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32화

Author: 윤지
“남준 씨가 나와 윤우를 놓아주고, 과거 일을 다시 꺼내지만 않는다면요.”

유남준이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주며 꼭 안았다.

“그럴 리가.”

그녀가 전에 했던 말이 맞다. 한때 부부였던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어.

박민정이 기어코 가야겠다 해도. 죽지 않는 한 절대.

박민정의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더니 픽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뒤끝 있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애당초 결혼할 때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어야 하는 건데.”

또 사람을 앞에 두고 후회의 말을 한다.

그녀의 결혼을 후회한다던 말들을 떠올리며 유남준의 얼굴은 점차 냉랭해졌다.

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깊은 밤, 차는 적막 속에서 도로를 달리고 있다.

박민정은 조금 어지러움을 느꼈고 얼굴은 알코올의 여파로 불그스름하다.

자신 때문에 감기가 옮았을까 걱정된 유남준이 손을 그녀의 이마에 갖다 대려 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기도 전에 박민정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피해버렸다.

그의 손이 공중에서 잠시 멈추더니 다시 한번 이마에 안착했다. 열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많이 마시면 속이 좀 편해?”

알면서도 묻는다.

박민정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저는 언제 윤우를 볼 수 있어요? 애가 가뜩이나 담이 작은데 낯선 곳에서 얼마나 무섭겠어요.”

“너 하는 거 봐서.”

유남준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유남준이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박민정은 피하지 않은 채 그의 손이 자기 뺨을 어루만지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남준 씨, 저는 도저히 모르겠어요.”

“뭘?”

“혹시 저 좋아하게 된 거예요?”

박민정이 또박또박 물었다.

만일 좋아하는 거라면 왜 닿는 것도 그렇게 꺼리는 걸까?

유남준이 멈칫하더니 얼른 얼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곤 다시 원래의 냉담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럴 리가.”

당연하게도 착각이다. 그처럼 교만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좋아하겠는가.

어쩐지 그렇게 들이대도 거절하더라니.

그녀가 태연한 모습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3화

    유남준은 목이 무언가에 꽉 막힌 듯 답답함을 느꼈다.그는 종래로 자금과 프로젝트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단지 속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을 뿐이다.백화점이었든 다른 곳이었든, 그날 그는 처음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다.대답을 하지 않는 유남준을 보며 박민정은 어떻게 풀어주어야 할지 몰랐다.“이것 말고는 어떻게 남준 씨 마음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마침내 그녀가 입을 꾹 닫자, 남예준이 고개를 돌려 작고 여린 그녀를 바라보았다.“두 가문이 약속한 지 적어도 8년이 지났어. 이 8년간 프로젝트든 자금이든 모두 기준도 내용도 달라졌을 텐데 어떻게 갚으려고?”“가격 제시해요. 어떤 방법을 쓰든 갚을게요.”박민정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유남준의 깊은 눈동자에 은은한 물결이 일었다.“그래. 그럼 갚는 대로 널 놔줄게.”값을 제시하는 쪽이 이쪽이라면 그 빚은 절대 영원히 갚을 수 없을 것이다.유남준의 속을 모르는 박민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두 사람 사이에 얽힌 것을 말하자면 두 아이를 제외하고는 결혼 당시 가문 사이의 약속뿐이다.그가 제시하는 돈을 모두 갚기만 한다면 박민정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빚지지 않을 것이다.차가 드디어 두원 별장으로 들어섰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박민정은 속이 울렁거려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밖에서는 유남준이 보디가드를 추궁하고 있다.“민정이 술 마시게 두라고 한 적 없는 것 같은데.”보디가드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10분 이내로 숙취해소제랑 약 가져와.”유남준의 차가운 태도에 보디가드가 얼른 대답하며 떠났다.박민정이 다시 나왔을 때 이미 세수를 한 뒤였다. 하지만 얼굴은 백지장처럼 유난히 창백했다.거실에 있던 유남준이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이리 와봐.”박민정이 그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그리고 곧이어 테이블에 놓인 숙취해소제와 약을 발견했다.“숙취해소제 마시고 자.”유남준이 낮게 말했다.“네, 고마워요.”박민정은 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4화

