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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유지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마워요, 정인 오빠.”

정인은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건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다리에 석고를 두른 채로 차를 타고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정양진의 경호원 이일수였다.

30대 초반의 이일수는 격투기 은메달을 손에 쥔 적 있는 실력자였는데 다리 부상까지 입은 정양진이 다급히 누군가에게 사과하러 간다는 사실이 못내 내키지 않았다.

“회장님, 몸도 안 좋으신데 아무리 사과가 급하다고 해도 굳이 오늘 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건강이 우선이죠.”

그러자 정양진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네가 뭘 알아? 정인 그 자식이 지금 아비 무덤을 파고 있는 거야! 그 녀석 지금 임건우 와이프한테 프러포즈하러 갔다고! 마동재가 나한테 직접 연락이 왔는데 내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은 이일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엑셀러레이터를 꾹 밟았다.

한편, 임건우와 반하나는 함께 일 층 로비로 내려왔다.

회사 직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직원들은 재미난 구경을 보는 눈빛으로 그들과 프러포즈 대오를 번갈아보았다.

누군가는 단톡방에 이 사실을 알렸다.

“임건우 씨 회사에 있었네? 설마 저러다가 싸움 나는 거 아니야?”

직원들은 서둘러 창가로 향했다.

유지연은 창문에 매달려 구경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임건우, 이 무능한 자식! 오늘 네 명예를 바닥 끝까지 추락시킬 거야! 눈 뜨고 마누라 빼앗기는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한 번 느껴보라고!’

이때, 로비에 임건우와 반하나가 나타났다.

“저 인간, 여기 있었어?”

그녀는 임건우가 유여정과 유창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모습이 저도 모르게 떠올라서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정인을 보자 다시 흥분이 들끓었다.

“정인 오빠, 임건우 저 자식도 여기 있었네요? 저 자식이 저 때리려고 하면 도와주실 거죠?”

“당연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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