상가의 임대료만 해도 1년에 12조 이상을 벌어. 거기에 다른 부동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네트워크에 크고 작은 프로젝트까지…”“네가 외국 사람들 말을 못 들어봐서 그래. 유남준이 가진 재산이 일부 국가자금보다도 많대.”확실히 박민정은 그의 재산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그녀가 아는 사실은 그저 결혼 전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뿐이다. 유남준이 매우 능력 있는 사람이고,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그녀보다 유남준이 훨씬 아깝다는 것.하여 아버지는 박씨 가문의 모든 속사정을 유남준에게 알려줄 것을 약속했고, 이로써 그가 본인을 챙길 수 있도록 하려 했다.하지만 결국 유남준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당시 박민정은 그가 돈이 모자랄 것을 걱정해 몰래 자신의 부동산으로 유앤케이 그룹의 작은 프로젝트들을 도와주기도 했었다.그러나 나중에 유남준이 그녀의 아버지도 출입할 수 없는 장소들을 드나드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차츰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박민정은 그의 회사 사정이 호전되는 줄로만 알았지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지 못했다.조하랑의 말을 들으니 그녀는 인제야 비로소 유남준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유남준을 돈 버는
박민정은 그가 이렇게 직설적인 말을 뱉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이전의 조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유남준이 그녀에게로 성큼 다가갔다.“아직 명의상 부부인데 안될게 뭐가 있어?”그가 말하며 가운을 서슴없이 풀어 헤쳤다.박민정은 흠칫 고개를 돌리며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평소와 다른 그녀의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에 유남준의 목울대가 진득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걱정하지 마. 안 건드릴 테니까.”박민정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그렇지.“그럼 전 객실에서 잘게요.”박민정은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유남준을 얻지 못한다면 방에 남아있을 필요도 없다.그러나 이때 그가 한발 앞서 박민정의 손을 홱 잡아챘다. 그의 힘에 박민정의 몸이 속절없이 앞으로 기울더니 그의 가슴팍에 부딪히고 말았다.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두 팔이 그녀를 꼭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움직이지 마. 이제 너도 여기서 자는 거야. 나 혼자서 잠 못 자.”그녀가 떠난 이후 유남준은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약을 찾아 먹고 정신과 의사까지 만나봤어도 나아지지 않았었다.박민정이 돌아오고 그녀를 안고 잠을 청해서야 그는 가까스로 잠에 들 수 있었다.박민정은 그가 직접 이 말을 했다는것이 놀라웠다.“약속 지켜요.”“그래.”박민정은 침대의 한쪽에 눕더니 특별히 이불을 돌돌 말아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눈을 감고 그녀는 진주시로 돌아가기 전 의사가 했던 당부를 떠올렸다.의사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혼수상태에 빠지면 의식을 거의 잃는다. 하여 박민정이 목적을 이루려면 그가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그러므로 유일한 방법은 그가 술에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번 술을 먹이려고 시도했을 때, 그가 자신에게 먹이는 바람에 계획이 모두 수포가 되었었다.어쩐지 전에 파견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더라니. 이 사람은 아예 다른 사람이 술을 권하도록 내버려두질 않았다.심지어 기념일에서도 어머님 고영란이 권하는
베란다에 나와 밖을 보니 온통 산과 나무들뿐이다.박윤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혼잣말했다.“이거 완전 아이가 아니라 범죄자를 가둔 느낌이잖아.”베란다에 서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이는 몸이 불편함을 느꼈다.그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다른 곳도 살펴보았다.이곳에 갇힌 며칠간 그는 줄곧 도망갈 기회를 찾고 있다.그러나 이곳의 보안 시스템은 너무나도 삼엄했다.아이가 보안 시스템을 모두 피한다고 해도 그의 허약하고 병든 몸은 천 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졸도할 것이며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사방을 한참 살피던 가정부는 그제야 아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당황하며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윤우야, 윤우야? 어디 있어?”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사장이 틀림없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가정부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아이를 찾고 있을 때, 박윤우가 물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아줌마, 피곤하죠? 물 마셔요.”박윤우를 보고서야 가정부는 숨을 내돌렸다.아이가 하도 똑똑하고 철이 들어서 가정부는 자신이 서너 살짜리 아이를 돌본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윤우야, 고마워. 아줌마 목 안 말라. 앞으로 뭘 하고 싶으면 하기 전에 꼭 아줌마한테 물어봐야 해~ 아줌마 깜짝 놀랐어, 방금.”“알겠어요.”박윤우가 마음이 무거운 듯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무슨 생각을 떠올린 건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가정부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하며 다급히 물었다.“윤우야, 왜 그래? 왜 울어?”박윤우가 코를 훌쩍이더니 입을 열었다.“엄마랑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아줌마,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알려주면 안 돼요?”아이에게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정부는 이 귀여운 아이가 우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그래. 내가 얼른 집사님께 연락할게.”그녀에게 사장님의 연락처가 있을 리 없다.저택 내부의 모든 네트워크 신호가 차단되었으므로 가정부가 집사에게 연락하는 것도 가장 바깥쪽의 보안을 통과해야 했다.그녀는
유남준은 목이 메어왔다.합의…우리 사이에 또 무슨 합의가 필요해?유남준은 내키지 않았지만 박민정이 집을 나가겠다고 할까 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먼저 써둬.”만일 그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면 절대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옷을 갈아입고 얼른 정림원으로 향했다.도착한 후 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아저씨, 드디어 오셨네요. 우리 아빠한테 저 잡아갔다고 말은 했어요?”아이를 데려가 놓고 어떻게 연지석과 아는 체를 하겠는가.유남준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대답했다.“지금쯤이면 이미 알고도 남았지.”사슴 같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는 하도 울어서 코끝이 붉다.“그럼 왜 아직도 절 데리러 오지 않는 거예요?”“저 집 가고 싶어요. 아빠도 보고 싶어요…”유남준이 티슈 한 장을 아이 앞에 내밀었다.“그만 생각해. 네 아빠는 너 싫대.”“…”말도 안 되는 소리. 아저씨가 나를 싫다고 할 리가.감히 어린 애까지 겁 주려 한다니. 정말이지 악랄하다.어린애라는 장점을 앞세워 박윤우는 냅다 울어대기 시작했다.“거짓말! 아빠가 윤우를 싫어할 리가 없어! 나중에 엄마랑 동생도 만들어주겠다고 했었단 말이에요!”유남준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방 안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고 주위 온도마저 가라앉는 듯했다.“네 아빠가 민정이랑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고?”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박윤우가 일부러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네! 여동생이랑 남동생 많이 만들어줘서 같이 놀게 해줄 거라고 했어요!”“…”박윤우는 울면서도 몰래 유남준의 안색을 살폈다.우리 엄마 좋아하지 않는 것 아니었나?그런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둡지?본인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 주기는 싫은가? 혹시 세상의 모든 쓰레기가 이런 걸까?“그럼 네 엄마는 왜 귀국한 거지?”유남준은 당연히 아이가 속사정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뱉은 말이었다.그러나 이에 당황한 박윤우는 어리둥절해서 하마터면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