    30분 후, 박민정은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유남준은 여전히 서재에 있다.연락 중에 1.58조를 갚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은 조하랑은 깜짝 놀랐다.“그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갚는다고 그래? 네 동생이랑 엄마가 사기 쳐서 가져간 돈을 왜 네가 갚는데?”박민정은 베란다에 앉아 서늘한 바람을 쐬었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맑아지길 기대하면서.“오늘 그 사람이랑 얘기 많이 했어. 종래로 과거 일을 용서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돈만 갚으면 사기 결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고 했어.”이에 조하랑이 의아하게 물었다.“민정아. 난 왜 네가 속고 있는 것 같지?”“무려 유앤케이 그룹의 대표라는 사람이 그깟 돈이 모자랄 수가 있겠어? 넌 알지 못하겠지만 내가 찾아본 데 의하면 지금 유앤케이 상가의 임대료만 해도 1년에 12조 이상을 벌어. 거기에 다른 부동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네트워크에 크고 작은 프로젝트까지…”“네가 외국 사람들 말을 못 들어봐서 그래. 유남준이 가진 재산이 일부 국가자금보다도 많대.”확실히 박민정은 그의 재산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그녀가 아는 사실은 그저 결혼 전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뿐이다. 유남준이 매우 능력 있는 사람이고,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그녀보다 유남준이 훨씬 아깝다는 것.하여 아버지는 박씨 가문의 모든 속사정을 유남준에게 알려줄 것을 약속했고, 이로써 그가 본인을 챙길 수 있도록 하려 했다.하지만 결국 유남준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당시 박민정은 그가 돈이 모자랄 것을 걱정해 몰래 자신의 부동산으로 유앤케이 그룹의 작은 프로젝트들을 도와주기도 했었다.그러나 나중에 유남준이 그녀의 아버지도 출입할 수 없는 장소들을 드나드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차츰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박민정은 그의 회사 사정이 호전되는 줄로만 알았지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지 못했다.조하랑의 말을 들으니 그녀는 인제야 비로소 유남준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유남준을 돈 버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5화

    박민정은 그가 이렇게 직설적인 말을 뱉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이전의 조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유남준이 그녀에게로 성큼 다가갔다.“아직 명의상 부부인데 안될게 뭐가 있어?”그가 말하며 가운을 서슴없이 풀어 헤쳤다.박민정은 흠칫 고개를 돌리며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평소와 다른 그녀의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에 유남준의 목울대가 진득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걱정하지 마. 안 건드릴 테니까.”박민정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그렇지.“그럼 전 객실에서 잘게요.”박민정은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유남준을 얻지 못한다면 방에 남아있을 필요도 없다.그러나 이때 그가 한발 앞서 박민정의 손을 홱 잡아챘다. 그의 힘에 박민정의 몸이 속절없이 앞으로 기울더니 그의 가슴팍에 부딪히고 말았다.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두 팔이 그녀를 꼭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움직이지 마. 이제 너도 여기서 자는 거야. 나 혼자서 잠 못 자.”그녀가 떠난 이후 유남준은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약을 찾아 먹고 정신과 의사까지 만나봤어도 나아지지 않았었다.박민정이 돌아오고 그녀를 안고 잠을 청해서야 그는 가까스로 잠에 들 수 있었다.박민정은 그가 직접 이 말을 했다는것이 놀라웠다.“약속 지켜요.”“그래.”박민정은 침대의 한쪽에 눕더니 특별히 이불을 돌돌 말아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눈을 감고 그녀는 진주시로 돌아가기 전 의사가 했던 당부를 떠올렸다.의사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혼수상태에 빠지면 의식을 거의 잃는다. 하여 박민정이 목적을 이루려면 그가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그러므로 유일한 방법은 그가 술에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번 술을 먹이려고 시도했을 때, 그가 자신에게 먹이는 바람에 계획이 모두 수포가 되었었다.어쩐지 전에 파견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더라니. 이 사람은 아예 다른 사람이 술을 권하도록 내버려두질 않았다.심지어 기념일에서도 어머님 고영란이 권하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6화

