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준은 목이 메어왔다.합의…우리 사이에 또 무슨 합의가 필요해?유남준은 내키지 않았지만 박민정이 집을 나가겠다고 할까 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먼저 써둬.”만일 그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면 절대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옷을 갈아입고 얼른 정림원으로 향했다.도착한 후 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아저씨, 드디어 오셨네요. 우리 아빠한테 저 잡아갔다고 말은 했어요?”아이를 데려가 놓고 어떻게 연지석과 아는 체를 하겠는가.유남준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대답했다.“지금쯤이면 이미 알고도 남았지.”사슴 같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는 하도 울어서 코끝이 붉다.“그럼 왜 아직도 절 데리러 오지 않는 거예요?”“저 집 가고 싶어요. 아빠도 보고 싶어요…”유남준이 티슈 한 장을 아이 앞에 내밀었다.“그만 생각해. 네 아빠는 너 싫대.”“…”말도 안 되는 소리. 아저씨가 나를 싫다고 할 리가.감히 어린 애까지 겁 주려 한다니. 정말이지 악랄하다.어린애라는 장점을 앞세워 박윤우는 냅다 울어대기 시작했다.“거짓말! 아빠가 윤우를 싫어할 리가 없어! 나중에 엄마랑 동생도 만들어주겠다고 했었단 말이에요!”유남준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방 안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고 주위 온도마저 가라앉는 듯했다.“네 아빠가 민정이랑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고?”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박윤우가 일부러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네! 여동생이랑 남동생 많이 만들어줘서 같이 놀게 해줄 거라고 했어요!”“…”박윤우는 울면서도 몰래 유남준의 안색을 살폈다.우리 엄마 좋아하지 않는 것 아니었나?그런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둡지?본인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 주기는 싫은가? 혹시 세상의 모든 쓰레기가 이런 걸까?“그럼 네 엄마는 왜 귀국한 거지?”유남준은 당연히 아이가 속사정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뱉은 말이었다.그러나 이에 당황한 박윤우는 어리둥절해서 하마터면 곧
유남준은 얼굴이 흙빛이 된 채 박윤우를 놓아주었다.애가 담이 작아도 너무 작은 것 아닌가.“아저씨, 윤우 때리지 마세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윤우는 무섭단 말이에요…”밖에 있던 가정부들이 아이의 울음소리에 사장이 나쁜 짓이라도 했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박윤우를 돌보던 가정부는 해고될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벌컥 열었다.“사장님, 아이가 이렇게나 어린데. 때리면 안 되죠…”그녀는 방으로 들어온 후에야 유남준의 하얀 셔츠 위의 노랑 액체를 보았다…가정부는 문득 무언가 깨닫고 겸연쩍은 듯 눈을 돌렸다.“아저씨, 화났어요? 왜 대답 안 해줘요? 엄마 언제 만나게 해줄 거예요?”유남준은 경직된 얼굴로 아이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욕실 안에서 그는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이고 씻었다. 그 사고뭉치 자식만 생각하면 엉덩이 두 대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박민정은 그렇게 상냥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사고뭉치 아이를 낳았을까…한 시간 후 욕실에서 나오는 유남준의 몸에서는 은은한 로션 향이 났다.가정부는 조심스레 그에게 와서 말했다.“사장님, 윤우 이제 안 울어요. 그리고 대신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그리고 착한 아이가 될 테니 제발 죽이지 말아달래요. 아직 엄마·아빠도 보지 못했다고요.”아이의 말을 전하는 가정부도 말하면서 깜짝 놀랐다.아이가 사장의 아들이나 친척이 아니었구나. 그럼 죽인다는 건 또 무슨 말이지?무언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 기분. 이러다 입막음 당하면 어떡하지?아이를 죽인다고?어쩐지 그 사고뭉치 자식이 오줌을 지리더라니, 오해한 것이었군…“그래요.”그는 어린애와 실랑이할 겨를이 없었다.떠나기 전 그는 가정부에게 아이를 잘 돌보라고 당부했다.가정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박윤우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방 안에 있던 박윤우는 유남준의 자동차가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어찌나 통쾌하고 시원했는지 모른다.그와 형이 태어나고 엄마가 그들을 돌보면 얼마나 많은 똥 기저귀를 갈았는데, 겨우 한