    베란다에 나와 밖을 보니 온통 산과 나무들뿐이다.박윤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혼잣말했다.“이거 완전 아이가 아니라 범죄자를 가둔 느낌이잖아.”베란다에 서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이는 몸이 불편함을 느꼈다.그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다른 곳도 살펴보았다.이곳에 갇힌 며칠간 그는 줄곧 도망갈 기회를 찾고 있다.그러나 이곳의 보안 시스템은 너무나도 삼엄했다.아이가 보안 시스템을 모두 피한다고 해도 그의 허약하고 병든 몸은 천 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졸도할 것이며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사방을 한참 살피던 가정부는 그제야 아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당황하며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윤우야, 윤우야? 어디 있어?”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사장이 틀림없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가정부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아이를 찾고 있을 때, 박윤우가 물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아줌마, 피곤하죠? 물 마셔요.”박윤우를 보고서야 가정부는 숨을 내돌렸다.아이가 하도 똑똑하고 철이 들어서 가정부는 자신이 서너 살짜리 아이를 돌본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윤우야, 고마워. 아줌마 목 안 말라. 앞으로 뭘 하고 싶으면 하기 전에 꼭 아줌마한테 물어봐야 해~ 아줌마 깜짝 놀랐어, 방금.”“알겠어요.”박윤우가 마음이 무거운 듯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무슨 생각을 떠올린 건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가정부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하며 다급히 물었다.“윤우야, 왜 그래? 왜 울어?”박윤우가 코를 훌쩍이더니 입을 열었다.“엄마랑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아줌마,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알려주면 안 돼요?”아이에게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정부는 이 귀여운 아이가 우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그래. 내가 얼른 집사님께 연락할게.”그녀에게 사장님의 연락처가 있을 리 없다.저택 내부의 모든 네트워크 신호가 차단되었으므로 가정부가 집사에게 연락하는 것도 가장 바깥쪽의 보안을 통과해야 했다.그녀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7화

    유남준은 목이 메어왔다.합의…우리 사이에 또 무슨 합의가 필요해?유남준은 내키지 않았지만 박민정이 집을 나가겠다고 할까 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먼저 써둬.”만일 그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면 절대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옷을 갈아입고 얼른 정림원으로 향했다.도착한 후 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아저씨, 드디어 오셨네요. 우리 아빠한테 저 잡아갔다고 말은 했어요?”아이를 데려가 놓고 어떻게 연지석과 아는 체를 하겠는가.유남준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대답했다.“지금쯤이면 이미 알고도 남았지.”사슴 같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는 하도 울어서 코끝이 붉다.“그럼 왜 아직도 절 데리러 오지 않는 거예요?”“저 집 가고 싶어요. 아빠도 보고 싶어요…”유남준이 티슈 한 장을 아이 앞에 내밀었다.“그만 생각해. 네 아빠는 너 싫대.”“…”말도 안 되는 소리. 아저씨가 나를 싫다고 할 리가.감히 어린 애까지 겁 주려 한다니. 정말이지 악랄하다.어린애라는 장점을 앞세워 박윤우는 냅다 울어대기 시작했다.“거짓말! 아빠가 윤우를 싫어할 리가 없어! 나중에 엄마랑 동생도 만들어주겠다고 했었단 말이에요!”유남준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방 안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고 주위 온도마저 가라앉는 듯했다.“네 아빠가 민정이랑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고?”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박윤우가 일부러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네! 여동생이랑 남동생 많이 만들어줘서 같이 놀게 해줄 거라고 했어요!”“…”박윤우는 울면서도 몰래 유남준의 안색을 살폈다.우리 엄마 좋아하지 않는 것 아니었나?그런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둡지?본인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 주기는 싫은가? 혹시 세상의 모든 쓰레기가 이런 걸까?“그럼 네 엄마는 왜 귀국한 거지?”유남준은 당연히 아이가 속사정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뱉은 말이었다.그러나 이에 당황한 박윤우는 어리둥절해서 하마터면 곧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8화

    유남준은 얼굴이 흙빛이 된 채 박윤우를 놓아주었다.애가 담이 작아도 너무 작은 것 아닌가.“아저씨, 윤우 때리지 마세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윤우는 무섭단 말이에요…”밖에 있던 가정부들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사장이 나쁜 짓이라도 했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박윤우를 돌보던 가정부는 해고될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벌컥 열었다.“사장님, 아이가 이렇게나 어린데. 때리면 안 되죠…”그녀는 방으로 들어온 후에야 유남준의 하얀 셔츠 위의 노랑 액체를 보았다…가정부는 문득 무언가 깨닫고 겸연쩍은 듯 눈을 돌렸다.“아저씨, 화났어요? 왜 대답 안 해줘요? 엄마 언제 만나게 해줄 거예요?”유남준은 경직된 얼굴로 아이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욕실 안에서 그는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이고 씻었다. 그 사고뭉치 자식만 생각하면 엉덩이 두 대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박민정은 그렇게 상냥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사고뭉치 아이를 낳았을까…한 시간 후 욕실에서 나오는 유남준의 몸에서는 은은한 로션 향이 났다.가정부는 조심스레 그에게 와서 말했다.“사장님, 윤우 이제 안 울어요. 그리고 대신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그리고 착한 아이가 될 테니 제발 죽이지 말아달래요. 아직 엄마·아빠도 보지 못했다고요.”아이의 말을 전하는 가정부도 말하면서 깜짝 놀랐다.아이가 사장의 아들이나 친척이 아니었구나. 그럼 죽인다는 건 또 무슨 말이지?무언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 기분. 이러다 입막음 당하면 어떡하지?아이를 죽인다고?어쩐지 그 사고뭉치 자식이 오줌을 지리더라니, 오해한 것이었군…“그래요.”그는 어린애와 실랑이할 겨를이 없었다.떠나기 전 그는 가정부에게 아이를 잘 돌보라고 당부했다.가정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박윤우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방 안에 있던 박윤우는 유남준의 자동차가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어찌나 통쾌하고 시원했는지 모른다.그와 형이 태어나고 엄마가 그들을 돌보면 얼마나 많은 똥 기저귀를 갈았는데, 겨우 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9화

    “왔어요?”박민정이 피아노 커버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훤칠한 키의 유남준이 문 옆에 기대어 그녀를 응시했다.“왜 더 안 쳐?”전에는 일이 바빠 그녀가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언젠가 박민정이 자신을 찾아와 프로젝트를 요청하며 한 번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당시 그는 박민정의 동생 박민호에게 화가 난 상태였고 박민정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녀는 아마 이 일로도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그 일 이후로 박민정은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었고, 피아노를 연주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남준 씨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박민정이 이어 말했다.“합의서 준비했으니 보러 가요.”외출하고 온 유 남준은 합의서에 관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그래.”두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유남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잘 치던데, 곡 이름이 뭐야? 못 들어본 곡인 것 같네.”그의 말에 박민장이 어리둥절했다.“못 들어봤다고요?”이 곡은 그녀가 학창 시절 만든 곡이었고 당시에 특별히 유남준에게 연주해 주었던 곡이다.유남준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내가 들어봤던 곡이야?”박민정은 그가 잊은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그냥 한 말이었어요. 이 곡은 제가 고등학생일 때 쓴 거예요. 아직 발표하지 않은.”박민정이 직접 썼다는 말에 유 남준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높이 보게 되었다.그는 자기 아내가 이토록 많은 재능을 갖고 있음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유남준이 먼저 앞장서자 박민정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그의 반응이 곡을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이렇게 바쁜 사람이, 게다가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곡 하나를 여태 기억하고 있겠는가.방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자신이 직접 쓴 합의서를 가져와 그에게 건네주었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0화