“왔어요?”박민정이 피아노 커버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훤칠한 키의 유남준이 문 옆에 기대어 그녀를 응시했다.“왜 더 안 쳐?”전에는 일이 바빠 그녀가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언젠가 박민정이 자신을 찾아와 프로젝트를 요청하며 한 번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당시 그는 박민정의 동생 박민호에게 화가 난 상태였고 박민정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녀는 아마 이 일로도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그 일 이후로 박민정은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었고, 피아노를 연주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남준 씨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박민정이 이어 말했다.“합의서 준비했으니 보러 가요.”외출하고 온 유 남준은 합의서에 관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그래.”두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유남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잘 치던데, 곡 이름이 뭐야? 못 들어본 곡인 것 같네.”그의 말에 박민장이 어리둥절했다.“못 들어봤다고요?”이 곡은 그녀가 학창 시절 만든 곡이었고 당시에 특별히 유남준에게 연주해 주었던 곡이다.유남준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내가 들어봤던 곡이야?”박민정은 그가 잊은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그냥 한 말이었어요. 이 곡은 제가 고등학생일 때 쓴 거예요. 아직 발표하지 않은.”박민정이 직접 썼다는 말에 유 남준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높이 보게 되었다.그는 자기 아내가 이토록 많은 재능을 갖고 있음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유남준이 먼저 앞장서자 박민정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그의 반응이 곡을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이렇게 바쁜 사람이, 게다가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곡 하나를 여태 기억하고 있겠는가.방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자신이 직접 쓴 합의서를 가져와 그에게 건네주었다.
밤이 되자 유남준은 집을 나섰다.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민정은 정민기의 메시지를 받았다.유남준이 집을 나갔으니 둘러대고 밖에 나오라고, 그리고 알려줄 것이 있다는 문자.두원별장의 보안이 삼엄한 탓에 정민기는 어쩔 수 없이 먼발치에서 박민정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하여 때로는 유남준이 떠났는지, 집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박민정은 악보를 닫고 정리한 후 문밖으로 나갔다.차에 탄 그녀는 운전기사를 시켜 여러 곳을 돌게 하여 뒤따라오는 보디가드를 따돌렸다.곧이어 정민기의 차가 눈앞에 나타났고, 박민정은 차에서 내려 정민기의 차로 옮겨탔다.“무슨 일이에요?”정민기가 휴대폰을 꺼내 내비게이션을 켜더니 진주시 서부를 가리켰다.“아침에 유남준이 가던 방향인데, 보안이 철저한 것을 보아 아마 아드님이 끌려간 곳인 것 같아요.”박민정은 그 광활한 지역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지도로 단순히 보기엔 장소가 너무 넓은 것 같아요.”“그렇죠.”이때 정민기가 새 휴대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 휴대폰 가져가세요. 지금 쓰고 있는 건 도청될 수도 있으니까요.”“연 선생님은 며칠만 있으면 돌아올 거라고 했어요.”박민정이 휴대폰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연 선생님께서 휴대폰 받으면 안부 전해 달라고 했어요.”정민기가 말을 보탰다.“알겠어요.”정민기가 차를 감시 카메라가 없는 은폐된 곳으로 몰았다.박민정이 전화를 걸자 건너편에서 빠르게 받았다.“민정아, 지금 좀 어때?”“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윤우 어디로 끌려간 건지 알아낼 방법 열심히 찾아볼 거야.”박민정이 얼른 대답했다.그러나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윤우의 위치를 찾는다 해도 유남준의 방해로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음. 내 말은, 그 사람이 너한테 상처 줬어?”연지석은 건물의의 가장 높은 층에 서 있다.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그가 서 있는 곳은 아직 깜깜한 새벽이다.그의 훤칠한 몸과 다부진 상반신에