    밤이 되자 유남준은 집을 나섰다.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민정은 정민기의 메시지를 받았다.유남준이 집을 나갔으니 둘러대고 밖에 나오라고, 그리고 알려줄 것이 있다는 문자.두원별장의 보안이 삼엄한 탓에 정민기는 어쩔 수 없이 먼발치에서 박민정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하여 때로는 유남준이 떠났는지, 집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박민정은 악보를 닫고 정리한 후 문밖으로 나갔다.차에 탄 그녀는 운전기사를 시켜 여러 곳을 돌게 하여 뒤따라오는 보디가드를 따돌렸다.곧이어 정민기의 차가 눈앞에 나타났고, 박민정은 차에서 내려 정민기의 차로 옮겨탔다.“무슨 일이에요?”정민기가 휴대폰을 꺼내 내비게이션을 켜더니 진주시 서부를 가리켰다.“아침에 유남준이 가던 방향인데, 보안이 철저한 것을 보아 아마 아드님이 끌려간 곳인 것 같아요.”박민정은 그 광활한 지역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지도로 단순히 보기엔 장소가 너무 넓은 것 같아요.”“그렇죠.”이때 정민기가 새 휴대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 휴대폰 가져가세요. 지금 쓰고 있는 건 도청될 수도 있으니까요.”“연 선생님은 며칠만 있으면 돌아올 거라고 했어요.”박민정이 휴대폰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연 선생님께서 휴대폰 받으면 안부 전해 달라고 했어요.”정민기가 말을 보탰다.“알겠어요.”정민기가 차를 감시 카메라가 없는 은폐된 곳으로 몰았다.박민정이 전화를 걸자 건너편에서 빠르게 받았다.“민정아, 지금 좀 어때?”“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윤우 어디로 끌려간 건지 알아낼 방법 열심히 찾아볼 거야.”박민정이 얼른 대답했다.그러나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윤우의 위치를 찾는다 해도 유남준의 방해로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음. 내 말은, 그 사람이 너한테 상처 줬어?”연지석은 건물의의 가장 높은 층에 서 있다.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그가 서 있는 곳은 아직 깜깜한 새벽이다.그의 훤칠한 몸과 다부진 상반신에

Latest chapter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74화

    유남우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윤소현을 밀어내지도 않고 오히려 위로해 줬는데 이런 모습을 일부러 박민정에게 보여주려는 건지 아니면 홍주영에게 보여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홍주영과 박민정 두 사람은 그저 한쪽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더니 그들에게 말했다.“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거부 반응은 없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의사가 떠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박민정과 조하랑도 그곳에 한참 동안 머물다가 병원을 빠져나왔다.돌아오는 길에 조하랑은 이상하게 마음이 착잡했다.그녀는 원래 뱃속의 아이를 지우려 했지만 오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유다혜를 본 뒤로는 이상하게 망설여지기 시작했다.모든 아이한테 이 세상에 태어날 기회가 주어지는데 괜히 그 기회를 마음대로 저버리는 게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김인우 씨가 혹시나 아이를 원치 않으면 어떡하지?’“민정아, 내가 임신한 사실은 일단 비밀로 해줘. 특히 인우 씨한테.”박민정은 왜 그래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 갔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먼저 조하랑을 데려다준 뒤 박민정은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에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민정아, 아까 급하게 나가더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박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별일 아니야. 그저 하랑이 만나고 왔어.”“그럼 됐어.”그렇게 사람들이 다 떠나갔지만 에리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민정아, 저번에 그 뉴스 기사 봤어?”‘기사?’순간 저번에 최현아가 에리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에리가 다급하게 해명하기 시작했다.“민정아, 난 극히 정상적인 남자야. 절대 게이가 아니니까 믿어줘.”그의 말에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래. 믿을게.”박민정이 웃자 에리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73화

    “민정아, 하랑 씨.”다름 아닌 정수미와 윤소현이었는데 그중 정수미는 빠르게 두 사람에게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민정아, 병원에는 웬일이야? 어디 아픈 거야?”이때 조하랑이 갑자기 일부러 기침하더니 박민정 대신 답했다.“콜록! 콜록! 제가 감기 걸려서 민정이랑 같이 왔어요.”그러나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의사가 진료실에서 나오더니 보고서를 그녀에게 건네줬다.“조하랑 환자분, 임신 보고서를 두고 가셨어요.”순간 조하랑은 온몸이 굳어버렸다.그녀의 거짓말이 이렇게 빨리 탄로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박민정은 재빨리 일어나 보고서를 건네받았고 조하랑도 멋쩍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왔던 김에 산부인과에도 와봤어요.”정수미는 그녀의 말에 활짝 웃었다.“축하해요.”“감사합니다.”그러나 조하랑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옆에 서 있던 윤소현은 김씨 가문의 후계자를 임신했다는 소리에 또다시 질투심이 마구 불타올랐다.이렇게 되면 김씨 가문에서 조하랑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진다고 볼 수 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신분이나 지위, 외모 면에서 조하랑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밀려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유남우와 홍주영 두 사람도 손에 한 무더기 결과서를 갖고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문득 박민정 손에 들린 검사 보고서를 본 순간 표정이 변했다.‘임신 보고서인가?’‘또 임신했다고?’유남우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윤소현이 빠르게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남우 씨, 우리 다혜는 어떻게 됐어요?”“방금 수술이 끝나서 이제 회복 결과를 지켜봐야지.”윤소현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유남우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만약 우리 다혜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 그러면 저도 그냥 죽어버릴래요.”유남우는 그녀를 밀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보는 눈이 많아 애써 참고 그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너무 무섭지만 남우 씨가 제 옆에 있어서 다행이에요.”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72화

    박민정은 왠지 조급하게 들리는 조하랑의 목소리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답했다.“그래.”한 시간 뒤, 어느 작은 내과 병원.박민정은 허름한 병원 외부와 안절부절못해 보이는 조하랑에게 의아해서 물었다.“하랑아, 대체 이런 곳에는 왜 온 거야?”조하랑은 그녀의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더니 급하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조용히 해.”그리고 주머니에서 마스크 두 장을 꺼내더니 하나는 박민정에게 건네며 다시 말을 이었다.“민정아, 나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서 검사해 봐야겠어.”“뭐?”박민정은 진짜 큰 일인 줄 알고 가슴을 졸였는데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런 건 먼저 테스트기로 확인해 볼 수 있지 않나?’조하랑은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읽었는지 재빨리 해명했다.“임테기도 다 정확한 건 아니잖아. 무조건 병원에 와서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게 제일 확실할 것 같아서.”“그렇지만 꼭 이런 곳에서 검사해야 해?”박민정은 이곳의 위생 상태가 너무 걱정되었다.그러나 진주시의 크고 작은 병원들은 거의 다 김씨 가문 산업이다 보니 조하랑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혹시나 김씨 가문에서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나중에 김인우랑 김훈한테 해명하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가자. 걱정하지 마.”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들어가서 더러운 의료 기기들을 보고는 기겁하더니 빠르게 뛰쳐나왔다.“그냥 다른 병원으로 가자.”두 사람은 다시 짐을 싸서 결국에는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소변 검사와 초음파 검사까지 마친 조하랑은 검사 보고서에 임신 4주 차라는 글씨를 본 순간 눈앞이 아찔해 났다.“어떻게 4주가 되는 거예요?”“마지막 생리 주기를 계산해 본 결과가 그렇게 나왔습니다.”조하랑은 지금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박민정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줬다.“좋은 일인데 인우 씨한테 빨리 알려줘.”그러나 조하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아니, 절대 안 돼.”자신도 아직 받아 들을 준비가 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71화

    정수미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의사한테 자신이 사인하겠다고 말하려는데 멀리서부터 유남우가 다가와 그들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윤소현은 유남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얼굴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눈물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남우 씨, 우리 다혜가 혈액암이래요. 그래서 다른 피를 수혈받아야 한다는데 그래도 살 확률이 그리 높지 않대요. 저희 이제 어떡하죠?”유남우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럼 빨리 수혈부터 진행하자고 해.”윤소현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빨리 사인했다.그러나 정수미는 그녀의 빠른 태세 전환에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분명 이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유남우의 원인이 크다는 걸 윤소현도 알 텐데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렇게 그들은 밤새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새벽 때쯤, 홍주영도 전문의들을 데리고 달려왔다.그리고 어린아이가 고생하고 있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도련님, 다혜는 괜찮나요?”홍주영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유남우는 문득 어제 하민재와 그녀가 같이 있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나도 아직 몰라. 지금 수술 중이야.”홍주영은 수술실 쪽을 바라보면서 애써 조급한 마음을 달랬다.그러나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윤소현은 그녀의 모습이 참 가증스럽다고 생각되었다.“홍 비서님, 다혜는 제 딸인데 왜 비서님이 난리예요?”그녀의 날카로운 말투에 홍주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이때 유남우가 고개를 돌리고 윤소현에게 물었다.“다혜가 자기 딸인 걸 아는 사람이 왜 지금 하나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그는 원래 이 계기로 윤소현에게도 만약 아이한테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이 여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윤소현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이 일은 점점 크게 번져 어느새 김씨 가문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김인우는 유다혜가 병원에서 수술받는다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70화