수호 클럽 펜트하우스.어두운 조명 아래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많은 상류층 귀공자들도 있었다. 유남준은 조용한 곳에 앉아 휴대전화를 켜서 박민정을 뒤따라가던 경호원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놓쳤습니다.]유남준이 떠나자마자 박민정이 외출했는데 지금 사라지기까지 하다니.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 시간 후에 못 찾으면 더 이상 진주시에 있을 생각하지 마.]유남준의 메시지에 진주시의 모든 CCTV를 동원했다.유남준은 또 박민정에게 통화를 시도했다."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이때, 박민정은 은정숙과 통화하고 있었다. 박민정은 윤우와 예찬은 잘 돌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화면 너머 은정숙은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민정아, 무슨 일 있으면 혼자 짊어지지 말고 꼭 아줌마랑 연지석한테 연락해.”은정숙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박민정의 우울증이다. 박민정이 또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두려웠다.“네, 안심하세요.”박민정은 그녀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정민기가 급하게 오는 것을 보고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이에요?”“유남준 쪽 사람들이 민정 씨를 찾고 있어요.”정민기가 대답했다. 말을 들은 박민정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자기를 데리러 한 도로 입구에 오라고 운전기사에게 전화했다.그런 다음 그녀는 옷 사러 간 척하고 차에 탔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준의 경호원이 박민정을 발견하고 즉시 사진을 찍어 유남준에게 보냈다.유남준은 사진을 보며 전화 걸었다.휴대전화 진동 소리를 듣고서야 박민정은 유남준이 전화한 것을 발견했다.“여보세요.”“지금 어디야?”유남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박민정은 근처를 둘러보더니 말했다.“타임스퀘어에요. 이제 막 돌아가려던 참인데, 무슨 일이에요?”‘타임스퀘어?’“수호 클럽 펜트하우스로 와.”유남준은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타임스퀘어는 수호 클럽과 몇백 미터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박민
그렇게 생각한 강은지는 사람들의 호응을 받으며 유남준의 곁에 앉았다.어두운 빛 아래에서 강은지는 유남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강은지는 처음에 있던 당황스러움과 수줍음을 잊고 과일을 깎아 주려고 했다.유남준은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만약 내가 돈을 안 주면 여기 앉았을 거야?”잠시 멈칫하던 강은지는 얼른 반응했다.“대표님 옆에 앉게 되어 영광이에요. 돈은 필요 없어요.”‘하, 돈이 필요 없다니.’그 말을 들은 유남준은 자연스럽게 박민정이 떠올랐다.몇 년간의 결혼 생활, 이혼한 후에야 박민정이 유씨 집안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 그러면 지금부터 월급 없이 여기서 일해.”유남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비록 수호가 유남준의 재산은 아니지만, 그의 말 한마디면 사장은 즉시 실행할 것이다.강은지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유 대표님, 저랑 장난하시는 거죠?”강은지가 만약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에서 일할 수 있었겠는가.그녀의 학력으로 볼 때, 한 달에 200만 원 버는 일자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한 달에 200만 원 버는 것이 어떻게 하루에 200만 원 버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게다가, 강은지는 젊고 미모가 아름다워서 금수저 신랑감을 낚을지도 모른다.“네 생각은 어때?”유남준이 되물었다.옆에 있던 친구들이 놀랐다. “남준이 형, 왜 그래?”유남준은 대답 없이 강은지만 쳐다보았다.“불만 있어?”강은지는 유남준의 아우라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강은지는 유남준이 단지 그녀를 시험하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유남준의 친구는 그가 한번 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강은지에게 얘기해 주지는 않았다.‘강은지가 이번에 한 일은 다 헛수고가 되겠네.’강은지는 앞으로 수호에서 어떠한 보수도 받지 못할 것이고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돈을 주지 못하리라