    “연애해 본 적 없다면서요?”하민재는 다소 의아했다.도대체 자신이 그 남자보다 부족한 게 뭐란 말인가?홍주영은 그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네, 연애는 해 본 적 없어요. 그냥... 짝사랑이었을 뿐이에요.” 하민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렇게 솔직한 여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럼 왜 고백하지 않았어요?” 그는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홍주영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그 사람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절 좋아하지 않거든요.”“그럼 둘이 이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거네요?”하민재가 다시 한번 확인하자 홍주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헤어질 필요도 없잖아요? 난 신경 안 써.”짝사랑이라면 아무 문제없었다.하민재는 자신만만했다. 연애 경험 없는 홍주영쯤이야 얼마든지 자신의 매력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홍주영이 더 말을 잇기도 전에 하민재가 가로막았다.“하지만은 무슨. 이제 이 얘긴 그만해요. 연애에 공평함 같은 게 어디 있어요? 난 주영 씨 마음속에 누군가 있는 걸 개의치 않으니까 주영 씨도 내 과거에 신경 쓰지 않으면 돼요.”하민재의 단호한 태도에 홍주영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좋아요, 약속할게요.”“네.”그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하민재의 할머니가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어떻게 됐어?”“뭐가요?”하민재가 되묻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랑 주영이 말이다. 주영이 같은 아이, 꼭 소중히 여겨야 한다. 부잣집 딸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할 것 없는 아이야.”하민재의 할머니는 함부로 연을 맺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홍주영에 대해 충분히 조사했었다. 홍주영은 비록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능력만큼은 인정할 만했다.그녀는 가문 사업에는 별 관심 없는 손자가 이런 여자를 곁에 두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하민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69화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하민재가 아니라 유남우였다.홍주영은 순간 얼어붙었다.“도련님? 어떻게 오셨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유남우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별일 아니야. 네가 연락도 없고 전화도 안 받아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해서 와봤어.”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거짓말을 했다.홍주영은 황급히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제야 유남우가 여러 번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는 걸 확인했다.“죄송해요. 오늘 오후 바빠서 폰을 무음으로 해뒀거든요. 그래서 확인을 못 했어요.”유남우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테이블 위에 놓인 낯선 컵이 눈에 들어왔다.“누가 왔었어?”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묻자 홍주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오늘 남자 친구 가족을 만나고 왔어요.”‘남자 친구 가족...? 벌써 부모님을 만난 건가?’“언제 그렇게 됐어? 상대는 누구야?”유남우는 모르는 척 물었고 이 말에 홍주영은 주먹을 살며시 쥐었다.“...하민재 씨예요.”‘역시, 그놈이었군.’유남우는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을 애써 감췄다.“그때는 사귈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나?”“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생겼어요.”홍주영은 손바닥을 꼭 쥐었다. 어쩐지 유남우 앞에서는 괜스레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더 이상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녀는 얼른 주방으로 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건넸다.“도련님 오늘 저한테 왜 연락하신 거예요?”“별건 아니고, 전에 고 대표 건 홍 비서가 맡았지? 그 계약서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더라. 나중에 혼자 찾았어.”“아... 찾으셨군요. 죄송해요. 앞으로는 업무에 지장 없도록 할게요.”유남우는 그녀가 내민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물맛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다.“괜찮아. 이제는 홍 비서 일도 중요하니까. 홍 비서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니 결혼을 생각할 때가 됐겠지.”그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68화