많은 사람들의 의아한 눈빛 속에서 유남준은 문 쪽으로 걸어갔고 방성원을 지나갈 때 걸음을 멈췄다.“방금 너한테 뭐라고 했어?”방성원은 박민정의 말을 솔직하게 전했다. 유남준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유남준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놀던 사람이 이지원에게 강은지의 소식을 알렸다.이지원은 지금 인터넷 여론을 해결하고 실시간 검색어를 누르느라 바빴다. 갑자기 어떤 여자가 유남준을 넘본다는 소식에 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이지원은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수호에 강은지라는 여자에게 매운맛 좀 보여줘요.”‘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게 감히 유남준을 뺏으려고.’지금의 이지원은 더 이상 예전에 남들의 괴롭힘을 당하던 가난한 아가씨가 아니다. 대스타가 되었으니 그녀에게도 당연히 수단이 있었다. ...두원 별장.유남준이 돌아왔을 때, 거실의 전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불을 켠 후에 테이블 위의 박민정이 산 물건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돌아왔다고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앞으로 다가가 테이블 위에 있는 세 개의 봉지를 보니 안에는 옷 몇 벌이 들어 있었다.자세히 보니 남성 옷이었다.눈살을 찌푸리며 위층으로 올라간 유남준은 열려있는 박민정의 방문을 통해 안쪽에서은은한 불빛이 비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손을 들어 문을 살짝 열자, 옅은 색의 얇은 긴 치마를 입은 박민정이 베란다의 의자에 앉아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의 달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지금 그녀의 눈에는 유남준이 알 수 없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밤과 함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유남준은 넋을 잃고 한참 동안 박민정을 바라보았다. 박민정이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바라봤는데 눈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유남준은 그녀가 예전처럼 속상해서 자신을 추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매우 침착했다.“방금 수호에 갔다가 당신과 당신 친구들이 제가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아서 혼자 돌아왔어요.”박민정은 일어나서 유남준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박민정의 눈에 오픈 키친에서 분주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밝은색 셔츠에 회색 바지,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죽을 끓이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박민정은 놀랐다.이지원을 통해 유남준이 요리할 줄 알고 또 이지원에게 직접 해줬다는 것을 듣기만 했을 뿐 두 눈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유남준은 위층의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일어났어? 와서 죽 먹어.”말을 하면서 죽 두 그릇을 식탁에 올려놓았다.박민정은 싱크대에 쌓인 실패한 죽과 데어서 붉게 달아오른 유남준의 늘씬한 손가락을 발견하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남준은 요리는커녕 설거지도 할 줄 모르는 생활에서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이 죽도 임시방편으로 인터넷에서 배운 것이다.유남준은 붉어진 자기 손을 보며 요리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왜 아침 일찍 일어나 죽을 끓일 생각이 들었는지 그도 몰랐다. 아마 어젯밤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에 미안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박민정은 주방에 와서 그릇에 담긴 해물 어죽을 보고 숟가락을 대지 않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자신이 맛없게 했다고 생각한 유남준은 자리에 앉아 먼저 맛보았다.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맛이었다. “먹기 싫으면 버려도 돼.”말을 마친 유남준은 시선을 박민정의 얼굴에 둔 채 죽을 먹기 시작했다. 박민정은 숟가락을 들고 죽 한 숟가락을 뜨면서 중얼거렸다. “누가 해물 죽을 만들어 준 건 처음이에요.”유남준은 말속에 숨은 뜻을 눈치채지 못했다.“많이 먹어.”박민정은 한입 먹고는 또 유남준에게 물었다.“우리가 안 지 17년 정도 됐죠?”유남준이 어떻게 이런 일을 기억하겠는가?“응, 10여 년.”박민정은 죽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입에 밀어 넣으며 모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정말 바보네...”유남준은 듣지 못했다..“뭐라고?”“맛있다고요.”“당신이 매번 생선 요리를 해줬잖아. 그래서 나도 처음으로 해봤어.”유남준이 말했다.박민정은 죽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