    시간이 흐를수록 차 안에 앉아 있던 유남우는 여전히 홍주영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고 그는 무심코 넥타이를 당겼다.또다시 10분이 지나도록 메시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들려온 건 차가운 자동 응답음뿐이었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가슴 한구석이 더 답답해졌다. 그는 짜증스럽게 휴대폰을 한쪽으로 던지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운전해.”운전기사가 물었다.“어디로 모실까요?”“모르겠어. 그냥 아무 데나 가.”“네.”차는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창밖으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한편, 홍주영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씨 가문의 할머니와 몇 마디 더 나눈 뒤 하민재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하민재는 벌써 그녀를 미래의 아내로 여기고 있었다.“어때요? 불편한 점은 있어요?”홍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없어요. 할머니도 너무 좋으시고 아버님과 어머님도 따뜻하게 대해 주셨어요.”그때 하민재가 갑자기 등 뒤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자, 받아요.”“이게 뭐예요?”홍주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하민재는 그녀의 손에 상자를 쥐여 주었다.“열어봐요. 우리 부모님께서 주영 씨에게 주시는 첫 선물이에요.”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고풍스러운 장신구 세트가 들어 있었다.아니, 단순한 ‘고풍'이 아니라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전통 예물이었다.하민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부모님께서 주영 씨를 인정하신 거예요. 이건 우리 집안의 며느리만 받을 수 있는 거거든요.”홍주영은 너무 놀라 얼른 상자를 다시 그의 손에 돌려주었다.“이건 너무 귀한 거라 받을 수 없어요.”“왜 못 받아요? 어차피 우린 결혼할 사이인데.”‘결혼'이라는 단어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망설였다.“결혼하고 나서 받아도 늦지 않잖아요. 아직은 너무 일러요.”결혼 이야기가 나온 이상, 섣불리 받을 수 없었다. 만약 나중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67화

    “저는 남준 씨가 동서를 못마땅해하던 시절도 지켜봤어요. 그 삼 년 동안 동서는 정말 처참했죠. 아무도 동서를 사모님으로 대우하지 않았어요.” 최현아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빨리 변하다니. 나는 동서가 영영 남준 씨랑 화해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동서는 정말 너그럽네요.”유남우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으나 최현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실 도련님께서 돌아오기 전에 전 이미 동서한테 사람을 잘못 알아봤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동서는 그때 이미 남준 씨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유남우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간 거니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어요.”최현아는 입을 다물었다.유남우는 시선을 거두고 돌아서서 걸어갔고 최현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유남우는 유남준이 잘되는 꼴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두 형제가 어떻게 싸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유남우는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서는 홍주영이 조수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그가 타자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도련님.”“응, 회사로 가자.”“네.”홍주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핸드폰은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그녀는 확인하지 않았고 유남우는 그런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왜 메시지를 안 봐?”홍주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개인적인 메시지라 굳이 볼 필요 없어요.”그녀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건 하민재였다. 둘은 이제 화해하고 교제하기로 했는데 하민재는 예상외로 틈만 나면 연락을 해왔다.“괜찮아. 지금 업무 시간도 아닌데.” 유남우는 부드럽게 말했다.“네.”홍주영은 그제야 핸드폰을 들어 하민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그는 오늘 오후에 그녀를 하씨 가문에 초대했다. 할머니가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홍주영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유남우에게 말했다. “도련님, 오늘 오후에 개인적인 일이 좀 있어요.”유남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66화

    그가 고개를 숙이며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박민정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박민정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흔들리며 그녀는 반사적으로 입을 손으로 가렸다. 덕분에 그의 입술은 그녀의 손등에 살짝 닿고 말았다.둘의 시선이 엉키며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올랐다.유남준이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치우려 하자 박민정은 급히 외쳤다.“안 돼요!”그녀의 반응에 유남준의 동작이 멈췄다.“저... 저 갑자기 기억이 난 것 같아요.”유남준이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정말?”“네! 어제, 아마도 음료에 술이 조금 섞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미안해요.” 박민정은 얼굴이 불타오를 듯이 새빨개졌으나 유남준은 오히려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당연한 거야. 너도 결국 참지 못한 거잖아.”“뭐라고요?” 박민정은 순간 주먹을 꼭 쥐었다. “내가 뭘 참지 못했다고요?”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 이제 그만. 일어나자. 예찬이랑 윤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박민정은 아이들이 밤새 자신을 찾아다니다 놀랐을 걸 생각하니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유남준은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좋아. 아침 먹고 바로 돌아가자.”그의 기분은 오늘따라 유난히 좋아 보였다. 돌아가는 길 내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반면, 박민정은 그의 곁에 앉아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두 사람이 부부라는 것, 이미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젯밤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도대체 왜 참지 못한 거지?'유남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고 박민정은 깜짝 놀라며 손을 빼려 했다.“괜찮아요.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요.”하지만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이건 걷는 문제랑 상관없어.”박민정은 그의 아내였다. 그는 그녀가 항상 그의 시야 안에 머물도록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유남준이 어제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어제, 최현아가 너한테 뭘 하지 않았어?”그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